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들을 더욱 쓰다듬어주세요!'


'컴패니언에게 관심을 주세요!'


방을 나가자마자 보이는 풍경은 팻말을 목에 걸고 서 있는 하치코와 페로였다.

하치코는 무언가 결심이 있는 듯 비장한 표정으로 있는가 하면

옆의 페로는 감정을 보이지 않는 표정으로 서 있다.


그 모습에 당황하고 있자니 하치코가 떨리는 목소리로 외쳤다.


"쥬... 쥬인님 죄송하지만, 오... 오늘부터 파... 파혼할 거에욤!"


지나가는 바이오로이드들이 이를 보며 웃었고 '귀엽다' 던가 '좋은 방법이다'라고 말한다.


"어라? 파혼?"


갑자기 이게 웬일이다냐.



..........

.............

....................



"요즘 쥬인님이 쓰담쓰담을 해주지 않아욤!"


컴패니언의 방에서 하치코는 리리스에게 불평을 하고 있다.


"서약은 기뻤지만, 그 후 쥬인님의 관심이 더욱 준 거 같아요!"

 

"그렇긴 하네.... 경호를 맡고 있다곤 해도 그 외에 오르카에 있을 때는 별로 만날 일이 없긴 하네...."


"언니도 그렇죠? 쥬인님께서는 컴패니언 모두에게 흥미가 없는 걸까요...."


"경호를 맡는다는 점이 역으로 주인님과 만남에 제한이 되었기 때문이겠지...."


"페로는 비서 하고 있지만, 쥬인님께서 워낙 바뻐서 죠금 쓸쓸하다는 이야기도 들었어요."


"페로까지 그렇게 느낀다면 큰일이기는 하네.... 하아~"


리리스와 하치코, 페로 등 컴패니언은 사령관의 경호를 맡기에 다른 바이오로이드들로부터

사령관과 항상 함께 있다는 이유로 질투와 시기의 대상이 된다.

그리고 사령관을 가지고 경쟁을 할 때 컴패니언은 이 이유로

너희는 충분하니까 빠지라는 무언의 압박을 자주 받았다.


물론 리리스를 중심으로 항의를 해보았지만, 사령관이 자신을 경호할 동안

더욱 관심을 주겠다며 일을 마무리 지었고 그 이후 사령관은 바쁘게 되어서

그 약속은 있으나 마나 한 말이 되었다.


그나마 한동안은 서약의 반지를 받아 '변하지 않는 정실'이라는 자부심을 가질 수 있어도

차례차례 다른 바이오로이드들도 받게 되어서 그 가치를 상실하게 되었다.


결국 컴패니언의 자매들은 사령관의 익숙한 무관심에서 빠져나올 수 없는 형편이 되어버린 것이다.


"내가 주인님께 직접 말해서 할 수 있는 것을 해볼게. 너희들에게까지 걱정을 끼친다는 것은

내 체면이 서질 않으니까."


리리스는 걱정이 있어 보이는 모습이지만

애써 밝은 얼굴로 하치코를 쓰다듬으며 굳은 결심을 한다.


"에헤헤. 언니 고마워요."


하치코는 리리스가 나름 굳은 각오로 방을 떠났지만,

분명 희망적인 답을 듣지 못할 것 같다고 생각한다.


그녀도 사령관이 얼마나 바쁘고, 사령관을 향한 경쟁이 얼마나 치열한지를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런 식으로 끝나는 것을 자주 보았다.


'언니에게 정말 미안하지만, 저도 모두가 이렇게 풀 죽은 모습을 보고 싶지 않아요.'


속으로 리리스에게 미안하다는 사과를 하고 하치코는 방을 떠나 다른 곳을 향한다.



.................



"그래서? 나에게 그런 이유로 왔다는 것이군?"


"녜에."


리앤의 방.

오르카에서 곤란한 문제가 있을 때 다른 이들도 잘 상담하는 리앤이다.

하치코도 이를 알고 있었기에 그녀가 사령관을 둘러싼 경쟁자 중 하나라는 것을 알아도

지푸라기를 잡는 심정으로 그녀의 방문을 두드렸었다.


하치코에게는 그녀가 어떤 식으로 반응할지 알 수 없었기에 양쪽 귀가 아래로 축 쳐져서

기죽은 모습으로 시선은 그녀를 향한 채 초조하게 대답을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흐음~ 컴패니언에게는 그런 고민이 있었구나...."


다행이도 그녀는 그런 하치코의 고민을 진지하게 생각해주는 것 같다.


"알았어! 나도 겉보기에는 몰랐지만, 경호를 맡는 너희들이 오히려 그런 고민을 가질 수 있지."


"그럼 도와주시는 건가요?"


"음! 나만 믿으라고! 이 리앤, 오르카의 고민거리를 해결하는 것도 나의 보람!"


"와~! 감사합니다!"


하치코가 신나서 리앤에게 안겨붙는다.


"아하하! 컴패니언은 다들 활기차구나.

이런 아이들을 두고 무관심한 왓슨군, 아니 주인님은 조금 얄미우려나?"


"말은 못 해도 그럴 때가 있어요...."


"이런, 이건 심각하네."


자세를 고쳐앉은 리앤은 헛기침을 하고 나서 신중하게 생각하기 시작한다.


"경호의 특권을 가지고서도 관심받지 못하는 컴패니언...

따로 주인님에게 다가가려 하면, 그 특권 때문에 무언의 압박을 받을 수밖에 없다...."


"꿀꺽."


하치코는 어떤 대답이 나올까 긴장하며 침을 삼킨다.


"일단 확인할 건, 경호의 특권은 포기하고 싶지 않은 거지?"


"녜에...."


컴패니언이 이를 빨리 포기했다면 문제는 쉽게 해결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모두가 이를 포기하고 싶지 않아 했다.

개인 경호는 컴패니언의 역할이자 상징이기 때문이다.


"확실히, 그렇게 되면 문제가 어렵게 되어버리지...."


리앤도 문제의 심각성을 느꼈는지 표정이 조금 어두워진다.


"다른 방법은 없는 걸까요...?"


하치코의 마지막 희망을 잡고 싶어 하는 물음.

리앤은 오르카에서 사령관을 둘러싼 분위기를 회상하며 해결 방안을 분석해본다.


