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편



학교로 가는 길


등교길이라고 했던가


등교길위 모든 것이 래후에게는 처음이었다.


길가 벤치에 앉은 고양이도

길에 핀 이름모를 봄꽃도

말없이 묵묵히 학교로 전진하는 어딘가 익숙한 얼굴의 학생들도

옆에 있는 언니와 동생이라는 진짜 '가족'이라는 존재들도


전부 말이다


하늘은 조금 구름이 끼어있지만 푸르렀다.

상쾌한 아침이라는 표현이 더없이 어울렸다.


교복을 입은 자신의 모습은 어색했고

치마는 더 어색했다. 

오르카에 있을때 입을 수 있던 것은 동계,하계 전투복, 생활복 등이 전부였으니까


교문을 지나고 실내화로 갈아신으며 네자매는 흩어졌다.


아침을 맞은 학교는 살아움직이는 생명체처럼 분주히 움직였다.


래후는 자신의 학생증을 꺼내보았다.

2-4반 이게 아무래도 자신의 반이겠지.

그렇게 생각하고는 다른 학생들의 뒤를 쫓아 반을 찾았다.


2-4.....2-4....왠지 모르게 노동의 고충이 느껴지는 숫자였다.

이렇게 생각하면서 찾다보니 어디 구석진 자리에 위치하는 음침한 교실이 보이는데,


저게 2-4반이네


뭔가 께름칙한 느낌이 들기도 하지만 일단은 문을 열고 들어갔다.


드르르르륵


"어...."


아직 등교시간인지라 반에 있는 학생들은 많이 없었다.


래후는 반을 쓰윽 둘러보았다.


분명히 처음볼 사람들일터인데 역시 익숙한 얼굴들이다.


등굣길때부터 신경쓰였었고 반으로 들어오니 확실히 실감이 난다.


이곳의 학생들은 전부 오르카에 있는 바이오로이드분들과 똑같이 생겼다.

저쪽에 졸고있는 분은 퀵카멜양.... 저쪽에는 다프네양... 저쪽은 불가사리양....

그리고 저기 와플을 먹고 있는...에키드나양

아니 어쩌면 생김새말고도 성격까지.....


'어..그런데 내 자리가 어디지?'


반까지는 어떻게 알 수 있었지만 자리까지는 어떻게 할 수가 없는 노릇이었다.

일단은 서있을 수밖에...


"뭐하시죠..?"

뒤에서 들리는 목소리에 뒤를 돌아봤다. 

"아 ..그ㄱ...히익! 대령님..!!!"

그리고 반사적으로 외치게 됐다. 


"대령? 제가 뭐 대령이라도 해야하나요?"


눈을 돌리자마자 보인 광활한 평면

교복마저도 가릴 수 없는 그녀의 아이덴티티

교복 마이 왼쪽에 달린 이름표가 그 곳이 앞임을 간신이 증명해주고있었다.


"두 나....연?"


"두나연, 제 이름이 왜요? 래후양?"


"아니아니아니 아니에요 별거 없어요!"


"조금있으면 수업 시작이니 앉아요. 자리 바로 앞에 있잖아요"


아 바로 앞이 자리였구나.

일단은 자연스럽게 앉는 래후.


"괜찮으신가요? 오늘은 평소보다 좀 느낌이 다르네요."


"아 걱정안해주셔도 돼요! 네! 진짜로요!"


"흠... 뭐 래후양이 그렇다면.... 그런거겠죠"


래후는 살짝 놀랐다. 그녀가 반에서 처음 접촉한 상급자인것도 있긴 했지만 

이곳에서도 여전히 독보적이기 때문이었다.


아직 덜 진정된 마음을 추스리고 책상을 바라봤다.

책상은 군더더기 없이 깔끔했다.

분명 래후라는 소녀는 자신처럼 괜히 치우기 귀찮게 물건을 더럽게 쓰는 타입은 아니었나보다.

아니 이제 그 래후가 자신이었으니 이런 구분도 의미가 없는 것일지도 모른다.


책상밑에 손을 넣었다.  노트 몇장이 잡히고 교과서들이 있었다.

책상 한켠에 적힌 시간표에는 오늘의 과목들이 적혀있고

시간을 낭비하지 말라는 뉘앙스의 다짐 같은 문구가 적혀있었다.


그런 것들을 구경하다보니 종이 울리고 선생님이 들어왔다.

음... 아무래도 선생님들은 오르카에서 본 얼굴은 아니었다.

아무래도 모든 사람들이 내가 알고 있는 사람들은 아닌가보다.

