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편모음 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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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 Day 77. AM 07:41

 

 따뜻한 햇살이 내리쬐는 오르카 1호의 함교, 평소에는 잘 쓸 일이 없던 그곳에 여러 이들이 모두 긴장된 얼굴을 띄운 채 각자의 테이블 앞에 앉아 각각의 홀로그램 패널들을 연신 두들기고 있었다.

 

“주인님! 스틸라인 제1부대, 상륙 포인트 인근에서 철충과 조우! 전투에 돌입합니다!”

 

“알겠다. 콘스탄챠. 지금 즉시 AGS 강하부대를 출격시켜라.”

 

 다수의 메이드가 저마다의 테이블 앞에 앉아 전투 보고를 올리자 그것을 사령관은 묵묵히 고개를 끄덕여 가며 듣고 있었다.

 그의 함교 테이블 위에는 홀로그램 패널 대신 거대한 3D 입체 영상이 그의 눈앞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사령관은 왼손에는 담배를, 오른손에는 검은색 플라스틱 지휘봉을 쥔 채 자신의 정면을 가린 3D 입체 영상을 응시했다.

 

“...”

 

 입을 꾹 닫은 채 가로로 쭉 찢어진 눈매가 돋보이는 그의 눈에 들어오는 것은 다름 아닌 섬의 모습을 띤 3D 홀로그램 영상, 그의 작전 지휘용 홀로그램 영상이었다.

 섬의 전체적인 모습을 띤 영상의 곳곳에는 주홍색의 바이탈 마크들과 적색의 바이탈 마크들이 섬 곳곳에 펼쳐져 있었으며 사령관은 바이탈 마크들 중앙에 놓인 각 부대의 기호들을 눈여겨 보기 시작했다.

 사령관이 왼손에 든 담배를 입에 가져가자 그의 곁에 서 있던 은발의 메이드, 블랙 리리스가 그의 담배 끄트머리에 라이터를 가져다주었다.

 

“주인님, 실례할게요.”

 

칙-

 

“..후우, 고맙다. 리리스.”

 

“후훗, 뭘요,”

 

 담배의 꽁지에 불꽃이 타오르자 사령관의 살짝 열린 입술 사이로 매캐한 담배 연기가 새어 나와 환한 햇빛이 무색해지는 어두운 분위기가 퍼져 나갔다.

 사령관은 눈으로 연기를 한 번 쫒다 이내 오른손에 든 지휘봉을 홀로그램 영상에 가져다 대며 말문을 열었다.

 

“바닐라, 앵거 오브 호드의 색적 반응이 느리다. 스카이 나이츠에게 연락해 섬 중앙 색적 정보를 전달하도록 해라.”

 

“이익! 주인님, 지금 제가 노는 걸로 보이십니까?”

 

 그의 무뚝뚝한 명령에 연신 자신 앞에 놓인 패널을 두드리던 바닐라가 짜증이 섞인 얼굴과 함께 그를 향해 고개를 홱 돌렸다. 하지만 그녀의 짜증에도 불구하고 사령관은 묵묵히 말을 이어갔다.

 

“색적이 늦어질수록 전투의 흐름이 느려진다. 어서.”

 

“..알겠습니다. 그리고 함교에서 담배 좀 그만 피우세요!”

 

“..못 들은 걸로 하지.”

 

 연신 자신을 노려보는 바닐라의 녹빛 눈동자를 사령관은 애써 무시하며 입에 문 담배를 다시 한 모금 깊게 빨기 시작했다. 독한 담배 연기가 입속을 지나 목구멍 너머로 들어가 폐속을 가득 채우자 사령관은 눈살을 살짝 찌푸렸다.

 

“주인님, 마실 걸 드릴까요?”

 

 블랙 리리스의 물음에 사령관은 홀로그램 영상에 눈을 고정한 채 고개만 끄덕였다. 텁텁해진 입안과 메마른 목구멍의 따가움을 참기 힘든 타이밍이었다.

 

“캔 홍차, 시원한 걸로 부탁하마.”

 

“..네에~알겠어요.”

 

 사령관의 주문에 블랙 리리스는 이전의 평온함을 지우고 살짝 삐친 얼굴로 돌변하며 그의 곁을 잠시 떠나갔다. 그런 그녀의 뚜벅이는 발걸음을 뒤로 한 사령관은 지휘봉을 홀로그램 영상에 댄 채 섬의 여러 곳을 주시했다.

 

‘스틸라인 부대원들의 바이탈 사인에는 문제가 없다. 아직 중상자는 생기지 않은 모양이고.’

 

“후우-”

 

‘앵거 오브 호드는 여전히 빠르구만. 이대로라면 터닝 포인트까지 앞으로 삼사십 분 안에 도착할 거야. 거기서 보급을 해야겠어.’

 

 쉴 새 없이 움직이는 바이탈 마크를 빠른 눈으로 훑던 사령관은 이내 테이블 위를 지휘봉으로 두들겼다. 그러자 홀로그램 영상 아래로 다른 스크린이 모습을 드러냈다.

 

“알바트로스.”

 

-불렀나, 사령관.

 

 감정이 묻어 나오지 않는 사령관의 어조만큼이나 딱딱한 기계음이 테이블에 달린 스피커 너머로 들려오자 사령관은 고개를 살짝 끄덕이며 스크린 속의 로봇, HQ-1 알바트로스와 대화를 이어갔다.

 

“AGS 강하부대의 출격을 허가했다. 받았나?”

 

-사령관, 나는 바이오로이드들의 명령을 듣지 않는다. 앞으로는 그대가 직접 내게 연락해주길 바란다.

 

“...그녀들은 너와 같이 내 직속부대 일원들이야. 내가 그녀들을 통해 명령을 전달하는 것조차 못 듣겠나?”

 

 사령관은 새까만 스크린 너머에서 자신을 응시하고 있을 알바트로스의 두상 파츠를 연상하며 미간을 찌푸렸다. NNIE 회로의 도움을 받아 차분함을 유지하고 있던 그의 목소리에서 짜증이 섞여 나옴에도 알바트로스는 차가운 기계음으로 그의 물음을 되받아쳤다.

 

-우리는 인간의 명령만을 따른다, 사령관. 만일 그대가 바이오로이드들을 통해 명령을 내리면 그것들이 우리를 자기들 아래로 보고 그대의 이름을 빌려 우리에게 명령하는 일이 생길 수 있다. 그것을 방지하기 위해서라도 이는 필요한 절차다. 사령관.

 

“...그래, 앞으로는 조심하겠다.”

 

 사령관은 필터까지 다 탄 담배꽁초를 입에서 떼어 재떨이 위에 강하게 비벼대었다. 그의 이마에는 여전히 주름이 서려 있었다.

 

“..하여튼 상관없다. AGS 강하부대, 출격해라.”

 

-알겠다. 사령관.

 

“그리고..스틸라인의 불굴의 마리 4호의 전투기록들을 전부 네 데이터베이스에 업로드 할 수 있도록.”

 

 사령관이 할 말을 다 했다는 듯 지휘봉을 다시 테이블 위에 두드리려 하자 이번에는 알바트로스가 말을 이어갔다.

 

-사령관, 그 명령은 불필요하다. 불굴의 마리 4호의 전략과 전술은 모두 내 데이터베이스에 등록되어 있다. 따라서 그녀에게 배울 것은 더는 없다.

 

“..명령이다. 알바트로스.”

 

 사령관은 더 이상 반박을 받지 않겠다는 투로 말하고선 공중에 멈추었던 지휘봉을 테이블 위에 두들겼다. 그러자 섬의 모습을 투영한 홀로그램 영상 아래에 있던 스크린이 모습을 감추었다.

 

‘..생각외로 자존심이 강하단 말이지. 알바트로스는.’

 

 사령관이 머릿속에서 지금쯤 격납고에서 푸른 안광을 내뿜고 있을 거대한 로봇을 연상하던 사이, 불쑥 그의 시야 앞으로 은색의 캔이 흰 장갑과 함께 들어왔다.

  캔을 건네받은 사령관이 고개를 슥 오른편으로 돌리자 얼굴에 불만이 한가득 담긴 블랙 리리스의 투정 어린 대답이 돌아왔다.


“주인님이 주문하신 캔 홍차에요. 흥!”

 

“? 아, 그래.”

 

"..."

 

“..고맙다. 리리스.”

 

 이미 은색 빛의 캔 홍차의 캔 따개를 열어둔 그녀의 배려에 사령관은 입꼬리를 쓱 올리며 텁텁한 입안으로 캔 홍차를 들이부었다. 시원한 음료와 독특한 향이 말라붙은 목을 스쳐 내려가자 사령관은 정신을 다잡고 눈을 홀로그램 영상으로 돌렸다.

 

‘스틸라인은 북상, 아직까진 문제가 없어. AGS 강하부대가 합류하면 손실율, 아니. 부상률도 낮아지겠지. 앵거 오브 호드도 문제가 없고. 그럼 시스터즈 오브 발할라는..’

 

 사령관은 섬의 중앙을 응시하다 이내 섬의 남동쪽에 있는 바이탈 마크로 눈길을 돌렸다. 그 지역 역시 주홍빛의 바이탈 마크와 적색의 바이탈 마크들이 연이어 드러났으나 적색의 바이탈 마크들은 나오는 족족 영상 위에서 모습을 감추고 있었다.

 그는 그것을 보고는 고개를 살짝 끄덕이며 그곳에서 눈길을 떼었다. 이윽고 그는 자신의 테이블을 건너가 함교의 정중앙으로 걸음을 옮겼다.

