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GS 등장이 조금 늦음. 양해 바람.




"알래스카의 앵커리지 인근에 이모탈 익스큐셔너 하나와 네스트 하나를 발견했어. 사령관."


그 보고는 12월 9일, 레오나의 입을 통해서였다.

철혈, 그런 이명을 가진 시스터즈 오브 발할라의 지휘관인 그녀의 얼굴은 태연함을 유지하였으나 목소리는 그렇지 못하여 살짝 떨리고 있었다.

네스트와 이모탈 익스큐셔너.

그 두 철충 개체의 악랄함을 가장 잘 아는 바이오로이드 중 한 명이 바로 레오나였기 때문이다.


"우리가 알래스카에 도달할 때까지 얼마나 남았지?"

"12일이야."


오르카 호의 물자 공급을 위해서는 주기적으로 육지에 정박할 필요가 있다.

이번 항해의 목적지가 바로 혹한의 추위가 도사리고 있는 알래스카였던 것이다.


"......"


사령관은 잠시 침묵했다.

둠 이터와 더불어 최악의 철충 개체인 네스트 그리고 이모탈 익스큐셔너.

상륙지에 철충이 있을 거라고는 예상하고 있었지만 저 두 개의 철충은 예상을 한참 빗나갔다.

12일의 시간은 바이오로이드 부대를 파견해 철충을 섬멸하는데 부족함이 없는 시간이다.


하지만 적은 네스트와 이모탈 익스큐셔너.

이모탈 익스큐셔너의 경우 철충의 수색대로 간간이 나오는 것들을 자주 제압해 왔지만 네스트는...이야기가 다르다.

별의 아이와 교전하던 네스트가 함재기의 대부분 잃은 상태에서 저격수들이 사출장치 코어를 파괴하고 그것을 재생하기 전에 토벌한 것이 유일했다.

그때와는 다르게 증강 된 현재 오르카 호의 전력이라면 네스트를 상대할 수도 있겠지만...문제는 또 다른 연결체인 이모탈 익스큐셔너다.


"둘 사이의 거리는?"

"약 200km."


멀다면 멀고 가깝다면 가까운 거리.

두 개의 부대를 파견해 네스트와 이모탈 익스큐셔너 둘 모두를 상대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렇기에 우선 하나를 토벌하고 전력을 추스른 후 나머지 하나를 토벌해야만 한다.


"...시간을 끌어줄 부대가 필요해."


사령관은 이미 머릿속에서 토벌 계획의 뼈대를 세워둔 상태였다.

이모탈 익스큐셔너를 먼저 토벌한 뒤 무적의 용의 함대 포격을 이용해 네스트의 함재기들을 정리하고 단번에 네스트의 본체를 격파하는 것이었다.

그 계획의 가장 중요한 점은 방금 사령관의 입을 통해서 도출되었다.

이모탈 익스큐셔너와의 교전이 시작된 이후, 네스트가 익스큐셔너를 지원하기 위해 보낼 함재기들을 상대로 시간을 끌어줄 부대.


당장 떠오르는 부대는 셋이었다.

첫 번째는 하늘을 나는 함재기들을 효율적으로 상대할 수 있는 스카이 나이츠.

두 번째는 전선의 사수에 특화된 스틸라인.

그리고 세 번째는 알래스카와 같은 극지방에서 싸우는 것을 전제로 창설된 시스터즈 오브 발할라.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는 잘 알고 있어."

"레오나...?"

"혹시나 해서 말해두는 건데 다른 지휘관 개체한테는 그냥 전달만 해둬. 그 역할은, 우리가 맡는다고."


앵커리지, 알래스카 최대의 도시.

인류 멸망 이후에도 여전히 도시의 잔해는 남아 있으며 그런 지형지물을 이용한 싸움은 시스터즈 오브 발할라만한 부대가 없다.

하지만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시스터즈 오브 발할라만으로 네스트의 함재기를 상대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알겠어 레오나. 그 임무는 너와 시스터즈 오브 발할라에 맡길게, 대신."

"대신?"

"한 부대와 함께 해."

"뭐? 설마 사령관, 나를 못 믿는 건..."

"그건 아니야. 레오나."


사령관은 말을 자르며 주먹이 쥐어져 있는 레오나의 손을 부드럽게 쓰다듬었다.


