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편 모음집 : https://arca.live/b/lastorigin/1507448 





 “어때? 사치?”

 키리시마 이치카는 기대된다는 눈빛으로 사치를 바라보았다. 사치는 손에 든 문서를 바라보았다. 바이오로이드의 권리에 관한 기본법. 키리시마 의원과 보좌진이 몇 달에 걸쳐 만든 법안이었다. 사치는 그 법안의 초안을 다 읽은 참이었다.

 “어떻다는게 문법적으로 어떤 거냐는 말씀입니까? 몇몇 부분은 법리적으로 해석이 갈릴 수도 있어 보입니다만 오탈자나 어법적으로 어색한 부분은 보이지 않습니다. 분명 오탈자를 체크하는 바이오로이드에게 검사를 받았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굳이 제가 보지 않아도 문법적인 오류는 없을 겁니다.”

 사치는 이치카에게 초안을 넘겨주며 말했다.

 “법리적 해석이 달라질 수 있다고? 어디가?”

 이치카는 초안을 받아들고 보면서 말했다.

 “우선 3조 2항입니다. 모든 바이오로이드는 인간의 안전을 위해 다른 인간에 위해를 가할 수 있다. 여기서의 안전에 대한 해석의 범위에 따라 바이오로이드를 이용한 상해에 악용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건 생각못했…. 네가 아니잖아!”

 이치카는 만담의 츳코미처럼 초안으로 사치의 머리를 때렸다. 사치는 빠른 반사신경으로 팔을 위로 들어 교차하는 것으로 초안을 막아냈다.

 “좋은 츳코미입니다, 의원님.”

 “열심히 남편이랑 연습한 결과야. 사내 연수회에서 할 거라나 뭐라나. 그게 아니지. 그런 법리적 문제는 우리쪽에서 알아서 협상하고 타협하고 할 거야. 그러기 위해 의원들과 토론을 하는 거고. 내가 묻고 싶은 건 이 법에 대한 네 개인적 생각이야.”

 “개인적인… 생각 말입니까?”

 그런 생각은 해본 적이 없었다. 사치는 사무일을 보조하기 위해 만들어졌지 개인의 의견을 제시하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 아니었다. 그녀는 그저 시키는대로 할 뿐인 기계에 불과했다.

 “바이오로이드로서 이 법을 어떻게 생각하는가 궁금해서 말야. 이 법은 너희들에 대한 법안이잖아.”

 바이오로이드의 권리에 관한 기본법. 그 이름대로 사치와 같은 바이오로이드에 관한 법안이었다. 바이오로이드는 인간이 아니다. 라는 말로 시작하는 법안이었다. 그 법안을 본 바이오로이드는 어떤 생각을 할까. 잔인한 질문이었다. 아파르트헤이트법안을 흑인들에게 보여주는 것과 다름 없는 행위였다. 하지만 그에 비유되는 한이 있더라도 이치카는 사치의 의견을 듣고 싶었다.

 “그런 생각을 하며 읽지 않아서 잘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저는 의원님을 잘 알고 의원님을 보좌하는 보좌진분들을 잘 알고 있습니다. 모두가 열심히 일해서 만들어낸 법안입니다. 그리고 의원님은 제가 아는 분 중에 가장 친절한 분이십니다. 그런 의원님이 만든 법안이라면 분명 좋은 법안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그래?”

 이치카는 조금은 실망한 표정을 지었다. 결국 사치는 바이오로이드였고 바이오로이드는 인간이 아니었다. 그런 것인가. 하지만 실망할 이유가 있었을까. 만일 사치의 대답이 달랐다면, 그녀가 바이오로이드의 권리에 관한 기본법을 반대했다면, 달라질 것이 있었을까. 이 법안은 사치를 위한 것이 아니었다. 바이오로이드를 위한 것이 아니었다. 이 법안은 사람들을 위한 것이었다. 그녀의 의견이 어떻건 묵살당할 의견이었다.

 어쩌면 사치가 별 다른 의견을 내지 않은 것이 다행일지도 몰랐다.

 “혹시 제가 대답을 잘못한 건가요? 좀 더 칭찬이라도 해드렸어야 했던 걸까요?”

 “아냐. 그 대답이면 충분해.”

 이치카는 자신의 자리로 돌아가 서랍에서 무언가를 꺼냈다.

 “맞다. 사치, 이쪽으로 와볼래?”

 이치카의 자리로 온 사치에게 이치카는 작은 상자를 쥐어주었다.

 “의원님, 이건?”

 포장지로 둘러쌓인 작은 상자를 본 사치는 어안이 벙벙해진 얼굴로 이치카와 작은 상자를 바라보았다.

 “선물이야. 한번 열어봐.”

 “가, 감사합니다.”

 사치는 너무나 기쁜 나머지 기쁜 표정조차 지을 수 없었다. 입이 벌어진 그녀는 떨리는 손으로 포장지를 뜯으려 했지만 손이 떨었기 때문일까, 종이포장을 뜯일 일이 없어서 익숙치 않았던 것일까, 포장지를 뜯지 못하고 있었다.

