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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왜 배틀 메이드에게 순순히 내치권을 맡기고 있다고 생각하지? 각하를 제대로 보좌하지도 못하는 메이드장이 과연 필요할까 난 의구심이 드네만."


스틸라인의 지휘관, 불굴의 마리.


"애초에 일개 양산형 콘스탄챠 모델에게는 너무 막중한 임무였던 거겠지. 사령관을 찾아냈다는 업적은 인정해 주겠지만, 그 입지를 이용해서 분에 넘치는 자리를 차지한 것은 처음부터 불공평했다고 생각해."


시스터즈 오브 발할라의 지휘관, 철혈의 레오나.


"진정해라. 다들 너무 감정적으로만 생각하는군. 그래도 지금까지 잘 해내왔지 않나? 이번 한 번의 실수로 지위를 모두 박탈하는 건 너무 갔다고 생각하는데."


앵거 오브 호드의 지휘관, 신속의 칸.


"그 말대로 직위해제는 보류하는 게 좋을 것 같소. 다만, 지금과 같은 불상사를 막기 위해서는 권한을 분할하는 것은 필요불가결할 것으로 보입니다. 아직 저항군이 소규모였을 때는 그녀도 혼자 분담할 수 있다고 생각했겠지."


호라이즌 및 인류 최후의 함대 통솔자, 무적의 용.


"하우스키퍼의 업무를 빼앗는 것처럼 보여서 조금 꺼림칙하지만... 이런 내부 업무는 원래부터 제 전문이죠. 콘스탄챠 양보다 잘할 수 있다는 주제넘은 말을 하진 않겠지만, 그래도 기존의 비효율적이었던 몇몇 부분은 개선해드릴 수 있겠네요."


클로버 산업의 임시 총수 겸 비서실장, 레모네이드 알파.


"주인님, 언제든 말씀만 해 주셨으면 착한 리리스는 준비되어 있었는데..."


컴패니언 경호실장, 블랙 리리스.


"결국 사령관의 성욕 해소가 충분치 않았다는 얘길 두고, 다들 왜 헛다리만 짚고 있나? 그냥 허튼 생각 못하게 뽑아주면 되지! 마침 다 모였겠다..."


AA 캐노니어의 지휘관, 로열 아스널.


"..."


둠 브링어 지휘관, 멸망의 메이.


"콘스탄챠 416을 폄하하는 것은 그만두세요. 이번 사태에 책임이 있다는 것은 인정하지만, 같은 실수는 두 번 나오지 않을 거라고 제가 보증할게요."


배틀 메이드 명예 메이드장 및 저항군 통령, 라비아타 프로토타입.


서로 한데 모이기도 힘든 이 바이오로이드들이 모이게 된 이유는...


"저, 얘들아. 잠깐 내 말 좀..."

"""어어엉?"""

"..."


사용한 것이 분명한 비관통형 오나홀이 내 방 쓰레기통에서 발견되었기 때문이다.



**



이 난리부르스의 발단은 하치코가 탐색에서 가져온 오나홀이었다.


"쭈인님! 하치코가 신기한 거 가져왔어요! 보실래요? 말캉말캉~"

"으아악! 하치코, 지지야 지지! 이리 내! 압수야 압수!"

"히잉..."


하치코가 함내에서 비관통형 오나홀을 자랑하고 다니는 대참사는 막았지만, 내 손에 남은 오나홀은 처치곤란이었다. 밀봉도 안 뜯은 물건이라 버리기도 좀 그렇고, 떳떳하게 내놓고 다니기도 거시기해서 그냥 내 방 서랍에 조용히 박아두고 잊고있었다.


그리고, 남자라면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그 밤이 찾아왔다. 문득 새벽에 저절로 눈이 떠지는 잠못드는 밤. 돌아누워보아도 피가 몰린 사타구니 사이의 막대가 거치적거려서 결국 이불을 젖히고 일어나게 되는 밤. 머리를 헝클어뜨리며 난 홀로 생각했다.


