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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화


지구를 점령한 철충들에게도 한계란 존재했다. 철충이 아무리 많다고 해도 과거 온 지구를 뒤덮던 인류보다는 적었기 때문이다. 2081년 기준 바이오로이드와 인류를 합했던 총 인구수는 최소 100억 이상. 아무리 AGS가 많다고 해도 그런 초월적인 수를 일대일로 대체하기란 불가능했다.

 

그리하여 철충은 지구를 점령했음에도 지구 구석구석에 그 영향력을 전개하지는 못했다. 철충이 점령한 주요 공장지대와 몇몇 인접 도시들, 광산들에서는 멸망한 인류의 유산들이 뒤틀린 채 가동하는 기계음이 하늘을 울렸지만, 예전부터 인구부족으로 하나하나 소멸하고 있던 시골 마을이나 작은 소도시들은 철충 군단이 한번 쓸고 지나간 후로는 고요한 침묵에 잠겨 있었다.

 

삼안의 본거지였던 한반도 남부도 사정은 매한가지였다. 예전에는 대한민국 경상도라고 불렸던 땅 한구석에 존재하던 자그마한 마을은 넝쿨과 식물들로 뒤덮인 채 바람과 비에 풍화되어가며 서서히 자연과 동화되고 있었다. 

 

한 세기 하고도 이십 년 전에는 온 나라를 떠들썩하게 만든 적도 있었지만, 육십 년의 세월이 흐르자 그 기억도 다른 기억들에 의해 사라진 후였다. 멸망 전 이미 사는 사람이 수십 명도 남지 않은 마을은 예전의 인기가 무색하게 반쯤 버려진 상태였고, 멸망전쟁은 그대로 뒀더라도 서서히 사라져 갔을 마을의 운명을 그저 약간 더 앞당겼을 뿐이었다.

 

그러한 마을이었으니 입구 또한 적막하기 그지없었다. 멸망전쟁 중에 수도 없이 버려졌던 그 흔한 자동차나 바이오로이드 골격 하나 남지 않은 마을 입구에는 60년의 세월 속에서도 희미하게 글자를 남긴 표지판만이 봄바람을 조용히 맞으며 언제 올지 모를 방문객을 외로이 기다릴 뿐이었다. 

 

산과 들은 봄을 맞아 진달래가 분홍색 꽃을 틔우고 노오란 색으로 물든 개나리들이 만발했지만, 아름다운 풍경을 보러 와야 했을 사람들은 어언 60년째 찾아오지 않아 적막한 마을은 오늘도 바람이 부는 소리, 나뭇잎이 흔들리는 소리, 마지막으로 새들의 울음소리 속에서 침묵하는 중이었다.

 

하지만 긴긴 기다림에도 끝은 오는 법. 오늘 잊혀졌던 마을에는 어언 육십여 년만에 오는 방문객들이 찾아왔다. 

 

구르르르르르..부아아아아아..

 

거친 엔진소리를 토하는 스틸라인의 트럭과 장갑차 수십 대가 빛바랜 표지판을 넘어 버려진 마을을 향해 힘차게 바퀴를 굴려나갔다. 장갑차 해치 위로 고개를 내밀고 총을 잡은 브라우니, 레프리콘, 노움들이 연신 고개를 돌리며 주변을 감시했다.

 

자세히 보면 차량대열 사이에는 밴 같은 자동차 수 대도 끼어 있었다. 차량 상부에 설치된 레이더나 안테나 같은 물건들로 보아 일반 목적은 아닌 것 같은 밴 차량의 측면에는 ‘080’이라는 글자가 선명했다. 

 

슈아아아아아!-

 

하늘에서는 날카로운 비행음이 공기를 갈랐다. 둠 브링어가 아니라 스카이나이츠 병력으로 구성된 대열 앞에 선 슬레이프니르가 주변 대원들에게 손을 들어 지시를 내리자, 대원들이 각자 고개를 끄덕이더니 사방으로 흩어져 대공경계를 시작했다. 

 

위이이이잉..

 

철컹! 피이잉! 쿵, 쿵, 쿵, 쿵, 쿵!