 

뚜벅-뚜벅-

 

 그가 구두굽 소리를 내며 함교 앞으로 걸어 나오자 함교에 있던 이들 모두가 하던 일을 멈추고 그에게 시선을 고정했다. 사령관은 밝은 햇빛이 들어오는 함교 전면에 설치된 강화 유리 앞으로 걸어 나와 저만치 보이는 섬에 시선을 고정했다.

 

‘오늘은 레오나가 없지만, 이제는 그때처럼 허둥대서는 안 되겠지. 내가 할 수 있는 것, 그것만 생각하자.’

 

“..오르카 1호의 함교 모두에게 알린다. 지금 즉시 오르카 1호를 상륙지점까지 이동시켜 그곳에 정박하게 한다. 이후, 임시 보급기지와 구호기지를 설치, 출격 대기 중인 부대들 역시 정박 이후 출격할 수 있도록.”

 

‘트리아이나 곁에 토모를 붙여뒀으니 로크와 조우 시 내게 바로 연락하겠지. 그때까지만 힘을 좀 내자.’

 

“각 부대의 색적 정보를 모든 부대의 지휘 모델에게 일제히 송신하고 또한 업데이트를 실시간으로 시행해라.”

 

‘내 한마디나 느려질 때마다, 부상자는 늘어나. 내가 똑바로 행동해야 해.’

 

 따스한 햇볕 아래, 그의 흰색의 함장 제복이 더욱더 환하게 빛이 나자 그의 등을 바라보던 이들의 얼굴에도 미소가 걸렸다.

 

“오르카 1호! 전진! 목표는 저 섬이다!”

 

 그것을 모르는 사령관은 그저 섬을 바라보며 오른손에 든 지휘봉을 꽉 쥐며 이번에는 큰 목소리를 내며 자신의 각오를 다졌다.

 

‘난 성장하겠다. 주인공으로서도, 사령관으로서도.’

 

“에이다, 내 앞에 섬의 정보를 올려라. 지금부터 보급 포인트를 지정하겠다.”

 

-알겠습니다. 사령관님.

 

 사령관은 두 눈을 부릅뜬 채 강화유리 전면 위로 펼쳐지는 섬의 홀로그램 영상 위로 지휘봉을 들어 올렸다. 이제는 자신이 나설 차례다, 섬의 이곳저곳에서 펼쳐지는 전장 위로 사령관은 천천히 지휘봉을 두며 더치걸 109가 건네준 담뱃갑을 열어 재끼며 그 안에 수북이 놓여있는 담배 중 하나를 입에 물었다.

 

칙-

 

“후우..”

 

 사령관이 담배 연기를 입밖으로 내뱉자 환한 햇빛이 스며들어오던 강화유리 전면에 뭉게뭉게 담배 연기가 부딪혀 그의 시야를 흐리게 만들었다. 흐릿해지는 시야 사이로 익숙한 3D 입체 영상이 떠오르자 그는 오른손에 든 지휘봉을 들어 올림과 동시에 왼손으로 입에 문 담배를 빼내었다.

 문득 고개를 내려 왼손에 들린 담배를 보자 사령관의 뇌리에 어떤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근데 지금까지 내가 몇 갤 폈더라?”

 

 여전히 어리숙함을 못 벗은 사령관은 슬그머니 담배를 다시 입에 물며 눈앞의 홀로그램 영상으로 눈을 돌렸다.

 

‘..레오나도 없는데, 그냥 나중에 물어보면 안 폈다고 할까? 아니다. 냄새가 나니까 2개? 그래. 2개라고 하자.’

 

 그런 그의 등을 멀리서 지켜보던 블랙 리리스는 작은 미소를 입가에 건 채 함교의 구석진 곳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사령관이 지휘봉을 들고 함교 정중앙 홀로그램 영상에 보급 포인트를 설정하는 것까지 확인한 그녀는 재빨리 단말기를 두들겨 어딘가로 통화를 걸기 시작했다.

 

35) Day 77. AM 07:43

 

“...하아.”

 

 따스한 햇볕이 구름 한 점 없는 하늘 아래, 섬의 곳곳에 그 은혜를 내리쬐었으나 우거진 수풀이 그 은혜를 가로막아 섬의 남동쪽의 전장은 대낮임에도 불구하고 짙게 깔린 그늘막 속에 있는 것처럼 환하기보다는 어두운 분위기가 맴돌고 있었다.

 그러나 그곳에는 짙게 깔린 그림자가 무색해질 정도로 눈과 같이 새하얀 정복을 차려입은 여성들이 저마다 색색의 머릿결을 흩날리며 그 어둠을 거두어내고 있었다.

 

타-앙!

 

“발키리 언니! 나이스!”

 

“..이 정도는 아무것도 아닙니다. 님프.”

 

 당찬 목소리와 함께 함박 미소를 짓는 님프의 응원에 적색 와인을 연상시키는 며리결의 주인공, 발키리는 작은 미소를 입가에 걸은 채 그녀의 손에 들린 저격총의 스코프에서 눈을 떼었다.

 이곳은 험지와 특수전을 기반으로 만들어진 그녀들에게 적합한 전투 환경, 시스터즈 오브 발할라의 주 무대에 어울리는 전장이었다.

 

“알비스! 2시 방향에 철충이야!”

 

“응! 베라 언니!”

 

 주홍빛의 단정한 단발을 찰랑대는 푸른색의 눈동자가 인상적인 소녀, 베라의 외침에 설원의 토끼와 같은 머리띠를 한 작달막한 소녀가 재빨리 자신의 덩치 만한 방패를 들어 수풀 사이로 몸을 내던졌다.

 그러자 기다렸다는 듯 검 붉은색의 철충 하나가 우거진 수풀 사이에서 튀어나와 그녀들을 향해 포화를 내뿜었다.

 

타-다다당!

 

“헤헤! 그 정도로는 알비스의 방패는 못 뚫지!”

 

팅-! 팅-!

 

 흰 토끼와 닮은꼴의 소녀, 알비스는 만면에 미소를 띤 채 방패를 앞세워 자신의 자리를 사수했다. 이윽고 그녀를 향해 총알 세례를 내뿜던 나이트 칙의 기관총 소음 사이에 작은 총성이 섞여 나왔다.

 

탕!

 

-?!

 

 연신 하단부에 달린 기관총의 총열을 돌려대던 나이트 칙은 자신의 정중앙에 박힌 권총 탄알에 잠깐 멈칫했으나 이내 본체의 데미지가 적은 것을 확인, 다시 기관총을 들어 은색의 방패를 향해 포화를 퍼부으려 들었다. 하지만 이미 표식이 박힌 나이트 칙에게는 다음이란 없었다.

 

“..치워 버려.”

 

투-두두!

 

탕! 탕!

 

 숲속을 휘젓는 바람과 같이 잔잔한 미성이 숲속 어딘가에서 흘러나옴과 동시에 나이트 칙의 사방에서 일제히 격렬한 빛발이 뿜어져 나와 나이트 칙의 장갑을 종잇장처럼 꿰뚫어 버렸다.

 무어라 행동을 취하기도 전에 전신에 추한 구멍들이 생겨버린 나이트 칙이 서서히 원형 몸체를 땅에 뉘자 햇볕에 가려진 수풀의 그림자에서 멋들어진 흰 제복을 입은 여성을 모습을 드러내었다.

 

“..별거 없네. 베라, 적은 이게 다니?”

 

 짙게 깔린 그림자마저 무색해지는 환한 밝은 빛을 머금은 금발을 허리까지 내린 회색빛 눈동자의 미녀, 철혈의 레오나는 오른손에 검은색 권총을 든 채 쓰러진 나이트 칙의 검은색 장갑을 새하얀 하이힐의 앞부분으로 톡톡 차며 그녀를 향해 달려오는 베라에게 시선을 주었다.

 

“네, 대장님. 이 부근에는 더 이상 적영이 보이지 않아요.”

 

 철혈의 레오나는 베라의 대답에 재미없다는 듯 흥하고 콧소리를 내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이미 한 번의 격전이 지난 숲의 나무들의 사이사이에 여러 개의 가지가 부러지고 총알이 여럿 박혀 있었으나 그것은 그녀들의 작품이 아녔다.

 그녀들의 적인 철충들이 남기고 간 흔적들, 철혈의 레오나는 그것을 확인하고선 권총의 총열로 자신의 관자놀이를 톡톡 두들겼다.

 

“..그래? 그럼 모두 잠깐 쉬었다 가자.”

 

“어머, 언니. 벌써요?”

 

 어느새 그녀 곁으로 다가온 님프의 되물음에 철혈의 레오나는 회색의 눈동자만 굴려 그녀를 응시했다. 차가운 그녀의 시선에 주눅이 들만도 하것만 님프는 오히려 그녀의 시선에 배시시 웃음을 지었다.

 

“작전 중에는 언니라고 부르지 말고 대장님이라고 해야지.”

 

“에헤헤. 이미 입에 붙은 걸 어떡해요.”

 

“..다른 부대 애들도 같이 있으니까, 지금만이라도 주의해.”

 

“네, 대장님!”

 

 능글맞은 웃음을 입가에 머금은 님프의 대답에 철혈의 레오나는 작게 한숨을 내쉬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저만치서 조용히 걸어오는 자신의 부관, 언제 챙긴 건지도 모를 초코바를 몰래 꺼내 먹다 베라에게 들켜 혼나는 알비스, 그리고-

 

“이야! 정말 장관인데? 방금 그거 뭐야? 그렇게 일제히 조준 사격을 할 수 있다니!”

