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네. 선생님의 바닐라는 임신 3개월 찹니다.


- 아니... 바이오로이드도 임신이 되나요?


눈앞이 깜깜했다. 바이오로이드가 내 아이를 임신했다고? 이게 가능한 일인가?

내가 눈에 띄게 당황하자 의사는 안경을 올리면서 침착하게 말했다.


- 당황스럽겠지만 바이오로이드는 스스로 생각하고 움직이는 인형이 아닙니다. 살아있는 생명체죠.


- 전... 몰랐어요.


솔직히 난 저것들이 인형인 줄 알았다.


- 너무 죄책감 가지실 필요는 없습니다. 선생님 같은 경우는 꽤 흔하거든요. 저번 주엔 6명이나 같은 이유로 우리 병원에 왔답니다.


의사는 이해한다는 듯이 능숙하게 말했다.


- 요즘 기업에서 저게 생명체라는 걸 확실히 명시해 주질 않거든요. 옛날에는 그러지 않았지만... 뭐, 시대가 변하지 않았습니까?


기업이 정부를 굴복시킨 후 기업을 옥죄던 제약은 대부분 사라졌고 전보다 바이오로이드를 쉽게 구할 수 있었다. 

그래서 나 같은 사람도 바닐라를 살 수 있었지...


- 이제 어떻게 하죠?


바닐라와 결혼을 해야 하나? 부모님이 허락을 해주실까? 

나는 무책임하게 내가 결정해야 할 일을 의사한테 질문했다.

하지만 의사는 쉽게 대답했다.


- 간단합니다. 낙태하면 되거든요. 수술은 바로 진행할까요?


- 네?


- 물론 지금 바로 할 필요는 없습니다. 하지만 이 이상으로 태아가 자란다면 수술 비용이 많이 비싸질 겁니다. 최대한 빨리 하는 게 좋아요.


- 아니, 그게 아니라 낙태라구요?


- 네. 너무 걱정하실 필요 없습니다. 저는 이래 봬도 전문가거든요.


- 그냥... 낳아서 키우면 안 되나요?


그 말을 듣자 간간이 웃으면서 나를 안심 시켜주던 의사의 표정이 갑자기 심각해졌다.


- 선생님, 지금 무슨 소리를 하는 겁니까?


- 낙태는 불법 아닌가요?


- 사람을 대상으로 하는 낙태는 당연히 불법이지만 바이오로이드지 않습니까.


-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바이오로이드도 생명체라고 선생님도 그러셨잖아요.


의사는 안경을 벗고 엄지와 검지로 눈을 비볐다.

작게 한숨을 쉬고 안경을 다시 고쳐 쓴 의사가 말했다.


- 물론 바이오로이든 살아있는 생명쳅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바이오로이드가 인간인 건 아니에요. 바닐라의 아이를 지우는 건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아요. 아니, 오히려 선생님한테 훨씬 도움이 될 겁니다. 바이오로이드가 낳은 아기가 어떻게 되는지 아십니까?


나는 주눅 든 채로 고개를 저었다.


- 바이오로이드는 기본적으로 오리진 더스트를 이용해서 만들기 때문에 인간보다 근육이 훨씬 발달했습니다. 저 바닐라만 해도 나 같은 사람 두 명은 거뜬히 들 수 있을 겁니다. 그 강화된 근육을 견디기 위해 금속 골격을 가지고 있구요. 하지만 바이오로이드와 인간 사이에서 태어난 아기는 어떨까요? 모체의 오리진 더스트를 물려받아 강화된 근육을 가지고 있지만 뼈는 우리처럼 평범합니다. 자연적으로 금속으로 된 뼈를 가질 순 없으니까요.


- 그럼 아이는 태어날 수 없나요?


