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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그게 사실입니까?”

“그래…… 나와 레프리콘은 기적적으로 함께 있었지……. 나 혼자만이라면 몰라도, 전적으로 화력지원에 특화된 레프리콘의 특성상 이런 폐쇄된 장소에 혼자 고립되면 굉장히 위험하니 말이야. 그나마 다행인 일이었다.”

그래서 나와 레프리콘은 서로 협동하여 내가 역장으로 적의 공격을 막고, 레프리콘이 뒤에서 기관총을 난사하는 것으로 철충들을 정리…… 했다.

하지만 문제는 그 다음이었다.

“처음에는 별것 없었다. 바깥에서 보았던 개체들보다 훨씬 약한 것들이었지. 마치 기생한지 얼마 지나지 않은 것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하지만 나와 레프리콘은… 방심했던 거다. 잡병들만 있다고 방심한 시점에서…… 독보적으로, 말도 안 되게 강한 개체가 섞여 있었다.”

“그 개체는 어떤……?”

마리는 머리를 짚고 죄여오는 두통을 쫓으며 이야기를 천천히 이어나갔다.

“모르겠다. 한 번도 본 적 없는 개체였어. 그래, 그때까지만 해도 우린 방심하지 않았어. 처음 보는 개체는 어떤 불확실성이 있을지 장담할 수 없지. 괜히 심기를 건드리지 않고 왔던 길로 돌아가자는 결론을 내렸다. 자극하지 않도록 천천히…….”

그래, 거기서부터 문제였던 것이다.

나와 레프리콘은…… 더 서둘러야 했다.

“녀석들…… 아니, 그 개체는 우리를 막다른 길로 몰아넣었다. 휘하의 철충 녀석들을 지휘해서…… 마치 사냥감을 함정으로 몰아넣듯이……!”

“그, 그러면…… 레프리콘 분대장은 도대체 어디 있는 거죠? 마리 대장님이 입은 약간의 상처를 제외하면, 혈흔조차도 발견되지 않았는데……!”

“……그래, 그것이…….”

마리는 다음 층으로 향하는 계단 앞에 올라섰다.

“우리가 이곳 철의 탑에서 알아내야만 하는 비밀이다.”

노움, 그리고 브라우니들 다수로 급조된 소대.

갑작스러운 동료의 실종.

그녀들이 사기를 잃는 것은 어느때보다도 당연해보였다.

“알겠나? 이 사건은 비단 동료의 실종이란 문제뿐만이 아니다! 그녀 말고도 그 개체와 조우한다면 그렇게 한 명, 한 명 실종될 가능성이 있다! 우리 스틸라인의, 그리고 오르카호의 모든 자매들을 위하여! 반드시 레프리콘 0219번을 찾아낸다! 알겠나!!!”

“예!!!!!”, “알겠습니다!!!!”, “지당하신 말씀입니다!!!”

하지만, 그 어느때보다도 투지에 불타올라 있었다.

그녀들에게 있어서 동료를 잃는다는 슬픔은, 다시는 겪고 싶지 않은 일이었다.

그리고 그것은, 오르카호의 최고 통수권자. 사령관에게도 마찬가지인 일이었다.

 

“레프리콘 0219번의 실종…… 이라…….”

그녀가 이번 철의 탑 원정에 참여하게 된 것은 여러 이유가 있다.

첫째는 스틸라인이기 때문이다.

이번 작전에서는 공군, 해군 모두 접근 불가능이다. 철의 탑 그 자체를 파괴해버리면 우리는 그 안에서 아무것도 얻어낼 수 없으니 말이다.

애초에 파괴할 수 있는지도 의문이지만…… 그 문제는 넘어가도록 하자.

그리고 둘째는 그녀가 가진 우수한 능력.

브라우니에 비하면 레프리콘 개체는 3분의 1 정도 수준으로 적은 편이다. 하지만 내가 부임하기 전까지 취급은 브라우니와 크게 다르지 않았고, 레프리콘이라는 화력지원 담당이 전사해버리면 전선 앞으로 나선 브라우니들은 개죽음이 되어버린다.