"네스트는 강해. 그런 만큼, 사상자가 나올 우려가 있어. 그걸 방지하기 위해서야."

"...알았어. 그러면 어떤 부대인데?"


그녀가 생각한 것은 수비전에 특화된 캐노니어나 함재기를 상대할 수 있는 스카이 나이츠였다.

하지만 사령관의 입에서 나온 부대는, 레오나의 예상에서 벗어난 이들이었다.


"알바트로스와 스파르탄즈."



***



스코프를 들여다본 채 언제라도 방아쇠를 당길 준비를 하고 있는 T-8W 발키리의 손가락 위로 무언가가 떨어졌다.

휘이이잉.

차가운 바람 속에 내린 눈송이였다.

인류 멸망 이후 방치된 앵커리지 도심은 눈으로 뒤덮인 상태였다.

시스터즈 오브 발할라가 어떤 부대인지를 아는 것처럼, 눈보라가 점점 거세지고 있었다.


"네스트의 함재기가 접근 중이에요."


시스터즈 오브 발할라의 지정 사수, T-12 칼리아흐 베라의 목소리가 통신기를 통해 울렸다.

베라의 정찰 드론이 함재기를 발견하고 고작 1분도 되지 않는 짧은 시간, 발키리의 스코프에서 철충의 함재기가 그 모습을 드러냈다.


"으아아..."


통신기를 통해, 어리숙한 음성이 들려온다.

어딘가에서 바디 벙커를 세운 채 교전을 기다리고 있는 T-13 알비스의 목소리였다.


"침착해 알비스."

"하지만 레오나 대장님..."


알비스가 이토록 당황하는 것도 어떻게 생각하면 당연했다.

지금 당장 발키리의 스코프 안에 보이는 함재기만 해도 수십 개, 스코프에서 눈을 떼면 눈보라가 치는 하늘을 새까맣게 매울 정도로 많았기 때문이다.


"언제까지 어리광을 부릴 생각이야? 침착해."

"네..."


적어도 수백 기의 함재기들, 그 수는 명백히 시스터즈 오브 발할라만으로는 감당할 수 없는 것처럼 보였다.

눈보라가 몰아치며, 그 사이에 함재기들의 부스터 소리가 뒤섞이기 시작했다.


"......"


발키리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조용히, 사정거리 안에 함재기가 들어오기를 기다릴 뿐이었다.

그리고 몇 초 후.


"여기는 S25 스파르탄 캡틴 5번 개체."


시스터즈 오브 발할라와 함께 파견 된 스파르탄즈의 커맨더, 캡틴의 기계 음성이 출력되었다.


"교전을 시작한다."


그 한 마디를 기점으로, 전투가 시작되었다.

배틀 커맨드 프레임의 조정을 끝마친 레오나는 통신기를 통해 침착하게 지휘를 시작했다.


"샌드걸. 눈보라 때문에 시야 확보가 어려워. 적 함재기를 쫓지 말고 님프와 그렘린이 놓치는 것들을 요격해."


"그렘린. 네스트의 함재기가 신기하다고 위험한 짓 하지마. 이건 내 명령이기 전에 사령관이 명령해둔 거야."


"베라. 관측 드론으로 6분마다 적기의 수를 체크해서 나한테 보고해. 그리고 발키리의 위치가 조금 떨어져 있는 만큼 함재기가 많이 몰려들 거야. 발키리를 엄호해."


"알비스?"

"네...레오나 대장님..."

"실수하는 걸 무서워 하지마. 네 곁에는 님프가 있으니까. 그리고 님프, 알비스가 뚫리지 않도록 확실히 요격해."


사정거리 안에 들어오는 함재기들을 하나 둘 씩 저격하던 발키리는 자신을 향해 쏘아지는 총알을 피해 잠시 건물 안으로 몸을 숨겼다.

함재기들은 열 측정 장치가 없으니 이렇게 잠시 모습을 감추면 다시 다른 곳으로 사라진다.

발키리는 그 점을 이용해 계속해서 저격 포인트를 옮겨가며 교전했고, 그러다가 문득 고개를 돌렸다.


".....아?"


전장에서 다른 곳에 신경을 팔지 않는 발키리의 입에서, 탄식이 흘러나왔다.

