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살아남아 버렸다. 비행 중 장비 결함이 없었다는 서류에 내 일련번호를 서명하자 바닥에서 촉수 같은 기계 팔이 나와서 내 날개를 바닥에 집어넣는다. 지친 몸을 이끌고 이제는 한 명이 비어버린 편대원들과 디브리핑을 한 뒤, 회복실로 가 수복 캡슐 안에 쓰러지듯 누웠다. 치익- 하는 소리와 함께 의식은 무의식 속으로 침전했다. 


...


 눈을 떠 보니 왼쪽 허벅지에 킬마크가 세 개 더 새겨져 있었다. 찢어진 우산 하나, 죽은 눈의 개구리 두 개. 그 개구리 년이 살아 있었다면 내 부편대장도 저렇게 조잡한 킬 마크가 되었겠지. 하, 고물딱지 년 뱃가죽에 킬마크로 박제된다? 붉은 머리 바이오로이드만큼 스텔스의 수치일 것이다. 복수해서 다행이었다. 펙스 쌍년들은 커넥터들 관리를 어떻게 하길래 작계가 유출된 건지, 지금 생각해도 미사일로 찢어버리고 싶었다. 일어나기 위해 눈매가 어쩐지 소름 끼치는 회복실 수간호사를 호출하려고 고개를 돌렸으나, 옆에 있던 것은 다른 하르페이아였다. 


 “필승! 이번에 감마 편대로 배속받은 #3507입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익숙한 역겨움이 밀려왔다. 이유는 혼탁하게 섞여 알아볼 수 없었다. 부편대장이 하늘에서 다진 고기가 된 지 열두 시간도 안 돼서 그런 건가? 사실 부편대장이 열 번 넘게 바뀐 것 때문인 건가? 아니면 그 짧은 시간 안에 보충병이 ‘제작’ 되어 빈자리를 메운 것 때문인 건가? 그 보충병이 죽은 부편대장, 아니, 나 자신과 완전히 동일한 형태를 갖췄기 때문인 건가? 명확하게 알 수 없었다. 진실은 늘 그렇듯이 그 모든 추리의 중간 어딘가에 위치할 게 뻔했고, 나는 그곳에 도달하지 못할 터였다. 어쨌거나 밀려오는 구토감을 참으며 최대한 밝게 말했다.


 “안녕... 편대장 #301이야. 앞으로 잘 부탁해. 다른 편대원은 만나 봤어?”

 “아직 못 뵈었습니다. 수복 먼저 끝나서 편대 사무실로 가 있겠다고 전해 들었습니다.”

 “그래... 우리 사무실은 B동 214호니까 거기 가면 될 거야. 너 콘솔 좀 잠깐 줄래? 어... 됐다. 콘솔에 위치 띄워 놓았으니 먼저 가 있어. 난 조금 쉬다 갈게.”

 “예, 알겠습니다. 먼저 가보겠습니다.”


 #3507이 가고 난 뒤 주위를 둘러보자 회복실은 소름 끼칠 정도로 조용했다. 대부분의 기동형 바이오로이드는 심각하게 다쳐도 수술이 불필요하다. 조각난 신체는 바람을 매끄럽게 가를 수 없다. 중력가속도의 수십 배로 기동하던 신체가 다치면 즉시 공기저항에 의해 터져나간다. 적어도 물리학은 적이든 아군이든 공평하게 적용되었다. 


 아, #2889가 죽었구나. 어쩐지 실감이 나지 않았다. 이미 죽은 부편대장과의 기억을 천천히 떠올려 보았다. 기억은 났으나 그 기억이 과연 ‘그’ 부편대장과의 기억인지 혼란스러웠다. 그때 회의 자료가 들어있던 마이크로칩 책갈피로 쓰다가 잊어먹었던 애였나? 자기는 ‘로섬의 만능로봇’이 바이오로이드에 대한 은유를 나타내는 것 같아 좋았다고 하던 게 누구였지? 결국, 이름은 사라지고 그런 사건이 있었다는 사실만이 뇌리에 남았다. 동일한 얼굴의, 동일한 목소리의 소녀들이 한낱 번호로 구분되었다. 그러나 그 ‘이름’에 대한 기억이 사라지자 그녀들은 동일인으로 융합되기 시작했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내 이름이 사라지면 나는 그녀들과 동일인이 되는 걸까?


 막말로, 지금 기지에 포격이 떨어져 우리가 모두 다 뒈진다고 하자. 결국은 형식적인 통계만 잠시 남을 뿐 우리는 보충병으로 대체될 것이다. 이제껏 그랬듯이. 오늘 내가 레이저로 심장을 뚫어버린 다이카와 미사일로 터트려 버린 린트블룸의 자리도 이미 새롭게 생산된 개체들이 차지하고 있을 것이다. 나는 어쩐지 이 모든 것이 슬프고 의미없게 느껴져 잠깐 얼굴을 손에 파묻고 있었다. 


 사무실로 돌아가 지겹게 익숙한 처리를 했다. 교전에 관한 사후 강평을 하고, 내 윙맨인 #3042를 부편대장으로 올린 뒤 교육에 집어넣었다. 루키(보충병)를 내 윙맨으로 두었고, 부편대장 윙맨 #3342는 그대로 두었다. 그리고 재편성 적응 신청서를 제출했다. 자기는 아니라고 하지만 내 윙맨은 아직도 미숙하다. 교육받으면서 교육할 수는 없다. 편대는 같이 살고 같이 죽는다. 적어도 2기 단위에서는 무조건 그렇다. 재편성 및 적응 기간은 4주고, 그 시간 내로 루키가 완벽해지지 않으면 우린 다 죽는다. 따라서 루키는 내가 관리하기로 했다. 어쨌거나 산 바이오로이드는 살아야 하므로 위스키 한 병과 함께하는 조촐한 환영 인사를 치루고, 마지막으로 4인 관사에 남겨진 짐을 같이 치웠다. <PRIVACY>라 적힌, 안에 뭐가 들어있는지 알 것 같은 상자는 버리고, 남은 물건들은 나눠 가졌다. 가져온 책 몇 권을 책장에 꽂으면서 무덤덤한 나 자신이 혐오스러웠다. 


 전선은 고착되었고 우리는 소모되었다. 블랙 리버 유한회사는 우리 덕택에 압도적인 제공권을 가지고 있었으나, 그 말이 우리가 무적이라는 말은 아니었다. 우리, 전투조종사들은 살해에서 가장 멀리 떨어져 있으나 죽음에서는 그 누구보다 가까이 있다. 알베르 카뮈라는 사람은 ‘부조리에 순응하는 것이 곧 저항하는 것’이라고 했었다. 그러나 나의 부조리는 덧없음에서 나왔다. 허무주의에 순응해 아무 것도 이루지 못한 채 스러져 갈 내 미래를 생각할수록 깊은 회의만 떫게 남았다. 무엇을 남길 수 있는지, 나는 그 답을 찾기 위해 수백 권의 책을 읽었고, 읽고 있었다. 그러나 답이 나오지 않는 질문은 메아리치며 가슴 속에서 썩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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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에 첫번째로 올리는 글입니다. 무의미하게 소모되는 바이오로이드 / 관료주의적이며 공업화되고 소모적인 전쟁 / 삶의 의미에 대한 답을 찾는 바이오로이드에 관한 글을 적고 싶었는데, 필력이 너무 딸려서 생각했던만큼 잘 안 나온 것 같습니다...


읽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

좋은 밤 되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