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약해지거나 실패하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는 최후까지 싸울 것입니다. 우리는 프랑스에서 싸울 것입니다. 우리는 바다와 대양 위에서 싸울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의 자신감과 힘을 길러 창공에서도 싸울 것입니다. 우리는 그 어떠한 대가를 치루더라도 사수할 것입니다.

We shall not flag or fail. We shall go on to the end. We shall fight in France, we shall fight on the seas and oceans, we shall fight with growing confidence and growing strength in the air, we shall defend our island, whatever the cost may be.

윈스턴 처칠, 1940년 6월 4일, 하원 연설 중








 하늘에서 적철빛의 종말이 내려 오고, 세상은 무너졌다. 오직 이 순간에서, 살아남은 인류는 마지막까지 살아남기 위해 무력한 발악만을 하고 있을 뿐이었다. 희망이 그저 하늘에 흩날리는 천쪼가리에 불과할 정도로, 이제 남은 인류는 그것에 목숨과 영혼 모두를 걸어야 할 정도로 내몰려 있었다. 혹자는 이것이 그동안 인류가 타락함에 대한 신의 징벌이라고 말했다. 이미 죽어버린 신의 수의를 붙잡고, 그들은 이해할 수 없는 것을 이해하려 했으리라.


 어찌 되었건, 과거 미국 해군의 전함이었던 USS 미주리에게는 인류가 멸망을 목전에 둔 지금 순간에서 드디어 빛을 발하고 있었다. 과거, 미 해군이 참전했던 가장 큰 전쟁의 마지막을 갑판에서 맞이했던 유일무이한 전함이었다.


 2차 세계대전의 종결 끝자락에서 태어나, 2차 세계대전의 종전 이후까지 살아남아 미 해군의 자존심으로 우뚝 섰던 함. 그 이후, 전함의 시대가 저물고 한 세기가 지난 이후, 미국 정부와 의회가 이 전함의 부활을 선택하지 않았다면 미주리는 다시는 부활하지 못했으리라. 미 해군이 전함의 부활을 선택한 이유는 알려지진 않았다. 허나 1차 연합전쟁 이후 치욕스러운 패배를 겪은 국민들에게 자긍심을 다시 불어넣을 무언가가 필요했고, 의회와 정부는 이 영광스러운 수훈함을 가라앉은 기억의 심연에서 다시 끌어올리는 것을 선택한 것이리라.


 차디 찬 망각의 심연으로부터, 오욕 묻은 사슬로서 끌어 올려진 미주리는 용골부터 새로이 건조 되었다. 전함의 시대가 저문지는 두 세기가 지났기에, 커다란 함포를 통한 함대전의 왕으로 군림하는 것이 목적은 아니었다. 옛날, 항모의 가장 강력한 무력이던 항공기들은 전함이 시대의 뒤안길로 사라지던 시대보다 더 강력해지고 작아졌다. 그렇기에 미주리는 그 큰 배수량에 걸맞게 수많은 방공 무기를 통한 완벽한 방공망을 제공하여, 항모를 방어하는 것이 목적이 되었다. 만재 배수량 15만톤, 48문에 달하는 CIWS, 24문의 대함 미사일 발사기, 96개에 달하는 순항미사일 포대를 갖춘 미주리는 완전히, 방공 항모로서의 위엄을 갖추고 있었다.


 그리고, 인류가 락 하버라는 무덤을 선택하고 도망치는 무렵, 미주리에게 운명이 다가와 속삭이기 시작했다…….


 6월 4일 늦은 밤. 미주리는 미국 서부 해안, 로스 엔젤레스 방어전에서 패배하고 후퇴하는 연합군을 호위하며 락 하버로 항해하고 있었다. 로스 엔젤레스 방어전은 사실상 인류가 가진 몇 안되는 대륙 거점에서의 방어전이었으나, 밀려오는 철충들의 물량 공세를 이기지 못해 결국 밀려나고 말았던 것이다. 동행한 항모이자 기함인 USS 엔터프라이즈 호에 민간인들과 패잔병을 가득히 실은 이 함대를 철충들이 놓칠 리가 없었다. 하늘의 철충들이 함대를 추격하기 시작했고, 락 하버로, 마지막 남은 인류의 요람으로 사람들을 보내기 위해 누군가는 남아야만 했다.


 그리고 미주리의 함장, 제러드 윌러 대령은 결단을 내렸다.


 "여긴 USS 미주리. 본 함은 함대 후미에서 최후까지 적의 추격을 저지하겠습니다. 명령을 내려주십시오."


 윌러 함장의 목소리가 긴장과 불안으로 미약하게 경련했다. 미주리의 함교 안의 모든 장교들과 수병들이 침묵을 삼키며 함장을 바라보고 있었다. 오랫동안 그와 함께 복무해온 부함장과 조타수와 수병들, 전 전투에서 전사하여 사망해 새로 들어온 전탐장 역시도 그를 바라보고만 있을 뿐이었다. 그리고, 함교의 홀로그램으로 떠있는 연합군 해군 총사령관, 바이오로이드 무적의 용은 그 푸른 바닷빛 눈을 숨긴 채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미주리. 언제까지 추격을 저지할 수 있겠소?"