스파르탄즈와 교전하던 함재기 몇 기가 갑자기 방향을 틀어서, 레오나가 위치한 건물을 향해 날기 시작한 것이다.


"레오나 대장님!"

"왜? 무슨 일..."


발키리라면 어련히 알아서 하겠지, 그렇게 생각하며 굳이 지시를 내리지 않은 레오나였다.

그랬기 때문에 통신기 너머로 들어오는 발키리의 날카로운 목소리에 순간 의문을 품었다.

그 순간, 그녀의 시야 사각에 위치한 곳에서 날아든 함재기에 의해 창문이 박살 났다.


"대장님!"


눈을 감는 법이 없는 설원의 저격수가 저도 모르게 눈을 질끈 감았다.

그 눈을 감은 사이, 치익하는 소리와 함께 레오나가 연결 된 통신이 끊겼다.

그녀가 있었던 건물의 최상층이 폭발하며 유리창이 도로 아래로 떨어지고 그녀와 같은 건물에 있었던 안드바리의 비명 소리가 뒤이어서 울렸다.


잠시 후.


"바, 바 발키리 부관님."


폭발이 잦아들었을 때 통신기를 통해 들어오는 목소리는 안드바리의 것이었다.

발키리는 차마 스코프로 레오나가 있었던 건물을 들여다볼 수 없었다.

최악의 상황이 연상되었기에.


"침입한 함재기는 전부 처리했어요. 하지만...앗, 대장님?!"

"다, 들...듣고 있어?"


안드바리의 목소리가 끊김과 동시에 이어지는 레오나의 목소리.


"지휘가, 조금 힘들어질 것 같아."


시스터즈 오브 발할라의 지휘관, 철혈의 레오나.

그녀의 목소리는 그것으로 끝이었다.


"어떻게 된 거야 안드바리! 상황 보고해!"

"레, 레오나 대장님은 살아계셔요! 교전 끝에 중파 당하셔서, 일시적으로 기절하신 것 같아요."

"....."


청천벽력 같은 소리였다.

안 그래도 불리한 싸움, 레오나가 중파에 빠져 지휘를 내리지 못한다면...그 결과는...

작전의 실패로 이어질 수도 있었으니까.


"시스터즈 오브 발할라, 지휘관 개체 철혈의 레오나가 지휘를 할 수 없는 상황이라고 판단. 일시적으로 T-8W 발키리가 시스터즈 오브 발할라의 임시 지휘관을 맡겠다. 일단 그렘린..."


그녀는 말을 하다 말고 입술을 꾹 짓깨물었다.

레오나와 자신의 지휘 능력은 천지차이라는 표현이 옳다. 아무리 자신이 노력한다 한들 레오나만큼의 지휘는...

못한다고, 그렇게 생각했을 때.


"T-8W 발키리."


그녀의 통신기를 통해 또 하나의 소리가 들려왔다.

목소리가 아닌, 기계의 음성.

이 현장에 있는 또 다른 지휘관 개체인 HQ1 알바트로스.


"어떤 상황인지는 파악했다. 당장은 눈앞의 일에 집중하지."


철충과의 전투에서 무패를 기록했다는 AGS는 어느덧, 레오나가 있었던 건물 앞을 날고 있었다.

그의 헤드파츠는 눈보라 너머의 적들을 보고 있었다.


"지금 당장은 시스터즈 오브 발할라의 생존을 우선해라. 그것이 사령관 각하의 명이다."


네스트가 보내오는 함재기들은 눈보라 속에서 휘날리는 눈송이의 개수만큼이나 많았다.

그것들이 내뿜는 부스터 소리가 겹쳐 흡사 천지가 진동하는 듯한 소음을 낳았다.

함재기들은 모두 한 곳을 향하고 있었다.


"본 기체는 이곳에서 버티며 중파 된 철혈의 레오나를 보호하겠다."


철충의 떼가 모여드는 곳은 알바트로스.

지상의 스파르탄즈와 시스터즈 오브 발할라와 달리 하늘을 날고 있었기에 그곳으로 몰리기 시작한 것이다.


"엄호를 부탁한다."

"...알겠습니다."


레오나는 다시 자신의 총신을 들고 건물에서 빠르게 걸어 내려갔다.

바로 옆, 조금 더 높고 창문이 작아서 일방적으로 쏠 수 있는 건물로 이동했다.


-부우우웅!


