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전 화: 문학) 너의 영웅- 3화 - 라스트오리진 채널 (arca.live) 


"꿈도 꾸지 마! 그딴 걸 쪽팔려서 어떻게 하냐고!"

원래 깐깐한 면이 있긴 했지만, 유독 더 까탈스럽게 반응한 미호였다.

"그, 그렇긴 한데-"

"나도 안 해. 샤크한 숭녀인 내 이미지를 망치긴 싫거든."

"너도?!"


드라코도 제멋대로 분위기를 읽었는지 하나둘 미호를 따라가자 핀토 710호는 당황한 나머지 어쩔 줄 몰라했다.


얼마 안 가서 방 안에 남은 건 박스 안 도넛을 먹던 불가사리 하나였다.

"요즘 너, 진짜 이상한 거 알아?"

"내가 왜? 난 정상인데."

"생각해보니 넌 늘 나사가 빠져 있었지. 오케이, 그 말 취소."

"야!"


불가사리는 마지막으로 남은 딸기잼 도넛을 해치운 뒤 한심하다는 듯 말을 이었다.

"넌 그 인간이 좋아?" "진짜 싫어."

주저없는 대답. 핀토는 풀썩 쓰러져 영문을 모르겠다는 불가사리의 무릎에 머리를 뉘였다.


"나도 왜 이러는지 하나도 모르겠어. 그래도, 그 인간은 정말 나쁜 악당이지만, 그래도 어째선지 갱생시키고 싶어."

"윽, 너 진짜 잘못 먹은 것 같아!"

머리를 치우고 도로 일어선 불가사리. 그녀는 한심하다는 듯 친구를 째려보았다.


"차라리 워울프나 브라우니랑 놀든가."

"...! 뚱이 넌 천재야!"

"뭐야, 갑자기 왜 그래?"

...


"생각보다 잘 먹는군. 당신이 혐오하는 그들이 만든 건데도 말이야."

"말 시키지 마라 이 얼간아. 밥 먹을 땐 개도 안 건드리는 거 모르냐?"

순식간에 그릇을 비운 그는 침대에서 힘겹게 일어나 원래 방을 향해 천천히 걸었다.


'엿같구먼. 시간을 너무 많이 잡아먹었어.'

그래도 몸이 조금 나아진 것을 다행이라 여기며 뒤죽박죽인 기억을 더듬거리며 다듬고자 했다.


다듬고자 했다. 활짝 열린 방문을 보기 전까진.


"내 노트! 내 노트 어디갔어!"

저 인간이 드디어 미쳤나? 황당해서 화도 안 나오는 대원들과 달리 노인은 입에 거품을 물며 고함을 질러댔다.


"노트라니, 그게 뭔 소리죠?"

소란에 심기가 불편해진 알렉산드라가 채찍을 들고 다가왔다.

"아는 거냐? 아는 거지! 어떤 새끼가 내 노트를 훔쳤는지 당장 불어!"


"진정하시죠. 또 수복실에 실려가기 싫으면."

"그딴 게 알 바냐! 내 노트! 내 노트가 사라졌다고!"

이젠 울먹거리기까지. 지끈거리는 머리에 관자놀이를 손가락으로 붙잡은 그녀는 뭔가 떠올랐다는 듯 눈알을 굴렸다.

'혹시, 그 핀토가 설마-'


"기타를 들고 식당으로 갔던-"

"이런 씨발!"

노인은 심장이 터질 듯 지팡이를 탁탁 잡으며 억지로 내달렸다.

...


몇몇이 내 몸에 걸려있는 기타를 보고 힐끔거린다. 겨우 이 정도인데도 철충과 싸울 때보다 더  긴장된다. 내가 잘 할 수 있을까?


푹. 시야가 무언가에 가려진다.

'그렇게 우물거리지 말고, 할 거면 폼 나게 하라고.'


워울프 언니의 목소리. 카우보이 모자를 올려쓰니 어느새 사람들 속으로 숨어들어갔다. 내가 뭘 할지도 모르면서. 나도 모르게 피식 웃음이 나와버렸다.


쿵쿵따. 쿵쿵따. 쿵쿵따. 쿵쿵따.

 


쿵쿵따 / 그래,


쿵쿵따 / 영웅은,


쿵쿵따 / 모험을


쿵쿵따 / 하는 거야!