 "못해도 세 시간은 벌 수 있을 겁니다."

 "…….."

 "사령관님, 명령을."

 "…….좋소. 미주리에게 긴급 명령을 내리겠다." 무적의 용이 천천히 고개를 들어, 윌러 대령과 눈을 마주했다. "본 함은 함대 중앙에서 이탈, 함대가 무사히 복귀할 수 있도록 후미에서 적의 추격을 저지하도록."

 "명령 수신. 휘하에서 복무하는 것은 큰 영광이었습니다, 장군님."

 "나도 귀관을 지휘할 수 있어서 영광이었소, 윌러 대령."


 홀로그램이 사라지고, 함교는 다시 침묵에 잠겼다. 함교의 모든 이가 대령을 바라보고 있었다. 대령은 각 모든 인원들과 눈을 마주쳤다. 미주리가 다시 건조되고, 윌러 함장이 부임한 이래로 절망스러운 전황에서도 승조원들은 윌러 함장과 함께하고 있었다. 사선을 넘나들고, 작전을 계속하면서 미주리의 승조원들은 이제 가족과도 같았다. 그런 가족들의 두 눈에 두려움, 확정된 죽음에 따른 불안이 그들의 눈 속에 가득 차 있었다. 그 감정들이 함상 반란으로 이어지지 않는 이유는, 오직 그들이 윌러 함장만을 믿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인류 연합 최고 사령부도, 그 누구도 아닌, 오직 제러드 윌러 함장 단 한 명만을. 충정은 고귀하다. 윌러 함장의 입술 사이로 언어들이 이어지지 않은 채 흩어졌다. 그는 숨을 들이쉬고 함교 인원들에게 고개를 돌려 명령을 내렸다.


 "함교! 총원 전투 배치. 위치로!"

 "…예! 총원 전투 배치! 총원 전투 배치!"

 "드디어 우리의 최후가 다가오는군요, 함장님." 부함장이 차갑게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했다.

 "이렇게 될 줄 알고 있었잖나."


 총원 전투 배치 알람이 침묵을 때려 물려내며, 벌침 쏘인듯 함교의 수병들과 장교들 모두 해당 위치로 번개처럼 움직였다. 곧 상황병이 마이크를 붙잡고 총원 전투 배치 를 함 내에 전파하기 시작했다.


 "조타장, 좌현 극전타, 양현 전속 전진."

 "좌현 극전타! 양현 전속 전진!"


 조타장가 말을 받고 키를 좌현으로 크게 돌렸다. 곧 함이 기우뚱 기울면서, 함대 진형에서 이탈하여 왼쪽으로 크게 돌아 빠져나가기 시작했다. 태평양의 육중한 파도가 갑판 위로 내려쳤다. 미주리가 진형을 빠져나가기가 무섭게, 전탐병이 소리쳤다.


 "방위각 2-2-0 방향, 방향에서……. 다수의 적 항공 병력 감지되었습니다!"

 "오는군."


 어둠이 내린 태평양의 거무죽죽한 바다 위에서, 육중하고 거대한 전함이 파도 치는 수면을 가르며 죽음으로 나아간다. 검보랏빛 섞인 하늘에는 별빛 대신 새카만 철충들이 뒤덮이기 시작했다. 철충은 바다를 꺼려한다. 그렇기에, 하늘로 날아오르는 철충들은 모두 죽음을 염두하고 날아오르는 것이다. 전함 미주리의 함장과 승조원들은 모두 이를 알고 있었다. 그렇기에 이것들이 하늘에서 격추되어 불빛으로 사라진다고 하더라도, 그 사체를 전함에 갖다 박을 것이라는 것 정도는 쉽게 예상할 수 있었다. 그렇지만 지금, 미주리는 실로 동등한 상태로 적과 마주하고 있었다. 죽음을 각오한 채, 등에 짊어진 것을 지키기 위해 나서는 것이었다.


 "적 항공 병력이 근접신관의 사거리에 들어왔습니다!"

 "전 포대는 명령에 맞춰 발포하라!"


 윌러 함장의 외침과 함께, 뱃머리를 향하고 있던 18인치 포탑 네 문이 우현으로 고개를 돌려, 날아오는 철충들을 조준하고 일제히 사격하기 시작했다. 어두운 장막을 굉음과 강렬한 붉은 섬광으로 흔들어 찢으며, 전투의 첫 발포가 이어졌다. 불타듯 날아간 근접신관, 대공 산탄들이 빽빽하게 늘어선 철충에게 적중하며 반딧불이로 산화하게 만들었다. 곧 발포가 잦아듬과 동시에, 미주리에 설치되어 있던 VLS에서 발사된 순항미사일들이 궤적을 그리며 날아가 폭발하며, 밤의 태평양을 밝게 물들이기 시작했다. 홀로 밤하늘을 화려하게 빛내는 전함은 그 불빛들 속에서 우현을 들어낸 채, 웅장히, 그리고 고독하게 존재했다.