인간의 명령이 없어 적극적으로 저항할 수 없었던…… 그 중에서도 오래 살아남은 개체가 바로 레프리콘 0219번이었다.

이쯤되면 그녀를 뽑지 않을 이유를 떠올리는 것이 더 힘들 것이다. 그녀는 수많은 철충을 벌집을 만들어냈고, 100번의 싸움에서 1번이라도 죽으면 끝일 전투에서 늘 살아돌아왔다.

하지만 난 이번 작전에 앞서 철의 탑으로 몸소 투입 및 침투할 인원들을 모두 상담하도록 했다.

앞선 두 가지 이유를 들어서라도, 자원의 형태가 아니라면 보내지 않는다. 물론 그 경우 제 2후보를 뽀는 형태가 되었겠지만…….

 

“감사합니다. 사령관 각하. 드디어…… 제가 쓰일 곳을 찾은 것 같습니다.”

그런 걱정은 무의미하게도, 그녀는 의욕이 굉장했다.

아니, 정정하자. 그녀는 무력감에 젖어있었다.

당연한 이야기다. 지금까지 살아남아왔다는 것은 계속해서 희생자를 겪어왔다는 의미이기도 하니까.

“그런 식으로 말하지 마. 나는 레프리콘 너를 죽으러 갈 곳으로 보내는 게 아니야.”

“죄, 죄송합니다!!”

레프리콘은 실수를 저질렀다는 듯 바로 고개를 숙이며 사과했다.

사과할 일 같은 게 아닌데도…….

“왜 그렇게 의욕이 넘치는지… 물어볼 수 있을까?”

“아, 그, 그건…….”

레프리콘은 청결하게 잘 정돈된 머리카락을 배배 꼬아가며 말끝을 흐렸다.

‘그런가…….’

그 날 봤던 개체가 지금 내가 보고 있는 개체인지는 모른다. 그 시절에는 나도, 대원들도 모두 허둥거렸으니.

하지만 레프리콘의 빨갛고 긴 머리가 푸석푸석하고 관리도 잘 되지 않는다는 현실을 보고 말았다.

그 시절의 나는… 복지에 관심만 있다 뿐이었지, 제대로 재무 관리를 할 수 있는 상태가 아니었는데도. 그녀들이 오랜 전투 속에서 희생해 온 시간들 때문에 ‘여자’로서의 미도 희생하지 않았으면… 하고 바랬다.

당시에는 바로 해결되지 못했다. 먹고 살기에도 급급했고, 사령관이라는 입장인 나조차도 제대로 된 식사는 기대하기 어려웠을 정도다.

그런데 지금은 어떤가? 그녀들은 여전히 싸우고 있지만 이제는 아름답게 빛나기도 한다.

레프리콘은 우물쭈물 거리던 입을 앙 다물며 굳게 다진 의지를 그 두 눈에 서렸다.

“사령관 각하께, 제가…… 저희가 받았던 것들을 보답하고 싶습니다.”

언젠가 다시 찾아올 인류의 시대에 그녀들은 싸우는 것 대신 자신만의 삶을 개척할 수 있게 될 것이다.

……….

………….

……………그렇게 될 일이었는데.

어디서부터 잘못된 거지? 역시 그녀들을 철의 탑으로 보내지 말았어야 했나?

아니면…… 그저 조용히 밭을 일구며 평화롭게 살아가야 했을까? 별의 아이도, 철충의 위협도 닿지 않는 그런 이상향 같은 건 저 우주 너머 말고는 어디에도 없다.

이 지구에서 사는 이상, 그녀들에게 편안한 안식은 주어질 수 없는 것일까?

치직.

통신기 너머로 마리 대장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아직, 아직입니다. 그녀는 아직 죽지 않았습니다.”

“……어떻게 확신하지?”

“저희 소대가 이미 조사를 마쳤습니다. 레프리콘, 그녀의 혈흔은 흔적조차 발견되지 않았습니다. 실종이라기보단 납치라고 보는게 타당하다고 볼 수 있을 정도입니다. 그들이 왜, 어째서, 이러한 상황에 그녀를 납치했는지는 모릅니다. 하지만…….”

