뜻밖의 여정 1화

뜻밖의 여정 2화

뜻밖의 여정 3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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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레프리콘 상병님, 사령관님은 정말 하늘에서 강림하신 천사 같지 말임다.”

 

 식당에서 점심밥을 먹던 브라우니는 스프를 한 수저 떠 입에 넣고 맛을 음미했다. 

따뜻하고 걸쭉한 스프에 큼지막하게 썰려 있는 당근과 감자, 중간에 씹히는 작은 고기 조각은 깜짝 선물과도 같은 감동을 느끼게 해주었다. 스프를 한 입 먹은 브라우니의 다음 타겟은 빵이었다. 빵을 한 손으로 들어 입에 물었다. 

평소에 먹던 살짝 딱딱한 빵이 아닌 부드러운 식감의 빵이 입 안을 가득 채웠다. 

빵을 씹을 때마다 달달한 맛이 입 안에 번졌고 브라우니는 황홀함을 느꼈다. 브라우니는 빵에 스프를 찍는 것으로 화룡정점을 찍었다. 항상 쓸데없는 소리나 해대던 브라우니였지만 이번만큼은 옳은 말을 했기에 레프리콘은 브라우니의 말에 맞장구를 쳐주었다.

 

 “저도 그렇게 생각해요. 저희가 먹고 있는 이 밥도 사령관님의 노력 덕분에 있는 거죠.”

 

 사령관이 합류하기 전의 식사시간은 그저 살기 위해 영양분을 보충하는 시간이었다. 

밥을 먹기 위해 식당에 모인 장병들 중 진심으로 밥을 먹고 싶어서 식당에 오는 이는 없었다. 행복하고 생기가 넘쳐야 하는 식당에는 암울함과 무기력함만이 가득했다. 

사령관은 그런 꼴을 보고만 있지 않았다. 요리가 가능한 바이오로이드들이 합류하자마자 주방으로 보내 오르카호의 식단을 거의 뜯어고쳤다. 

어쩔 때는 식재료를 구하기 위해 직접 강화외골격을 착용하고 전장에 나서기도 했다. 

그때마다 지휘관들은 사령관을 뜯어말렸지만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성공한 적이 없었다. 

사령관의 노력은 곧바로 결실을 맺었고 식당은 지금 오르카호에서 가장 분위기가 좋은 곳으로 탈바꿈하였다. 

 

 “정말 저희 사령관님 최고이심다.”

 

 “그렇죠. 사령관님 같은 분이 저희를 이끌게 된 건 저희들에게 큰 행운이죠.”

 

 브라우니와 레프리콘은 행복에 겨운 얼굴로 마음 깊이 사령관을 찬양하며 식사를 계속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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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식당의 한편에서 지휘관들도 식사를 하고 있었다. 

딱히 간부와 병사간의 식사 장소를 나누지 않았지만 병사들은 간부들과 식사를 피했고 자연스럽게 식당의 한편은 간부들의 공간이 되었다. 병사들과 조금 거리가 있는 곳에서 식사를 하고 있었지만 병사들이 나누는 대화들이 생생하게 들려왔다. 

병사들의 대화 주제는 대부분 사령관에 대한 것이었다. 

병사들의 대화를 듣던 레오나가 스프를 한 입 넣으며 대화의 운을 띄웠다.

 

 “사령관, 인기 많네.”

 

 “불과 몇 주 만에 식사의 질이 몇 배로 뛰었는데 안 좋아할 수 없지. 나도 사령관이 이렇게 빨리 결과를 보여줄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매일 탐색을 보낸다고 힘들어하는 병사들도 있었는데 이제는 그런 말도 거의 안 나오잖아.”

 

 “상황이 개선된다는 것이 눈으로 보일 정도이니 다들 열정적이더군.”

 

 둘은 고개를 돌려 식당을 한 번 둘러보았다. 

빈 자리 하나 없이 빼곡하게 차있는 식당, 먼지만 쌓여가던 이 식당을 이렇게 생기 넘치는 장소로 만들어버린 사령관이 칸과 레오나는 고마울 따름이었다. 

사령관이 오르카호를 통솔하기 시작하면서 그 누구도 굶주림을 호소하지 않게 되었다. 

칸과 레오나의 말을 듣고 있던 메이는 한 마디를 뚝 던지며 둘의 대화에 참여했다.

 

 “포티아들과 메이드들을 그렇게 다그쳤는데 성과가 나오는 게 당연하지.”

 

 메이의 말에 레오나와 칸은 쓴웃음을 지었다. 

메이의 말대로 오르카호의 식단이 현재의 단계까지 개선될 때까지 가장 중대한 역할은 한 이는 포티아들과 메이드들이었다. 

사령관은 최후의 인간이 발견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합류한 개체들과 유전자 씨앗을 통해 새롭게 제조한 개체들 중 요리가 가능한 개체들을 전부 주방으로 보냈다. 