래후는 그렇게 생각하고는 교과서와 노트를 꺼냈다.


저 앞에 앉은 나연...이 일어나서 차렷을 외쳤다.

아무래도 이 반은 대령님이 반장인가 보다.


"차렷!" 


외침과 동시에 몸이 무의식적으로 꼿꼿하게 되어버린다.

군인의 오래된 기억은 버릴 수가 없었다.


형식적인 경례가 끝나고 수업은 시작되었다.

하지만 지금까지 배워온것은 오로지 총질과 훈련뿐이었기에 

딱히 수업내용이 머리에 들어오지는 않았다. 어쩐지 이 자리의 원래 주인에게 미안해질 따름이다.


그래도 멍하니 있을 수는 없었기에 노트라도 폈다. 혹시 노트를 읽다보면 

수업에 대한 정보라도 얻을 수 있지 

[이번엔 잘 해봐, 레프리콘]

않을까? 계속해서 노트를 넘겼....


잠깐


방금 그 문장.


래후는 방금 그 문장 있던 페이지로 다시 노트를 넘겼다.


틀림없이 레프리콘이라고 쓰여있다. 재밌는 우연인가.

어떻게 이 래후라는 아이는 레프리콘이라고 


마치 자신에게 말하듯이 적어놓은 거지?


알 수 없었다. 

애초에 알 방법도 없었다.

어떻게 해야할지 몰랐다.

너무나 막막했다. 그런데도

마치 자신이 이 고셍 홀로 떨어진 것을 알아주는 누군가가 존재한다는 것을 느꼈다.

그것은 위안이 되었고 

또 공포가 되었다.


마치 자신이 그 사람에게 놀아나는 것인가? 

그 자는 내가 이곳에 왜 있는지 이유를 아는건가?

.

.

.

어쩌면 이 모든게 그저 내 바보같은 착각인가?


어쩌면 이 래후라는 아이의 별명이 레프리콘일 수도 있잖아.

그래, 아마 그럴거야. 그러지 않고서야... 그러지 않고서야....


모르겠다. 이 감정이 뭔지 모르겠다.


나는 오르카로 돌아가고 싶은건가?

잘 모르겠다.


나는 이곳에서 래후라는 소녀의 삶을 계속 살고 싶은건가?

그 또한 잘 모르겠다.


나는 그저 명령만 받아온 바이오로이드니까.

하늘을 날지도 초능력을 쓰지도 못하는 그저 할 줄아는건 

총을 쏘고 분대원들을 움직이는 법밖에 모르는 양산형 전쟁병기니까.


이럴때 내가 뭘 어떻게 해야할 지모르겠다.


하지만 노트에 적힌 [레프리콘]은 레프리콘에게 계속 물어본다.


어떻게 할 것인지.


모르겠다고


하지만 그것은 [레프리콘]에게 대답이 될 수 없었다.


자신은 래후라는 소녀가 아니다. 그 소녀의 삶을 대신 살아줄 의무도 없다.

차라리 의무였다면 마음 편히 그리했을 것이다.

하지만 갑작스레 주어진 이상한 자유는 그녀에게 뇌를 좀먹는 듯한 고뇌를 주었다.

교복을입은 래후는 그 고뇌를 견뎠을까?


레프리콘은 알 수 없었다.


형언할 수 없는 떨어지는 기분으로 1교시가 끝났다.

.

.

.

"야, 래후!"


".....어? 어! 왜?"

고개를 들어보니 에키드나였다. 이번엔 크림빵을 먹고 있었다. 여기서의 이름은 기두나였다.


"저기 네 동생"

두나는 창문 밖을 가리켰다.


"래후 언니~"

실희가 머리를 배꼼 내밀고 있었다.

나가보니 실희는 대뜸 문학 교과서를 건네었다.


"언니 다음 문학시간이잖아 근데 보니까 

공부한다고 교과서 집에 놓고갔더라.

방금 생각나서 언니 빌려줄려고."


그랬나.... 아니 내가 그런건 아니지... 래후가 그런거지...


"고마워..."


"언니 왤케 기운이 없어? 괜찮아?"


"아니야, 그냥 어지러워서 그래..."


"힘들면 꼭 양호실 가. 내가 큰언니한테 말할게."


여전히 실키는 상냥했다. 아니 실희...

그래.. 오르카의 실키도 정말 상냥했었다.

빌어먹게 똑같이 상냥하다. 

똑같은 표정으로 웃고 똑같은 목소리로 말하고 똑같은 눈동자로 나를 바라본다.