어느새 함재기들이 알바트로스가 있는 곳까지 들이닥쳤다.

그것들은 총알을 쏘아냈고 일부 함재기는 아예 알바트로스에게 달려들어 자폭했다.

폭발 사이에서, 알바트로스는 에너지 필드를 전개하여 자신의 동체와 더불어 건물을 완벽하게 보호했다.


"이런 경험은 이전에도 있었다."


알바트로스가 날아오르며 발키리의 통신을 통해 그의 기계음이 들려왔다.


"인류 멸망 후에 복원된 본 기체의 경험은 아니지만."


수십 기의 함재기가 눈보라 속에서 알바트로스를 향해 포화를 쏘아냈다.

다시 수십, 아니 수백 기에 이르는 함재기가 겨울 바람을 뚫고 알바트로스를 표적으로 삼아 비행했다.


"다른 기체의 기억을 이식 받아서 알고 있는 것이다."


그는 전장에 홀로 서 있었다.


"불리한 전투는 인류의 역사에 수없이 많았다. 철충과의 전쟁에서도 마찬가지였다. 그 기체 또한 시민들을 대피 시키기 위하여 다른 AGS의 지원이 없는 전장에 홀로 섰다."


잠시 알바트로스의 기계 음성이 끊겼다.

그의 암캐논에서 쏘아진 레이저가 함재기들을 부수며 폭발하는 소리에 파묻힌 것이다.


".....약 900기의 철충이었다. 폴른 부대가 지원을 오고는 있었으나, 멀었다. 그래서 그 기체는 홀로 불리한 전투를 치렀다."


마치.


"그 기체는 홀로 버텼다. 3분 14초의 시간이었다. 폴른 부대가 도착한 뒤, 시민들을 모두 안전히 대피시키고 폴른 부대를 지휘한 그 기체는 전투를 승리로 이끌었다. 후일 그 전투를 두고 사령관이 한 말이 있다. 혼자서 버틴 것이 주요했다고."


지금, 발키리의 스코프를 통해 보이는 알바트로스처럼.


"폴른 부대가 도착하는 3분 14초의 시간을 벌어주었기에 승리한 것이라 하였다. 사령관은 그 기체를 두고 영웅이라 칭하였다. 314년 동안 가동된 알바트로스가 아닌 시민들이 대피하는데 필요한 3분 14초를 벌어준 알바트로스가 영웅이노라고."


그는 그렇게 말하며 발키리의 스코프 속에서 흐릿하게 보일 정도로 멀어졌다.

눈보라 때문에, 식별이 어려웠다.


"그 기체는 영웅이다. 사령관의 의견에 전적으로 동의하는 바이다."


그 말과 함께.

알바트로스가 눈보라를 흩어버리는 새파란 전격을 뿜어냈다.

수십 기의 철충이 전격에 파손되며 바닥으로 힘없이 추락했다.


"스파르탄즈. 본 기체를 엄호하도록."

"S25 스파르탄 캡틴 3번 개체. 지휘체 알바트로스의 명령을 확인했다."


원래는 각자의 전투를 수행하던 스파르탄즈의 화력이 알바트로스를 추격하는 함재기들을 향했다.


"그래서..."


발키리는 지극히 비정상적인 생각을 품으며 방아쇠를 당겼다.

그 순간 여섯 기의 함재기가 자신을 향해 날아오는 것을 보고 건물의 계단을 빠르게 뛰어 내려갔다.


"그래서 레오나 대장을 보호하기 위해 싸우는 겁니까? 그 알바트로스처럼 영웅이 되기 위해서?"


지휘체 알바트로스라면, 이런 싸움이 아니라 훨씬 효율적인 싸움을 수행해나갈 수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중을 날며 함재기들의 추격을 받으면서도 레오나 대장을 보호하는 알바트로스의 전투에 효율 따위는 찾아볼 수 없었다.


"아니다. 그 기체와 달리 본 기체는 영웅이 될 수 없다. 그 기체는 자발적인 판단으로 시민들을 보호하기 위해 홀로 나선 것이지만 해당 기체는 사령관의 명령을 받아 그것을 수행하는 것이므로."

"그러면 어째서입니까?"


콰앙-!

그녀가 방금까지 저격하고 있었던 건물의 상층부가 폭발했다.