 

지상에서는 대열의 앞쪽에서 달리던 커다란 트럭이 끌고 있던 컨테이너의 측면이 열렸다. 트럭 안에서 모습을 드러낸 공룡 모양 로봇 4기가 일제히 뛰쳐나와 마을로 달리기 시작했다. AGS들이 트럭에 탄 포츈과 통신했다.

 

“대거-01이 캐리 베이스(Carry Base)에, 본기 및 편대원 전원 기능 이상 없음. 예정대로 임무에 임한다.”

 

“역시 제대로 정비했다는 거거든? 휼륭하거든!”

 

“훌륭한 정비에 감사하지. 대거 편대는 지금부터 마을로 들어가 적대개체 수색 및 물자보관시설 입구의 탐색에 들어가겠다.”

 

“오케이, 부탁하는 거거든?”

 

고개를 끄덕인 유타랍토르가 앞으로 달려나가던 중 상공에 뜬 동료에게 통신을 연결했다.

 

“파인더-1, 여기는 대거-01, 현재 상황보고 바람.”

 

“대거-01, 파인더-1. 지금까지 마을 내부에서 감지되는 적은 없음. 으으..언제 마을구경을 할 수 있는 거야?!”

 

익숙한 목소리가 짜증스러운 감정을 타고 유타랍토르에게 전해지자 랍토르가 목소리의 장본인에게 말했다.

 

“노란 여자, 그래도 물자보급소만 수색하고 나면 대통령님께서 마을 관광을 허락하시지 않았나? 조금만 참도록.”

 

“하아, 그 말이 아니었으면 결코 승복하지 않았을 텐데..사령관 말이니 어쩔 수 없지. OK, 파인더-1은 계속 전장통제 임무에 임하겠음. 적대세력 반응이 나타나면 바로 연락하겠다. 파인더 1 아웃.”

 

무전을 종료한 운디네 23이 눈 아래 보이는 마을을 보며 입맛을 다시다 옆에서 날고 있는 바이오로이드에게 툴툴거렸다.

 

“흐레스벨그 씨, 지금 내려가면 안되나요?”

 

“안돼요. 시험용 AWACS(조기경보기)장비를 테스트하려면 시간이 좀 더 필요합니다.”

 

“매지컬 모모 스티커라도 드릴 테니 제발..”

 

“지난번에도 그러다가 저한테 모모 복장을 한 이상한 할아버지가 그려진 스티커들만 주셨잖아요?”

 

“하아, 매지컬 노노도 모르고..괘씸하거든요?”

 

“그런 기괴한 짝퉁은 모모 씨에 대한 모욕입니다. 잔말 말고 계속 나세요. 앞으로 30분은 더 있어야 하니까.”

 

“노노만 있는 게 아니라 블랙 엠비스랑 노끄루 대마왕도 있는..히익..”

 

흐레스벨그가 말없이 째려보자 운디네 23이 겁에 질린 눈으로 눈길을 피하더니 휘파람을 불면서 다시 고도를 높였다. 흐레스벨그가 그 꼬라지에 한숨을 쉬더니 오르카 호로 통신을 연결했다.

 

“사령관님. 현재 작전 예정지역에 병력이 순조롭게 전개 중입니다. 지금부터 봉하 쉘터의 수색에 돌입합니다.”

 

흐레스벨그가 귀에 낀 리시버에서 사령관의 목소리가 들렸다.

 

“알겠어, 흐레스벨그. 지난번 사건 때문에 운디네를 너무 괴롭히지는 말고. 돌아오면 뽀끄루가 보관해 놓았던 비밀 모모 스티커 줄 테니까.”

 

꿀꺽..

 

흐레스벨그가 자기도 모르게 군침을 삼키며 답했다.

 

“약속하신 겁니다..?”

 

리시버 너머의 사령관이 쾌활한 목소리로 답했다.

 

“물론이지!”

 

그때 리시버에서 소리가 들렸다.

 

“여기는 대거-01. 대거-02가 마을 내부 공사장 폐허에서 목표로 의심되는 물체를 발견했다고 함. 좌표를 공유하겠다.”

