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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치(幸). 행복이라는 뜻이다. 행복의 행. 맵다라는 의미의 신(辛)과는 다른 글자다. 힘들다는 것과 행복은 한끝 차이라는 것일까. 아니면 행복과 고통의 차이를 모르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을 풍자한 것일까.

 덴세츠 사이언스는 사무용 보조 바이오로이드를 소개하며 그 이름을 사치라 지었다. 행복. 사무실과는 도저히 매칭이 안되는 단어였다. 사치보다는 카라(辛), 츠라 같은(辛), 혹은 카츠라 같은 힘든 것을 말하며 한자로는 한획이 늘어날 뿐인 단어를 쓰는 것이 나았을 것이었다.

 직장에서 행복을 느끼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하루종일 바쁘고 시간이 안가고 상사의 눈치를 보고 혼나야 하는 그곳을 행복이라 부를 사람은 없을 것이었다. 그곳은 피학적 성향을 가진 사람조차 고통하는 곳이었다.

 사치, 당신의 사무실에 행복을 가져다드립니다. 덴세츠 사이언스의 유능한 마케팅팀은 사치를 대표할 광고문구를 만들어냈다. 사무실에 행복이 있을 리가 없다. 하지만 사치와 함께라면, 삭막한 사무실에 활기를 가져올 수 있지 않을까. 그런 심리를 자극했다.

 후에 사치로 인해 유급인턴의 수가 극도로 감소했다는 연구결과도 있지만 사무실에 행복이 늘어났다는 연구결과가 발표되는 일은 없었다. 하지만 사치와 함께 일해본 사람들은 모두 이와 같이 말했다. 사치와 있을 때는 언제나 행복했다고.
 

 “다들 일찍 나왔네.”

 키리시마 이치카 중의원실, 출근시간보다 그리 이르지 않은 시간에 하라다 비서관이 도착했다. 그가 의원실에 들어섰을 때는 이미 다른 보좌진은 자리에 앉아있었다. 다행인 것은 그의 유일한 상관인 코야마 보좌관이 자리를 비웠다는 것이었다.

 “오늘은 열차 연착이 없었거든요. 다 공휴일인 덕이죠.”

 오늘은 4월 29일, 쇼와의 날이었다. 골든위크라 불리는 일본의 황금연휴의 시작임과 동시에 매년 이것을 공휴일에서 제외해야 한다는 시위가 열리는 날이기도 했다. 쇼와시대는 보통 일본의 부흥기인 60년대 이후를 말했지만 그것은 쇼와 덴노의 즉위가 전쟁 이전 제국 시절이었던 1928년이라는 것을 잊고 말하는 것이었다.

 “대체 왜 쇼와 덴노의 생일에 쉬어야 하는 거죠? 헤이세이도 레이와도 지난 요즘인데요. 차라리 헤이세이 덴노의 생일에 쉬는게 어때요. 헤이세이 시절에는 12월 23일이 휴일이었어요. 크리스마스가 휴일도 아닌 나라인데 그 당시 사람들은 크리스마스가 휴일이었다고요.”

 피곤한 얼굴을 한 무츠미 비서는 잠시 책상에 머리를 박으며 말했다.

 “그럼 다음 법안은 쇼와의 날을 없애고 대신에 헤이세이의 날을 만들돌고 국민의 축일에 관한 법률의 수정을 준비하자고. 확실한 건 골든위크의 반이 사라지게 된 국민들의 분노와 그시절의 향수로 먹고 사는 여당의 반대에 맞서야 겠지만.”

 그런 그를 보며 웃으며 하라다 비서관은 자신의 자리에 앉았다.

 “말이 그렇다는 거죠. 말하셨듯 오늘은 골든 위크라고요. 일본 최고의 연휴에요. 그런데 이게 뭐에요. 휴일은 커녕 일하다 날밤 새겠어요.”

 무츠미 비서는 푸념을 늘어놓았다. 그런 무츠미의 옆에 다가온 한 아름다운 여성이 무츠미의 책상에 음료수를 하나 내려놓았다. 캔커피, 그것도 카페인이 많은 것으로 유명한 커피였다.

 “비서님 힘내세요. 의원님께서도 법안 통과가 되면 휴가를 길게 주실 거게요. 모두가 열심히 일하는 거 아시니까요. 지난번 바이오로이드의 권리에 관한 기본법이 통과된 다음에 모두 금일봉이랑 2주간 휴가를 받았잖아요.”