 

“...”

 

 그녀의 곁에서 초롱초롱한 눈빛을 연신 보내는 연푸른빛 머리칼의 소녀, 트리아이나의 얼굴이 눈에 들어왔다. 철혈의 레오나는 그런 그녀의 질문을 무시한 채 자신의 머릿속에 박혀 있는 지휘모듈을 기동, 그녀의 등 뒤에 부유한 채 떠 있는 흰색과 회색이 어우러진 그녀의 전용 장비의 형태를 변환시켰다.

 

기-이잉 철-컥

 

“어? 어어? 우와..이것도 뭐하는 물건이야? 저기, 대답해주라!”

 

“...하아.”

 

 모습을 변환해 마치 의자와 같은 형태로 변형된 커맨드 프레임의 모습에 트리아이나의 질문이 더 격해지자 철혈의 레오나는 커맨드 프레임에 엉덩이를 걸치곤 다리를 꼰 채 입을 다물어버렸다. 그녀의 반쯤 감긴 눈썹 너머로 비치는 회색빛 눈동자에는 무심함이 가득했다.

 아예 입을 다물어버린 철혈의 레오나의 모습에 트리아이나가 입을 삐죽일 때쯤 그녀 곁으로 다가온 발키리가 자신의 대장을 대신해 그녀의 질문에 답해주었다.

 

“저희 대장님께서 장비하신 저 물건은 커맨드 프레임이라 불리는 물건입니다.”

 

“어? 저게? 이동형 의자 같은 게 아녔어?”

 

“푸흡!”

 

 트리아이나의 당찬 물음에 곁에 서 있던 님프는 입을 가리고 웃음을 뱉었고 발키리의 얼굴에는 흐를 리 없는 식은땀이 이마를 타고 흘러내렸다. 철혈의 레오나의 오른손에 들린 권총에서 빠직대는 소리가 들린 것은 그녀의 착각이 아닐 것이다. 발키리는 재빨리 분위기를 바꾸고자 설명을 계속 이어갔다.

 

“저건 저희 팀원 및 타 부대원들까지도 일괄적인 지시 명령이 가능한 물건입니다. 저희 대장님이 적을 공격할 시, 저희 부대원들은 일제히 그 적을 인식 및 최적의 사격 경로를 파악. 곧바로 그 적을 향해 일체의 흔들림 없이 공격할 수 있습니다.”

 

“아-그래서 방금 그 철충한테 일제 사격이 곧바로 가능한 거였구나?”

 

 트리아이나의 밝은 되물음에 발키리는 가만히 고개만 끄덕이며 말을 이어갔다.

 

“네. 그뿐만이 아니라 주변 대원들의 지원 및 보조까지 가능한 물건이죠. 다만 저것을 사용할 수 있는 이는 함 내에서도 저희 대장님뿐입니다.”

 

“역시 지휘관급 개체! 저기, 저기! 그럼..”

 

“..트리아이나라고 했었지?”

 

 연신 질문 공세를 멈추지 않는 트리아이나에 의해 발키리 역시 버거워질 때쯤, 커맨드 프레임 위에 다리를 꼰 채 턱을 짚던 철혈의 레오나의 차가운 음성이 그녀의 주의를 끌었다. 트리아이나가 고개를 그녀에게 휙 돌리자 철혈의 레오나는 여전히 무심함이 가득 담긴 눈으로 그녀를 올려다보며 입을 열었다.

 

“너는 인도자의 자격으로 온 거니까, 조금이라도 쉬어두도록 해. 나중에 전투가 다시 개시되면 그때 가서 지쳐버리면 우리가 돕기도 어렵거든?”

 

“에헤헤..하지만 이렇게 쉽게 풀릴 줄은 몰랐는걸? 정말 도움을 청하길 잘했어. 이제 이 섬을 탐험할 생각을 하니 모험가로서의 심장이 계속해서 두근댄다고!”

 

“..여긴 놀이터가 아니야. 전장이지. 네 귀에는 안 들려? 하늘을 찢는 이 폭음이?”

 

 철혈의 레오나의 물음에 트리아이나가 고개를 갸웃대자 그녀는 오른 손목에 찬 단말기를 두들겼다. 그러자 단말기 너머에서 그녀 못지않은 딱딱한 음성이 들려왔다.

 

-네, 대장님. 무슨 명령이라도 있으십니까?

 

“샌드걸, 쉬는 시간이야. 내려와도 좋아. 하지만 그 전에 둠 브링어 애들이 폭격하는 지점 인근에 가줘.”

 

-..예, 알겠습니다. 마침 근처에 핀포인트를 넣었더군요. 잠시만 기다려보십시오.

 

쿠-궁!

 

쿵!

 

 샌드걸의 무뚝뚝한 목소리가 끝나자마자 단말기 너머에서는 묵직한 무언가가 떨어지는 소리가 연신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그 소리를 한창 듣던 철혈의 레오나는 단말기 통신을 끊으며 어느새 입을 꾹 다문 트리아이나를 바라보았다.

 

“알겠지? 우린 지금 모험 놀이나 하러 온 게 아냐. 네가 모험가니 뭐니, 떠들고 다니는 건 신경 쓰지 않겠지만 우리 애들 쉬는 것까지 방해하지 말아줬으면 좋겠어.”

 

 한마디 한마디에 서려 있는 그녀의 카리스마에 트리아이나는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뒷머리를 긁적였다. 그녀로서도 고집을 부리기 힘든 부탁 아닌 명령이었다.

 

“미안해. 나만 너무 들뜬 것 같아서 폐를 끼친 거 같네.”

 

“..딱히. 너만 들뜬 건 아닐 거야. 저 뒤에 보렴. 너 말고도 흥분한 애들은 잔뜩 따라왔네.”

 

 한층 누그러진 철혈의 레오나의 말에 트리아이나는 고개를 뒤로 돌렸다. 그러자 탁 트인 숲속 그늘의 아래에서 다수의 이들이 모여 저마다의 목소리로 내며 떠들고 있었다. 철혈의 레오나는 여전히 반쯤 감은 눈으로 그들을 응시한 채 대화를 이어갔다.

 

“네 제보 덕분에 함 내 인원들이 보기 드물게 흥분하고 있거든. 가뜩이나 할 것 없는 잠수함 내에서 심심한 애들이, 간만에 유흥거리를 찾은 거지.”

 

“오호라..”

 

“그러니 네가 딱히 그 부분에 대해서 미안해 할 필요는 없어. 내가 네 제보에 대해 흥미가 딱히 없는 거지. 다른 애들이 그런 건 아니거든. 그러니 저리로..”

 

“저기! 무슨 이야기 하는 중이야? 나도 끼워주라!”

 

“...”

 

 자신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후다닥 뛰어가는 트리아이나의 모습에 철혈의 레오나는 말문이 막히다 못해 그녀답지 않은 벙찐 얼굴로 타이트한 슈트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발키리는 그런 그녀를 안쓰러운 눈치로 내려다보았고 님프는 입을 막은 채 나무에 기대어 끅끅거리기 바빴다.

 

“...하아.”

 

 철혈의 레오나는 이내 지친 얼굴로 손을 공중에 휘휘 내젓고는 시선을 자신의 곁에 서 있는 발키리에게 옮기며 지친 목소리로 말문을 열었다.

 

“발키리, 너도 이제 좀 쉬어. 괜히 정찰하러 나서지 않아도 돼.”

 

“..조금만 주변을 둘러보고 오겠습니다. 대장님.”

 

“괜찮아. 안 그래도 곧 그이가 정찰 정보를..”

 

 애써 어깨에 총끈을 거는 발키리를 향해 철혈의 레오나는 심통 맞은 얼굴로 말리려 들었으나 숨을 고르던 님프의 눈동자에 빛이 반짝이는 것을 보고선 눈썹을 찌푸렸다.

 나쁜 예감은 언제나 들어맞는다고 했던가, 님프는 방금 떠나보낸 모험가와 똑같은 얼굴로 그녀의 곁에 후다닥 달려와 흥분한 목소리로 떠들기 시작했다.

 

“언니? 그이? 지금 사령관님을 그이라고 하셨어요?”

 

“..내가?”

 

 활발한 미소를 짓는 님프와 달리 철혈의 레오나의 얼굴에 드리운 그림자가 점차 짙어지기 시작하자 발키리의 안색 역시 어두워지기 시작했다. 싸늘하기 짝이 없는 차가운 기운이 그녀의 회색빛 눈동자에 넘실넘실 차오르는 것을 눈치채지 못한 이는 동네 아줌마로 각성한 님프뿐이었다.

 

“발키리 언니, 언니도 들었죠? 꺄아! 우리 큰언니, 벌써부터 신혼집 차릴 마음이시네!”

 

“..님프, 그 정도로만..”

 

“아니, 안 그래도 요새 함 내에서 가장 핫한 주제였거든요? 사령관님이랑 어울릴 바이오로이드는 누구일지 말이에요. 다른 애들은 저마다의 지휘관급 개체들이라고 주장하는데, 너무 어이없지 않아요? 우리 언니만큼 사령관님이랑 같이 시간을 보낸 이가 누가 있냐고요!”

 

“...대장님, 우선 저는..”

 

“발키리 언니! 가지 말고 이야기 좀 더 들어봐요! 그래서 제가..”

 

철-컥

 

“...”

