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소 여기까지 오셨는데 드릴 것이 마땅치 않군요.

죄송합니다. 각하.”

 

“아냐, 괜찮아. 어차피 뭐 먹으러 온 것도 아닌데.”

 

방 안은 접시가 달그락거리는 소리가 잔잔하다. 딱 오묘할 정도의 침묵에 잔들의 부대끼는 소리와 원두가 갈리는 소리가 섞여 들어갔다. 매번 잠수함에서만 살다가 이렇게 일말의 흔들림도 없는 땅에 발을 붙이고 있는 느낌이 또 각별하다. 일생 잠수함은커녕 배도 일주일 이상 타본 적이 없던 내가 이런 소리를 하고 있다니. 그새 뱃사람 다 된 모양이다. 

 

“그럼… 커피 좋아하십니까?”

 

“나야 좋지.”

 

마리의 막사는 제법 정리정돈이 잘 되어있는 편이었다. 이 좁은 막사에서도 물건들이 제 자리를 알기라도 하는 것처럼 명확하게 정렬되어 있는 것이 보는 것만으로도 즐거울 정도였다. 마리의 손놀림도 딱 이런 곳에 어울렸다. 일정하게 원을 그리며 그라인더로 원두를 내리는 모습은 마리가 평소에 어떻게 살아왔을지 정확하게 보여주는 표본이 되었다.

 

“그러시다면 다행입니다. 부디 각하의 취향이 저와 비슷하면 좋겠군요.

이런 곳에서 구할 수 있는 고급 식품이라 해봐야 기껏해야 커피 정도뿐이고, 그나마도 맛이 별로 좋지는 않습니다.

그나마 각하께 무언가 드릴 것이 있어 다행이라 생각해야겠네요.”

 

 

내가 올 것을 미리 준비하고 있었던 것인지 벌써 커피 끓는 물을 커피잔에 붓고 있었다. 은은한 커피 향이 방 안을 매웠다. 다만, 내가 알고 있던 그런 달콤하고 쌉싸름한 향기가 아닌, 풀과 흙 냄새가 약간 섞여 좋게 말하면 빈티지스러운, 나쁘게 말하면 싸구려 같은 향기였다.

 

“커피라…

아냐, 됐어. 마리는 커피 좋아하지?

마리가 마실 것도 얼마 없을 텐데 나한테까지 줄 필요는 없어.”

 

 

“너무 그러시면 드리는 제가 다 민망해집니다. 각하.

아무리 최전방에서 싸운다지만 각하께 커피 한 잔 정도는 드릴 수 있습니다.”

 

마리는 그렇게 말하면서 내 앞으로 작은 컵에 담긴 커피를 건넸다. 이렇게 직접 보니 색이라던가, 향이라던가, 어딜 보아도 딱히 고급스러운 느낌이 드는 커피는 아니었다. 하지만 그런 세세한 것들까지 따져가면 먹을 상황도 아니고, 이곳이 철충들과 언제나 싸울 준비를 해야 하는 스틸라인의 최전방임을 생각한다면 나름 먹을 만한 것이었다.

 

 

“... 맛있네. 고마워.”

 

내가 앉은 의자 맞은 편에서 마리는 작게 미소를 지었다. 망토에 모자까지 걸친 마리는 내가 지금까지 봤던 바이오로이드들 중 가장 큰 편에 속했다. 그래서 그런 것인지는 몰라도, 대장으로서의 위엄은 칸보다 더했던 것 같다. 이런 커피도 마리의 손에서는 고급스러워졌다.

 

“감사합니다. 각하.”

 

“감사는 무슨… 

감사는 커피를 받아 마시는 내가 해야지.”

 

“하하… 각하께서 그렇게까지 말씀하시면 감사 인사를 거절할 수도 없고…

아랫사람인 제 입장이 난처해집니다.”

 

 

마리는 멋쩍게 웃었다. 주변에 떠다니는 4개의 드론이 마리와 같이 웅웅거리는 모습을 보면 함께 웅성대며 놀라는 듯했다. 마리는 먹던 커피를 탁자 위에 소리가 나지 않게 놓았다. 

 

“난처할 거 뭐 있나? 그냥 고맙다는 뜻이었는데.”