 “후훗. 내가 해줄게.”

 이치카는 덜덜 떨리는 사치의 손에서 상자를 가져와 능숙한 손놀림으로 종이 포장을 뜯어주었다.

 “내가 포장을 한 건데 내가 다시 뜯을 줄은 몰랐네.”

 “죄, 죄송합니다. 제가 미숙한 탓에…”

 “아, 괜찮아, 괜찮아. 한번 열어봐.”

 종이 상자 안에는 부드러운 실크로 둘러쌓인 딱딱한 상자가 있었다. 경첩이 달려 위로 열리는 상자는 보통 귀중품을 담는 상자였다. 그 상자를 사치는 조심스레 열었다.

 “와…”

 형광등의 빛을 받아 반짝이는 그것은 금색의 넥타이 핀이었다.

 “이건 정말… 감사합니다…”

 감격한 사치의 눈망울이 그렁그렁해졌다. 그 얼굴을 보며 이치카는 미소를 지었다. 선물을 준 것이 보람찬 얼굴이었다.

 “아무래도 사치들의 얼굴이 다 같아서 알아보기 힘들어서 말야. 너도 기억 나지? 사토 의원의 사치를 너인줄 알고 말을 걸었던 그 부끄러운 사건.”

 “기억납니다. 제가 온지 얼마 안되어서 일어난 일이었죠. 그 이후로 한동안 저는 제가 먼저 의원님께 말을 거는 식으로 그런 위험을 없앴었죠.”

 “이걸 차고 다니면 멀리서도 너를 알아볼 수 있을 거야. 너는 나를 알아보는데 나는 너를 알아볼 수 없다는 건 불공평하잖아.”

 “그건 불공평한 게 아니라 어쩔 수 없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제 자매들이 얼굴이 모두 같아서…”

 “알았으니까 일단 한번 차봐.”

 사치는 상자에서 넥타이핀을 꺼냈다. 심플한 집게 모양의 넥타이핀에는 같은 색의 줄이 달려있었다. 그리고 핀 위에는 글씨가 새겨져 있었다. 사치는 눈으로 가져가 그 글씨를 자세히 보았다.

 “행복한 사치.”

 첫 글자와 마지막 글자는 행복할 행(幸)자였다. 일종의 언어유희였을까. 사치는 조심히 자신의 가슴의 넥타이에 핀을 끼웠다. 평소에도 가끔 가슴의 단추가 터지는 일이 있던 사치였다. 넥타이핀을 끼우다 가슴의 단추가 날아간다면 한달치의 놀림감이 될 것이었다.

 “어떤가요?”

 사치는 넥타이핀이 꼽힌 가슴을 강조하며 말했다.

 “틀렸어. 넥타이핀은 그렇게 끼우는 게 아냐.”

 사치는 넥타이핀을 넥타이에만 끼우고 있었다. 이치카는 사치의 넥타이를 잡고 와이셔츠를 통해 넥타이핀을 고정했다.

 ‘툭’

 그 순간 실이 끊어지는 소리가 났다.

 “아얏!”

 그리고 뒤이어 이치카 의원이 이마를 잡으며 뒤로 넘어갔다.

 “앗! 죄송해요!”

 사치는 움츠러들며 자신의 가슴을 가렸다. 역시나 또 단추가 터진 것이었다. 큰 가슴은 언제나 불편했다.


 “우우…”

 사치는 조금전 일로 풀죽어 있었다. 이치카는 괜찮다고 몇번을 말했지만 사치는 아직도 단추를 이치카의 이마로 날린 일이 미안한 모양이었다.

 “역시 사치는 재밌어.”

 “하나도 재미 없어요… 가슴만 작았어도 좋았을 텐데요.”

 “그거 그렇지 못한 사람에게 하면 실례일 말이야.”

 “그건 그렇지만요…”

 선물한 넥타이핀은 와이쳐츠의 가슴이 트여버린 바람에 제대로 고정할 수 없었고 사치가 말할 때마다 톡톡 튀고 있었다.

 “난 말야, 사치가 조금 더 사치다웠으면 좋겠다고 생각해.”

 “사치다운 것 말인가요? 저는 어떤 건지 모르겠는데요.”

 사치다운 것? 일을 잘 하는 것? 그런 와중 어벙한 면도 있는 것? 사치는 알 수 없었다.

 “가슴의 넥타이핀과 같은 거야. 다른 사치와 같은 사치가 아니라 사치가 사치일 수 있는 것. 그 뭐라고 하냐. 갑자기 생각이 안나는데. 딱 좋은 단어가 있었어. 타인과 자신을 구별할 수 있는 개념이…”

 “개성 말인가요?”