물론 모든 바이오로이드들은 만들어진 목적이 있기에 주방에 배정된 바이오로이드들의 대부분은 포티아와 메이드들이었다. 

특히 사령관은 키친 메이드로서 제작된 포티아들에게 큰 기대를 했었다. 

하지만 사령관의 기대는 마치 타고 남은 재가 바람에 날아가듯 순식간에 사라졌다. 

 

 포티아의 요리 실력은 다른 이들에 비해 출중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포티아들은 요리를 하면서 크고 작은 사고를 한 두 번씩 일으켰고 그중 몇 번은 화제로 번질 뻔한 적도 있다. 

주방에 화제가 일어날 뻔한 날, 사령관이 주방으로 찾아간 적이 있었다. 

그때 사령관이 정확하게 무슨 말을 했는지는 알 수 없지만 그 사건 이후로 주방에는 사고가 일어나지 않았고 음식의 질 또한 순식간에 상향되었다. 주방에 배정된 바이오로이드들이 사령관의 발소리만 들어도 몸을 떤다는 풍문이 돌았지만 상관 하는 이들은 많지 않았다. 

 

 “그래도 사령관이 짧은 시간 안에 긍정적인 변화를 보여주었다는 건 틀림없지 않나? 그 뿐인가? 수복실의 시설도 좋아졌고 자원과 물자도 증가하고 있지 않나? 저항군의 숫자도 점점 늘어나고 있다.”

 

 “그건 사실이야. 하지만 가끔씩 보면 사령관은 막상 철충들과 싸울 의지는 없는 것 같아. 지금까지 계속 탐색만 하고 철충들과 제대로 된 전투는 한 적이 없잖아. 둠 브링어는 아예 탐색조차 나가지 못하게 한다고.”

 

 칸의 말대로 사령관은 오르카호의 모든 부분에서 긍정적인 변화를 가져왔다. 

수복실의 시설이 개선되었고 항상 아껴서 사용해서야만 했던 자원과 물자도 꾸준한 탐색을 통해 조금씩 늘어났다. 

유전자 씨앗과 바이오로이드 제조 장치를 발견하여 저항군의 숫자 또한 증가했다. 

하지만 사령관은 전투를 철저하게 금지했다. 자원과 식량을 확보하는 과정에서 벌어지는 전투는 직접 전장에 나서서 지휘할 정도로 적극적이었지만 그 외의 전투는 일제 용납하지 않았다. 

 

 “그거에 대해서는 오늘 당장이라도 물어볼 필요가 있다고 나도 생각해.”

 

 레오나도 메이의 의견에 동감했다. 

셋은 오늘 오후에 있을 회의 때 사령관에게 물어볼 안건에 늘어났음을 직감했다. 

짧은 대화를 마치고 다시 식사에 집중하려고 할 때 배식판을 들고 걸어오는 마리를 보았다. 

 

 “마리, 많이 늦었네.”


 레오나는 인사로 마리를 반겨주었다. 

마리는 그런 레오나에게 손을 흔들어주며 인사에 답했다. 식판을 들고 걸어오고 있는 마리는 몸이 무거운 듯 무너질 것만 같았다.

요즘 마리의 상태가 좋지 않은 것 같다는 말이 브라우니들을 통해 돌기는 했지만 두 눈으로 직접 확인하니 소문 이상으로 상태가 좋지 않았다. 금색 머리카락은 윤기를 잃고 푸석푸석해 보였고 언제나 기운이 넘치던 두 눈 밑으로는 검은 다크서클이 그림자 지듯 깔려있었고 위엄 있던 걸음걸이는 누군가가 강하게 치면 그대로 넘어질 듯 불안했다.

마리는 메이 옆에 쓰러지듯 앉았다. 

 

 “괜찮나?”

 

 “괜찮네. 몸이 조금 피곤한 것 뿐이네.”

 

 몸상태를 걱정하는 칸의 질문에 마리는 고개를 끄덕이며 괜찮은 척을 했다. 

사실은 전혀 괜찮지 않았다. 며칠 동안 잠을 제대로 자지 못해 몸이 무거웠고 머리는 어지러웠다. 

마리는 억지로 수저를 들고 스프를 터서 한 입 입에 넣었다. 

아무런 맛도 느껴지지 않았다. 

그저 뜨거운 액체가 입 안을 적시는 정도의 느낌밖에 들지 않았다. 

입맛이 없었지만 먹지 않으면 정말로 쓰러질 것 같았기에 마리는 꾸역꾸역 식사를 했다.

말없이 스프를 먹더가 마리는 수저를 내려놓고 칸, 메이, 레오나에게 질문을 던졌다.

 

 “자네들은 각하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진지함이 묻어나는 마리의 질문에 셋은 살짝 당황했지만 마리의 질문에 대한 각자의 생각을 말했다. 가장 먼저 입을 열은 이는 레오나였다.