'애들 부를까...? 아니, 너무 미안하잖아. 밤도 깊었는데... 번거롭기도 하니까, 나 혼자 적당히 빼고 자자.'


그리고 불현듯, 잊고 있었던 그것이 떠올랐다. 공교롭게도 가장 알맞은 물건이 내 손에 닿는 장소에 있었고, 나는 그것을 용도에 맞게 사용했을 뿐이다.


"후우, 후우... 아, 찢어졌네..."


대원들과의 잠자리가 기분 좋지 않다는 것은 절대 아니지만, 그래도 오나홀을 사용한 자위도 나름의 맛이 있었다. 새벽에 급하게 찾은 것 치고는 꽤 가성비가 괜찮으면서도 편리한 만족감을 뒤로 하고, 나는 사용한 그것을 대충 뒤집어 씻어서 쓰레기통에 버렸다.


너무도 당연하게도, 아침마다 쓰레기통을 비우던 바닐라에게 그것은 바로 발각되었다. 그 소식은 함내 행정망과 구두를 통해서 바닐라로부터 콘스탄챠에게로, 콘스탄챠에게서부터 라비아타에게로, 라비아타에게서부터 모든 지휘개체들에게로 퍼져나갔다.


그리고 그 행동이 가져올 여파를 깊이 생각해보지도 않은 내게 심판이 내려왔다.



**



갑자기 집중된 수십 쌍의 눈초리에 심장이 쪼그라드는 느낌이 들었다. 하지만, 콘스탄챠가 누명을 쓰는 것을 더는 봐줄 수 없었다. 한편으론 어이없기도 했다. 이게 파견나간 대장급들까지 다 불러모아서 호들갑을 떨 정도의 건수인가 싶기도 했다. 그런데 그런 말을 했다가는 천 갈래 만 갈래로 찢어질 것 같았다.


"절대 콘스탄챠가 짠 동침 빈도가 부족했다거나 한 건 아니야... 믿어 줘! 나는 지금도 충분히 만족하고 있다고! 그러니까... 콘스탄챠를 추궁하는 것은 그만해 줘."

"...그렇다면 각하. 저희의 존재의의를 부정하는 저 흉물은 어떻게 설명하시겠습니까?"


마리의 손가락은 역할을 다하고 형편없이 찢어진 하룻밤 불장난 상대를 가리키고 있었다. 자신의 존재의의를 내게 박히는 것이라고 진지하게 주장하는 너무도 유감스러운 스틸라인의 대장의 눈에는, 푸른 전광이 은은하게 감돌고 있었다. 물론 다른 눈들도 방향성은 달라도 그에 못지 않은 안광을 뿜어내며 해명을 요구하고 있었다. 여기서 입 잘못 놀리면 죽는다. 철충과의 실전으로 단련된 내 직감이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나는 침을 한번 삼키고, 입술을 혀로 핥았다.


"그, 너네들은 잘 모르겠지만... 남자들은 가끔 시도 때도 없이 끓어오를 때가 있어... 무, 물론 대낮이었다면 너희들을 불렀겠지! 근데 하필 그 때가 새벽이었고, 그냥 너희에게 알리기 미안해서 혼자 해결하려고 한 것 뿐이야..."

"사령관, 그 말은 횟수가 부족했다는 거랑 다를 게 없어."


레오나는 냉랭한 회색빛 눈동자를 내게 향했다. 암사자의 차가운 분노 앞에서 내 몸의 털이 곤두섰다.


"그, 그런 게 아니야! 그... 그 있잖아... 너네는 이해 못 하겠지만, 남자들은 아무리 성행위를 하더라도 가끔은 자위가 생각날 수밖에 없게 된다고!"

"말도 안되는 변명 하지 마! 우리가 있는데, 어떻게 저... 저런 걸 쓸 생각을 해?"

"아니야! 그거랑 그거랑 달라!"

"뭐가 다른데?!"


