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 북한, 무주지

블랙리버 3합동체계연구단 주둔지



 사람은 실로 적응의 동물이다. 이곳에 배치되고 나서 한달을 보낸 미호의 감상이었다. 이곳에서는 섹스, 저곳에서는 떡방아, 그곳에서는 씹질을 하느라 바쁜 섹스촌이나 다름없는 풍경이 어느새 익숙해졌다. 바지까지 내리는 건 양심이 허락하지 않았지만 국방색 티셔츠만 입은 채 주변을 돌아다니는 정도는 미호도 따라하게 되었다. 


 그리고, 신병 물을 뺀 것에 대한 보답인지, 병기부사관이 청구한 장비가 드디어 들어왔다는 희소식이 들려왔다. 미호는 4배율 조준경을 장착한 돌격소총이 아닌, SK14 저격총을 받았다.(물론 저격총을 받았다고 돌격소총을 더 이상 들고 다니지 않아도 되는 건 아니었다.)  불가사리에게는 파일 벙커, 핀토에게는 제트팩, 그리고 드라코에게는 전투 방패가 지급되었다. 드디어, 신병들이 제각기 맡은 본분을 다할 수 있게 되었다.


 미호는 드디어 도착한 자기 총을 꺼내보았다. 공장에서 출고된 그 상태 그대로 매끈한 저격총이었다. 미호는 기쁜 마음으로 영점을 미호 모델 표준에 맞춰 조정했다. 정신교육 때 배운 한국 관용어구 중에 "집 나간 마누라 돌아온 기분" "물 만난 물고기" 라는 말이 있었다던데, 그 말들이 이런 상황을 표현하려고 만들어진 걸까?


 "...드디어 만났다. 내 총."


 미호는 총을 꼭 껴안고 총이 인형이라도 된 것처럼 얼굴을 부볐다. 핀토랑 드라코는 이미 자기가 받은 걸 시험해본다고 바깥으로 나갔다. 그 와중에 불가사리는 파일벙커에 이상이 없나 찾아볼 뿐 딱히 반응이 없었다. 미호는 총을 점검하다가 불가사리를 보고 물었다.


 "불가사리, 왜 그래?"


 "뭐? 왜?"


 "아니, 넌 장비 받았는데 기쁘지 않아?"


 불가사리는 어깨를 으쓱이며 고개를 내저었다. 언제나 불가사리는 그랬다. 남들이면 기뻐서 웃을 상황, 좆같아서 표정을 찡그릴 상황에 아무것도 느끼지 못한 목석처럼 가만히 뚱한 표정을 유지했고, 남들이면 너무 좋아서 울건 좆같아서 울건 하여간 울 상황에도 표정이 잠깐 풀어지는 정도였다. 다른 불가사리도 저랬나 헷갈릴 지경이었다. 불가사리는 한숨을 쉬고 되물었다.


 "그래도 넌 핀토랑 드라코보다는 훨씬 똑똑할 줄 알았는데. 이제 우리한테 부족한 게 뭐 있어?"


 "아무것도 없잖아."


 "바로 그거야. 이제 부족한 건 아무것도 없지. 우린 이제 100%가 됐다고. 그럼 뭘 하겠어?"


 "...실전?"


 빵, 불가사리는 맞췄다면서 검지손가락으로 총 쏘는 시늉을 했다. 확실히 그랬다. 이제 그들은 실전에 투입될 것이다. 정신없이 날아다니며 적들에게 총을 난사하는 핀토, 벽에다 거대한 구멍을 뚫어버리고 하는 김에 사람도 꿰뚫어버리는 불가사리, RPG 직격도 한발은 견뎌낸다는 전투방패를 들고 적들의 포화를 맞아가며 전진하는 스틸 드라코, 그리고 저격소총 유효사거리 내라면 뭐든 맞출 수 있는 미호까지. 그들의 전투능력을 시험할 수 있는 여건이 드디어 완성되었으니.


 "...확실히 그렇네."


 "편한 시절 다 끝난 거야. 우리가 여태까지 해봤자 뭐 했어?"


