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https://arca.live/b/lastorigin/22938492


그 일이 있고서 나는 곧장 철남이에게 찾아가서 사과하고 싶었지만,

 

일은 좀처럼 내 뜻대로 되지 않았다.

 

그 다음 날 아침.

 

나 혼자서 학교에 오자 분위기가 약간 이상했다.

 

하지만 그런 분위기 따위는 아무래도 좋았다. 나는 수근대는 소리를 무시하고 철남이에게 향했지만,

 

철남이는 내가 다가가려고 할 때마다 도망쳐버리고 말았다.

 

이번에야말로 놓치지 않겠어. 그렇게 생각한 점심시간.

 

핀토가 굳은 표정으로 들어와서는, 철남이를 쥐어 패 버렸다.

 

그런데, 철남이의 상태가 영 이상했다.

 

핀토는 진짜로 화가 난 것 같았다. 아무런 브레이크 없이, 정말 죽일 기세로 철남이를 때렸다.

 

그런데, 철남이는 아무 반응도 없었다.

 

막지도 않고, 피하지도 않고. 그저 멍하니 핀토가 때리는 대로 맞고 있을 뿐이었다.

 

나는 소스라치게 놀라서 핀토를 뜯어말리고는, 핀토를 데려가서 모든 사정을 설명했다.

 

핀토는 나에게 무릎까지 꿇어가면서 사과했지만, 나로서는 아무런 감정의 동요도 생기지 않았다.

 

나는 그저, 철남이의 상태가 너무나 궁금할 뿐이었다.

 

철남아, 너 지금 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거야.

 

내 머릿속은 온통 그 생각뿐이었다.

 

 

 

 

 

 

 

 

 

신은 그런 내 마음을 알고 놀리기라도 하는 건지,

 

나는 몇 달을 철남이와 아무런 대화도 하지 못했다.

 

카톡을 해도 답장이 없고, 전화를 해도 받지 않았다.

 

언젠가는 기분을 풀어 주겠지. 그 때 찾아가서 제대로 사과해야겠다.

 

그렇게 생각하던 나의 뒤통수를 때리듯이, 철남이가 웬 이상한 학교를 지망했다고 듣게 되었다.

 

나는 이대로 내 인생에서 철남이가 사라지게 내버려 둘 수는 없었다.

 

나는 철남이를 따라서 그 학교에 지원했다.

 

이러면 조만간 연락이 올 거다.

 

 

 

 

 

 

 

내 예상은 맞아서, 나는 얼마 지나지 않아 철남이와 통화할 수 있었다.

 

철남이가 시재 중학교 시험을 같이 보자고 했다.

 

나는 그 날만을 목 놓아 기다렸고, 함께 시험을 보러 간 날.

 

"...나, 너랑 같이 학교 다니고 싶어."

 

사과를 해야 했는데.

 

나도 모르게 내 입에서 나온 건, 나의 소망. 너와 언제까지라도 함께 있고 싶다는 바람.

 

하지만 철남이는 그런 내 이기적인 소원을 기꺼이 들어주겠다고 한 것이었다.

 

 

 

 

 

 

 

철남이도, 나도 시재 중학교에 합격했다.

 

철남이와는 다시 같은 반이 되었다.

 

그리고 나는 일단 한 숨을 돌렸다. 철남이의 태도 때문이었다.

 

중학생이 되었다고 해서 날 피하던 철남이의 모습이 극적으로 변할 거란 기대는 딱히 없었지만, 

 

무언가 심경의 변화가 있었던 것인지, 굳이 내가 옆에 있다고 해서 도망치거나 하지는 않았다.

 

절대로 먼저 말을 걸려고 하지는 않지만, 내가 걸어온 말은 절대로 무시하지 않았다.

 

그러니 이제는 철남이에게 사과의 말을 건네야 했다.

 

하지만,

 

'...집에 가라. 나 혼자 있고 싶으니까.'

 

도저히 입술이 떨어지지를 않았다.

 

철남이의 반응을 상상하는 것은 너무 두려웠다.

 

그래서 나는 꾀를 냈다.

 

철남이는 묘하게 완고한 구석이 있지만, 동시에 한 번 맺은 약속은 무슨 일이 있어도 지키는 사람이다.

