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주인님이 돌아가셨다.


 소완의 향긋한 음식 냄새에도.

 다프네와 리제가 가져온 부드러운 꽃 내음에도.

 콘스탄챠의 상냥한 부름에도.

 하치코의 애절한 목소리에도.

 나의 간절한 부탁에도.

 그 무엇 하나에도 반응하시지 않으셨다.


 세상에서 가장 따스한 햇살 아래에서, 자신을 아끼고 한 몸 바쳐 모시던 집안의 바이오로이드 사이에서.

 병에 고통 받지도, 끝도 없는 악몽에 시달리시지도, 누군가 에게 목숨이 거둬진 것도 아닌.

 그저 평화롭게 수명의 끝을 마주하시고 마지막 숨을 내쉬셨다. 

 

 주인님은 돌아가셨다.

 이 세상에서 가장 평온한 죽음을 맞이하셨다.



2.


 주인님이 노환으로 평온한 죽음을 맞이하셨다.

 모두가 주인님이 돌아가셨다는 사실에 슬퍼했다. 은혜를 다 갚지도 못했다며, 주인님을 영영 떠나 보내야 한다며 모두가 슬퍼했다.

 하지만 그 슬픔을 밖으로 내비치지는 않았다. 평소 우리가 웃는 모습을 좋아하시던 주인님을 눈물로 떠나 보낼 수는 없었다. 모두가 슬픔을 삼키며, 웃음으로 주인님의 마지막을 장식했다.


 주인님이 돌아가시기 2주 전 부터, 주인님은 마지막을 준비하셨다.

 마지막을 대비하시려는 듯, 우리에게 천천히 집의 모든 권한과 재산을 나누어 주셨고 자신의 사후 어떻게 살아도 좋다고 이야기 하셨다. 그리고 장례식은 최대한 조촐하고 간소하게 진행하라고 말씀하셨다. 자신을 화장하여 세상을 둘러보게 끔 흩뿌려 달라고 하셨다.

 모두가 주인님의 말을 따랐다. 하지만 마지막 유언은 이루어드리지 못했다. 주인님의 유해 일부라도 떠나 보낼 수가 없었다. 주인님께는 죄송하지만, 마지막 유언은 도저히 이뤄드릴 수가 없었다. 주인님이 언제 까지고 우리 곁에 남아있기를 바라는, 우리가 주인님께 바라는 유일한 욕심이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고, 모두가 끝없는 죄책감을 품기 시작했다. 자신들의 욕심 때문에 주인님이 끝도 없이 저 작은 유골함 안에 갖혀 있어야 한다는 것에 너무나 송구스럽고 죄송한 마음이 들기 시작했다. 그깟 욕심이 뭐라고, 주인님이 살아 생전 잘 가보지도 못하셨던 여행 한번 못 보내드리는지. 그렇게 생각하지만, 그 누구 하나 나서서 주인님의 유골을 유언 대로 해야 한다 말하지 못했다. 주인님을 떠나 보내야 한다는 말을 누가 쉽게 할 수 있겠냐 만은.


 나는 그 사이에서 갈팡질팡하며 수없이 많은 시간을 흘려보냈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 그저 시간만 흘려 보냈다. 삶의 목표도 이유도 잃은 채 상실감에 빠져들어 허탈한 마음으로 목숨만 부여잡고 숨을 쉬며 살아갔다.



3.


"주인님을 유골함 안에 계속 모셔두는 것이 옳은 일 일까?"


 늦은 저녁, 저택의 중앙 홀이 내려다 보이는 2층 난간에 몸을 기대어 한없이 시간을 보내고 있는 내게 다가온 콘스탄챠가 물었다. 

