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두미는 수집가다. 이는 순수히 실용적인 목적으로 유전자 설계 단계에서부터 설정된 특성이다.


전장에 남아있는 것은 단지 시체와 그 무장들 뿐만이 아니다. 도시나 거주지에서 전투가 일어났다면 거주민들이 도망치며 남긴 물건 역시 남아있다. 물론, 대다수의 물건들은 승리한 순간에 약탈당하고, 남는 것은 볼품 없는 것들 뿐이다. 하지만, 그 중에 때론 보물이 숨어있다.


우리는 그런 보물들을 찾아내 진열장에 장식했다. 끊이지 않는 전쟁 덕에 진열장은 빠르게 채워졌지만, 그만큼 우리의 수명 역시 단축되었다. 결국, 제 진열장 하나를 채울 수 있던 자매는 열에 하나조차 되지 못했다. 


그렇게, 자매들이 죽으면 삼안 사는 죽은 자매가 모았던 수집품들을 판매했다. 그로써, 얻는 수익은 회사 규모에 비하면 미미한 것이었으나, 경매라는 사교의 장을 여는데 좋은 핑곗거리가 되주었다.


그토록 우리는 유용했다.


아무튼, 나 역시 열정적인 수집가였고, 희귀한 물품을 찾아 도시를 떠돌아다니는 것 역시 나의 일과 중 하나였다. 


그리고, 그를 찾은지 한 달 정도 지났을 때, 나는 보물 중의 보물을 찾을 수 있었다.


그것은 1990년대에 나온 그리 유명하지 않은 로맨스 영화의 비디오테이프였다. 심지어, 주문제작된 것이 아닌, 당시에 제작되어, 지금까지 보관되어 왔던 것이었다. 


골동품과 유물의 사이에 위치한 물건. 그 물건을 발견하자마자 임시 은신처로 달려간 것은 어찌보면 당연한 일이었으리라.


그렇게 보게 된 영화는 과연 유명하지 않은 이유가 있었다. 도입부만 보았을 뿐인데도 결말이 짐작이 간다. 만약, 수집품을 적어도 한 번은 감상해야 한다는 내 집착이 아니었다면 분명 10분도 보지 않았을 영화였다. 나는 반쯤 졸면서 영화를 봤다.


이변이 일어난 것은 영화가 시작한 지 30분 정도가 흐른 뒤 였다.


그것은 진부한 장면이었다. 남자가 여자에게 사랑을 고백하는, 로맨스 영화의 꽃이라 할 수 있는 장면. 하지만, 이 영화의 조악한 대사들은 그것을 진부하다 못해 지루하게 만들었다. 심지어, 배우의 연기가 뛰어난 것도 아니었다. 


객관적으로 보았을 때, 그 영화는 3류조차도 되지 못하는 쓰레기였다.


하지만, 그 엉성한 장면에 가슴이 뛰기 시작한다.


무의식적으로 내 옆에 세워둔 그를 바라보았다. 앉아서 포드를 올려다보니, 그의 얼굴이 담긴 창이 높아서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그는 그 안에, 내 옆에 있었다.


리모컨을 들어 되감기 버튼을 누른다. 화면 속 시간이 역행하여, 그 장면의 시작으로 돌아간다. 


"가지 마."


두근-


이상한 일이다. 그 음성은 비디오 플레이어에서 흘러나오는 것일텐데, 나의 감각은 그것이 포드 안에서 흘러나온다 말한다. 


"바보 같은 소리 마요. 나는 부정한 여자에요. 제가 당신과 같이 있으면 당신의 명예에 흠이 갈 거라고요."


두근- 두근-


이번에도 같다. 분명, 소리의 근원지는 비디오 플레이어인데, 그 말의 감촉이 목구멍에 남아있다. 그리고, 이 착각이 점점 현실처럼 느껴질 수록...


"...상관 없어."


두근- 두근- 두근-


...심박수가 증가한다. 


그 기이하면서도 강렬한 반응을 곱씹을 시간은 없었다.


"상관 없지 않아요! 당신의 삶을 망칠지도 모르는데 그게 어떻게 상관 없을 수가 있어요?!" 