 

 “나는 사령관이 좋은 지도자라고 생각해. 그에 대한 내 생각이 어떻게 변할지는 모르겠지만 지금은 그에 대한 나의 아직까지는 긍정적이야.”

 

 레오나의 말대로 사령관은 오르카호가 바랬던 좋은 지도자였다. 

훌륭한 전쟁수행 능력과 과감하면서도 꼼꼼한 성격, 카리스마가 느껴지는 외모.

레오나에게 사령관은 자신에게 어울리는 남자로 충분히 거듭날 수 있는 인간이었다. 

 

 “나는 사령관이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그는 우리를 도구취급 했던 과거의 인간들과는 무언가가 다르다고 느꼈다.”

 

 멸망 전부터 살아온 칸은 수많은 인간들을 보았다. 

대부분의 인간들은 바이오로이드를 값비싼 도구 정도로 취급했다. 

그런 칸에게 바이오로이디들의 편의를 봐주는 사령관의 행보는 굉장히 의외였다. 

사령관이 정말로 라비아타가 말했던 바이오로이드를 생명체로 보는 소수의 인간 중 한 명인지 아닌지는 알 수 없었지만 그가 과거의 인간들과 무언가가 다르다는 것은 확실했다. 

칸은 사령관이 좋은 인간이길 바랬다. 

 

 “앞으로 더 지켜봐야겠지만 지금까지 보여준 모습으로만 보면 나쁘지 않은 사령관이라는 것은 인정해야지.”

 

 메이는 전투를 꺼리는 사령관을 이해할 수 없었다. 

전투를 수행할 수 있는 숫자는 충분하고 명령만 내린다면 철충들을 상대로 승리할 수 있었다. 메이는 사령관을 겁쟁이라고 생각하기도 했지만 짧은 시간 안에 가져온 변화를 보며 그가 능력 있는 인간이란 점은 인정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메이는 사령관이 하루 빨리 전쟁을 시작하기를 원했다. 

 

 “그런가. 답해줘서 고맙다.”

 

 그녀들의 대답을 들은 마리는 고개를 박고 밥을 먹었다. 

뜬금없이 진지하게 질문을 던지고 아무 일 없었다는 듯 식사를 하는 마리가 이상했지만 지휘관들은 마저 식사를 계속했다.

먼저 식당에 와서 식사를 했던 셋은 먼저 식사를 마쳤고 식판을 들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오후에 회의가 잡혀 있다는 것을 잊지 말라는 말을 남기고 식당을 나갔다. 

혼자 남은 마리는 한숨을 푹 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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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후 2시 50분, 약속 시간보다 약간 일찍 도착한 사령관은 회의실에 지휘관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사령관의 옆에는 그의 전속 메이드이자 부관인 콘스탄챠가 조신하게 서있었다. 

콘스탄챠가 타준 커피를 홀짝이며 사령관은 회의실 출입문을 지긋이 쳐다보았다.

약속 시간인 3시가 되기 1분 전 쯤에 사령관은 손목시계의 초침을 확인하기 시작했다.

초침이 한 칸씩 움직이며 서서히 시계를 한 바퀴 돌아 정확히 오후 3시가 됐을 때 약속이라도 한 듯 회의실 문이 열리며 지휘관들이 들어왔다.

 

 “먼저 와있었네 사령관.”

 

 가장 먼저 들어온 이는 레오나였다. 

레오나는 사령관에게 인사를 건넸고 사령관은 손을 흔들어주며 인사에 답했다. 

레오나의 뒤로 칸, 메이, 마리가 따라 회의실로 들어왔다.

지휘관들은 사령관에게 각자 인사를 하며 자리에 착석했고 지휘관들이 전부 모인 것을 확인한 사령관은 정자세로 자세를 바로잡았다. 헛기침으로 목을 한 번 가다듬고 사령관은 입을 열었다.

 

 “예정에 없던 회의를 갑자기 잡아서 미안하다. 어제 탐색에 나갔다 복귀한 스카이나이츠 대원들에게 아주 흥미로운 소식을 들어서 어쩔 수 없었다.”

 

 이번 회의는 정기적으로 시행되는 회의가 아닌 어제 오후 사령관이 아무런 예고도 없이 잡아버린 회의였다. 원래 이 시간 때에는 오르카호의 대부분이 탐색을 나가야 할 시간이었다.

사령관은 본인 때문에 계획에 차질이 생긴 것에 대한 사과를 했다. 

괜찮다는 지휘관에 반응을 확인하고 사령관은 본격적인 회의를 시작했다. 

 

 “어제 탐색을 나갔던 스카이나이츠 한 분대가 탐색 도중 수상해 보이는 장소를 발견했다고 하는군.”