 우리가 해봤자 뭐 했느냐, 그 말도 반박할 방법이 없었다. 함진 마을에서의 첫 전투는 미호의 헬멧에 피탄흔이 남은 것을 빼면 날로 먹은 것이나 다름없었고, 그 다음에 한 것도 블랙리버 비밀요원이나 외신 기자를 보안 컨테이너 안에 집어넣고 장갑차에 밀어넣어서 호송하는 것밖에 없었다. 이제 진짜구나. 


 "그러면, 진짜 테러 현장은 더 끔찍하겠네."


 "난 그래서 네가 제일 걱정이야."


 "응?"


 미호는 총만 내려보다가, 자기를 걱정해주는 불가사리를 올려다보았다. 내심 놀란 미호의 눈이 커졌다. 그 목석같던 불가사리의 표정이, 분명히 변했다. 알 수 있었다. 그녀가 무슨 말을 하건 간에, 그 말에는 진심이 가득 담겼을 거라고.


 "만약 일곱살 꼬맹이가 우리 앞에서 수류탄 핀을 뽑으려 하면, 넌 그 애를 쏴버릴 수 있어?"


 "..."


 쏴야 할 것이다. 그녀는 테러리스트를 제압하고 시민의 안전, 그리고 최종적으로 블랙리버의 모든 유무형 자산을 수호하는 사명을 맡았으니까. 테러리스트는 별 게 아니었다.  블랙리버의 정의에 따르면 "정치적 이유로 폭력을 가해 사회에 대규모의 관심 또는 피로감을 불러일으키기 위한 파괴행위"이 테러였고, 테러리스트는 그 테러를 저지르는 작자들이었다. 


그리고 아이라고 테러를 못 저지르겠는가? 모든 직업에는 남녀노소가 없다고 한다. 테러리스트는 특히 그랬다. 그리고 아이가 수류탄을 들고 동료를 까버리려 한다면, 그건 어린아이기 이전에 테러리스트고, 쏴죽여 마땅한 대상이다.


 하지만 쉽사리 대답할 수 없었다. 지금 나보고 어린아이를 쏘라는 건가? 미호는 우물쭈물하다가 한참이 지나서야 겨우 긍정할 수 있었다.


 "...쏴야지."


 "맞아, 쏴야 해. 그런데 그거 알아? 너 고민할 동안 시간 10초 지났어. 우리가 사용하는 블랙리버 제식 수류탄이건, 저기 빨갱이들이 쓴다는 썩어넘치게 많은 F1 수류탄이건, 10초면 안전핀 뽑고 던지는 건 물론이고 아예 도망도 칠 수 있는 시간이야."


 "...미안."


 불가사리는 미안하다며 어둡게 굳은 미호의 얼굴을 보고는 어깨를 툭툭 쳤다. 그리고 누워서, 마지막 말만 남기고 눈을 감았다.


 "됐다, 내 주제에 무슨 훈장질이야. 그냥... 나나 딴 애들 시체 앞에서 미안하다고 찔찔대는 일만 없기를 바랄 뿐이지."


 "..."


 미호는 말없이 바깥으로 나갔다. 그녀의 기분이 어떻건 간에, 각자 제 할일에 열중했다. 저 멀리 하늘에 떠있는 핀토는 날아다니느라 여념이 없고, 드라코는 보이지 않지만 아마 부대 가장자리에 있는 링에서 열심히 치고박고 싸우거나 방패를 들고 전술 훈련장에서 혼자 훈련 겸 놀이를 하고 있을 것이다. 불가사리는 언제 터질 지 모르는 다음 상황이 오기 전에 최대한 눈을 붙이고 있다. 하지만 지금 미호는 뭘 하고 있는 걸까.


 "...미호!"


 뒤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하이에나가 낄낄 웃으며 미호의 어깨를 툭툭 치더니 아예 미호를 꽉 껴안았다. 그녀가 터뜨리는 폭탄답게 화끈한 인사에, 미호도 그녀의 등을 팍팍 때리면서 나름의 화끈함으로 화답했다. 하이에나는 미호를 보고 물었다.


