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존 설정과 약간 다르게 개인적인 해석이 들어간 글입니다.






1



몇천년만의 살인적인 더위라고 한다.

하루종일 내리쬐는 태양은 땅은 물론이고 바다까지 뜨겁게 만들었고,

냉방을 아무리 돌려도 시원해지기는 커녕 미지근해지지도 않아 잠수함 안은 거대한 찜통을 방불캐 했다.

그리고 그건 사령관실이라고 해도 다르지 않았다.


"더워어…"


나는 항상 남극과 같은 환경을 유지하는 앰프리스의 숙소 바닥에 몸을 비비고 있었다.

끈나시에 알로하바지라는 파격적인 패션에 경악한 대원들이 수근거리고 있었지만 그러거나 말거나, 

나는 아랑곳하지 않고 조금이라도 더 냉기를 얻기 위해 얼음 가까이 몸을 밀착시켰다.

사령관의 채면같은 겉치레는 이미 살인적인 더위에 흐물흐물 녹아내린지 오래였다.


“..어차피 날 좋아해 주는 녀석도 없는데 말이지.”


난 바닥에 뺨을 댄 채 심드렁한 목소리로 조그맣게 투덜거렸다.

멸망전의 기록에서 읽었던 것과는 다르게, 

이 드넓은 오르카호에서 나를 적극 챙겨주는 바이오로이드는 그다지 많지 않았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없는 수준에 가까웠다.


'뭐...생각해 보면 당연한 거겠지만..'


난 그렇게 생각하며 맨질한 얼음바닥에 비치는 얼굴을 바라보았다. 

쌍꺼풀도 없는 작은 눈 아래로 뭉툭한 코가 겨우 붙어있었고, 

쑥 들어간 뺨 곳곳에는 여드름까지 덕지덕지 나 있었다.

좋게 말하면 자유분방하고 솔직히 말하면 못생긴 얼굴이다.

이런 모습이니 그녀들이 나만 보면 눈을 내리깔고 뒷걸음질 치는것도 무리는 아니다.

나와 늘 얼굴을 맞대고 있는 지휘관급 개체들이라고 해도 다를 것은 없었다.

그저 '지휘만 잘하면 그만' 이라는 느낌으로 사무적으로 나를 대할 뿐,

도무지 지휘관 이상의 관계로 다가오려 하지 않았던 것이다.


"으으…"


한참을 얼음 침대위에 누워있던 나는 눈치를 보며 꾸물꾸물 일어섰다.

나를 바라보는 엠프리스의 표정에 슬슬 짜증이 묻어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건 경악을 넘어선 혐오에 가까운 감정이였다.


하아, 물론 사령관인 주제에 부하나 다름없는 바이오로이드의 눈치를 보는것도 우스운 일이지만,

더 이상 미움받는것도 싫었기에 나는 짧은 인사를 건내고 그녀와 펭귄들의 숙소를 빠져나왔다.




2


이제 어디로 가야하나, 터덜터덜 걸어나와 다음 피서지를 물색하고 있을 때였다.


"앗, 사령관님! 역시 여기 계셨네요!"


나는 반가운 목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그곳에는 한 소녀가 방긋거리는 웃음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아르마딜로를 닮은 갑주를 망토처럼 둘러쓴 그녀의 이름은 세띠, 

그로테스크하게 생긴 심해어조차 귀엽다고 말하는 그녀의 특이취향 탓일까? 

세띠가 나를 대하는 태도는 다른 바이오로이드들과 확인히 달랐다. 

그러니까....좋은쪽으로 말이다.


"저어...더우시죠? 아까 땀을 흘리는 걸 보고...괜찮으시다면 이걸 좀 드셔보시겠어요?" 


실로 오랜만에 받아보는 친절에 나는 눈을 깜빡였다.

그녀가 내민 그릇 위에는 보기만 해도 시원해지는 빙수가 산처럼 담겨있었다. 

여름에 얻기 귀한 딸기를 써서 그런지 색도 모양도 먹음직스럽다.

설마...소완처럼 약을 쓰지는 않았겠지? 

불안감이 목 언저리까지 스며들었지만 나는 곧바로 고개를 세차게 저으며 불안을 떨쳐냈다. 

그럴리가 없잖아, 세띠는 그런 미친년과는 다르다고!

약물같은 무서운 것을 쓸 리가 없지.

나는 조심스럽게 빙수의 몸 속으로 숟가락을 찔러넣었다.

사각거리는 소리가 기분좋게 울려퍼진다.


"고마워."