 

 연신 입을 놀리던 님프의 입이 꾹 닫히게 된 것은 철혈의 레오나가 자신의 권총 탄알집을 분리해 자신의 특수탄의 개수를 세기 시작하는 것을 본 이후였다. 여전히 무덤덤한 얼굴이었으나 그 얼굴 위로 비치는 것은 사자의 형상, 그 자체였다.

 

“어디 보자. 님프, 앞으로의 전투를 생각해본다면 몇 발이나 더 필요할까? 응?”

 

“...어머, 내 정신 좀 봐. 대장님, 저는 이만 총기 손질하러 가 볼게요.”

 

 총총걸음으로 재빨리 자리를 벗어나는 님프의 뒷모습까지 보고나서야 철혈의 레오나는 지친 얼굴로 아예 커맨드 프레임 위에 머리를 기대었다. 여태까지의 딱딱한 인상은 온데 간데 없어진 그녀의 모습에 발키리는 안쓰러움이 묻어나오는 미소를 지어 줄 뿐이었다.

 

‘그이라..하아, 대체 난 뭔 생각을 하고 자빠진 거야.’

 

 커맨드 프레임의 딱딱한 몸체에 머리를 기댄 그녀는 감았던 두 눈을 살짝이 뜨며 햇빛이 새어 들어오는 숲속의 광경과 어렴풋이 수풀 너머로 보이는 바다를 응시했다. 소금기가 맺힌 바닷바람이 수풀 사이를 넘실넘실 넘어 그녀의 뺨 위를 간질여도 그녀는 멍한 눈으로 잔잔한 파도가 일렁이는 해수면을 가만히 바라보기만 했다.

 갑자기 말이 없어진 자신의 대장을 바라보던 발키리는 조용히 어깨 위에 걸친 자신의 애총을 흙 위에 내려두고는 그녀의 곁에 살포시 앉아 그녀가 바라보는 광경을 자신의 한쪽 의안에도 담았다.

 

쏴-아아

 

 잔잔한 파도소리와 바람에 흔들리는 나뭇잎 소리에 우거진 수풀 아래 몸을 뉜 두 여성 중 그 누구도 쉬이 말을 꺼내지 않은 채 대자연이 선사하는 휴식을 즐겼다. 한참을 말없이 있던 철혈의 레오나는 조용히, 아주 조용히, 마치 곧 깨질 것만 같은 유리를 매만지는 듯한 목소리로 그녀의 곁을 지키는 부관에게 말을 걸었다.

 

“발키리.”

 

“네, 대장님.”

 

 그녀의 자그마한 목소리를 인지한 발키리 역시 그저 자신의 의안을 해수면에 고정한 채 그녀의 부름에 그녀와 같이 작은 목소리로 응답했다.

 

“네가 함에 합류한 지 얼마나 되었는지 기억해?”

 

“..제가 함 내의 제조실에서 나왔을 무렵이라면, 얼추 두 달은 넘겼을 겁니다.”

 

“..정확히는 64일이지. 후후. 딱 두 달이네.”

 

“그것까지 기억해주실 줄은 몰랐군요. 대장님.”

 

“..난 그가 이 함에 오기 전부터 복원되어 있었어.”

 

 쉬이 과거 이야기를 꺼내지 않던 자신의 대장이 스스로 자신의 과거를 밝히려 하자 발키리는 해수면을 바라보던 시선을 돌려 커맨드 프레임에 여전히 머리를 기댄 철혈의 레오나에게 시선을 돌렸다.

 

“듣긴 했습니다. 스틸라인의 불굴의 마리 4호 소장님이 대장님의 유전자 지도를 발견해 복원하셨다고요.”

 

“..그래. 그녀가 내 유전자 지도를 찾아내 복원을 시도했었지. 맞아. 나도 그 둠 브링어의 짜증 나는 꼬맹이처럼 저 함에서 복원된 개체야.”

 

“그렇게나 멸망의 메이 소장님이 싫으신 겁니까?”

 

“싫다고만 할 여자가 아니지. 볼 때마다 성질 뻗쳐서 죽겠어. 후후.”

 

 발키리의 무덤덤한 질문에 철혈의 레오나는 입꼬리를 살며시 올리며 두 눈썹을 닫은 채 웃음소리를 내었다. 그녀의 작은 볼멘소리에 발키리 역시 그녀와 같이 미소를 지었다.

 

“..난 복원 개체야. 좋든 싫든 이전 개체의 영향을 제법 받고 나오지.”

 

“..혹 기억이라던가, 그런 것이 계승되는 겁니까?”

 

“아니. 그런 건 아니고. 그냥..세상을 보는 눈이 조금 달라진달까.”

 

 철혈의 레오나는 감았던 두 눈썹을 살포시 열며 다시 한번 잔잔한 파도 물결이 일렁이는 해수면을 응시했다.

 

“기억하니? 그가 지금처럼 당당하게 행동하기 이전의 모습을.”

 

“..물론입니다. 대장님. 그때처럼 살가운 모습은 보이지 않으셔도 저희 사령관님께서는 여전하시죠.”

 

“우유부단하고, 심약하고. 그래, 그게 그 남자의 본질이었지.”

 

“..혹 사령관님의 그런 모습이 마음에 안 드셨습니까?”

 

 살짝 불안이 섞인 발키리의 물음에 철혈의 레오나는 작게 고개를 가로저었다. 여전히 그녀의 회색빛 눈동자에는 예기가 비치지 않았다.

 

“마음에 든다, 안 든다의 문제가 아니었지. 당장에 밖에서 정체 모를 적들이 공격해온다고 하는데도 우유부단하게 행동하는 그의 모습이, 왠지 불안하게만 느껴졌어. 그래서 더 엄하게 굴었지. 아마 복원되기 전의 나의 영향일까, 가끔 그런 생각을 하곤 해.”

 

“..지금은 어떠십니까? 그때와는 완전 다른 모습이신데.”

 

“...”

 

 부관의 물음에 철혈의 레오나는 머릿속에 그려지는 두 사령관의 모습을 떠올렸다. 처음 사령관실에서 만난 순간부터, NNIE 회로를 머리에 설치하고 나온 사령관. 두 인물은 동일인물이었지만 철혈의 레오나는 쉽사리 그 사실을 받아들이기 어려웠다.

 

‘내가 그에게 제안한 거야. 그걸 내가 후회한다면, 그에게 짐을 덮어씌운 꼴이 되고 말아.’

 

“만족스러워. 매우. 이제야 좀 남자다워진 것 같네.”

 

“후후, 그렇게 말씀하실 줄 알았습니다.”

 

 속과 다른 대답이 그녀의 입 밖으로 새어 나왔다. 그녀는 스스로 그것을 불쾌하게 느꼈다. 잠깐의 대화와 선선한 바닷바람이 제공하는 편안함에 마음이 풀어진 탓일까, 그녀의 속마음이 술술 풀려나오기 시작했다.

 

“발키리, 그는 인간이지?”

 

“? 네, 그건 당연한 이야기입니다.”

 

“그럼 우리는..바이오로이드지?”

 

“...네. 저희는 바이오로이드입니다.”

 

 갑작스러운 그녀의 질문에도 발키리는 당황스러움을 감춘 채 조곤조곤 대답해주었다. 철혈의 레오나는 그런 그녀에게 여전히 낮게 깔린 목소리로 질문을 이어갔다.

 

“그럼, 그가 우리를 인간처럼 대해주는 건 그의 자비심으로 받아들여야 할까?”

 

“...그건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사령관님이 저희를 인간처럼 대해주시는 것에는 모두 감사하고 있습니다.”

 

“..그래. 그럴 거야. 아니, 당연히 그래야지.”

 

“이곳에서 제조된 이후, 단 한 번도 그것에 감사하지 않은 날이 없습니다.”

 

 발키리는 두 눈을 지그시 뜬 채 흙바닥 위에 아무렇게나 떨어져 있는 나뭇잎 하나를 집어 들며 말을 이어갔다.

 

“저도 기록으로만 열람한 사실이지만, 멸망 전 인간님들의 대부분은 저희를 도구, 아니. 그 이하로 여기신 분들도 많았다고 들었습니다.”

 

“...그래.”

 

“처음 눈을 떴을 때, 저는 그저 군인이었습니다. 그저, 죽는 날만을 기다렸습니다.”

 

“...”

 

“하지만 지금은 조금 다릅니다. 대장님. 저는 앞으로의 일들이 죽는 날보다 더 기대됩니다.”

 

“..그건 샌드걸도 비슷하려나?”

 

“후훗, 그녀도 최근 들어 비관적인 생각을 덜 하기는 하지요.”

 

 보기 드문 그녀의 환한 미소가 자신의 눈에 들어오자 철혈의 레오나는 살짝이 입가에 미소를 올렸다. 하지만 아직 그녀의 마음속 깊은 곳 어딘가에서,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가 남아 있었다.

 

“..그럼 바이오로이드인 우리가, 그와 동등하게 서려 한다면, 그건 우리의 오만일까? 발키리?”

 

“네? 대장님, 그게 무슨..”

 

“..아니야. 발키리. 방금 질문은 잊어줘.”

 

 갑작스러운 자신의 질문에 자신의 부관 당황하자 철혈의 레오나는 다시 입을 다물곤 해수면 위를 멍한 시선으로 바라보았다. 잔잔한 물결이 일렁이는 해수면 위는, 마치 현재의 오르카 1호를 보는 것만 같아 철혈의 레오나는 두 눈을 잠시 감았다 떴다를 반복했다.

 

‘..쉬고 싶어.’

 

 전장에 서 있다는 것이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선선한 바람이 자신의 뺨을 간질이자 그녀는 문득 함 내의 집무실을 떠올렸다. 그곳에서 그녀는 굳이 지휘관으로서의 위엄을 유지할 필요가 없었다.