마리 대장은 잠시 숨을 고르고 굳게 다진 의지를 관철했다.

“그녀를 반드시 구해낼 것입니다.”

“……허락하지. 조사는 같이 돌입한 다른 팀원들에게 맡기고, 레프리콘 그녀의 수색에 전념해줘. 그리고…… 그 정체불명의 개체에 대한 정보는 다른 팀원들에게도 가능한 만큼 공유하고.”

“알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사령관 각하. 저……”

“아니, 이것은 내 책임이다. 마리 대장은 이 일에 대해서 이상한 생각 품지 말고 수색에 전념해줘. 다시 말하지. 이건 마리 대장의 잘못이 아냐. 알겠나?”

“……분부 받들겠습니다!”

제발.

그녀가 무사하길…….

오늘만 몇 번이고 주워담은 소망을, 나는 다시 한번 주워담았다.

 

???

 

………….

…………….

………………으.

~~~~~으으…….

머리가… 지끈거리고…… 숨을 쉬기 힘듭니다…….

마치 감기에 걸린 것처럼…….

………?

이상합니다.

저희 바이오로이드는 일반적인 병이나 독극물에는 영향을 받지 않을 텐데도…….

어째서 이렇게…… 몸이 뜨거운 걸까요?

“아……….”

힘겹게 눈을 떠보았지만…… 모든 것이 뿌옇게 보입니다.

“일어나야만…… 서둘러… 야…….”

무언가…… 무언가 이상한 것이 제 몸에 들어오려고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필사적으로, 필사적으로 그것을 막아내고 있다는 기분이 듭니다. 원인이 뭔지는 알 수 없지만, 제 몸의 오리진더스트는 그것을 유해한 것으로 판단한 것 같습니다.

“하아…… 하아…… 읏…….”

몸이…… 뜨겁습니다. 너무 뜨겁습니다.

그런데도…… 괴롭다는 느낌은 하나도 들지 않습니다.

마치 구름 위에 있으면서도 쨍쨍한 하늘 아래에서 더위를 만끽하는 듯한 기분이 듭니다.

아니, 이게 아닙니다. 이런게 아닙니다. 분명 좋은 기분은 아닙니다.

그래도 한 가지 확실한 점이 있다면…….

조금이라도 방심하면…… 그대로 나락으로 떨어질 것만 같은… 그런 위험한 느낌…….

………….

“더워…….”

당장이라도 슈트를 벗고 싶은 기분에 흽싸입니다.

“아냐…… 아니야…… 벗으면 위험해…….”

철충의 무기를 온전히 막을 수는 없지만 단 한 번이라도 치명상이 될 수 있는 상처를 지혈해줄 수 있는 고기능성 슈트입니다.

이곳은 철의 탑…… 벗어서는 안 됩니다.

“나는…… 왜 철의 탑으로 왔더라……?”

정신이 급속도로 모호해져 갑니다. 제대로 된 사고를 유지할 수가 없습니다.

잠이 오지는 않습니다. 마치 꿈 속에 둘러싸인 듯한 기분.

정신은 말짱한데, 현실 속에 있지는 않은 그런 꿈 같은 기분.

“어………?”

차가운…… 무언가가 제 몸을 감싸는 게 느껴집니다.

그때까지도 저는 자신에게 처한 상황을 이해할 수가 없었습니다.

단지 그 기분 좋은 시원함에 몸을 맡기고 싶었습니다.

“앗…… 읏! 으아……?”

살짝 저릿하고, 그러면서도 차가운 금속질의 무언가가 제 몸을 어루만져 주고 있습니다.

어디까지나, 언제까지고 그 몸을 맡기고 싶어집니다.

“으극, 아윽. 아……? 윽!? 하… 읍…… 으읍……!!!”

계속해서 제 몸을 맡기고 싶습니다.

 

…………삐            .

    치직, 칙. 치이이익.

       들, 려? 치직, 리콘!

           치직! 거… 서! …와야, 치직.

치이이이이이이이이이.

………….

                        ,


계속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