 

 사령관은 손을 살짝 들어 손가락을 튕겼다. 

사령관과 지휘관들이 둘러앉고 있는 탁자 중앙에 한 영상 파일이 홀로그램 형태로 나타나 재생되었다. 

 

 “이건 분대의 일원인 그리폰이 어제 나갔던 탐색전의 영상이다.”

 

 하늘에서 기록한 영상답게 아래로 지상의 풍경들이 한 눈에 들어왔다. 폐허가 된 도시를 탐색하고 있었는지 곳곳에 무너진 건물들의 보였다. 땅에서는 작은 점 같은 것들이 움직이고 있었다. 저 무수한 작은 점들이 철충들이란 것은 한 눈에 알 수 있었다. 

폐허가 된 도시의 풍경이 쭉 재생되고 있을 때 사령관은 영상을 정지시켰다. 

정지된 영상 속에는 방금까지 보였던 무너진 건물들과 달리 무너지지 않은 건물이 있었다.

건물은 그 크기가 평범한 건물들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거대했다.

지휘관들은 어떻게 저 건물이 무너진 건물들 사이에서 홀로 온건하게 남아있을 수 있었는지 곧 알 수 있었다.

건물의 벽의 한 면에 블랙리버 사의 마크가 새겨져 있었다. 

 

 “확인해 보니 저 건물은 멸망 전에 블랙리버 사의 바이오로이드 생산 공장이더군.”

 

 사령관의 말에 지휘관들은 납득했다. 군용 바이오로이드를 대량 생산하던 블랙리버 사의 생산 공장은 다른 회사들과 비교해서 상대적으로 거대한 크기를 자랑했다. 

또한 적의 폭격과 같은 공격에 견디기 위해 건물의 외벽을 특히 강하게 설계했다. 

때문에 공장을 한 번 건설하는데 천문학적인 비용이 들었지만 덕분에 블랙리버는 생산 공장이 붕괴되는 일은 없었다. 

사령관은 생산 공장을 쳐다보며 깍지를 끼며 말했다.

 

 “나는 저 공장을 점령하고자 한다.”

 

 사령관의 말에 지휘관들은 당황을 금치 못했다. 언제나 전투를 꺼리던 사령관의 입에서 저런 말이 나올 거라곤 생각해보지 않았다. 

사령관은 지휘관들의 시선이 본인에게 쏠린 것을 느꼈다. 

지휘관들의 시선들은 그닥 호응적이지 않았다. 마치 의구심을 품고 있는 듯 보였다. 사령관은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

 

 “저곳을 점령하면 분명 유전자 씨앗, 바이오로이드 제조 장치 같은 것들을 확보할 수 있을 거다. 운이 좋다면 다른 것들도 얻을 수 있겠지.”

 

 사령관은 합리적인 이유를 들며 말을 펼쳤지만 지휘관들의 시선이 변하지 않았다. 

설득에 실패했다고 판단한 사령관은 지휘관들의 반박을 기다렸다. 

만약 반박을 한다면 그에 대한 적절한 반박으로 받아치면 된다. 

지금까지 전투를 철저하게 금지했었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불필요한 병력 손실을 막기 위한 방책이었을 뿐 절대 전투가 두려워서가 아니었다. 만약 무언가를 위해 피를 흘려야 할 순간이 온다면, 사령관은 언제든지 그 피를 흘릴 수 있었다.

 

 회의실에 적막이 흘렀다. 그러나 적막은 얼마 안가 메이가 입을 열면서 깨졌다.

 

 “뭐야, 사령관. 그렇게 전투에 대해 소극적이더니 먼저 공격명령을 내리다니. 무슨 바람이 분 거야?”

 

 마침내 공격의지를 보인 사령관에게 메이는 처음으로 미소를 지었다. 

사령관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재고할 필요가 있다고 판단했을 때 사령관은 재고의지를 박살내버렸다.

 

 “저곳을 점령하는 게 이득이라고 판단한 것 뿐이다. 저곳을 점령한 후에는 또다시 전투 금지 명령을 내릴거다.”

 

 사령관의 대답에 메이는 극심한 불만감을 느꼈다. 저 생산 공장을 시발점으로 사령관이 제대로 철충들과의 전쟁을 시작할 줄 알았던 메이는 또다시 전투를 하지 않으려는 사령관의 태도가 언짢았다. 

이참에 사령관에게 직접 물어보는 것이 좋겠다고 메이는 생각했다. 정녕 철충들과 전쟁을 해서 그것들을 몰아낼 생각은 있는 건지. 

 

 “사령관, 철충들과 전쟁을 할 생각이 있기는 해? 도대체 언제까지 해저에 숨어 있기만 할 거야!”

 

 탁자를 내리치며 메이는 사령관에게 쌓여 있던 불만감을 터트렸다. 