 그녀는 그것이 무척이나 평온하게만 느꼈었다. 집무실에는 오로지 그와 자신뿐이었으니.

 

‘..얼른 이 시답잖은 작전을 끝내고, 집무실로 돌아가고 싶어.’

 

 입 밖으로 내지 못하는 자신의 작은 소망에 기대어 두 눈을 감을 때쯤, 그녀의 오른 손목에 걸린 단말기에서 노란 불빛이 점등하기 시작했다.

 

삑-삑-

 

“..발키리. 잠깐 자리를 비켜줘.”

 

“네, 대장님. 알겠습니다.”

 

 노란 점등이 깜박이는 것을 본 그녀가 커맨드 프레임의 기둥에서 머리를 떼자 발키리는 재빨리 자리에서 일어나 어깨에 자신의 애총을 매곤 그녀의 곁을 떠나갔다. 부관의 발걸음 소리가 멀어지는 것을 확인한 철혈의 레오나는 헝클어진 머리카락과 옷매무새를 가볍게 정돈하고는 단말기 위를 왼 검지로 톡톡 두드리며 입가에 미소를 싱긋이 지은 채 어떤 이의 목소리를 기대했다.

 

“통신 받았어. 사령..”

 

-흥, 아쉽게 됐네. 주인님이 아니라 나라서.

 

 자신이 짐작했던 남성의 목소리가 아닌 앙칼진 여성의 목소리가 단말기 너머에서 들려오자 철혈의 레오나는 금세 입가의 미소를 거둔 채 싸늘한 얼굴로 돌아왔다.

 

“..네가 나한테 통신을 걸다니. 예상외네. 경호대장.”

 

-누군 좋아서 거는 줄 알아? 썩을 암사자.

 

“어머, 썩을 암사자라니. 그가 곁에 있을 텐데 그런 험악한 말투는 자제하는 게 좋지 않을까?”

 

-주인님은 지금 보급 포인트 및 보급부대 편성으로 바쁘셔. 네가 생각하는 것만큼 내가 멍청한 여자인 줄 알아?

 

“..그래? 그는 잘하고 있어?”

 

 쌀쌀맞은 블랙 리리스의 말에 철혈의 레오나의 눈썹이 살짝 꿈틀거렸다. 여전히 눈을 반쯤 감은 채 낮은 톤으로 물어오는 그녀의 질문에 블랙 리리스는 콧소리를 내며 그녀와 정반대로 당찬 목소리와 함께 대답해주었다.

 

-물론이지. 언제까지나 주인님이 네 지도가 없으면 안 되는 분으로 착각하면 곤란해.

 

“..그래. 그것참 다행이네.”

 

 블랙 리리스의 대답을 들은 철혈의 레오나는 한층 풀이 꺾인 목소리를 내었다. 딱히 경호대장의 날선 목소리에 풀이 죽은 것은 아녔다. 그저 그녀의 대답이 어딘가가 쓸쓸하게만 다가왔기 때문이었다.

 철혈의 레오나가 그 대답을 듣고 나서는 더 이상 대화를 이어갈 마음이 들지 않아 입을 꾹 다물자 블랙 리리스는 한층 날이 선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네 질문에 답해줬으니, 이제 내가 물어볼 차례네. 흥. 먼저 건 사람은 난데, 네가 먼저 선수를 치다니.

 

“...”

 

-너, 요새 지휘관급 개체들의 행보. 똑똑히 파악하고 있는 거 맞아?

 

 앙칼진 블랙 리리스의 물음에 철혈의 레오나의 반쯤 감은 두 눈썹 사이의 눈빛이 날카로워지기 시작했다. 이전까지의 무력함은 온데 간데 없어진 그녀의 눈빛만큼이나 그녀의 목소리톤 역시 방금까지와 달리 한층 높은 톤으로 바뀌기 시작했다.

 

“무슨 소리를 하려는 거지? 경호대장.”

 

-질문 그대로야. 너, 저번 회의 때나 오늘 회의 때나. 그 빨강머리 년의 행동, 기억하지?

 

“...멸망의 메이 건이라면 주소를 잘못 찾은 거야. 그건 내게 따질 사안이 아니잖아.”

 

-그 년이 제멋대로 구는 것까지는 참을 수 있어. 하지만 그년이 내 주인님께 대드는 건 용서 못 해. 아니, 참을 수 없어.

 

“...”

 

 블랙 리리스의 말에 철혈의 레오나 역시 빨간 트윈테일의 작달막한 소녀를 머릿속에 떠올렸다. 이틀 전, 작전 회의실에서 그에게 대들던 그녀의 모습과 언동이 다시금 기억의 수면 아래서 떠오르자 그녀의 눈썹이 눈에 띄게 씰룩였다.

 

-분명 네가 내게 그랬지? 주인님께서 저 NNIE 회로라는 가증스러운 물건을 목 뒤에 설치하시면 앞으로의 일에도 전혀 문제가 없을 거라고. 근데 이게 지금 무슨 꼴이야?

 

 쉼 없이 쏟아지는 블랙 리리스의 타박에 철혈의 레오나는 이제는 완전히 뜬 눈으로 허공을 응시해가며 그녀 못지않게 높아진 목소리 톤으로 대화를 이어가기 시작했다.

 

“그 망할 꼬맹이가 이상한 거야. 불굴의 마리나 신속의 칸은 문제없이 그의 명령을 따르고 있어.”

 

-하! 그 두 지휘관급 개체들은 멸망 전 개체니까, 주인님의 인품에 감격한 거겠지. 나라고 모를 것 같아? 주인님은 멸망 전 인류와 비교했을 때, 유독 우리에게 따뜻하고 다정하신 분이야.

 

“...”

 

-그러니까 나도 서슴없이 주인님으로 받아들인 거고. 하지만 애초에 그렇게 넘어올 이들이었으면 주인님께서 NNIE 시술을 받으실 필요가 없었잖아!

 

“..뭐?”

 

-그래. 네 말대로 그 썩을 꼬맹이가 이상한 녀석이라 쳐. 그럼 다른 대장들은? 다른 대장들이 주인님의 본래 성격에 호응 안 해준다는 보장이 있어? 그 꼬맹이 하나 때문에 주인님이 저 물건에 휘둘리셔야 해?!

 

 격분을 참지 못하는 블랙 리리스의 목소리가 연신 단말기 너머에서 흘러나오자 철혈의 레오나는 그녀답지 않게 두 눈을 부릅뜬 채 입술을 깨물었다. 그녀의 조각 같은 얼굴이 크게 일그러져 마치 마녀와도 같은 얼굴로 바뀌었다.

 그녀의 대답을 기다리는 것일까, 블랙 리리스는 그 말을 끝으로 더는 말을 잇지 않았다. 한참을 입술을 깨문 채 양 주먹을 꽉 쥐던 철혈의 레오나는 간신히 목소리만을 낮춘 채 입을 열었다.

 

“네가 크게 착각하는 게 하나 있어.”

 

-뭐? 뭘 착각해?

 

“난 그에게 시술을 제안한 것뿐이야. 그것을 받아들인 사람은 다름 아닌 그야.”

 

-하! 그런 식으로 책임을..

 

 블랙 리리스의 반박이 채 시작되기도 전에 철혈의 레오나는 그녀의 말을 끊고는 연신 속에 담아두었던 분노를 가녀린 목청 위에 한껏 섞은 채 반박을 이어갔다.

 

“그리고 요새 그가 좀 멀쩡해졌다고 네가 잊었나 본데. 기억이 나질 않는가 보지?”

 

-뭐가 기억이..

 

“그는 첫 지휘를 맡은 이후, 크게 흔들리고 있었어! 콘스탄챠가 다친 이후 2주간 그가 어땠는지, 그걸 가장 가까이 서 본 네가 그런 말을 해?”

 

-...

 

“내게 도움을 요청한 것도 너고, 그가 도움이 필요했던 것도 사실이야. 뭐? 사령관에게 더 이상 내 지도가 필요하지 않아? 잘됐네. 그게 그가 성장했다는 증거 아냐? 그럼 NNIE 회로가 그에게 쓸모가 있었다는 거잖아!”

 

-흐응~

 

“그는 NNIE 회로를 설치한 이후부터 눈에 띄게 안정화되었어! 더는 전장에 대한 두려움으로 흔들리는 일도 적어졌고! 이 오르카 1호의 정찰과 보급을 도맡을 정도로 성장했다고! 그러면 됐잖아! 대체 뭐가 문제야?!”

 

 철혈의 레오나는 쉬지 않고 말하는 그 사이에도 가슴 속에서 끌어 오르는 격분을 참지 못하겠다는 듯 이빨을 꽉 깨문 채 미간을 한껏 구기었다. 그녀의 회색빛 눈동자는 출격 이후, 가장 크게 빛을 발하고 있었다.

 

“너나 착각하지 마. 그는 네 생각만큼 무른 인간이 아니야. 언제까지나 네 보호를 받아가며 살아갈 인간이 아니라고. 그가 너를 인간처럼 대우해주니까, 그가 바이오로이드처럼 보여?”

 

-너, 말조심해.

 

“말조심해야 할 건 내가 아니라 너야! 이런 쓸데없는 이야기나 하자고 통신을 걸어? 너도 아직 머릿속이 꽃밭이구나. 네가 있는 곳은 안전한 함교겠지만, 여긴 전장이야. 쓸데없는 이야기를 계속할 거면 통신을 끊겠어!”