옅은 분홍빛의 빙수를 입 안에 넣자 달콤하면서도 새콤한 맛이 가득 퍼져나간다.

내 환한 미소를 본 세띠가 조심스럽게 물어왔다.


"저어..맛있으신가요..?"


"응, 고마워. 아, 같이 먹을래?"


난 최대한 자연스럽게 말하려 노력하며 수저를 내밀었다.

함께 부식을 먹을 것을 권했다가 얼굴을 급속도로 굳히며 사라진 레프리콘을 본 뒤로 다시는 하지 않겠다고 결심한 말 이었지만, 

어쩐지 세띠라면 괜찮을 것 같았다.


"네! 좋아요!"


다행히도 그녀는 환한 웃음으로 답하며 내 손을 잡았다. 

장갑 낀 손 위로 따듯한 체온이 전해져 와 가슴이 두근두근거린다. 

나는 못 이긴척 그녀의 손에 이끌려 카페로 향했다.



3




아우로라가 운영하는 카페는 다들 임무라도 나갔는지 영업시간인데도 제법 한산했다.

덕분에 나는 별다른 눈치를 보지 않고 세띠와 데이트를 즐길 수 있었다.

따듯한 카페의 조명이 비치는 테이블에 앉아 있던 그녀는 연신 내 얼굴만을 바라보며 방긋거리고 있었다.

나는 그런 그녀의 손끝에 걸린 숟가락에서 녹아내리는 빙수를 바라보며 조용히 물었다.


"저기...세띠는..내가 좋은거야?"


"네,당연하죠! 세상에 남은 단 하나뿐인 인간님인걸요."


한치의 망설임도 없는 대답이였다. 

하지만 나는 그 주저 없는 대답에도 용기를 낼 수 없었다.

세띠라면 내 마음을 받아주지 않을까? 하고 생각하면서도 

‘이런 얼굴로 고백을 한다는 것이 민폐야’ 하는 생각 역시 마음 한 구석에서 떠나지 않았던 것이다.

그래서 나는 말없이 애꿎은 빙수만을 파내며 반짝거리는 그녀의 시선을 피했다.

그리고 고맙게도 이번에도 먼저 다가와 준 것은 그녀였다.


“저..그리고 그런 사령관님이 너무 좋아서..사령관님을 위해서면 뭐든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


나는 거의 숟가락을 떨어뜨릴 뻔 했다. 

평소의 울먹이는 눈망울은 어디로 갔는지, 유혹하는 듯한 그녀의 눈빛은 너무도 노골적이여서 쑥맥인 내가 봐도 알수 있을 정도였다. 

어떻게 해야할까, 업무적인 것으로 그녀들과 대화하는 것은 익숙했으나 이런건 또 처음이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우물거리는 내 얼굴을 본 세띠의 갈색 눈이 부드럽게 휘었다.


“그러니까…”


나는 숨을 삼키고 고간 위에 올라온 그녀의 발을 황망한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이..이건 모른척 할수도 없잖아!’


바지가 부풀어오르는 것은 슬픈 남자의 본능 같은 것이라 나도 어쩔 수 없다. 

그리고 내 변화를 깨달은 세띠의 얼굴에 포식자의 것과 같은 미소가 떠올랐다.

마치 거대한 호랑이 앞에 선 토끼가 된 것 같은 기분에 난 침을 꿀꺽 삼켰다.

이렇게 된 이상 더 점잔 빼는것도 우스운 일이다.


“세..세띠..이건..”


“사령관님..이런 제 마음을 받아주실 수 있나요..?”


평소의 얌전하기만 했던 그녀에게는 미안한 말이지만, 

오늘의 세띠는 마치 발정기를 앞둔 펜리르와 같았다. 

난 나만큼이나 잔뜩 달아오른 세띠의 얼굴을 보고 숨을 멈췄고 그 자리에서 일어나 그녀의 손을 맞잡았다.





4




고풍스러운 비로크 풍 벽지가 발린 벽 한켠에는 붉은 와인병들이 장식되어 있었고, 

그 방 한가운데에는 실크 리본으로 장식된 거대한 침대가 놓여 있었다.

마치 귀족의 침실같은 그 모습에 나는 쭈뼛거리며 겨우 비밀의 방으로 들어갔다.

방 안은 한번도 사용하지 않은 새 가구 냄새로 가득 차 있었다.


"으..긴장되네.."


난 이불을 머리 끝까지 덮어올리며 그렇게 중얼거렸다.

부끄럽다는 이유 하나로 불을 꺼버린 탓에 어두운 방을 밝히는 것은 향초의 엷은 빛 하나뿐이다.

