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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호의 밝은 웃음이 좋았다.

 

낭랑한 목소리도.

 

걱정 많은 성격도.

 

심려 끼치지 않으려 허세 부리는 모습도.

 

하지만, 가장 좋았던 것은...

 

네가 나와 비슷하다고 생각했었기 때문이었다.

 

 

 

 

 

 

미호는 밝게 보이는 미소 뒤에 슬픔을 눌러 담은 아이였다.

 

초등학교에 갓 왔을 때의 그녀를 잘 기억하는 내게는 너무나도 훤히 보였다.

 

미호는 누가 봐도 예뻤기에 미호를 원하는 사내 아이들은 많았지만,

 

감히 내 생각을 말한다면 그 녀석들은 그 미소가 마냥 좋을 뿐이었다고 생각한다.

 

 

 

 

 

 

 

 

 

나는 감히 다른 사람의 마음 속에 발을 들이려 하지 않는다.

 

그것은 혐오하여 마땅한 행위이다.

 

그래서 나는 미호의 슬픔이 어디에서 오는 것인지 굳이 물어보지 않았다.

 

하지만 얼추 짐작은 간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매일 늦은 밤이 되어서야 돌아오시는 부모님과 떨쳐내기 힘든 외로움.

 

휑하니 발가벗은, 제발 좀 벗어나고 싶은 망할 놈의 달동네.

 

지긋지긋한 가난. 추위와 배고픔.

 

정말로?

 

나는, 내가 미워하는 것을 미호를 통해서 투영하고 있었다.

 

나는 미호가 아닌데. 감히 그녀의 속내를 타인인 내가 짐작할 수 있을까.

 

그럴 리가. 그게 가능한 건 신 뿐일 거다.

 

결국 나도 뭇 사내아이들과 같았다. 가면 뒤를 본다고 착각하는 것만 다를 뿐.

 

그러니까 더 간단히 말하자면, 언제 깨져도 이상할 것 없는 왜곡된 관계였다는 것이다.

 

 

 

 

 

 

 

"안타깝게 됐어요, 정말이지..."

 

"쯧쯧..."

 

"애 아버지는 아무리 정신이 없대도, 저런 상황에 애를 버려둔대...?"

 

태어나서 처음으로, 무언가 사지 않은 것을 후회했다.

 

오는 길에 500원짜리 귀마개를 하나 사 오는 거였는데.

 

지금 당장 귓구멍을 막을 수 있다면 한번만 쓰고 버리더라도 상관없다.

 

손에 쥔 500원 동전은 언제나처럼 빛나지 않고, 그저 흐릿한 회색이었다.

 

"..."

 

그렇다고 나 혼자 시무룩해 있을 수는 없었다.

 

미호가 저렇게 걱정하고 있지 않은가.

 

나 따위를 걱정해서 저런 표정을 짓게 할 순 없다.

 

나는 괜찮다.

 

엄마 는 열심히 살았다. 착한 사람이었다.

 

그러니까 좋은 곳에 갔을 것이다. 반드시.

 

엄마가 날 보고 있을 지도 모른다.

 

난 멋있는 아들이다. 이딴 하찮은 일로 질질 짜서는 엄마도 저기서 맘이 편치 않을 거다.

 

뒤에서 수근대는 사람들은 모르는 척 학교 수업을 듣고, 집에 가서 아버지를 도와 집안일을 정리할 거다.

 

나는 강한 사람이다.

 

 

 

 

 

미호네 부모님께서는 정말로 바쁘신지, 3교시가 끝나고서야 뒤늦게 우리 교실을 찾아오셨다.

 

"늦어서 미안하다, 미호야."

 

....?

 

뭐지, 저 정장은?

 

나는 눈을 의심했다. 저런 옷은 우리 동네에서는 한 번도 보지 못했다.

 

옷이 날개구나. 그런 말을 실감했다.

 

어디서 난 옷인지는 중요치 않았다.

 

저 옷은 그야말로 날개였다. 그들은 저 날개로 하늘에 올라서 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아니다. 미호는 내 친구다.

