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뒤로 침대에 누워서 다시금 잠을 청했으나,


“오빠~ 일어났어?”


“...”


문을 두드리는 닥터의 목소리를 마저 모른척 하고 눈을 감았다.


“어디보자... 이걸...이렇게...”


문을 따고 들어오려는 닥터를 막기 위해 황급히 문을 열었다.


“뭐야, 오빠 깨있었잖아. 어제 밤에 아스널 언니랑 ‘그거’ 하느라 쓰러진줄 알았더니.”


“으, 냄새. 들어가도 돼?”


콧잔등에 손사래를 치는 닥터에게 힘없이 뒤로 가라는 손짓을 하며 문을 닫았다.


...혹시 몰라서 한병 남겨두었던 피로회복제를 마시고 그나마 머리가 맑아진 나는 샤워부스의 물을 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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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짠~!”


스틸라인 부대에서 하나 받아왔던 평상복을 입고 방을 나서자 닥터는 손을 뻗어 오른쪽 손바닥을 보여주었다.


“짠~”


짝~ 하고 경쾌한 하이파이브 소리가 복도 내부에 울려퍼진다.


“오빠, 나 뭐 달라진거 없어?”


“...”


내 대답이 만족하지 못했는지 난처한 질문을 꺼내는 닥터의 시선을 슬그머니 피하다가,


“반지?”


왼손 약지에 끼워져 있는 반지를 발견했다.


“맞았어! 오빠는 대단해!”


“음. 음.”


나는 무릎을 굽혀 닥터와 키를 맞춰준다음.


볼을 가볍게 잡아당겼다.


“오른손을 보여주면서 왼손에 정답을 숨긴 벌이야.”


아무래도 언짢았는지, 양볼을 부우- 하고 부풀렸다가도, 


“오빠는 장난도 못쳐? 흥.”


금세 표정이 풀리면서 자신의 기계팔에 달아놨던 반지를 건네주었다.


“이 반지를 왼손 약지에 끼고 보석부분을 돌리면.”


푸른 바탕의 홀로그램에는 여러 정보들이 나열되고 있었다,


심장박동, 뇌파 그래프, 자신의 좌표....


“신기하지? 반지를 교환한 상대의 신체 정보를 거의 다 알수 있어.”


발전한 과학은 마법과 같다고 하던가, 닥터의 발명능력은 정말이지 경이로운 수준이다.


“헤헷, 칭찬해줘!”


내게 딱 붙어 머리를 가까이 대는 닥터의 머리를 쓰다듬으면서 나는 받자마자 들었던 의문을 풀기로 했다.


“근데 왜 하필 왼손 약지야?”


“헤헤헷, 내가 오빠의 1호가 되고 싶었거든.”


쓰다듬던 손은 곧바로 딱밤으로 바뀌었다.


“아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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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반지는 어제 날 밤새서 만든거라 불안정해. 앞으로 며칠간 반지를 껴서 테스트를 해보고 싶은데 괜찮지 오빠?’


전혀 안괜찮았다.


“어머...왠 반지에요?”


“어떤 햇츙이에요?”


“왓슨? 드디어 나한테 청혼하려는거야? 하지만 난...”


“오오~? 그 반지는 자신의 힘을 억누르기 위한 장치인가? 짐처럼?”


...등등등


함 내 유일한 인간이 나밖에 없는고로 수긍할수밖에 없었지만.


아무리 그래도 함 내 모든 인원들이 반지에 관심을 가질줄은 몰랐는데.


심지어 장갑을 끼고있으면 전파 세기가 약해서 안된다고 하고.


오늘은 어느정도 한가하니, 방에 있는 흔들 의자에 앉아 반지를 바라보며 사색에 잠기려고 했으나.


“닥터에게 실험중 팻말 하나 만들어 달라고 했어야 했나...”


“문구는 ‘실험중입니다. 농땡이 치고 있어도 일하고 있는 중이니 건들지 말아주세요.’ 정도가 적당하겠네요.”


매일 청소를 위해 온 바닐라의 독설폭격에, 그건 아무래도 그른것만 같다.


“정말이지, 이정도로 씨를 뿌리고 다니셨을줄은 생각을 못했는데요. 거기 달려있는 칠칠치 못한것은 고장난 물총이라도 됩니까?”


“...”


“세상에 벽난로 앞에서까지... 물총이 아니라 소화기가 달려서 불이라도 끄려고 했던겁니까?”


“...”


면목이 없어진 나는 조용히 얼굴을 감싸쥐었다.


“여기 있는 병들은 뭡니까? 설마 자신의 힘으로는 상대를 안을수 없어서 약의 힘이라도 빌린겁니까?”


“미...”


“책상 위에 있는 콘돔은 왜 안쓰신겁니까? ‘이 사령관만 믿어’ 뭐 그런겁니까? 만약에 생기면 ‘지우자.’ 한마디만 하고 끝내려고요? 아, 설마 자신에게 달린게  스프링쿨러라고 착각하셔서 얼마나 잘 뿌려지는지 시험해보겠다고 싸질러대신겁니까? 효과는 아아주우 확실하네요. 페어리시리즈 여러분들이 이 절경을 보셨다면 앞다투어 사령관님을 땅에 묻어버리고 거기만 밖에 나오게 해서 온세상에 씨를 뿌리려 들게 할테니까요.”


“...내가 잘못했어...”


“잘못했어 한마디로 면책할수 있으면 오르카는 아주 편하게 돌아갈겁니다.”


분무기를 내 머리위로 치익 뿌려버린 바닐라는,


“청소 끝났습니다. 다음에는 사방팔방 밖에 싸지르는게 아니라 콘돔 끼시고 안에다가 제대로 조준해주시면 좋겠군요. 이런거 하실 연습상대가 없으시다면 저를 불러주세요. 그 뒤에 벌어질 일련의 상황들을 주인님이 각오하실수 있다면 말이죠.”


살벌한 독설과 함께 헝클어진 내 머리를 다듬어 주고는 밖으로 나가버렸다.


...나 미움받고 있는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