 

 “사령관, 우리는 전쟁 중이야! 사령관이 짧은 시간 동안 오르카호에 많은 부분을 개선시킨 건 인정할게. 그런데 정작 가장 중요한 전투는 계속해서 피하고 있어! 도대체 언제까지 자원 탐색만 보낼 건데!”

 

 “메이 소장. 각하께 무슨 무례인가!”

 

 “말리지마! 이건 꼭 본인에게 들어야겠어!”

 

 마리의 만류에도 메이는 사령관을 째려보며 대답을 요구했다. 칸과 레오나도 메이가 감정을 다스리지 못하고 사령관에게 질문과 함께 화를 내고 있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그녀들도 메이의 의견에 아예 동조하지 않는 것은 아니었다. 

메이의 말대로 사령관은 철충들과 전투를 회피해왔다. 오르카호 내부의 여러 가지 문제들을 개선시킨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었지만 정작 가장 중요한 철충들과의 전쟁에는 관심이 없어 보였다. 메이를 비롯한 지휘관들은 사령관의 대답을 기다렸다. 

 

 “전쟁? 우리가 전쟁을 하고 있다고?”

 

 메이의 말이 우스운지 사령관은 피식 웃으며 조소했다. 사령관의 입에서 나온 말은 충격 그 자체였다. 

사령관의 대답에 지휘관들의 시선은 순식간에 날카로워졌다. 

 

 “그럼 도대체 뭐라고 생각하는 건데?!”

 

 사령관은 일말의 감정의 변화도 느껴지지 않는 차분한 얼굴로 메이를 보았다. 

그 모습은 무지한 청소년을 바라보는 지긋한 나이의 어른과 같았다. 메이를 향한 사령관의 눈에는 한심함이 담겨 있었다. 

한 번의 조소 섞인 헛웃음을 터트리며 사령관은 메이에게 말했다.

 

 “한 가지 확실히 알아둬라 멸망의 메이. 우리는 전쟁을 하는 게 아니다.”

 

 사령관은 이어서 메이에게 한 가지 질문을 했다.

 

 “저항군의 수는 얼마나 되지? 전투가 가능한 모든 바이오로이드들을 전부 그러모았을 때를 기준을 묻는 거다.”

 

 “그걸 내가 어떻게 알아!”

 

 “그렇지 나도 마찬가지다.”

 

 “하고 싶은 말이 뭐야?!”

 

 불처럼 흥분하고 있는 메이에게 사령관은 차가운 질문을 던졌다.

 

 “이 지구에 있는 철충들과 저항군, 둘 중 어떤 세력이 그 규모가 더 거대할까?”

 

 “그건...철충들이 더 많지.”

 

 “그렇지. 그렇다면 저항군과 철충들과 전면전을 한다면 어떤 세력이 먼저 소멸될까?”

 

 정답이 정해져 있는 질문에 메이는 침묵했다. 

주먹이라도 한 대 쥐어박을 것만 같던 메이가 꿀 먹은 벙어리가 되자 사령관은 입을 열었다. 

 

 “인류와 바이오로이드는 백 년 전에 철충들에게 대패했다. 그것도 세상을 지배했던 빌어먹을 기업들이 전부 건재했을 때 말이다. 현재 저항군의 군세를 백 년 전 철충들과 싸웠던 연합군과 비교했을 때 얼마나 차이가 있을까? 백 년 전 연합군의 5%도 되지 않는 게 지금의 저항군이다.”

 

 사령관의 말에 메이는 그 이상 입을 열 수 없었다. 압도당하듯 사령관의 말 한 마디 한 마디는 메이의 입을 다물게 만들었다.

메이가 대답이 없자 한심하다는 눈으로 고개를 저으며 팔짱을 끼고 몸을 등받이에 기대며 말을 이었다. 

 

 “다들 잘 들어둬라. 이건 전쟁이 아니다. 전쟁이라고 부를 수 없을 만큼 저항군과 철충들 간의 차이는 극심하다. 우리는 침략자를 몰아내는 게 아니다. 세계의 지배자가 된 이들에게 도전하는 거지. 주제를 알아라. 저항군이 지금까지 살아남을 수 있었던 건 너희들이 대단해서가 아니다. 철충들이 너희들에게 관심이 없어서 그런 거다.”

 

 사령관의 말은 회의실의 공기를 무겁게 짓눌렀다. 

무거운 물건에 깔린 듯 함부로 입을 열기 힘들었고 호흡조차 힘든 것 같은 착각을 들게 했다.

 

 “내가 전투를 하지 않는 이유는 너희 자신에게 물어봐라. 나는 준비가 안 된 오합지졸들을 데리고 전쟁터로 향하는 미친 짓은 하지 않는다. 이번 점령은 앞으로 있을 수많은 준비들 중 하나이다. 저항군이 철충들과 전쟁을 할 수 있는 기본적인 준비를 마친다면 나는 저항군을 이끌고 전장으로 향할 거다. 자, 블랙리버 사의 생산 공장 점령 작전에 대해 반대하는 자 있나?”