 “그래. 내 생각과는 조금 다른 단어일 수도 있지만, 아니 개성 맞나? 여튼. 사치는 좀 더 자신을 봐야해. 사치는 단순한 바이오로이드일 뿐이 아니라는 걸 말야. 사치는 좀 더… 우리에게 행복을 가져다 주는 존재야. 사치 역시 행복해야 하지 않을까? 어때, 사치. 행복해?”

 “행복이 어떤 거죠?”

 사치는 행복이라는 의미의 이름을 가지고 있었지만 행복이라는 것을 생각해보지 않았다. 그녀에게 행복은 남들에게 주어야 하는 것이지, 자신의 것인 적이 없었으니까.

 “행복이라. 이걸 어떻게 설명해야 하지. 행복한 거?”

 사람에게 행복은 당연한 감정이었다. 당연할수록 설명하기란 더 어려워지는 법이었다. 당연한 것을 그것이 당연하지 못한 사람에게 설명하는 것보다 차라리 대학원강의를 가르치는 것이 쉬울 것이었다.

 “행복이란 말야. 일부러 미소를 짓지 않아도 저절로 입꼬리가 올라가는 것이야. 그저 같이 있는 것, 심지어 생각을 하는 것만으로도 웃음이 나오는 거지.”

 “의원님의 유머처럼 말입니까?”

 “아니, 유머랑은 달라. 그리고 나는 그렇게 재밌는 말을 하는 것도 아니고. 아, 그래. 좀 전에 넥타이핀 받았을 때. 그 기분이 어땠어?”

 “가슴이 붕 떠오르는 기분이었어요. 아, 이 가슴 말고 안쪽의 가슴이요. 그리고 미소가 지어졌어요.”

 “그게 행복이야. 이제 너도 행복을 아는 바이오로이드야, 사치. 그 행복을 잊지 말아야 해. 그 행복을 안고 산다면 사치는 사치다운 사치가 될 수 있을 거야.”

 행복. 사치는 아직 그것이 무엇인지 완벽하게 이해할 수 없었다. 하지만 이치카의 말을 들은 그녀의 입술은 저절로 미소를 지었다. 사치다운 것. 언젠가 그런 날이 올지도 모른다. 사치가 자신만의 개성을 가진 행복한 바이오로이드가 될 날이.


 “잠깐만요.”

 그 때의 일이 떠올라서였을까. 사치는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사치다운 것. 그것이 어떤 것인지는 잘 몰랐다. 하지만 사치의 마음 한켠에서는 이렇게 말하고 있었다. 너는 정말 바이오로이드일 뿐이야? 인간보다 못한 사물일 뿐이야? 그것으로 있는 것이 행복할까?

 “해드리고 싶은 말이 있어요.”

 마츠시타에게 말하고 싶었다. 자신들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 만일 자신이 하고 있는 일이 마츠시타의 말처럼 잘못된 것이라면 사치는 그곳에서 일하는 것이 행복할 수 없었다. 모두가 웃으며 행복하게 일하는 곳이 사실은 행복을 억압하게 되는 곳이라면. 사치는 행복을 주는 바이오로이드였다. 그것은 사무실의 사람들 뿐만이 아니었다. 모든 사람을 행복하게 해주는 것이 바로 사치의 행복이었다.

 “사치? 할 말이 있는 거에요? 어떤 건데요?”

 마츠시타는 반갑다는 듯 뒤돌아서 사치에게 다가왔다. 마츠시타에게 말해야 해. 키리시마 이치카 의원이 준비하고 있는 것을 말해야 해. 입을 열어야 해.

 하지만 사치는 입을 열 수 없었다.

 “사치? 사치!”

 마츠시타는 사치에게 달려갔다. 사치는 힘을 잃고 쓰러지고 있었다.

 “마츠시타!”

 토모는 마츠시타보다 먼저 달려와 사치를 부축했다. 쓰러진 사치는 입에 거품을 물고 있었고 그녀의 눈동자는 위로 솟구치고 있었다. 토모는 사치를 붙잡았지만 발작을 하는 사치는 토모의 힘으로도 억누를 수 없었다.

 “사치, 괜찮아요? 사치!”

 마츠시타는 사치를 흔들며 외쳤지만 사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마츠시타, 이건 청산가리야. 청산가리캡슐을 물었어.”

 “하지만 왜? 사치는 내게 무언가를 말하려 했다고. 사치! 사치!”

 사치는 아무 대답이 없었다. 대신 토모가 외쳤다.

 “마츠시타! 빨리 구급차 불러! 청산가리면 아직 살릴 수 있어! 여긴 국회의사당 근처잖아. 구급차는 빨리 올 거야!”

 토모의 외침에 마츠시타는 휴대전화를 들었다. 제발 사치가 살 수 있기를. 사치로부터 얻을 정보가 중요하지 않았다. 눈앞에서 죽어가는 바이오로이드를 살리는 것이 중요했다. 마츠시타는 제발 사치가 살 수 있기를 바라며 긴급전화버튼을 눌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