레오나가 냉정함을 잃고 더 쏘아붙이려 몸을 내밀자, 칸이 어깨에 손을 얹고 제지했다. 레오나는 입술을 깨물며 뒤로 물러났다.


레오나를 진정시킨 칸은, 내게 담담하게 물었다.


"그래, 사령관. 아무래도 신체의 차이 때문에 우리가 바로 이해하긴 어렵겠지. 그러니까 납득이 가게 설명해다오. 왜 성교보다 자위를 우선하게 된 거지?"


아씨, 이런 것까지 말해야 해? 견딜 수 없는 부끄러움과 초조함이 몰려왔다. 한참을 망설이던 나는, 참을성 있게 기다려준 칸에게 백기를 들고 마음 속에 담긴 고충을 토로했다.


"...너희들에게는 미안한 얘기지만, 섹스는 기분 좋은 거랑은 별개로 꽤나 피로한 행위야. 너희들도 나랑 해봐서 알겠지만... 아니, 몇몇 빼고... 아니아니, 메이야! 너만 콕 찝어서 말한 거 아니니까 울지 마! ...다시 얘기로 돌아가자면, 나랑 하는 행위가 실망스러운 적은 없었잖아? 그게 그냥 되는 게 아니야. 나도 애들마다 전희 방법이라던가, 분위기라는 걸 다 신경 써가면서 한다고. 매 행위마다 정말 최선을 다해서 봉사한다는 생각으로 임하고 있어. 너희들이 주눅들까 봐 아무한테도 말한 적 없지만, 그래서 부담되기도 했어."


어느새 모두가 나를 주목하고 있었다. 적대적이었던 분위기도 조금 가라앉자, 나는 편하게 이야기를 이어나갈 수 있었다.


"밤에 기분이 동했을 때도 비슷한 기분이었어. 빼고는 싶은데, 피로한 일은 사양이었지. 하지만 그렇다고 그럴 때에 너희를 불러버리면, 그런 어중간한 기분으로 너희를 제대로 만족시켜줄 수는 없잖아?"


나는 눈을 감고 나름의 진심과 결심을 담아서 목소리에 실어보냈다. 내 앞에 모인 모두가 홀린 듯이 귀를 기울였다.


"근데 나 혼자 해결할 때에는... 그런 걸 신경 안 써도 돼. 그냥 내가 내키는 대로 움직여서 나만 기분 좋아지면 끝이지. 도구를 써서 성욕을 채우게 되면, 내가 도구의 기분을 살필 필요는 없잖아? 그래서 더더욱 너희를 불러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어. 구 인류들이 너희들을 도구 삼아서 자신들의 온갖 욕구를 채워왔듯이, 나만 만족하면 그만이라는 마음가짐으로 너희들을 도구 삼아서 쓰고 버리면, 내가 그들이랑 다를 게 뭐가 있겠어?"


그리고 정적이 흘렀다.


'...성공했나?'


눈을 게슴츠레하게 뜨자, 모두의 모습이 희미하게 보였다. 그들은 볼에 홍조를 띄우며 저마다의 방식으로 부끄러움을 삭이고 있었다.


그래, 이렇게 넘어갈 수 있으면 싼 거지. 나는 그렇게 생각하며 안도의 한숨을 내쉬려는 찰나였다.


"잠깐."


아스널의 목소리가 모두를 몽롱한 감정에서 끌어올렸다.


"사령관이 개인적인 욕구만을 위해 부르더라도 난 괜찮다. 아니, 오히려 그대에게이니만큼 그런 식으로 써준대도 난 받아들여줄 수 있어. 그대가 손 하나 까딱하지 않더라도 자지만 세워준다면 기쁘게 내 입보지건, 진짜 보지건, 뒷보지건 도구처럼 사용해서 뽑아줄 수 있다."


아스널은 좌중을 돌아보며 우렁차게 말했다.


