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사한 만월 아래에서 달빛이 만들어낸 빛의 융단이 아름답게 깔려있는 밤의 바다.

 

 그런 융단 위를 무대로 바다에서 해안으로, 천천히 걸어오는 네레이드.

 

 수영모와 물안경을 벗고, 흘러내린 머리카락을 뒤로 넘기면서 달빛과 바다를 뒤로 하고 천천히 해변으로 올라오는 네레이드.

 

 아직 소녀티를 벗지 못한 외모와 그에 어울리지 않는 육감적인 몸매, 아직 흘러내리지 못한 물기가 달빛을 반사하면서 강조하는 새하얀 피부, ‘네레이드’라는 이름에 걸맞게 자연스러운 행동으로 그녀가 내뿜고 있는 매력은 바다의 요정에게 견줄만한 필살의 뇌쇄.

 

 오히려 뱃사람을 유혹했다는 ‘세이렌’이라는 이름이 어울리지 않을까 싶은 매력을 흘리며 모래사장 위로 올라온 그녀는, 머리카락의 물기를 털어내며 두리번두리번 주변을 살펴보다 나와 눈을 마주치고선 천진난만한 미소를 짓고 수영모를 든 손을 흔들며 내게 달려오기 시작했다.

 

 아름답다.

 

 평소에 순진하면서도 활달한 모습 속에 감춰져 있던 건강미가 예상치 못한 일격을 마음속에 남겼다.

 

 나와 네레이드 단 둘만이 있는 어두운 해변, 어린 여동생처럼 생각했던 아이에게 맞은 예상치 못한 일격, 평범하게 바다를 즐기러 나온 그녀에게는 미안하지만, 방금의 모습에 바다 따위는 신경 쓰지 못할 정도로 ‘불끈’하고 느낌이 와버렸다.

 

 “사령과~안! 이제 온 거야? 너무 늦게 와서 네리는 먼저 바다에서 놀고 있었다구!”

 

 그런 내 심정도 모르고 내 코앞까지 다가온 네레이드는 쾌활한 목소리로 팔을 껴안으며 몸을 밀착해왔다.

 

 까칠한 수영복의 감촉과 어울리지 않는 부드러움이 꾸욱하고, 느껴졌다.

 

 그리고 고개를 쭈욱 내밀며 내 시선 오른쪽 아래에서 살짝 나를 올려다본다.

 

 하늘이 내려준 순진함이 선사하는 압도적인 미의 폭격.

 

 최대한 무시하려고 했지만, 생글생글 웃으며 눈꼬리를 둥글게 말고 있는 녹색의 눈과 마주친 순간 그대로 격침당했다.

 

 화장하지 않는 순수한 얼굴, 살짝 버러진 연한 분홍색 입술과 벌어진 틈 사이로 보이는 송곳니, 차가워진 몸을 데우기 위해 살짝 상기된 볼을 타고 흐르는 물방울, 순진무구함이 가득한 녹안.

 

 청아하고, 순박하다.

 

 시선은 네레이드에게 고정되고, 네레이드에게 붙잡히지 않은 손이 무심코 올라갔다.

 

 “사령관? 무슨 일 있읏......!”

 

 네레이드의 어깨 위에 올라간 손, 자신을 빤히 쳐다보는 나를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바라보던 네레이드가 흠칫 몸을 떨고 나를 껴안고 있던 팔에 힘을 풀며 한걸음 뒤로 물러났다.

 

 네레이드가 한발 물러나면서 자유로워진 오른손, 나는 자유로워진 오른손을 왼손처럼 네레이드의 어깨 위에 올려놓은 뒤 허리를 살짝 굽혀 네레이드의 눈높이에 맞게 얼굴을 내렸다.

 

 당황한 기색이 묻어나오는 표정, 흔들리는 동공, 가슴 앞에 다소곳이 모인 양손.

 

 지금 내가 어떤 감정으로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지 어렴풋이 깨달은 네레이드는 평소의 쾌활함을 완벽하게 잊어버리고 숫기 없는 소녀처럼 떨리는 눈으로 얌전히 나를 바라보고 있을 뿐이었다.

