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


 북쪽으로 향하는 길에서 철로를 발견했다.

 성한 곳 하나 없는 철로는 마치 앞으로 만날 모든 것들이 자신과 같은 처지라고 말하는 듯 했다.

 

 '그 어떤 것 하나 남지 않았을 지도 모른다. 이 여행이 무의미한 것일 지도 모른다.'

 은연중에 떠오르는 불안감을 애써 무시한 채, 철로를 따라 나아갔다.

 그리고 도시를 발견했다. 무너져가는 도시였다.


 모든 도시가 이렇지는 않을 거야.

 분명, 주인님이 좋아하시던 그 풍경이 남아있을 거야.

 처음으로 마주한 문명의 몰락에, 나름대로의 희망을 품으며 불안감을 잠재웠다.

 그렇게 마음을 추스리며, 철로를 따라 도시 안으로 들어가기 시작했다.



9.


 유황과 불의 비 아래 철저히 파괴된 소돔의 모습이 이런 모습일까?

 어쩌면 아브라함의 아내가 마지막으로 눈에 담은 소돔의 풍경을 나 또한 바라보고 있을 지도 모르겠다.


 도시는 철저히 파괴됬다. 멀쩡한 것은 그 어떤 것도 없었다.

 도시 외곽일 수록 과거의 모습을 품는, 이중적인 이 도시에서 바라볼 것은 별로 없었다.

 도시의 중앙으로 갈 수록 문명의 흔적은 조금도 찾아볼 수 없다. 남아있는 것은 잔해와 먼지, 그리고 시체 뿐.


 유해에 대한 존엄성과 고결함 따위는 찾아볼 수 없었다.

 그 누구에게도 버림받은 이 도시를 품은 자연에 의해, 가장 원초적인 방식으로 도시 전체가 장례를 치르고 있었다.

 이 시신이 사람이었든, 바이오로이드였든 모두가 벌레와 새의 먹이가 되어 천천히 사라지리라.

 비통한 울음소리와 떠나간 이들을 기리는 장송곡은 벌레의 날갯짓 소리와 까마귀의 울음 소리로 대체되리라.

 시신을 묻을 이 조차 없는 도시이기에, 이 장례식은 시신이 썩어 문드러질 때 까지 이어질 테지.

 

 얼마나 많은 시신이 이 도시에 방치되어 있는지 감이 잡히지 않는다.

 얼마나 많은 바이오로이드들이 이곳에서 주인을 잃었는지도 감이 잡히지 않는다.

 주인을 잃을 때, 그들은 과연 어떤 감정을 느꼈을까.

 슬픔일까. 해방감일까.

 내 어찌 그들의 감정을 헤아리겠는가.

 주인님이 항상 말했던 것처럼, 상대방을 제 멋대로 판단하여 결론 내릴 수는 없다. 그렇기에 함부로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10.


 문명의 흔적이 남아 있고 비교적 도로가 멀쩡한 도시의 외곽 만을 통해 이동하고 있음에도 도시를 통과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많은 기업들이 들어찬 도시라 그런 걸까, 변변찮은 이동 수단 하나 남지 않은 이 상황에 이 도시는 도보로 통과하기에는 너무 나도 컸다.

 도보로 이동하는 시간이 길어질 수록 도시의 냄새가 배고 있었다. 먼지와 시체 냄새였다. 그닥 좋은 냄새는 아니었다. 만약에 하치코가 왔다면 코를 틀어 막고 하루 종일 빨리 나가자고 닦달했을 것이다. 

 나는 괜찮지만, 주인님에게 이 냄새가 배는 것은 눈 뜨고 지켜볼 수 없었다. 이 냄새가 주인님께 닿는 것을 막기 위해 근처 가게에서 구한 옷을 찢어 마련한 천에 향수를 잔뜩 뿌린 뒤, 그것으로 주인님이 담긴 상자를 감쌌지만 이 냄새가 언제 빠지는지는 알 수 없다. 최대한 빨리 이 도시를 벗어나야 한다. 그리 생각하며 발걸음을 재촉했다.