건물이 무너져 내리기 전, 발키리는 무사히 옆 건물로 이동해 몸을 엄폐했다.


"본 기체는 철충과의 전쟁을 위해 설계되었다. 단 하나의 철충도 남겨 놓지 않고 섬멸하기 위해 제작되었다. 그러나 본 기체만으로는 모든 철충을 섬멸할 수 없다. 바이오로이드와의 협력이 불가피하다. 그래서 본 기체는 철혈의 레오나를 보호하고 있다."


공중에서 철충의 함재기가 폭발했다.

그 하나의 폭발은 근처에 있었던, 스파르탄즈의 총격에 파손 된 함재기에 폭발을 일으켰다.

두 번의 폭발과 동시에, 발키리는 눈보라 속에서 한 함재기의 전선이 드러나 있는 것을 발견했다.


"본 기체는 바이오로이드에게서 많은 것을 배웠다. 이렇게 싸우는 방법도 바이오로이드의 전투 방식에서 많이 참고했다. 그리고."


탕-!

방아쇠를 당김과 동시에 그 함재기가 폭발하며 연쇄적인 폭발이 일어났다.


"본 기체 또한 그 정도의 시간을 번 듯 하다."

"....아?"


오늘, 발키리의 입에서 두 번째 탄식이 새어 나왔다.


"아니 본 기체가 더 길었군. 3분 26초다."


하늘에 있었던 연쇄 폭발이 끝나며 다시금 눈보라가 몰아치기 시작했다.

죽여도 죽여도 수가 줄지 않는 함재기들의 수가 대폭 줄어 있는 것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왔다.

함재기들의 공격이 점차 잦아들기 시작했고, 그들은 무작정 알바트로스를 쫓는 것을 멈추었다.

순간, 정적이 흘렀다.


"발키리 부관님!"


휘몰아치는 눈보라 속 통신기를 통해 들어오는 베라의 목소리와 함께 정적이 깨어졌다.

발키리는 정신을 차리고 베라의 통신에 대답했다.


"왜 그래?"

"사령관 님의 통신이에요!"

"뭐?!"

"이모탈 익스큐셔너 토벌 성공. 가장 먼저 AGS들을 보낸다, 라고 하셨어요!"


그때, 무언가가 발키리가 새로 저격 포인트로 잡은 건물 옆을 스치듯이 지나갔다.

그 모습만으로도 발키리는 그것이 무엇인지 알아보았다.

양 어깨에 달린 거대한 강철의 날개, 그리고 새의 다리를 닮은 하체.

파지직 거리는 전기와 함께 나타난, 하나의 AGS.

그 기체는 자신의 날개를 펼쳐 구형 전격을 철충들에게 쏘아냈다.


투두두두-콰앙!

그 한 번의 공격으로 하늘을 날던 수십의 함재기가 격추 당해 바닥으로 추락했다.

그리하여 버려진 도시의 곳곳에 폭발이 일어났다.

아주 찰나의 순간, 눈보라 속에서 다른 모든 것은 흐릿하였으나 그것만은 선명하게 보였다.


"고생하셨습니다."


AGS 로보테크 최고의 역작.

창공의 지배자.

인비지블 스토커.

RF87 로크.

합류.


"사령관 각하의 명을 받아 시스터즈 오브 발할라와 스파르탄즈의 작전 구역에 도착했습니다."

"쿠후후후~!"


직후.

한 번 들으면 잊을 수 없는 특유의 웃음소리와 함께 인간을 닮은 또 하나의 AGS가 나타났다.


"저도 여기에 왔습니다! 이제 제 차례가 아닌가 싶군요!"


웃음소리의 주인은 멋들어진 동체와는 조금 어울리지 않는 방긋 웃는 얼굴을 가지고 있었다.

그것은 땅을 박차고 높이 뛰어 올라 2층 짜리 건물의 옥상 위에 올라갔다.

검은 모자를 살짝 벗었다가 고쳐 쓴, AGS 중 가장 감정적인 AGS가 말했다.


"잘 버텨주셨습니다! 발키리 양! 그리고 시스터즈 오브 발할라의 바이오로이드 여러분."


매서운 겨울 바람이 불었다.

눈보라로 흐릿해져 가는 시야 속에서 무언가가 그 AGS를 따라 모습을 드러냈다.


