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편 모음집 : https://arca.live/b/lastorigin/1507448 




 야마나시현 후지요시다시. 후지산 북쪽에 있는 조용한 마을이었다. 도심이라는 말보다 시내라는 말이 어울릴 정도로 후지요시다시에는 별다른 것이 없었다. 대부분의 건물들은 3층이 채 못되는 낮은 주택들 뿐이었고 간혹 상가 건물이나 공장, 밭과 논이 있을 뿐이었다.

 니지키의 추신구미의 조직원이 죽은 곳은 후지요시다시 서북쪽의 아사히라는 곳이었다. 그곳은 농촌이라는 말이 어울릴 정도로 어디서나 벼가 자라는 논을 볼 수 있는 곳이었다. 그 논들 중 하나에 세구의 시체가 쓰러져 있었다. 그것을 발견한 것은 한두사람이 아니었다.

 이른 저녁에 갑자기 총성이 여러발 울린 것이었다. 조용한 농촌에서 그것을 못들을 사람은 없었다. 갑작스러운 괴성에 낮동안의 농삿일을 마치고 돌아온 사람들은 창밖으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를 보았고 그들이 본 것은 칸다씨의 논에 죽어있는 사람들과 그곳에서 도망치는 누군지 알 수 없는 사람들 뿐이었다.

 후지요시다 경찰청에서 1km도 떨어지지 않은 곳에서 일어난 대담한 범죄자들이었다. 총소리는 경찰청의 앞에서 경계를 서고 있던 순사마저 들었을 정도였으니까. 주민들이 신고를 하기도 전에 총소리를 들은 경찰들은 현장으로 출동했지만 이미 총격사건의 범인은 도망친 다음이었고 현장에 도착한 경찰들이 본 것은 논을 붉게 물들이며 죽어있는 세구의 시체와 길 위에 죽어있는 한 구의 시체였다.

 그리고 시간이 흘렀다. 구경꾼들은 사건 현장으로 몰려왔고 개중에는 소문을 듣고 찾아온 다른 마을 주민들도 있었고 도쿄에서 이곳까지 온 한 사람도 있었다.

 니지키 쇼는 죽은 자신들의 부하의 시체를 보며 한숨을 쉬었다. 어째서 이곳에서 죽어야 했는가.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야쿠자의 죽음은 의미가 없는 죽음이었다. 그야말로 개죽음이었다. 이권다툼으로 얻는 돈이 사람의 목숨보다 가치가 있는 것이었을까. 어느때에는 단순한 아무것도 아닌 명분으로 죽게 되는 일도 있었다.

 이번에는 어떤 이유에서 였을까. 무엇이 되었든 사람이 죽을만한 이유는 아닐 것이었다.

 “여러분! 물러나세요! 여기는 사건 현장입니다!”

 “잠시만 지나가겠습니다! 잠시만요!”

 현장은 경찰들과 구급대원들로 아우성이었다. 니지키가 현장에 도착한 것은 사건 발생으로부터 많은 시간이 지난 다음이었지만 이제서야 시체를 수습하려는 중이었다. 사건현장조사가 우선이었다는 것이었을까. 오랜 시간 물이 찬 논에 있었던 탓일까, 죽은 조직원의 시체는 조금 부풀어 있었다.

 “여! 쇼쨩.”

 낮익은 목소리가 들리자 니지키는 인상을 쓰며 돌아보았다.

 “여! 히사시부리.”

 후루카와 형사의 얼굴을 본 니지키는 혀를 찼다.

 “여기는 무슨 일입니까. 야마나시현은 경시청의 관할도 아닐텐데요.”

 “견학.”

 후루카와는 말도 안되는 변명을 하며 구경꾼들 사이로 사건 현장을 바라보았다.

 “쇼쨩, 저거 니들 조직원 맞지? 그 이름이 뭐냐. 추신구라랑 이름 비슷한 그거.”

 “무슨 이야기하는지 모르겠네요.”

 니지키는 죽은 조직원들이 듣는다면 서운할만한 말을 했다. 하지만 어쩔 수 없는 것이었다. 이곳에는 수많은 경찰이 있었고 니지키와 말하고 있는 후루카와 역시 경찰이었다. 그들 앞에서 자신이 이 사건과 연관되어있고 특히 그 조직의 수장이라 말하는 것은 경찰 앞에서 자수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리고 후루카와는 관록깊은 경시청 조직범죄부 소속의 형사였다. 니지키의 조직의 이름이 무엇인지는 애저녁에 알고 있을 것이었다. 어쩌면 니지키가 알게 된 것보다 더 빠르게 알았을지도 모른다. 또한 죽은 사람들이 니지키의 추신구미 소속이고 죽인 사람은 엔도조로 의심된다는 사실마저도 알고 있을 것이었다.