 

인정해야겠다. 나는 지금 조금 힘이 드는 건지도 모른다.

 

친구에게, 그리고 그 가족에게 이딴 생각을 품다니 있을 수 없다.

 

미호가 가난하다고, 누구도 말하지 않았다. 내가 멋대로 생각했을 뿐이다.

 

엄한 생각 하지 말고 책이나 봐야지, 그렇게 생각한 순간이었다.

 

"니가 철남이니?"

 

아저씨가 내게 오셔서 명함을 건네셨다.

 

'(주) ㅇㅇ 사장 김ㅇㅇ‘

 

"....."

 

"항상 딸과 친하게 지내주는 너한테 고맙다고 말하고 싶었단다. 

...힘들겠지만, 가끔씩 연락하렴. 아저씨가 이야기를 들어 줄게."

 

아저씨. 그럼 명함 좀 치워 주세요.

 

차마 그렇게 말할 수는 없었다.

 

아저씨는 정말 순수한 호의로 말하고 있었다.

 

엄마가 죽었을 뿐이다. 이상한 생각을 가져서는 안 된다.

 

 

 

 

 

"철남아, 오늘 우리 집 중국집 가서 저녁 먹을 건데 같이 갈래?"

 

"어... 괜찮아. 아빠가 집에 혼자 계셔서. 걱정되니까 가봐야 돼."

 

"아빠도 데리고 와도 돼! 철남아, 힘들 때 맛있는 거 먹어야 힘 내지"

 

"..."

 

"미호야! 철남이랑 와서 차 타라!"

 

아저씨께서 뭔가 비싸 보이는 차를 타고 손을 흔드셨다.

 

내가 지금까지 타 본 차는 버스 뿐이었다.

 

어린이 요금으로 해서 팔백 원이었다.

 

저 차는 얼마나 할까.

 

저렇게 번쩍거리고 멋있는 차다. 엄청 비쌀 게 뻔하다.

 

천만 원 정도는 하지 않을까?

 

천만 원은 어느 정도인지 감도 안 오는 큰 돈이지만, 저런 차라면 그 정도 값은 할 것 같았다.

 

그렇다면 저 차는 내 어린이 요금을 몇 번이나 내야 살 수 있는 돈이란 말인가.

 

팰백 원에 만 번을 곱해 봤자 천만 원에는 달하지 못했다.

 

그야말로 정신이 아득해지는 돈이었다.

 

그러니까 저런 건 나로서는 평생 가도 살 수 없는 차다.

 

그런 차에 내가 탄다는 것은 상상만 해 봐도 우스운 꼴이었다.

 

나는 미호의 어깨에 손을 올리고 말했다.

 

"미호야 고맙다. 근데 진짜 괜찮다. 신경 안 써도 된다. 어차피 아버지랑 할 말도 많아서... 밥 맛있게 먹어라."

 

"....그래. 내일 보자"

 

나는 손을 대충 휘두르고 집으로 향했다.

 

 

 

 

 

 

문을 열자 드르렁 하고 코를 고는 소리가 났다.

 

아버지는 자고 있었다. 집안은 술 냄새에 쩔어 있었다.

 

"하하.... 아버지랑 밥 먹는다는 핑계는 말도 안 되는 소리였네."

 

가스레인지 위에 짜게 식은 김치찌개가 있어서 그걸 퍼다 대충 끼니를 때웠다.

 

밥을 먹고, 집을 대충 치우고, 설거지를 했다.

 

아버지의 코 고는 소리가 너무 거슬렸다.

 

도저히 집에 있을 수 없을 것 같았다.

 

대충 윗옷을 걸쳐서 집을 나섰다.

 

 

 

 

 

한참을 달리다가 지쳐서 주저앉았더니 눈물이 났다.

 

계단에 앉아서 다리 사이에 고개를 처박고 꺽꺽대고 있었다.

 

뒤에, 계단 위에 누가 있었다.

 



"철남아."

 

...미호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