 

 

“그래도 각하께서 그렇게까지 하실 필요는…”

 

“아까 커피 안 받으면 민망하다고 그랬지?

그렇게 반응하면 나도 민망해진다. 내가 뭐 엄청 큰 걸 한 것도 아닌데 말이야?”

 

“아… 알겠습니다.

그냥 좀, 이럴 때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잘 모르겠군요….”

 

 

마리는 안절부절 못하며 커피를 홀짝거렸다.

 

“… 커피 좀 더 드시겠습니까?”

 

 

 

마리는 내게서 시선을 간신히 떼어내며 뜨겁게 달아오른 얼굴을 손부채질로 열심히 달래고 있었다. 그녀 주변에 떠다니던 드론도 더 시끄러워졌다. 그녀의 감정에 동조하는 것처럼 말이다. 하긴, 따져보면 평소에 마리가 윗사람을 대할 일은 별로 없었을 테니 당황할 만도 하지. 그래도 저런 마리의 모습은 내가 생각하던 것과는 좀 많이 떨어져 있다.

 

 

“그냥 그럴 때는 그려러니 하고 넘어가면 되잖아?

마리가 잘못한 것도 아닌데 그렇게 반응해버리면 내가 나쁜 놈이 된단 말이지.”

 

“… 죄송합니다. 각하.

그렇게 느끼실 줄은 미처 몰랐습니다.

그… 주의하겠습니다.”

 

마리는 양 손으로 자신의 볼을 소리가 나게 때렸다. 그녀의 빨개진 볼이 당황해서 그랬던 것인지, 때려서 빨개진 것인지 헷갈릴 수준이었다.

 

 

“하여간… 리리스도 그렇고 여기서는 내가 말 한 마디를 못하겠어.

적당히 그냥 넘길 수 있잖아? 지금 여기에는 마리랑 나 말고는 없는데.”

 

“… … 군인으로서 직업병이라…

죄송합니다.”

 

“또, 또 그런다. 죄송해하지 말라니까.”

 

“… …”

 

마리는 가시방석에라도 앉은 것처럼 안절부절 못했다. 난 그저 편하게 이야기하고 싶은데 이런 반응은 또 처음이라 나도 같이 좌불안석인 것 같았다. 다른 아이들이 그렇지 않다는 것은 아니지만, 유독 마리는 이런 성향이 강하게 느껴지는 것 같았다. 뭐랄까, 적의심 같은 것은 느껴지지 않지만, 그럼에도 나와 거리를 두는 듯한 기분이 든다. 지금 보면 마리가 내게 커피를 건넨 행위 자체도 역설적으로 나와 마리 사이의 거리를 강조하고 있다.

 

계속 이렇게 있을 수는 없으니까… 차라리 그냥 직접 말을 해보자. 내 쪽도 군대 습관 가진 사람은 사양이니 말이다. 저것도 습관이다. 습관.

 

“마리야.”

 

“…넵! 각하.”

 

“정말 죄송한 거야?”

 

“무… 물론입니다.

 

“그래? 그럼 뭐가 그리 죄송한 지 말해봐.”

 

“… 네?”

 

마리의 머리가 빠르게 돌아가는 것이 눈에 보일 정도였다. 이전보다 더욱 당혹스러운 표정을 보여주면서 손가락으로 자기 무릎을 톡톡 소리가 나게 규칙적으로 치기 시작했다. 약간의 불안 증상과 함께 자리를 찾지 못하는 불안정한 눈동자의 움직임이 보는 나까지 당혹스럽게 만들었다.

 

 

“… 그야… 각하의 마음을 헤아리지 못한 것이…”

 

“응? 뭐라고?”

 

“…. 각하의 마음을 미리 알지 못한 점이 죄송스럽습니다.

각하께서 불편하셨다면 어떤 처벌이라도 달게 받겠습니다.”

 

 

차라리 말이나 못하면 밉지나 않을 텐데. 아직 나에 대한 경계심을 풀지 못했던 걸까? 이왕 처음 만나는 거 단 둘이서 만나면 좋겠다고 생각해서 꼭 붙어 다니겠다는 리리스도 겨우 떼어놓고 왔는데, 이럴 줄 알았다면 차라리 리리스를 데리고 올 것 그랬다. 하다 못해 칸이라도 말이다. 지금은 이미 지휘관들 사이에서도 내 이야기가 다 퍼지고 퍼진 거 아니었나? 그렇다면 날 딱히 무서워할 이유는 없을 것 같은데.