 그렇게 이동하던 도중, 도로 한복판을 막고 있는 도로 통제용 바리게이트와 주변에 널린 시체들을 발견했다.

 철충이 차지할 수 없을 정도로 박살난 AGS의 파편 주위에 즐비한 그 시체들은 하나같이 충격봉 이나 방패를 손에 쥔 채로 무력하게 쓰러져 있었다. 아마, 저 시체들은 켈베로스 모델이겠지. 주변에 박살나있는 AGS는 펍헤드와 렘파트 모델이겠고.


 반쯤 썩어 문드러진 시신들이 대부분이었다. 그래도 너무 심할 정도로 훼손된 신체가 한가득 이었다. 온몸이 뜯겨 나가도 자신의 무장을 붙들어 맨 채로 자리를 지키다 죽었다. 이들은 자의로든, 타의로든 의무를 다하려 하다 죽은 듯 했다.


 의무를 다 하다 죽은 이들에게, 짧은 묵념을 했다. 그들도 마찬가지로 다 묻을 수는 없는 노릇이니.

 그들을 기억하기로 했다. 이 도시에서 타의든, 자의든 의무에 목숨 바쳐 싸우다 죽은 시티가드들이 있었다고.

 짧은 묵념이 진행되고, 갈길 바쁜 발걸음을 돌려 앞으로 나아갔다. 저들은 죽음으로써 의무가 끝났지만, 나는 아직 살아 숨쉬기에 주인님을 모셔야 한다는 의무가 남아있다. 이 의무를 위해 한시 바삐 움직여야 했다.



11.


 저택에서 출발한 이래로 한 번도 쉬지 않았지만, 지치지는 않았다.

 해 마저 도 내 체력에 질려 먼저 지평선 너머로 넘어가 버려, 어느새 날은 어두워졌다.


 해가 지고, 모두의 눈을 가려버리는 검은 장막이 땅에 드리우고 있었다.

 보이지 않으면, 모든 것이 불확실해진다. 불확실함이 들이닥치면 호기심은 독이 되어 시야가 닿지 않는 곳에 감지하지 못한 위협과 공포가 있을 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을 형성한다. 불안감은 공포가 되고, 이는 빛을 발견하기 전 까지 계속 커지기만 한다.

 이 황량하고 거대한 도시의 폐허 속에서 대응할 수 없는 어둠에 갇히게 된다면, 그 누구도 공포와 불안감에 사로잡혀 저도 모르게 몸을 숨기고, 걸음을 늦추게 될 테지.


 그런 어둠에 발목 잡힐 시간 따위는 없었다. 이 두 눈과 감 만을 믿고 나아갈 수 있었지만, 나는 곱게 가방에서 야간투시경을 꺼냈다. 구형이지만 믿음직한, 고지식하지만 튼튼한 버팀목이 되어 주신 주인님같은 물건이었다.

 스위치를 키고, 몇번 툭툭 치자 야간투시경은 특유의 소리를 내며 작동하기 시작했다. 야간투시경으로 세상을 바라보니 익숙한 초록색 풍경이 눈 앞에 펼쳐졌다. 초록색으로 물든 세상을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원색을 그대로 보여주는 야간투시경을 받을 기회도 있었지만, 나는 이게 더 편해서 그 기회를 포기한 적도 있다. 이 구형 야간투시경이 더 마음에 드는 이유는 모르겠다. 고전적인 것, 클래식한 것을 좋아하는 주인님의 선호가 내게 큰 영향을 미쳐서 그런 것이 아닐까, 하고 추측만 할 뿐이다.


 녹색 풍경이지만 그걸로 충분했다. 어둠을 걷어낼 수만 있다면 무슨 색이든 상관 없으리라.