 아무런 답도 하지 않은 채로 누가 찾을 일도 없지만 번지르르 하게 닦아 놓은 중앙 홀만 내려다 보았다. 콘스탄챠가 몇마디 더 던졌지만 그럴 때 마다 입을 더 굳게 다물었다. 입을 열어 무슨 말을 한들, 제 감정을 주체하지 못하고 폭언이나 일삼을게 분명하다. 이 답답해서 미쳐버릴 것만 같은 이 감정을 콘스탄챠는 어떻게 참아내는 것 일까. 그녀의 인내심이 부러울 따름이었다.


"..옛날 같았으면 그냥 주인님의 유언을 따르고, 다 끝내버렸을 건데.. 콘스탄챠, 나도 정말 물러 터졌지?"


 주인님을 막 만났을 때, 주인 외의 모든 존재에서 난폭하고 흉폭한 모습만 보이던 내가 타인의 감정과 처지를 고려하게 될 줄은 몰랐다. 그들이 떠나 보내는 것을 싫어하는 걸 알기 때문에 쉽게 그러지 못하는 내 모습을, 과거의 내가 봤다면 왜 이렇게 미련하냐며 온갖 욕설을 내뱉었겠지.

 콘스탄챠는 나를 잠시 쳐다보더니, 이내 따라오라는 손짓을 했다. 철충도 잘 오지 않은 시골이라 별 일 없겠지 하며 콘스탄챠를 따라 갔다. 기나긴 복도를 거치고 계단을 몇번이나 걸어 올라간 끝에 도착한 곳은 주인님의 서재였다. 주인님 사후에도 많은 메이드들이 신경써서 청소한 듯, 먼지 한 톨 보이지 않았다.

 서재 안쪽으로 들어가는 콘스탄챠를 따라 가니 방문이 나왔다. 콘스탄챠는 그 문을 열었고, 그 문 안에 있던 것은 이 저택의 수많은 통신 장비를 관리해주던 유미 였다. 그녀는 지금이 밤인지 낮인지 구분도 못할 정도로 정신이 몽롱해져 있었다. 쓰레기통을 가득 채운 수많은 에너지 음료수 캔이 그녀가 얼마나 고된 노동을 해왔는지 대강 알 수 있게 해주었다.


"헤.. 헤헤.. 일 다 끝냈어요.."


"고마워요 유미 양. 정말 고마워요."


 콘스탄챠의 감사 인사를 쑥스럽게 받아들인 유미는 곧장 자러 간다면서 방을 빠져 나갔다. 이 곳에 남은 것은 컴퓨터 한 대와 수많은 책, 그리고 콘스탄챠와 나 뿐이었다.

 켜져있는 컴퓨터에 다가간 콘스탄챠는 한 파일을 열었다. 그리고 내게 이리로 와서 이걸 보라고 이야기했다. 그녀의 부름에 컴퓨터로 다가가 화면을 보니 그곳에는 한 리스트가 적혀져 있었다. 세계 온갖 지명이 적힌 리스트였다. 지명을 유심히 살펴보다가, 이 모든 지명이 굉장히 익숙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혹시나 하고, 콘스탄챠를 바라보니 그녀는 곧장 답해주었다.


"주인님이 평소에 가고 싶다 하셨던 곳들을 추려서 만든 리스트야."


 그래. 이 지명들. 주인님께서 은연중에 한번씩 말하셨던 지명들이었다.

 주인님은 평소에 일이 많으셔서 가고 싶은 여행지가 있음, 그 여행지에 관한 영상을 보는 것으로 해결하셨다. 하지만 마음 속 깊이 언젠가 저곳에 한번은 가고 싶다 생각하셨겠지. 주인님은 그렇게 수많은 여행지를 그저 마음 속에 묻어두며 살아오시고, 끝에는 그 모든 여행지를 너무 묻어둔 탓에 기억하시지도 못하셨다.


"이걸 어떻게 다..."


"주인님께서 잊으실 지는 몰라도, 나는 잊지 않아."


 콘스탄챠는 미소를 띄우며 말했다. 아마 콘스탄챠의 기억과 유미의 정보력으로 이 수많은 여행 장소 리스트를 만들어둔 것 이겠지.