그렇게 조용하게, 혹은 끙끙거리면서 리앤이 머리 속에서 생각을 하고 있다가


"탁!"


어느 정도 정적이 지난 후 리앤이 손바닥을 주먹으로 치면서 표정이 밝아진다.


"좋아! 이런 방법이 있었다!"


"뭔가요? 뭔가요?!"


하치코도 덩달아서 흥분하기 시작한다.


"이럴 경우에는 해결 방법은 한가지.

주인님의 마음을 움직이게 하는 수밖에 없지."


'끄덕끄덕'


"그렇지만, 그렇게 해서 되었다면 애초부터 해결되어야 했는데,

그게 지금까지 할 수 없었다."


"끄덕 끄덕 끄덕'


"주인님의 사정을 아는 이상, 확실히 너희들의 말만으로는 부족할 수 있을 것 같아.

그렇기에...."


"그러키에...?"


"너희들의 마음을 직접 표현하는 것이지!

이전 세상에서는 이를 시위, 파업 같은 행동으로 표출했었어.

그러니까, 너희들도 이런 행동으로 주인님에게 어필하는 거야!"


"오! 표현하는거!

그런데, 어떻게 하면 되는 건가요?"


해답을 알았다는 안도감에 신이 난 모습이지만

방법을 모르기에 하치코는 다시 풀 죽는 모습이다.


"자아, 어렵게 생각하지 않아도 돼. 내가 방법을 생각했으니~"


하치코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음흉해 보이는 미소를 짓는다.


"바로 파혼을 하는 거야!"


"파혼~?"


처음 듣는 말에 하치코가 어리둥절해 한다.


"파혼. 결혼은 없던 것으로 하는 것. 여기서는 서약을 없던 것으로 하는 게 되려나."


"네?! 서약을 없던 것으로?!"


처음 듣는 서약 파기에 하치코는 충격을 받는다.


"으으~ 그래도...... 쥬인님 서약은... 없던 걸로 하기는... 너무 슬픈데...."


마음이 약한 하치코는 말만 들어도 눈에 눈물이 글썽거린다.


"아니아니, 진짜 그런다는 게 아니고, 파혼한 척 한다는 거지."


"파혼한 척?"


"그럼! 진짜 파혼은 아니어도, 너희들이 파혼한 것처럼 주인님과의 사이를 잠깐 떨어뜨리는 거야."


"음... 으음...."


척만 한다고 하여도 실제 주인님과 떨어지는 것을 원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이를 계기로 더욱 사이가 안 좋아지지 않을까 걱정하는 하치코.


"뭐, 다른 걱정은 안 해도 되. 왜냐하면 이것은 심리적인 문제이니까."


"심리적이라고요?"


"쉽게 말해줄게. 너희들은 주인님을 너무나 좋아해서 그에게 안겨 붙으며 지냈었잖아?

원래는 그게 좋은 것일 텐데, 주인님에게는 너희들의 애정표현이 익숙해져 버린 거지.

그리고 주인님은 결국 너희들이 전하려 하는 그 사랑마저도 느끼지 못하게 된 거야."


"그런! 정말 그런 건가요?!"


하치코는 말을 듣고 충격을 받는다.

주인님께 헌신하고 서로 달라붙어 가까이 지낸다면,

서로가 더욱 좋아하게 될 것이라 굳게 생각했었다.


"원래라면 그럴 일은 없었을 거야.

처음에는 너희들도 주인님도 잘 지냈었잖아?"


"그래요!"


과거 주인님과 행복하게 지내던 때가 기억난다.

바쁘고 힘들더라도 서로 위로하고 격려하며 지낼 수 있던 때.

피곤한 얼굴로 있어도 우리를 보면 머리를 쓰다듬고 무릎 위에 앉게 해서 안아주던 때.

언제 어디서나 주인님을 다시 볼 수 있다는 기대로 행복했던 나날들이었다.


"우으...... 왜 이렇게 되었 까요... 우우...."


행복했던 과거와 지금이 비교되니, 느껴보지 못한 우울함이 밀려와 기분이 가라앉는다.


"아하하... 그건 내가 한 번 조사해볼 테니까 걱정하지는 말고.

다시 이야기를 되돌아가서 처음에는 잘 지냈던 때와 다르게 지금은 상황이 달라졌다는 거.

주인님은 그런 상황 때문에 다른 데에 신경 쓸 여유가 사라진 거고,

결국 가장 가까이서 항상 함께했던 컴패니언이 관심 밖으로 밀려나게 된 거야."


"그런 걸까요?"


이전과 다른 상황에서 주인님과 가까이 있었던 것이 문제가 되었다는 말에

하치코도 어느 정도 납득하기 시작한다.


주인님께 달라붙어서 관심을 끌면, 다음에 하자면서 한 번 쓰다듬는 모습에

어쩔 수 없이 넘어갔던 적이 많았음을 기억한다.


"예전에 이런 말이 있었지. '밀어서 안 되면 당겨보기!'

너희들처럼 무조건 달라붙어 애정을 표현하는 것도 좋지만, 이마저도 익숙해진다면

달라붙지 말고 잠시 떨어져서 서로 생각할 시간을 주는 거지."


"서로 떨어지는 거로 그렇게 될 수 있나요?"


심리 같은 복잡한 것은 하치코가 생각할 수 있던 것이 아니기에, 조금 불안한 마음이 든다.


"물론! 나만 믿으라고! 내가 이 문제를 꼭 해결해 보일 테니까!"


가슴 위에 주먹을 얹고 당당하게 말하는 모습에 저절로 따르게 된다.


"그... 그럼! 어떻게 해야 할까요?!"


그녀를 따르기로 마음먹은 이상, 앞으로 어떻게 해나가야 할지 잘 듣고 따르면 되기에

하치코는 한층 밝아진 표정으로 회복된다.


"좋아! 우선은---"



........................



컴패니언의 방.

리리스 언니는 주인님과 담판을 짓겠다며 나갔기에 돌아오는 시간이 늦을지도 모른다고 짐작한다.


펜리르와 포이가 옆방에서 쿨쿨 자고 있는 와중에 사각사각 종이 자르는 소리만이 울린다.