"이모탈 익스큐셔너의 내구도가 4할에 달했을 때 전투는 승리했다고 판단, 각하께선 우선 AGS들을 파견했습니다! 자, 그러면 여러분!"


수십 기의 AGS들.

강철들이 무거운 구동음과 함께 무기를 겨누었다.


"싹 다 쓸어버리시지요!"


자아를 가지게 된 AI.

궁극의 진화를 추구하는 자.

아키텍트.

MR. 알프레드.

가세.


언젠가부터, 발키리는 방아쇠를 당기고 있지 않았다.

눈보라 속에서 휘날리는 눈송이가 그녀의 개조된 시각에 의해 확대되어 보였다.

마치 시간이 느려진 것처럼, 눈송이는 겨울 바람 속에서 나풀거렸다.


"크아아아!"


그 느려진 시간을 다시 깨우는 괴성이 있었다.

온통 강철 뿐인 이곳에서 그러한 괴성을 낼 수 있는 것은 딱 하나 뿐이었다.


"콰아아아!"


두 다리가 움직일 때마다 땅이 쿵쿵 울리는 듯 하였다.

지금은 철충이 뒤덮은 이 지구의 아주 먼 과거에 있었다는, 고생물을 닮은 그 기체는 괴성을 내지르며 불을 뿜었다.

알래스카의 겨울 바람 속에는 오염된 강철들과 그 강철들에 맞서는 강철들이 있었다.


"지휘체 알바트로스."


창공의 지배자는 자기보다 먼저 창공을 날고 있었던 영웅에게 말을 걸었다.


"지휘를 부탁한다."

"확인. 여기는 지휘체 알바트로스."


"RF87 로크, MR. 알프레드, S5 기간테스, AT72 라인리터, 와쳐 MQ-20, CT-103 포트리스, K180 셀주크, 스파르탄즈와 폴른 부대에게 알린다."


"사령관 각하가 도착하기 전까지, 저 더러운 것들을 무릎 꿇리도록."


차가운 겨울 바람이 불었다.


"가시지요! 발키리 양! 네스트의 토벌을 위해서는 저격수가 필요합니다!"


그녀는 자신을 향해 거대한 팔 두 개를 뻗는 거체를 따라 움직였다.


"제가 호위해드리겠습니다!"


발키리는 모신 나강 라이플을 재장전 했다.

거체에서 사출 된 드론이 쏘아내는 레이저, 그 끝에는 이 함재기들을 사출한 철의 둥지가 있었다.

그녀는 문득 개조 된 눈을 스코프에 대었다.

철의 둥지에 총알이 닿기엔 가로 막는 것이 너무나 많았다.


"여기는 지휘체 알바트로스."


그녀의 머리 위를 나는 AGS가 말했다.


"전송한 좌표로 무적의 용 휘하 호라이즌 부대의 포격을 요청한다."

"해당 지역의 아군이 포격에 휩쓸릴 우려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 좌표를 수정하여..."

"아니다. 아군은 휩쓸리지 않는다. 본 기체의 에너지 필드가 아군을 보호할 것이다."

"알겠소. 들어라! 전 함대 포격 개시!"


눈보라가 휘날리는 하늘을 가르며 수십 개의 포탄이 날아들었다.

선봉에서 날뛰고 있는 타이런트를 비롯한 AGS들을 포탄의 폭발로부터 보호하는 새파란 빛이 있었다.

포탄은 아군에게 피해를 입히지 못하였다.

그 폭발 사이로 괴성을 내지르며 날뛰는 수렴 진화의 결정체가 있었다.


"거의 다 왔습니다! 발키리 양!"


폭발과 화염이 걷어진 후.

철의 둥지와 그녀 사이를 가로 막는 것은 없었다.


"우리는."


순간.

발키리는 방아쇠에 손가락을 올린 뒤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했다.


"눈보라 속에서 명예를 기다린다."


단 한 발의 총성이 있었다.

그것은 겨울 바람을 뚫고 나아가, 철의 둥지에 닿았다.


"앗! 발키리 양!"


한 발의 총성 이후.

수십 발의 총성이 있었다.

여전히 하늘을 새까맣게 뒤덮은 강철들이 그녀를 노린 것이었다.


"발할라에서 기다리겠습니다."


그녀는 자신을 향해 육박하는 탄환들을 보고.