 "야 미호, 장비 다 받았다면서? 그런데 왜 그렇게 표정이 안 좋아? 어?"


 "아, 그게... 좀 걱정이 됐거든. 내가 민폐가 되지는 않을까."


 "응? 그건 또 뭔 소리야? 음, 가서 얘기하자."


  미호와 하이에나는 걸으면서 이야기하다가, 포로들이 진지작업을 하는 곳 근처에 가서 앉았다. 포로들이 총을 든 브라우니의 눈치를 보며 작업하는 것을 구경하다, 하이에나가 먼저 말을 꺼냈다.


 "그런데 걱정이 뭐가? 너가 어떻게 민폐가 되는데?"


 "그게... 내가 테러리스트를 바로 죽일 수 있을까, 그런 생각이 들었어."


 "음? 그래? 왜?"


 하이에나는 엉덩이를 끌어 자갈더미 옆에 앉고, 자갈들 중에 크기가 큰 것들을 골라 포로들에게 던지면서 이야기를 듣기 시작했다. 미호는 불가사리가 했던 이야기를 그대로 전했고, 하이에나는 돌을 던지는 데 재미를 붙인 와중에도 듣고는 있었는지 자기 감상을 붙였다.


 "불가사리가 그러더라고. 아이가 동료한테 수류탄을 던지려 하면, 그 아이를 바로 쏴버릴 수 있냐고. 당연히 쏴야 하는 건데, 고민이 되더라... 쏴야 한다고 대답했는데, 실전에서도 그렇게 늦게 결정하면 수류탄이 터지고도 남을 거라 하더라고..."


 "그거 불가사리 모델들은 다 그러더라, 그래도 지지난번 불가사리보다는 훨씬 낫네."


 "...."


 지지난번 불가사리, 그 이야기에 미호는 다시 표정이 안 좋아졌다. 죽은 걸까, 다른 곳으로 간 걸까, 그리고 포로에게 계속 돌을 던지는 것도 보고 싶지 않았다.


 "지지난번 불가사리는 어떻게 됐어?"


 "어떻게 되긴. 미국 본토로 갔지. 지지난번 미호랑 같이."


 "그런데 그 돌 던지는 거 좀 그만하면 안돼?"


 하이에나는 미호의 표정을 보더니 어깨를 으쓱이고는, 자갈을 양 손에 잔뜩 모아 포로들에게 우수수 던졌다. 그리고는 껄껄 웃으면서 포로들을 가리켰다.


 "자재 쌓게 도와주는 거야."


 "..."


 하이에나는 미호의 말대로 포로들에게 돌을 던지는 것을 그만두고, 미호의 고민에 대해 자신의 경험을 담아서 이야기해주었다. 하지만 고민이 확 뚫릴법한 내용은 아니었다.


 "미호 모델은 원래 다 그래. 처음에는 다 양심에 찔리는 게 많아서 이거저거 주저하는 게 많거든. 그런데, 결국은 다 해내고... 나중에는 미호 모델이 제일 말 잘 듣고, 제일 화끈하게 싸우더라. 어우, 지지난번 미호는 진짜 움직이면 빨갱이, 안 움직이면 훈련받은 빨갱이라 하는데 끝내주더라니까."


 결국 너도 그렇게 될 것이다, 처음에만 그렇지 나중에는 더 즐긴다. 하이에나의 말은 그 두 마디로 요약할 수 있었다. 하지만 미호는 기쁘지 않았다. 기쁠 리가 없었다. 그녀의 말대로라면, 미호는 나중에 누구보다도 더한 쾌락살인마가 된다는 뜻 아닌가. 지지난번, 지지난번 하니 지난번도 궁금해졌다. 하지만 지난번 미호에 대해서는 하이에나가 말을 아꼈는데, 지지난번은 잘만 이야기하면서 지난번에는 무슨 일이 있었는지 말해주지 않으니 궁금해졌다.


 "그러면... 지난번 미호는 어떻게 됐어?"


 "...그건... 알고 싶어?"