난 눈을 감고 희미한 빛 사이 일렁이는 그림자로 보았던 그녀의 실루엣을 되새겼다.


“금방 씻고 올게요, 조금만 기다려 주세요.”


라는 말을 남기고 사라진 세띠의 모습이 계속 떠올라 도무지 뛰는 가슴을 진정시킬 수 없다.

평소의 크고 무거운 갑옷을 벗어던진 채,

몸의 선이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얇은 란제리 하나만을 걸친 세띠의 모습은 너무도 매혹적이였다.


“..사령관님..저..이제 들어가도 될까요?”


곧 그녀가 방 안으로 들어오며 내는 사락거리는 소리에 난 두근거리는 마음을 꾹 눌러 삼켰다. 

막상 거사를 치루자니 부끄럽기도 하고 또 긴장되기도 한다.

그래서 한심하게도 난 약간 말을 더듬을 수밖에 없었다.


“어..어..어서와.”


"..."


순간 난 알 수 없는 위화감을 느끼고 몸을 움츠렸다.

이상하게도, 어둠 속에서 그녀는 아무 말도 없었던 것이다.

그리고 다음 순간 작은 손이 내 입을 틀어막았다.


“...!!!”


동그랗게 뜬 눈을 올려다보자 세띠가 내 위에 있었다. 

야생동물에 가까운 날카로운 눈빛이 내 얼굴 위로 쏟아졌다.

나도 나름 오리진 더스트로 강화한 몸이라 완력엔 자신이 있다고 생각했지만.

내 몸 위에 올라타 나를 내리누르는 세띠의 힘은 상상을 초월했다.


“후후후...사령관님...”


“읍..읍!”


나도 모르게 비명이 나왔지만 순간 고간이 쥐어지는 느낌에 다시 들어갔다.

조용한 방 안에는 침대의 서스펜션이 출렁이는 소리와 가쁜 숨소리만이 가득 울려퍼졌다.

난 그녀의 비이성적인 행동에 겁먹으면서도,

소중한 물건을 다루듯 내 것을 부드럽게 움켜쥔 손의 자극에 흥분할 수밖에 없었다.


“좋으신가요, 사령관님?”


“윽...아….”


생소한 충격에 내가 멍하니 굳어있자, 또 다시 나보다 그녀가 먼저 움직였다.

가까이 맞닿은 하반신에서 눅눅한 열기가 느껴진다.

물기 젖은 맨살이 스치는 감촉, 예민한 곳만을 골라 긁고 할퀴는 손가락의 자극에

난 홀린듯 그녀의 가슴을 콱 움켜잡았다. 

로맨틱하지 못하다고 욕해도 어쩔 수 없다. 

처음부터 모든게 능숙할 수는 없으니까.


“아아..좋아요 사령관님, 조금 더..”


그런 내 서툰 애무에도 세띠는 기뻐하며 몸을 가까이 붙여 왔다. 

난 정신없이 그녀의 살을 물고 핥았다. 

욕망으로 달아오른 그녀의 눈을 마주보며 입술을 부딪혔다. 

그녀 역시 지지 않겠다는 듯 쉼 없이 움직였고, 서로가 더 이상 참을 수 없게 되었을 때,

난 망설임 없이 그녀의 속으로 파고들었다.




5





그건 인간보다는 짐승의 교미에 가까웠다.

놓치지 않겠다는 듯 집요하게 달라붙어오는 몸짓에 난 매번 그녀의 안쪽에 정을 토해낼 수밖에 없었다. 


“하아..하아..”


난 가쁜 숨을 내쉬며 몸을 움찔 떨었다. 벌써 몇번째 사정인지도 모르겠다.

그녀의 뱃속 가득 쏟아낸 백탁액이 다리를 타고 흘러넘치고 있었다. 

하지만 그녀는 모자라다는 듯 입술을 핥으며 계속해서 나를 유혹해 왔다.


“사령관님..더...조금...더요..”


“응..세띠...”


사방을 가득 채운 밤꽃 향기가 어지럽다. 

난 기계적으로 몸을 움직였고, 

또 다시 내 것에 찔린 세띠는 흐읏하는 짧은 신음과 함께 몸을 바르르 떨었다.

여러번의 교미를 거친 그녀의 속은 너무도 뜨겁고 부드러워 난 금세 사정감을 느끼고 숨을 몰아쉬었다.


“이제..더는..윽..마지막.”


“네..와주세요..사령관님.”