다만 그렇게 중얼거렸다.


".......!"


곧, 아무것도 들리지 않게 되었고.

그녀의 의식이 멀어졌다.



***



서서히, 다시 의식이 깃든다.

눈을 뜬 발키리는 자신의 주변에 깔린 어둠을 보고 문득 그곳이 발할라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전사들에게 있어 축복의 땅인 발할라라고 하기에는 너무나 고요했다.


새근새근.

아주 옅은 숨소리가 있었다.

그녀가 눈을 뜬 침대의 옆 침대에서 잠들어 있는 레오나였다.


"...아."


발할라에는 닿지 못했다.

그것을 한 차례 자각한 뒤 발키리는 자신의 기억 속에 새겨진 마지막 장면을 떠올렸다.

바이오로이드에게 우호적이지만 바이오로이드와 접촉할 수 없는 비운의 AGS가 자신을 대신해 함재기의 공격을 막아주었다는 것을.


"오, 발키리 양. 깨어나셨습니까?"

"...알프레드?"

"쿠후후후. 저도 수복실 신세를 지게 되었습니다. 본체는 수복하고 있지만 원래의 저 MR. 알프레드는 멀쩡합니다!"


새빨간 몸의 이족 보행 로봇이 방긋 미소 지었다.


"어떻게...된 겁니까? 네스트는요?"

"발키리 양이 사출 장치 코어를 파괴해주신 덕분에 무사히 토벌했습니다! 그 후 함재기들이 발키리 양을 공격하여 제가 움직여 공격을 몸으로 받아냈지요!"

"아...가, 감사합니다."

"괜찮습니다! 어차피 저는 멀쩡하니까요. 로버트의 동체야 어찌되든 상관 없습니다."


그가 쿠후후후 웃으며 말을 이었다.


"토벌 이후는 일사천리였습니다. 중파 된 레오나 양과 기절한 발키리 양을 구조하고...무사히 물자를 보급해 다시 저희 오르카 호는 바다 아래에 있습니다."

"저희 부대원들은..."

"안드바리 양이 살짝 다친 것 외에는 전원 무사하십니다! 수복실에 들릴 필요도 없는 경상이었습니다. 아, 그런데 지휘체 알바트로스와 무슨 일이 있었습니까?"

"알바트로스요? 일이...없지는 않았는데..."

"지휘체 알바트로스가 발키리 양이 깨어나면 저더러 대신 질문해달라고 부탁하더군요. '본 기체는 영웅에 가까웠는가?' 라고요."


그 질문을 듣고, 발키리는 잠시 입을 다물었다.

스스로가 명령을 따를 뿐이니 영웅이 될 수 없노라고 말했음에도 불구하고 재차 저렇게 질문하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마치 로크와 눈앞의 알프레드나 감정 모듈을 탑재한 셀주크나 할 법한 질문이었다.


"네."


그래서 그녀는 그렇게 대답했다.


"다른 바이오로이드나 각하께선 그렇지 않다고 생각할 수는 있어도, 최소한 저에게는 영웅에 가까웠습니다."

"쿠후후후. 알겠습니다. 그렇게 전달해드리지요."


이윽고 알프레드는 주위를 한 차례 둘러보는 듯 하더니 기계 음성의 성량을 작게 줄인 뒤 속삭이듯 말했다.


'사령관 각하께서 이번 토벌전에서 활약해주신 발키리 양에게 포상을 주시겠다고 한 걸 제가 들었습니다. 새벽에 몰래 수복실에서 나와 달라고 하시더군요.'

'아...'

'오호호홓. 이제 저는 아무 것도 모르는 겁니다. 다른 바이오로이드 양에게 저에게서 들었다고 말하지 말아주십시오.'


모자를 한 차례 벗었다가 다시 쓰며 허리를 살짝 숙여 인사한 알프레드는 그대로 본체 옆으로 돌아갔다.

마치 잠든 것처럼, 그는 얼굴 부분의 LED를 꺼뜨렸고 그것을 확인한 발키리는 남몰래 수복실에서 걸어 나와 비밀의 방을 조용히 노크했다.






대회 규정에 메카가 주인공이어야 했는데 쓰다보니 발키리가 주인공이 된 것 같은...

아무튼 간지 짱짱한 알바트로스 스토리 좀 만들어줘라 스작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