 차라리 이 풍경처럼, 모든 것이 단색에 가까운 풍경을 보는 것이 더 나을 수도 있겠다. 시체도, 잔해도, 전투의 흔적도, 그리고 공허함도 모두 하나의 색에 물들어 유심히 보지 않는 한 제대로 구분할 수 없게 되어 버리면 보고 싶지 않은 것을 유야무야 넘어갈 수 있으니 말이다.


 그렇게 녹색으로 펼쳐진 밤하늘 아래에서, 발걸음을 내딛는 순간에 건물 잔해 속에 무언가 보였다. 명백한 움직임이 형태만 남은 건물 잔해의 창틀 너머로 보였다. 짐승인가? 바이오로이드인가? 아니면 살아있는 인간인가? 찰나의 순간에 우연하게 본 조그마한 움직임이었기에 그 무엇 하나로도 결론 내릴 수 없었다.

 하지만 그게 무엇이든 무슨 상관인가. 그저 가야 하는 길을 가기로 했다. 

 나의 일은 주인님이 가고 싶어 하시던 곳을 둘러보는 것이다. 살아남은 생존자를 규합하거나 구조하는 일 따위가 아니다. 그런건 퍼블릭 서번트나 살아남은 군부대의 일이다. 저 자가 위험에 빠진 것도 아니지 않은가. 그러니까, 신경 따위 쓰지 않고 가면 된...


 


 밤 하늘 아래, 적막을 깨는 총성이 울려 퍼졌다.

 곧이어 조그마한 신음 소리가 들려 왔고 썩어가는 시체 냄새 속 옅은 화약 냄새가 코 끝을 스쳤다.

 극대화된 감각은 내가 아까 본 무언가가 위기에 처해 있다고 말하고 있었고, 내가 아니더라도 위기에 빠진 누군가를 발견한다면 곧장 도와주라고 하시던 주인님의 말이 머리 속에 끝없이 메아리 쳤다. 


 "주인님께서 평소 그리 말씀하지만 않으셨어도..."


 옛날 같았으면 진즉에 무시하고 떠났을 거다. 이게 다 주인님 곁에 오래 있어서 그런 거다. 이건 어쩔 수 없는 거다. 주인님을 닮는 것은, 경호원인 리리스 모델에게 필연적으로 주어지는 운명과도 같은 거니까.

 '그래, 어쩔 수 없는 거야. 주인님의 신념과 명예를 지켜드리기 위해서 그러는 거야.' 라고 수없이 내 자신에게 말을 걸어 나 자신도 받아들일 만한 당위성을 만들었다. 주인님과 한없이 닮아지기 위한 나름대로의 방편이었다.



12.


 건물의 형태만 가까스로 하고 있는 잔해 더미 속에 들어가니 한 바이오로이드를 만날 수 있었다.

 배에 일직선의 파이프가 꽂힌 그녀는 가쁜 숨을 내쉬며 내가 움직임을 목격한 그 창틀 바로 밑에 널브러진 상태였다.

 

 희미한 별빛만이 비추어 주는 잔해 속 창틀 아래에, 가까스로 목숨만 붙어 있던 그녀는 날 보자마자 웃음을 지었다. 그리고는 공격 의사가 없다는 듯 쥐고 있던 리볼버를 손에서 놓아버렸다.

 주변에 철충이나 짐승의 사체가 없는 것을 보니 공격당한 것 같지도 않았다. 나를 이곳으로 끌어들이기 위해 총을 쏜 듯 했다. 그렇다면 왜 나를 이곳으로 끌어들인 걸까. 그것에 대한 답을 들어야겠다. 


 내가 좀 더 가까이 다가가자, 나를 바라보던 그녀의 눈이 조금 더 커지는 것을 볼 수 있었다. 그러더니 자신의 생각이 조금 엇나갔다고 생각한 것 마냥 한숨을 내쉬었다. 하지만 이내 어찌되든 상관 없다는 듯, 땅바닥에 내려놓은 리볼버를 손으로 쳐 어둠 속으로 밀어놓고는 나를 향해 말하기 시작했다.


