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다 지휘관.


둠 유모차.


암세포 제조기.


누구누구는 섹스 했는데 메이는 못하네~


지겹도록 들어온 멸칭들이지만 

사실 메이는 회심의 미소를 짓고 있다.

그녀에게는 계략이 있었기 때문이다.

썩어도 일군을 통솔하는 지휘관이었다.


"어제 저녁 뭐먹었어?"하고 물어보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흔쾌히 대답을 한다.

혹여 안먹었더라도 안먹은 기억을 제대로 가지고 있다.


하지만 "일주일 전에 저녁 뭐먹었어?"하고 물어보면 그때부터 대답을 흐리기 시작한다.


"한달 전에 저녁 뭐먹었어?"하고 물어보면 오히려 질문자를 정신병자 취급할 것이다.



기억은 마모된다.


그리고 감정 또한 축적되면 축적될 수록 흐려지는 기억에 속한다.


사령관을 좋아하는 바이오로이드는 많다.


단순히 어린아이처럼 좋다 싫다로 나누면 극소수의 몇몇을 제외하곤 전부 좋다에 속할것이고


사랑하냐고 되물으면 그것조차 긍정할 바이오로이드가 대부분일 것이다.


사령관은 평등하다.

사랑이라는 감정을 평등의 잣대로 나누어버리는것만큼 잔인한 일도 없지만

시대와 상황이 그를 그렇게 만들었다.


비록 단 한번의 대화조차 나누지 못한 바이오로이드라도


매일같이 얼굴을 마주보며 서로에 대해 잘아는 바이오로이드라도


평등하게 육체적 사랑을 나누어 준다.


그러한 사랑의 줄세우기를 계속해서 보내다보면 누구를 사랑했는지조차 잊어버릴만큼

다수에게 사랑을 나누어 준다.


그리고 메이는 그 줄의 가장 마지막에 진짜 사랑을 쟁취할 것이다.


지나간 수많은 추억 중에 하나가 아니라 마지막에 남겨진 진짜 빛나는 사랑.




"까고 있네요."


나이트 앤젤은 한마디로 일축했다.

얘기를 듣느라 마시는것을 중단한 아이스커피 빨대를 빙글 돌리며 말을 이었다.


"애초에 한명당 한번씩 섹스하는거도 아니고 사령관 각하가 '자 너는 섹스 했으니깐 끝!' 하는분도 아니잖습니까."


에엣

그럴수가 내 계획은 완벽했는데!


"에엣 그럴수가 내 계획은 완벽했는데? 이딴 생각한거 아니죠 대장?"

"으윽~"

"하아...아니 주말아침부터 불러서 무슨 뻘소리를 하나 했더니 그런 생각이나 하고 있었어요?"


하여튼 이게 문제다.

가장 오랫동안 붙어다니고 가장 자신을 생각해주는 이 믿음직한 부하는

절대 발린말따위 하지 않고 따박따박 현실을 일깨워준다.


말을 좀 상냥하게 해주면 어디 덧나나?


"내가 보기엔 대장의 가장 큰 문제점은 그거에요."

"...그게 뭔데?"

"사랑이라는거에 너무 큰 의미를 부여해요."

"...하아?"

"무슨 연애소설이나 드라마를 보셨는지 모르겠는데 사랑이라는게 꼭 거창한건 아니잖아요?"

"흥...가치도 없는 말이네 나처럼 훌륭한 여자에게는 응당..."

"그거!"


이씨...말잘랐어!


"그거 말하는거라고요! 자기를 너무 특별시해요 대장은!"

"자존심이 높은건 좋은거잖아?"

"그거랑 이거랑 별개죠! 솔직히 까고 말해서 대장이 여자로서 특별한점이 뭔데요?"

"흐응~그걸 말로해야 아나?"


메이는 보란듯이 터질듯한 가슴을 내밀고 한쪽손으로 우아하게 자랑인 트윈테일을 쓰다듬었다.