 

“… … 그럼 나 하나만 더 물어봐도 돼?”

 

“... 아, 네. 각하.”

 

“마리는 내가 무서워?”

 

나는 마리의 눈을 똑바로 쳐다보았다. 그녀의 머리카락 색과 똑 닮은 노란색의 눈동자가 파르르르 흔들렸다. 

 

“가… 가당치도 않은 말씀이십니다. 각하.

제가 각하를 두려워했다면 이렇게 각하를 이곳으로 초청하지도 않았을 겁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커피 한 잔에 감사해주시는 각하이신데…

그런 각하를 두려워하다니, 터무니 없는 말씀이십니다.”

 

“그럼, 내가 이렇게까지 나를 좋게 생각해주는 마리를 싫어할까?”

 

“무슨 말씀을…”

 

“적어도 나는 날 좋아해주는 사람을 싫어하는 멍청이는 아니란 말이야.

그런데 내가 그런 사소한 이유로 마리를 싫어할까?”

 

“… … 죄송합니다. 각하.”

 

좌불안석이 따로 없는 마리 앞에서 나는 차분하게 커피를 한 모금 들이켰다. 내 목 너머로 커피가 지나가면서 들리는 소리가 마리에게 긴장감을 더할 지, 안정을 주지는 모르겠지만 이왕이면 후자였으면 좋겠다.

 

“… 그래. 마리가 워낙 군대에서 오래 살았으니까 그런 습관을 가지는 건 좋아.

원래 군대는 그렇게 돌아가야 한다고 배웠으니까.

그래도 나는 마리가 내 앞에서는 그렇게 하지 않았으면 좋겠어.

내 욕심이 너무 과했던 걸까?”

 

 

마리는 팔을 쭉 펼쳐서 무릎 위에 올려두고 있었다. 한껏 긴장된 자세였기에 몸에도 각이 져있는 기분이었지만, 내 말을 듣고는 조금 누그러진 것 같았다. 얼굴도 안정을 되찾았고, 들리지도 않게 작고 가늘게 이어지던 마리의 호흡도 이젠 편안해졌다.

 

“… 그럼 제가 어떻게 하는 것이 좋겠습니까? 각하.”

 

 

“그냥… 나랑 이야기나 좀 하고, 웃고, 그래 주면 좋겠어.

다리도 좀 꼬고, 허리도 좀 구부정하게 앉고. 편하게 지내보자는 거지.”

 

“다… 다리를 꼬다니…

각하 앞에서 그런 모습을 보이는 건 조금….”

 

마리는 얼굴이 차츰 빨개졌다. 무릎에 가있던 손으로 열심히 손사래를 치는 모습이 제법 귀여웠다.

 

“아, 내가 컴패니언 애들 얘기 해줬었나?

거기에 포이란 애가 있는데 걔가 내 호위 맡는 날에는 내 무릎에서 떨어지는 날이 없다?

어쩔 때는 날 덮치기도 한단 말이지? 그럴 때는…. 아휴… 내가 상관인지 아닌지도 모르겠단 말이야.”

 

“그… 그런 일이…”

 

아예 손으로 얼굴을 감싸고는 손가락을 살짝 벌려 그 틈으로 겨우 앞을 응시하는 마리였다. 이런 막사에 와보니 새삼 느끼는 거지만, 이곳의 마리는 정말 전투만 하면서 살았던 것 같다. 이런 쪽 이야기는 진짜 면역이란 것이 하나도 없는 모양이다. 아직 컴패니언 애들이 한 일의 천 분의 일도 말하지 않았는데 말이다. 맨날 음쇼섹 음쇼섹 거리던 마리만 봐왔는데, 참 보기 드문 광경이다.

 

“근데 컴패니언 애들이 진짜 독한 게 뭔지 알아?

거기 있는 애들이 전부 시종일관 나한테서 안 떨어지려고 한다는 거야.

좀 순수해 보였던 하치코나 점잖던 페로도 한 번 불이 붙으면 감당이 안돼.