 

전보다는 나아졌지만, 여전히 철남이는 나와 필요 이상으로 가까워지는 것을 피하고 있었다.

 

저 고집쟁이가 끽소리도 내지 못하게 하려면 객관적으로 보이는 숫자가 필요했다.

 

그래서 나는 집요하게 철남이에게 찾아가서 성적 내기를 하자고 졸랐다.

 

내 속내를 대충 짐작하고 있었던지 완고하게 버티던 철남이였지만, 

 

역시 끝까지 버티지는 못하고 내키지 않는다는 티를 팍팍 내면서 승낙해 주었다.

 

그 뒤는 뭐 당연한 결과라고 해야 할까. 내가 이겼다.

 

나는, 철남이에게 나와 고등학교를 같이 다녀 달라고 부탁했다.

 

마지못해서 승낙하는 철남이의 얼굴을 보고서, 나는 알 수 있었다.

 

철남이는 내가 미워진 것이 아니라는 것을 말이다.

 

그렇게 확신한 나는, 멋진 장소에서 제대로 된 사과를 하고 싶었다.

 

그래서 여름방학에 우연을 가장하고 철남이와 만나서, 철남이에게 놀러 가자고 권유했지만,

 

'...미안하다 미호야.'

 

...그래, 철남아.

 

너는, 내가 미워지지 않은 것뿐만 아니라,

 

오히려 나에게 죄책감을 안고 있었구나. 잘못한 것은 전부 나인데.

 

 

 

 

 

그러고서 다시 연락이 끊긴 철남이를 그리워하다 여름이 끝나고,

 

2학기가 시작하는 첫 날.

 

오늘은 반드시 철남이와 등교하고 싶었던 나는 평소보다 조금 일찍 집을 나섰다.

 

그리고 나는, 깜짝 놀랐다.

 

집 앞에 철남이가 있었다.

 

"...기다리고 있었지."

 

"나를?"

 

"어, 해야 될 말도 있고."

 

해야 할 말은 나도 있는데 말이지.

 

그리고, 철남이는 내게 사과했다.

 

철남이의 표정과, 그리고 침울한 목소리, 무엇보다도 평소와는 역전된 이 상황이, 철남이의 진심을 보여주고 있었다.

 

...또 다시, 나는 너에게 매달리고 말았네.

 

내가 먼저 사과하겠다고 생각했는데, 결국은 네가 먼저 사과하게 만들고 말았구나.

 

고마워, 철남아.

 

이제는 정말로 내가 너에게 다가갈게. 무슨 일이 있어도.

 

지금 네가 나에게서 눈을 돌리는 이유가 뭔지, 잘은 몰라도. 네가 나에게 다가오지 않는다면, 그 때까지 내가 다가갈게.

 

그래서 나는, 철남이의 사과를 변명삼아서 철남이에게 팔짱을 꼈다.

 

얼굴이 달아오르고, 심장 소리가 여기까지 들리는 듯하다.

 

약간 단단한 철남이의 팔에, 가슴이 쿵쾅거린다.

 

옆을 보자, 내 반대편을 돌아보는 철남이의 귀가 발갛다.

 

철남이도 나와 같은 마음인 걸까.

 

그걸 보고서 나는 결심했다.

 

앞으로 남은 중학교 2번의 여름마다, 철남이에게 다시 권유할 것을.

 

너도 나를 좋아한다면, 그렇다면 조금씩 너와 가까워지면 되겠지.

 

거절당해도 좋다. 차여도 좋다.

 

시험 내기를 핑계 삼아서, 언젠가는 반드시 너를 솔직하게 만들어 주겠어.

 

남은 시간은 2년. 긴 듯 짧은 시간이다. 세 번의 여름 중에서, 이미 한 번은 지나버렸다.

 

그 동안에 네가 나를 볼 수 있도록 만들겠어. 이건 너와 나의 승부다.

 

그렇게 다짐한 나는 1학년의 나머지 반 동안 철남이와 좀 더 가까워지기 위해 이것저것 다 해 보았지만, 역시 마음먹은 대로 모든 것이 잘 돌아가지는 않았다.