 사치는 무츠미의 책상에 엉덩이를 살짝 걸쳐 걸터앉았다. 그녀는 타이트한 여성용정장을 입고 있었고 그 정장은 볼륨이 넘치는 사치의 몸매 때문에 언제라도 터질 것 같았다. 하지만 옷이 무슨 재질로 만들어진 것이었는지 사무실의 다른 직원들의 걱정과 기대와는 달리 터지는 일은 없었다.

 “그건 재보궐선거까지 가진 휴무기간이잖아요. 그나마도 형식상의 재보궐 선거라 모든 정당이 같은 후보를 그대로 낸 선거요. 중의원 90%는 자리를 지켰고 우리 일자리도 안날아갔죠. 이번 법안이 통과되면 쉴 수나 있을까요. 쉬지도 못하고 다음 법안 준비하겠죠.”

 “너무 그러지 마세요. 해피하게 포지티브 마인드 하세요.”

 그렇게 말하는 사치의 얼굴을 보자 힘이 났다. 이건 비유적인 표현이 아니었다. 어떻게 된 걸까 사치의 얼굴을 보면 얼굴에 미소가 지어지고 행복한 기분이 들었다. 그녀의 친근한 외모 때문일 까.  무츠미는 웃음을 지으며 일어나 작업을 시작했다. 사치는 무츠미의 어깨를 토닥여준 뒤 다른 음료수를 들고 하라다 비서관의 자리로 왔다.

 “비서관님은 커피를 싫어하시니 오늘은 홍차를 드릴게요. 몇번 먹어봤는데 이거 진짜 맛있어요.”

 사치는 홍차캔을 하라다 비서관에게 건네주었다. 그는 웃으며 음료수를 받아들었다.

 “네 입맛은 언제나 신뢰해.”

 하라다 비서관은 캔을 따 한모금 마셨다. 정확히 그가 좋아하는 취향의 홍차였다. 평소에는 티백이나 직접 만들어 먹는 것을 선호하는 그였지만 이정도 캔음료면 먹어도 될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그가 레이블을 확인하자 사치는 미소를 지었다.

 “어때요? 맛있죠? 제 혀는 믿을만하죠?”

 사치는 아름다운 눈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언제나 그렇듯 최고야.”

 사치는 유능했다. 사치 5명이 있다면 이 보좌관실에 사람이 없어도 될 정도의 유능함이었다. 그런 일을 바라는 건 아무도 없었지만 말이다.

 “의원님과 보좌관님은? 오늘 아침에 일정 있으셨던가.”

 하라다 비서관은 키리시마 이치카 의원과 코야마 보좌관에 대해 물었다. 어제 일을 마치기 전에 뭐라 말한 거 같은데 전화를 받느라 제대로 듣지 못한 그였다.

 “오늘 오전에 자민당의 하타케야마 간사장님과 담화가 있어서 자민당 당사로 향하셨습니다. 그리고 오후에는 시사토론 방송에 출연 예정이십니다. 아마 오늘은 의원실에 오시긴 힘들다고 덧붙이셨습니다.”

 “의원님도 바쁘시네. 왜 너는 가서 도와주진 않고?”

 “의원님을 도와드리는 것보다 여기서 도움이 더 될 것 같다 하셨거든요.”

 “그것도 그러네.”

 사치는 비서기도 했지만 사무용 바이오로이드였다. 사무에 있어서 사치보다 도움이 되는 것은 워드 프로세서와 엑셀 뿐이었다.

 “그럼 자! 일들 시작합시다!”

 하라다 비서관은 기지개를 펴며 말했다.

 “이미 저희는 일을 하고 있었는데요.”

 조용히 구석에서 타이핑을 치던 오하라의 말이었다.

 “그럼 잠깐 몇몇 사람이 휴식을 가졌던 걸로 하고 이제는 그만 쉬는 걸로 하죠.”

 사치는 자신의 자리로 돌아가며 말했다. 그녀는 자신의 자리에 앉자마자 엄청난 속도로 무언가를 타이핑하기 시작했다.


 “사치, 49년과 59년의 사이타마현 인구 변화에 대한 자료 부탁할게.”