 

 천천히, 그리고 조심스럽게.

 

 네레이드의 어깨를 끌어당기면서 나는 그녀에게 얼굴을 가까이했다.

 

 서서히 나의 시선을 가득 채우기 시작하는 네레이드의 얼굴, 입술을 달싹이고 눈꺼풀을 파르르 떨고 있는 그녀는 코가 닿을 정도로 얼굴이 가까워지자 숨을 깊게 들이마시면서 눈을 꼬옥 감고 이후에 있을 충돌에 대비했다.

 

 서로의 코가 살짝 스치듯 닿고, 서로의 숨결이 피부를 타고 흘러내릴 정도로 가까워진 순간, 아직 물기가 완전히 마르지 않아 촉촉한 네레이드의 입술의 감촉이 느껴졌다.

 

 접촉 이후의 밀착, 입술 너머에 있는 이의 단단함이 살짝 느껴질 정도로 가볍게 달라붙은 나와 네레이드의 입술.

 

 “후읏! 으읍... 으...”

 

 폭신하고 부드러운 입술, 꼬옥 감은 두 눈이 사소한 움직임에도 흠칫하고 떨리는 모습과 막혀있는 입으로 숨을 쉬려고 안간힘을 쓰는 미숙함, 한층 더 상기된 얼굴.

 

 순수함에 물들어 있는 자그마한 요소 하나하나가 전부 귀엽게 느껴졌다.

 

 “하아아......”

 

 가슴이 스무 번 두근거린 짧은 시간, 짧지도, 길지도 않은 시간의 입맞춤을 마치고 얼굴을 살짝 떨어트리자, 네레이드는 가슴 깊은 곳에서 나오지 못하고 머물러 있던 뜨거운 숨결을 입으로 내뱉으며 게슴츠레 눈을 떴다.

 

 입맞춤의 열락에 취해 거친 숨을 몰아쉬고, 몽롱한 눈으로 멍하니 나를 바라보던 네레이드는 멍하니 벌어져 있던 입술을 몇 번 달싹이다 떨리는 목소리로 내게 말했다.

 

 “사,사령관, 이거...... 이거 좋아하는 사람끼리 하는 그거, 맞......지?”

 

 무언가를 확인하듯 기대와 망설임이 담겨있는 말투, 입맞춤이나 키스라는 단어조차 꺼내기 부끄러워하면서도 행동에 대한 진의를 알고 싶어 하는 네레이드의 모습은 누가 보더라도 사랑에 빠져 있는 소녀의 모습이었다.

 

 “응, 좋아하는 사람끼리 하는 거 맞아.”

 

 “헤헷...... 에헤헷...... 좋아하는, 사람......”

 

 황홀함에 잔뜩 녹아내린 표정, 자연스럽게 흘러나오는 웃음소리.

 

 기쁨을 감출 수 없는 네레이드는 화끈하게 달아오른 뺨을 양손으로 감싸면서, 몸을 이리저리 비비 꼬았다.

 

 “아하하...... 이상하다, 방금까지는, 아무렇지 않았는데, 지금은, 사령관이랑 눈 마주칠 때마다, 두근거려서 미칠 것 같아......”

 

 네레이드의 눈가에 눈물이 글썽이기 시작했다.

 

 행복한 미소와 기쁨의 눈물.

 

 소녀가 보여줄 수 있는 가장 아름다운 모습.

 

 나는 그런 그녀의 눈물을 닦아주기 위해 오른손을 네레이드의 어깨에서 떨어트린 후 얼굴로 손을 가져가 엄지손가락으로 조심스럽게 눈물을 훔쳤다.

 

 눈을 꼬옥 감고 내 손길을 얌전히 받아들이는 네레이드, 가볍게 눈가를 스치듯 지나치며 눈물을 훔쳐낸 나의 손이 그녀의 얼굴에서 서서히 떨어지자 네레이드는 꼭 감고 있던 눈을 조심스럽게 뜨면서 눈을 마주쳤다.