- 그럼 다행이겠지만 불행히도 출산은 가능합니다. 하지만 그 아이는 자라면서 강화된 근육에 짓눌려 죽겠죠. 이론적으론 아이가 성장할 때마다 수술을 하면 살수는 있습니다. 하지만 어마어마한 비용이 들죠. 저도 수술한 적은 없지만 들은 바로는 리리스를 가진 주인도 무시할 수 없는 금액이라고 합니다. 그런 수술을 최소한 10번 정도는 해야 돼요. 선생님껜 죄송하지만 그 정도로 경제력이 있어 보이진 않네요.


의사가 나의 경제력에 평가한 것에 나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아이 수술은커녕 당장 오늘 병원비가 더 문제인 상황이다.


- 아까도 말했지만 바닐라의 아이를 지우는 건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하지만 아이가 태어나면 얘기가 달라요. 그 아이는 진짜 사람입니다. 태어나면 출생신고도 해야 해요. 이건 어떻게 할 수 없습니다. 그리고 그 아이가 고통 속에서 죽는 걸 봐야 합니다. 나중엔 차라리 죽여서 이 고통에서 끝내줄까 생각이 들 수도 있을 겁니다. 하지만 실행하면 존속살해죄로 무거운 처벌을 받겠죠. 선생님. 이건 제가 돈을 벌려고 하는 얘기가 아닙니다. 바이오로이드의 아이를 낳으면 안 돼요. 선생님과 아이를 위해 드리는 말입니다.


이제 의사는 나에게 애원하고 있다.


- 그러면... 수술을 해야겠네요.


- 그렇죠! 잘 생각하셨습니다. 바이오로이드의 아이를 낳는 건 미친 짓이에요. 그건 부모와 자식을 두 번 죽이는 겁니다.


- 하지만, 저한텐... 없어요.


- 네?


- 저한텐 수술을 할 돈이 없어요.


나의 미래와 아이의 죽음보다 돈을 걱정하는 말이 내 입에서 나오자 속이 울렁거렸다.


- 지금 직업이 없으신가요?


- 바닐라는 일하고 있지만 저는 없습니다. 일자리를 구하고 있지만 알다시피 저 같은 평범한 인간은 취업이 잘 안돼요.


- ... 그래도 일단 수술을 진행합시다. 수술비는 천천히 지불하세요.


- 정말입니까?


내 자식을 죽이려는 의사가 천사처럼 보였다.


- 제가 돈을 벌려고 하는 얘기가 아니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선생님 같은 경우 때문에 불행한 사람들을 너무 많이 봤습니다.


-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 아닙니다. 하지만 앞으로 바닐라와 관계 할 땐 피임을 꼭 하셔야 됩니다. 콘돔을 사용하는 게 귀찮으시다면 루프 시술도 추천 드립니다. 저희 콘스탄챠도 7년 전에 시술 했는데 부작용 없이 잘 살고 있거든요. 나중에 오시면 싸게 해드리겠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선생님이 꼭 해주셔야 하는 일이 있습니다.


의사가 조금 난처한 얼굴로 나에게 말했다.


- 선생님이 바닐라에게 낙태를 해야 한다고 명령해 주셔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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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인님, 저 빌어먹을 안경잡이가 뭔 소리를 하는 겁니까?


바닐라가 의사를 죽일 듯이 노려보면서 말했다.


- 당신이 뭔데 나와 주인님의 아이를 가지고 이래라저래라 하는 겁니까? 주인님, 쓸데없는 시간 낭비하지 말고 빨리 돌아가죠.


바닐라는 내 손을 잡고 병원 밖으로 나가려고 했다.


- 바닐라, 멈춰.


바닐라는 걸음을 멈추고 의아한 표정으로 나를 돌아본다. 나도 미칠 것 같은 표정으로 의사를 돌아봤다.


- 바닐라의 뱃속에 있는 태아는 바닐라의 자식이자 나중에 섬겨야 할 주인이기도 합니다. 아이를 지키려고 하는 행동은 자연스러운 거죠.