 정말이지, 콘스탄챠는 내가 본 하우스 키퍼 중 가장 최고의 하우스 키퍼였다. 파일을 좀 더 내려보니, 그 리스트에 적힌 장소들에 대한 수많은 자료들이 있었다. 인터넷이 끊겼기에 정말 방대한 자료가 적혀있는 것은 아니였지만, 그래도 두꺼운 책 하나 분량 정도가 될 정도의 자료는 있었다.


"리리스, 여행 갈 생각 없어?"


 자료의 양에 놀라하며 계속해서 파일을 들여다보던 내게, 콘스탄챠가 물었다. 나는 잠시 멈칫 하고 다시 물었다. 여행이라니, 이 저택을 내버려두고 나 혼자?


"주인님과 함께 여행갈 생각 없냐고 물었어."


"...그건 무슨 소리야?"


"주인님이 평소 다양한 곳을 가고 싶어 하셨잖아. 이 저택에서 유해를 뿌리면 바람을 타고 얼마나 날라가겠어? 그러니, 리리스 네가 직접 그 곳에 가서 유해를 뿌려 드리는 거야. 일부만이라도 그렇게 해드리면, 주인님은 자유를 찾으시고 우리는 죄책감을 한시름 덜 수 있겠지."


 장난치는가 싶었지만, 콘스탄챠는 진지했다. 모든 교통 수단과 이동 수단이 마비된 지금, 분명히 매우 고되고 끝이 보이지 않는 여정을 할 생각 없냐고 그녀는 물었다. 분명 여행 중간에 끝도 없이 위험에 빠지고 목숨마저 위협 받을 것이다. 철충은 물론 비우호적인 온갖 것들과 조우할 가능성도 매우 높다.


"미안해. 이런 걸 부탁할 사람이 너 말고는 없어.. 너무 무리한 여정이라 생각하면 하지 않아도...."


"좋아."


 하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오히려 이런 기회를 준 그녀에게 감사한 마음 뿐 이었다.


"진짜? 죽어버릴 수도 있어. 다신 돌아오지 못할 수도 있어. 그저 주인님의 유해를 지키며 이곳에서 살아갈 수도 있어. 그럼에도 진정으로 갈 거야...?"


 콘스탄챠가 되물었다. 그녀는 이 여행을 성공시킬 가장 가능성 높은 이에게 말한 것이지만, 그럼에도 그녀는 걱정을 떨쳐낼 수 없다는 듯 내게 수없이 다시 되물었다. 걱정 어린 눈빛으로 나를 쳐다보며, 괜한 소리를 한 것이 아닌가 하는 죄책감을 품는 그녀의 모습이 내게 보였다.

 나는 그녀에게 다가가 그녀를 안았다. 콘스탄챠는 당황 해했다. 아무래도 그럴 것이다. 내가 누구를 끌어 안고 그러는 건, 주인님 외에는 절대 하지 않는 행동이었으니까. 그럼에도 내가 그녀를 끌어안은 이유는 그녀에게 진정으로 고마움을 표시하고 싶어서 였다. 그녀를 끌어안고, 몇번이고 말했다.


"고마워. 정말 고마워."


 그녀의 깊은 생각이 내가 다시 살아야 할 목표를 만들어 주었다. 그래서 그녀가 진정으로 고마웠다.

 내 진심이 전해진 것인지, 콘스탄챠도 나를 끌어안았다. 아름다운 음색에, 눈물이 묻어 나오는 소리로 그녀는 입을 열었다.


"미안해.. 그리고 고마워..."


 내게 너무나 많은 짐을 떠 안겼다는 것에 대한 죄책감이, 그런 짐을 아무렇지도 않게 짊어지겠다 한 나에 대한 고마움이 한데 섞여 그녀의 솔직한 감정을 전해주고 있었다. 그렇게 우리는 한동안 서로를 끌어 안고, 서로에 대한 고마움과 미안함을 풀어내었다.



4.