주인 모를 대사들이 절정으로 치닫는다. 말이 이끄는대로 나는 이미 알고 있는 결말을 향해 휩쓸려갔다.


"왜냐하면, 내가 당신을 사랑하니까."


그 끝맺음과 동시에 시간은 그 의미를 잃었다. 공간마저도 멀어서 없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 순간의 영원에 존재하는 것이라곤, 고동치는 심장과 열기 오른 얼굴 뿐이었다.


정신을 차렸을 때, 이미 영화는 끝나있었다. 나는 멍하니 방금의 일을 반추하다, 식지 않는 얼굴을 두 손으로 감쌌다.


이제야, 이 중독의 이름을 알 것 같다. 그것은 세상에서 가장 많은 방식으로 표현된 이름이며, 그렇기에 그 자체로는 한 없이 상투적인 것이었다. 


그러니까, 머릿속으로도 그 이름을 떠올리진 않을 거다.  


그랬다간, 이 가슴을 간질이는 온기가 색이 바래버릴 것 같으니까.


차가운 새벽빛에도 불구하고, 온기는 좀처럼 사그라들지 않았다.


***


그 날 이후로, 나는 버려진 도서관과 서점을 헤매며 그에 대한 정보를 찾았다. 


이제는 그의 얼굴을 보는 것만으로 만족할 수 없었다. 마치, 마음 속 거름막 하나가 찢어진 듯, 온갖 기이한 욕망들이 그 날 이후부터 느껴졌다. 그 중에서도 가장 큰 갈망은 그에 대해 알고 싶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나는 그 노력을 이내 단념해야만 했다.


뇌파로 보건데, 그는 남성 바이오로이드가 분명했다. 문제는 T-1 고블린이 일으킨 폭동 탓에 남성 바이오로이드의 제작은 엄격히 금지되었다는 점이었다. 게다가, 그는 내 기억 속에 남아있는 T-1 고블린 기종과는 전혀 닮지 않았다. 


즉, 법의 눈을 피해 제작된 전혀 새로운 종류의 남성 바이오로이드라는 것인데... 그에 대한 정보가 그리 쉽게 접근할 수  있을리가.


나는 희망을 빠르게 버렸다.


다음으로 내가 한 일은 포드를 열어보려는 것이었다. 사실, 직접 묻는 것이 가장 빠르니까. 게다가...


아무튼, 슬프게도, 그 시도는 그 전의 것보다 훨씬 허무맹랑한 것이었다.


포드는 지금껏 내가 단 한 번도 본 적 없는 기술로 설계되었을 뿐만 아니라, 특정한 인물에 의해서만 열리게 되어있었다. 등록된 권한자는 단 두명이었는데, 한 명은 바이오로이드이고 한 명은 인간이라는 것 이외에는 아무것도 알아낼 수 없었다.


결국, 나는 포드를 여는 것조차 포기했다. 그리고, 최후의 수단을 택했다.


나는 그때부터 그에게 말을 걸기 시작했다. 정확히는 포드에 녹음기를 달고, 나에 대한 이야기를 녹음하기 시작했다.


만약, 내가 그를 알 수 없다면 그가 나를 알아주었으면 했다. 


앞뒤가 안 맞는 말이라는 건 알겠지만, 그가 내 삶에 들어온 이후, 나는 단 한번도 이성적이었던 적이 없었다.


나는 가로등만이 살아있는 도시의 공원에서, 


난파된 배들 위로 별빛 쏟아지는 바닷가에서,


길 잃은 차들로 메워진 도로가 내려다보이는 언덕에서,


나의 이야기를 담아 시간에 흘려보냈다. 언젠가, 그가 깨어난다면 그것을 펼쳐볼 수 있도록.


그렇게 이야기를 할 때는 좋았다. 드넓은 세상이 서늘하게 비어있는 것이 아닌, 따스하면서도 잔잔한 것으로 메워진 듯 했다. 그 세상의 단열재는 열린 입으로 스며들어와 기쁨이 되어주었다.


하지만, 가슴에 남은 말이 떨어져, 무서운 침묵이 세상에 내려앉는 순간은 오고야 만다. 그 순간, 아무리 많은 말을 쏟아부어도, 대답하지 않는 그는 무정물인 것만 같다. 