"이걸 자르고... 이렇게 붙이면... 됐다."


리앤에게 듣기로는 우선 불만을 표현해야 하기에

팻말에 하고 싶은 말을 붙이고 모두에게 알려야 한다고 들었다.


끈이 달린 팻말에 종이를 붙여 하치코의 가장 하고 싶은 말을 알린다.


'우리들을 더욱 쓰다듬어주세요!'


다른 복잡한 말보다 하치코가 지금 주인님께 가장 하고 싶은 말이다.


"그다음은...."


서약의 반지를 빼서 팻말에 붙여 파혼했음을 알리는 것도 필요하다 했다.


"반지를... 우으...."


주인님께 받은 서약의 반지는 페로, 리리스 언니와 함께 받은 것으로,

항상 경호하느라 함께하는 것에 고맙다며 준 것이다.


다른 바이오로이드들에게 부러움의 시선을 받으며

리리스 언니의 말처럼 주인님의 확실한 정실로 인정받는다는 자랑스러운 상징이었다.

그러나, 이제와서는 그런 의미도 사라졌다.


떨리는 손으로 반지 빼는 것을 몇 번 고민한다.

그러나 더 이상 바뀌지 않을 주인님과의 내일을 생각하니, 바로 결심이 굳는다.


받은 이후 한 번도 빼지 않은 반지.

빼고 난 후 자세히 보니 지금도 영롱하게 빛나는 금색 반지의 모습에

우리와 주인님의 관계가 이처럼 변하지 않고 굳게 있어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아쉽지만, 이렇게 해서 꼭 해낼 거에요!"


반지가 잘 보이도록 투명테이프로 팻말 구석에 예쁘게 붙인다.

완성된 팻말을 들어서 바라보니, 스스로의 의지가 확실하게 나타나는 것 같아 기쁘다.


"어라? 하치코, 안자고 뭐 하고 있어?"


페로가 비서일을 마치고 들어왔다.


"아 페로, 이거 주인님께 파혼? 같은 걸 하려고."


팻말을 보여주며 페로의 얼굴을 엿본다.

분명 이걸 보면 페로의 반응이 좋지 않을 것 같음을 직감한다.


"파혼? 그런 걸 왜 하는데?"


역시나 페로도 당황하면서 조금 이상하다고 여긴다.


"주인님께 받은 반지는 왜 또 뺀 건데, 이러다가 혼날지도 모르니

어서 정리하고 자자."


그래도 화내지 않고 별일 아니라는 듯이 여기는 모습에 하치코는 용기를 가지고 물어본다.


"페로는 지금의 쥬인님하고 괜찮은 거야?"


"응...?"


이런 하치코의 물음을 예상하지 못했는지 상당히 당황한 것 같다.


"페로는 쥬인님을 조아하고 있어?"


"당연히 좋아하지?"


"그럼, 쥬인님은 페로를 조아해?"


"뭐?......."


하치코는 깊은 생각을 잘 못 하기에 심각한 질문을 잘 못 한다.

그러나 마음에서 우러나온 진심이 담긴 말을 물어본다.

주인님은 우리를 좋아해 주는가.


"쥬인님은... 예전만큼... 하치코랑 페로, 리리스 언니와 컴패니언 모두를 조아하는 걸까...."


하치코가 이전부터 느낀 의문.

페로가 이걸 모를 리가 없다.


"......."


페로도 쉽게 대답하지 못한다.


"하치코는, 이런 말 하기는 싫지만, 쥬인님이 우리를 조아하지 않는 것-"


"우으......."


"어?"


"하치코마저 그렇게 말하다니...."


표정에 변화가 잘 없던 페로가 회색빛을 띄고 움직임이 멈췄다.


"페... 페로...."


"알고는 있었지만...... 하치코마저 말하게 되었다면...... 이제는 확실한 건가...."


어두운 표정으로 굳은 얼굴의 페로는

침대 위에 몸을 웅크리고 이불을 뒤집어쓰더니


"주인님~ 우리를 버리신 건가요~ 우으...."


고양이 특유의 웅크린 자세로 확실하게 절망감을 느끼고 있었다.


"그... 그러니까 페로, 이번에는 하치코가 해결책을...."


"아니... 나는... 안 할 거야....

주인님의... 충실한... 페로로 남을 거야~ 흐에엥~"


이불 속에서 부들부들 떨며 중얼거리는 페로.


"페로는 그걸로 괜찮은 거야?

하치코, 이번에는 리앤 언니에게 물어봐서 제대로 알아 왔어...."


"......."


눈물이 조금 올라온 눈으로 하치코를 올려보는 페로.


"우리끼리 힘들다면 다른 사람 도움을 받는 게 좋을 거 같아서.

이번에는 물어봤거든....

그래서, 하치코는 확실하게 들었으니 내일부터 이걸 꼭 할 거야."


페로에게 팻말을 가까이 보여주며 자신의 의지가 강한 것을 보여준다.


"언니나 쥬인님이 어떻게 볼지는 몰라도, 앞으로 더욱 좋아하게 될 수 있다면

하치코는 혼자서라도 해볼 거야."


아무 말 하지 않고 엎드려있던 페로에게 담담하게 말한다.


"힘들 거 같으면 페로는 이거 안 해도 돼? 하치코 혼자서라도,

아니 리앤 언니하고 같이 하기로 했으니까!"


페로가 어떤 마음인지는 모르지만, 하치코는 강한 확신을 가지고 있다.

이런 슬픈 지금을 꼭 바꾸어 보이겠다고.

모두가 웃으며 행복해할 수 있는 내일을 찾겠다는 마음으로 하치코는 다시 웃는다.


"곧 리리스 언니 오겠네. 언니한테는 말하지 말아줘. 하치코는 꼭 하고 싶으니까."


엎드려있는 페로를 두고 작업했던 흔적을 청소한 뒤 펫말을 숨긴다.

언니에게 들켜서 하지 말라는 소리를 들으면 정말로 고민할 것 같아서 들키고 싶지 않다.


'내일 꼭 해내 보이겠어!'



..................



다음 날 아침.

하치코가 알람을 듣고 자리에서 일어난다.

리리스 언니는 늦게 왔다가 아침 일찍 나갔는지 자리에 이미 없다.

