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는 선택해야한다.

위험한 상황에서 버려야할지, 말지를.



"...보고해주세요 발키리 언니."

"눈보라가 심해서 시야가 너무 제한됩니다. 제 오른눈으로도 그다지 멀리까지 보이지 않습니다."

"알겠어요 언니. 님프 언니, 사령관님과 통신은 되나요?"

"...여러 번 시도하고 있는데 여전히 노이즈만 가득해요. ...마음의 준비를 해야할 거 같아요 안드바리."

"...알비스 언니. 챙겨온 초코바는 얼마나 있나요?"

"어... 15개."


안드바리는 동굴의 천장을 올려다보면서 상황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지금 여기 있는 4명은 고립되었다. 시스터즈 오브 발할라 부대의 남극 작전 행동 중, 갑작스런 크레바스와, 이를 도우려는 레오나에 대한 철충의 저격, 그리고 그 사이 어디에 있었던건지, 갑작스럽게 나타난 철충들의 공격으로 완전히 분단되고 말아버렸다.


다행이게도 안드바리도 일단은 지휘관 개체인지라 나머지 셋은 경거망동하지 않고, 안드바리에게 바로 모여서 행동하는 게 가능했다.

하지만 불행이게도 시스터즈 오브 발할라에서 막내였던 안드바리는 큰 불안감을 느끼고 있다.

어디까지나 지휘관 개체일 뿐, 실제 지휘는 레오나가 맡기에 안드바리의 지휘관 경험은 없다고 볼 수 있었기에 더더욱.


'괜찮아. 할 수 있어. 괜찮아...'


불안으로 요동치는 마음을 레오나와 사령관의 지휘를 떠올리면서 진정시킨다.

할 수 있다. 레오나 언니처럼, 사령관님처럼 아무도 죽지 않고 오르카호로 돌아갈 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 생각해서 나올 것이, 근거가 없는 자신감이라 하더라도 지금의 안드바리에게는 필요했다.


일단은 눈보라가 그치기 전까진 이 동굴에 머무르다, 눈보라가 그치면 나와서 신호탄 대신, 총성을 울리기로 결정했다.

...철충과 만날 위험은 크더라도, 본대와의 빠른 합류를 우선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때 까지 버티기 위해서 초코바를 한 개씩 나눠 먹으면서 버티기 시작했고...


"잠깐, 소리가 들립니다."


다 먹기도 전에 불청객이 찾아왔다.


동굴의 안쪽에서부터 점점 커져오는 발걸음 소리. 너무나도 둔탁한 그 소리에 아무도 아군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모두가 총을 들고, 경계를 계속하여 나온 것은,


"적기 확인, 프로스트바이트! 신속한 대피를!"


현재의 구성원으로는 상대하기 힘든 프로스트바이트였다.


저 단단한 장갑을 뚫기 위한 장갑탄도, 연약하게 만들기 위한 불꽃도 아무것도 없는 현 상태에서 해야할 행동은...


"알비스 언니, 님프 언니 막아주세요! 발키리 언니와 저는 여기서 이탈할 준비를 할게요!"


확실한 죽음에서 불확실한 죽음으로 도망치는 것이었다.


다행히도 4명 전부 빠져나오는 것은 가능했다.

불행히도 눈보라는 거세었다.


말 그대로 한 치 앞도 보이지 않지만 그녀들은 움직여야만 했다. 조금이라도 프로스트바이트에서 멀어지기 위해서.


탕!


하지만, 프로스트바이트만이 있을 거라고는 아무도 말하지 않았다.


그 것을 알고 있었는지, 아니면 최전방에서 모두를 지켜야한다는 의무감에선지, 알비스는 말그대로 몸을 펼쳐서 안드바리를, 거의 구별이 안가는, 그래도 총구라고 의심되는 것이 안드바리를 노려보고 있었기에 밀었고, 그대로 저격당했다.