 

 철혈의 레오나의 분노가 잔뜩 서린 선포가 연신 입 밖으로 터져 나오자 단말기 너머의 블랙 리리스는 잠깐의 침묵을 유지했다.

 

“하아..하아..”

 

 계속해서 말을 내뱉은 탓일까, 그녀의 이마 위로 식은땀이 한 방울 흘러내리자 그녀 역시 입을 다문 채 코로 긴 숨을 내뱉기 시작했다.

 둘의 대화에 잠깐의 침묵이 맴돌자 선선한 바람이 나뭇잎을 스치며 남기는 작은 소음만이 그녀의 귓가를 간질였다. 이렇게 분을 내뱉은 적이 복원된 이후로 있었던가, 철혈의 레오나는 식어가는 분노 뒤로 스스로 자신의 행동에 살짝 놀라고 있었다.

 한참 그녀들 사이의 대화가 오고 가지 않던 때에, 어딘가가 차분해진 블랙 리리스의 말소리가 단말기 너머에서 그녀의 귓가를 향해 들려왔다.

 

-이제야 너답네. 아닌가? 철혈이란 이명이 어울리지 않으니 너답지 않은 건가.

 

“..영문도 알 수 없는 말은 이제 그만해.”

 

-흥! 기껏 통신을 걸었더니 혼자서 아주 사색에 젖어 있길래 네 방식으로 도발 좀 해봤어. 어때? 네가 주인님한테 하던 도발 그대로를 써 봤는데, 좀 비슷했나?

 

“..이 썩을 스토커년이.”

 

 철혈의 레오나는 이제야 블랙 리리스의 의도를 파악하곤 지끈거리는 이마를 왼손등으로 덮어버렸다. 과연 이런 기분이었을까, 자신의 도발적인 언행을 따라 한 블랙 리리스 덕분에 철혈의 레오나는 도리어 사령관의 기분이 어땠을지를 조금이나마 이해하였다.

 

‘날 물로 보지마! 씨발!’

 

 언젠가 그가 자신의 손목을 부여잡고 한껏 얼굴을 구기며 외쳤던 그의 한마디가 마치 그녀의 바로 앞에서 들리는 것과 같이 그녀의 머릿속을 파고 들어왔다. 그때의 사령관을 떠올리자 그녀는 힘겹게 입가에 미소를 걸었다.

 

‘그때의 난 어떻게 했더라..’

 

“하아..정말. 취미가 나쁘네.”

 

-그쪽은 뭐 취미가 고상하신가? 흥.

 

“그래. 그럼 뭘 말하고 싶어서 날 도발까지 한 거야?”

 

 철혈의 레오나는 다시금 눈썹을 반쯤 감은 채 시선을 단말기로 돌려 블랙 리리스의 회답을 기다렸다. 그녀의 말속에는 그전까지의 분노가 아닌 그녀다운 차가운 음색이 맴돌았다.

 

-..스틸라인, 그리고 앵거 오브 호드. 양쪽의 동태, 너 알고 있어?

 

“..아니. 지금은 함교가 아니니. 정확한 작전 동태까지는..”

 

삑-

 

 블랙 리리스의 질문에 채 대답을 마치기도 전, 그녀가 앉고 있던 커맨드 프레임에서 신호음이 들려오자 철혈의 레오나는 고갤 들어 자신의 물건을 올려다보았다.

 이윽고 그녀의 머릿속에 박힌 지휘모듈 안으로 여러 정보들이 커맨드 프레임에서 건너와 철혈의 레오나는 그 정보들을 말없이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지금 전장의 현황 정보를 보냈어. 한번 확인해보도록 해.

 

“..이건.”

 

-이제 좀 눈치를 챘어? 그녀들, 진격 속도에 가속도를 계속 붙이고 있어.

 

“...”

 

 블랙 리리스의 말마따나 그녀의 머릿속에 들어온 전장의 현황은 그녀들이 제출했던 작전 계획서보다 훨씬 빠른 속도로 진행되고 있었다.

 불굴의 마리는 사령관의 AGS 강하부대의 지원을 받은 이후부터 파죽지세라는 말이 어울릴 정도로 빠른 속도로 북상, 마치 사령관이 상륙하기도 전에 전투를 끝내겠다는 의지가 보일 정도였다.

 신속의 칸 역시 본래 계산해두었던 진격 속도를 한참 오버한 채 해안선 이곳저곳을 돌파하며 북상하고 있었다. 진격 경로를 벗어난 건 아니었지만 그녀 부대의 보급은 사령관의 담당, 그녀는 마치 사령관의 보급이 오기도 전에 전장을 끝맺음 지으려는 듯 움직이고 있었다.

 철혈의 레오나는 이 섬의 전장 정보를 모두 해석하고는 눈살을 찌푸렸다. 이건 그녀에게 좋지 않은 신호였다.

 

‘그녀들이 그의 지휘권을 벗어나는 행동을 하고 있어.’

 

“..무슨 말을 하려는지 이해했어. 경호대장.”

 

-네가 똑똑하다는 건 네 성격 중 그나마 잘난 점이야. 그래. 공로 확보를 전면에 내세운 그녀들의 모습, 이건 내가 봐도 별로거든.

 

“...”

 

 전장이 빠른 속도로 마무리되는 것은 좋은 일이었다. 그녀의 지휘모듈은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하지만 달리 생각해본다면 이건 좋은 점보다는 나쁜 점이 더 눈에 띄는 현황이라고, 철혈의 레오나는 그렇게 받아들였다.

 

“그녀들이 어지간히 사령관이 마음에 들었나 보네. 이렇게까지 속력을 낼 줄은 나도 몰랐는걸,”

 

-주인님의 최우선 교전수칙, 무리한 작전 진행으로 인한 부상자 또는 사망자가 나오지 않게 하라는 것도 무시하는 것 같은데. 어때? 지휘관급들이라고 주인님의 명령을 무시할 수 있는 거야?

 

“..명령은 해석하기 나름이야. 불굴의 마리 4호는 아마 AGS 강하부대를 동원한 진격 속도라고 여기면 그만. 신속의 칸은 자기들의 기동력을 염두에 둔 추가진행. 이렇게만 생각한다면 그의 명령의 ‘무리’라는 단어가 퇴색되고 말지.”

 

 담담하게 대화를 이어가는 철혈의 레오나였지만 그녀의 손은 어느새 어깨까지 내려온 머리카락으로 향하고 있었다.

 

‘제일 문제는 그녀들이 그의 명령을 왜곡하기 시작했다는 것, 그리고 그의 도움을 거부하는 행동을 보인다는 건가.’

 

-나는 너희들이 어떻게 되든 솔직히 말해서 관심 일도 없어. 하지만..

 

“..네 주인님의 다정함을 이용해 반항하는 건, 용납할 수 없다.”

 

-..흥!

 

 말을 가로채진 탓일까, 블랙 리리스는 콧소리를 내며 자신의 불쾌감을 숨기지 않았다. 하지만 철혈의 레오나는 그것에 신경을 돌릴 만큼 머릿속이 여유롭지 못했다.

 

‘...이건 좋지 않아. 절대로.’

 

철-컥

 

 자신의 권총의 탄알집을 재결합한 철혈의 레오나의 머릿속은 그 어느 때보다 빠른 속도로 전황을 파악해가기 시작했다. 이대로만 간다면 오전 안에 이 섬의 철충들은 모두 섬멸되리라.

 기존에 예상했던 작전 종료 시간보다 훨씬 앞선 속도였다.

 

“사령관, 그는 이걸 눈치챈 거 같아?”

 

-..아니. 주인님께서는 지금 색적과 보급을 도맡기 바쁘셔. 아직 그녀들의 동태를 전부 파악한 것 같지는 않으신 거 같아.

 

“둠 브링어는?”

 

-인정하기는 싫지만 그 꼬맹이가 제일 주인님의 말을 듣고 있는 거 같네.

 

“..그것 참 예상외네. 정말.”

 

 똑같은 복원 개체인 멸망의 메이의 심정에 무언가 변화가 생긴 것일까, 철혈의 레오나는 떠올리기만 해도 두통을 유발하는 작달막한 소녀에 대한 인상을 조금 고쳐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다.

 

기-이잉

 

 철혈의 레오나가 앉아있던 커맨드 프레임 위에서 일어나자 그녀의 조작을 따로 받지 않았음에도 커맨드 프레임은 원래의 형상으로 모습을 바꾸기 시작했다.

 그녀의 기상을 눈치챈 발키리 역시 숲속 공동에서 모여 떠드는 이들에게 발걸음을 옮겨 그녀들에게 무언가를 말하기 시작했다.

 

“우선 네가 뭘 말하고 싶은지는 알겠어.”

 

-..그래. 잊지 마. 주인님께서 가장 신뢰하고 있는 지휘관급 개체는 너야. 그녀들은 주인님의 본래 모습을 몰라. 하지만 넌 다르지.

 

“..그래서 내가 그의 곁에 있어야 한다, 그런 거지?”

 

-널 딱히 인정한 건 아냐. 하지만 다른 지휘관급들이 하는 행동에는 사욕이 가득 해. 지금만 봐도 성질머리가 뻗쳐. 감히 주인님의 최우선 명령을 저딴 식으로 무시하는 게 마음에 들 리가 없잖아? 그런 여자들이 주인님의 곁에 다가가려고 발버둥 치는 꼴이라니.

 

“..나라고 딱히 사욕이 없는 건 아닌데 말이지.”