페로도 자리에 없었기에 혼자 나가기에는 좋은 때이다.


옷을 정돈하고 숨겨두었던 팻말을 꺼내어 목에 걸었을 때

페로가 방으로 들어온다.


"페로?"


처음 보았을 때 몰랐지만, 페로가 말없이 서 있는 것을 보고 이상한 것을 보았다.


'컴패니언에게 관심을 주세요!'


글이 적혀있고 구석에 반지가 붙여있는 팻말을 페로가 손에 들고 있었다.


"페... 페로도?"


"하... 하치코 혼자 하기에는 힘들지도... 모르니까...."


얼굴을 붉히며 말하는 모습에, 하치코는 페로가 하치코를 도와준다는 것을 깨달았다.


"페로오~! 고마워~!"


"자-잠깐! 하치코!"


기쁜 마음에 페로에게 안겨들었고

페로는 당황했지만, 싫지 않은 것 같다.



......................



주인님 방 앞에서 팻말을 걸고 기다린다.

원래라면 시간에 맞추어 방 앞에서 기다리면 되지만,

오늘은 모두에게 알려야 하기에 미리 와서 서 있는다.


"아, 와있었네."


멀리서 리앤 언니가 다가온다.


"아! 안녕하세요! 덕분에 이렇게 만들어서 하고 있어요!"


"옳지 옳지~ 잘했어!"


하치코의 머리를 쓰다듬고 옆에있던 페로의 머리도 쓰다듬는다.


"오늘 할 일은. 주인님이 아무리 쓰다듬고 잘해준다 해도 넘어가지 않는 것!

파혼을 시작한 이상, 절~대~로 유혹에 넘어가면 안 돼!

나도 주인님의 상태를 지켜볼 테니까 한번 열심히 해보자고!"


"녜에!"


"(작은 소리로)냥...."



....................

.............

.........



처음 방에서 나온 주인님은 둘의 모습을 보고 매우 당황한 것 같다.

절대로 그럴 것 같지 않던 그들의 갑작스러운 모습에 분명 충격을 받은 것이다.


"애... 애들아? 무슨 문제라도 있니...?"


짐작 가는 부분이 있지만, 혹여나 쉽게 해결할 수 있을까 가볍게 물어본다.


"다시 말하지만, 하치코랑 페로, 파... 파혼하는 거에욤!"


하치코도 파혼이라는 말이 달갑지는 않은지 어려워한다.


"으아...."


머리를 살짝 긁으며 고민한다.

그러다가 팻말 구석에 보이는 빛나는 금속.

자세히 보니 반지를 빼 붙여놓았다.


'이거 본격적이구나....'


굳은 결심을 알아보고 어떻게 해결할 수 없을까 생각하다 둘에게 다가간다.


"저... 저기 일단 안으로 들어가서 케잌이라도 먹으면서 이야기하지 않을래?"


양팔로 둘을 쓰다듬으며 최대한 달래어본다.


"에헤헤~"


"...."


헤실헤실 거리는 하치코와 붉은 얼굴로 조용히 있는 페로였는데 갑자기.


"아! 그... 그래도 넘어가지 않을 거에요! 결심했으니 포기하지 않을 거에요!"


하치코가 유혹의 손길을 이겨내고 끝까지 버티어 의견을 말한다.

그리고 주변을 지나가던 바이오로이드들이 수군거리며 이 모습을 보고 있다.


왠지 모르게 나쁜 사람이 된 것 같아 억울하기도 하면서

어떻게 이 아이들을 달래야 할까 머리가 혼란스러운 사령관이었다.


'어제 리리스도 그러더니 너희들까지.... 혹시 미리 짠 건가?'


이런 생각이 들 정도로 기가 막히는 타이밍에 아이들이 들고일어난 것이다.

그렇다고 계속 이대로 있을 수 없는 것이 앞으로 일정이 빼곡하게 있기 때문에

빨리 다음 장소로 가야 했다.


지금 당장 해결하기는 어려웠으며, 순수했던 저 둘의 외침을 못 본 척 하고 싶지 않았기에

이 둘을 그냥 데리고 가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일단, 다음 일정이 있으니 같이 갈까?"


"네? 다음 일정이요?!"


하치코도 같이 가야 하는 일정이 있을 줄은 예상하지 못한 것 같다.


"으우... 어떡하지...."


"그냥 그 팻말은 계속 목에 걸은 채 같이 가는 거... 어때?"


하치코가 단순하다 해도 이런 것에 이상한 고집부리지 않기를 바라고 있다.


"으우...... 음...."


머리를 이리저리 기울이며 고민하더니


"아! 알겠습니다! 같이 갈게요!"


밝게 웃으며 따라오는 하치코와 뒤의 페로였다.

그리고 뒤쪽 복도 구석에는 ok싸인을 주고있는 리앤의 모습이 있다.



....................



"헤헤~ 이렇게 다니는 거 오랜만이네요~"


"......."


하치코와 페로가 사령관의 양팔에 안기어 다음 장소까지 같이 걷고 있다.


"그... 그러네.... 예전에는 이렇게도 자주 다녔었구나...."


새록새록 생각나는 이전 기억에 사령관과 둘은 이야기꽃을 피운다.


'그때 페로가 미끄러지는 바람에~'


'그... 그건! 포이가 일부러-'


'마자요! 그때 엄청 웃었지요!'


그렇게 오르카 출입구까지 도착하고 나서 한쪽에서 기다리게 된다.


"(작은 목소리로)아 맞다! 우리 파혼 중이었지!"

라며 원래의 목적을 간신히 기억해내는 하치코.


"우리 완전 빠져있었어...."

페로도 부끄러웠는지 말을 흐린다.


그래도 팻말을 메고 있는 둘의 모습은 상당히 인상적이어서

탐색과 작전을 나가는 바이오로이드들 모두가 이를 보았다.


"(토모)풋푸풉! 사령관님 얼마나 소홀했으면~"


"(칸)경호로 항상 있을 터인 저들이 어째서 저런...."


몇 인원들에게 저 파혼의 모습은 나름 화젯거리가 되었다.

그리고 이를 대처하는 사령관의 모습도 나름 평소보다 애먹는 것 같다.


