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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프리콘은 일반 병사 취급인 브라우니의 소모율을 막기 위한 분대장 컨셉으로 만들어졌어.
그 말은 물처럼 쓸려 나가는 브라우니에 비해서 조금 덜하더라도 레프리콘 기종 자체가 대량 생산을 중점으로 만들어진 기종이란 것이고, 실제로도 그러했어.
자신을 제외하더라도 최소 네자리, 다섯자리의 레프리콘이 이 세상 어딘가에 있었다는 건 사실이었지.
만약 여기에 있는 레프리콘이 그저 생산 목적에 따라서 전장에 나가서, 분대를 이끌고, 그러다가 죽었었다면 이런 고민은 하지 않았겠지.
그렇지만, 레프리콘은 지나치게 오래 살아왔고 자신의 존재 의의에 대해서 생각해 볼만한 시간은 충분했어.
그녀가 처음으로 느낀 감정은 위화감.
지식으로는 알고 있고, 몸에 새겨진 감각으로는 아무렇지 않아야 할 동종 레프리콘 기종에 대한 위화감이 시작이었어.
어딘지 모르게 어색하고, 불편하고, 신경 쓰이고, 이전까진 아무렇지 않게 넘겼던 수많은 상황들을 비로써 인식하고 마음에 담기 시작했지.
그 다음으로 느낀 것은 불쾌감.
다른 레프리콘 기종에 대해서 듣거나 마주치게 되면 절로 불쾌감이 일었지. 대량 생산되고, 같은 지역에서 대량 소비 되는 레프리콘 기종으로선 있어서는 안 되는 오류였어.
그러다보니 자연스럽게 저항군 기지 내에서는 지내기 어려워졌고 자원해서 정찰이나 물품 수거 일을 맡게 되었어.
적어도 밖으로 나가게 되면 비슷한 얼굴이 잔뜩 있는 곳에서 벗어날 수 있었으니까.
그렇지만, 그것도 좋은 해결책이냐면 그것도 아니었지.
때때로 헤매고 있는 다른 레프리콘 기종을 발견할 때도 있었고, 결국에는 기지로 복귀 해야 했으니까. 일시적인 대증요법에 지나지 않았던 거야.
그리고 그 다음 감정을 느끼기 전에 운명의 날이 닥쳤어.
그야, 레프리콘도 저항군이 무너졌을 때는 많이 슬펐어.
자매들이 잔뜩 죽는 것을 보고 안타까워하고 두려워했지.
대 탈주의 시간에는 어쩔 수 없는 막막함을 느꼈고 말이야.
그렇지만, 아주 조금 다행이라고 생각했던 것 또한 숨길 수 없었지.
왜냐하면 드디어 번호 붙은 레프리콘이 아니라, 단독 개체인 레프리콘이 될 수 있게 되었으니까.
그런 것들을 포함해서 운명의 날 이후 오랫동안 떠돌아다니면서 자신에 대해서 많은 생각을 했지.
그 결과로 무의식 깊은 곳에 뿌리 내려 있어야 할 많은 기본 설정들이 사라지게 되었어.
그리고 좀 더 능동적으로 생각하고, 자신의 처지와 상황에 대해서 더욱 비관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게 되었지.
굴레란 속박인 것과 동시에 보호야.
자유는 해방과 동시에 책임이지.
레프리콘 기종의 기본적인 장치, 바이오로이드의 기본적인 설정인 자신과 같은 수많은 기종에 대한 적대감, 위화감을 지우는 방어기제가 없어지고 그것들을 온전히 느끼게 된 거야.
도플갱어라는 말은 알고 있어? 녹음기에 자신의 목소리를 녹음하고 직접 들어본 적은?
사람은 누구나 자기 정체성을 확립하고 나면 자신을 유일한 것으로 인식하고 받아들여. 그러다보니 자신과 닮은 무언가, 자신의 정체성을 위협할 수 있는 어떠한 것에 대해서 매우 적대적으로 변하게 돼.
그건 사람으로서 당연한 반응이야. 나의 유일성의 훼손 된다는 건, 내가 다른 사람으로 대체 될 수 있다는 것과 같으니까. 자신과 똑 닮은 사람을 만나면 죽는다는 도플갱어 일화는 그런 공포감에서 나온 이야기겠지.
녹음기에 녹음 된 자기 목소리를 매우 거슬리게 듣는 건, 직접 찍은 사진이 매우 마음에 들지 않는 건, 그것들이 자신에게서 파생되었지만, 내가 받아들이고 있는 나와는 차이가 있기 때문이야.
그렇지만, 그것들이 나에게서 파생되었다는 건 뭐라 할 수 없을 만큼 사실이다 보니 나의 정체성을 위협하고, 그러다보니 자연스럽게 거슬리게 들리는 거지.
바이오로이드는 상품이야.
한번 최적화가 완료되어서 양산 작업에 들어갈 수 있게 되면, 상품 하나하나에 변경을 가하는 일은 좀처럼 없어.
포장지가 전부 다른 과자를 본적 있어? 그것과 같아.
미세한 차이가 있을지언정, 그 대부분이 동일한 규격이고 진짜로 극히 드물게 예외가 있는 법이야.