난 그녀의 어깨를 강하게 움켜잡고 격하게 몸을 움직였고,

짐승같은 비명을 토하며 또다시 그녀의 안에 모든 것을 쏟아냈다.


밤을 넘어 새벽까지 이어진 길고 진득한 정사는 아침이 되어서야 그 끝을 맺었다.





6





"..관...사령관?!"


"...아아, 잠시 다른 생각을 하고 있어서."


“적어도..회의에는 집중해 주었으면 좋겠네만.”


나는 못마땅한 듯한 용의 말에 쓴 웃음을 지었다.

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동정이였던 나에게 첫경험의 충격은 너무도 강렬했고, 

반복해서 재생되는 어젯밤의 기억은 좀처럼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으니까.


어제의 난 침대에 쓰러져 헉헉거리고 있었다.   

그런 나와는 반대로 지치지도 않는지, 세띠는 황홀한 표정으로 흘러내리는 액체를 손으로 받아 몸 안으로 다시 쓸어담고 있었다.


"세..세띠..?"


정액이 빠져나가지 못하도록 꾹 눌러 닫는 그 모습은 너무도 경건하고 신성해서, 

마치 오랫동안 잊혀졌던 고대의 의식을 연상시켰다.


난 말을 잃고 그런 그녀의 모습을 바라보았다.

남자로써 자신의 것을 빠짐 없이 받아들이려는 그녀의 모습은 더 없이 사랑스러웠지만, 

또한 리제를 닮은 그 필사적인 몸짓에서 어딘가 섬찟함을 느낀 탓이리라. 그래..그건 마치..


"크흠흠..사령관, 그래서 새로운 안건에 관한 대답은 언제 들을 수 있나?"


"아..그게.."


또 민망한 생각을 해버렸다.

이번에도 난 대답을 할 수 없었고,

내 난감한 표정을 본 용이 작게 한숨을 뱉었다.


"..피곤한 것 같군, 어차피 중요한 안건은 모두 처리한 것 같으니 , 회의는 여기서 마치도록 하겠네."


다 안다는 듯한 용의 말투에 난 얼굴을 붉혔다.

그도 그럴듯이,세띠와의 정사로 난장판이 된 방안을 가장 먼저 발견한 바이오로이드가 브라우니였기 때문이다.

그녀의 오지랖이면 오르카호에 소문이 퍼지는 것은 순식간이였을 테지.

다른 지휘관들도 용과 같은 의견이였는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고,

난 자리에서 천천히 일어나며 회의의 끝을 알렸다.




7



회의실 문을 나서자마자 보인건 환하게 웃는 세띠의 얼굴이었다. 

양 손에는 고맙게도 서툰 솜씨로 만든 샌드위치가 가득 들려있었다.


"고마워,세띠."


누군가 날 위해 음식을 만들어 준다는 것은 분명 즐거운 일이다.

하지만 난 그것을 받아들며 위화감을 느꼈다.

세띠가 항상 대리고 다니는 타이거처럼, 마치 그녀에게 보호받는 듯한 느낌을 떨칠 수가 없던 것이다.


난 문득 그녀가 멸종위기의 동물들을 보호하기 위해 만들어진 바이오로이드라는 것을 떠올렸다.

그리고 내가 이 지구상에 마지막 남은 인간이라는 것 역시도. 

지나치게 사정에 집착했던 정사와 어딜 가던 얼굴을 보이는 세띠의 모습과 같은 기묘한 퍼즐조각이 머릿속에서 서서히 맞춰지기 시작했고, 

난 씁쓸한 표정으로 방긋거리는 세띠의 머리를 쓰다듬어 줄 수밖에 없었다.


"...."


내 표정을 본 세띠는 말없이 나를 꼭 안아주었다.

자신의 본능에 따라 행동하는 것은 슬픈 바이오로이드의 숙명 같은 것이다.

그 의무만을 위해 만들어지고 태어난 것이기에 더욱 그렇다.

평생 자신의 의지가 아닌 것에 얽메여 살아가는 것이 얼마나 괴로운 것인지 나는 모른다.


하지만 결국 최후의 인간이라는 중압감과 책임감에 짓눌려 외로웠던 나는 "이런 사랑도 괜찮아" 라고 생각하기 시작했다.


"사령관님..정말 사랑해요."


"응..나도 사랑해…"


나는 그렇게 중얼거리며 세띠의 품에 얼굴을 묻었다. 

그녀는 가만히 서서 나를 안은 채,

아무 말도 없이 따듯한 온기를 보내주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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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이 모자란 글이지만 늘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