그래도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자 사령관도 둘의 모습이 적응되었는지

크게 동요하는 모습 없이 자연스럽게 데리고 다닌다.


점심시간.


"어라? 하치코와 페로, 왜 그러고 있니?"


그동안 보지 못했던 리리스 언니를 만났다.

어디 있었는지는 모르지만, 어제보다 조금 기운 없는 모습이었다.


"에... 그게...."


하치코는 언니의 반응이 어떨지 몰라 당황해하면서도 포기하지 않는 모습을 보인다.

페로는 리앤의 작전을 모르고 하치코의 말을 따랐기에 옆에서 묵묵하게 있을 뿐이다.


"파혼? 너희들 주인님에게...."


펫말을 읽은 리리스 언니의 모습이 놀라는 듯하며 시선이 조금 어두워진다.


"아.... 괜찮아 리리스. 어제의 너도 그렇고 너희들이 하고 싶은 말이 있는 것 같아서

일단 이렇게 같이 다니고 있어."


"네.... 알겠습니다."


무언가 할 말이 남은 것 같지만, 주인님의 말을 듣고 잠잠해지는 리리스.


"어때? 오랜만에 다 같이 식사라도 하지 않을래?"


이전이라면 같이 식사하는 것도 경쟁이 치열해

컴패니언들은 항상 주변의 다른 테이블에서 먹었다면

이번에는 리리스, 페로, 하치코 셋과 사령관이 함께 먹는 것이다.


"?! 네! 물론이지요!"


리리스도 예상하지 못했는지 얼굴에 어두움이 사라지고 반짝이는 눈과 밝은 얼굴로 변했다.


"너네는 먼저 음식 받고 기다리고 있어 줘. 나는 잠깐 말 좀 전하고 올 테니까."


사령관은 말을 남기고 급하게 어디론가 간다.

따라가고 싶었던 셋이었지만, 다시 온다는 확신이 있었기에 불안함 없이 말을 따르기로 한다.


"리리스 언니는 어디에 있었나요?"


음식을 받고 테이블에서 기다리는 사이 하치코가 묻는다.

귀가 살랑살랑 흔들리는 게 주인님을 기다리는 시간이 즐거운 듯하다.


"어제 늦게 돌아오고 아침 일찍 일이 없을 동안 밖을 산책했었어.

생각할 게 조금 많아서 말이야...."


깊은 한숨과 조금 어두워진 눈빛으로 대답하는 리리스.


"어제 잘 되었나요?"


리리스 언니가 알아서 해보겠다고 말하고 떠난 것을 기억하기에 물어본다.


"그게... 잘 되지는... 않았지...."


처음 봤던 침울한 얼굴이 되었다가 멀리서 주인님이 오는 소리를 듣자

바로 반짝이는 얼굴로 다시 바뀌었다. 다시 봐도 대단하다.

하치코는 리리스 언니가 주인님 앞에서는 이야기하기 어려운 것 같으니

다음에 물어봐야겠다고 생각한다.


식사 시간 동안 주인님과 즐거운 시간을 보내었다.

하치코가 주인님의 튀김이 맛있어 보인다며

'한입만 주실 수 있나요?'

간절한 요청을 한 것으로


'저... 저도 주실 수....'

페로의 애절한 눈빛과


'주인님? 저에게도 주실 수 있으시죠?'

주인님에게 강렬한 눈빛을 보내어서 리리스에게 주지 않고는 못 배기게 하는 요청도 있었다.


물론 주변의 바이오로이드들은 부럽다고 하거나 질투의 기운을 뿜었다.


"이런 식사는 오랜만이었어요!"


식사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 하치코는 신난 듯이 깡충깡충 뛰며 말한다.


"그러면 다행이네~"


사령관은 안심하였고

"그러면 이제 그거는 그만두는 거야?"

하치코의 앞에 매달려 흔들거리고 있는 팻말을 가리키며 말해보았다.


"아아아아아아아아아~!"


그때 하치코는 다시 깨달았다.


'나 파혼중인데 뭐 한거지?

쥬인님과 사이좋게 지낸 것은 좋지만 이건 괜찮은 걸까나.

어버버버버버버버...

리앤 언니가 뭐라고 하지 않을까나.

아니, 나 잘하고 있었던 걸까나!

우아아아아아아아~!'


하치코는 자신이 파혼중이라는 것과 방금까지의 화목함에 부끄러움을 느껴

양손으로 팻말을 들어 얼굴을 가린다.


"우후후후훗! 하치코는 귀엽구나~"


이런 하치코의 속마음도 모르고 리리스 언니는 주인님과 같이 하치코를 귀엽다고 한다.


"페... 페로~ 이쪽에 같이 있어 주세요~!"


팻말을 눈까지만 살짝 내려 페로의 모습을 보니

시선을 피하고 주인님 옆에 바싹 안겨서 얼굴을 붉히고만 있다.


"으아아아아아앙~ 페로는 배신쟈아아아!"


부끄러운 와중에 동료마저 잃은 분함에 팻말을 다시 올리고 외친다.


"자자~, 파혼 했다 해도 사이좋게 지내지 말라는 법은 없으니까, 하치코도 이리 온?"


다행히도 주인님은 이런 것도 너그럽게 받아들여 준다.


"하치코가...... 사이좋게... 있어도... 괜찮나요?"


귀가 축 처지고 다시 팻말을 눈까지만 내려 주인님의 눈치를 보며 물어본다.


주인님의 미소와 멀리 뒤에서 보이는 리앤 언니의 양팔 크게 만든 O모양.


'아직 괜찮구나!'

깨달은 하치코는 팻말을 내리고 재빠르게 주인님께 붙는다.


"아~! 양팔에 언니랑 페로가 붙어있으니 하치코가 있을 자리가 없어요!"


"어? 그러네? 어떡할까나?"


정말 고민하는 주인님이 있는가 하면,

왠지 리리스 언니와 페로의 눈빛이 하치코를 약 올리는 것 같다.

그래도 질 수 없으니


"그러면 허리에 매달릴게요~!"

라며 앞에서 허리를 와락 껴안았다.


"어라? 그러면 걷기 힘들어지는데? 아하하...."