 내가 주인님의 유해를 모시고 세계 온갖 곳을 여행한다는 이야기는 집안 내에 잔뜩 퍼졌다. 많은 이들이 내 여행을 축복해주었지만, 한편으로는 나를 걱정해주기도 했다. 우리 컴페니언의 막내 하치코는 후자 쪽에 가까웠다.


"언니! 이것도 챙겨가요!"


 긴 여정을 준비하기 위해 짐을 챙기고 있으면 어느새 다가와 어떤 물건을 내민다. 가끔 씩은 쓸모 있는 물건을 주기도 하지만 대부분은 화관이나 꽃 다발, 아니면 장식품과 같은 물건이었다. 내칠 수도 없는 게, 저 천진난만하고 맹한 얼굴로 어린아이 다운 행동을 하는데 어디 싫다고 치우라고 할 수는 없지 않은가.

 하는 행동은 어린아이 같지만, 한편으로는 쓸쓸함이 느껴지는 하치코를 바라보고 있노라면 저 애를 두고 떠나는 것이 맞는 일인지 다시금 생각해보게 된다. 대도시로 점검하러 간 페로와 페더가 철충 사태에 휘말려 더 이상 돌아오지 않게 되었고, 이제 나도 떠나니 집에 홀로 남게 되는 하치코는 얼마나 큰 공허함을 느낄까. 그런 공허함을 느끼지 않으려고, 더 이상 돌아오는 이가 없을 것이라는 공포를 떨쳐내라고 자기 딴 에는 부적이라고 만든 수많은 무의미한 것들을 주는 것이 아닐까. 그런 불안감을 주지 않으려 하기 위해 피우던 담배도 끊고 운동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지만, 그녀의 걱정을 떨쳐내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오히려 더 큰 불안감을 불러 일으켰다. 내가 진짜 떠나기 위해 준비를 하는 모습으로 비추어졌나 보다. 그래서 그냥 하치코와 자주 있으면서 추억을 더 쌓으려 노력했다. 하치코가 조금은 덜 쓸쓸하게 끔.


 오늘도 똑같았다. 하치코는 눈을 뜨자 마자 내게 달려와 품에 안겼다. 자신의 냄새로 조금이라도 더 기억해 달라는 듯, 몸을 마구 비볐다. 그런 하치코의 모습이 진짜 강아지 같아서, 예정된 이별을 아는 강아지 같아서 귀엽기도 하고 애절하기도 했다.

 그런 하치코를 쓰다듬고 또 쓰다듬고 있으면 하치코는 금세 잠에 빠져든다. 내 품에 안겨 잠에 들면 하치코는 더 이상 악몽을 꾸지 않았다. 편안한 꿈을 꾸듯, 평온한 미소를 지으며 잠에 취했다. 그런 모습을 보고 있으면 나도 나른해져서, 잠이 찾아오게 된다. 하아암... 그래. 좀 느긋하게 준비해도 되겠지. 그리 생각하며 하치코를 끌어 안고, 오늘의 준비는 잠시 미뤄둔 채로 잠을 청했다.



5.


 하치코와 함께 잠을 청하니, 어느샌가 날은 어두워졌다. 시계를 보니 어느새 7시가 되어 있었다. 오늘 준비는 글렀다 생각하고, 하치코와 같이 식당으로 향했다. 식당으로 가는 길에도, 하치코는 끊임 없이 이야기 했다. 자신이 보고 들은 이야기를 조금은 과장해서, 조금은 까먹었기에 자신의 이야기를 넣어서 말하는 하치코의 이야기는 언제 들어도 재밌고 귀엽다. 한번 했던 이야기도 수도 없이 달리 말하니, 이보다 더 귀여울 수는 없었다.


 그렇게 하치코의 이야기에 귀 귀울이며 걷다 보니 금세 식당에 도착했다. 식당에는 늦은 식사를 하는 바이오로이드 들이 몇몇 있었고 주방에는 한 바이오로이드만이 홀로 요리를 하고 있었다. 누군지는 안봐도 뻔했다. 소완이었다.