 

-아아, 그 정도는 나도 알아. 하지만 네가 그렇다고 주인님의 명령을 무시하는 멍청한 여자는 아니라는 소리지.

 

“..야, 말조심해.”

 

 철혈의 레오나의 짜증이 잔뜩 섞인 한마디가 입밖으로 새어 나오자 그런 그녀의 반응이 즐거운 듯 블랙 리리스는 한층 풀어진 어조로 대화를 이어갔다.

 

-하여튼 이대로 가면 그녀들이 네 부관자리를 치고 올라오려 할 거야. 자신들의 공적이 너보다 우세하다고 말이지. 하긴, 네 이번 임무는 전면 전투가 아닌 수색작전이니 당연한 거겠지만.

 

“..이번 작전은 그에게 처음으로 모든 걸 맡긴 작전이야. 중요한 건 그가 내 서포트 없이도 작전을 잘 이끌어 나갈 수 있는지 없는지가 중요 안건이지. 부관 자리가 중요한 게 아니야.”

 

타-박

 

 철혈의 레오나는 대화를 이어가면서도 발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문득 사박거리는 소리가 그녀의 귓가에 걸리자 철혈의 레오나는 시선을 아래로 내려 보았다.

 짙은 갈색의 흙바닥 위에 이리저리 떨어져 있는 나뭇잎들이 그녀의 하이힐 굽에 짓밟혀 구겨져 있자 철혈의 레오나는 무심히 그것을 바라보았다.

 

“..만약 오늘 작전이 좋게 끝난다면, 앞으로 내가 부관 자리를 고집할 이유가 없어져. 그건 다른 지휘관급들도 눈치를 채고 있을 거야.”

 

-설마 그걸 염두하고 작전에 나섰던 건 아니겠지? 너야 모르겠지만 닥터는 저년들의 동태를 감시하느라 요새는 개인 작업실에서 얼굴도 안 비쳐.

 

“...그 아이도 고생이 많네.”

 

-그러니 책임감을 가지라는 소리야. 우리 셋 모두, 주인님께 짐을 짊어지게 한 나쁜 년들이니.

 

“...”

 

-이제 곧 섬에 상륙할 거야. 빠른 시간내에 수색작전을 종료시켜. 어떻게든 저년들보다 네가 더 우수하다는 걸 증명하라는 소리야.

 

“네 명령을 들을 이유는 없어. 하지만..”

 

“대장님, 전 대원. 작전 재개 준비를 마쳤습니다.”

 

 어느새 그녀의 앞까지 다가온 부관의 말에 철혈의 레오나는 나뭇잎에서 눈을 떼고는 그녀의 서로 다른 눈동자를 응시했다. 방금까지 자신과 떠들던 단아한 여성의 모습 대신 딱딱하게 굳은 군인의 모습이 그녀의 눈에 들어왔다.

 

“..좋아. 수색작전을 재개해. 우선 발키리, 너는 우리 애들과 함께 섬 내의 미확인 지역을 수색해. 그리고 숨어있는 적영을 발견한다면 곧바로 사령관에게 보고해. 그가 알아서 처리할 거야.”

 

“네. 대장님.”

 

“타 부대 인원들은 내가 통솔해서 그 무덤인가 뭐시기인가, 거기로 인도할 테니, 너무 신경 쓰지 마. 다만 주기적으로 서로 신호를 교환하자. 알겠지?”

 

“네. 명령대로 수행하겠습니다.”

 

 철혈의 레오나의 무뚝뚝한 명령에도 발키리는 그저 고개만을 끄덕이며 등을 돌려 공동에 모인 이들에게 다시 다가갔다. 단말기 너머로 대화를 들은 블랙 리리스 역시 이야기를 마칠 때가 왔음을 안 건지 그녀에게 작별을 고했다.

 

-흐응..뭐, 용건은 여기까지야. 그럼 수고해. 암사자.

 

“...잠깐 너한테 더 물어볼..”

 

삑-

 

 딱히 반갑지도 않은 이가 일방적으로 통신을 끝내자 철혈의 레오나의 얼굴에는 전투 이후보다 더한 피로감이 묻어나왔다. 이마 위로 올라오는 두통에 철혈의 레오나는 인상을 한껏 구기며 비어있는 왼손을 들어 무거운 머리를 받아들었다.

 

‘그가 HMD를 나 몰래 이용했다는 걸 물어보려 했더니. 제 할 만하고 끊다니. 진짜 마음에 안 들어.’

 

 철혈의 레오나는 제 이명과 맞지 않게 한껏 인상을 구긴 채 짜증이 잔뜩 묻어나오는 손길로 제 머리카락을 마구잡이로 문질렀다. 이윽고 자신의 상태가 비정상적임을 감지한 철혈의 레오나는 한숨을 꾹 참으며 무언가를 결단한 눈빛으로 허공을 응시했다.

 

‘..정말 이것만큼은 쓰고 싶지 않았는데.’

 

“커맨드 프레임, 감정모듈 제어 기동.”

 

 그녀의 입에서 작게 새어 나오는 말에 그녀의 등 뒤에 있던 커맨드 프레임의 날개 파츠가 철컥이는 소리와 함께 개방되며 그 안에서 푸른 빛이 뿜어져 나오기 시작했다.

 

키-이잉

 

“...”

 

 커맨드 프레임의 푸른 빛이 점차 강해질수록 철혈의 레오나의 얼굴 위를 가리던 그늘막이 점차 옅어지기 시작했다.

 몇 초의 시간 사이에 그녀 얼굴에는 주름 하나 보이지 않는, 그야말로 차가운 인상이 돋보이는 회색빛 눈빛이 번뜩이고 있었다.

 

‘..얼마 만이지. 이걸 쓴 게.’

 

 어느새 계속해서 머리를 속을 두들기던 두통과 계속해서 머릿속을 헤집던 잡념들이 마치 파도에 쓸려 내려간 것과 같이 그녀는 그 어느 때보다 시원한 청량감을 맛보았다. 더는 자신의 가슴을 찌르던 불쾌감도, 실망감도 더는 그녀를 옥죄어오지 못했다.

 그녀의 커맨드 프레임이 내뿜는 푸른 빛에 공동에 남아 있던 이들이 천천히 발걸음을 옮겨 그녀의 앞까지 다가오자 철혈의 레오나는 한층 싸늘해진 눈동자로 그녀들을 확인했다.

 

“저기, 괜찮아?”

 

 제일 앞에서 그녀에게 말을 걸어온 이는 갈색의 사이드 테일, 숲속에 어울리지 않는 교복 차림의 소녀였다. 한쪽 어깨 위에 걸친 그녀의 가방 사이로 작은 기관단총이 햇빛 아래 반짝이고 있었다.

 철혈의 레오나는 반짝이는 녹빛 눈동자로 자신을 바라보는 토모의 질문에 살짝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 문제 없어.”

 

 이제는 이전과 같이 차갑고 딱딱한 음색이 자연스럽게 자신의 목 너머로 흘러나오자 철혈의 레오나는 스스로 자신의 음색에 위화감을 느꼈다. 하지만 그것을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토모를 시작으로 공동에 모여 있던 인원들이 저마다의 말을 한마디씩 꺼내기 시작했다.

 

“이제 다시 이동하는 거야? 얼른 끝내고 놀고 싶은데.”

 

 분홍색 머리카락을 양갈래로 땋아 내린 여우와 닮은 생김새의 소녀, 미호는 머리 뒤로 깍지를 낀 채 불만스러움이 묻어나오는 눈빛으로 철혈의 레오나를 응시하며 다가왔다.

 그런 그녀들의 뒤로 몇몇 아가씨들 역시 그녀를 향해 거리를 좁혀오기 시작했다.

 

“미호, 소장님 앞에서 그런 말은 참아. 소장님이 뭐라 생각하겠어.”

 

 미호와는 다른 성숙함이 묻어나오는 말을 뱉는 보라색 머리카락의 여성, 불가사리는 연신 철혈의 레오나의 눈치를 보며 계속해서 휘파람을 부는 미호를 말렸다. 철혈의 레오나 본인은 그걸 신경 쓰지 않았지만.

 오히려 철혈의 레오나는 불가사리에게 더욱 관심을 보내었다.

 

“불가사리, 네 파일 드라이버, 작동은 확인했어?”

 

“아, 아. 네! 소장님. 문제없이 사용할 수 있어요.”

 

“그래. 그 앙헬이란 남자의 무덤 입구는 철로 만들어져 있다고 하니. 네 장비가 큰 도움이 될 거야. 너는 중열에 서도록 해.”

 

“네. 알겠습니다!”

 

 철혈의 레오나의 말에 불가사리는 사뭇 비장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철혈의 레오나는 불가사리를 시작으로 색색의 머리색을 자랑하는 대원들을 한 명씩 훑었다.

 

“미호, 너는 후열에서 지원 사격.”

 

“네에~”

 

 철혈의 레오나의 명령에 미호는 부루퉁한 얼굴로 대답했다. 예나 지금이나 사령관과 관련이 없는 일에는 큰 흥미를 보이지 않는 그녀였기에 철혈의 레오나 역시 그녀의 행동에 별 관심을 두지 않았다.

 이내 고개를 돌려 초롱초롱한 눈동자로 자신을 바라보는 토모에게 철혈의 레오나는 여전히 딱딱한 음성으로 그녀에게 명령했다.

 

“토모, 너는 불가사리를 엄호해. 중열.”

 

“응! 근데 중열이 뭐야?”

 

“...”

 

‘얘 080기관 소속 아녔..나?’