"자아.. 봤지? 공격 의사는.. 전...혀.. 없어."


"이유가 뭐야? 나를 왜 이곳으로 불러 들인 거야?"


"도.. 도박이었어... 총성을 듣고.. 찾아와 줄 사람 정도면.. 내 부탁.. 부탁ㅇ.. 커흑  "


 말도 다 못 끝내고 짙고 붉은 피를 토해내는 그녀였다. 무의식적으로 그녀에게 가까이 다가가, 조그마한 의료 가방에서 손수건을 꺼내 입에 대어 주려 했지만 ,그녀는 필요 없다는 듯 손사래를 쳤다.


"너는... 다르.. 른.. 리리스.... 들 이랑 다르구나..."


"주인님 때문이야. 감사 인사는 내 주인님께 해."


 수차례의 기침을 하고, 수없이 많은 피를 토해내는 그녀였다. 그녀는 나를 다른 리리스와는 다르다며, 높게 평가하는 듯 했다. 그녀가 평소 봐 왔던 리리스라는 존재는 어떤 존재였을까. 그녀에게 물어볼까 하다가 관뒀다. 괜한 호기심이기도 하고, 그녀는 자신의 부탁을 전달하는 것 만으로도 벅차 보였으니까.


"부탁.. 좀 들어줘."


"왜 내가 부탁을 들어준다고 생각해?"


"....내 총.. 성을 듣고.. 와 줄 정도로.. 좋은.. 사..람.. 이니까."


"뭔가 대단한 착각을 하는 것 같은데, 나는 그냥"


"초면 이지만... 정말로 간곡..히.. 부탁 할게. 내가 시티가드 본부로 가는 걸 도와줘..."


 그리 말하며, 시티가드 본부의 주소를 읊어 주는 그녀였다. 우연의 일치일까, 시티가드 본부의 위치는 내가 나가고자 하는 도시의 북쪽 출입구 근방에 위치해 있었다. 그리고 도시에 들어온 뒤로 조금도 쉬지도 않고 움직인 덕분일까, 그 출입구는 생각보다 가까웠다.

 몇 남지도 않은 숨을 내쉬며, 간절히 말하는 그녀의 부탁을 무시한다면, 좀 더 빨리 여행을 마무리지을 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 된다면 나는 보다 이르게 저택으로 돌아가 모두와 남은 삶을 편안하게 보내겠지. 하지만 앞서 생각한 것 처럼, 나는 이 부탁을 들어주게 될 것이다. 다 주인님 때문이야. 주인님이 나를 이렇게 물러터지게 만들었다. 평소에 주인님은 이런 선행이 뭐가 좋다고 하신건지... 주인님을 닮아버려서 이런 일을 하고는 있지만 주인님을 위해서 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선행에 대한 본질적인 의미는 내버려둔 채 그녀의 부탁을 들어줄 준비를 했다.


"...아냐. 그냥.. 혼..자 가는게.. 나을 것 같.."


"그래. 도와줄게. 대신에 지금 당장 출발 할 거야."


 내 눈치를 보던 그녀가 부탁을 스스로 포기하려 할 때, 나는 알겠다고 답했다. 그러자 그녀의 고통으로 지친 얼굴은 잠시나마 밝게 웃었다. 참 해맑은 미소였다. 저택에서 이 웃음과 견줄만한 미소를 지을 수 있는 바이오로이드는, 아마 하치코 말고는 없겠지.


"정말로 고마워.. 고마워요.. 진짜.."


"말 좀 아껴. 가기 전에 죽어버리면, 어쩌려고 그래."


