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프리트의 일광건조  - 딱히 안 읽어도 큰 상관 없는 본 작품의 프리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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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식 설정과는 연관 없습니다.






“브라우니!! 또 너야?”


“으와아아악!! 아, 아님다아아!!”


“아니긴, 뭐가 아니야!! 네 입에 묻어 있는 초콜릿은 그럼 뭔데!!”


“아, 아님다아아!! 이건 아까 참치 먹다가 흘린 자국임다아아!!”


“참치 먹는데 초콜릿이 왜 묻어나와, 이 멍청아!! 넌 박격포 안에 들어가 있을 준비해!!”


“으와아아악!! 저 아님다아아!! 레프리콘 상병이 먹었슴다아아!! 너무함다아아!!”


“이제는 팔아먹을 게 없어서 선임을 팔아먹어요…?”


“앗! 그, 그게 아니라…!”


“브라우니!!”


“브라우니이이…!!”


“으와아악! 이, 이젠 저도 모르겠슴다아아!!”


“어딜 도망쳐어어!!”


“브라우니이이!!”


“…….”


악몽이다.


전쟁통에 떠올리는 평화에 대한 망상을, 브라우니는 악몽으로 여겼다.


눈을 뜨면 보이는 것은 항상 어두운 구름 뿐이다.


평화 같은 건 이 세상에 없다.


바이오로이드는 왜 꿈을 꾸는 것일까.


일부러 이런 꿈을 만드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은 분명 고문 기술자일 것이다.


브라우니는 잠시 꿈에 대한 생각에 잠겨 있다가 머리를 짚고 아침잠에서 깨어났다.


헝겊을 덧대 수선한 침낭에서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부스스한 머리카락은 이미 어깨 아래까지 기다랗게 자라 있었다.


브라우니에게 잔소리를 하면서도 이따금씩 그녀의 머리카락을 다듬어주던 레프리콘 상병은,


이제 없다.


평화로울 때의 스틸라인은 왁자지껄하고 부산스러운 오합지졸에 불과했다.


하루 과업 중에 점심 식단이 무엇인지 알아오는 게 가장 중요한 임무일 정도로 우리는 얼빠진 집단이었다.


그러나 2111년 전쟁이 시작되고, 모든 게 달라졌다.


바이오로이드에게도 명예가 있냐고 누군가가 묻는다면, 브라우니는 분명 건빵주머니에 있는 군번줄 몇 개를 꺼내어 보여줄 것이다.


아군의 퇴로를 확보하기 위해 가장 먼저 희생한 이프리트 분대장. 탄약이 부족한 상태에서 무리하게 아군을 방호하다가 타겟이 된 노움 병장.


전투에 필요한 탄약을 보급하려다가 적탄에 숨진 보급병 실키. 그리고, 멍청한 내 목숨을 구하려다 끝내 자기가 죽고 만 레프리콘 상병까지.


그들에게 공통점이 있다면 모두 누군가를 구하려다가, 혹은 다른 사람을 위해서 자신의 목숨을 내던졌다는 것이다.


계급순으로 차례대로, 자신의 죽음을 당연하다고 받아들인 스틸라인의 비극을,


브라우니는 명예롭다고 생각했다.


“레프리콘….”


레프리콘이 남긴 분대지원화기를 바라보며 브라우니는 생각했다.


남은 탄약은 175발. 레프리콘이 남긴 유품 중에서 가장 유용한 것이 바로 그녀의 무기였다.


총기가 망가져서 선임의 무기를 대신 써야한다고 말하면 레프리콘은 나에게 잔소리를 할까.


노움의 머리끈으로 머리카락을 정리하고, 이프리트의 야전 상의를 걸친 채, 실키의 침낭에서 잠을 청하는 꼴을 본다면 분명 레프리콘은 화를 내겠지.


브라우니의 개인화기 따위는 이미 오랜 세월에 짓눌려 너덜너덜해진지 오래다.


꼼꼼한 성격의 레프리콘이 관리한 분대지원화기는 확실히 브라우니의 화기보다 상태가 양호했다. 살아남기 위해서는 레프리콘의 무기를 사용해야 한다.


레프리콘의 화기로 무장을 갈아치운 브라우니는 마침내 숙영지를 정리했다. 그리고 장구류를 점검한 뒤, 오늘의 임무에 대해서 생각했다.