 

“확인했습니다, 대거-01, 파인더-01을 그쪽으로 보내겠습니다.”

 

흐레스벨그가 통신을 마치더니 그 말을 언제 들었는지 초롱초롱한 눈을 한 운디네 23에게 말했다.

 

“가셔도 됩니다. 지상에서 찾았다고 하네요.”

 

“예아! 지금 바로 갑니다!”

 

운디네 23이 신나게 속력을 올리며 지상으로 급강하했다. 마치 밴시를 연상시키는 강하속도를 본 흐레스벨그가 잠시 한숨을 쉬었다.

 

“대체 그 노짱이라는 사람이 뭐가 그렇게 좋다고 저 모양 저 꼴인지..”

 

옆에서 날고 있던 하르페이아가 흐레스벨그가 보이지 않는 거리에서 멋쩍게 웃으면서 생각했다.

 

‘네가 모모를 좋아하는 거랑 비슷한 이유 아닐까, 흐레스벨그?’

 

--

 

운디네 23이 멸망한 국가의 상공에서 툴툴거리기 한 달여 전, 오르카 호의 집무실에서 사령관은 잔뜩 들뜬 얼굴의 운디네 23과 AGS인데도 눈을 빛내는 게 보이는 글러먹은 공룡 두 마리가 힘을 합쳐 분석했다는 정보를 흥미로운 얼굴로 듣고 있었다. 집무실 책상에 홀로그램으로 구현된 지도 한 켠을 짚은 운디네 23이 자신만만한 얼굴로 말했다.

 

“..따라서, 대한민국 정부가 멸망 전에 건설했던 가장 커다란 창고는 바로 이곳, 경상북도 김해시 봉..크흡! 봉하마을 지하에 있다는 것이 저희의 결론입니다.”

 

그때 누군가 손을 들었다. 철혈의 레오나였다. 사령관이 고개를 끄덕여 질문을 허가하자 그녀가 질문했다.

 

“논리적으로 비밀리에 건설하는 창고가 있기 불가능한 곳 아냐? 멸망 전에는 쇠퇴한 관광지라고 해도, 당시 한국의 제 2도시라는 부산과 너무 붙어 있는 곳이야. 그곳에 연합전쟁 이후 힘을 빼앗겼던 정부가 비밀리에 물자보급소를 건설하기는 어려웠을 것 같은데.”

 

그 말에 지휘관 몇몇이 고개를 끄덕였다. 사령관도 이상한 의견이 아니라고 생각했는지 운디네에게 물었다.

 

“나도 레오나의 의견에 동의해. 네가 지금까지 말한 대로라면 그 마을은 대도시와 너무 인접해 있고, 동시에 쇠퇴했다고는 해도 관광지라 민간인들이 꾸준히 드나드는 곳이었을 거야. 그런 곳에 대규모 군수물자 창고를 건설할 역량이 정부에 남아있을 거라곤 보이지 않아. 너희가 그렇게 추론한 이유를 말해 줄래?”

 

“Bien sûr!(물론)”

 

운디네 23이 고개를 자신있게 끄덕이더니 옆에 멀뚱하니 서 있던 유타랍토르에게 눈빛을 보냈다. 그 눈빛을 받은 공룡 로봇이 등에 설치된 홀로그램 프로젝터를 가동시켜 3D 지도 위에 추가 데이터를 표시했다. 

 

덮어씌워지는 데이터를 보던 사령관의 눈이 가늘어지더니 얼마 있지 않아 놀라움으로 물들었다. 그가 말했다.

 

“노무현 정신 기리기 프로젝트로 기념관을 건설하던 중 일어난 대규모 비리사태라..운디네, 이 사업이 정부의 가림막이라고 생각하는 거야?”

 

운디네가 다시 고개를 끄덕이더니 말했다.

 

“정답이야, 사령관. 유타랍토르와 함께 당시 언론 기사와 아카이브된 기록들을 살펴봤는데, 의심스러운 점이 한둘이 아니었다구.”