 하이에나는 미호를 힐끔힐끔 바라보며 되물었다. 미호가 고개를 끄덕이자, 하이에나가 헛기침을 하고 이야기하려는데, 뒤에서 누군가 하이에나의 어깨를 잡았다.


 "보스?!"


 "거기까지. 하이에나. 가봐."


 하이에나는 도둑질을 들킨 아이처럼 후다닥 도망쳤다. 그렇게 조던과 미호만 남았다. 조던은 미호 옆에 앉아서 먼 산을 바라보았다. 


 "...알면 안 되는 건가요?"


 "안 되는 건 아냐. 대신 정확히 알아야지. 그 년 얘기는 담배 하나라도 물어야지 안 하면 좆같아서 못 해."


 조던은 담배를 꺼내 불을 붙였다. 한모금 길게 빨았다가 담배연기를 뿜으면서, 지난번 미호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 설명해주었다. 적어도 처음은, 지금의 미호와 비슷했다.


 "양심에 걸리는 게 많았어. 너처럼 인간 과녁을 못 맞추겠다고 그러고, 민간인 자산에 뭐하는 짓이냐 그러고. 이러면 우리가 테러리스트랑 뭐가 다르냐고 항의하고."


 담배가 이렇게 빨리 피울 수 있는 거였나? 담배꽁초를 던지고 나서 연거푸 피우는 것을 보면 대단하다는 생각도 들고, 동시에 조던에게 지난번 미호가 얼마나 소중한 존재였던 건지 호기심이 생겼다.


 "감성도 풍부했고, 개인적으로 날 좋아한 거 같더라고. 어차피 살아남으면 미국 본토로 갈 애니까 밀어내려고 했지만, 걔는 아니었나봐. 걔는 내가 태어나서 처음으로 좋아하게 된 사람이었을 거니까. 그런데... 아 시발, 이게 중요한 게 아니고. 본토로 재배치되기 전날에... 마지막 작전을 뛰었는데, 애 엄마가 온몸에 폭탄을 두른 채 아이라도 살려달라고 우는 걸 보고 걔가 마음이 약해진거야. 그래서 애엄마가 던진 아이를 받았는데... 아이는 니미. 폭탄이었어."


 뻥, 조던이 입으로 터지는 소리를 흉내내면서, 앉아있던 자재더미에 담뱃불을 지져서 꺼버렸다.


 "살점 하나 안 남았어. 이렇게. 담배로 지진것마냥 검은 자국만 남았지. 정말이야. 군장 하나 안 남아서 수습할 필요도 없었어. 참 편했다니까?"


 경제적인 죽음이라며 자기 유머에 혼자 웃었다. 미호는 웃지 않고 가만히 들었다. 조던은 일부러 큰 소리를 내며 웃다가 얼굴에서 웃음을 지우고, 진짜 감정을 드러냈다. 얼굴에 쓴맛이 배여있었다.


 "바이오로이드라고 해도, 나온 구멍이 다를 뿐이지 결국은 사람 아냐. 좆같은 일 당하면 좆같고, 좋은 일 있으면 좋고, 울고 웃는 사람. 그것도... 날 좋아하던 사람이 숯검댕이 되었다 생각하니까 기분이 참 좆같았다 이 말이야."


 "...."


 처음 이곳에 왔을 때 병기부사관이 했던 말이 떠올랐다. 분홍색 딸딸이구멍. 분홍색 딸딸이구멍이라는 천박한 단어도, 나름대로 바이오로이드를 아꼈던 조던에 대한 비아냥이었던 걸까? 


 "정말로 천박하고, 정말로 속보이는 말이라는 거 알아. 그래도 너가 살기 위해서, 네 동료들이 살기 위해서 내가 하라는 대로 해. 동료들을 위해 살고, 블랙리버를 위해 살아. 동료들은 널 지키려 할 거고, 블랙리버는... 네가 오래 살아남고, 전공을 쌓으면 진급을 시켜주고, 한정적이지만 자유도 줄 테니까. 하지만 저기 있는 북한인이란 것들은? 너한테 뭘 해줄 수 있지?"


 "...아무것도."