레프리콘이 죽고나서, 브라우니는 임무 선정을 가장 어렵게 생각했다. 브라우니는 늘 다른 사람이 시키는 데로만 움직였다.


그러나 이제부터는 스스로 결정하고 스스로 움직여야만 했다. 그만큼 브라우니는 똑똑해졌고, 또한 성숙해졌지만,


그녀는 똑똑해질 때마다 알 수 없는 슬픔을 느끼고 있었다.


어디선가 들은 적이 있다.


브라우니라는 기종은 전쟁터에서 활용하기 위해 비정상적일 정도로 쾌활하게 설계되었으며,


딱 명령 수행에 필요한 최소한의 지능만을 갖추었다고.


그러나 브라우니가 혼자서 임무를 선정하고, 살아남기위해 창의적인 전투 수행 방법을 고안할수록, 점점 그녀의 지능과 사고 수준은 성장해갔다.


그리고 그 만큼 브라우니의 감정정 상처 또한 깊어져갔다.


브라우니는 감수성이 지능에 비례한다는 사실 또한 학습하고 있었다.


레프리콘이 자신을 구하려다 죽었을 때, 브라우니는 더 이상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깊은 슬픔에 빠져 들었다.


그러나 군용 바이오로이드의 설계 제한으로 인해 그녀는 스스로 죽을 수도 없었으며, 살아남기 위해 그저 처절한 생존 투쟁만을 반복해야 했다.


“남은 세열 수류탄은 3발. 방벽 수류탄 3발. 점착 수류탄 2발.”


이런 상황에서 브라우니는 삶의 의미에 대해 자문을 하곤 했다.


오랜 자문 끝에 그녀는,


자신이 처음 임무를 수행했던 모체 부대를 찾아보기로 마음먹었다.



   ***



스틸라인 제 3 후방 지원 분견대.


철충이 떨어지던 날, 이프리트 분대장은 ‘여기는 깡촌 중의 깡촌이니까,’ 라면서 브라우니를 진정시켰다.


그러나 철충은 곧 우리의 막사 코 앞까지 떨어져 부대를 엉망으로 만들었다.


당직사관이었던 임펫 상사는 병사들이 도망칠 시간을 벌기 위해 기동간 사격으로 철충의 시선을 끌었고, 그 사이에 브라우니는 도망칠 수 있었다.


“행보관님, 죽었겠지.”


철이 없었던 브라우니는 임펫 상사를 구하러 가야한다고 이프리트에게 떼를 썼다. 그러다가 분대장에게 박격포 포판으로 얻어 맞고 나서야 겨우 정신을 차렸다.


브라우니가 떼를 쓰는 바람에 시간이 지연되어 이프리트마저 퇴로를 확보하느라 목숨을 버려야 했다.


후회되는 일이지만, 이제는 이미 몇 십년이나 지난 옛날 이야기이다.


브라우니가 버려진 부대의 허전한 연병장으로 들어섰다.


녹슨 장갑차와 주차호가 을씨년스럽게 흩뿌려져 있었다. 이제는 폐건물이 되어버린 후방 지원 분견대의 쓸쓸한 막사가 브라우니를 맞이했다.


예전에는 이곳에서 이프리트와 캐치볼을 하면서 곧잘 뛰어다니곤 했다.


브라우니는 사회에 있을 때 본인이 역삼동 메시였다고 떠벌렸던 과거를 회상했다.


그러면 이프리트가 항상 사회물 못 먹은 군용 기종 티내지 말라면서 메시는 야구 선수가 아닌 축구 선수라고 비웃으며 일축했었다.


사실 그런 건 그냥 선임들과 농담을 따먹으려고 일부러 틀리게 말하는 것뿐인데.


물론 이제는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다 죽었으니까.


아무튼, 브라우니가 모체 부대인 제 3 분견대에 찾아온 이유는 그녀의 행정보급관이었던 임펫 상사의 유해를 수습하기 위해서였다.


이프리트도, 노움도, 실키도, 마지막으로 레프리콘까지 수습했지만 오직 임펫 상사의 유품만큼은 수습하지 못했다.


스틸라인은 브라우니에게 많은 것을 가르쳐주고, 또 물려주었다. 브라우니를 창조한 것은 인간들이지만, 그녀를 완성한 것은 스틸라인이다.