당황스러워 보이는 주인님의 모습이나


"우후후."


눈빛이 강렬해지는 리리스 언니.


"냐아아아암~"


주인님 옆에서 졸리다는 듯 하품하는 페로.

이런 기분은 정말 오랜만에 느끼는 것 같다.


"아쉽지만~ 오늘 하치코와 페로의 경호는 여기까지 거든.

셋 다 이제 돌아가서 쉬어도 돼~

나는 방에서 작업하고 회의하는 일만 남았으니까, 내일 또 보자!"


"에 벌써 그런 시간이?"


하치코는 즐거운 시간이 참 빠르게 지나갔다고 느낀다.

주인님과 더욱더 있고 싶은 마음이 넘치지만, 아쉬움을 뒤로하고

리앤언니를 만나러 가기로 한다.


만족스러워 보이는 리리스 언니와 페로를 보내고 리앤 언니의 방을 찾아간다.


"실례합니다~"


"어서 와~ 기다리고 있었어."


하치코가 올 것을 알고 있었다는 듯이 맞이해준 리앤 언니.


"오늘 어땠나요?"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물어보는 하치코.


"음~ 일단 합격이려나. 나름 잘했다고 생각해!"


"정말인가요?!"


"음! 오늘 목적은 주인님이랑 친하게 지내는 것보단 주인님을 불편하게 만드는 것이었으니까!"


"불편하게요?"


"주인님은 팻말을 메고 있는 하치코와 페로의 모습이 매~우 신경 쓰였을 거야.

같이 친하게 지낸다 해도 너희들을 꼬시는 방법은 하나도 통하지 않는다는 거에 충격을 느끼지."


"그랬을까요?"


"응! 주인님이 중간중간 어떻게 할지 몰라 곤란해 보이는 표정이 아~주 재미있었다고!

또 너희는 못 보았어도, 주인님 다른 애들한테 사과하러 다니느라 엄청 혼났었지~"


"사과요?"


"아마 점심을 같이 먹지 못한 것에 대한 사과이려나?

너희들이랑 같이 먹게 되었잖아?"


"아~! 그러쿤요!"


분명 스스로는 본 적이 없지만, 리앤 언니는 주인님을 지켜보면서 보았지 않았나 싶다.


"그러면, 이제 뭘 하면 될까요?"


효과가 있었다는 리앤 언니의 말에 저절로 신이 난다.


"음~ 아마 오늘은 너희들이 할 일은 끝났어.

남은 건 너희 주인님한테 내가 직접 해야 하는 거거든."


수첩에 무언가를 적고 있다.


"오늘은 나한테 맡기고 푹 쉬어! 내일 경호 들어가기 전에 들려서 말해줄게!"


든든해 보이는 포즈와 함께 엄지를 척 들은 리앤 언니는 너무나 멋있었다.


"감사합니다! 그럼 오늘은 이제 들어갈게요~!"


방으로 돌아가는 길을 깡충깡충 뛰면서 간다.

"기돈곤겪기 하찌코~ 빠르게 날아가고 시퍼요!"

신나다 보니 저절로 발걸음이 가벼웠었다.


"하치코, 어서 오렴."


방문을 여니 페로와 리리스 언니가 기다리고 있었다.


"아, 언니 방에 있었네요."


"응. 하치코를 기다렸단다. 여기에 앉아보렴."


페로의 침대에 걸터앉은 리리스 언니가 반대편에 앉으라며 침대를 가리킨다.

왠지 지긋한 눈빛으로 바라봤기에 무슨 일 있나 싶어 괜히 무서워진다.


"오늘 팻말은 하치코가 생각해낸 것이니?"


"아니요, 리앤 언니한테 물어서 배운 거에요."


"리앤씨인가...."


눈을 감으며 생각중인 리리스 언니.


"언니가 해결해보겠다고 해도 하치코는 가서 물어본 것이구나..."


"우으......."


왠지 질책하는 것 같아 주눅이 드는 하치코. 그래도 용기를 내어서 말한다.


"지금까지 언니 혼자서... 잘 안되서... 그러니까 다른 사람의 도움을 받아볼까 해서요...."


"으음...."


하치코의 말을 듣고 꼴똘하게 생각에 잠긴 리리스.


"확실히, 내가 혼자서 고집을 부린 걸까나...."


"그... 그래도 이제 쥬인님 마음도 변한 거 같아요!

오늘도... 그랬고......."


하치코는 왠지 자신감은 없지만 그렇게 믿고 싶었다.


"음! 좋아! 오늘 한 번 더 해보자!"


자리를 박차고 일어난 리리스 언니는 하치코 머리를 쓰다듬더니


"고마워 하치코. 주인님이 정말 마음이 바뀌었는지는 가서 확인해볼게!"


이전보다 더욱 밝은 얼굴로 방을 나갔다.


"에헤헤. 언니 기쁜 거 같네."


"그러네... 나 졸리니까 먼저 잘게. 냐아아암~"


오랜만에 페로는 밝고 깨끗한 얼굴로 잠들고 있다.

이전에는 주인님에 대한 걱정으로 표정이 어두웠던 것이 비교된다.


'아... 나도 쥬인님이랑 오랜만에 놀아서 그런지 졸리다...

내일 리앤 언니가 말해준다 했으니 나도 일찍 자야겠다.'


복잡한 고민은 다른 이가 해결해준다 했으니 마음 편히 자는 밤이었다.



..................................




"흐아아아아아암~"


이렇게 개운하게 자고 일어난 것도 오랜만인 것 같다.

앞으로 좋은 일만 있을 것 같은 기대감에 저절로 몸이 가벼워진 것 같다.


아직 알람이 울릴 시간이 아니어서 페로도 몸을 웅크린 채 편한 얼굴로 자고 있다.


문 밑을 보니 리앤 언니로부터 편지가 들어와 있었다.


'자고 있을 것 같아서 이렇게 남겨봤어.

일단 어제 너희 주인님의 반응을 보니 작전은 대성공이었던 것 같아!

아마 오늘로 마무리를 지을 수 있다고 생각해.

오늘 너희들이 해줄 일은, 어제처럼 팻말을 걸고 주인님과 같이 다니는 것.

이렇게 계속 주인님께 호소하면 분명 변화가 생길 것 같아!

