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상편 

프롤로그 하편




철충의 탑, 무적의 용의 자비없는 포격찜질을 얻어맞고 간신히 패잔병들만을 수습해 돌아온 철의 왕자는 그의 방안에 칩거하여 거대한 홀로 스크린을 뚫어지게 쳐다보고 있었다. 스크린에는 그의 휘하에 있지 않은 다른 철충 부대들이 저항군에게 공격받고 있는 모습이 생중계되고 있었다. 몸에 맞지도 않는 세일러복을 입고 있어 주책맞기 그지 없는 꼴을 하고 있는 무적의 용이 칼을 휘두르자 저 바다 너머에 쏟아지는 포화로 철충 부대들이 아무것도 못하고 갈려나가는 참혹한 광경이 생생히 나오자 과거의 트라우마가 떠오른 철의 왕자는 눈을 질끈 감았다. 


"저건 사기야!!"


철의 왕자가 옥좌의 팔걸이로 꽝 내리치면서 외쳤다. 철충 군단은 강하고 그 철충 군단을 이끄는 신세대 철충의 정점에 있는 그는 더더욱 강했다. 철충에게 문제가 없다면 문제는 어디에 있는가? 문제는 완벽에 가까운 철충 군단을 먼지 쓸어내듯이 쓸어내는 저 바이오로이드에 있었다. 저건 바이오로이드가 아니라 세상의 이치를 정면으로 거스르는 요물덩어리다. 어쩌면 저 심해 깊은 곳의 별의 아이의 딸내미일수도 있지. 철의 왕자는 그렇게 생각하며 실황 중계를 끄고 스크린에다 오르카 라이브 화면을 띄웠다. 



오르카 호의 인원들이 익명으로 자유롭게 글을 올릴 수 있는 이 게시판에서 철의 왕자는 레이저웨이브의 도움 덕분에 자유롭게 활동할 수 있었다. 글쓰기 화면이 나타나더니 철의 왕자가 텔레파시를 이용하여 글을 써내리기 시작했다. 그래 시간 지나고 보자고... 무적의 용이 불러올 파장을 말이야... 그가 쓴 글을 보고 흡족한 철의 왕자가 작성 버튼을 눌러서 글을 게시판에 올렸다. 과연 그의 생각대로 그가 올린 글은 오르카 라이브의 떡밥을 단숨에 바꿔버릴 정도로 뜨거운 반응을 불러왔다. 


"내가 이 암컷들을 화나게 만들었다...어떠냐 최후의 인간. 난 네 여자들의 감정을 지배할 수있다."


철의 왕자는 불타오르는 오르카 라이브를 흐뭇하게 눈팅하면서 진심으로 즐거워했다. 그가 쓴 글에 백여개가 넘는 댓글들이 달려 있었고 과연 이 계집들이 어떤 반응을 보였을까 기대하며 철의 왕자가 그가 작성한 글을 눌렀지만...


"삭제됐구나! 유미 이 고오오얀 년 같으니라고!"


격노한 철의 왕자가 소리질렀다. 오르카 라이브의 관리자인 유미는 그의 분탕글을 삭제한 것도 모자라 앞으로 먹이주면 하루 차단한다는 공지글을 올려 게시판의 분위기를 순식간에 정상화시켰다. 


"감히 내 혼신의 역작을 아무렇지도 않게 삭제하다니...좋다 계집. 오늘 기필코 너의 그 정신을 붕괴시키고야 말겠다. 어디보자... 최대한 메스껍고 역겨운 이미지로..."


철의 왕자가 데이터 베이스에 접속해 스크린에 멸망 전 인류가 남긴 온갖 혐짤들을 띄우면서 중얼거렸다. 불쌍한 유미는 가끔씩 출몰해 이상한 뻘글을 싸지르거나 혐짤 테러를 저지르는 분탕의 정체가 다름아닌 그 철의 왕자인지는 꿈에도 모르고 있을 것이었다. 스크린을 가득 매운 혐짤들을 마치 경매로 올라온 예술품들을 감별하듯이 감상한 철의 왕자는 이윽고 그가 특별히 엄선한 몇 장의 혐짤을 제외한 나머지 이미지들을 전부 스크린에서 제거했다. 24시간 쉬지 않고 이어지는 이 혐짤 테러로부터 어디 너의 정신건강을 지켜보거라 계집. 왕자가 중얼거렸다. 