 

이철남 이 둔해 빠진 새끼. 완고한 새끼.

 

무언가 계기가 될 만한 것이 필요했다.

 

그리고 2학년이 되어서, 우리 둘의 사이에 큰 전환점이 될 일이 있었다.

 

2학년이 되고 학교에 간 첫 날, 어쩐지 시끄럽던 복도를 지나 들어선 교실에는...

 

전학생이 와 있었다.




전학생은 순식간에 우리 반을 장악했다.

 

사실 솔직하게 말하자면 나는 전학생이 영 마음에 들지 않았다.

 

아무래도 철남이는 자신보다는 전학생이 훨씬 나와 어울린다고 여기는 것 같았다.

 

바보 같은 소리. 철남이가 아니면, 나는 죽어도 싫은데...

 

철남아, 너는 대체 왜 이렇게 둔해 빠진 거니?

 

속없는 철남이에게 내심 서운한 감정을 느꼈다.

 

 

 

 

 

 

"미호야"

 

"웅웅!"

 

"이번 시험... 내기 그만해도 좋으니까, 부탁 하나만 할게."

 

"뭐?? 왜? 자신 없어? 내가 너무 너 놀렸어? 미안ㅠㅠ"

 

"아니야. 그런 거 아냐. 니 소원 내가 들어줄게. 그러니까 나도 부탁 하나만 하게 해줘"

 

"뭔데?"

 

"너, 이번 시험 무조건 전교 1등 해줘."

 

철남이에게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내 소원은 뭐라도 들어줄 테니 전교 1등을 해 달라고 했다.

 

나를 피하는 것 아니었나?

 

내가 원하는 소원이 뭔지, 진작에 눈치 채고 있었을 텐데.

 

평소 모습으로 볼 때는 절대로 상상할 수도 없는 철남이의 부탁에서 무언가 이상을 느꼈기에, 나는 그저 공부에 매진하는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전교 1등의 자리를 재탈환한 나는 당당히 철남이에게 가서 수영장으로 가자고 권했고, 철남이는 흔쾌히 수락했다.

 

 

 

 

 

 

 

몇날 며칠 동안이나 핀토를 괴롭혀서 고른, 가장 마음에 드는 수영복을 입고, 철남이와 수영을 하러 왔다.

 

그런데 철남이는... 맥주병이었다. 살짝 놀려주자 거의 울 것 같은 표정을 하는 것이 아닌가.

 

철남이를 버려두고 나 혼자 수영을 할 수도 없는 노릇이라 철남이에게 수영을 가르쳐 주다가.

 

"앗"

 

철남이가 내 쪽으로 넘어졌다.

 

가까이 붙어보자, 생각보다 넓은 어깨. 탄탄한 가슴팍. 나를 안은 너의 숨소리가, 내 귓가를 간지럽힌다.

 

이러면 안 되는데.

 

나도 모르게 내 손이 움직여서 철남이의 허리를 감싸고...

 

그리고 철남이의 두 팔도 내 어깨를 감싸안았다.

 

그렇게 한 동안 우리는 가만히 서로를 안고 있었다.

 

 

 

 

 

 

그 일이 있은 후 부터는 철남이의 태도가 바뀐 것을 확실히 알 수 있었다.

 

묘하게 나를 꺼리던 태도는 어디로 가고, 오히려 내가 부끄러워서 튕기게 될 정도로 묘하게 들이대기 시작했다.

 

그래, 운동회 때에도. 그리고 발렌타인데이, 화이트데이 때에도...

 

나는 철남이의 얼굴만 보면 얼굴이 달아오를 지경이었다.

 

하지만 내심으로 나는 그런 변화를 은근히 반겼다.

 

그럴싸한 이벤트가 있을 때마다 나서서 나를 놀래켜 주는 철남이의 모습에, 

 

나는 아예 수학여행을 손꼽아서 기다릴 지경이 되었다.

 

이번에는 과연 철남이가 나에게 어떤 놀랄 일을 가지고 올지. 나는 설렜다.

 



그리고 기대 속에 출발한 수학여행에서,

 

전학생, 아니, 미남이가 나에게 고백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