"예~예~납작이인 저보다 꼬맹이 대장이 더 괘씸한 몸을 하고있다는건 잘압니다~"

"흥!알면서 물어본거였어?"

"그건 어디까지나 외견의 문제고요. 대장이 여자로서 가지고 있는 매력이 뭐냐 이겁니다."

"...둠브링어의 대장?"

"그건 계급이고요."

"...고,고귀한 귀족?"

"LRL 따라해요? 뭔 말같지도 않은 소릴..."

"..."


하아

짐짓 과장된 몸짓으로 한숨을 내쉰 나이트앤젤은 말을 이어갔다.


"거봐요 자기 스스로도 거추장스러운 명찰들 떼고나니깐 아무것도 안보이죠?"

"윽..."

"그렇게 따지면 저기 복도 지나다니는 브라우니나 대장이나 무슨차이가 있냐 이겁니다."

"브,브라우니는 아니잖아!"

"그 브라우니도 얼마전에 섹스해봤다고 떠들던데요?"

"에엑~?!"

"그 자랑이신 육체미도 오르카호 안에서 특별하다고 자신할 수 있어요?"


나이트 앤젤은 카페테리아 안을 슥 둘러보는 시늉을 했다.

메이도 따라서 내부를 둘러보자 여러 인물들이 눈에 들어왔다.


상냥한 표정으로 에스프레소를 내리는 콘스탄챠.

교태어린 몸짓으로 디저트를 먹고 있는 포이.

홍차를 앞에 두고 독서를 하고 있는 하르페이아.


모두 다른 몸매와 매력을 가졌지만 자신을 옆에 둔다 한들 빛을 잃어버리지 않을것이다.


"..."

"...그렇죠?"

"...그치만..."

"또 또 그놈의 그치만"

"나한텐 이게 첫사랑인걸...특별하고 싶으면...안돼?"

"특별하지 말란 소리도 아니에요."

"그럼뭔데?"


나이트 앤젤은 살짝 풀이 죽은채 눈을 치켜뜬 메이를 조용히 바라보면서 말했다.


"사랑이라는 것이 꼭 두 남녀가 수없이 그리워하고 둘만의 세상에서 애달파할 필요는 없다는거에요."

"..."

"평범하게 같이 있고 평범하게 얘기하고 평범하게 섹스하는거도 특별하게 여기라는거에요."

"..."

"대장이 생각하는 뭔가 거창하고 준비되고 완벽한거는 어디까지나 가상의 얘기고요."



나이트 앤젤은 손을 뻗어 메이의 가슴팍을 톡톡 두드렸다.



"여기 있는 부끄럽고 수줍지만 하나라도 같이 하고픈 평범한 마음을 소중히 여기자는거죠."

"평범...한거?"

"네, 사실 저도 그런 마음을 가지고 있고 모두가 그래요."

"응..."

"하지만 현실은 소설이나 영화처럼 누군가가 준비해주지 않고 모두가 처음이잖아요. 서툰게 당연하죠."

"응..."

"그렇다고 처음부터 완벽할것을 원하며 주어진 평범함에 눈돌리다보면 어느새 멀리 떨어지는거에요."

"응..."


고개를 주억거리며 풀이 죽은 메이를 보며 나이트 앤젤은 피식 웃었다.


"하여튼 대장이 납득할때까지 저도 최대한 도와줄테니 기운내세요."

"응...고마워..."

"...케잌 드실래요?"

"응"


이야기를 들어주느라 손도 대지못한 초코케잌을 테이블 한가운데로 밀어놓고

나이트 앤젤과 메이는 각자의 포크로 조금씩 덜어먹었다.


나이트 앤젤은 커피의 쓴맛이 남아있는 입안을 채워주는 향긋한 단맛에 감탄하면서 슬쩍 메이를 보았다.


하여튼...애라니깐 정말...


케이크를 한껏 베어문 메이는 웃고있었다.






글모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