"여기서 아직도 이러고 계셨습니까? 벌써 2주째입니다."


철의 왕자가 고개를 돌리니 스타트릭이 그의 옆에 서서 마치 한심하다는 듯한 표정으로 스크린을 쳐다보고 있었다. 


"뭐야 스타트릭. 용건이 뭐냐?"


철의 왕자가 심드렁하게 말하자 스타트릭이 스크린에 그의 전술 계획서를 업로드했다. 


"언제까지 찌질하게 여기에 처박혀서 끙끙 앓고 계실겁니까? 지금은 다시 활동을 개시할 때입니다. 이러다가 상부에서 소환장이 날아오면 폐하 신상에도 좋을 것이 없을텐데요?"


"아직 군세를 회복도 못했는데 활동은 무슨 얼어죽을 활동. 게다가 어떻게든 군대를 다시 양산한다 해도 저 바다에서 오는 끔찍한 포격 앞에선 결과는 매한가지다."


"그렇다면 이대로 포기하실 겁니까?"


"스타트릭...할 말이 있다면 빨리 해라."


철의 왕자의 말에 스타트릭이 음성 시스템을 가다듬은 다음에 목소리 볼륨을 낮춰서 나직하게 속삭였다. 


"혹시 스펙터 MS라고 들어보셨습니까?"








스펙터! 철의 왕자의 눈에 이채가 어렸다. 비록 직접 본 적은 없지만 그 무시무시한 위명에 대해선 그 역시 익히 들은 적이 있었다. 철충 테크놀로지 최고의 역작, 최후의 인간의 악몽, 알바트로스에 대한 철충의 대답...온갖 화려한 수식어와 전설을 남긴 스펙터는 그 신조차도 모독하는 성능으로 인해 어느 순간 철의 교황조차도 대량 생산을 금지한 환상종 그 자체였다. 


"하지만 그 스펙터 MS를 어디서 구한단 말이냐 스타트릭?"


 "후후훗. 이 탑에 잠들어 있는 중제조실을 잊으셨습니까 폐하?"


중제조실이란 말에 무언가 깨달은 듯 철의 왕자의 표정이 변했다. 확실히 그 중제조실이라면 스펙터 MS같은 상위 철충이라도 생산할 수 있었다. 


"하지만 양산형이라면 모를까, MS 버전은 생산기술이..."


"한 번이라도 생산이 됐던 유닛의 생산 기술은 중제조실의 데이터 베이스에 저장되어 있습니다."


스타트릭의 말에 한동안 차갑게 식어 있던 그의 리엑터가 다시 불씨를 지피기 시작하더니 그의 전자 두뇌가 풀로 가동했다. 근처에 그가 장악한 AGS 생산공장에서 드론을 찍어낸 다음에 중제조실에 철충 유충과 같이 집어넣는다. 그의 탑에 그득히 쌓여있는 자원들을 생각하면 시간만 있다면 스펙터 MS를 나이트칙처럼 찍어내는 건 일도 아니었다. 10만 스펙터 MS 대군! 철의 왕자의 행복회로가 녹아내릴 정도로 불타기 시작했다. 


"스타트릭. AGS 공장에 있는 생산팀한테 어서 드론들을 생산하라고 명령해라. 최대한 빠르게, 최대한 많이."


스타트릭이 절을 올리며 자리에서 물러나자 철의 왕자는 옥좌에서 벌떡 일어났다. 정정당당하지 않은 편법으로 싸움을 이기려는 적을 그가 굳이 정정당당하게 싸워줄 이유는 없었다. 저쪽에서 꼼수를 쓰면 이쪽에서도 꼼수를 쓰면 된다. 철의 왕자의 얼굴에서 야비한 웃음꽃이 피어올랐다. 



그리고 이때 철의 왕자는 알지 못했다. 철충 중제조실에서 어떤 철충 개체가 뽑히는지는 완전 무작위라는 것을...







부족한 글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