당한 것은 다리. 아마도 안드바리의 발을 빼앗아서 이동속도를 늦추게 하려는 수작이었겠지. 어찌되었건 알비스가 대신 맞으면서 그 목적은 달성했다.


"알비스 언니!"

"! 전방에 한랭지형 칙 스나이퍼 3체와 칠러 3체, 그리고 프로스트 바이트 1체!"

"뒤에서도 프로스트 바이트가 따라오고 있어요. 빨리 이탈해야..."


이탈해야한다. 하지만 알비스의 다리가 저격당해서 피가 나고 있다.

안드바리는, 정해야만 했다.


알비스를 여기에 버리고 자기들만이라도 도망쳐야할지, 아니면 가망이 없더라도 알비스와 같이 싸워야할지.

지휘관 모듈은 전자를 선택했다. 하지만, 하지만, 알비스가 초코바를 훔쳐먹고 안드바리를 곤란하게 만들어도, 알비스는 항상 시스터즈 오브 발할라의 든든한 방패였다. 항상 누구보다 앞에 서서 자신들을 지켜왔고, 좋다고 하기엔 힘들었지만, 그래도 언니 노릇은 해왔었다.


그런 알비스를 버려야한다고?

싫다.

-하지만 판단을 내려야했다.

싫었다.

-지휘관 개체로써 판단을 내려야했다.

말하기 싫었다.

-그래도, C-33 안드바리라는 개체는 누구를 버릴지를 말해야했다.


"알비스 언니..."

"응..."


알비스는 그저 웃었다. 품 안에 있던 초코바를 꺼내서 안드바리를 건내주었다.

그리고는 그저 고개를 끄덕였다.


안드바리는 눈을 감았다.

C-33 안드바리는 눈을 떴다.


"여기서 철충들을 막아주세요."


말해버렸다.

말해버렸다.

알비스를 버린다고 말해버렸다.


그래도 알비스는 싫은 내색하나 하지 않고, 처음 보는 포근한 미소로 가라고 말해주었다.

이게 마지막이 될 것을 알고서.




시끄러운 총성이 그쳤다.

이는 곧, 한 생명이 떠났다는 것을 의미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알비스를 버려버린 안드바리는 울 수 없었다.

울면 안됐다. 지휘관 개체로써, 발키리와 님프라도 오르카호에 생환시켜야했다.

울 시간 따위는 없었다.


"후방에서 적의 소리가 들립니다. 흐려서 안 보이지만 아마도 철충. 어떻게 할까요 안드바리."


다시, 선택의 시간이 왔으니까.


"프로스트바이트일지도 모르니 최대한 교전을 피하죠. 가까이에 숨을만한 곳이 있었으면 좋을텐데..."


그런 것을 찾을 시간 따위, 적은 주지 않았다.


"피해요!"


갑작스러운 일이었다.

새하얀 설원에서, 갑작스럽게 땅에서 나타난 타란튤라와 비슷한 무언가는, 그대로 3명에게 달려들었고, 발키리가 그대로 총을 쏴서 맞추어 떨궜다.


다만, 그 것의 뒤로 따라오는 것이 하나 더 있었고, 


"저리 떨어져요! 이..."


쾅!

님프에게 달라붙은 그 것은, 그대로 폭발했다.

커다란 굉음, 짙은 연기, 그리고... 남아있는 것은 거의 다 죽어가는 님프.

안드바리와 발키리는 님프에게 달려가려고 했다. 달려가려고는 했다.

하지만, 소리와, 불빛에 이끌리는 벌레들은 남극에서도 있는지, 거대한 소리가 울려퍼지면서 이 곳으로 오고 있었다.


안드바리에게는 고민할 시간이 없었다.

C-33 안드바리는 결정했다.


"님프 언니. 여기서 시간을 끌어주세요."


죽어달라는 말을 했다.


"저하고, 발키리 언니가 도망갈 수 있는 시간을 끌어주세요."


버린다고 했다.


"명령이에요."