 

운디네가 홀로그램에 띄워진 지도를 다음 슬라이드로 넘겼다. 차례차례 떠오르는 기록들을 보던 시라유리와 리앤이 놀란 눈을 했다. 그녀들이 각각 입을 열었다.

 

“비리로 프로젝트가 중단된 후에도 여전히 의심스러운 화물차들이 마을 곳곳을 돌아다닌다는 인터넷 영상에, 대규모의 자금이 갑자기 기념사업회에 전달된 정황..사령관, 이거 수상한데요..?”

 

“동시에 정부 보유물자에서 노후화된 물자의 폐기처리라며 소각된 물자 리스트 사이에 끼어있는 최신 군용병기와 다량의 보존식량, 갑작스럽게 전역한 특전사 출신 인원들의 수상한 이동경로까지..왓슨, 이건 조사해 볼 만한 가치가 있어.”

 

수사에는 이골이 난 두 바이오로이드가 사령관에게 의견을 전달하자 사령관도 한층 심각한 얼굴을 했다. 언제나 물자가 필요한 상황에서 버려진 대규모 물자보급시설의 존재는 마른 하늘에 내리는 단비와도 같았다. 곧 그의 입이 열렸다.

 

“..조사대를 파견해 볼 가치가 있겠어. 그 마을 근처에 철충이나 레모네이드의 움직임은?”

 

마리가 대답했다.

 

“마을 근처의 대도시인 부산시는 한반도 제 2의 도시였지만, 주요 AGS 공장들은 대부분 울산이나 포항, 광주 등에 위치했기 때문에 주변의 철충 밀집도는 적을 것으로 예상됩니다.”

 

동시에 시라유리가 대답했다.

 

“부산시 근처에서 전 펙스 소속 군용 바이오로이드 수 기의 움직임이 관측되고 있긴 합니다만, 일반적으로 하던 위력정찰로 보입니다. 지난번 철의 왕자 유적에서 된통 당한 오메가가 전력을 회복하기에는 부족한 시간입니다. 따라서 레모네이드 일파의 간섭 확률은 적습니다.”

 

“고마워. 그럼 마지막으로 용, 차출 가능한 함대 병력과 이동경로를 산출해 줄 수 있어? 자원보급소가 존재할 확률이 높으니, 화물선이나 LPD를 좀 동행시키면 좋겠는데.”

 

“타당한 의견이오. 전 미군 소속 사라토가급 헬기상륙함 3척과 서피션트(Sufficient)급 보급함 3척을 동행시키도록 하겠소. 물자적재량 200,000톤 정도라면 물자보급소가 얼마나 크든 물량을 다 털어올 수 있겠지. 그리고 전 한국군 소속 함선 승조원들을 활용한다면 효율적인 항로 산출이 가능할 것 같소.”

 

“준비 기간은 얼마나 걸릴까?”

 

잠시 생각하던 용이 답했다.

 

“넉넉잡아 9일 정도면 출항 가능할 것이외다.”

 

“OK. 그럼 그때까지 준비해 줘.”

 

“알겠소.”

 

지휘관들의 의견을 종합한 사령관이 결론을 내렸다. 

 

“지금부터 구 대한민국 경상북도 봉하마을에 대한 수색작전 준비에 들어간다. 마리는 스틸라인 수색대원들이랑 보급계원들 중 똘똘한 애들로 뽑아서 일개 대대 정도를 대기시켜 주고, 용은 말한 대로 함대 준비시켜 줘. 오메가가 어떻게 움직일 지 모르니 호위함도 부탁해.”

 

두 지휘관이 고개를 끄덕였다.

 

“알파, 보급소가 존재한다면 물자를 옮기기 위해 익스프레스 76 대원 100명 정도가 필요해. 레오나는 안드바리 개체들 중에 경험이 좀 있는 아이들을 준비시켜 줘. 물자가 많으니 훌륭한 보급관이 필요해.”

 

“알겠습니다, 사령관.”

 

“알았어, 달링.”

 

“그리고 운디네랑 유타랍토르.”

 

“응, 사령관.”

 

“예, 대통령님.”

 

“너희가 알아낸 정보니, 너희가 가장 잘 알고 있는 정보일 거야. 작전이 진행될 때 선도를 부탁할게.”

