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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에 온 나를 맞이해 준 아버지는 크게 놀랐다.

 

겨울 방학 내내 그렇게 열심히 일하던 아들이 들어오자마자 일을 때려치우겠다고 선언했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사실 고등학교 입학을 앞둔 나에게 아버지는 넌지시 일을 그만두라는 뜻을 내비치고는 했기에, 이야기는 빠르게 끝이 났다.

 

그리고 나는 아버지의 대답을 들을 것도 없이 방망이를 챙겨서 뛰쳐나갔다.

 

이 개새끼의 머리통을 깨트려버려야만 직성이 풀릴 것만 같았다.

 

하지만 이 늦은 밤에 인기척도 없는 달동네에서 사람을 발견할 수 있을 리는 없고, 허탕을 치고 말았다.

 

미호네 집에서 약간 떨어진 길 모퉁이에 자리를 잡고 앉아서 생각했다.

 

일이 이렇게 되어버린 마당에, 미호에게 모든 것을 털어놓아야 한다는 생각도 당연히 있었다.

 

하지만 나는 그렇게 하지 못했다.

 

먼저, 경찰에 대한 불신.

 

내가 돈이 없어서 그런지는 잘 모르겠지만 내가 살면서 본 경찰의 모습은 정의와는 거리가 멀었고, 

 

내가 살면서 본 경찰들의 모습이란 그저 사람이 가진 것으로 인간의 가치를 판단하는 속물들,

 

검찰도 아닌 민간인이 명백한 증거물을 가지고 와야만 움직이는 시늉을 하는 쓰레기들이었다.

 

나는 그런 빌어먹을 새끼들에게 미호의 안전을 맡겨놓고 하하호호 살아갈 수 있을 만큼 신경줄이 굵지는 못했다.

 

아니, 그 이전에 애초에 그 단추 쪼가리를 들고서 경찰에 가 본 적이라면 얼마든 있었지만 그 때마다 항상 장난 취급이나 당했었던 것이다. 이제 와서 뭐가 달라질 것 같지는 않았다.

 

그리고 나서 든 생각은, 차라리 미호네 부모님이라도 아셔서 미호를 어떻게든 해 주어야 한다는 생각이었다.

 

하지만 그렇게는 할 수가 없었다.

 

나는 미호네 부모님께서 얼마나 바쁘신 분들인지, 이제 와서는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미호는 거의 집에서 혼자 있다. 미호네 부모님께서 미호에게 무관심하기 때문 따위가 아니다.

 

그냥 순수하게 그만큼 바쁘신 거다. 물론 미호도 부모님의 피치 못할 사정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저 정도로 혼자 있는 아이라면... 나는 감히 생각하건대, 옛날 미호의 그 조용하던 모습은 그런 가정사정에서 온 거라고 예상하고 있었다.

 

그런 부모님에게 미호의 현재 상태를 말해드릴 수는 없었다. 그들은 잠 잘 시간조차 깎아내야만 시간을 낼 수 있는 사람들이다.

 

나는 대안으로, 학교 이외의 시간은 무조건 내가 미호 몰래 따라붙기로 했다. 낮이라도, 밤이라도. 잠은 학교에서 자면 된다.

 

하지만 내가 인간인 이상 모든 시간에 미호에게 따라붙을 수는 없지. 나는 아버지에게만은 모든 사실을 전하기로 했다.

 

그리고 미호에게는 반드시, 밖에 다닐 때에는 친구와 다니라고 말했다. 무슨 일이 있어도, 절대로 혼자 있어서는 안 된다고 몇 번이나 손을 잡고 말했다.

 

누가 봐도 명백하게 부자연스러운 나의 말에 미호는 도대체 무슨 일이냐고 물어봤지만, 나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하지만 미호는 이해가 빠른 아이다. 그리고 내가 한 말은 반드시 지켜 줄 거다. 다행히도, 고등학교 친구 중에는 미호네 집 바로 옆에 사는 아이도 잇다.

 

아버지에게 또다시 신세를 지게 생긴 것은 죄스러운 일이었지만, 그런 것을 따질 수는 없었다. 여유가 없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나는 너무나도 두려워서, 미호에게 말을 할 수가 없었다.

 

내가 미호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를 말한다면, 나는 여태껏 내가 한 짓을 설명할 수 밖에 없다.

 

하지만, 미호의 입장에서 냉정하게 생각해 봤을 때, 웬 미친놈이 "널 지키기 위해서야" 하며, 몇 년이나 자기 몰래 그런 짓을 했다면. 그것도 그러는 동안에 음흉하게도 나한테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있었다면.

 

미호가 나를 무엇이라고 생각할지, 나는 너무 무서웠다.

 

‘기분 나빠‘

 

상상하기만 해도 토할 것만 같았다. 눈물이 날 것 같았다.

 

그래서 나는, 미호에게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

 

아침 여섯 시.

 

나는 한국의 겨울을 얕보고 있었나 보다. 두껍게 입고 나왔으니 어떻게든 될 거라고 생각했는데.

 

근 여덣 시간 가까이 혹독한 추위와의 사투였다.

 

그래도 나는 그 추위에 약간 고마움을 느꼈다. 덕분에 잠기운이 달아나버린 것이다.

 

죽치고 앉아있기는 했지만 스토커는 나타나지 않았다.