 내 타박에, 그녀는 미소를 잃지 않은 채로 고개를 끄덕였다. 도대체 본부에 뭐가 있길래 그녀는 마지막 목숨을 부여잡으며 앞으로 나아가려 하는 것일까. 그저 의무 때문인가. 아니면 다른 이유가 있는 걸까.

 중상을 입은 몸으로 가까스로 일어나는 그녀를 부축해 주었다. 그녀는 괜찮다고 했지만, 뭐가 괜찮은가. 단 세걸음을 걷는 데도 수십 초를 써버리는 몸 상태인데. 하아, 혼자 간다면 30분만에 도착할 거리에 있는 출입구였지만, 이런 중상자를 데리고 간다면 해가 뜰 쯤이나 되서야 도착하겠지. 온갖 불평 불만이 쏟아져 나왔지만 차마 입 밖으로 내뱉지는 못한 채로 입을 꾹 다물며, 그녀를 부축한 채로 서로의 목적지를 향해 걸어나가기 시작했다.



13.


"케흑.. 으으.."


 길을 가는 동안에도 수도 없이 피를 토해낸다. 파이프에서는 그녀의 피가 끝도 모르고 시나브로 시나브로 떨어져 간다. 한걸음 한걸음이 그녀의 목숨을 깎아먹고 있다. 그럼에도 그녀는 내 어깨에 기대어 앞으로 간다. 목숨을 내다 버리며 앞으로 나아간다.

 고통에 몸서리치며 나지막한 신음소리를 내는 그녀였지만, 뭐가 기쁜 건지 미소를 잃지는 않았다. 고통에 미쳐버린 걸까? 모르핀을 조금 투여해주기는 했는데, 좀 과다하게 넣었나?


"그.. 러고.. 보니. 서로 통성명을.. 안했네.."


"통성명은 무슨. 그냥 앞으로 가는 것에만 집중해."


"히히.. 그래도, 나를 도와.. 준 사람 이름은 알아야지..."


"바이오로이드에 이름이 어딨어. 나는 그냥 리리스야. 블랙 리리스."


"아냐.. 넌 다른.. 리리스.. 들.. 과는 완전히 달라..... 그래. 너는 이제부터 착한 리리스야. 그렇..게 불러도 돼?"


"리리스든, 착한 리리스든 맘대로 불러. 그러니 걷는 데에나 집중해."


"좋은 친구가.. 생겼..네... 나는.. 켈베로스... 201..3..67 헤헤.. 까먹었다.. 그냥 2번이라 불러줘..."


 그래 그래. 2번이든 뭐든, 제발 걷는 데나 집중해라.

 2번은 아까 전보다 더 밝게, 헤실헤실한 미소를 지었다. 고통이 더욱 격심해진 듯, 더 많은 식은땀을 흘리지만 웃음은 더욱 더 밝아졌다. 고통 따위는 그녀의 긍정스러운 면모를 조금도 상하게 하지 못했다.


"착한.. 리리스는... 취미가.. 뭐야?"


"취미? 글쎄. 생각 해본게 없어서."


"에... 분명 맞는.. 취미가.. 있을거야. 나는 연병장을 산책하는걸 제일 좋.. 좋아... 쿨럭."


"하아, 말 좀 그만 하라니까."


 그녀는 기침을 하며 쓰러질 뻔 했다. 내가 간신히 붙잡아서 망정이지, 그대로 넘어졌음 참.. 말로 설명하기 힘든 일이 벌어졌을 것이 눈에 선명했다.

 2번이 겪는 그 고통이 어느 정도인지 감도 안 잡힌다. 이제 그녀는 몇 걸음 나가면 그 자리에 풀썩 쓰러져 버릴 정도로 쇠약해졌다. 고통에 몸서리치는 2번을 그만 두고 볼 수는 없어, 다시 모르핀을 꺼내 주사하려고 할 때 그녀는 고개를 절래절래 흔들었다.


"아껴둬.. 나에게 쓰기는 아까.. 운 물건이야.. 그냥.. 대화나 같이 해.. 줘..."