그렇게, 기쁨은 너무도 쉽게 같은 크기의 고통이 되었다.


***


폭우가 쏟아지는, 도시의 폐허에선 쓸쓸한 소리가 난다.


비 바람이 스칠때마다 속 빈 건물들은 기이한 소리로 울었고, 세차게 내리는 빗방울들은 아프게 부서졌다. 거센 빗발에 흐려지는 도시는 울음을 삼키는 듯 보였다.


우리는 항상 비를 좋아했다. 그것은 우리가 공유하는 특성들 중 유일하게 의도되지 않은 특성이었다.


자매들에게서 이어받은 기억 속의 우리는 언제나 병든 사과였다. 서슴없이 죽은 전우이자 동족을 파헤치는 우리의 모습은 바이오로이드뿐만 아니라 인간들의 혐오 역시 불러일으켰다. 


우리의 숙소는 다른 병영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서 설치되었고, 대개 그곳은 전장에서 가장 가까운 곳이었다. 이와 같은 차별이 숙소 위치 뿐만 아니라 모든 일에 적용되었음은 굳이 언급할 필요도 없는 내용이리라.


그렇게 우리의 가슴에는 주홍 글씨가 달려있었고, 그 주홍 글씨는 거의 모든 경우, 몸에 밴 시취로 상징되었다. 


만약, 향기가 영혼이라면 우리의 것은 어쩔 도리 없을만큼 부패한 것이리라.


그렇기에, 우리는 비를 사랑할 수 밖에 없었다.


비가 오면 온 세상이 비릿한 물 냄새로 메워진다. 악취도, 향기도, 모두 청명한 빗소리에 씻겨내려갔다. 비 내리는 날에 우리와 그들의 경계는 무너졌다. 


그 것은 구원의 한 없이 조악한, 그러나 우리가 경험할 수 있는 유일한 모사품이었다.

 

"~"


빗방울 사이로 한 멜로디가 흘러들어온다. 


반쯤은 홀린 듯, 반쯤은 호기심에 포드를 끌고 멜로디의 근원지로 향했다. 끝나가는 겨울을 한껏 품은 빗방울이 차가웠지만, 멀게만 느껴졌다. 가까워질 수록 선명해지는 그 멜로디가, 냉기보다 빠르게 내 몸에 스몄다.


"Into each life some rain must fall…”


그렇게 도달한 곳은 아직 영업 중인듯, 따스한 빛이 흘러나오는 책방이었다. 그러나, 생체신호는 느껴지지 않는다. 그저, 멜로디만이 그 빈자리를 채우듯 경쾌하게 춤을 추었다.


결국, 여기 있는 것은 나와 그 공허한 멜로디 뿐이었다.


아니다. 한 명 더 있다.


고개를 돌려 포드를 내려다본다. 그 순간, 쓸쓸한 감정은 모두 씻겨내리고, 야릇한 감정이 피어올랐다.


냉기에 사고능력이 저하된 걸까. 아니면, 빗소리 스민 음악에 취한걸까. 야릇한 감정에 몸을 내맡긴다.


근처에 있는 AGS의 팔다리를 뜯어, 포드에 장착했다. 그리고, 내 뇌파와 연결시켜 생각만으로 움직일 수 있도록 했다. 


그 짧은 작업이 끝나자, 포드는, 아니 그는 마치 조잡한 램파트와 같은 모습이 되었다. 조용히 정신을 집중해 팔다리에 명령을, 혹은 그에게 말을 건다.


위잉-


비틀거리는 것도 잠시, 이내 몸을 일으킨 그가 나를 내려다본다. 그리고는, 우아하게 허리를 굽히며 내게 손을 내밀었다.


이 행위가 조잡한 인형극에 지나지 않다는 것을 안다. 그는 내가 가닿을 수 없는 곳에 있다. 


하지만, 순진한 심장은 다시 뛰기 시작했고, 나는 그의 손을 조심스레 붙잡았다. 


겨울과 작별하며 하늘이 눈물 흘리던 날, 그 쓸쓸한 슬픔 속에서 우리는 춤을 추었다.