 “아, 그래. 추신구미. 그런 이름이었지. 형사앞에서 거짓말하는 건 안좋은 습관이야. 니들 단체도 지정폭력단체에 등록되어있으니까. 엔도조도 마찬가지고 말야. 근데 니들 조직, 엔도조와 술잔 나눈 관계 아니냐? 왜 갑자기 서로 치고박고 싸우는 거야.”

 “잘 모르는 일입니다.”

 이건 거짓말이 아니었다. 니지키도 무슨 일이 일어나는 것인지 알지 못했다. 엔도 마사루 역시 자신은 모르는 일이라 답했다. 말단 조직원끼리 말다툼이라도 일어난 것 아니냐며 자신의 쪽에서도 확인해보겠다는 말 만을 남겼다.

 엔도의 확답을 들었지만 니지키의 마음 속에는 의심이 남아있었다. 만일 엔도조가 자신들을 집어삼키려고 한다면. 추신구미에게는 그것을 막을 힘이 없었다.

 “뭐, 야쿠자란 것들은 다 그런 거지. 인의고 극도고 뭐고 그냥 돈되는 것만 쫓는 거야. 인의없는 전쟁과 같은 거지. 쇼쨩, 너는 당연히 그 영화 봤지?”

 “언제적 영화입니까. 그런 옛날 영화는 별 흥미가 없습니다.”

 인의없는 전쟁. 1975년도 영화였다. 90년이 되어가는 고전 영화는 니지키의 취향이 아니었다.

 “너도 나도 옛날 사람이잖아. 요즘에는 없는 부류. 시대에 뒤쳐진 사람들이니 시대에 뒤쳐진 문화를 즐기는 거야. 아니지. 경찰도 야쿠자도 그랬던 옛날이 없었지. 언제나 경찰은 부패하거나 의욕이 없는 곳이었고 야쿠자들은 인의라는 명분을 대지만 실상은 이권싸움이나 할 뿐인 깡패였지. 인의란게 없으니 인의를 내세우는 거야. 법이란 법이 지켜지지 않기 때문에 존재하는 것처럼 말야.”

 옛날 사람. 니지키가 자주 듣는 이야기였다. 옛날이란 무엇일까. 확실한 것은 문자 그대로의 의미는 아니었을 것이었다. 실존하지 않았던 미화된 추억이었을까. 로망이라는 단어가 제일 적절했을 것이었다. 야쿠자의 로망. 누구도 따르지 않고 세워만 둘 뿐인 허울에 불과했다.

 “그건 어디나 마찬가지죠. 차이라면 야쿠자는 싸울때 총을 들고 나온다는 것뿐이겠죠.”

 “애초에 총을 들고다니는게 문제야. 이 나라는 총기소지가 위법이라는 것을 말해줘야 아는 것도 아니고. 네놈들은 사람의 목숨을 뭐라 생각하는 거야. 이렇게 총질해서 얻는게 뭐라고. 너도 알잖아. 목숨걸고 싸워봐야 윗조직은 인정해주지 않을 거라는 걸. 결국은 돈이야. 너 역시 마찬가지고.”

 니지키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의 말에 대꾸할 이유도, 대꾸할 말도 없었다.

 “뭐? 죽은 야마다의 복수를 한다고? 결국 너도 이권을 찾아 이 짓을 하는 거 아냐? 야마다의 복수를 한다면 신센카이에서 직계로 끌어올려줄 것이라고 기대한 거겠지. 속으로 이렇게 생각하겠지. 나는 그런 야쿠자가 아냐. 나는 순수하게 인의를 추구하는 극도야. 말도 안되는 헛소리지. 네 소문은 잘 듣고 있어. 여기저기 쑤시고 다니고 있다고? 야쿠자가 돈과 권력 쫓아 뜯어내는 거 하나는 잘 하지? 그래?”

 니지키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뻔한 말이었다. 니지키의 화를 돋구어 그를 방심하게 하려는 수책이었다. 니지키는 그런 수에 당할 사람이 아니었다.

 “야, 야마자키!”

 한창 이야기하던 후루카와는 갑자기 누군가를 불렀다. 그의 말에 현장을 지휘하던 경찰이 후루카와를 보더니 고개를 꾸벅 숙이며 다가왔다.

 “선배님! 무슨 일이십니까?”

 선배. 고등학교 선배였을까 대학 선배였을까. 아니면 경찰 같은 부서의 선배였을까. 니지키는 알 수 없었다.

 “뭐 알아낸 거 있냐? 어느 조직이 어느 조직을 친 거냐?”

 “아직 조사중이에요. 그보다 옆에... 말해도 되는 건가요?”

 야마자키는 니지키를 보면서 말했다. 야쿠자 앞에서 수사에 대해 말하기 싫다는 것이었다.

 “자기 입으로는 관계가 없다고 하네. 뭐 지나가던 민간인인가봐. 추신구미 두목 니지키 쇼와 많이 닮았지만 아닌가봐.”