 2번은 고통으로 일그러지는 얼굴을 미소 뒤에 숨기며 힘겹게 말했다. 그래. 어차피 곧 죽어가는 이를 위해 잠시의 말 동무 정도는 해줄 수 있는 것 아닌가. 말 하지 말라 해도 어차피 말을 듣지 않을 것이 분명하니, 소원대로 해줘야지.

 계속해서 거절하는 2번의 의사를 무시하고, 그녀의 입 주변을 닦아주었다. 그리고 너의 말대로 말이나 계속 해 주겠다고 답했다. 그러자 그녀는 고맙다고, 힘 없는 숨소리와 함께 말했다.



14.


"본부에는 왜 가려고 하는 거야?"


"...거기 지휘실에.. 모든 부대원들의 위치 정보가 나오는 컴퓨터가 하나 있.. 어..."


 그 말을 시작으로 2번은 자신이 왜 본부에 가려는 것인지, 그에 대한 이유를 가쁜 숨과 함께 설명해주었다.

 철충의 공세가 시작되었을 때 그녀는 그녀의 본 부대와 다른 부대에 배치되어 작전에 투입되었다. 모종의 이유로 도시 밖에서 진행되는 합동 훈련을 나간 배치 받은 부대와 동떨어져 본부에서 대기하던 2번은 공세를 조금이라도 저지하기 위해 급조된 긴급 대응 부대에 곧장 배치되었다.

 하지만 정규군도 아닌 치안유지용이며 심지어 급조한 시티가드의 부대가 얼마나 견딜 수 있겠는가. 무자비한 철충의 물량과 그때는 알지 못했던 AGS의 감염에 무방비로 노출된 긴급 대응 부대는 전투 개시 5분도 채 지나지 않아서 산산히 박살나기 시작했다. 전투 과정에서 감염되는 AGS를 억지로 저지하려 했던 2번은 이유 모를 폭발에 휘말려 정신이 끊겼고, 깨어나보니 복부에는 파이프가 꽂혀 있었고 온갖 자상을 입은 채 땅바닥을 나뒹굴고 있었다, 라고 2번은 말했다.

 정말 끔찍히도 아프고 고통스러웠지만, 그래도 그녀는 본래 부대의 대원들을 찾으려 했다. 본부로 가면 그녀의 본래 부대에 속한 많은 친구들의 행방을 알 수 있을거라 생각한 그녀는 그렇게 도시 출입구 근방의 본부로 향했다. 그것이 그녀가 본부로 가는 이유였다.


 그녀의 본래 부대원들이 살아있을 거라는 보장은 전혀 없다. 하지만 그녀는 그들 만큼은 분명 살아서 안전한 도시에서 철충에 대한 방비를 하고 있을 거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근거 없는 생각과 바램으로 만들어진 믿음으로, 그녀는 끊어질 듯한 목숨줄을 붙잡고 있었다. 조금만 툭 건드려도 무너질 듯한, 그런 믿음으로.

 그런 그녀의 처지가 안되 보였다. 부실한 믿음을, 특유의 긍정으로 엮어 앞으로 나아가려는 그녀의 모든 행동들이 부질없어 보였다. 하지만 차마 말로 속마음을 털어내지는 못했다. 죽어가는 이 에게 어찌 확고한 절망을 심어줄 수 있는가. 그런 일은 주인님과 함께 군에서 나올 때 그만두었다. 그런 짓이 차마 할 짓이 아니라는 것을, 군에서 나올 때, 원망과 저주 섞인 말과 함께 배웠다. 참 쓰디 쓴 교훈이다. 


 2번의 고된 여정이 끝나갈 때가 되었다. 건물들 사이로, 시티가드의 로고가 그려져 있는 건물이 보였다.