 

 약하게 충혈된 눈, 녹색의 눈동자로 잠시 나를 응시하던 네레이드는, 시선을 살짝 내려 나의 입술을 바라보면서 천천히 입을 열었다.

 

 “저기...... 사령관.”

 

 “응.”

 

 “네리는 귀엽지도 않고, 예쁘지도 않고, 성격도 조신하지 않은데, 그래도 네리한테 ‘그런 짓’을 했다는 건, 네리도 기대해도 된다는 거지?”

 

 “어떤 것을?”

 

 “사령관이랑 좋은 추억을 만들 수 있다고, 키...... 키...스보다 더욱더, 서로를 엄~청 좋아하는 사람이 하는 걸, 할 수 있다고, 기대해도 되는 거, 맞지?”

 

 네레이드는 귀까지 붉게 물들인 채 부끄러움을 참으며 더듬더듬 말을 이어나갔다.

 

 키스 그 이상,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 지는 순진할 정도로 바보가 아닌 이상 누구라도 알 수 있었다.

 

 천천히 네레이드에게 손을 옮겼다.

 

 가볍게 그녀의 허리와 등에 손을 올린 나는 부드럽게, 그리고 상냥하고 그녀를 품 안으로 껴안았다.

 

 가슴에서 느껴지는 심장박동, 미세하게 떨리는 어깨, 나는 잔뜩 긴장해서 경직된 네레이드의 등을 천천히 쓸어내리면서 그녀의 귀에 조용히 속삭였다.

 

 “물론이지, 네리가 나에게 하고 싶은 것, 내가 네리에게 하고 싶은 것 전부, 네리가 원하는 데로, 네리가 기대하는 데로 전부 다 해줄게.”

 

 “그렇다면 사령관, 다시 한번, 키스...... 해줄 수 있어?”

 

 딱 달라 붙어서 고개만 들어 나를 애절하게 바라보는 네레이드의 부탁, 꼭 붙어서 하기에는 조금 힘든 키 차이였지만 나는 별다른 말을 하지 않고 천천히 네레이드를 향해 얼굴을 가까이했다.

 

 무언의 긍정, 이를 알아차린 네레이드 역시 두 눈을 감고 까치발을 들며 내게 얼굴을 가까이했다.

 

 가볍게 닿은 입술, 불편한 자세이기에 잠깐 닿은 입술은 금세 떨어졌다.

 

 “헤헤...... 기뻐, 너무너무 기뻐, 사령관, 좋아해, 정말정말 좋아해.”

 

 “나도, 네리를 좋아해.”

 

 “저기, 사령관, 이 다음은, 더, 엄청난 것을 알려줄 수 있어? 네리가 아직 잘 모르는 것들을, 하나, 하나.”

 

 “네리가 상상하는 것 이상의 엄청난 것들도 알려줄게.”

 

 더 이상의 말은 불필요한 것, 나는 말을 마치자마자 네레이드를 껴안은 채로 모래사장 위에 드러누웠다.

 

 등 뒤의 모래가 내 몸의 형태에 맞춰서 짓눌리는 감각과 내 품에 얌전히 기대고 있는 네레이드의 체중이 느껴졌다.

 

 네리에게 하고 싶은 것도, 그리고 아마도 네리가 내게 하고 싶은 것도 잔뜩 있을 것이다.

 

 시선을 살짝 옮겨 아직도 중천을 지나지 못한 달을 바라보았다.

 

 밤은 길다, 초조할 필요 없이, 급하게 굴 필요 없이 하고 싶은 것들을 하나하나 해가면 된다.

 

 시선을 다시 옮겨 내 품 안에 있는 네레이드를 시야에 집어넣었다.

 

 나와 네레이드만이 있는 해변, 아무도 방해할 수 없는 해변, 그러니 느긋하게 즐기면 된다.

 

 밤하늘을 이불 삼아서, 모래사장을 침대 삼아서, 귓가를 울리는 파도소리를 들으며 네레이드와 함께 이 밤을, 천천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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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리네리의 키는 156cm입니다. 껴안으면 찌찌팍에 얼굴이 닿는 존나 꼴리는 키라는 뜻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