리리스는… 에휴, 애는 말을 하지 말자. 제일 극성이야. 극성.”

 

 

“그… 경호대장까지도 설마…”

 

지금의 마리의 표정을 보면 왠지 모르게 성추행을 하는 것 같은 죄악감이 물씬 풍긴다. 분위기를 좀 바꿔보려고 했던 이야긴데, 괜히 마리의 이상한 스위치를 건들인 것 같다. 

 

 

“그… 흠흠.

아무튼, 괜한 이야기를 꺼내긴 했는데 중요한 건 마리가 무슨 짓을 하더라도 내가 평소에 다 당해봤던 거란 거지.

그리고 더 중요한 건, 그런 건 다 내가 좋아서 놔두는 거니까 걱정하지 말란 거야.

마리가 계속 그렇게 격식을 차리고 말하는 게 습관이니까 어쩔 수 없다는 걸 알아.

고치기 힘들다는 것도 알고.

그래도 난 계속 기다려줄 테니까 적어도 내 앞에서는 편하게 있어줘.

그게 내가 마리에게 원하는 유일한 거니까.”

 

 

“… 어… 음…

아, 알겠습니다… ”

 

말꼬리에 확신이 차있지는 않지만, 그래도 이제야 내 말뜻을 겨우 알아차린 것 같이 마리의 표정이 조금 밝아졌다. 내 마음이 전달이 잘 된 것일까, 분위기가 살짝 풀린 것 같다. 나는 싱긋 웃으면서 마리에게 말했다.

 

“자~ 그럼 이제 우리 사람 대 사람으로 이야기 해볼까?”

 

마리도 간신히 웃으며 답했다.

 

“하…하핫… 그러시죠. 각하.”

 

조금 어색한 웃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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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서 케이크를 주니까 엄청 좋아하더라고?

컴패니언 애들이 그런 거에는 아주 사족을 못 쓰더라고.”

 

“그건 그 쪽만 그런 건 아닐 겁니다.

저희 브라우니들도 식사 투정을 한두 번 하는 게 아니니 말이죠.

애들한테 좋은 것도 주고 싶은데 여기 사정 이야기 한두 번 합니까? 각하도 다 아시겠죠?

만약 여기에 케이크가 나오거나 한다면 모두 감동에 벅차 울지나 않을까 걱정이군요.”

 

“뭐 울 것까지 있겠어?”

 

“후후, 이런 곳에 있어도 브라우니들의 감수성은 이상하리 만큼 민감하더군요.

케이크 냄새만이라도 맡으면 여기 있는 브라우니들은 전부 난리가 날 겁니다.”

 

“케이크에 냄새가 어디있다고?”

 

“그만큼 먹고 싶다는 거죠. 하하”

 

 

어느 샌가 나는 마리와 제법 편하게 말을 할 수 있게 되었다. 마리가 할 만한 이야깃거리가 떨어졌을 땐 내가 말을 이어하고, 내가 말을 그만 두면 마리가 이어서 하는 대화가 계속되었다. 나도 여기 와서 어지간한 안주 거리용 이야기는 전부 겪어봤으리라 생각했는데 마리로 만만치 않은 강적이다. 특히나 그 놈의 브라우니는 대체 뭐 하는 아이길래 마리가 말해준 이야기에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지 모르겠다. 

 

이야기들은 하나같이 스펙타클했다. 브라우니가 자원 탐사에 가서 쓸만한 상점을 발견해 먹을 만한 것들 것 풍족해졌다는 이야기도 있었고, 세탁실에 빨래를 잘못해서 한겨울에 수영복을 입었던 일도 나름 재미있게 들었다. 그렇게 우리는 생각나는 이야깃거리들이 전부 떨어질 때까지 수다를 떨었다. 특히나 내가 알던 것들과 미묘하게 다른 이야기들을 듣는 것은 무척이나 흥미로웠다..

 

마리가 의외로 말솜씨가 있었던 것은 나도 몰랐던 사실이었다. 커피 같은 것을 먹을 때 허공을 쳐다보던 습관이 있던데, 상념에 잠기는 그런 시간들이 마리에게 도움이 되었던 모양이다.

 

 

“하아... 이렇게 오랫동안 입을 열고 있었던 적은 없다 보니 조금 지치는군요.

