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몇 번이고 말씀드렸지 않았습니까, 바보이십니까?" 

 

아이고 또 시작이네. 

 

"제 시간에 자고 일어나서 식사를 하셔야 주인님의 유일한 장점인 건강이 유지된다고 했는데... 또 지키질 않으시니 아예 듣질 않았다면 귀 건강이, 듣더라도 기억을 못했다면 뇌 건강이 문제일까 걱정이 되버리는군요." 

 

짧은 스커트로 된 메이드복을 입은 녹색 단발 소녀는 신랄한 말을 뱉으며 이불을 개고 있다. 

 

"바닐라? 오늘은 일이 밀려서 늦게 잤던 것 뿐이야. 다른 날엔 잘 지켜서 잔다고?" 

 

애초에 내가 늦게 잔건 어떻게 안 거야, 라고 첨언하려던 사령관은 째려보는 에메랄드빛 눈살에 입을 다물었다. 

 

"아무리 길게 생활을 지켰어도 하루를 망치면 며칠이 어긋납니다. 그런걸 변명으로 말씀하셔도 추해지기만 하십니다. 그런 말을 하는 사람이 제 주인님이라는 사실에 전 한숨만 늘어납니다." 

 

그리곤 보란듯이 흐응소리를 내며 코로 숨을 뱉은 바닐라. 

 

결국 난 미안하다는 말로 끝내고 말았다. 

 

* 

 

"요즘 바닐라가 더 까칠해진 것 같아." 

 

오후에 접어드는 무렵, 나는 의자에 몸을 기댄채로 한탄하고 있었다. 

 

이 말에 대답한 사람은 바닐라와 비슷한 복장이면서도 의도적으로 트인 밑가슴이 인상적인 여성이었다. 

 

"바닐라가 하는 말이 진심이 아니라는 거 아시잖아요." 

 

콘스탄챠는 부드럽게 웃으며 말을 이었다. 

 

"거기다 별의 아이와 전투를 치른지 얼마 안 되었으니 더 신경쓰고 있을거고요." 

 

그때 사령관인 내가 직접 나가 전투를 지휘했으니 위험하긴 했지. 

 

'그러고보니 그때 바닐라가 엄청 화내면서 울었던 것 같던데.' 

 

까칠해진 것도 이 이후 언저리 같기도 하고. 

 

"그래도 뭔가가 더 있을 것 같은데. 그때 싸운 것 가지고 자는 시간까지 개입하는 것은 조금 이상하단 말이지." 

 

수면시간 지적은 지금까지 없었던 일인데 최근 시작되었다. 

 

내가 직접 출격해 지휘한 일이 이번이 처음은 아니었는데 그때에도 사사로운 스케줄까진 언급하지 않았는데... 

 

으음, 이럴때 생각을 잘 알 수 있다면 좋겠는데. 

 

... 

 

생각을 잘 안다라. 

 

"콘스탄챠." 

 

"네, 주인님?" 

 

"혹시 오드리한테 옷 좀 주문해도 되냐고 전해줄래?" 

 

멸망 전 말엔 이런 말이 있더라지. 

 

역지사지라고. 

 

* 

 

바보. 

 

바보 멍청이. 

 

난 독설 밖에 못하는 멍청이야. 

 

안 그래도 많이 귀찮아 하셨는데. 

 

왜 위로 한 마디도 말하기 힘든걸까. 

 

그냥 내가 그렇게 만들어져서? 

 

그래도 너무 늦게 잠들어서 걱정된거였는데. 

 

... 

 

내일 어떻게 말하지? 

 

어제 심한 말 해서 죄송하다고? 

 

얼굴도 보기 싫다고 말하시면 어떡하지? 

 

... 

 

하아... 

 

. 

. 

. 

. 

. 

. 

. 

. 

. 

 

"..나세요." 

 

아으음... 

 

"아가씨, 일어나셔야 할 시간입니다." 

 

아, 깜빡 잠들었네. 피곤하긴 했구나. 

 

근데 무슨 소리지? 

 

"오늘은 특히 안 일어나시는군요? 늦게 자는 건 건강에 안 좋답니다?" 

 

이 목소리... 주인님? 

 

그럴리가, 하다하다 이런 환청까지... 

  

그래, 집사복 입은 주인님이라니. 당연히 있을리가. 

 

 

 

 

 

 

 

 

 

 

 

 

???? 

 

?!?!?!?!?! 

 

"아, 일어나셨군요. 식사는 준비 중에 있으니 일단 씻으면 되겠습니다." 

 

"머, 뭐, 뭐 하시는 겁니까?! 드디어 미치기라도 한 겁니까! 왜 그런 차림을!" 

 

뭐지? 뭐지? 어떻게 된 거지?! 

 

집사복을 입은 주인님이 내 방에? 이거 꿈... 

 

"무슨 말씀이십니까? 그야 당연히..." 

 

아... 웃는다. 

 

"제가 바닐라 아가씨의 집사니까요?" 

 

내가 좋아하게 될 수 밖에 없었던 장난스런 주인님의 미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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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닐라 귀여워


다음 편은 언제인지 몰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