만약 바이오로이드에게도 명예가 존재한다면,


만약 스틸라인에게도 명예롭게 죽을 권리가 존재한다면,


적어도 부하들을 위해 전사한 임펫 상사의 죽음만큼은 기억되어야 했다.


그 기록의 매개체가 비록 하찮은 양산품에 불과한 브라우니의 기억소자에 불과할지라도.


“좋아. 전투 준비는 완벽해.”


레프리콘의 화기는 튼튼했다. 탄약도 충분하고, 실키와 노움이 남긴 수류탄도 아직 약간은 남아있다.


이프리트의 박격포는 너무 무거워서 브라우니가 쓸 수는 없지만,


“분대장….”


이 녹색 견장하나만으로 충분했다.


브라우니는 레프리콘의 화기에 총알을 먹인 뒤 장전손잡이를 잡아당겼다. 묵직한 경기관총의 송탄기 너머로 7.62×51mm NATO 규격 보통탄이 빨려들어갔다.


그녀는 죽어가는 옛 고향을 뚫어져라 쳐다보다가,


약간의 기시감이 남아있는 중앙 현관을 향해 빠르게 달려 들어갔다.


임펫 상사가 마지막으로 목격된 곳은 3층 행정반이다. 중앙 현관을 달려서 곧바로 3층까지 뚫고 올라간다면 금방이다.


그러나,


“젠장….”


2층에서 올라가는 계단이 무너져 있었다. 점프를 해서 뛰어넘을까. 하지만 혼자 남은 지금, 도박은 금물이다.


브라우니는 깔끔하게 우회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이 막사에는 좌, 우측에 계단이 하나씩 더 건설되어 있다.


그녀는 빠르게 우측 계단으로 이동했다. 우측 계단을 선택한 이유는 간단했다. 단지 과거에 더 많이 사용했던 계단이었기 때문이다.


스스로 생각하기에도 너무나 브라우니다운 이유였다.


하지만 그런 짧은 생각이 결국 화를 자초했다.


오른쪽 계단에는 철충이 도처에 널려 있었다.


브라우니는 황급히 기둥 뒤로 몸을 감추었다. 대략적으로 파악한 철충의 숫자는 다섯 기 남짓.


브라우니는 계산했다. 적의 전투력 규모와 아군이 기습했을 때의 충격력을 대조했다. 그 결과 브라우니는 제법 승산이 있겠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빠른 계산 끝에 그녀는 즉각 행동을 개시했다.


군용 바이오로이드의 행동력은 꽤 즉각적이다.


“총알 받아라.”


브라우니가 철충들에게 점착 수류탄을 한 발 까던졌다. 실키의 유품이었다.


그리고는 곧장 레프리콘의 SM10 경기관총을 난사했다.


차갑게 식어있던 총열의 끝에서 시뻘건 섬광이 피어올라 음속의 3배에 달하는 납탄을 부채꼴 모양으로 흩뿌렸다.


분당 800발을 넘나드는 경기관총에서 탄피가 마구잡이로 튀겨졌다. 비활성화되어 있던 철충들은 갑작스런 총격에 재빠르게 반응하며 반격에 나섰다.


하지만 그 때, 점착 수류탄이 폭발하며, 철충들의 주요 센서를 누더기로 만들었다.


한 차례 수류탄의 폭발을 목격한 브라우니는 좀 더 차분하고 노련하게 공격에 나섰다.


그녀는 SM10 경기관총을 정교하게 끊어 쏘며 철충의 시각 센서와 장갑 틈새를 노려 정확하게 조준 사격했다.


철충이 정신을 차리고 반격에 나설까 다급할 법도 했지만, 브라우니는 당황하지 않았다. 그녀는 자신의 전투 감각을 유지하며 차갑고 냉정하게 전투에 임했다.


“후우….”


그녀가 눈을 감고 숨을 몰아 쉬었을 때, 전투는 이미 끝난 뒤였다.


시간은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전투 중에 시간을 질질 끌면 아군이 사망한다는 사실을, 그녀는 처절하게 잘 알고 있었다.


그것 때문에 이프리트가 죽었으니까.


브라우니는 전투가 끝난 자리에 그대로 주저앉았다. 그리고는 이프리트 병장의 야전 상의에서 담배를 꺼내 입에 물었다.


