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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병상에서 일어난 것은 두 달이 지난 후였다.

 

듣자 하니, 그 새끼가 의식을 잃고 쓰러진 나를 방망이로 두들겨 팬 모양이었다.

 

의식을 찾고 날 찾아온 의사 선생님의 말씀으로는, 다행히도 신경계의 손상은 없어서 후유증은 없겠지만,

 

갈비뼈 쪽의 뼈가 약간 변형된 부분이 있고,

 

두 달이나 누워 있었으니 온 몸의 근육이 빠져 있을 거라고 이야기했다.

 

그리고 선생님께서는 이렇게 튼튼한 몸을 물려주신 부모님께 감사하라고 전해주셨다.

 

확실히 온 몸에 힘이 부쩍 떨어진 것이 느껴졌다.

 

하지만 지금 그런 건 아무래도 좋았다.

 

나는 미호를 만나고 싶었다.

 

미호에게 해야만 할 말들이 너무나도 많았다.

 

지금까지 무슨 일이 있었는지.

 

내가 너한테 도대체 왜 그런 짓을 했는지.

 

너무나도 미안하다고.

 

그리고, 용서해 달라는 이야기를.

 

저녁이 되어 찾아온 아버지에게서 내 휴대전화를 받을 수 있었다.

 

미호가 바쁠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기에, 나는 전화 대신 카톡으로 미호에게 연락했다.

 

"미호야, 나 일어났다"

 

"미호야, 미안하다. 걱정 많이 했냐?"

 

"근데 이제 완전 다 나았다, 걱정 한개도 할 필요 없다“

 

“무슨 일이 있었던 건지는 다 들었나?”

 

"할 말이 있으니까, 얼굴 한 번 보자"

 

"그래"

 

역시 무슨 일이 있었던지 다 들었겠지. 미호의 답이 조금 날카롭다.

 

미호를 다시 만날 생각을 하니, 마음은 한없이 무겁기만 했다.

 

"아, 미호야! 여기다"

 

"아, 이철남"

 

역시 내가 생각했던 대로, 이 녀석 표정이 영 좋지가 않다.

 

미호는 그 동안에 많이 힘이 들었었던 건지,

 

내 이야기에도 대부분 "어" "그래" 하고, 단답으로만 답했다.

 

나는 마치 망쳐놓은 시험지를 들고 집으로 돌아가는 어린 아이처럼, 그저 불안한 기분이었다.

 

내가 무슨 짓을 해 왔었던 건지, 다 들었을 거 아냐, 미호야.

 

차라리 빨리 화를 내 주라.

 

그게 더 편할 것 같았다.

 

하지만 나는 해야만 할 말들이 많았다.


그저 미호의 화만 받아주고 말면 그만인 것이 아니었다.


그래서 나는 눈치가 없는 마냥, 일부러 더 쾌활한 시늉을 했다.

 

미호의 표정이 점점 어두워지는 것을 보면서 마음이 아팠다.


억지로 웃도록 얼굴을 집어당기는 밑에서, 혓바닥만 바싹 말라서는 아무런 말도 꺼내지 못하고 있었다.

 

그리고.

 

"이철남. 잠깐 밖에 나가서 이야기하자"

 

하고, 미호가 나를 불러냈다.

 

 

 

 

 

 

 

 

 

"무슨 일인데, 그냥 따듯한 데서 이야기 안 하고"

 

"이철남"

 

"미호야, 너 아까부터 자꾸 왜 이래? 너 오늘 좀 이상해, 진짜"

 

"나, 이사 가"

 

"...뭐?"

 

"아빠가 말이야, 이런 일이 있었으니까, 다른 동네로 이사가서 새로 시작하자고 하셨어"

 

"나 말이야, 이 동네가 싫어. 여기 돌아다니기만 하면, 그 역겨운 새끼 면상이 생각나서 토하고 싶거든"

 

".....그리고 너도, 이철남"

 

"너 말야, 무슨 애새끼야? 너도 스토커랑 똑같애, 이 변태새끼야"

 

...그래. 그렇구나.

 

드디어 올 것이 왔구나.

 

"뭐, 그런 식으로 몇년동안 몰래 쫓아다니면 내가 무슨, 너무 고마워 철남아! 이럴 줄이라도 알았어?"

 

그렇겠지.

 

"진짜, 너 이딴 새끼인 줄 미리 알았어야 했는데, 토할 거 같아 나"

 

나라도 그럴 것 같았다.