 

기억을 돌이켜보면, 미호는 오늘 아마도 계속해서 집에 있을 것이다. 오랜만에 부모님과 하루를 보낸다고 했으니까.

 

미호네 집의 아침은 빠르다. 슬슬 다들 일어났을 것이다.

 

그렇다면 일단 지금은 내가 잠시 사라져 있더라도 괜찮겠지.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서 집으로 향했다.

 

 

 

 

 

 

 

그리고 집으로 돌아온 나를 반겨준 것은,

 

우리 아버지의 힘찬 따귀 세례였다.

 

미안한 마음에 나는 아버지에게 아무 반항 않고 가만히 서서 맞았다.

 

태어나서 처음 아버지에게 맞았다. 아버지는 내가 그 무슨 잘못을 해도 매를 들지 않았는데.

 

나를 걱정했다는 아버지의 말을 듣고, 나는 아버지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 말하는 것이 망설여졌지만,

 

그래도 결국 나에게는 망설일 여유 따위 없었다.

 

나는 아버지에게 모든 것을 말했고, 아버지는 의외의 이야기를 했다.

 

 

 

 

 

 

사실 이제 와서 말하자면, 우리 집이 가난했던 가장 큰 이유는 빚이었다.

 

현장에서 일하던 중에 사고가 있었다고 한다. 아버지는 전혀 다치지 않았지만, 일하던 인부 중 2명이 크게 다쳤다.

 

아버지는 많은 돈과, 도의적인 책무를 지불해야 했다.

 

그러지 않아도 찢어지게 가난하던 엄마랑 결혼해서 돈만 벌면 물 쓰듯이 나갈 데가 많았는데, 그 이후 완전히 무너지고 말았다.

 

하지만 지금 시점에서는 거의 어떻게든 되었다. 나도 이제 일하러 나가면 일인분은 하게 되고,

 

최근에 우리 동네 옆 동네에서 재개발이 진행되어서, 근처 상가에서 들어오는 의뢰가 최근 몇 년 엄청나게 많았다.

 

아버지는 유례없이 바빴고, 일하면서도 이번에 바쁜 게 끝나고 나면 한동안은 쉬고 싶다고 노래를 부르곤 했다.

 

덕분에 우리 집의 빚은 완제됐다. 나나 아버지나, 돈 따위 정말로 안 쓰는 지독한 짠돌이여서인지 나갈 돈도 없었다.

 

말하자면 말인데, 운이 좋게도 일이 척척 아귀가 맞아떨어진 거다.

 

아버지는 그러잖아도 한동안 일을 쉬기로 했었던 참이었다고 했다.

 

내가 모든 일의 전말을 말해주자 아버지는,

 

"...니가 그런다고 미호가 좋아할 것 같냐?" 하고 한마디 하고서 한숨을 쉬더니,

 

"그래도 아들 이기는 아버지가 없다더니... 그래, 어차피 한동안은 백순데 심심할 일은 없구만"

 

이라고 운을 떼었던 것이다.

 

"니가 그런 어처구니없는 결정을 했으면, 그 선택에 책임을 무조건 져야 하는 건 알제? 그 새끼가 언제 나타날 지도 모르는 거고, 최소한 24시간 내도록 두고 볼 수 있어야 말이 되는 거다"

 

"....알아"

 

"혼자서는 그런 건 불가능하니까, 두 명이서 해야지"

 

"...뭐?"

 

"뭐가 뭐? 냐. 백수 됐다고 했잖아 방금. 니랑, 나랑. 둘이서 돌아가면서 하자"

 

"...그래도 어떻게 내가 아버지한테"

 

입에 발린 말을 하면서도 내심 웃어버린다. 사실 내가 부탁하려고 했었는데 말이야.

 

"어허. 됐고, 이제부터는 진짜로 24시간 풀로 돌아다녀야 된다, 알겠나?"

 

"다행이도 방학 얼마 안 남았으니까 24시간 내도록 동네 돌아야 하는 것도 얼마 안 남은 거지"

 

"니 입학하고 나면 잠은 무조건 학교에서 자라. 학교에서 그래도 12시간은 있으니까"

 

"나도 뭐, 언제까지나 봐 줄 수는 없고, 니 개학할 때 쯤 되면 다시 일 시작해야 되니까“

 

“될 수 있으면 최대한 빨리 금마 잡아내야지”

 

"니도 뭐, 이제 미호 아주 피하려고 하는 생각은 없잖아? 빨리 이거 해결하고 잘 해 봐야지"

 

나는, 아버지의 그 말에 부끄럽게도 대성통곡을 하고야 말았다.

 

너무 고마웠다.

 

 

 

 

 

 

그리고, 추위에 떨며 밤을 새는 겨울이 지나고, 봄이 왔다.

 

미호와 나는 스마고등학교에 입학했다.

 

언젠가의 꽃이 피었던 등교길을 떠올렸지만, 나는 감히 미호의 옆에서 걷지는 못하고.

 

그저 미호가 친구들과 삼삼오오 모여서 등교하는 모습을 확인하고서는 미호에게 감사할 뿐이었다.

 

고마워, 미호야. 결국 내 말을 들어줬구나.

 

미안해, 미호야. 이 모든 건 내 고집이야. 내 에고로 너에게 또 다시 상처를 주고 말았어.

 

빨리 모든 것을 해결하고 너에게 돌아갈게. 조금만 기다려줘.

 

나는 결의를 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