거기다가 불을 붙이려다가 잠시 멈칫했다.


라이터가 고장나 있었다.


“젠장….”


되는 일이 없다고 생각하며 다시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래. 어차피 이곳에는 철충들이 득실거리고 있다. 담배를 태우는 비전술적인 행위를 해보았자 득이 될 것은 없다.


브라우니는 다시 기관총을 챙겨서 3층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3층은 조용했다. 2층에서 교전에 발생했다면 그 소음을 듣고서 분명 철충들이 몰려와야만 했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이곳은 조용했다.


철충은 2층에 있던 5기가 전부였을까.


그렇게 생각하고 싶었다. 하지만 불안감이 브라우니의 뒷목을 싸늘하게 핥고 지나갔다.


철충은 무리를 짓는 생명체다. 5기는 철충의 무리라고 보기에는 꽤나 규모가 협소하다.


2111년, 이곳에서 처음 철충을 맞닥뜨렸을 때와 지금의 브라우니는 전투의 경험치가 다르다. 수 많은 동료를 잃고, 상처 입은 브라우니는 알 수 있었다.


이곳은 분명 수상했다.


“이상하군.”


그녀가 레프리콘의 기관총을 꽉 끌어안으며 중얼거렸다.


하지만 적어도 전방에 철충이 관측되지 않는 것만큼은 확실했다. 그녀가 고장난 게 아니라면, 이곳에 적대되는 세력은 보이지 않았다.


그렇다면…


브라우니는 소기한 목적인 임펫의 흔적을 회수하고 최대한 빠르게 이곳에서 이탈해야만 했다.


제 3 분견대의 규모는 그리 크지 않다. 솔직히 말해서 작고 귀여운 규모다.


임펫이 전사한 것으로 보이는 행정반까지 도달하는 데에도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브라우니는 널브러진 캐비닛의 잔해를 치우며 행정반 안쪽으로 파고들었다.


“젠장!”


그 때 철충 여러 기가 눈에 띄어 총구를 겨냥했다.


그러나 기우였다. 그것들은 모두 파괴된 철충이었다.


“후우…. 긴장했나보군.”


열상의 흔적이 강하게 남은 철충의 사체들이었다.


이들은 아마도,


“행보관님….”


임펫 상사의 열압력탄에 의해서 제거된 철충들이겠지.


철충들의 사체는 썩지 않는다. 수 십년이 지났건만, 그 때 파괴된 철충의 잔해는 악몽을 머금은 채 그대로 방치되어 있었다.


“아….”


때 마침 발견한 것은 임펫 상사의 고글이었다.


당직 근무자 책상 위에 뽀얀 먼지를 맞은 채, 고스란히 놓여 있었다.


고글에는 임펫의 상사 계급장이 선명하게 각인되어 있었다. 항상 원사로 진급해야 한다면서 노래를 불러댔었는데.


그녀가 사망하는 마지막 날에도 원사 진급에 실패했다며 꼬장이 장난 아니었다. 토요일에 일광건조를 시키겠다며 이프리트 병장을 그렇게나 잡아먹을 듯이 굴었는데….


“큭큭큭….”


브라우니는 잠시 옛 추억에 잠겨서 고글을 손에 들고 웃음에 빠져들었다.


그렇게 한참이나 웃고 있던 브라우니는,


임펫의 고글을 수습하여 자신의 고장난 전자식 색적 고글을 대신하여 머리에 착용하였다.


“이러다 저도 간부가 되는 검까?”


선임들이 있었더라면… 분명 이렇게 말하면서 장난을 쳤겠지.


“큭큭큭큭큭…….”


과거에 대한 생각을 떠올리며 브라우니는 몇 분을 더 웃음 짓고 있었다.


그러다가 문득,


스위치가 꺼진 것처럼 곧장 웃음을 지우고 무표정해졌다.


아니, 불쾌한 얼굴이 되었다.


“젠장…….”


평화에 대한 망상은 악몽일 뿐이다.


눈 앞에 남은 것은 산산히 박살난 행정반의 잔해밖에는 없다.


브라우니는 머리를 흔들어 과거에 대한 생각을 떨쳐버렸다.


“…이제 갈까.”


여기서 해야 할 일은 끝마쳤다.