- 이 새끼가 보자보자 하니까 진짜... 평생 검은색 안경 끼고 살게 해줘?


의사의 말을 들은 바닐라는 당장이라도 달려들 기세였다.


- 예전에 명령을 안 한 상태로 수술을 하려다 간호사 3명이 입원한 적이 있었습니다. 선생님이 확실히 명령해야 수술을 할 수 있습니다.


의사의 말을 듣고 나는 바닐라에게 굳은 표정으로 말했다.


- 바닐라, 우리는 이 아이를 키울 수 없어. 지워야 해.


- 주인님, 무슨 소리를 하는 거예요?


바닐라는 충격받은 표정으로 말했다.


- 이건 저만의 아이가 아니에요. 주인님의 아이이기도 하다구요.


- 그래, 내 아이니까 내가 정해. 나는 이 아이 못 키워.


- 어째서 그렇게 말하는 거예요?


바닐라는 눈물이 맺힌 채로 말했다.


- 난 네가 임신할 줄 몰랐어. 임신할 줄 알았다면 무조건 피임했을 거야. 그리고 네가 나한테 돈도 못 벌어온다고 맨날 구박했잖아. 우리는 아이를 키울 돈도 없어.


- 그 말은 진심이 아니에요. 제가 일하고 있잖아요. 주인님은 일 안 하셔도 돼요. 맨날 집에만 있어도 돼요. 잘못했어요. 앞으로 그런 말 안 할게요.


- 그게 문제가 아니야. 바이오로이드와 인간 사이에서 나온 아이는 수술을 안 하면 얼마 살 수도 없데. 아이가 고통스럽게 죽는 걸 보는 것보단 지금 지우는 게 너한테도 좋을 거야.


- 저한테도 좋을 거라구요? 아니에요. 절대로 그럴 일은 없을 거예요. 돈이 문제에요? 제가 더 열심히 일할게요! 잠도 안 자고 일할게요!! 아이가 태어나면 주인님도 생각이 달라질 거예요. 제발 그런 말은 하지 마세요.


바닐라는 무릎 꿇고 나한테 빌고 있다.


- 복권에 당첨돼도 우리는 아이를 살릴 수 없어. 나도 아이를 지우는 게 좋은 건 아니야. 하지만 어쩔 수 없어.


- 아니에요. 어떻게 그런 말을 그렇게 쉽게 해요...


바닐라는 우느라 말도 제대로 못하고 있다.

나도 눈물이 맺힌 채로 의사를 돌아봤다. 의사는 굳은 얼굴로 고개를 저었다.


- 안돼. 난 마음 굳혔어. 바닐라, 수술 받아. 이건 명령이야.


- 주인님, 제발...


바닐라는 힘없이 주저 않았고, 눈물을 흘리면서 간호사한테 끌려갔다.

나도 바닐라가 수술실로 들어가자 의자에 앉아서 머리를 쥐어뜯었다.


- 선생님, 정말 고생하셨습니다.


의사가 내 옆에 앉아서 말했다.


- 정말 개자식이 된 기분이네요. 저 말고 다른 사람도 그럽니까?


- 다 그렇진 않습니다. 보통 똥 밟았다는 반응이죠. 그래도 선생님은 바닐라를 정말 사랑하시는군요. 그럼 전 이만 들어가 보겠습니다. 걱정하지 마세요. 수술은 무사히 끝날 겁니다.


- 앞으로 바닐라는 절 평생 원망하겠죠?


수술실로 들어가는 의사를 향해 내가 말했다.

의사는 복잡한 표정을 지으며 돌아봤다.


- 그러진 않을 겁니다. 아무리 그래도 바이오로이드는 인간을 사랑하기 위해 만들어졌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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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물 처음 써봄.


난 현재 보다 과거 스토리가 더 재밌더라


내가 생각한 스토리 중 그나마 소설에 어울리는 작품


만화도 그려보고 싶은데 그림 한 번도 안 그려봐서 힘들거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