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고 많으셨어요. 티타니아 씨.”

“……여왕은 이런 걸 하려고 복원 된 게 아닌데…… 괴로워…… 미워…… 사령관……”

 

이른 아침의 오르카 호 출격 인원 대기실. 제조과정에서 역대급으로 함선 자원을 소모한 티타니아는 당연하다는 듯이 기초 훈련이 끝나자 마자 자원 회수에 투입되었고, 이제는 일상처럼 밤과 낮이 뒤바뀐 생활을 하고 있었다. 멍청한 사령관이 ‘따갚되’를 시전한 덕분에 “따셨으니까 갚으셔야죠?” 라는 안드바리의 자원 강제 회수 선언이 나왔고, 졸지에 티타니아는 제조되자마자 사령관의 채무를 대신 떠안는 처지가 되어버렸다.

 

“적응되면 하실 만 할 거에요…… 힘 내세요……”

 

그런 티타니아를 위로하는 하르페이아. 그녀는 자원 회수 업무 선배로서, 이 오르카호에서 나름 알아주는 자원 회수 요원이었다. 아마 그녀가 없었더라면 티타니아는 제조조차 되지 못했으리라. 그녀가 잡아먹은 자원의 86.41%를 하르페이아가 조달했으니까, 밤샘 업무를 끝내고 돌아온 티타니아와 교대하며 애써 밝은 표정을 짓지만 속으로는 그녀도 알고 있었다. 이 업무에 적응이란 건 없다는 걸, 아무리 끝없이 자원을 벌어와도 사령관의 욕심은 끝이 없었고 언제나 같은 잘못을 저지른다는 걸, 함내에는 티타니아를 제조한 사령관이 며칠 지나지도 않아서 아직 얻지 못한 ‘레나 더 챔피언’의 제조각을 재고 있다는 흉흉한 소문이 돌고 있었다. 

 

“……여왕은 자러…… 갈거야…… 이 고통을…… 끝내고 싶어……”

 

 쌍둥이 언니 레아보다 10년은 더 늙은 듯한 기운을 풍기며 티타니아는 대기실에서 사라져간다. 그런 그녀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하르페이아는 그녀의 선배였던 발키리를 떠올렸다. 자신이 제조되기 한참 전부터 함대를 혼자 먹여살렸다는 전설의 주인공. 성능이 좋은 후배들이 새로 합류되면서 자연스럽게 은퇴 수순을 밟았던 그녀. 마지막으로 부서를 떠나던 그녀의 표정은 아쉬움이라고는 1도 없는 그야말로 성불하는 영혼 그 자체였다. 이제는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녀가 왜 그런 표정을 지으며 여길 떠났는지…… 

 

“응급 환자입니다!!! 다들 비키세요”

“수복실 3-C 시트에 자리 준비해!”

 

 갑자기 밖이 소란스러웠다. 응급환자? 어제 무슨 작전이 있었던가? 마침 대기실 경비를 서던 브라우니에게 상황을 설명 받을 수 있었다.

 

‘……드라큐리나가요!? 아니 위험한 지역도 아니었을텐데 어째서…!?’

 

드라큐리나. 티타니아보다 조금 일찍 제조되었던 바이오로이드. 멸망 전 세계에서 건설 및 노가다 업무도 병행했었다는 소문에 내심 이제 ‘나도 은퇴할 수 있겠구나’ 라는 기대를 했지만 그 정체는 영 쓸데가 없는 칠푼이 바이오로이드였다. 한동안 함대 객식구 취급을 받으며 맘고생하다가 얼마 전 겨우 일할 곳을 잡고 기뻐하던 그녀의 모습이 떠올랐다. 

 

“단순 자원 회수 업무 아니었나요? 그런데 왜 저런 꼴로……”

“그 이건 비밀인데 말입니다. ……사령관님이 실수로 대경장 OS를 빼고 보냈다지 뭡니까. 덕분에 밤새 현장에서 반파상태로 널부러져 있던걸 오늘 아침에야 발견해서 부랴부랴 수복실로 보냈답니다.”

“그…… 그런……”

 

“사령관님도 그 말이야 바른 말이지, 매일 제조에만 자원을 들이부으니 장비 강화할 자원이 없지 말입니다. 그쪽 부서 며칠 전부터 대경장OS 1개 가지고 전 대원이 돌려 쓰더니 결국 이런 사단이 났지 말입니다. 저 근데, 하르페이아씨……안색이 안 좋으신데 괜찮으신지 말입니다?”

 

자신은 지금 무슨 얼굴을 하고 있을까? 브라우니를 뒤로 하고 대기실로 돌아왔다. 알고 있었다. 사거리 감소 OS하나를 레아랑 티타니아랑 에이다가 돌아가며 쓰고 있다는 것도, 몇 차례 장비 보충을 요청했지만 묵묵 부답이었다는 것도, 창고에 강화 안된 OS들이 굴러다니고 있다는 것도.

 

문득 드라큐리나의 얼굴이 떠오른다. 일할 곳이 생겼다고 했을 때 평소와는 다르게 진짜 어린아이처럼 기뻐했었다. 맨날 입으로야 자신은 고귀한 몸이니 그런 일 하지 않아도 된다고 떠들었지만, 다른 대원들이 뒤에서 수근댈 때마다 안보이는 곳에 가서 눈물을 훔치는 것은 이미 부서 내 사람들이라면 다 아는 일이었다. 그랬던 그녀인데…… 단순히 강화 장비 하나 때문에 저런 꼴을 당하다니……

 

 하르페이아는 결심했다. 이대로는 안된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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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뒤, 오르카 호 제조실 앞.

 

“사령관 님은 당장 무분별한 제조를 중단하라!!!”

“중단하라! 중단하라!”

“부서 직원들의 안전 장비 확충하라!”

“확충하라! 확충하라!”

 

자원 회수 부서 전 대원이 머리띠를 매고 자원실 앞에 모였다. 하르페이아의 주도로 모인 대원들은 피켓을 들고 자원실 앞에서 시위를 하기 시작했다.

 

“자원 막 쓰는 사령관 님 바보! 똥개! 멍청이! 말미잘!”

 

안드바리도 옆에서 같이 피켓을 흔들었다. 사령관이 몰래 작성하던 ‘사라키엘 제조 플랜’ 서류가 발각되었기 때문이다. 아니 레나도 벅찬데 사라키엘 까지? 이 사태에 대응해야 할 사령관은 안드바리가 “자원을 낭비하는 자는 참수에 처한다!” 라며 난동을 부린 결과 수복실 신세를 지게 되었고 그래도 분노를 삭히지 못한 안드바리는 수복실 앞에서 시위가 일어났다는 말을 듣자마자 양말발로 달려와 시위에 합류했다.

 

훗날 ‘오르카 호 노동 항쟁’이라 명명된 이 시위는 바이오로이드 들이 사람에게 반기를 든 최초의 사건으로 기록되었으며 결국 사령관은 주 5일 근무제와 추가 OS보급 등의 조치를 취하게 되었다.

그리고 안드바리의 강력한 주장으로 ‘제조 승인 위원회’ 가 설립되어 SS등급 이상 바이오로이드 제작시 위원회의 승인을 받아야만 제조를 시도 할 수 있게 되었다. 

 

사령관이 위원회 승인 없이 몰래 제조를 시도하다 적발되어 ‘아스날 형’ 에 처해진 것은 기록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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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음지에서 사령관들의 그릇된 욕망을 채우기 위해 온몸을 바쳐 노력하는 거지런 요원들에게 이 글을 바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