그렇다면 또 다른 철충이 브라우니를 찾기 전에 빠르게 달아나야만 했다. 그것이 전술적으로 타당한 선택지이다.


브라우니는 미련을 죽이고 등을 돌려 밖으로 나가려 했다.


그 순간,


“오….”


임펫이 남긴 또 하나의 선물을 발견했다.


라이터였다.


임펫이 벗어놓은 고글 밑에는 허름한 다방 라이터 하나가 방치되어 있었다. 마침 브라우니의 라이터는 고장난 참이었다.


브라우니는 임펫의 라이터를 챙긴 뒤, 그대로 당직 근무자 책상 위에 슬그머니 걸터 앉았다.


그리고는 행정반의 파괴된 지붕 위로 하늘을 올려다보며 담배에 불을 붙였다.


옛날 같았으면 감히 상상도 못할 짓이다.


“오늘은 하늘이 파랗네.”


잿빛 하늘은 서서히 걷혀 가고 있었다. 아무리 멍청한 브라우니라지만 그 정도는 알 수 있었다.


공해의 근원인 인간이 사라진 탓일까. 칙칙하고 어두웠던 하늘은 점점 자기만의 색깔을 되찾고 있었다.


깨끗하고 예쁜 하늘이라고 브라우니는 생각했다. 이 하늘을 스틸라인의 모두와 같이 볼 수 있었더라면 좋았을텐데.


브라우니는 칙칙하고 더러운 담배 연기만 연신 뱉어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차갑고 파란 하늘은,


청명하게 자기 모습을 또렷이 드러내고 있었다.


그리고, 담배를 태우며 하늘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던 브라우니도,


결국에는 자신의 방심한 모습을


철충에게 드러내고 말았다.


“이런 씨…”


철충의 총격은 브라우니의 욕설보다도 빨랐다.


바이오로이드에게도 고통이 있을까?


바이오로이드에게도 죽음이 있을까?


바이오로이드에게도 영혼이 있을까?


브라우니는 쓰러지면서 많은 생각을 떠올렸다.


옆구리에 틀어박힌 다섯 발의 총상은 전투불능에 가까운 치명상을 남겼다.


방심했다. 전투 지역에서의 흡연은 매우 비전술적인 행위이다. 괜히 추억에 잠겨서 멍청한 짓을 저지른 것이 화근이었다.


역시 브라우니는 멍청하다. 성장해봤자 브라우니는 브라우니인 것이다.


브라우니는 피를 철철 흘리며 겨우겨우 당직 근무자 책상 뒤로 몸을 숨겼다. 그리고 레프리콘 상병의 기관총을 꼬옥 끌어 안으며 황급히 수류탄 주머니를 열어젖혔다.


레프리콘의 기관총 위로 브라우니의 핏물이 철철 녹아들었다.


점점 시야가 흐려지는 게 느껴졌다. 손 끝이 떨려서 수류탄을 제대로 쥐는 것조차 힘들었다.


그녀는 재빨리 노움이 남긴 방벽 수류탄을 꺼내 방호력을 획득하려 들었다.


하지만,


도저히,


안전핀을 뽑을 힘이 없었다.


이대로는…


이대로라면…


진짜 죽는다.


철충이 다가오는 소리가 브라우니의 귓전을 두드렸다.


죽음이 브라우니의 운명을 엄습했다.


이젠 죽어도 괜찮겠다고 생각했는데. 스틸라인은 전부 다 죽었으니까, 이제는 브라우니가 죽을 차례라고 언제나 생각했는데. 그랬는데.


막상 죽음이 눈 앞에 찾아오니까 브라우니는 비겁하게도 겁이 났다. 브라우니의 선임들은 자신을 구하기 위해서 그깟 목숨 따위는 내던지면서 용감하게 싸웠는데,


브라우니는 제 스스로의 목숨을 부지하는 것도 두려워서 두 손을 떨고 있었다.


그 면목 없는 불명예가 너무나 부끄러웠고,


만약 바이오로이드에게 영혼이 있다면,


이 불명예를 떠안고 선임들을 마주하는 것이 너무나 겁이 났기에,


그렇게 그저 겁이 난 브라우니가


눈 앞에 보이는 레프리콘의 기관총을 꼬옥 끌어안았다.