 

 문득 이런 아이가 어떻게 닥터와 같은 부대에 있는 걸까, 철혈의 레오나는 그녀의 이 멍청한 모습이 자신이나 사령관과 같은 연기가 아닐까라는 의구심이 들었다. 정말 그렇다면, 지금 저 초롱초롱한 눈동자도 연기라면. 그녀는 정말 스파이에 어울리는 인물일 것이다.

 

“저기, 저기. 나는 뭐하면 될까?”

 

“..트리아이나, 너는 네 잠수함이 없으면 전투 능력이 전무해. 후열. 그리고 전투 중에는 어딘가에 숨어있어. 다만 내 주변에서.”

 

“히잉, 취급이 너무해.”

 

“모험 하고 싶댔잖아. 눈먼 총알에 맞아 죽는 일은 피해야지.”

 

 철혈의 레오나의 말에 트리아이나의 얼굴이 딱딱해지며 그녀는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방금 폭격 소리를 들려준 효과가 크게 나오는 것 같아 철혈의 레오나는 간만에 가슴을 간질이는 묘한 카타르시스를 느꼈다.

 

“스틸 드라코와 핀토는 어딨어? 방금까지 같이 있었던 거 아녔어?”

 

“아, 그게. 인근 수풀에서..”

 

 불가사리가 말끝을 흐림과 동시에 두 인영이 그녀들의 옆에서 불쑥 튀어나왔다.

 

“이것 봐라! 토끼 잡았다!”

 

“야! 그거 내가 잡은 거잖아!”

 

“...”

 

 한 손에 갈색 토끼의 양 귀를 쥔 스틸드라코, 그리고 그걸 못마땅하게 바라보는 핀토. 두 여성 모두 얼굴과 슈트 여기저기에 풀잎을 잔뜩 묻힌 채 모습을 드러내자 불가사리는 아예 양손으로 얼굴을 가려버렸다.

 철혈의 레오나는 기가 차다 못해 넘쳐 흘러 눈살을 찌푸린 채 토끼 한마리를 들고 티격태격하는 두 몽구스 팀원들을 바라보다 입을 열었다.


“..정말 활기찬 부대구나. 몽구스 팀.”

 

“..죄송해요. 소장님.”

 

 사태의 심각성을 아는 이가 불가사리 하나라는 사실에 커맨드 프레임의 감정 모듈 제어에도 불구하고 철혈의 레오나는 다시 머리가 띵해지는 감각이 들었다.

 이미 자리를 떠난 발키리와 자매들이 그리워지기 시작한 그녀였다.


'괜히 전부 데리고 가라고 했나. 베라라도 남겨두라고 할 걸. 하아..'

 

“..빨리 끝내고, 돌아가자. 그래. 그게 좋겠어.”

 

“출발이야? 나도 같이 갈래!”

 

“어? 나만 두고 가려 했지! 헤헤! 내가 먼저 간다!”

 

 대뜸 앞으로 뛰어가는 스틸 드라코와 그에 못지않게 재빨리 하늘 위로 날아오르는 핀토의 등을 바라보던 철혈의 레오나의 얼굴에는 밝은 햇살조차 거둘 수 없는 짖은 그림자가 내려앉았다.

 멍한 얼굴로 두 여자가 사라진 방향을 바라보던 철혈의 레오나의 곁으로 두 여자가 다가와 위안을 그녀에게 건네었다.

 

툭-

 

 어느새 그녀의 곁으로 다가온 미호는 그녀의 어깨 위에 손을 올리며 어딘가 허탈함이 묻어나오는 목소리로 말을 걸어왔다.

 

“..쟤들 원래 저래. 기도해 줘. 다음 제조 때 우리 작전관님이 제조되길.”

 

“...돌아가면 너희 작전관 제조 계획에 적극적으로 협력해 줄게. 그녀만 있으면 쟤들 통제되는 거지?”

 

“아..그것도 반반..아닐까 싶은데요.”

 

 불가사리의 불안함이 잔뜩 배어 나오는 대답에 철혈의 레오나는 참고 참았던 한숨을 후하고 입 밖으로 내뱉으며 다시 한번 자신의 소망을 속으로 되새겼다.

 

‘..쉬고 싶어. 그냥 사령관이랑 티타임이나 가지고 싶어.’

 

 언제부터인가 사령관이 자신에게 기대고 있다는 것보다 자신이 그에게 기대고 있었다는 사실에 철혈의 레오나는 힘없이 미소를 지었다.

 

‘이럴 줄 알았으면 그냥 부관 계속하는 건데..괜히 밖에 나와서..’

 

“저기! 저기! 얼른 따라가자! 모험이라고!”

 

“...가자. 어서.”

 

 철혈의 레오나의 힘없는 출격 신호와 함께 그녀들은 수풀을 헤쳐가며 자신들이 가야 할 곳으로 발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그녀들이 지나간 자리에는 부러진 가지들과 흙 위를 뒹구는 나뭇잎들만이 즐비하게 퍼져 있을 뿐이었다.

 

막간)

 

쿠-웅!

 

쾅-!

 

 거대한 동공, 어두워야 할 동굴의 안쪽은 마치 태양이 걸린 듯이 찬란한 황금빛이 동굴 안의 이곳저곳을 밝게 비추고 있었다. 동굴의 이곳저곳에는 다수의 황금과 황금으로 만들어진 어떤 남성의 조각상들. 그리고 한눈에 봐도 값비싸 보이는 물건들이 동굴의 안쪽을 가득 메우다 못해 넘칠 정도로 여기저기 널 부러져 있었다.

 그리고 황금빛의 동굴 제일 안쪽, 동굴에 어울리지 않는 굳게 닫힌 철문의 앞에, 거대한 박쥐의 형상을 한 무언가가 천천히 황금빛에 반사되는 금색 테두리의 검은 날개를, 천천히 펴기 시작했다.

 

-..땅이 울리는 소리. 누가 감히 내 주인의 침소에서 이리도 시끄럽게 구는 건가.

 

 딱딱하고 지직거리는 AGS 특유의 음성 모듈 사이로, 검은 박쥐는 짜증이 섞인 말투로 양쪽으로 점차 넓어지는 날개의 틈 사이로 붉은 안광을 번쩍였다.

 

-올 이도, 갈 이도 없는 이 섬에 방문자라.

 

기-기긱

 

 점차 넓어지는 날개는 어느새 그 속에 감추고 있던 검은 몸체를 황금빛의 점등 아래, 모습을 드러내었다.

 

-위의 버러지들이 고전을 면치 못하는 것 같은데.

 

 검은 박쥐는 거대한 날개에 비해 한참 작은 머리를 들어 계속해서 흔들리는 동굴의 천장을 주시했다. 다행히 천장이 철로 보강이 되어 있었는지, 거무튀튀한 동굴의 천장 사이 사이로 철골들이 황금빛 사이 사이로 모습을 비췄다.

 

-..흠, 이 감옥에서 나갈 일도 없는 내게는 별 상관이 없는가.

 

 검은 박쥐는 이내 들어 올렸던 고개를 다시 내리며 다시 한번 긴 잠에 빠질 모양새로 다시 그 거대한 날개를 이전과 같이 가운데로 점차 모으기 시작했다.

 

-만일 이곳을 찾는다 한다면, 이야기는 달라지겠지만.

 

 가운데로 점차 모이던 날개의 황금빛 테두리에서, 황금빛이 일렁이는 스파크가 점차 튀어 오르기 시작하자 그에 맞춰 AGS의 음성 역시 격해지기 시작했다.

 

-과연 이 보물들을 차지할 이가, 이 나의 오랜 숙원을 풀어줄 이가. 이곳으로 올 것인가.

 

파-직

 

기-이잉

 

 정적만이 맴돌던 동굴의 안에서 그의 격한 음성과 그의 검은 날개에 달린 수십 개의 파츠들이 저마다의 제 자리를 찾아가듯 소음을 일으키기 시작했다.

 

-기대라, 얼마 만에 가져보는 감정인가. 그래. 기대되는구나. 오라, 침입자들이여. 오라, 불나방들이여.

 

파-지직!

 

챙!

 

챙!

 

 격한 감정이 묻어나는 그의 말이 끝남과 동시에 점차 닫혀가던 그의 검은 날개가 활짝 펼쳐져 검은 몸을 둘러싸던 황금빛의 전자기들이 거대한 동굴 사이사이로 퍼져 나가 동굴 전체를 밝게 비추던 조명등들이 터져 나갔다.

 조명등이 하나둘 터질 때마다 황금빛의 동굴 안이 순식간에 시커먼 어둠에 가라앉아, 시커먼 어둠 속에서 검은 박쥐의 환희에 가득 찬 음성만이 동굴 벽에 부딪혀 동굴 안을 가득 메웠다.

 

캉!

 

캉!

 

 그런 그의 기대가 닿은 것일까, 이윽고 그가 서 있는 공간에서 멀리 떨어진 어딘가에서 철과 철이 부딪히는 소리가 그의 세밀한 청각 모듈에 포착되었다.

 

철-컹 철-컹

 

-오라, 그래. 오라. 내 주인의 마지막 안식처로, 그리고.

 

파-직

 

-너희들의 무덤으로.

 

 빛 한줄기 들지 않는 어둠 속에서, RF87 로크는 붉은 안광을 내뿜으며 광기에 찬 목소리로 동굴의 적막을 깨부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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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오나 웨딩이 내일 나온다. 2년하고도 더 기다리던 웨딩이 드디어.

레오나 최고야..


로크 십새끼는 이제 등장이네. 씨벌..언제 완결 내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