오늘은 같이 있어 주지 못하지만, 다행히도 너희를 도울 사람이 생길 거야.

오늘까지만 열심히 해주면 완벽하게 마무리 지을 수 있을 것 같으니, 오늘도 화이팅!

- 해결사 리엔'


'오오! 오늘도 어제처럼 하면 되는 거군요. 어렵지 않을 거 같네욤!'


신나하면서 어제의 팻말을 다시 찾아 목에 건다.

편지를 읽는 사이 일어나서 정리를 마친 페로도 하치코의 모습을 보고 말없이 팻말을 건다.

그렇게 나갈 준비를 할 때,


"애들아, 나도 같이해도 될까?"


문을 열고 들어온 리리스 언니도 손에 팻말을 들고 있었다.


'주인님의 사랑을 원해요.'

라고 쓰여 있는 팻말은 바로 리리스 언니의 목에 걸려 어엿한 파혼 선언이 되었다.


"우와아! 언니도 같이하는 건가요?"


"응! 어제, 주인님의 마음이 아직도 바뀌지 않은 것 같아서 말이야~

나도 이렇게 해야겠더라고. 후후훗......."


표정이 무섭지만, 함께 있어 준다는 것만으로 너무나 기뻤다.


"이제 시간이니까, 가자꾸나~"


"녜에엠~!"


컴페니언 3자매는 그렇게 팻말을 걸고 주인님 방 앞으로 향했다.



..............................



"안녀- 우어억!"


방에서 나온 주인님의 표정은 대단히 놀란 듯했다.

하치코와 페로는 예상했어도 리리스마저 그 자리에 있을 줄 생각도 못 했기 때문이다.


"리리스... 너도 거기에...?"


"네에~ 주인님께서 저를 매정하게 거부하길래, 저도 이렇게 하는 게 좋지 않을까 싶어서요."


흠 없는 미소로 대답하는 리리스 언니.

주인님은 언니의 표정을 보고 무언가를 읽은 듯이 식은땀을 흘린다.


"아니면, 경호 때문에 차별받고 있는 컴패니언 모두를 데리고 와볼까~ 생각도 했지요."


"아... 아니 그렇게 할 필요는 없어! 그 전에 해결할 테니까!"


주인님의 처음 보는 모습에 어리둥절하면서도 무언가 변화가 있는 것 같다.


"일단 일하러 가자? 어제처럼 많이는 못 놀아줘도 같이 다니자."


주인님의 이전 차가운 모습이 나올 것 같아 걱정하면서도

같이 있어 주겠다는 말에 안심하고 따라붙는 컴패니언들이었다.


"주인님~ 저기 관심받으려는 해충들을 제가 제거해버려도 될까요?"


"아니... 리제, 그냥 있어 줘. 나도 예상은 한 거라서 말이야...."


"흐~응? 주인님께서는 저렇게 해야만 관심을 가져주는 것인가요~?

저도 저러고 싶지는 않지만, 하는 수 없다면...."


"아니아니, 그러지 말아줘... 해결책을 찾아올 테니까.

조금만 기다려줘. 모두가 만족할 수 있게 할 테니까...."


이틀째가 되니 주변의 바이오로이드들도 하나둘씩 반응을 보이기 시작했다.

우리도 저렇게 해야 하나 하는 말이나

뭔가 좋은 방법이 없을까 하는 물음이 주변에서 들려온다.


오르카호 전체가 영향을 받는 만큼 마음이 불편한 사령관이었다.


"폐하... 이런 말씀은 드리고 싶지 않지만, 다른 이들이 컴패니언의 행동에

상당히 영향을 받은 것 같습니다.

물론 당분간은 조용하겠지만, 곧 한 번에 폭발할 것 같은 조짐이 보입니다."


아르망의 조언을 계기로 본격적인 해결책을 찾기로 결심한다.



................................



"그래서 나에게 온 것이구나?"


"그래... 너라면 알 수 있지 않을까 해서...."


"후후훗~"


리앤의 방에 있는 사령관과 리앤.

리앤은 속뜻이 있어 보이는 웃음을 짓고 있다.


"그러면, 바이오로이드 모두를 차별하지 말고 왓슨 군과 함께 있도록 하면 되지 않아?"


"그거야 좋겠지만, 나는 한 명이고 시간도 한정돼있고 도저히 불가능해 보여."


"흐음... 확실히 할 수 있었으면 애초부터 했겠구나."


고민하는 척하는 리앤.


"아! 그럼 이건 어때?

모든 바이오로이드들을 순서대로 부관으로 하는 거야!"


"부관? 그건 예전부터 한 거라서 별 효과 없지 않아?"


"아니아니, 애초에 부관도 하는 인원이 정해져 있어서 불만가지던 이들도 많았어."


"그렇긴 하지.... 그런데, 업무를 하려면 맞는 인원에게 시켜야 하지 않아?"


"그런 건 추가로 담당을 만들면 되지 않을까?

부관의 역할은 업무에서 왓슨 군 개인 보조로 바꾸고."


"부관의 역할을 바꾼다라...."


"쉬운말로 한다면, 하루종일 왓슨군 옆에서 노닥노닥 거리는 것일려나?"


"으어...."


꽤나 당황스러워 보이는 사령관.


"응후후~, 이 정도는 해야 다들 만족할 거라고~?"


"그렇게 되려나...?"


"다른 이들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이게 최선의 방법이라는 것도 확인했지."


"......."


"참고로 하루 일정이 들쭉날쭉한 왓슨 군이니까 공정성을 위해

부관의 담당 시간은 왓슨 군과 함께 있는 시간만을 따져서 24시간으로 하려고 해."


"함께 있는 시간만?"


"그래그래. 왓슨군과 함께하고픈 부관을 내버려 두고 활동해야 할 때가 자주 있는 만큼

순수하게 같이 있는 시간만을 카운트해서 24시간이 되면 다른 이로 교대하는 것."


"으음~ 괜찮을까나?"


"딱 괜찮지 않을까 싶어? 순수한 24시간은 짧지도, 길지도 않은 시간이야."


납득한 것처럼 보이는 사령관.


"이렇게 모든 바이오로이드들이 부관을 맡을 수 있게 된다면 깔끔하게 해결될걸?"