이곳의 모든 사람들이 오르카의 모든 것들을 떠올리게 한다.


벽너머 모든 것이 투명히 다 보이지만 절대로 빠져나갈 수 없는 투명한 유리 미로를 걷는 기분이었다.


"나도 저런 동생 갖고 싶다. 냠.."

두나는 먹던 크림빠을 마저 먹으며 내게 부럽다는 듯이 말을 건네었다.


"......두나양의 동생은 어떤가요?"


"오딤이라고 쌍둥이 동생 하나 있는데. 좀 괴짜야."


"아 그렇군요.."


오딤이라면... 아마 네오딤양이겠지... 어쩜 이리 변하는 게 없을까?

참으로 이상한 세상이다. 래후는 맥이 빠졌다.

.

.

.

.

그럼에도 시간은 계속 흐르고 흐르고 수업시간이 끝나고 집으로 가는 길


노트에 적힌 글자때문에 그 어떤 것도 눈에 들어오지 않을 줄 알았건만

의외로 적응하게 되는 게 사람이었다. 래후는 일단 복잡한 생각도 의문도 차차하고 움직였다.

반에 있던 학생들은 대부분 얼굴을 텄다. 

래후와 꽤나 친한 친구도 있었다.


님프양이었다. 여기서는 님후라는 이름이었다. 

이름 끝 글자가 같다는 이유로 처음에 친해졌다는 듯 하다.


원본 모델이 연관성이 있다는 이유라서 그런것인가? 

생각하면 할 수록 참 이상하다못해 작위적인 느낌이 들기도 하지만 일단은 넘어갔다.


"그렇다면 사령관님도 여기 계실까?"


그러다가 문득 든 생각이 입밖으로 빠져나갔다. 

뜬금없이 새어나온 말에 옆에 있던 자매들이 이쪽을 보았다.


"오늘 래후 언니 진짜 이상하네."


라운의 말에 실희도 고개를 끄덕인다.


"진짜 아침부터 계속 뭔가 다른 사람 같아. 큰언니는 어때?" 


"나한텐... 뭐... 항상 이쁜 동생이지."

이러면서 노은은 래후의 머리를 살짝 쓰다듬는다.


"으악 오글거려!"

"에이, 대답 회피하지 말고."


"저기, 그래서... 내가 진짜...다른 사람 같습...같아?"


""......""


집으로 가던 4자매의 발걸음이 잠시 멈췄다.


레프리콘이 바라본 실희와 라운의 눈은 조금 놀란듯이 커져보였다.

노은은 앞머리와 각도에 가려 볼 수는 없었다. 


"흠... 안되겠다. 오늘 저녁은 거기서 먹자."


"오? 진짜? 웬일로 큰언니가 외식이..아! 진짜! 나보다 머리 하나 작은데 딱밤은 왜 이렇게 매운거야!"

"너는 언니들한테 예의가 없어! 그리고 나도 네 언니야!"


"꼴랑 11달 차이갖고 유분수야!"


"11달이 꼴랑이냐! 이게 진짜!"


"우리집은 텀이 너무 짧아! 차라리 늦둥이면 이쁨이라도 받는 으악!"


갑자기 동생들이 싸운다. 가족처럼 싸운다.

둘은 군인이 아니다. 브라우니야 원래 많이 혼났지만

그것은 선임의 입장에서 혼내는 것이지 

이렇게 언니의 입장에서 실키가 브라우니를 혼내는 것은 


굉장히 새로웠다.


노은은 옆에서 마냥 그 둘이 귀엽다는듯이 웃고 있었다.


"완전히..... 똑같지도 않네요."


또 한번 속마음이 새어나갔다. 이 이상하고 작위적인 세상도 마냥 그렇게 작위적이지는 않는다고

마치 레프리콘 자신에게 세상 자신이 설득하고 있는 것처럼 보여서 살짝 웃음이 새어나왔다.

도대체 이 세상이 내게 뭘 원하는 지 왜 이 쪽으로 보내졌는지는 여전히 하나도 알 수는 없지만

이 세상이 자신에게 마냥 차가운 곳이 아니란 것을 알게 되었다. 


"자. 그럼 빨리 집에 가서 짐 놓고 밥먹으러 갈까?"

노은은 어느샌가 둘을 양 팔로 붙잡고 영차영차 걸어갔다. 큰언니는 강했다.

노을이 다 져가는 저녁이었다.

.

.

.

그곳이 이곳이었구나.


