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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심을 먹을 때 까지는 기분이 정말 좋았다.
내 혼신의 힘을 다한 도시락이다. 완벽하게 고려된 영양 밸런스.
미호도 맛있게 먹어 주었고, 나도 배부르게 먹었다.
일부러 제법 넉넉하게 싸 왔으니까 말이지.
점심을 먹은 직후 미호와 풍선을 들고 돌아다닐 때에는 기분 좋은 포만감이었다.
그런데 그것이 이제 와서는 기분 나쁜 복통으로 변해 있었다.
기분이 안 좋은 상태에서 억지로 놀이기구를 타니까 상태가 점점 더 안 좋아지는 것 같다.
그리고 저 시선. 이제 와서는 거의 확신하고 있다.
누가 자꾸 우리를 훔쳐보고 있는 건지는 잘 모르겠다. 하지만 좋은 의도는 아닐 거라고 생각한다.
어느새 내 의식은 미호에게 로맨틱한 고백을 하기 위한 설계에서, 저 기분 나쁜 시선을 잡아낼 방법의 궁리로 흘러가 있었다.
어떻게 해야 하지. 막연하게 기분은 나쁘지만, 누가 우리를 훔쳐보고 있는 건지는 잘 모르겠다.
될 수 있으면 저녁까지는 해결을 보고 싶은데...
최대한 빨리 해결하고 미호에게 멋지게 고백하고 싶다.
이렇게 할까.
"읍..."
"철남아, 왜 그래?"
"저, 미안해 미호야. 나 사실 아까부터 영 속이 좋지를 않아서..."
"아... 역시 나 때문에 억지로 같이 타 준 거야?"
"아니, 그건 아니고... 조금 점심을 급하게 먹었던 건지 좀 체끼가 있네"
"진짜 미안한데, 잠시만 약국에서 소화제라도 좀 사 와 줄수 있을까?"
"너 혼자 보내는 건 미안한데... 나 지금 여기서 못 움직일 것 같아서"
"알았어, 나 금방 갔다 올 테니까 너 여기서 가만히 기다려야 돼, 알았지?"
미안해, 미호야. 난 항상 너에게 거짓말만 할 뿐이네.
상황은 적당히 괜찮다.
약국은 놀이공원에서 현 위치와 거의 정 반대에 있다.
미호가 거기까지 갓다가 오기에는 20분 정도는 걸릴 거다.
스토커 새끼가 미호를 따라갈 지도 모르지만, 이 시간의 놀이공원은 그야말로 인간 바다다.
미호에게 해꼬지를 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게다가 어떤 자식인지는 몰라도, 저렇게나 끈덕지게 열정적인 시선을 향하면 말이지.
대충 어느 쪽에서 오는 건지는 알 수가 있거든.
나는 미호가 멀어지는 것을 확인하고 나서, 신경 쓰이던 방향을 두리번거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럴 듯한 사람은 역시 없었다.
저쪽 화장실 앞에도. 저기 청룡열차 줄에도. 저기 핫도그 차량 앞에도 말이다.
반짝
"...어?"
그 때, 저 쪽 건물의 창문 하나에서 반짝이는 빛을 보았다.
저거다. 나는 직감했다.
저건 카메라 렌즈의 반사광이다.
나는 미친 듯이 뛰기 시작했다.
"....."
내가 가능한 최고로 빠른 속도로 달려왔지만, 건물 주위에 수상한 행색을 한 녀석이나,
황급히 도망치려는 녀석, 카메라를 가진 녀석은 없었다.
어쩔 수 없이 나는 건물 안으로 향했다. 아까 그게 아마 4층이었을 거다.
지금 움직이는 엘레베이터가 없는 것을 확인한 후, 나는 계단으로 올라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4층에 도착했다.
그 곳에는 아무도 없었다.
이 건물은 4층이 끝이고, 옥상은 폐쇄되어 있다.
올라오면서 한 층 한 층 확인을 다 했기에, 건물 안에 숨을 곳은 없다.
이 새끼, 대체 어느 사이에 도망친 거냐.
빌어먹을.
열이 너무나 받아서 바닥에 주저앉아 주먹을 들고 바닥을 내려치려고 한 순간.
"...어?"
나는, 그때의 단추 조각, 그 나머지 부분이 떨어져 있는 것을 확인했다.
그 다음부터는 도저히 기분 좋은 척을 하기가 힘들었다.
나는 병신마냥 기껏 함께 놀러온 미호가 내 걱정이나 하게 만들었다.
다행히도 미리 해 둔 몸이 아프다는 핑계가 먹혀서 크게 부자연스러운 것은 아니었지만,
미호의 걱정스러운 표정을 보자 자기혐오가 치솟았다.
일이 이렇게 될 줄이야. 정말이지 생각도 못했다.
빌어먹을, 3년 동안 한 번도 나타나지 않았는데...
왜 이제서야 다시 나타난 거냐.
지금까지 나타나지 않았던 것은, 내가 놓치고 있었던 것이 아니라 정말로 없었던 것이라고 확신할 수 있다.
단 하루도 거르지 않은 순찰. 아버지에게까지 이 모든 불미스러운 일을 알리고 얻은 협력.
정말로 나는 자신이 있었다. 저 새끼는 진짜로, 하필 오늘 다시 튀어나온 것이다.
망할 새끼...
하지만 저 변태 새끼에 대한 분노보다도,
나는 그 누구보다도 내 자신에 대해서 화가 났다.
이철남, 이 병신새끼. 대체 뭐가 ‘괜찮을 거다‘냐.
3년 동안 없었으니까?
순찰을 열심히 했으니까?
이제 니가 남친이 돼서 지켜주면 되니까?
멍청한 새끼. 완전히 자기도취에 취해서, 멍청한 헛소리밖에 지껄이지 않았다.
미호만큼은 지켜주겠다, 하던 그 결의도 이 정도밖에 되지 않는 것이었나.
오늘은 미호에게 고백하려고 했는데, 도저히 할 수가 없을 것 같다.
미호의 신변이 위험하다.
나는, 내 이기적인 생각으로 미호를 더욱 큰 위험에 처하게 할 수는 없었다.
3년을 뛰어넘어 다시 스토킹을 시작한 놈이다. 나에 대해서도 알 거다.
나에 대해서 저 새끼가 어떤 감정을 가지고 있을 지, 보지 않아도 눈에 선했다.
눈에 보이는 위험을 알아차린 이상, 미호를 더 위험하게 할 수는 없었다.
미호야, 항상 너에게는 미안하다는 말 밖에 할 수가 없네.
너에게 정말 고백하고 싶었다.
하지만, 상황이 바뀌었어. 해결해야만 할 문제가 있어.
미안해. 하지만 잠시만 더 너를 멀리할게.
"....."
"철남아, 오늘... 재미있었어."
미호야. 그런 표정 하지 마. 내 마음이 너무 아파.
하지만 지금부터 나는, 미호를 더욱 몰아넣는 말을 해야만 하는데.
눈물이 날 것만 같다.
하지만 그럴 수는 없다. 완벽하게 연기해야만 한다.
나는 크게 숨을 들이쉬었다.
"...철남아...?"
"....미호야."
"...한동안 나랑 떨어져서 지내야겠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