 

“Oui!(응!)”

 

“영광입니다, 대통령님. 형제들도 오랜만에 임무를 수행할 수 있겠군요.”

 

사령관이 웃으며 고개를 끄덕이더니 말했다.

 

“추가 의견이 있는 사람?”

 

회의실 안 인원들이 고개를 흔들거나, 슬그머니 웃는 등 각자의 방식대로 더 이상 낼 의견이 없음을 피력하지 사령관이 웃으면서 회의를 끝냈다.

 

“그럼 오늘의 회의는 이걸로 끝. 모두 수고했고, 다음 있을 작전 준비도 잘 부탁해.”

 

--

 

하지만 그렇게 잘 준비한 사령관은 진작 짓다 만 신규 기념관 폐허 아래에 숨겨진 거대한 문에 막혀 한숨을 쉬고 있었다. 대한민국 대통령 권한으로도 열리지 않는 철문 옆의 스크린은 스카디의 해킹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단일한 메시지만을 띄우고 있었다.

 

ACCESS DENIED: 올바른 인식코드를 주십시오

 

한참이나 패널에 대고 조작을 하던 스카디가 허탈한 얼굴로 사령관에게 말했다.

 

“미안해요, 자기. 지독하네요. 만든 사람이 누구든, 오직 특정 문장을 말하는 것 이외에는 모든 접근로를 다 막아 놨어요. 단순해서 오히려 해킹이 먹히지 않는다니, 이 무슨..”


"정말 불가능한 거야..?"


"자존심이 상하지만 그래요. 백도어를 하나도 만들어 놓지 않아서 들어갈 틈이 한 군데도 없네요.."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하지?"


"아예 날려버리면..되지 않을까요?"

 

스카디의 말을 들은 사령관이 뒤에 선 마리를 보며 물었다.

 

“마리, 이 문을 부수고 진입할 수 있을까?”

 

마리가 고개를 흔들었다.

 

“추천하지 않습니다, 각하. 정황을 봤을 때, 아마 한국 정부는 이 시설에 강제로 침입하려는 자가 있으면 시설을 잃을 각오로 시설을 건설했을 겁니다. 만일의 가능성입니다만, 경시하지 않으시는 편이 좋다고 보입니다.”

 

사령관이 씁쓸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이더니 랍토르에게 물었다.

 

“랍토르, 혹시 이 시설에 대해 아는 거 있어?”

 

“죄송합니다, 대통령님. 저도 건설했다는 것만 알았지 위치까지는 정확히 몰랐던 탓에 확실한 정보가 없습니다.”

 

“대체 음성 비밀번호가 뭐란 말이야..”

 

그때 운디네 23이 사령관 옆에서 장난스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하아, 다들 여기 오면 어떤 언어를 써야 하는지 모른다니까?”

 

사령관이 23을 보고 뭔지 모르겠다는 표정을 했고, 뒤의 아르망이 필사적으로 하늘로 시선을 향하며 시선을 회피했다. 그녀의 머릿속에서 저 여자가 벌일 일은 딱 하나였고, 그녀의 빅데이터로 보기에 그 단어가 비밀번호일 확률은 너무 적었다. 운디네 23이 장난스러운 목소리로 스피커에 대고 말했다.

 

“김지석의 안락사..그것만이 유일한 구원..”

 

또 23이 이상한 소리를 한다고 생각한 사령관이 23을 말리려 할 때 문이 반응했다.

 

코드 확인, 출입 허가됨. 환영합니다.

 

지이이이잉..

 

모터 소리를 내며 양 옆으로 열리는 문을 보던 시라유리가 벙 찐 얼굴로 운디네 23에게 물었다.

 

“당신, 혹시 사실 운디네가 아니라 무슨 정보전 특화 모델이었나요?”

 

당황한 23이 답했다.

 

“아니, 진짜 장난친 건데요..”

 

그럼에도 의심스러운 눈을 거두지 않는 시라유리 앞에서 23이 억울한 얼굴로 외쳤다.

 

“아니, 진짜로 그냥 장난친 거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