 그리고 동시에, 2번의 한계가 찾아오는 듯 했다. 가쁜 숨은 한없이 옅어지기만 했고, 수도 없이 말을 하던 2번의 입담은 시간이 갈 수록 줄어들었다. 고통과 피로에 의식을 놓치는 듯, 눈동자에 힘이 풀리고 몸에 힘이 점점 빠져 내게 점점 더 많이 기댔다. 그러나 죽음와 시체처럼 점점 차가워지는 2번이었지만, 행적을 확인할 때 까지는 절대 죽지 않겠다는 그녀의 의지는 굳건했다. 다 죽어가는 와중에도 어떻게든 한 걸음, 한 걸음 나아갔다.

 힘들면 잠시 쉬다 갈까, 라는 물음에도 2번은 그저 고개를 절래 절래 흔들었다. 2번은 직감한 듯 했다. 그녀의 마지막이 곧 있음 닥쳐올 것이라는 걸. 마지막이 찾아오기 전에, 그녀는 알고자 하는 것을 알기 위해 걸음을 재촉했다.



15.


 2번은 본부 건물의 입구에 도착하면, 자신이 가지고 있는 보안 키가 필요하다 했다. 하지만 정작 도착했을 때는 필요 없었다. 본부 건물의 두터운 철문은 밖에서 안으로 뜯겨나가 있었다. 25톤 트럭으로 박은 것 마냥 처참하게 뜯겨 나간 철문 뒤로, 쌓여있는 모래 주머니와 그 위에 거치 된 중기관총, 복도를 가득 메운 핏자국과 시체들이 한 눈에 들어왔다.

 죽어가는 2번에게 차마 보여줄 수 없었다. 손바닥으로 2번의 눈을 가리려 하자, 2번은 그런 내 손을 잡고 내렸다.


"...아냐. 다 짐작.. 했.. 던... 일 이야."


 체념한 듯, 2번은 나지막히 말했다.

 그리고는 본부에 도달하기 위해 했던 것처럼 힘겹게 걸음을 내딛었다. 그런 2번을 부축하기 위해 그녀의 옆에 달라 붙었다. 출발할 때는 분명 온기가 남아 있던 몸은 이젠 더 이상 따듯하지 않았다. 차가움만이 피부 너머로 전해졌다.


 2번은 간신히 나아갈 방향을 알려주었고, 그녀의 말 대로 가니 커다란 방 앞에 도착할 수 있었다. 드디어 그녀가 가고자 하는 곳에 도착했다. 이제 2번은 부대원들의 행적을 두 눈으로만 보면 된다. 그리하면 된다. 그것만 보면 된다.


"하...아...."


 그녀가 보고자 하는 것이 담긴 방 앞에서, 그녀는 몇 걸음을 내딛지 못하고 힘이 빠져 버렸다. 파이프에서 새어 나오던 피는 어느새 메말라 버려 한 방울도 나오지 않고 있었다. 쓰러져버린 그런 그녀를 벽에 기대어 쉴 수 있도록 잘 눕혀 주었다.


"걸을 수 있어?"


"..안 보...여.. 눈 앞이.. 흐.. 려...."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힘을 다해 죽어가는 바이오로이드를 살릴 수 있는 약이 있을리 만무하고, 있다 한들 내게 있을 일도 없었다.

 그녀가 헛되게 죽을 수는 없다 생각이 들었다. 분명 주인님께서도 이리 하셨을 거야, 라고 생각하며 나는 방 안으로 들어갔다. 


 기계를 찾는 번거로움 따위는 없었다. 이 중앙통제실로 보이는 방 한 벽면에는 커다란 화면이 있었고, 그 화면은 모든 부대원들의 동선과 그들의 상황을 간략하게 보여주고 있었다.