그녀의 핏물로 새빨갛게 물들어버린 SM10 경기관총을,


브라우니가 간절히 끌어안았다.


“미안해…. 레프리콘……. 꼼꼼히 관리한 총을 더럽혀서….”


그리고, 거기까지였다.


책상을 타고 오른 철충은 브라우니를 내려다보며,


그 묵묵하고 새카만 총구를 겨누었다.


브라우니는 철충의 무감정한 총구를 마주보며,


그 동그란 갈색 눈을 질끈 눌러 감고선,


죽음을 응시했다.


그 날, 폐막사에서는 새하얀 총성이 일었다.



   ***



“…브라우니?”


눈을 떴을 때, 목격한 것은 바이오로이드였다.


그것도 아주 친숙한 얼굴의… 바이오로이드.


아주 오랜 시간 함께 했고, 많은 것을 가르쳐주었으며, 싫은 척하면서도 때로는 같이 장난에 어울리기도 했고, 전쟁 후에는 목숨을 걸고 나란히 싸웠으며,


마지막에는, 나를 위해 죽어주었던 그녀.


“레프리콘…. 레프리콘……!!”


레프리콘 상병이 철충의 머리에 총알을 찔러박은 채, 당당하게 책상 위에 서있었다.


브라우니는 깜짝 놀란 눈동자를 몇 번 끔뻑거리면서, 레프리콘의 얼굴을 멍하니 확인했다.


틀림 없었다. 붉은 머리에 새침한 눈동자. 꼼꼼하고 신중하게 타인을 확인하려는 듯한 저 몸짓. 분명하다. 레프리콘이다.


“각하…. 여기 브라우니 1기를 확보했는데… 상태가 좀… 으와아아앗…!!”


“레프리콘…! 보고 싶었어…!!”


브라우니는 레프리콘에게 달려들어 곧장 그녀를 껴안았다.


근 몇 년간 못 본 세월을 보상이라도 받겠다는 것처럼 간절하게 그녀를 껴안았다.


레프리콘은 분명 죽었을 것이다. 브라우니가 직접 사망을 확인했고, 군번줄까지 회수했다. 그러나 지금 그런 건 아무래도 좋았다.


브라우니는 레프리콘을 껴안고 있었다.


“다음부터는…… 내가 더 잘할게……. 절대… 절대… 죽게 내버려두지 않을게……. 미안해……. 미안해…….”


“저기… 저… 브라우니…? 일단… 진정… 진정을 좀 했으면 좋겠는데요? 제 전투복에 피가 묻거든요?”


레프리콘이 다소 꺼림칙한 얼굴을 하면서 브라우니를 떼어놓으려 했다. 하지만 브라우니는 레프리콘을 껴안고 절대 떨어지지 않으려 헀다. 그녀는 완고했다.


“하아아……. 진짜……. 각하께서는……. 이런 깡촌으로 보낸 것도 모자라서…, 이상한 브라우니까지 수습하게 만들고……. 반드시 포상받을 겁니다…….”


레프리콘이 고개를 도리질치며 한숨을 푹 내쉬었다.


그러다가 자신의 품에 달라붙어 있는 브라우니를 다시 한 번 내려다봤다.


“뭐, 뭐예요…! 다, 당신 울어요…?”


내려다 본 브라우니는 울고 있었다.


“그치만… 크흐으읍……. 레프리콘인걸……. 흐으읍……. 레프리콘…. 레프리콘이……. 흐윽…. 흐어어어어엉……….”


그것도 아주 펑펑 울기 시작했다.


“하아아…. 진짜…. 이래서는 제가 꼭 병영부조리라도 해서 울린 것 같잖아요?”


“후으읍… 흐으윽……. 레프리콘이… 흐읍… 병영부조리를… 흣… 안 한 건… 후읍… 아니지만……. 흐으윽…….”


브라우니가 눈물을 닦으며 대답했다.


“…뭐라고요?”


레프리콘이 다소 어이가 없다는 얼굴로 브라우니를 쳐다봤다.


“흐우우우…. 후아아아…. …미안해. 곤란하게 만들어서. 그냥……. 그냥……. 나도 모르게……. 아니…. 미안…. 무슨 말을 해야 될지 모르겠어서….”


조금은 진정이 된 브라우니가 레프리콘의 시선을 피하며 조심스럽게 답변했다.


