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금을 틀어주세요)

딸랑. 딸랑.
이제는 찾아보기 힘든 여닫이 문이 열리며 씩씩하게 매달린 방울이 힘차게 목소리를 뽐내었다.
들어가니 양쪽 벽에는 오래된 목재 진열장이 있었고, 마치 여기가 제 자리라 주장하는 듯한 생소한 잡동사니들로 가득했다.
가게 안에 잔잔히 흘러나오는 음악, 요즘 길거리에서들리는 음악과는 다르게 차분하고 수수한 느낌이 몸의 긴장을 풀어주는 것 같았다.
진열장을 둘러보다 카운터에 다다르면, 카운터에 놓인 토끼 인형 옆에 분홍빛 머리칼을 가진 작은 체구의 여성이 엎드린채 잠들어 있었다.

- 저기요.

소리내어 불러보았지만 여성은 미동도 없었다.
자세히 보니 귀에 이어폰이 꽂혀있었다. 이어폰에서 줄이 길게 뻗어나와 있었는데, 요즘도 유선 이어폰이 있던가? 아니, 연결할 수 있는 기기는 있고?

똑똑똑.

손으로 가볍게 카운터를 두들기니 흠칫 하며 그제서야 천천히 일어난다.

- ... 어서오세요... 후아암...

몇번 눈을 비비적대더니 눈을 꿈뻑이다가 다시 카운터에 엎드려 졸기 시작한다.
결국 이 수를 쓰게 만드는군.
인터넷에서 사이렌 소리를 검색해 재생시킨다. 그리고 숨을 크게 들이 마시고...

- 훈련번개!!!! 훈련번개!!!!!

사이렌 소리와 내 말이 들리자마자 카운터에 엎드려 있던 여성은 빛의 속도로 일어나 어디에 있었는지 모를 박격포를 꺼내들고 카운터를 뛰어 넘어 문을 열고 나가려던 찰나 뒤로 고개를 돌려 어안이 벙벙한 표정을 짓는다.

- 사, 사령관?

- 잘 지냈어?

한바탕 소동이 지나가고, 가게 안 쪽에 마련된 작은 방안에 둘이 앉게 되었다.
방바닥은 신기하게 샛노란 장판이었고, 벽에는 커다란 달력에 모르는 글자들이 오밀조밀하게 적혀있었다.

- 진짜아... 그런 행동은 전역자 심장에 좋지 않아... 지금도 일어나면 옆에서 브라우니가 자고 있을 것만 같다고...

- 하하하, 미안해. 깨울 수 있는 방법이 잘 떠오르질 않아서.

- 하암... 이따가 그에 따른 합당한 벌을 내려주도록 하겠어. 그나저나 전쟁이 끝난 후에 보는건 처음이네... 사령관은 잘 지냈어?

- 그 호칭도 오랜만에 들으니 어색하네. 이젠 지나가는 남자1일뿐인데. 나야 잘지내. 이프리트는?

- 나도 잘지내... 어제는 200년도 더 된 음반 CD를 찾아서 기분이 좋아...

이야기를 들어보니 전쟁이 끝나고 전역을 한 이프리트는, 작은 건물 하나를 얻어 옛날 물건을 모으는 골동품 가게를 차렸다고 한다. 옛날 물건을 좋아하는 건 알고 있었지만, 이정도로 본격적일 줄은...

- 잠깐 이리 와볼래, 사령관?

이프리트의 말에 이프리트 쪽으로 몸을 살짝 옮겼다. 이프리트는 귀에서 자신의 이어폰 한 쪽을 빼 내 귀에 꽂아주었다.



(브금을 틀어주세요)

- 가사가 되게 솔직하지 않아? 꾸밈없이... 그냥 누군가를 사랑해서 기쁘고 사랑한다는 것 자체에 열정을 쏟아부을 수 있는 모습이 정말 행복해보여. 나는 옛날 노래들의 이런 감성이 좋아...

이프리트의 말 처럼 가사 하나하나가 솔직했다. 노래는 잘 모르지만, 담담하면서도 진심을 담아 토해내는 창법이 인상적이었다.

- 지금은 다들 빠르고 효율적인 것만 찾는데, 나는 게을러서 그런건 별로야... 그래서 더 옛날 물건을 좋아하는지도 몰라. 전역했을때도 뭘 해야할지 몰랐는데... 내가 좋아하는 걸 생각해보니 이런 것들이더라구. 앞으로도 계속 이 가게를 운영할 것 같아. 내가 좋아하는 것들을 쭈욱 좋아해가면서, 또 무언가를 미워하고 싶지도 않고...

- 멋진데.

이프리트의 말을 들으니 자연스레 그런 말이 나왔다. 내 말을 들은 이프리트의 얼굴이 갑자기 빨개지며 손사래를 쳤다.

- 무, 무슨 소릴 하는거야 사령관... 나는 그냥 게을러서 그런 것 뿐이야...

- 아냐, 덕분에 뭔가를 조금 깨달은 것 같아. 고마워 이프리트.

- 별말씀을... 그럼, 아까 말한 벌을 받아 보실까.

이프리트는 어느새 또 어디서 꺼내왔는지 모를 상자들을 쿵, 소리가 나게 내려놓으며 말했다. 동시에 상자에 쌓여있던 먼지가 휘날렸다.

- 콜록, 콜록. 이, 이게 뭔데??

- 저번 주에 입수한 물건들인데, 귀찮아서 년도별로 분류를 안해놨거든. 먼지도 많이 쌓여있고... 사령관이 분류작업을 좀 해주셔야겠어~?

- 이, 이걸 내가 어떻게 알아!

- 전역자의 트라우마를 건드린 죄는 크다... 이번 기회에 톡톡히 깨닫도록 해...

결국 골동품 가게에서 밤 늦게까지 분류 작업을 하다 집에 돌아가 마누라한테 등짝을 맞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