자신 있어 하는 모습으로 얼굴을 가까이 들이밀어 강요하는 리앤의 모습에

사령관은 결단을 한다.


"알았어. 그럼 부관을 그런 식으로 하자. 평화로운 분위기를 망치는 건 좋지 않을 테니...."


"음! 좋아!"




......................................




그날 밤 지휘관 회의 때 새로운 부관 업무의 소식이 전해졌다.

소속 부대도 번갈아 가면서 나름 균형 있게 짜인 부관 담당 표는 모든 이들이 납득할 수 있었다.

물론 컴패니언에게도 그 소식이 전해진다.


"리리스 언니! 그거 들었어요?"


"응? 부관을 모두가 할 수 있게 되었다는 거?"


"녜에! 이제 우리들도 쥬인님과 함께 있을 수 있게 됐어요!"


"그러네, 24시간은 이전보다 좋은 성과구나."


리리스 언니의 이전보다 밝은 표정을 하치코는 알아볼 수 있었다.


똑똑똑.


방문에서 들리는 노크음.


컴패니언은 문을 노크하지 않기에 손님임을 알아챈다.


"누구시죠?"


싱글벙글한 리리스가 맞이한 사람은 사령관이자 그들의 주인님이었다.


"아 쥬인님!"


하치코가 보자마자 안긴다.


"안녕, 기운 넘쳐 보이는 게 괜찮은 것 같네."


"네에~ 주인님 덕분에 저희도 한시름 놓았답니다."


더욱 싱글싱글한 모습의 리리스를 보자마자 사령관은 하치코와 리리스의 머리를 쓰다듬는다.


"지금까지 미안했어. 확실하게 정하지 않고 이렇게 허술하게 하다 보니

너희가 소외당하던 것 같아. 바쁘다는 이유로 미뤘지만, 이제는 그럴 일 없을테니까."


"와아~ 쥬인님! 조아해요!"


"주인님~!"


사령관에게 덥석 안기는 둘의 모습. 그리고 등 뒤에서 누군가 사령관을 안는다.


"아, 페로도 있었지. 미안 미안."


컴패니언 방까지 경호한 페로가 셋의 모습에 못 참고 주인님에게 붙은 것이다.


"이렇게 되었는데, 이제 그 파혼은 그만두는 거지?"


소란의 원인이 된 파혼을 마무리 지어야 진정 평화를 찾을 수 있다는 사령관의 생각이었다.


"녜에! 물론이죵!"


"주인님께 파혼 같은 건 마음 아파서 더는 못하겠어요.

그. 러. 니. 까. 반지 다시 끼워주실 수 있으신가요?"


리리스의 노린 것 같은 대사에 사령관은 흠칫 놀란다.


"이거 당했네, 이번만이야. 손 줘봐."


리리스 앞에 한쪽 무릎을 꿇고 앉아 손을 잡고 약지에 반지를 끼워준다.

사령관도 부끄러웠는지 따로 말하는 대사 없이 빠르게 끝낸다.


"이제 됐지? 자, 하치코랑 페로도 하자."


반지를 보며 녹아내릴 것 같은 리리스의 표정을 옆에 두고 페로의 것도 끼워주지만,

하치코는 무언가 허둥지둥한다.


"어... 어떡해! 반지를 잃어버렸어요!"


하치코가 붉게 달아오르고 울먹이는 표정으로 주인님을 바라본다.


"으아.... 도중에 잃어버렸구나."


머리를 긁적이는 사령관과


"하치코! 그런 소중한 것을 잃어버리면 어떡해!"


조금 심각해진 리리스.


"으우우~ 재셩해요~"


"괜찮긴 한데, 요즘 반지도, 자원도 없어서 아마 찾아야 하지 않을까?"


"그럭네요......."


"뭐, 반지가 없다 해도-"


사령관이 갑자기 하치코를 와락 끌어안는다.


"좋아한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 거지?"


"아와와......."


갑작스러운 포옹에 하치코는 붉어진다.


"어머 부러워라~ 주인님? 저도 안아주실 수 있나요?"


"리리스는 욕심이 많구나. 자 이리 와."


"꺄아!"


"냐아아... 주인님 저도...."


"알았어 페로도 한 번."


잠깐 당황했던 하치코가 정신을 차리고 자매들과 화목하게 있는 주인님을 본다.

이전 바쁘지 않았던 때, 주인님과 컴패니언이 화목하게 지냈던 모습을 지금 볼 수 있게 되었다.

가슴 속 암울했던 먹구름이 개이고 햇빛이 비추는 것 같은 따스함을 느끼며

하치코는 성공했다는 것을 실감한다.


"쥬인님! 정~말! 조아해요!"


하치코는 반지를 잃어버린 것에 대한 찜찜함은 잊고

리리스, 페로와 놀던 주인님의 옆에 빠르게 안겨든다.


"앞으로도 쭈~욱 함께해요! 쥬인님!"






....................................



"부관 순번 표는... 나름 알차게 다 들어가 있네."


"그럼! 왓슨 군의 부관인데, 공정하지 않으면 큰일 나니까!"


"고마워, 리앤. 좋은 보답도 해주지 못하고. 볼품없네, 나란 사령관은...."


"괜찮아 괜찮아! 나도 나름대로 보상을 받았으니까~"


"응? 어떤 거?"


"흠~ 그건 비밀!"


부관 순번 표를 짠 리앤만이 알고 있는 사실.

다른 바이오로이드가 부관을 하는 시간과 리앤이 부관을 하는 시간의 비율은 1:1.2이다.

자그마한 특권을 그녀는 몰래 챙겨두었기에 딱히 조바심을 느끼지 않는다.


"하여간 잘해보자고 왓슨!"


"응! 고마워.

그리고, 내일부터의 부관은...... 안드바리?!

얘는 부관 안 해도 된다고 들었는데?"


"음~ 그게, 생각이 바뀌었나 봐. 꼭 해야겠다고 말하더라고."


"으으...."


불길한 사령관의 예감은 다음 날


'자원을 아껴주세요'

라는 팻말을 목에 걸은 안드바리의 파업 모습으로 적중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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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혼이 꼭 매울 필요는 없잖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