 

 반대하는 이는 없었다. 지휘관들은 전부 침묵을 지켰다. 

 

 “다들 찬성하는 걸로 받아드리겠다. 점령 작전은 이틀 후 오전 11시에 시작한다. 도시 깊숙이 들어가야 하는 작전인 만큼 대규모의 병력이 동원될 거다. 이틀 동안 탐색을 중지하고 휴식해라. 이상.”

 

 사령관은 회의가 끝났음을 알렸다. 눈치를 보던 지휘관들은 하나 둘씩 자리에서 일어나 입구 쪽으로 걸어갔다. 마리가 마지막으로 회의실을 나가려고 할 때 사령관은 그녀를 불렀다.

 

 “마리, 너는 가지 말고 남아라.”

 

 “예?”

 

 사령관의 말에 마리는 당황했다. 설마 대원들이 무슨 실수라도 한 것인가? 

마리는 떨리는 가슴으로 다시 의자로 걸어가 자리에 앉았다. 

사령관은 콘스탄챠에게 마리와 단 둘이 이야기를 하고 싶다는 이유로 먼저 함장실로 돌아가 있으라고 말했다. 

콘스탄챠는 알겠다며 회의실을 나갔고 회의실에는 사령관과 마리 단 둘만 남게 되었다. 

 

 “마리, 요즘 상태가 좋지 않다는 말이 들리던데 진짜인가?”

 

 “아...아닙니다. 각하 저는 언제나 전장의 선봉이 되어 진격할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거짓말은 하지 않는 게 좋다. 눈 밑에 다크서클이 짙게 깔린 게 여기서도 보인다. 잠을 못 자는 건가?”

 

 정곡을 찔린 마리는 입을 꾹 다물었다. 잠시 동안 무언가를 고민하는 것처럼 고개를 숙이고 있던 마리는 이내 고개를 들어 사령관에게 말했다.

 

 “각하, 실례가 되지 않는다면 오늘 밤 각하께 찾아가는 것을 허락해주시겠습니까? 각하께 여쭙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여기서는 곤란한 질문인가?”

 

 “마음의 준비를 할 시간이 필요합니다.”

 

 마리의 말은 살짝 떨리고 있었다. 불굴이란 이명으로 불리는 마리가 저런 반응을 보이자 사령관은 마리가 할 질문이 매우 사적인 질문임을 감지했다. 

사적인 이야기를 모든 대화들이 녹음되는 회의실에서 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사령관은 판단했다.

 

 “알았다. 오늘 밤 10시에 스케쥴이 끝나니 11시에 내 침실로 찾아와라. 위치는 알고 있겠지?”

 

 “감사합니다. 그만 나가보겠습니다.”

 

 사령관은 가보라는 손짓을 했다. 마리는 인사를 하고 의자에서 일어나 회의실을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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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해가 수평선 넘어간 지 오래인 밤 11시, 사령관은 침실에서 마리를 맞을 준비를 마치고 의자에 앉아 있었다. 

사령관 하루 일과를 전부 마치고 침실에서 휴식을 취할 때는 사복을 입기에 지금은 제복인 아닌 편안한 생활복을 입고 있었다.

똑똑. 침실 문을 노크하는 소리가 들렸다. 노크 소리가 나고 침실 문이 열렸다. 

마리였다. 마리는 여전히 스틸라인 특유의 바디 슈트를 입고 있었고 롱코트에 모자까지 거의 완전 군장한 차림이었다. 

 

 “왔나. 앉아라.”

 

 사령관은 침실에 들어온 마리에게 의자에 앉을 것을 권했다. 

 

 “감사합니다.”

 

 마리는 의자에 앉았다. 의자 앞에 있는 작은 원형 탁자에는 두 개의 잔과 위스키 한 병이 있었다. 

마리와 진솔한 대화를 나누기 위해 사령관이 콘스탄챠에게 부탁했던 것들이다.

사령관은 위스키 뚜껑을 따고 각자의 잔에 위스키를 따랐다.

 

 “사적인 이야기를 할 때는 술만큼 좋은 게 없지. 마셔라.”

 

 “감사합니다.”

 

 마리는 술잔을 받아 사령관을 기다렸다. 본인의 잔에도 위스키를 따른 사령관은 마리에게 잔을 가까이 가져갔다. 

마리와 사령관의 잔이 가볍게 부딪혔다. 맑은 건배 소리가 울렸다. 건배를 나눈 사령관과 마리는 동시에 술잔을 비웠다.

 

 “그래서 나에게 뭘 물어보고 싶은 게 뭔가?”

 

 마리는 사령관의 질문에 지금까지 마음 속 깊숙이 담아두었던 고뇌를 풀었다.