각하께서는 아직 괜찮으신가 봅니다.”

 

“글쎄, 내가 여기서 해줄 수 있는 게 들어주는 것뿐이니 느는 게 이런 것뿐이지 뭐.

할 수 있는 걸 해주다 보니 이러고 있는 것도 꽤 익숙해졌나 봐.”

 

“하하, 각하 같은 분께서 이야기를 들어주신다면 어느 누가 입을 멈출 수 있겠습니까?

그렇게 진지하게 들어주시니, 저희가 너무 말을 많이 해도 전부 각하 잘못이겠군요.

그건 그거고… 정말이지, 각하께서 이곳에 오고 나서 얼마나 고생하셨을지 감히 상상도 못하겠습니다.

다른 자매 분들이 힘들게 하지는 않았습니까? 제가 다 걱정이 됩니다.”

 

“과장은… 내가 아무리 고생해도 너희만 할까.

이야기 듣는 건 내가 좋아서 했던 거고, 마리 같은 예쁜 사람이 앞에 있으면 누구라도 와서 이야기를 들어주고 싶을 걸?”

 

 

 

“… ...!!

…. 가… 각하, 예쁘다뇨...”

 

마리의 양쪽 뺨에는 홍조가 빗금치고 있었다. 입이 물결이라도 치는 것처럼 안절부절 못하는 것이 칭찬에 퍽이나 약한 것 같았다. 챙이 있는 마리만의 군인 모자를 쓰고 있었지만, 챙의 그늘 너머로도 빨개진 얼굴이 보였다. 이런 모습을 보다 보니 지친 마음에 활력이 솟는다.

 

“괘… 괜한 말씀은 안 하셔도 됩니다.

마음에도 없으신 말씀은…”

 

“마음에 없기는?”

 

 

“각하? 갑자기 어딜 가시는…

… 

…꺅?! 가… 각하?”

 

조금 낡았지만 편안하게 푹신한 갈색 가죽 소파에서 벌떡 일어나 건너편 소파에 앉아 있던 마리 옆으로 가서 앉았다. 마리가 앉아 꺼진 소파가 내 무게까지 더해지니 견디지 못하고 더욱 깊숙이 꺼졌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우리 둘의 무게중심은 마리와 내 허벅지 사이로 몰렸다. 굳이 내가 힘을 주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미끄러지면서 마리와 착 달라붙었다.

 

 

“이래도 방금 내가 한 말이 마음에도 없는 말이라 생각해?”

 

“그… 그치만 저 같은 군인을 각하 같은 분께서 예쁘게 보실 일은…”

 

“그렇게 말하기에는 마리가 너무 예쁜 걸?

내가 봤던 어떤 여자보다도.”

 

“….에….에… 그…”

 

엄밀히 말하자면 내가 지금까지 봤던 여자 ‘사람’ 중에는 그렇지. 다른 건 몰라도 내가 이곳에 오기 전까지 봤던 여자 사람들 중에서는 단연 최고라고 볼 수 있는 얼굴이다. 누군지 몰라도 이 얼굴을 만든 사람은 상이라도 주고 싶을 정도였다. 하얀 얼굴에 피가 몰리면서 빨개지는 과정이 날 것 그대로 보이는 것이 마리의 마음을 그대로 읽을 수 있는 것만 같았다. 우아한 얼굴에 간질거리는 표정이 불안정하게 올려져 있는 것이 너무 귀여웠다.

 

 

“난 마리가 너무 예뻐서 참을 수가 없는데 마리는 내가 싫은가 봐?”

 

“그… 그건…!”

 

“하긴, 워울프 덕분에 머리도 바꾸고 인상도 좀 바뀌긴 했지만 마리가 날 좋아해주는 것 너무 큰 기대였나?

마리가 이해 좀 해줘. 내가 너무 무례했지?”

 

그렇게 말하고 자리에서 일어나려고 했다. 솔직히 나에 대해서 좋게 생각하지 않아도 이상하지는 않다. 그냥 나에 대해서 좋은 이야기를 많이 들었을 테니 한 번 감정에 휩쓸려서 강하게 나가본 거긴 한데 싫어하면 어쩔 수 없지.

 

-덥석!