 주인님이 살아 계실 적에는 소완과 끊임 없이 싸웠다. 주먹이 오고 가는 경우는 없이, 그저 말다툼 뿐 이었지만 그래도 분위기가 장난아니게 험악해져서 주방 쪽 바이오로이드들은 소완을 말리느라, 컴패니언 자매들은 나를 말리느라 진땀을 뺐다. 그도 그럴 것이 서로 주인님의 사랑을 독차지 하겠다며 기싸움을 하고 서로 성격도, 말투도 잘 안맞으며 둘 다 프라이드가 높으니 싸움이 안 날 수가 없었고, 한번 일어나면 크게 일어날 수 밖에 없었다.

 생각해보니, 주인님 사후 소완과 이야기 해본 적이 없다. 저택 공원에서 평생 핀 적 없던 담배를 물고는 켁켁 대던 소완을 본 적은 있으나, 과거에 서로 싸웠던 것이 너무 많아 마음에 걸려 말을 걸지는 않았다.


 먼저 말을 거는 것은 껄끄럽기에, 그냥 나는 미리 세팅된 음식 접시를 조용히 가져가려 했다. 하치코도 나를 따라 접시를 손에 쥐었다. 접시 위에는 채소와 과일로 만들어진 화려한 요리가 있었다. 고기는 더 이상 고기의 형태가 아닌, 정말 작디 작은 무언가가 되어 있었다. 비교적 고기가 부족한 식사가 만들어진 것에는 다 이유가 있었다.

 철충 사태가 벌어지자 마자 콘스탄챠의 지휘 아래 채소 밭과 과일 밭을 만들어 두었기에 꽤 신선한 풀들이 접시 위로 올라올 수 있었다. 하지만 고기는 달랐다. 보존 식량도 있고 정말 소수의 돼지를 키우는데 성공하기는 했지만, 보존 식량은 제한적이고 정말 소수의 돼지 만을 양육해서 고기가 올라 오는 일은 잘 없었다. 그렇지만 소완의 탁월한 요리 실력 덕분에 제한적인 보존 식량과 풀만으로도 뭐 하나 부족할 것 없는 식사를 할 수 있었다. 소완의 그 배배 꼬인 성격은 정말 싫었지만, 그래도 뭐 소완의 요리 실력 하나는 일품이다. 그건 인정한다. 인정할 건 인정해야 한다.


 그렇게 식사를 가지고 자리로 가서 앉고 먹으려 할때, 멀리서 소완이 다가오는 것을 보았다. 눈시울이 붉게 물든 그 요리사는 카트에 요리를 잔뜩 담고 내게 오더니,


"잠만 기다리시지요."


 라고 말하고는 카트에 실린 온갖 음식들을 내려놓기 시작했다. 그 요리들은 평상시에 잘 보지도 못했던 요리들이었다. 소완은 요리를 내려놓으며 요리들의 이름을 알려주었다. 포르타칼 살라타스, 자고르스키 슈트르클리, 보르시 등 이름만으로 이게 무슨 음식인지 가늠할 수 없는 그런 요리들을 내려주었다. 


"리리스 언니. 고기에요 고기!"


 고기로 된 음식을 보고 좋아하는 하치코와는 달리, 소완이 이런 특별한 대접을 내게 해줬다는 것에 어안이 벙벙해진 나는 그저 소완을 쳐다보았을 뿐이다. 소완은 뭘 놀라냐는 듯, 계속해서 요리를 내려놓았고 이내 식탁 위에 올려진 요리 가짓 수만 해도 8가지나 되었다. 다 먹을 수... 아 하치코가 있지. 그럼 다 먹을 수는 있겠다.


"뭘 이렇게 많이 준비했어?"


"이 정도로 뭘 놀라십니까. 아직 음식이 다 내려지지 않았으니 좀만 기다려 주시지요."


