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상 

프롤로그 하


마스터 셰프 1편

마스터 셰프 2편

마스터 셰프 3편

마스터 셰프 完


사령관 vs 로크


8월의 만월야 1편

8월의 만월야 2편
8월의 만월야 3편

8월의 만월야 4편

8월의 만월야 5편

8월의 만월야 完


Trick or Treat 1편








함장실 안에 다시 돌아온 사령관은 답답하다는 듯이 외투를 벗어 콘스탄챠에게 건넨 다음 앞섬을 풀어헤쳤다. 

외투를 받아든 콘스탄챠의 뺨은 평소와는 다르게 홍조로 붉게 물들어 있었다. 


"앞으로 그런 멋진 모습을 자주 보여주셨으면 좋겠는데..."


"방금 뭐라고 그랬니?"


"아... 아니에요 아하하."


콘스탄챠는 얼른 몸을 돌리고 허둥지둥 옷장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한편 샬럿과 앨리스는 사령관의 양 옆에 서서 은근슬쩍 그 풍만한 흉부를 그의 얼굴에 들이대기 시작했다.

숨막힐 듯한 살결의 파도가 그의 얼굴 앞에서 출렁거렸지만 사령관은 눈도 하나 꿈쩍하지 않았다.  


"폐하... 저를 위해선 시간을 내주지 않으실건가요?"


"이따가 셋이서 점심 식사나 같이 하지."


사령관이 샬럿의 애교를 가볍게 넘기면서 말하자 샬럿이 입을 삐죽였다.


"셋이라니! 게다가 전 저녁 식사보다 더 로맨틱한걸 원한다고요. 오늘은 할로윈이잖아요!"


"샬럿, 할로윈은 원래 어린 아이들을 위한 날이었어." 


"우후훗... 제가 알기론 할로윈은 바이오로이드가 인간님께 뜨거운 봉사를 해드리는 날인데 안 그런가요?"


앨리스의 말에 사령관의 얼굴에 일순간 어두운 그늘이 드리워졌다. 


"앨리스... 그건 대체 어디서 들은거지? 칸이나 마리가 그런건 말해줬을리는 없고, 설마 라비아타니?"


앨리스는 고개를 저었다. 라비아타는 누가 멸망 전 세계에 관해 물어보면 벙어리처럼 입을 꾹 다물었다. 


"책에서 읽었어요. 할로윈의 달밤 아래서, 인간님이 바이오로이드의 육체를 열정적으로 탐닉하며... "


앨리스의 장광설을 한 귀로 흘리며 사령관이 쓴웃음을 지었다. 

할로윈을 저렇게 이해하고 있는건 어떻게 보면 그의 잘못이기도 했다. 

멸망 전 세계를 살아온 바이오로이드들이 옛 세계에 대해 철저히 함구하고 있는 상황에서

옛 세계에 대한 정보를 얻으려면 도서관이나 소수만이 접근권한이 있는 기록실로 가야 했는데

바이오로이드들의 정서에 나쁜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책들은 전부 사령관 본인의 명령으로 도서실에서 치워진지 오래였다.


"알겠어. 점심이랑 저녁 식사를 같이 하겠어. 오늘의 주인공은 내가 말했듯이 아이들이고 나도 이건 양보못해."


사령관이 딱 잘라 말하자 샬럿은 시무룩해졌고 앨리스는 다시 볼을 부풀렸다.

그 때, 오르카 호에서 경보음이 울리자 사령관은 책상에 있는 지휘 패널을 들었다. 


"이런 이런... 우리의 꼬맹이들이 또 사고를 쳤군. 위험지역에 함부로 들어간 모양이야."


사령관이 혀를 차면서 말하자 콘스탄챠가 깜짝 놀랐다. 


"네? 그럼 서둘러서..."


"아니, 이 근방은 철충의 활동이 거의 없고 네오딤이 같이 있어서 큰 일은 없을거야. 

그래도 빨리 데려와야겠지. 

샬럿, 앨리스. 둘 중 먼저 꼬맹이를 데리고 오는 쪽에게 순서 및 메뉴 결정권을..."


사령관이 말을 마치기도 전에 앨리스와 샬럿은 레이싱을 하듯 함장실에서 쌩하고 나갔고

사령관은 의자 등받이에 등을 기댄 다음 눈을 지긋이 감았다. 


'바이오로이드가 인간님께 뜨거운 봉사를 해드리는 날인데 안 그런가요?'


사령관의 귓가에 방금 앨리스가 했던 말이 귓가에 맴돌았다. 


"하긴 아무것도 모르니까 그딴 소리를 멀쩡하게 입에 담는거겠지."


사령관이 앨리스를 비웃으면서 중얼거렸다. 








"폐하~ 제가 먼저 왔어요!!!"