그녀는 레프리콘이 전사한 이후로 일체 다른 바이오로이드와 접촉한 경험이 없다. 그녀가 횡설수설하는 것도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일단! 저는! 당신이 아는 레프리콘이 아니에요! 알겠어요?”


다행히도, 레프리콘은 상식적이고 눈치가 아주 빠른 바이오로이드이다. 브라우니의 문제가 무엇인지 정확히 설명해주었다.


“그건… 그건 나도 알아…. 하지만……. 레프리콘을 보는 건 너무 오랜만이라서…… 나도 모르게…… 미안해…….”


오랜 세월 복무해온 브라우니도 이미 자신이 아는 레프리콘이 전사했다는 사실 정도는 알고 있다. 그리고 레프리콘과 동종 모델이 꽤 많이 양산되었다는 사실조차도 안다.


하지만, 레프리콘과 똑같이 생긴 동종 모델을 봤을 때, 눈물이 나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다.


“그리고! 브라우니는 일병! 저는 상병! 계급에 맞는 언어를 사용하세요!”


레프리콘이 검지 손가락을 꺼내들며 꼼꼼하게 브라우니의 문제점을 지적하기 시작했다.


“엑…. 하지만, 분명 레프리콘이 죽기 직전에 말 놔도 된다고 그랬는걸….”


죽을 때는 선후임이 아니라 친구 사이로 죽고 싶다고 했던가.


“그으러어니까! 그건 그 레프리콘이고! 저랑은 다르다고요! 알겠나요?”


“우으음……. 어렵네…….”


브라우니가 복잡한 얼굴을 해보였다.


“그리고 또 한 가지! 머리에 쓴 그 고글은……. 임펫 상사님의 물건이잖아요! 일병이 함부로 상사의 계급장을 달면 큰일 난다고요! 그러다 위장 계급으로 처벌 받아요!”


레프리콘이 따끔한 목소리로 지적을 하고 나섰다.


그러자 브라우니가 단호한 목소리로 레프리콘의 말을 정정했다.


“상사가 아니라 원사야.”


“하아…. 이번엔 또 무슨 소리를 하는 거예요? 분명 그건 상사 계급장이잖아요?”


레프리콘이 한숨을 푹 내쉬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이번엔 하다 못해 계급장도 똑바로 못 읽는 브라우니가 얻어걸렸다며 자신의 신세를 한탄하는 듯했다.


“원사야.”


그러나 브라우니는 결코 계급장을 못 읽는 것이 아니었다.


“계급장도 못 읽나요? 그건 분명 상사 계급장이잖아요?”


스틸라인에는 특진 제도가 있다.


적을 다수 제압해서 많은 전공을 세우거나.


아니면 적진에서 전사하거나.


“행보관님은 나를 살리려다가 전사했거든.”


그러니까 임펫의 계급은,


“원사야.”



   ***



오르카에 합류한 머리가 긴 브라우니는 이프리트의 분대장 상의를 착용하고, 노움의 머리끈으로 머리를 정리하고 다닌다.


그녀는 꼭 실키의 침낭에서만 잠을 청하며, 전투에 나설 때면 레프리콘의 SM10 경기관총을 애용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본래 보급되었던 전자식 색적 고글은 수리를 마쳤으나, 그녀가 평소에 착용하고 다니는 것은 임펫용 항공 수색 고글이다.


게다가 그 고글에는 다른 고글과 다르게 상사 계급장이 각인되어 있어 제법 독특하다. 그리고 오르카에 탑승한 그 어떤 인원도 그 낡은 계급장을 상사 계급장으로 인식하지는 않는다.


오르카에 새로 합류한 바이오로이드가, 브라우니의 상사 계급장에 대해 질문할 때면 단지 조용히


“원사야”


라고 답변해주는 것이 소소한 불문율이 되었다.


머리가 긴 브라우니의 계급은 일병에 지나지 않았다. 단지 그 고글의 원래 주인인 임펫이 원사였다고 설명해주는 것이 본래 의도였다. 하지만,


시간이 흘러 머리가 긴 브라우니 그 자체가 원사처럼 여겨지게 되였고,


오르카의 사람들은 곧 머리가 긴 브라우니를


브임원사,


라고 부르게 되었다.


 - 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