 "맞아. 아무것도 못 해줘. 해봤자 생존에 도움도 안 되는 그 양심이 상처났을 때, 그 양심에 붙일 반창고 역할 정도나 하겠지. 다시 말해, 좆도 쓸모없는 족속들이라는 거야. 쟤네들한테 할 수 있는 거라면 뭐... 야! 담배 받아라!"


 조던이 담배갑을 찢어서 포로들에게 던졌다. 하늘에서 우수수 떨어지는 담배 세례, 포로들은 광야에서 만나와 메추라기를 만난 모세의 유대인들처럼 달려들었다. 고되기만 하고 보람은 하나도 없는 작업보다, 손을 뻗으면 담배가 잡히는 일을 하는 게 훨씬 좋았다. 


 포로들은 담배를 하나라도 더 가지려고 아귀다툼을 벌였다. 누구는 빼앗기지 않으려고 주머니에 넣다가, 급기야 입이나 속옷에 넣어버리기도 했다.


 "멈춰! 멈추라고! 총 쏜다!"


 브라우니가 총을 겨누고 빨리 일하라고 위협해도 소용없었다. 브라우니가 노리쇠를 당기자 조던은 워워! 라고 소리치며 브라우니를 뜯어말렸다.  


 "병사! 내버려둬! 희망이라곤 아무것도 없는 삶에 이 정도는 있어야지."


 "...조던 대위님? 아니, 아닙니다. 예 알겠습니다!"


 브라우니는 조던에게 경례하고는, 포로들을 경멸하는 눈으로 쳐다보았다. 포로들은 담배를 다 줍고 나서 조던에게 허리를 숙여 감사를 표했다. 조던은 하던 일 하라며 손사래를 쳤다. 


 "솔직히 나도 블랙리버가 취하는 정책이 아주 마음에 드는 건 아니지만, 어쩔 수 없잖아. 난 위에서 하라는 대로 하고 월급 받는 건데. 너는 블랙리버를 위해 태어났고. 그렇지?"


 "맞아요."


 조던과 미호는 공사현장을 떠나 주둔지를 빙 돌았다. 블랙리버를 위해 살라, 그게 맞았고, 그게 미호가 살아남는 길이었다. 하지만 마음에 걸렸다. 이런 길로 살아남는 게 맞는 걸까. 미호가 절대 풀리지 않는 고민을 하는 사이에 조던이 연락을 받았다.


 "승리! 대테러연구팀 조던 대위입니다. 잘 못들었습니다? 예! 알겠습니다."


 조던은 연락을 끊고 나서 미호의 어깨에 손을 얹었다.


 "미호! 너한테는 참 나쁜 소식 같지만... 좀 있으면 대테러 작전에 투입될 거 같다. 푹 쉬어둬. 술만 너무 쳐먹지 말고. 당장에라도 출발해야 할 수 있으니까. 알았지? 난 일 보러 가야겠다. 시발..."


 "예, 알겠습니다."


 미호가 경례하자 조던도 맞경례를 하며 씨익 웃었다. 미호는 일을 보러 가는 조던의 뒷모습을 보며 생각했다. 조던의 속내를 알 수 없었다. 위선을 떠는 악인일까, 아니면 자신의 편이 아닌 자들에게는 가차없지만 자신의 편은 챙기는 실용주의적 이타주의자일까, 아니면 자신의 이익과 약간의 감정적 고양을 위해 착한 척을 하는 위선자일까. 마을을 불태우라는 명령을 당당하게 내리고, 포로를 과녁에 매달아두고 실전적이라며 자랑하는 괴물도 조던이었지만, 동시에 이곳에 처음 온 그녀들에게 군기도 잡지 않고 친절하게 대한 것도 조던이었다. 미호는 한숨을 쉬고 근처의 자리에 가서 앉았다.


 "북괴에에엑..." 


 옆에서 들려오는 구토 소리에 깜짝 놀라 돌아보았다. 한 여자가 열심히 토를 하면서 여태까지 위장에 집어넣었던 모든 것을 토해내고 있었다. 위장의 신축성을 자랑하려는 것인지, 무모함을 입증하려는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정말로 경이로운 구토였다. 고무대야를 가볍게 채울 수 있을 정도로 구토를 해대는 것을 보고 불쾌감보다는 경탄이 앞설 정도였다.