 

"10년동안 이런 인간이랑 같이 다녔다니, 나 스스로한테도 어이가 없거든 진짜로"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었다.

 

하지만 그런 내 속내와는 반대로, 내 혓바닥은 잘만 움직였다.

 

"...미호야, 그만 해, 난 진짜 널 생각해서“

 

"시끄러!"

 

"기분 나쁘다고, 진짜 기분 나쁘다고! 왜, 나한테 왜 그런 건데 이철남! 니 얼굴 보면 그 새끼 생각난다고, 역겹다고!"

 

"야 김미호"

 

"뭐 니 혼자 그러는거 스스로 멋있다고 생각한거야? 쪽팔리지도 않아? 아니, 너. 혹시 너도 뒤에서 다른 생각 한 거 아냐? 그래, 그 새끼처ㄹ

 

"김미호!"

 

침묵.

 

그리고, 미호가 다시 입을 열었다.

 

"...어쨋든 간에, 나 이사하게 됐으니까 그렇게 알아."

 

"원래는 얼굴도 보기 싫었는데, 그래도 10년 알고 지냈으니 인사는 하려고 온 거야"

 

"나한테 연락하지 마, 두번 다시"

 

"알아들었으면 빨리 꺼져, 꼴도 보기 싫어"

 

그리고 미호는 가 버렸다.

 

"......"

 



나는 가만히 서서 하염없이 미호가 사라진 거리의 모습만을 바라보고 있었다.

 

 

 

 

 

미호가 내 인생에서 사라지고 나서도 나는 여전히 살아갔다.

 

나중에 듣고서 알게 된 것인데, 성규랑 핀토가 사귀기 시작했다나 뭐라나.

 

축하한다, 야.

 

그렇게 말하는 내 얼굴을 보는 성규의 표정은 침통했다.

 

"신경쓰지 마, 성규야. 좋아하는 사람은 사귀는 거지 뭐. 나도 기쁘다"

 

"미안하다, 철남아. 넌 날 이렇게나 도와줬는데..."

 

"나 진짜 괜찮은데"

 

거짓말이다.

 

항상 잘 때마다 악몽을 꾸다가 깬다.

 

밥을 먹다가도 눈물이 나고,

 

사랑노래 따위는 들을 엄두도 내지 못한다.

 

드라마에서 사랑 놀음을 하는 연인의 모습이라도 나왔다가는 나도 모르게 티비를 부숴 버릴 것만 같아서,

 

나는 티비도 켜지 않는다.

 

눈만 감으면, 그 때의 미호가 떠오른다.

 

'꼴도 보기 싫어'

 

그동안 그렇게나 노력했는데.

 

나는 결국, 너에게 있어 꼴도 보기 싫은 인간이 되어 버렸구나.

 

세상이 재미가 없다, 미호야.

 

이런 소리까지 너한테 들었는데도, 다른 여자 그 누구한테도 관심이 가지를 않네. 웃긴 일이야.

 

네가 없는 세상에서 무엇을 해도 큰 감흥은 없을 것 같아.

 

그래도 뭐, 죽을 수는 없으니까 살아야겠지.

 

어디서 뭘 하고 사는지는 몰라도, 너는 행복했으면 좋겠다.

 

나 같은 새끼는 잊어버리고 말이야.

 

 

 

 

 

 

 

그렇게 4년이 지났다.

 

나는 무사히, 주변의 국립대학교에 진학햇다.

 

성적도 괜찮고, 알바도 하고 있다.

 

병원비가 상당히 나왔지만 그 자식에게서 받아 낸 합의금으로 충당하고도 한참 더 넉넉했고,

 

이제는 저축하는 재미도 느끼며 살고 있다.

 

대학 생활은 그럭저럭 재미있다. 술을 너무 많이 먹는 건 좀 꺼려지지만, 좋은 녀석들뿐이었다.

 

가끔씩은 성규와 미남이를 만나서 술을 한 잔 하기도 한다.

 

아마도 이 녀석들이랑은 평생을 연락하고 지내겠지. 나는 그렇게 확신하고 있다.

 

나는 정말로 잘 지내고 있다. 아무도 부러울 일 없는 일상을 보내고 있다.

 

이렇게만 살다가 조용히 돌아가고 싶다, 그렇게 생각하는 나날들의 어느 날이었다.

 

아버지가 조용히 나를 찾아오더니, 할 말이 있다고 했다.

 

그리고 그 말은, 내 앞으로의 인생 전부를 바꾸어놓을 한 마디였다.








다음화부터 미호 시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