Buddy you're a boy make a big noise


Playin' in the street gonna be a big man some day


You got mud on your face

You big disgrace

Kickin' your can all over the place


Sing it


We will we will rock you

We will we will rock you


조금씩 사람들이 보기 시작한다.


Buddy you're a young man hard man

Shoutin' in the street gonna take on the world some day


You got blood on your face

You big disgrace

Wavin' your banner all over the place


We will we will rock you


Sing it!


"We will we will rock you!"


부탁했던 대로 브라우니와 워울프 언니가 날 따라하기 시작한다. 이에 다른 브라우니들도 (아무 생각 없이) 하나 둘 동조한다.


Buddy you're an old man poor man

Pleading with your eyes gonna get you some peace some day


다른 사람들도 조금씩 재밌어하며 따라하기 시작한다.

좋아, 잘 되고 있어!


You got mud on your face

You big disgrace

Somebody better put you

back in to your place


"We will, we will rock you!"


말도 안 돼. 어느새 식당 안 반이 넘는 사람들이 따라하고 있어. 날 안 보는 사람이 없어!


"Sing it!"


"We will, we will rock you!"


준비해둔 자동 기타에 시동을 걸자, 진동이 몸에 찌르르 울려온다. 이렇게 심장이 뛰던 때가 있었을까?


"Everybody!"

어느새 찾아온 악당을 보며 씩 웃어준다. 보고 있어?


"We will, we will rock you!"

맞아, 우리는 바이오로이드야. 인간이 양산하고, 인간을 위해 무조건 봉사하는 그런 존재들.


"We will, we will rock you!"


"All right!"


하지만 우리의 심장도 뛰고 있어!

--


기타의 하이라이트가 끝나자, 사령관이 15일 단체 휴가를 내줬을 때보다, 사병들을 위한 동침권 로또 이벤트를 내놨을 때보다 더 큰 함성이 식당 안을 메웠다.

핀토 710호는 그 괴짜 취급 받던 게 무색하게 모두에게 둘러싸여갖곤 질문 공세에 땀을 흘렸다.


"이건 말도 안 돼! 왜 우리 스카이나이츠보다 반응이 좋은 건데!"

"아니에요 뗑컨 언니! 스카이나이츠도-"

"대단하지 말임다! 그 노래 어디서 배웠슴까?"

"그, 그게 멸망 전 기록에서-"

"이야, 생각보다 훨씬 멋있었는데? 혹시 또 아는 거 없어?"

"알긴 아는데 아직 숙달을-"


혼잡한 인파 속에서, 노인이 조용히 떠나는 게 보였다. 그녀는 재빨리 자동 기타를 치는 척 해서 사람들을 멈춰세운 뒤,

"팬미팅은 여기까지! 그럼 이만!"


탈력감에 넋이 나간 그들 사이를 빠져나가 방으로 내달렸다.

...


"상상하지도 못한 플래시몹이었다."

노인의 눈매는 여전히 사나웠지만, 표정은 상당히 누그러진 게 눈에 띄었다.

아마 여기 와서 보여준 얼굴 중 가장 부드러운 것일지도 모르고.


"뭐, 영웅에게 이 정도는 기본이지."

플래시몹이 뭐지? 생소한 단어였지만 핀토는 아는 척 허세를 부리며 기타를 원래 있던 자리에 놓았다.


"넌 네놈들과 인간이 같다고 생각하냐?"

"아니."

그녀는 아무렇지도 않게 의자에 앉아 침대에 앉은 노인과 마주보았다.


"그래도 우린 인간처럼 살아있어. 성격도 조금씩 다 달라. 웃고 울어. 우리는 단지 살아있는 인형이 아니야."

원래 같았음 버럭버럭 화를 낼텐데, 그는 딱히 반박하지 않고 그녀가 내민 노트를 낚아채려 했다.

그런데 그녀는 도로 노트를 위로 들어 막았다. 살짝 짜증이 올라온 노인, 대신-


"나도 하나 물을게."

그녀는 점퍼 속에서 그 낡은 로켓을 꺼내 열었다.

로켓 안에는, 중년 시절의 노인 옆에 핀토를 꼭 닮은 처녀의 사진이 들어있었다.


"이 인간님은 누구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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뭔가 노래에 맞춰 연출을 시도했는데, 읽을 걸 생각하면 살리기가 너무 어려웠다. 그래도 이번 화는 꽤 즐겁게 작업했음

오늘도 봐줘서 고마워

+ 까먹은 몇 줄, 손그림 삽화 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