 "엘리자 소위님. 그러게 적당히 마시자고 그랬잖아요..."


 옆에서는 레프리콘이 등을 툭툭툭 내리치며 구토를 도와주고 있었다. 한번 내리칠 때마다 물을 잔뜩 머금은 걸레라도 된 것처럼 여자가 입 속에 남은 토사물과 타액을 계속 뱉었다. 레프리콘은 이걸 어떻게 치울까 고민하다가 미호를 보고는 미안하다며 고개를 숙였다.


 "아뇨, 아니에요..."


 "다음번에는 절대 뭐 먹은 상태로 술 안 마셔야지..."


 "소대장님. 그러다 진짜 죽어요!"


 "난 시발 마시고 싶어서 마시냐! 허벌나게 치욕받고, 뭐만 하면 나만 닦고... 시발... 쏘가리를 살..."


 여자는 군대 시스템에 대해 알 수 없는 불평을 남기고는 부하 레프리콘의 부축을 받으며 어딘가로 떠났다. 토쟁이가 떠난 자리에는 노란색 국물로 졸여진 음식물 찌꺼기와 신내가 남았고, 미호는 그런 것을 좋아하는 취미 따위는 없었기에 엉덩이를 끌어 슬금슬금 거리를 두었다. 경탄이 떠난 자리에는 끔찍한 불쾌감이 똬리를 틀었다.


  분위기 전환이라도 할까, 구토를 열심히 하는 현장을 보다가, 시선을 좀 더 먼 곳으로 돌렸다. 바이오로이드들이 코피를 흘리는 포로를 들어서 가마를 태워주면서 칭찬했고, 그 뒤에는 피떡이 되어 제 발로 걷지도 못하는 다른 포로가 질질 끌려갔다.


 "야! 에이스다 에이스!"


 "너 덕분에 몇달간 담배는 걱정 없어! 고맙다!"


 "이 새끼, 진짜 잘 싸우네?"


 "야, 누가 얘한테 보지 좀 대줘!"


 "..."


 미호는 이런 광경들을 보고 깨닫게 되었다. 이 부대에는 많은 인간군상이 있다. 그리고 그 인간군상들만큼이나, 그들이 고민하는 것도 다양할 것이다. 누군가는 고국에 두고 온 마누라가 바람을 폈을까, 현지처를 둔 것을 알았을까, 그런 걱정을 할 테고, 누군가는 다음 작전에서 내가 살아남을 수 있을까 두려워할 것이다. 어쩌면 방금 토를 한 여편네처럼 미쳐돌아가는 군대의 체계에 잡아먹혀서 정신이 깨진 채 목을 매다는 끝을 보게 될까 두려울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미호와 같은 고민을 하는 이들은, 아마 없을 것이다.


 그런 태평한 고민이나 할 "인간"은 이곳까지 와서 살인으로 돈을 벌 리가 없다. 바이오로이드도 비슷할 것이다. 직업 선택의 자유가 없을 테니, 그들은 그런 태평한 고민을 하다가 결국 죽거나, 아니면 신경을 끄는 길을 택하겠지. 아니면 애시당초 아무 생각도 없었거나. 미호는 그 아무 생각도 없었을 이들이 부럽게 느껴졌다.


 차라리 아무것도 몰랐다면, 아이를 쏘는 것에도 아무런 거부감이 없는 괴물이었다면. 그럴까, 오늘부터 그러기로 할까, 그런 위험한 생각이 잠깐 떠올랐다가 사라졌다. 미호는 하늘을 보았다. 태양이 하늘을 붉게 물들이며 지고 있었다. 훈련소에서는 고단한 하루의 끝으로 보여서 기뻤지만, 이곳에서는 내일 일어날 또다른 파괴와 재앙을 암시하는 붉은 경고등처럼 보였다. 


 "여기서 이래봤자 뭐하냐..."


 미호는 들어가서, 잠이나 더 자기로 했다. 진짜 전쟁과 마주하기 전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