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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도 또 같은 반이네. 고등학교에 와도 똑같다 야."

 

미호와 만나고 10년이 지났다. 그동안 해가 변할 때마다 변함이 없던 저 인사말.

 

하지만 이번에는 저 말에 살갑게 대답해줄 수가 없었다.

 

"어, 맞네."

 

대충 대답하고 교실에 들어섰다. 뒤통수로 미호의 시선이 느껴져서 속이 쓰리다.

 

"왜 쳐다보는데."

 

간신히 퉁명스러운 척 미호에게 쏘아붙였다.

 

미호가 고개를 젓고는 교실에 들어선다. 아직 이른 아침이라 교실에 사람은 둘 뿐이다.

 

미호가 내 쪽을 바라보고 있는 것을 느꼈다. 부담스러운 침묵을 어떻게든 해 주길 바라는 듯한 눈빛을 하고 있다.

 

나는, 그 표정이 싫었다.

 

저 표정을 한 미호와 마주치면 스스로를 쥐어 패고 싶은 충동이 명치에서 끓어오른다.

 

누구보다도 행복하게 해 주고 싶은 사람의, 울 것만 같은 저 눈빛.

 

저 눈빛을 계속 봐 버리면, 나도 모르게 달려가 미호의 두 손을 잡고 빌며 용서를 구할 것만 같아서.

 

나는 책상에 엎드려서 두 팔로 얼굴을 감싸 안았다.

 

한 숨 자고 나면 조용하던 교실도 어수선해 질 것이다.

 

미호는 친구가 많다. 계속 내 등짝이나 보고 있을 순 없다.

 

그럼 나도 일어나서 애들 보고, 그러면 된다.

 

 

 

 

 

누가 등을 찔러서 일어낫다.

 

"1년 만에 같은 반 됐는데 잠이나 처자고, 야 너무한 거 아니냐?"

 

"아... 너무 일찍 왔더니 졸려서 좀 잤지. 쌤 아직 안 왔냐?"

 

"시간 됐는데 곧 올걸? 그 전에 자리대로 앉아야 될 거 같은데, 저거보고."

 

그 말에 앞을 보면 칠판에 a4용지 두 장이 인쇄되어 붙어 있다.

 

출석 번호표 한 장, 우리 반 좌석표에 출석 번호를 써놓은 게 한 장이다.

 

"저거대로 앉으면 되나?"

 

"어. 니 지금 앉은 게 내 자리다. 비켜라. 저기 니 자리로 가라 빨리."

 

성규한테 자리를 비켜주고 손가락으로 가리키는 방향을 봤다. 옆 자리에는 미호가 앉아 있었다.

 

이런 망할.

 

너무나도 기쁘면서도, 동시에 관자놀이가 쑤셔온다.

 

"....진짜 저기 맞나?"

 

"아니 뭐, 9년 내내 옆자리에 앉다가 또 똑같은 짝꿍이랑 앉는 기분은 잘 모르겟는데, 어쨋든 저기 맞다. 빨리 가라, 쌤 온다."

 

내키지 않는 발걸음을 옮겨서 미호 옆 자리에 앉는다. 미호가 생긋 웃엇다.

 

 

 

 

 

 

 

 

"신기하다 진짜로."

 

"그러게. 신기하네 진짜."

 

"....."

 

미호가, 눈빛으로 내게 묻는다.

 

대체 왜 나를 멀리하는 거야? 그날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대체?

 

가슴이 아프다. 하지만 대답해 줄 수는 없다.

 

지금 나는 미호와 사이좋은 모습을 보여줄 수는 없다.

 

아니, 오히려 미호와 나의 사이가 요즘 급격하게 나빠졌다는 소문이 돌아야 한다.

 

미호야, 네가 위험해. 웬 미친 새끼가 튀어나왔어.

 

...나한테 말도 걸어주지 않았으면 좋겠어, 한 동안만.

 

무슨 일이 있어도 스토커 자식을 자극할 수는 없다.

 

스토커가 나와 미호 사이를 오해하고, 적극적으로 미호에게 해를 끼치는 행동에 들어가지 않는 동안에,

 

이 따위 촌극은 죄다 정리하고 너에게 돌아가서 모든 걸 털어놓을게.

 

그러니 미호야, 나를 그런 눈빛으로 쳐다보지 말아 줘.

 

내 다짐이 물거품같이 녹아서 사라져 버릴 것만 같잖아.

 

"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 쌤!""""

 

미호가 뭔가 더 얘기하려던 차에 선생님이 들어와서 아침 조례를 시작했다. 난 고개를 돌려서 칠판을 바라봤다.

 

 

 

 

 

 

 

"차렷! 선생님께 경례!"

 

학교가 끝나고 성규랑 놀러 가기로 했다. 원래 같으면 당장 집으로 달려가서 동네를 돌아봐야 할 일이지만,

 

듣자 하니 미호도 오늘은 학교를 마치자마자 제 친구들과 어딘가 놀러 가는 모양이고,

 

나로서도 너무 여기에만 매달려서 친구들 부르는 걸 계속 무시하기만 하면 수상쩍게 생각될 것이다.

 

지금 이 상황은 누구에게도 들키고 싶지가 않았다. 소문이라도 나 버리면 정말이지 곤란하다.

 

서로 집에 들러서 가방을 두고 만나기로 했기 때문에 집에는 미호랑 같이 가게 됐다.

 

'아니, 금방 갔다 나올 건데 같이 가면 되잖아.'

 

'미안 ㅋㅋ 나 잠깐 어디 좀 들렀다가 집 가야되서... 아 김미호! 이철남 좀 데리고가라 야.'

 

성규는 참 눈치가 없다. 그 덕에 나는 미호랑 나란히 집에 가는 신세가 되고 말았다.

 

"니 친구들은? 같이 집에 안 가나?"

 

"애들이랑은 조금 있다 볼 거고, 일단 집에 가서 가방 좀 던져놓게."

 

나랑 똑같네. 라고 하려다 삼켰다.

 

미호랑 나는 똑같은 부분이 하나도 없다.

 

미호는 언제라도 나만 보면 앞뒤 잴 것도 없이 달려와 준다. 내게 거짓말 따위는 생각한 적도 없겠지.

 

하지만 나는 미호의 앞에만 서면 이것저것 생각만 많고, 항상 미호에게 몹쓸 짓만 하는 거짓말쟁이다.

 

나는, 내가 밉다. 내 부족한 생각으로 항상 상황을 꼬이게 만들고 만다.

 

너의 우는 얼굴 따위 보고 싶지 않은데. 네가 우는 건 항상 나 때문이었지.

 

미호는 이런 나에게도 항상 웃어준다. 하지만 나는 너에게 해 준 것 따위 아무것도 없어.

 

그런 생각을 할 때마다 나는 작아진다.

 

그래서 나는 미호한테 웃어줄 수 없다.

 

미호에게, 허튼 소리나 지껄여 줄 수가 없다.

 

그러니까 나는 행동으로 보여 줘야지.

 

말재주가 없어 듣기 좋은 말 따위는 해줄 수 없어도, 너를 생각하는 마음만은 증명하고 싶다.

 

 

 

나는, 미호한테 줄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

 

하지만 미호야, 나는... 나는 너를 위해서라면 그 어떤 짓도 다 할 수 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