 다루는 이 하나 없지만, 전원이 들어와 빛을 내는 한 기계 앞으로 가 이것 저것 만져보니 벽에 걸린 화면을 나름대로 다룰 수 있었다. 이 기계를 이용해, 나는 이 본부에 속해있는 모든 부대원들의 상태를 화면 위에 나타나게 했다. 화면이 잠시 일렁이더니, 곧 이 본부의 모든 바이오로이드의 정보를 나타내었고 수많은 빨간 글씨의 향연 속에서 나는 필요한 것을 찾아 보았다. 2번이 원래 속해 있던 부대의 정보였다. 그리고 그건 2번의 기대를 철저히 박살낼 사실이 담긴 정보였다.

 

 2번이 속해 있던 부대는 철충 사태가 터지자마자 곧바로 도시로 복귀 했다. 그리고 그대로 공세 방어 작전에 투입되었고 다음은.. 예상했던 것처럼, 그 누구도 살아남지 못한 채로 전멸 판정을 받았다.

 당연한 사실이다. 이 당연한 사실을 알게 된 것은 문제가 아니다. 이 사실을, 2번이 알았을 때는 문제가 된다.


 씁쓸한 사실을 가슴에 묻어 두고, 방 밖에서 마지막 숨을 내쉬고 있는 2번에게 돌아갔다.

 정말 작고 조용한 목소리로 2번은 내게 물었다. 어떻게 됬냐고. 그들은 살아남았냐고.


 나는 그녀가 잘 들을 수 있게, 그녀의 귓가에 말을 속삭여 주었다.


"전부 살아 있어. 인근 도시에서 집결해서 재정비 하고 있다고 하더라."


 거짓말을 전해 주었다.

 2번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게 그녀의 마지막 숨 이었다. 그렇게 그녀는 죽었다. 이 건물의 모든 시체들 중, 가장 따스하고 평화로운 웃음을 지닌 채로.


 책에서만 보았던 선의의 거짓말을, 직접 전달해보니 느낌이 색달랐다. 이런 것을 일찍 알았다면, 군에 있을 때 그런 짓 들은 하지 않아도 됬을 탠데. 문학과 감정을 하등 쓸모 없는 것으로 여기며 살았던 과거가 원망스럽게만 느껴졌다.

 

 2번의 시체를 조금 더 편하게 눕혔다. 짧은 만남이었지만, 나쁘지는 않던 아이였다. 다음에 다시 만나게 된다면, 좀 더 평화로운 곳에서 다시 만났으면 하는 바램을 가졌다.


 씁쓸한 감정이 안에서 피어오르고, 쓰디 쓴 맛이 입 안을 맴돌았다. 아는 이의 죽음은 언제 바라보아도 끔찍하다. 다시는 느끼고 싶지 않을 정도로 지독하고 씁쓸한 기분이다. 

 언제까지 남아서 추모를 할 수는 없다. 짧은 추모로 그녀에 대한 애도를 끝냈다. 짧은 만남 만큼, 짧은 애도였지만 예를 갖추기에는 충분했다. 군에서 배울 당시만 해도 쓸 데 없다 생각한 이런 기본적인 것들이, 지금 와서는 가장 유용하게 쓰이고 있었다.


 산 자는 떠나고, 죽은 자는 남아야만 한다.

 그렇지만, 기억 마저도 죽은 자와 같이 남길 수는 없었다. 그래서 그녀를 기억하기로 했다.

 이 첫 만남의 기억은 여행의 끝 까지 기억 될 것이다. 생각할 때 마다 씁쓸한 기억이 되살아 나겠지만, 그래도 기억할 것이다.

 

 그렇게 그녀를 기억 속 한 곳에 묻어둔 채로, 건물을 나왔다. 그녀를 마음 속에 묻어서 그런가, 발걸음이 다소 무거웠다.

 하지만 계속해서 가야 했다. 2번이 그랬던 것 처럼 나도 해야만 하는 의무를, 내가 진정으로 바라는 과업을 짊어졌으니까.

 

=====================================================================================

공백 제외8533


이제 과제를 해야 한다.

살려주세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