 

 “각하께서 착용하고 계셨던 강화외골격, 혹시 그것이 ‘엑소 스켈레톤’이 맞습니까?”

 

 “잘 알고 있군. 1차 연합전쟁에 참가했던 너라면 알고 있을 줄 알았다.”

 

 남자의 말에 마리는 흠칫 어깨를 떨었다. 마리는 곧바로 말을 이었다.

 

 “각하, 저는 연합전쟁 때 엑소 스켈레톤을 착용하고 전투를 했던 정부군을 본 적이 있습니다. 그 부대 앞에서 저희는 눈 뜬 장님이 되었습니다. 보이는 것도 느껴지는 것도 없었고 오로지 진군하는 묵직한 걸음소리만이 들렸었죠. 저 또한 그 부대에게 크게 패해 저의 부하를 대부분 잃었던 적도 있었습니다.”

 

 유령, 엑소 스켈레톤을 착용하는 정부의 특수부대의 명칭이었다. 모습과 뇌파마저 완전히 지우고 움직이는 그들은 부대의 명칭 그대로 유령과 같았다. 마리는 정말로 묻고 싶었던 단 한 가지의 질문을 남자에게 던졌다. 

마리는 말이 떨리지 않도록 마음을 가라앉히며 차분한 태도를 유지하게 위해 애썼다.

 

 “혹시 각하께서는 오래 전 연합전쟁 때 참전하셨던 분이십니까?”

 

 마리는 침착함을 유지하지 못하고 결국 말을 떨었다. 정작 사령관은 매우 태연했다.

 

 “처음에는 저의 착각이길 바랬습니다. 전쟁으로 혼란스러워진 세상에서 각하께서 우연히 엑소 스켈레톤을 얻게 되신 것이라고 믿었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제 믿음은 약해졌습니다. 각하께서 너무나도 능숙하게 엑소 스켈레톤을 다루시고 과거에 칸 소장과 싸워 승리하셨다는 말을 들었을 때부터 머릿속에서 의심이 떠나지 않았습니다.”

 

 사령관은 잔에 위스키를 채우고 한 입에 털어넣었다. 사령관은 마리를 보며 입을 열었다.

 

 “너에 대한 기록을 찾아봤었다. 상당히 오래 전에 생산되었더군. 1차, 2차 연합전쟁에 참전하고 지금까지 살아남은 네가 대단하다고 생각한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나는 1차 연합전쟁 때 참전했었다. 네가 말한 엑소 스켈레톤 부대, 유령의 일원이었다.”

 

 사령관의 말에 마리는 마음 한 부분이 깨지는 것 같았다. 마음 속 깊이 증오했던 원수와 다시 대면한 것이다. 지난번에는 피 튀기는 전장에서 이번에는 정적이 도는 오르카호의 사령관 침실에서. 마리의 귓속으로 증오라는 이름의 악마가 속삭였다.

 

 ‘너의 부하의 원수가 앞에 있다. 오랫동안 한 번도 잊은 적이 없었던 불구대천의 원수다. 원수의 피로 죽은 부하의 혼을 달래라. 눈앞의 원수는 무력하다. 힘을 터트려라. 증오가 너의 복수를 정당하게 하리라.’

 

 안광에 푸른빛이 돌며 마리의 초능력인 푸른 생체전기가 몸을 감쌌다. 침실 안에서 생체전기가 튀는 소리가 퍼졌다. 

스파크가 터지듯 생체전기가 튀는 소리는 조용했던 침실 안을 가득 채웠다. 마리의 두 눈에 푸른빛이 돌고 넘지 않아야 하는 선을 넘으려는 그 순간, 희미하게 남아있던 이성과 사명감이란 물이 증오의 불을 꺼트렸다. 

마리를 감싸던 생체전기가 사라졌다. 침실은 다시 조용해졌고 침실 안에는 적막이 흘렀다.

 

 “내가 증오스럽나? 불굴의 마리.”

 

 “제 감정에 솔직해지자면 그렇습니다.”

 

 사령관은 마리의 잔에 위스키를 한 잔 더 따라주었다. 마리는 위스키를 한 번에 입 안으로 털어넣었다. 위스키가 들어가자 몸이 조금 뜨거워졌다. 마리는 잔을 꼭 붙잡고 사령관에게 말했다. 어떻게든 감정을 억누르려는 방금과 달리 이번에는 목소리가 떨렸다.

 

 “며칠 전부터 매일 죽은 연합전쟁 때 죽은 부하들의 꿈을 꿉니다. 저는 그 꿈에서 부하들의 시체들에 둘러싸여 있습니다. 그리고 꿈의 끝에는 수많은 유령들이 제 앞에 나타납니다. 그리고 그들의 선두에는 언제나 각하께서 서 계십니다.”