 잔뜩 힘빠진 소완이 카트에서 마지막으로 내린 음식은 조금 달랐다. 딱 봐도 무슨 음식인지 알 수 있었다. 냄새와 색이 접시에 담긴 음식이 토마토 미트 스파게티라고 강렬하게 주장하고 있었다. 그 강렬한 토마토 소스 향기 사이로 잔잔한 허브 향이 나는 스파게티가 담긴 접시를 받아들고, 그는 생각은 한 가지 뿐 이었다.


"후훗, 눈치 채셨습니까? 주인님께서 좋아하시던 스파게티입니다."


 소완은 그  특유의 웃음 소리를 내며 말했다. 요리를 소개하는 모습 만큼은 과거와 다를 바가 없었다.


"자 전부 차려졌으니, 맛있게 드시지요."


"...맛있게 먹기는 할 건데, 이렇게 차려준 이유가 뭐야?"


"이유가 있겠습니까. 맛있는 음식을 대접하는게 요리사의 본분이지요. 그럼."


 그렇게 말하고 소완은 등을 돌려 주방으로 돌아가려 했다. 등을 완전히 돌리고, 얼굴을 내게서 완전히 돌린 뒤 소완은 아주 작고 조용한 목소리로 끝말을 덧붙였다.


"주인님의 마지막 여정을 잘 부탁합니다."


 제 부탁 하나 제대로 전하지 못하는 소완의 모습을 보며, 그녀의 색다른 모습에 웃음이 조금 새어나왔다. 하치코가 뭐가 웃기냐고 묻자, 나는 그냥 아무 것도 아니라며 맛있는 음식이나 먹자고 했다.



6.


 시간이 흐르고 흘러, 내가 여정을 떠날 시간이 되었다.

 이 저택에서 일하던 모든 바이오로이드들이 중앙 홀에서 나를 기다려주었다. 정말 많은 이들이 내 여정을 축복하려 홀에 모여있는 모습을 보니 너무 감격스러워 눈물이 날 정도였다.


 나를 웃음으로, 눈물로 보내는 이들에게 마지막 인사를 했다. 하나 하나 손을 잡고 인사했다.


"언니. 꼭 다시 만나자?"


 가장 달라붙어서 나를 붙잡을 것 같았던 하치코는 포옹 한 번으로 마지막 인사를 끝냈다. 하치코가 조금은 성장한 모습에 이제 이 곳을 홀로 지킬 하치코에 대한 걱정을 한시름 놓을 수 있었다. 내가 없어도 이 곳을 잘 지킬 수 있겠지. 그리 생각하며 하치코를 평상시 보다 조금 더 강하게 끌어 안았다.

 

"주인님을 잘 부탁해."


"걱정 마."


 내게 주인님의 유해 일부가 담긴 상자와, 그 상자가 담긴 가방을 건내준 콘스탄챠는 손을 내밀었다. 나는 그녀의 걱정을 조금이라도 더 덜어주기 위해 굳센 어투로 말하며 마지막 작별 인사를 했다. 

 

 그렇게 모두에게 작별 인사를 마치고, 저택의 정문을 열어 밖으로 나갔다. 이 끝없는 여정을 나름대로 축복하기 위함일까, 하늘은 매우 화창하고 구름 한점, 바람 하나 없었다. 앞으로의 여정도 이렇게 평화로우면 정말 좋겠다. 정말로 그러면 좋겠다. 평화로움 속에서 주인님을 떠나 보내면 좋겠다.

 나름대로의 소망을 품으며, 저택 밖으로 한발자국, 한발자국 나아갔다. 끝 모를 여정의 첫걸음이 생각보다 가벼웠다.


"리리스 언니! 꼭! 다시 보자! 다시 만나자!"


 어느새 멀리 떨어지게 된 정문에서, 하치코가 외치는 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하치코에게 손을 흔들었다. 보이지 않을 수도 있지만, 밝은 미소를 지으며 작별 인사를 고했다.