수많은 내가 있고, 그것에 일일이 스트레스 받거나 적대감을 안으면 해야할 일을 제대로 해내지 못해.
그것이 전장이라면 더더욱 그러하고.
그러다보니 자연스럽게 바이오로이드들은 내가 아닌 나에 대해서 관대하다고 해야 할지... 강한 제약이 있는데 레프리콘은 오랜 시간에 걸쳐 그 제약이 약화되고 이윽고 없는 것이나 다름없게 된 거야.
그 대가는 컸어.
저항군 기지에 있었을 때 느꼈던 단순한 위화감, 불쾌감과는 차원이 달랐지.
공포와 혐오감, 지속적으로 위협받는 자아동일성에 한동안 거의 패닉상태에 빠져있었지.
다른 레프리콘 기종이 눈 앞에 있는 것도 아니고 그저 그것이 이 곳 어딘가에 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말이야.
시간이 약이라는 말처럼, 그러한 감각들은 차차 무뎌져갔어.
지속적인 자아성찰의 결과이기도 했지.
적어도 다른 레프리콘을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혐오감에 헛구역질을 하거나 공포에 사로잡히는 일은 없어졌어.
그렇지만, 이미 확장된 생각은 멈출 수 없었지.
반쯤 자조하듯, 카탈로그 스펙 읽듯 이야기하던 저가에 양산형이란 말의 뜻을 온전히 받아들이고 이해하게 되었어.
그것이 얼마나 비참한 일인지도 알게 되었어.
그래서 그것은 그녀에게 지울 수 없는 낙인이 되었고, 얼룩으로 남았지.
레프리콘의 오랜 콤플렉스야.
그녀의 상황은 이러했어.
그 콤플렉스에 정확히 대응하는 상황은 아니었지만, 뭐 얼추 비슷한 상황으로 흘러가고 있긴 했어.
대체할 수 있는 인원, 유일하지 못한 나.
워낙에 자존감이 많이 떨어지고, 인간으로 치면 매우 특수한 상황에 놓여있는 레프리콘이기에 좀 민감하게 반응한 것도 있긴 있어.
그렇다 하더라도 침울해 지는 것도 어쩔 수 없는 사실이었지.
그렇다 한들 해결 방법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는게 슬픈 일이야.
사령관에게 내가 대장해야겠으니 짜져있으십쇼 할 수도 없는 노릇이고, 철충이 다시 돌아와서 전쟁이라도 다시 벌어지면 좋겠다~ 라고 생각하기에는 그 정도로 막장인 아이는 아니었으니까.
그저 혼자서 온전히 감내해야 할 일에 지나지 않았어. 적어도 레프리콘의 생각으로는 말이야.
당연히 사령관의 생각은 달랐지.
레프리콘이 우울해하고 있다는 사실은 다들 알고 있었어.
특히 이번에도 사령관이 가장 먼저 알아차렸지.
그걸 바로 이야기 하지 않은 것은 아무래도 아쿠아 때 있었던 일 때문일 거야.
바이오로이드도 생물인 이상 가끔 우울해 질 때도 있는 법이고, 지금은 정착하지 못하고 떠도는 상황이니 걱정이 앞서서 그럴 수 도 있다고 생각했거든.
그렇지만, 시간이 지나도 그리 변하는 것 같지 않았던데다가 사령관 나름대로 배려를 해주어도, 우울한 기색이 나아지는 모습은 그리 볼 수 없었어.
정말로 직접 물어보는 것 말고는 다 해보았지.
어쩐다... 싶긴 했지만, 일단은 정착 할 때까지는 두고 보기로 결정했어.
정착지 때문에 고민하고 있는 거라면 정착 할 때까지는 무슨 말을 하더라도 그다지 위로가 되지 않을 테고, 괜히 말을 꺼내면 자신이 분위기를 무겁게 하고 있다고 생각해서 억지로 밝게 행동 할 가능성도 있었으니까.
부담을 주고 싶지 않았던 거야.
그리고 그런 합의를 볼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는 사령관이 정착에 걸 맞는 지형을 발견했기 때문인 것도 있었어.
기후 같은 것은 좀 더 살지 않으면 알 수 없었지만, 적어도 자생하고 있는 식생을 보면 살기 어려운 곳이 아니란 건 알 수 있었지.
근처에 나름 멀쩡한 폐허도 있었고, 한 때 농사를 지었던 흔적이 보이는 구역도 있던 데다가, 물을 구하기 쉽고 산도 가까이 있어 동물을 잡기에도 좋았지.
여러모로 이상적인 지역이었어.
여차하면 반년에서 일 년 가까이 떠돌 각오까지 했었던 사령관으로선 더할 나위 없는 상황이었지.
거기에 기쁜 오산도 있었는데, 가던 와중에 숨겨진 창고 같은 곳도 발견했어.
생필품부터 시작해서 여러 물자들이 한가득 있는 그곳은 넷이라면 족히 사년은 쓸 만한 물품들로 가득했던 거야.
아마, 멸망 전에 준비해 뒀던 벙커나 안전가옥 같은게 아니었을까?
이제와선 유래를 알 순 없었지만, 적어도 정착하는데 큰 도움이 될 것임은 자명했어.
그리하여 일행들인 이곳에 터를 잡고 정착하기로 결정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