 “네 알겠습니다!”

 하라다 비서관의 말에 사치는 빠르게 자료를 찾아냈다.

 “지금 파일 보내드렸습니다.”

 “사치! 콜로세움의 사진 부탁할게. 오픈 소스로. 구글에서 나오는 거 말고!”

 무츠미 비서의 말에 이번에는 사치는 사진을 찾아 보내주었다.

 “사치, 프린터가 작동을 안하는데?”

 “아, 고장나서 한대 쳐줘야 작동해요.”

 쾅 하는 프린터를 때리는 소리가 났다.

 “아, 작동한다. 고마워.”

 사치는 그렇게 다른 사람들을 도와주면서 자신의 일을 착실하게 하고 있었다. 사치는 단순히 도와주기만 하는 것만이 아니라 자신이 맡은 부분도 있었다. 단순하게 자료를 엑셀에 입력하는 거였지만 단순하다고 하기에는 어마어마한 양이었다. 책으로 만들면 두께가 책의 크기보다 높을 양이었지만 사치는 빠르고 정확하게 그 자료를 처리하는 중이었다.

 사치는 단순한 사무용 바이오로이드가 아니었다. 사치는 그야 말로 사무실에 행복을 가져다주는 바이오로이드였다.


 “모두 수고하셨습니다!”

 밤 늦게 보좌관들이 모두 퇴근하자 사치는 사무실에 혼자 남게 되었다. 사무실에서 사치가 평생 살아야 한다는 것은 아니었다. 사치에게도 최소한의 생활이 가능한 숙소가 있었다. 그런 그녀가 사무실에 남은 것은 뒷정리를 하기 위해서였다.

 쓰레기통을 비우고, 탕비품을 정리하고 간단한 청소를 하는 등 사무실에는 일을 마무리하며 할 것들이 많았다. 잡무를 한참 하던 사치는 하루종일 보좌관들이 준비한 프리젠테이션의 첫 장을 보았다. ‘사이타마현 슈퍼 아레나에서의 경기 개최.‘ 키리시마 의원이 새로 준비중인 것이었다.

 아직 초안에 불과했고 수정할 것이 산더미였다. 골드위크에 쉬지 못하면서까지 이렇게 모두가 열심인 것은 여름으로 계획중인 대 이벤트를 위해서였다. 아직 이름도 정해지지 않은 이벤트였지만 키리시마 의원은 올림픽에 버금가는, 혹은 그 이상이 될 엄청난 행사가 될 것이라고 말하고 다녔다.

 모두가 노력한 만큼 좋은 성과가 있으면 좋을 텐데. 사치는 프리젠테이션을 보며 생각했다. 바이오로이드의 권리에 관한 기본법 이후 얼마 되지 않았지만 모두들 그때가 언제였냐는 듯 열심히 일하고 있었다. 키리시마 의원은 복을 받은 사람이었다. 그렇게 말하면 그녀는 언제나 겸손하게, 모두가 열심히 해준 덕분이다.’라고 말하곤 했다.

 그런 사람이기에 복이 붙어있는 것임에 틀림 없었다.

 “이제 다 정리된 거겠죠?”

 사치는 마지막으로 의원실을 둘러보며 말했다. 자신의 개인손가방을 든 사치는 의원실의 불을 끄고 문을 잠갔다. 내일 새벽, 사치가 출근해 준비를 할 때까지 굳게 닫혀있을 문이었다. 의원실에는 언제나 기밀로 가득한 곳이었고 그 기밀을 노리는 사람은 수도 없이 많았으니까.

 “의원실을 잘 지켜줘야 한다.”

 사치는 문의 잠금장치에 말을 했다. 다른 사치들이 보면 그녀를 놀리겠지. 이런 건 혼자 있을 때만 하는 거야. 그녀는 그런 생각을 하며 의원회관을 나섰다.

 “사치, 키리시마 의원실에서 일하는 사치 맞죠?”

 그 때 그녀의 뒤에서 어느 여자가 다가왔다. 평범하게 생긴 여자와 그 여자보다 키가 작지만 바이오로이드처럼 아름다운 여자였다.

 “월간 치바의 마츠시타 쥰입니다. 키리시마 의원에 대한 질문이 있어서 찾아왔습니다.”

 그렇게 말하는 그녀의 얼굴에는 행복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