 

“...응?”

 

마리가 일어나려는 내 손을 꽉 잡았다.

 

“그… 그… 그건 아닙니다!

 

어찌나 긴박했던지, 마리의 손에 송골송골 맺힌 땀이 끼고 있는 가죽 장갑 너머로도 느껴지는 듯했다. 

 

“그... 그냥 조금 당황스러웠을 뿐입니다…!

왜왜, 그… 그런 적 있지 않습니까? 너, 너무 당황하면 말도 안 나오고 그런….”

 

이전보다 더욱 빨개진 얼굴을 가지고서 말을 더듬거렸다. 눈도 제대로 못 마주치면서 1초는 나를 보는 듯 하다가 다시 1초 동안은 눈동자를 허공으로 돌려버리고, 그러고는 다시 나를 보는 격렬한 눈동자의 움직임이 그녀가 얼마나 당혹스러웠는지를 말해주고 있었다. 그럼에도 반짝반짝 빛나는 노란색 눈동자는 품위를 잃지 않는 것이 신기했다.

 

 

“그래? 그럼…. 

…으아?!”

 

마리가 나를 잡아당기던 손에 갑자기 힘을 팍 주었다. 어찌나 세게 힘을 주었던지 대충 반의 반쯤 일어나 있던 내가 순간 마리의 허벅지 위에 눕혀질 정도였다. 워낙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라 상황을 판단하기에도 힘들었지만, 그래, 두피 너머로 느껴지는 푹신한 마리의 허벅지 감촉은 잊혀지지 않았다. 그리고 잊혀지지 않던 것이 하나 더 있었다면,

 

“… 하아… 하아… 하아… 각하…?”

 

마리의 거친 숨소리였다. 나를 무릎 베개하고 있는 이 예상치 못한 상황에 스스로도 당황했던 것인지, 아니면 그냥 단순히 흥분해서 그랬던 거였는지는 몰라도 마리의 숨소리 하나만큼은 기억의 뇌리에 깊이 박히기 충분했다. 눈이 동그랗게 커지면서 입을 벌려 위에서 나를 내려다 보던 그 표정은 이 숨소리에 기가 막히게 어울렸다.

 

“그… 마리? 괜찮아?”

 

“하아… 하아… …

… …

… !!! 각하! 제가 지금 무슨 무례한 짓을!!

죄… 죄송합니다!!!”

 

정신이 말로는 저렇게 해도 갈 곳 잃은 마리의 손이 허둥거릴 뿐, 난 여전히 마리의 무릎을 배고 누워있을 뿐이었다. 나는 그러는 마리의 머리에 부드럽게 손을 올리면서 말했다. 노란 머리카락이 결마다 사글사글하게 갈라지며 내 손가락을 품는 것이 느껴졌다.

 

“무례는 무슨.

이러고 있으니까 좋다. 좀만 더 이러고 있어도 돼?”

 

 

“… …ㄴ… 네?

그… 가, 각하께서 원하신다면 저는…”

 

“그럼 그냥 이렇게 있자. 

서로 거리 벌리고 커피 마시는 것보다는 이렇게 부대끼고 있는 게 마리도 더 좋지 않아?”

 

“제… 제 의견은…”

 

“마리의 의견이 나한테는 제일 중요하니까 이번에는 발 빼지 말고 말해봐.

이렇게 있는 게 좋아? 아니면 싫어?”

 

 

 

“하… 하아… 하아…

(정신차려정신차려정신차려정신차려!!)

…구, 굳이 말하자면… 싫지는 않습니다….”

 

뭐라뭐라 작게 속삭이는 마리는 내가 허벅지 위에서 머리를 비빌 때마다 자꾸 몸을 떠는 듯했다. 적어도 그러는 떨림에서 부정적인 감정은 느껴지지 않으니 다행인 셈이다. 

 

“정말? 그게 다야?”

 

이미 마리의 무릎 위에서 돗자리 피고 자리 잡은 나와는 달리 마리의 두 손은 여전히 갈 곳을 잃고 방황하고 있었다. 그런 모습이 안쓰러워서 내가 먼저 다가가서 마리의 두 손을 콱 잡았다.

 

“가…각하?!”