"Into each life some rain must fall. But too much is falling in mine…”


이상한 일이다. 옷이 젖으면 몸이 무거워지는 것이 맞을 텐데. 오히려 몸에 부딪히는 빗방울마다 몸이 가벼워진다.


"Into each heart some tears must fall. But,some day the sun will shine…”


거세던 빗줄기가 이제는 간지럽게만 느껴진다. 터져나오는 웃음을 참지 않으며 그의 리드에 따라 몸을 빙그르르 돌렸다.


"Some folks can lose the blues in their hearts. But when I think of you another shower starts…”


드디어 사고묘듈이 망가져버린 게 분명하다. 내 허리를 감싼 그의 손에서 온기가 느껴진다. 그리고...


"Into each life some rain must fall. But, too much is falling in mine…”


음악이 끝남과 동시에 그가 내 몸을 끌어당겼다. 그의 얼굴이 내 코 앞으로 다가왔다. 


눈꺼풀에 맺히는 물방울에 세상이 문득 흐려진다. 그 흐려진 세상 속, 그는 분명 눈을 뜬 채,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리고, 빗소리도 버려진 도시도 모두 사라져버렸다.


아랫배에서 불길이 치솟았다. 열기에 가슴이 답답해지며 숨이 가빠진다.


단 한 번도 겪어본적 없는 낯선 느낌, 그러나 본능은 그 해소법을 이미 알고 있었다.


그의 손을 붙잡고 바로 옆에 있는 가게에 들어갔다. 바닥에 그를 거칠게 눕히고, 젖은 옷을 벗어던진다. 그리고, 그의 위에 올라탔다.


"흐읏-!"


그의 차가운 피부에 흠칫 놀라, 몸을 순간적으로 뗐다. 그러나, 금방 이를 악물고 다시 하반신을 내렸다. 그리고, 거세게 타오르는 불길에 몸을 맡겼다. 그의 몸에 손을 올리고, 하반신을 그의 몸에 문지른다.


스파크가 머릿 속에서 튀기는 듯한 쾌감. 생소하나 동시에 중독적이다. 쾌감이 커짐에 따라 몸이 달아올랐다. 


하지만, 그의 몸은 여전히 차갑기만 했다.


굴하지 않고, 아예 가슴을 맞대며 손으로 그의 몸을 더듬었다. 그의 얼굴이 비친 창을 매만지고, 입 맞춘다. 


그 뿐만 아니라, 그의 팔을 움직여 내 몸을 애무하게 했다. 내 가슴을 움켜쥐고, 얼굴을 쓰다듬고, 내 등을 매만지게 했다. 힘 조절이 안돼, 고통스럽기만 한 손길이었으나, 멈추지 않았다.


절정은 찾아오고야 말았다. 


머리를 새하얗게 하는 쾌감이 지나고, 불길이 환상이었다는 것 마냥 잦아든다. 


그리고, 비참함만이 남았다. 


그를, 아니, 포드를 내려다본다. 


혹사당한 탓에, 기괴하게 뒤틀린 팔 다리가 보였다. 머릿속으로 명령을 내려보아도, 팔다리는 원래 살아있는 것이 아니었다는 듯, 움직이지 않았다. 


쓸쓸한 바람이 불어와 헐벗은 몸에 닿았다. 바람의 온도는 그의 것과 동일했다.


그렇게, 환상이 무너져 내렸다.


진열대에 놓여 있던 망치를 집어, 높게 치켜들었다. 그러나, 망치를 지켜든 팔은 부들거리며 그 무게를 견디고 있을 뿐, 떨어지지 않았다. 


망치를 내던지고 녹아내리는 시야를 두손으로 덮었다.


모두 거짓말이었다. 나 혼자 뿐이었다. 지금껏 30년 동안 그랬듯이, 이 광활한 세상에 나는 홀로 남겨져 있었다. 


치미는 울음을 견디지 못하고 목 놓아 울었다. 그러나, 나의 울음은 세상을 으스러뜨릴 듯이 내리는 빗소리에 묻혀 들리지 않았다.


***


제목을 바꿨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