"...안드바리."


다 죽어가는 목소리로 님프는 말문을 열었다. 안드바리는 님프가 무슨 소리를 할지 두려웠다. 울고 싶었다. 그래도, 죽으라고, 여기서 버린다고 말한 것에 대한 댓가를 받아야한다고 생각했다.


"돌아가면... 푹 쉬어요..."


님프는, 그 말만 하고, 폭발로 인해 거의 다 망가진 총을 들어서, 소리가 울려퍼지는 방향으로 힘겹게 몸을 틀었다.


님프와의, 마지막 만남이었다.




알비스 때보다, 소리가 그치는 것이 더 빨랐다.

도망쳐야했다.

-어디로?

도망쳐야했다.

-어떻게?

도망쳐야했다.

-...왜?

도망을... 쳐야했다.

이미 두 명을 죽게 해놓고서, 살아남지 못하면, 그 둘에게 미안했다.

전혀 탓하지 않고, 가라고 등을 밀어준 두 명을 볼 낯짝이 없었다.

그러니까 살아야한다고, 안드바리는 이를 악 물면서 나아갔다.


"안드바리. 포위당한 것 같습니다."


눈보라가 그치지 않아, 시야가 나쁜 와중 발키리가 그렇게 말했다.


"그런...가요."


부질없었다.

2명을 버리고 떠났지만, 결국 끝은 이렇게 되어버렸다.

참으로, 부질없었다.


"발키리 언니, 언니라도 도망쳐서..."

"안됩니다."


안드바리를 보지 않은 채, 발키리는 그렇게 단언했다.


"안드바리가 여기서 죽는다면, 사령관님은 슬퍼할테니까요."

"그건... 그건...!"


그건 알비스나 님프, 그리고 발키리도 마찬가지였다.

그럼에도 버려버린 자신을 책망하는 것만 같아서, 가슴이 미어졌다.


"제가 어떻게든 시간을 끌어볼테니, 안드바리만이라도..."

"저 혼자 도망쳐서 뭔가 될리가 없잖아요..."


외통수였다. 지휘관 모듈도 답이 없다고 결론을 내렸다.

그러니, 마지막이라도 차라리 같이 죽는 것이 낫다고 생각을 내려...


빛이 솟아올랐다. 그리고 철충의 대부분이 녹아내렸다.


"타이런트입니다. 아마도 각하가 여기에...!"

"모두 괜찮아?!"


레오나의 외침이 울려퍼졌다.

동시에 철충들은 그 쪽으로 고개를 돌렸고, 레오나의 지휘로 다시금 연료를 충전한 타이런트가 두 번째의 브레스를 날려서 쓸어버렸다.


두 명은, 살아남은 것이었다.



"레오나, 안드바리는..."

"...아직도 나오지 않고 있어."


어두운 방 안에서, C-33 안드바리는 눈을 감았다.

안드바리는 눈을 떴지만, 앞이 보이지 않았다.

알고 있다. 알비스와 님프를 그 곳에서 버리지 않았다면 이미 자신들은 죽었을 것이라는 것을.

그녀들도 자신을 책망하지 않고, 가라고 등을 떠밀어준 것을.

하지만, 그래도, 눈에서 나오는 빗물은, 그치지 않은채 안드바리에게 내렸다.




누군가는 선택해야한다. 

위험한 상황에서 버려야할지를, 말지를.

그 결과, 자신의 마음을 버리게 될지라도, 선택해야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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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드바리가 지휘관 개체라는 말을 듣고 마침 이 대회 열렸다길래 쓰다가 오늘 팀 웨히히 만화보고, 아 맞다 공식도 발할라 애들 다루고 있었지 씹ㅋㅋㅋㅋ하고 마저 써서 올림.


ㄹㅇ 쓰면서 생각한건데 왜 어린애한테 지휘관 모듈을 달고 그럴까... 어른도 저런 상황오면 멘붕 올 거 같은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