 모두에게 인사를 다 하고 나왔다 생각하려는 찰나, 대문 앞에 누군가 서 있는 것을 보았다. 

 커다란 가위, 고풍스런 메이드 복과 그런 고풍스런 이미지와는 이질적인 붉은 눈. 시저스 리제였다.



7.


"주인님의 일부라도 보낼 수 없어."


 내가 다가가자, 리제는 그리 말하며 차고 있던 커다란 가위를 손에 들었다. 위협적인 두 칼날이 햇빛 아래에서 번뜩였으나, 딱히 문제가 되는 건 아니였다.


"돌아가. 나가려고 하면 죽일 거야."


 평소 소완이나 나 처럼, 어찌보면 그 이상으로 주인님을 소유하고자 하는 욕구가 강했던 리제 다운 작별 인사다.

 붉은 두 눈으로 나를 노려보는 리제를 향해 천천히 걸어 나갔다. 내가 한걸음 한걸음 내딛을 때 마다 리제는 온갖 욕을 해대며 나를 위협했다. 그리고 어느 순간, 내가 선을 넘었다 생각한 리제는 뽑아든 가위를 두 손에 꽉 쥐고 내게 달려들었다. 이렇게까지 한다면 돌아가겠지 하는 생각으로 그런 것 같다.


 제 아무리 위협적인 리제라 한들, 나를 이길 수는 없었다. 나를 향해 찔러 들어오는 가위날을 몸을 살짝 틀어 피했다. 그리고 곧장 카운터로 주먹을 내질렀다. 주먹은 짧고 간결하게 리제의 복부를 쳤지만 리제는 그 고통으로는 어림도 없다는 듯이 더 광폭한 움직임으로 칼날을 휘둘렀다. 그러나 그 어떤 공격도 닿지 못했고, 연달아 카운터만 얻어 맞은 리제는 금세 쓰러지게 되었다.


"....이러기는 싫었는데."


"주인님을 그렇게 보.. 낼 수는 없어.."


 리제는 힘겹게 몸을 일으켰다. 어떻게든 나를 보내지 않으려는 의지가 굳건했다. 의지 하나 만큼은 대단하다.

 힘겹게 일어선 리제에게, 나는 다가갔다. 리제는 내가 공격할 거라 생각했는지, 움찔 했지만 나는 공격 대신 그녀를 안아주었다.


"해.. 햇츙! 뭐하는 거야! 이거 안 놔!"


"한 번만 믿어줘. 주인님을 잘 보필할게."


 진심을 담아 말했다. 평소 소완 만큼이나 자주 다퉜던 리제 였지만, 이번 만큼은 날 믿어달라 진심을 담아 말했다.

 리제에게 내 진심이 전해진 걸까, 리제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나는 그녀를 조금 더 꼬옥 안아준 뒤, 다시 대문 쪽으로 걸어갔다.


"해츙. 실패하기만 해봐. 실패하면 넌 내가 죽여 버릴 거야."


 대문을 벗어나기 직전, 리제가 나지막하게 말했다. 끝까지, 리제는 리제답게 작별 인사를 해 주었다. 그런 리제에게 나는 조용히 손을 흔들어 인사해주었다.


 이제 비로소 저택의 모든 바이오로이드에게 인사를 마친 나는 저택을 나서며 바깥의 공기를 만끽했다. 그리고 곧장 콘스탄챠와 유미가 조사한 자료로 만든 두터운 책, 여행 리스트를 펼쳐 가야할 길을 파악했다. 북쪽. 북쪽으로 가야 한다. 나침반도 있으니 방향을 잃지는 않을 것이다. 

 나침반을 따라, 다시 무사히 저택으로 돌아오기를 빌며 앞으로 나아갔다. 끝 모를 여정이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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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백 제외 : 7492 


대입 준비 한답시고 글 다 놓은 뒤로 처음 쓰는 글이라 그런지 겁나 빡씨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