"저리 비켜요 이 단정치 못한 가슴!! 주인님~ 앨리스가 한 발 먼저 도착했답니다~"


샬럿과 앨리스가 각각 옆구리에 좌우좌와 알비스를 끼고 숨을 헐떡이며 함장실 안에 들어왔다. 


"휘우~ 둘 다 엄청 빠른데? 너희들 칸의 신기록을 깼어."


사령관이 손목시계를 보면서 휘파람을 불었다. 


"자... 그럼 이제 잘잘못을 가려야 하는 시간이지. 좌우좌 알비스, 두 사람의 죄를 알렸다?"


"죄송합니다..."


"잘못했어요. 용서해주세요."


사령관이 엄격한 표정을 지으며 꾸짖자 좌우좌와 알비스가 진심으로 뉘우치며 용서를 구했다. 


"오늘은 날이 날이니까 알렉산드라에겐 이르진 않겠어... 하지만 앞으로 또 그러면 각오하는게 좋을거야..."


알렉산드라의 이름이 거론되자 좌우좌와 알비스는 잔뜩 긴장한 얼굴로 침을 꿀꺽 삼켰다. 


"그럼 두 사람 모두 괜히 혼났다고 죽상이 돼서 구석에서 쭈그려 있지 말고 배 안에서 즐겁게 놀도록."


"어 저기 사령관님, 사실은 그게... 우리랑 같이 온 친구가 있어."


알비스의 말이 끝나자마자 바깥에서 큰 소란이 들이더니 누군가가 문짝을 쾅 부수더니 성큼성큼 안으로 들어왔다. 


"음... 인간님이 여기 우두머리가 맞지?"


갑작스럽게 등장한 펜리르가 코를 킁킁거리며 사령관의 냄새를 맡더니 코를 움켜 쥐었다. 


"우우... 향수냄새 진해."


"...너는 컴패니언 소속이구나. 이름이 뭐였더라..."


"펜리르! 내 이름은 펜리르야!"


"아 맞아! 그래! 그 이름이었어!"


사령관이 손가락을 튕기면서 말했다. 


"아무튼 컴패니언의 펜리르가 내게 무슨 볼일이 있어서 찾아왔지?"


"이 초대장을 건네주러 왔어!"


펜리르가 호박 마크가 인상적인 편지를 건네자 사령관은 그 편지를 이리저리 훑어보더니 봉투를 뜯고 내용을 읽어봤다. 


"어떤 유원지의 마녀님이 보낸 편지야."


펜리르의 말에 좌우좌가 큭큭거리며 웃었다. 


"호오 아직도 마녀가 남아있다니! 수세기 동안..."


하지만 심각한 표정으로 사색에 잠긴 사령관을 본 좌우좌는 입을 다물었다. 


"...펜리르라고 했지? 혹시 마녀에게 다시 돌아갈 생각이니?"


"일단 그렇긴 그런데..."


"그럼 마녀한테 가서 전해. 일 없다고 말야."


뜻밖의 대답에 펜리르를 제외한 다른 바이오로이드들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그들이 아는 사령관이라면 틀림없이 두말않고 데려 가달라고 오두방정을 떨었을 텐데

중년 사령관은 평소의 그답지 않게 마녀의 초대를 단칼에 거절했다. 


"응! 알겠어! 난 전해주기만 하면 되는거였으니까 이제 돌아가면..."


해맑게 말한 펜리르의 배에서 꼬르륵거리는 소리가 요란하게 울려퍼졌다. 


"배가 많이 고픈가 보구나."


"헤헤...내가 연비가 좀 나빠서."


사령관의 말에 펜리르가 쑥스럽다는 듯이 머리를 긁적였다. 


"알비스. 펜리르를 주방으로 안내해주겠니?

지금쯤이면 스틸라인 배식도 끝났으니까 식당도 여유가 좀 있을거야. 게다가 오늘은..."


펜리르를 슬쩍 본 사령관이 장난기 어린 미소를 지었다. 


"특식으로 갈비찜이 나오는 날이지." 


갈비찜이란 말에 펜리르가 침을 꿀꺽 삼키다 고개를 절레 절레 흔들었다. 


"난 늑대야... 남한테 구걸하지 않을거야."


"늑대 이전에 내 손님이지. 난 내 손님을 주린 배로 돌려보낼 정도로 매너없는 주인이 아니야."


"그런가? 난 손님이고 대접을 받은거니까 이건 구걸이 아닌거네? 우와 인간님 진짜 고마워~"


펜리르가 알비스를 와락 안아 들더니 쏜살같이 식당을 향해 달려 나갔다. 


"두 사람도 이제 나가봐."


사령관이 펜리르가 들어온 이후부터 멀뚱멀뚱 서있던 샬럿과 앨리스에게 지시했다. 


"네? 하지만 점심 약속은..."