 후루카와는 니지키를 비꼬며 말했다. 야마자키는 의심이 가는 눈빛으로 니지키를 보았지만 후루카와의 부탁을 들어주었다.

 “논 위에 죽은 셋은 말씀하신 신센카이 2차 단체인 추신구미의 조직원이에요. 저희쪽에서 후지큐에 바이오로이드를 불법공급하는 애들로 의심하고 수사중이었죠. 이렇게 죽어버렸으니 우리쪽에서 수사는 막힌 거지만요.”

 후지큐 하이랜드. 후지요시다시에 있는 유명한 놀이공원이었다. 그곳에 바이오로이드를 납품한다라. 니지키는 듣지 못한 말이었다. 말단 조직원들이 덴세츠 사이언스의 유통을 도와주고 있었는데 그게 이런 것일줄이야.

 “그래서 무슨 일이 일어난 거야. 셋 죽이러 와서 하나 죽고 나머진 도망친 거야?”

 “그런 셈이죠. 저 셋은 이 근처에 살고 있었고 그걸 노린 타 조직원 네명이 와서 총격을 가했어요. 추신구미 조직원들도 습격당하며 총을 쐈고 그 과정에서 하나가 죽은 거죠. 죽인 쪽은 아직 조사중입니다만 시체의 소지품중에 명함이 있었어요. 신센카이 직계의 엔도조의 조직원의 명함이었죠. 확실하지 않지만 저는 엔도조의 소행이라 생각합니다. 하지만 선배, 추신구미는 엔도조의 아들뻘 조직이잖아요. 둘이 싸울 이유는 없지 않나요?”

 “야, 야마자키. 야쿠자들이잖아. 술잔 나누고서는 서로 칼 찌르는 건 흔한 일이야. 오히려 가까운 조직이기 때문에 더 충돌할 일이 많을 지도 모르는 거지. 안그래요? 지나가던 행인분?”

 후루카와는 니지키를 돌아보며 물었지만 니지키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엔도조 역시 바이오로이드 유통업을 하고 있어. 불법이지만 말야. 둘이 활용영역이 겹치게 되니 다툼을 한 게 아닐까? 본인들 소환해서 묻는 수밖에 없겠지만.”

 “추신구미나 엔도조 모두 도쿄에 거점을 두고 있죠? 선배님, 이거 수사 협력으로 해야 하는 걸까요? 이쪽 자원으로 야쿠자 수사는 어려움이 있어서 말이죠. 그쪽의 니지키 씨도 이쪽으로 불러서 조사하고 싶어도 어려울 거 아니에요.”

 야마자키는 니지키를 바라보며 말했다. 둘은 무슨 생각이었을까. 니지키의 방문을 예상하고 짜기라도 한 것일까. 하지만 니지키에게 정보를 준다고 바뀌는 것이 있을까. 이미 니지키가 알고 있는 정보였다. 엔도조가 자신의 조직원을 살해했다. 니지키가 알고싶은 것은 이유 혹은 진실이었다.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는 관심 밖이었다.

 “나는 다른 수사 때문에 여유가 안나고 다른 조범과 형사를 소개시켜줄게. 쇼쨩은 내가 마음에 안드는 모양이더라고. 만일 조직간의 항쟁으로 이어질지도 모르니까 조사는 확실하게 하는 게 좋을 거야. 조직간 전쟁을 막고 평화를 유지하는게 경찰의 일이니까.”

 말은 그렇게 했지만 후루카와는 니지키와 엔도간의 항쟁을 바라는 것이 아니었을까. 경찰이기에 표면적으로 말하지 못할 뿐, 후루카와는 니지키든 엔도든 야쿠자들의 세력약화를 바라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그를 위해 엔도와의 관계를 악화시키기 위해 니지키에게 엔도가 그랬다는 정보를 흘리고 있는 것이었다.

 하지만 니지키는 그런 것을 바라지 않았다. 엔도와 니지키는 부자간의 술잔을 나눈 사이였다. 니지키는 옛날 사람이었다. 아니, 야쿠자의 로망을 따르는 사람이었다. 니지키에게 엔도는 관계가 오래되지는 않았지만 그에게 엔도는 야마다와 같은 위치에 있는 사람이었다. 그런 사람과 항쟁이라니, 니지키로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뭐, 시간 빼앗아서 미안하다. 가서 일봐. 수사 잘 하라고.”

 후루카와는 야마자키의 등을 토닥이며 그를 보냈다. 그가 멀어지자 후루카와는 니지키를 바라보았다.

 “절대로 엔도조와 항쟁을 해서는 안돼. 알았어, 쇼쨩?”

 그렇게 말하는 후루카와의 얼굴은 니지키의 항쟁을 바라고 있었다. 청개구리에게 자신을 물가에 묻어달라고 말하는 엄마 개구리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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