식장 안쪽에서는 기분 좋은 냄새가 새어나오고 있었다.

무슨 냄새인지는 확실했다.


"쌀국수 4개! 맛있게 먹어라!"


"""잘먹겠습니다~"""


"잘먹겠습니다...."


쌀국수 한 그릇이 앞에 놓였다.

넉살 좋은 주인 아저씨(아무래도 우리를 잘 아시는 듯한)가 만든 쌀국수.


쌀국수를 좋아하긴 했다. 오르카에서도. 여기서도 래후는 쌀국수를 좋아했구나..

마지막에 먹을 쌀국수... 그거는 브라우니가 훔쳐먹었었지... 으...

괜히 짜증이 나서 국수가 나오자마자 정신없이 먹고있는 라운이를 째려봤다. 그러다가 미운 놈 떡하나 더 준다고 

어느새 빈 물컵에다가 물을 따라줬다. 


"과뭐!엉이!"


"먹으면서 말하지마. 진짜.. 아 고마워 언니."

내친김에 실희도 따라주고 노은 언니는 


"난 안따라줘도 돼. 그리고 이제 빨리 먹어. 그러다 식겠다."


"어..언니...잘 먹을게.."


그렇게 젓가락을 한번 들고 입에 국수를 집어넣었다...

집어넣고...넣고....씹고 간신히 삼켰다...


맛있다...


정말 맛있다..


"아까 그거 질문 지금 답해볼까?"

노은이 언니가 흐뭇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이렇게 쌀국수 좋아하는 애는 너밖에 없는데 왜 네가 다른 사람이겠니.

혹여 다른 사람이라도 래후 너가 잘먹기만 한다면 나는 죽어도 알아차리지 못하겠지.

알겠지? 무슨 고민이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혹시라도 힘들면 나한테 말해.

나 아니면 동생들한테라도. 가족이잖아."

"마아 우리 가오이다아"

"교과서도 빌려주는 가족! 히히"


"....."

뭐라고 말을 해야할지 모르겠다.

왜 이렇게 한없이 따듯하게 대해주는 거지. 

내가 내가 맞다고 한다.

나는 내가 내가 아니라고 한다.

어쩌며 내가 내가 아니라고 하는게 내가 내가 맞는 다는 것일까?

나는 나대로 살아가도 되는 건가?

하지만 하나만큼은 이제 확실히 더 안다.

이 세상은 어쨌든 내가 나로 사는 것을 바라고 있다고.

쌀국수가 맛있어서인지

그냥 얼굴 근육이 풀렸는지 입꼬리가 괜시리 올라간다.

.

.

.

"잘 먹었습니다!"


쌀국수 그릇을 하나 다 비웠다.

라운이는 어느새 볶음밥까지 시켜서 반쯤 비우고 있다.

실희는 안그런듯 보이면서도 볶음밥이 먹고 싶어보인다.

노은언니는 슬슬 계산할 채비를 하고있었다.


그러던 와중 문이 열리고 손님이 왔다는 종이 딸랑거렸다.

"어서오세요! 아 왔구나."

주인아저씨는 포장된 음식을 옆에 두고 찾아온 손님에게 인사를 했다.


포장 음식을 찾으러온 손님인


"네, 포장 1인분.  여기 카드요. 네. 아뇨 영수증 안주셔도 돼요.

네 감사합니다. 안녕히 계세요."


'.'


"오, 안녕!  학교에서 봐."

짧은 인사와 함께 문이 닫힌다.


'.'


"누구야, 언니? 아는 사람이야?"


"."


"쟤, 9반 남자애네. 언니랑 아는 사이야?"


"."


"래후야? 괜찮아. 무슨 생각해?"


"하..."


"뭐?"


"각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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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줄요약 간다잉


1. 오르카의 바이오로이드들과 생김새도 성격도 똑같은 사람들이 존재하는 이상한 현대같은 세상에 떨어진 레후!

2. 레후는 갑작스런 상황변화에 어안이 벙벙해지고 우연히 편 노트에는 레프리콘 4자가 마치 자신에게 말하듯이 적혀있는거임? 마치 꾸며진듯한 세상이 혼란스러움  

3. 하지만 따듯한 격려로 다행히 '나'로 살아가기로 마음을 잡게 되는데이쪽에도 사령관이 있는걸 발견했네?


뭉뚱그려서 학원물이긴한데 사실 로코를 꿈꾸고 있징...꿈도 크다...

다음엔 이뱀도 나오겠지. 근데 새벽이라 별로 안 읽겠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