"모두들, 인류 최후의 사령관에게 품은 마음은 나와 다르지 않다고 생각한다. 아무리 우리가 인간을 사랑하도록 만들어졌다고 해도, 그대에게 품은 감정은 그것 때문이 아니다. 그 마음은 만년이 지나도 변하지 않아! 그대가 갑자기 변모해서 우릴 전장에 내몰아도, 우릴 도구처럼 사용해서 온갖 욕구를 해소하더라도 말이지. 그게 우리가 그대에게 품은 기대이고, 그대에게 품은 애정이다. 내 말이 틀린가?"


지휘관들이 소곤거리며 조용히 동조했다. 마리는 이미 마음이 벅차올라서 일어나서 듣고 있었다.


"그러니 그대여! 앞으론 사양하지 않아도 된다! 가까이에 이렇게나 많은 비관통형 오나홀들이 있는데, 어째서 저런 쓸데없는 것에 그대의 귀중한 씨앗을 낭비하지? 당직부관이 뭘 위해 있다고 생각하나! 그대의 씨앗은 저런 실리콘 덩어리 따위가 아닌..."


텅텅!


"바로 여기에 남김없이 부어야 하는 것이다!"


호탕한 그 끝맺음에, 의자 위에서 달싹이던 엉덩이들이 일제히 기립하며 아스날에게 갈채를 보냈다.


와아! 짝짝짝! 옳소! 옳소!


거의 코헤이 교단의 재림이었다. 나는 그 광경을 아연실색하며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그때까지 조용하던 콘스탄챠가 들뜬 분위기를 진정시키며 나섰다. 나는 사그라지는 희망이 다시금 세차게 타오르는 것을 느꼈다. 내가 가장 신뢰하는 아이이니만큼, 어떻게든 해 줄 것이라는 믿음을 가슴에 품고.


'역시 콘스탄챠야! 구하러 와줬구나!'

"...제가 주인님의 포용력과... 정력을 과소평가했다는 것을 인정할게요. 메이드장의 자격이 없다고 말씀하셔도 할 말이 없네요."

"응?"


내 눈에 잠깐 피어올랐던 희망이 위태롭게 일렁거렸다.


"...역시 저희들을 신경쓰시느라, 부족하셔도 일부러 말하지 않으시고 홀로 해소하신 것이 맞죠? 죄송해요. 그리고 괜찮아요. 주인님은 가만히 계셔도 좋으니까... 지금부터 순번을 정할게요. 마침, 신체능력이 뛰어나신 지휘개체 분들도 많이 모여계시네요."

"아, 아아..."


선고와도 같은 그 절망적인 소리에 몸의 힘이 풀려나가는 것을 느꼈다. 내 심정은 아랑곳않고, 지휘개체들은 벌써부터 순번으로 다투고 있었다.


"내가, 내가 먼저!"

"뭐해요?! 대장! 엉덩이 걷어차기 전에 빨리 가요! 이건 진짜 쳐먹으라고 밥숟가락까지 다 셋팅해주는건데!"

"히잉~ 그치만 나앤!"

"하하하! 이럴 땐 먼저 덮치는 놈이 임자지!"

"모두들 진정하세요!"


라비아타의 목소리가 모두의 움직임을 잠시 멈췄다. 나는 절박한 심정으로 그녀를 올려다보았다. 이번엔 진짜지? 응? 진짜 구하러 온 거지?


"공평하게... 팔씨름으로 정하는 건 어떨까요?"

"""..."""


모두의 어이없어하는 시선이 몰리고, 콘스탄챠는 생긋 웃으며 표정 하나 안 바뀌고 말했다.


"언니, 그냥 가만히 계세요."

"히잉..."


마지막 기대가 내 눈앞에서 간단하게 쳐부숴졌다. 그리고, 모두의 의견이 모였는지 내게로 하나둘 씩 모여들기 시작했다.


"후후... 각하께서는 그냥 천장의 환풍구 수만 헤아리고 계시면 됩니다..."


나는 그제야 비로소 모든 희망을 놓고 지옥으로 빠져들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