 

“난 마리랑 이렇게 있을 수 있는 시간이 너무 너무 좋아서 말로 표현도 못할 정도인데,

마리는 그냥 싫지는 않은 수준이구나.

하긴, 이렇게 어리광부리는 사람을 좋아해줄 리가 없겠지?”

 

“…!”

 

유독 마리는 어리광이라는 단어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듯했다.

 

“아… 아닙니다.

그, 그저 군인된 자로서 각하께 그런 모습을 보여드리에는…”

 

“모습? 어떤 모습?”

 

“그건….”

 

나는 마리의 뺨에 손을 올렸다. 반대 손으로는 마리의 손을 꼭 잡고 있었다.

 

“나는 어떤 마리든 전부 받아줄 수 있어.

난 마리를 군인으로 보고 싶지 않아. 나랑 단 둘이서 있는 지금 이곳에서는 더더욱.”

 

붙잡고 있던 마리의 손을 내 몸으로 끌어당겼다. 마리는 힘없는 척을 하면서 자연스럽게 내게 딸려 들어왔다.

 

“그리고 마리는 엄청 오랫동안 싸웠잖아. 그것도 이런 최전방에서.

그러니까 적어도 나랑 있는 시간 동안은 풀어져도 돼. 얼마든지 쉬어도 돼.

명령이야.”

 

 

“… … 하아… 하아… 

가… 각하… 조금 자제를…”

 

마리의 숨이 조금 더 거칠어졌다. 이제는 아예 숨을 몰아 쉬면서 상체가 움직이는 것이 보일 정도였다. 마리는 자신의 당혹스러움을 전혀 숨길 생각이 없는 것처럼 보였다. 아니면 숨길 여유조차 없는 것이었을 수도 있었겠다.

 

 

“나랑 있을 때는 자제하지 않아도 돼..

편하게 쉬어. 마리 누나.”

 

 

“… … …

… … …”

 

 

-철컥---

 

어디선가 문이 잠기는 소리가 들렸다. 드론이 웅웅거리는 것을 보면 마리가 초능력이라도 쓴 것 같았다. 침묵 속에서 울직한 쇳소리는 유난히 소름끼치는 것이었다.

 

“… 마리…?”

 

“하아… 하아…

그런 명령을 내리시면… 어쩔 수가 없습니다. 각하…”

 

“저… 마리? 마리? 괜찮아?”

 

“그러니까… 나쁜 건…

각하십니다!”

 

“마리! 정신… 읍!!”

 

 

내 입 위에 마리의 손이 덮였다. 나를 무릎에 누이고 있었던 마리가 그대로 앞으로 고개를 숙여서 내 얼굴 주변을 전부 자신의 긴 머리카락으로 가렸다. 세상 모든 빛이 전부 마리의 노란 머리카락 커튼으로 가려지고 오직 마리의 얼굴과 숨결만이 내가 느낄 수 있는 전부가 되었다. 그대로 천천히 내게 다가오는 마리의 채취와 숨결 바람이 취하게 만드는 것 같았다. 

 

“전…. 참을 수 있는 만큼 참았습니다. 각하…!”

 

컴패니언 얘기에 면역도 없던 마리에게 내 도발이 너무 과했던 모양이다. 그렇게 나는 내 도발의 대가를 마리에게서 톡톡히 받아내야 했다. 그건 꽤 오랜 시간이 걸리는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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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작 : https://arca.live/b/supernerimk2?category=%EC%86%8C%EC%84%A4&target=title&keyword=%EC%A1%B0%EA%B8%88+%EC%9D%B4%EC%83%81%ED%95%9C


모음 : https://arca.live/b/lastorigin/20710101



돌아온 ㅈ간 빙의 라붕이 씨리즈2

상대적으로 양이 적은 1만자.

근데 다른 소설에 비하면 엄청 많이 쓴거잖아. 좀만 봐줘.


마리가 은근히 쓰기 힘든 캐릭터인 것 가틈

걍 음쇼섹음쇼섹 하게 만들면 야설이라도 쓸텐데


방학이 되면 좀 편해지지 않을까

어떻게 쓸 시간이 이렇게 안 날 수가 있지? 서럽다 서러워

다음에는 좀 더 빨리 가지고 와볼게


아무튼

절대 애 호 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