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왠지 좋은 날이었다

회사에서 별다른 일이 없었고 이상하게도 시간이 잘 갔다

게다가 평소보다 일찍 퇴근까지 했다

마음이 홀가분했다 따뜻한 날씨 또한 마음에 들었다

간만에 집에서 편하게 쉴 생각에 집 앞 편의점에 들러서 맥주 한 캔 샀다

집에 도착해서는 따뜻한 물에 샤워를 하고

덜 말린 머리를 대충 수건으로 덮은 채로 컴퓨터 앞에 앉아

방금 사 온 맥주를 까서 벌컥벌컥 마셨다

차가운 탄산이 목을 때리며 넘어가는 것이

방금까지 따뜻한 물로 데워 후끈한 몸을 금방 차갑게 식혔다.

그 차가운 오한이 기분 좋았다.


반쯤 마신 맥주를 홀짝거리며 출근하면서 돌려놓은 통발을 확인했다

탐색 보낸 분대를 다시 탐색 보내고 

꽉 차 있는 캐릭터를 분해하고 다시 통발을 돌리곤

무얼 할까 빈 바탕화면에 마우스만 끄적이는데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내가 지금 뭐하는 거지?'


방금까지 좋았던 기분은 온데간데없이 공허함만이 내 작은 방을 채웠다.

나는 알아야만 했다 무엇이 갑자기 내 심기를 건드렸는지

의미없는 마우스질을 멈추고 의자를 제끼고 누워 천장을 올려 보았다


'왜 이런 생각이 든 걸까?'

멍하니 빛바랜 형광등을 눈에 잔상이 아른거리기까지 바라보았다

눈을 감으니 빛의 잔상이 어지럽게 떠다녔다 그러다 갑자기 깨달았다


그건 별거 아니었다 그냥 내가 이리저리 끌려 다니는 것을 새삼 느꼈던 것이었다

회사에선 상사의 말에 끌려 다니고 퇴근 후에는 습관에 끌려 다니고 이리저리 질질질...

환기를 시킬 겸 오랜만에 친구나 만날까 생각도 했지만 그건 그거대로 뻔해서 싫었다


돈은 분명 있다 적은 액수는 아니지만 그렇다고 갑자기 생활을 바꿀 만큼 크지는 않은 액수

그 돈을 지금 허하다고 쓰고 싶지는 않았다 내가 그 돈을 벌려고 얼마나 고생하는데...

나는 치사하게도 돈은 전혀 쓰지 않으면서 상황이 나아지길 바라고 있었다


오랜 경험으로 생각만 해서는 관성의 법칙에 따라 부정적인 생각은 꼬리에 꼬리를 물 것이 분명했기에

그만 접어두고 눈앞에 있는 것을 움직이기로 마음먹었다

마우스를 좌우로 흔들어 잠든 바탕화면을 깨우고 앱플레이어를 켰다


화면 안에선 리엔이 내가 수행한 명령을 챗바퀴 돌 듯 반복하고 있었다.

반복전투를 끄고 얼마 차있지 않은 통발을 비웠다 그러다가 아무 생각없이

이벤트 맵이 아닌 일반 맵을 열었다


스테이지는 반쯤 잠겨있었다 

레모네이드를 얻기 위해 88까지 민 것을 제외하고 사이드는 다 불이 꺼져 있었다

뉴비때 공략보며 열심히 따라가서 딴 것들 심지어 88은 도움을 받아서 깼다

무용을 얻을 때 역시 마찬가지였다


무슨 생각이었을까 나는 탐색 보낸 분대를 다 취소하고는

안 깼던 스테이지를 열어 하나씩 조건을 보고는

조건에 맞게 대강 분대원을 채워넣었다

5지 중간부터 4별작이 되지 않고 꺼져 있었다


대략 정비를 마치고 스테이지로 진입했다

간만에 스킬을 쓸 때 명중율이나 적을 클릭하여 특정 스킬이 있는지 확인을 했다

게임을 처음 할 때 생각이 났다

그땐 공략을 보지 않고 3지까지 밀었다 

내 창고엔 아직도 그때 쓰던 레벨 41짜리 레프리콘이 있다

2스가 열스킬이라 꽤 쏠쏠하게 썼었는데... 성능이 구리다길래 창고에 짱박았다


뭐 어쨌든 간만에 공략을 보지 않고 대가리 박아가며 4별작을 시작했다

그러고 12시가 되기 전에 4별작을 다 끝냈다

85에서 프바가 나왔을 때는 바로 퇴각해서 찐레후를 데려와서 지져죽였고

812에서는 슬래셔? 이 개색기때문에 당황했다 뭣 모르고 중파 메이로 공격하다가

반격맞고 대원들을 수복실로 부를 뻔 했다


결론은 재밌었다 

간만에 내가 맘대로 덱 짜고 대가리 박아가면서 하니까 너무나 재밌었다

몇 시간 전까지만 공허함을 느꼈는데 사라지고 지금은 그냥 기분이 좋다

별거 아니지만 주체적으로 하나부터 열까지 내가 해내니까 간만에 성취감도 느꼈다

그걸 느낀 것으로 오늘은 충분히 좋은 날이었다




 

결론은 회사 때려치고 싶다 씨발!!!

간만에 감성돋아서 개뻘글 쌌다

어차피 밖에서 이런 얘기 안 하니까 여기 써봤다

혹시나 다 읽어줬다면 읽어줘서 고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