 

 사령관이 오르카호를 이끌기 시작한 후로 반복되는 악몽에 마리는 잠에 들지 못했다. 악몽은 마리를 서서히 갉아먹었다. 악몽은 잠에서 깼다고 사라지는 것이 아니었다. 마치 낙인을 남기듯 악몽은 마리의 몸 구석구석에 그 흔적을 남겼다.

 

 “수많은 인간분들이 저희들을 증오했듯이 각하께서도 저희를 향한 증오로 전쟁에 참전하셨을 겁니다. 그 증오를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각하, 저희들은 비록 인간은 아니지만 인간처럼 감정을 느낍니다. 증오, 슬픔, 절망, 행복, 희망, 저는 저의 군단을 학살했던 유령들에게 깊은 증오를 느꼈습니다. 그리고 각하에게도...지금 깊은 증오를 느낍니다.”

 

 마리는 손에서 피가 날 정도로 강하게 주먹을 쥐었다. 하지만 주먹 쥔 손을 풀고 사령관에게 말했다.

 

 “저항군은 단 한 명의 인간에게 희망을 걸었습니다. 단 한 명의 인간만 찾는다면 가증스러운 철충들에게 반격할 수 있다는 희망을 품었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인간을 찾았습니다. 사령관님은 저항군의 희망이자 구심점이 되실 분입니다. 저 한 명의 증오 때문에 모두의 희망을 물거품으로 만들고 싶지 않습니다.”

 

 마리는 의자에서 일어나 사령관에게 향해 무릎을 꿇었다. 머리를 바닥에 박으며 마리는 애원했다.

 

 “부디 제가 각하를 믿을 수 있게 해주십시오. 바이오로이드에 불과한 제가 인간이신 사령관님 각하에게 드리는 간절한 부탁입니다. 먼저 떠난 부하들에게 각하께서는 저희들의 희망이 되어줄 분이라고 제가 당당하게 말할 수 있게 해주십시오.”

 

 머리를 박고 애원하고 있는 마리의 모습에 사령관은 작게 한숨을 쉬며 의자에서 일어났다. 마리를 일으켜 세워주고 다시 의자에 앉혔다. 붉게 충혈된 마리에게 손수건을 건넸다. 

 

 “네가 한 가지 큰 착각을 하고 있는 것 같군. 난 딱히 바이오로이드를 증오하지 않는다.”

 

 사령관의 말은 마치 망치처럼 마리의 뒤통수를 때렸다. 바이오로이드를 증오하지 않는다고? 그렇다면 그렇게 많은 바이오로이드를 가차 없이 죽였던 이유가 무엇인가? 도저히 생각해도 마리는 알 수 없었다.

 

 “난 살면서 너희들을 증오해본 적이 없다. 내가 너희들을 죽인 건 단순히 너희가 우리의 적이었기 때문이다.”

 

 사령관의 말에 마리는 소름이 돋았다. 그 모든 행위가 감정이 아닌 이성에 의한 행동이었다는 것에 온몸이 떨렸다. 

 

 “아군을 지키고 적군을 쓰러뜨리며 전투에서 승리한다. 군인으로서 가져야할 가장 기본적인 자세 아닌가. 그리니 걱정하지 마라. 네가 나를 믿는다면 나도 너를 믿을 거다. 과거에 너와 나는 적이었지만 지금은 일시적이지만 나는 너의 상관, 너는 나의 부하다. 과거에 그랬듯이 나는 아군을 지키고 적들을 모두 죽일 것이다.”

 

 자신을 내려다보는 사령관의 시선을 마리는 정면으로 응시할 수 없었다. 그의 눈은 너무나도 차가웠다. 

차가운 이성으로 가득 찬 사령관의 눈은 마치 날카로운 늑대를 연상시켰다. 

사령관직을 맡기 싫다고 투덜댔을 때의 모습은 온데간데없었다. 사령관은 마리에게 손을 내밀었다.

 

 “나에게 물어보고 싶은 게 많을 거다. 그렇게 오랜 시간이 지났는데 어떻게 이 얼굴을 유지하고 있는지 모든 인간들이 죽었는데 어떻게 살아남았는지. 그건 시간이 지나면 알게 될 수도 영원히 모를 수도 있겠지. 하지만 그런 것을 다 떠나서 너희들이 다른 인간을 찾을 때까지는 사령관으로서 책무를 다할 거다. 그것이 내가 칸 녀석에게 진 빚을 갚는 법이다. 그러니 너희들이 새로운 인간을 찾을 때까지 잘 부탁한다. 불굴의 마리.”

 

 마리는 사령관이 내뿜는 아우라에 이끌리듯 그의 손을 잡았다. 과거의 아픔과 증오가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었지만 마리는 자신이 사령관으로 추대한 이 남자에게 희망을 걸어보기로 했다. 이 날 밤, 사령관과 마리는 함께 위스키 한 병을 비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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