 철충들도 가만 있지 않았다. 단 한 번의 일제사격에 수십 편대를 잃은 놈들은 순식간에 산개하기 시작하며 미주리에게 최대 피해를 입히기 위해 두 방향으로 나뉘어 다가오기 시작했다. 마치 2차 세계대전의 뇌격기 편대와 급강하 폭격기 편대처럼 둘로 찢어져, 하나는 저공으로 다른 하나는 고공으로 날아 올라 내리 꽂기 위해, 불에 홀린 불나방들처럼 날아왔다. 곧 고공과 저공의 철충들로부터 대함 미사일이 발사되기 시작했다. 방금 전 미주리로부터 발사된 순항미사일들처럼, 궤적을 그리며 날아오는 대함 미사일은 소름끼치는 굉음을 동반했다.


 "미사일이 옵니다!"

 "CIWS 가동시켜! 전부 요격해라!"


 미주리의 방어 시스템이 가동되며, 96문이나 장착된 CIWS 팰렁스들이 각자의 목표를 감지하고 분당 2000발의 25mm 포탄을 총구에서부터 뿜어내기 시작했다. 포탄 끝에 묻은 예광탄들이 화려하게 불타오르면서, 하늘로 뿜어져 나오며 화망을 구성하자 찢어진 밤의 장막이 더더욱 어지럽혔다. 결국 발사된 대함 미사일들이 CIWS의 포탄에 맞아 요격 당하며  굉음과 함께 하늘에서 덧없이 터지기 시작했다. 이 막대한 화망을 뚫고 몇 안되는 대함 미사일들이 미주리에 접근하는데 성공했으나, 미주리 호의 보이드 쉴드에 막혀 함의 측면을 푸르렇게 물들이는데만 말았다.


 하지만, 철충들은 포기하지 않았다. 미사일이 통하지 않는다면, 결국 방법은 하나 뿐이다.


 "놈들이 옵니다!"

 "그대로 들이박을 생각인가 봅니다, 함장님!"

 "우현을 들어낸 상태로 계속해서 좌현 항해하라! 조타장! 좌현 전타로 낮추도록!"

 "예!"

 "포술장! 전 포대는 포탄이 장전되는 대로 2-2-0 방위각에서 접근하는 철충들을 사격하도록! CIWS를 전부 가동하고 대공 미사일도 전부 쏟아 붓도록!"

 "알겠습니다!"


다시 한 번, 미주리의 포대가 화염과 굉음을 내뿜으며 파도를 밀어냈다. 그리고 공중을 향하던 CIWS의 화망들이 곧 직각에 가까워지며 카미카제를 시도하는 철충들에게 장대비처럼 총알을 퍼붓기 시작했다. 허나 쏟아지는 포탄들을 뚫고, 놈들은 품속에 미사일을 꼭 껴안은 채 미주리의 측면에 들이박기 시작했다. 방금 전 미주리의 측면에 명중한 미사일들을 방호해낸 보이드 쉴드가 다시금 푸르게 빛나며 이제는 미사일과 함께 폭발하는 기계 벌레들을 막아냈다.


 허나 여치도 몰려드는 개미떼 앞에서 무력하듯, 미주리 역시도 각오한 그 죽음에서 벗어나올 수는 없었다. 최후는 착실하게 다가왔고, 이제 그 말뚝을 배와 그 승조원들의 심장에 박아넣을 준비를 끝마쳤다.


 몇 시간동안의 전투가 끝난 후, 태양은 무심히 수평선 너머로 고개를 들이 밀었다. 그 햇빛에 비춰지는 미주리는 처참했다. 보이드 쉴드는 이미 닳아 없어진 지 오래. 그 아름답던 회색빛의 현미는 추한 그을음과 구멍들로 얼룩져 있었다. 수많은 철충들을 응징하던 18인치의 4개 포탑 역시도 전부 연기를 내뿜으며 침묵한지 오래였다. 오직 이 곳에서, 철충들의 발목을 붙잡고 있는건 몇 남지 않은 미주리의 CIWS 방공포대들이었다. 하지만 그것도 곧 침묵할 것이다. 철충들의 자살 공격과 포탄이 바닥을 들어내면서, 하나 둘 씩 조용해지기 시작했다. 밝게 물들었던 이제 하늘은 언제 그랬냐는 듯 조용해졌고, 철충 편대는 피난민이 가득 탄 함대를 뒤쫓아 락 하버를 향해 사라졌다. 이미 함교는 전멸한 상태였다. 함교까지 뚫고 들어온 폭발이 전탐장, 조타장, 그리고 그 외 승무원들을 집어 삼키고 남은 인원들을 햘퀴었다. 이젠 그들도 더 이상 필요가 없었다. 미주리의 곳곳에 뚫린 상흔들로부터 바닷물이 무자비하게 들어오고 있었다. 미주리는 가라앉을 것이다. 다시금, 바다의 심연 속으로 사라지리라. 


 최후에 최후까지, 그들은 버텨냈고 저항했음을, 남은 이들은 기억하리라. 남은 이들이 전부 미주리의 뒤를 따르고, 인류가 멸망한다하더라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