"미안. 내가 지금 갑자기 피곤해져서 좀 힘들겠어. 대신 저녁때, 아니면 나중에 아무 때나..."


사령관의 말에 샬럿과 앨리스는 실망감을 감추지 못했지만 명령은 명령, 할 수 없이 밖으로 나갔다. 

늑대 세 마리가 사라지자 사령관은 허리를 숙여 얼굴을 팔 안에 파묻었다. 


"주인님? 혹시 편찮으세요?"


사령관이 그답지 않게 우울한 모습을 보이자 콘스탄챠가 걱정스럽다는 듯이 물었다. 


"난 괜찮아. 단지 좀 혼란스러워서 그런거야." 


사령관이 힘없는 목소리로 답했다. 

책상 아래쪽에 있는 소형 냉장고에서 냉수 한 병을 꺼내 벌컥벌컥 마신 사령관은 

테마파크에 가고 싶다는 듯 눈을 반짝거리면서 초대장을 보고있는 좌우좌를 봤다. 


"...가고 싶니?"


"가고 싶어."


좌우좌가 고개를 끄덕이면서 답했다. 


"왜 가고 싶은데?"


"왜냐니... 마녀도 만나고 싶고 사진으로만 보던 유원지도 직접 보고 싶고..." 


"안돼. 갈 수 없어."


"갈 수 없다니... 어째서야."


잔뜩 풀이 죽은 좌우좌가 작게 칭얼거렸다. 


"너한테 유익하지 않은 곳이거든."


"저기 주인님, 아무리 그래도 그렇게 위험한거 같지도 않고 LRL도 이렇게 원하는데 가보는게 어떨까요?

오늘은 아이들을 위한 날이라 그러셨잖아요."


보다못한 콘스탄챠가 끼어들어서 좌우좌를 편들어줬지만 사령관은 여전히 완고했다. 


"안된다면 안된....."


갑작스레 옛 기억이 파득 떠오른 사령관이 말을 멈췄다. 

지금 이 대화, 옛날에도 나눠본 적이 있었다. 

그땐 입장이 정반대로 바뀌어서 테마 파크에 가고 싶다고 칭얼거리던건 좌우좌가 아닌 그였고,

그는 지금 그를 테마파크로 데려가길 거부한 진부한 어른의 대사를 토씨 하나 안 틀리고 그대로 읊고 있었다.


"......한심하군."


사령관이 서글픈 미소를 지으면서 툭 내뱉자 좌우좌와 콘스탄챠는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이 서로를 봤다. 


"우좌야. 정말로 테마 파크로 가고 싶니?"


사령관이 부드럽게 묻자 좌우좌가 고개를 크게 끄덕였다. 

좌우좌의 갈망으로 번뜩이는 눈빛과 마녀가 보낸 편지를 쳐다본 사령관은 한숨을 푹 쉬었다.


"그래 가자... A구역이 그대로 남아있길 기도해야지."


사령관의 항복 선언에 좌우좌가 신나서 만세를 외쳤다. 


"가서 외출 준비를 하거라. 그리고 다른 아이들한테도 말해. 우린 테마 파크에 간다고 말이야." 


신나서 복도로 뛰어나가는 사령관은 온몸에 힘이 쭉 빠져 의자에 축 늘어졌다.


"주인님 괜찮으세요? 혹시 제가 괜한 말을..."


"아냐 콘스탄챠. 차라리 이게 더 나은걸 수도 있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난 사령관은 앞섬의 단추를 채우고 옷장으로 가 마술사복 외투를 꺼냈다. 

비록 머릿속의 기억이 그의 것인지 아닌지 여전히 확신은 들지 않았지만, 

적어도 지금은 자신의 것이라고 인지하고 있는 기억이었다. 

그렇다면 좋든 싫든 그 과거의 추억과 마주보는 것도 그가 해야할 일이었다. 

그리고 앞으로 재건될 미래의 주인공이 될 아이들 역시 옛 세계의 과거를 알 필요가 있었다.

새로운 할로윈을 만들려면 옛 할로윈 역시 알아야했다.


"애들한테 살짝 이른 감이 있지만, 현장학습이라고 생각하면 되겠지."


사령관이 뜻모를 말을 중얼거리면서 마술복 외투를 걸쳤다. 


"그리고 그 마녀는 한번 만나보고 싶고 말이야."








설정상 사령관은 멸망 전 인간의 기억과 자아를 가지고 있지만 그가 정말로 멸망 전의 그 사람이 맞는지, 아니면 그저 멸망 전 인물의 기억과 인격이 덧씌워진 별개의 인간인지 확신을 못하고 있습니다. 


장편이다 보니 하루에 한 편씩 연재하는걸 목표하고 있는데 잘 될지 모르겠습니다. 조속한 시일 내에 다음 편으로 뵙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