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음집: https://arca.live/b/lastorigin/24520419



--------------------------------------------------------------------

 

 다크앨븐은 표시를 새겨둔 나무를 발견 하고서는 한숨을 내쉬었어.

 이 나무야 말로 이곳에 처음 들어 왔을 때 표식을 만들어 놓은 나무였고이 표식을 발견 했다는 것은 드디어 이 주변의 숲을 한 바퀴 다 돌았다는 뜻이었거든.

 처음으로 일행과 장기간 떨어져 지냈던 임무였던지라 내심 두려움이 컸었는데 드디어 끝이 다가왔다는 것에 안도의 한숨을 내쉰 거였지

 

 숲에는 별다른 이상은 없었어식생이 약간 단일화 된 경향이 없잖아 있긴 했지만그래도 그 정도면 양호한 편이었지.

 야생 동물도 그럭저럭 있는 편이었고육식 동물의 기색도 조금 보이긴 했지만 적어도 얕은 곳에는 없는 모양이야.

 아마도 동물원에서 탈주한 야생동물들이 아니었을까싶긴 했지만동물이 너무 없어도동물이 너무 많아도 숲은 문제가 일어나니 잘된 셈 쳤지.

 

 물론 지금 돌아본건 그저 일차적인 정찰에 불과 했으니까.

 조만간 또 여유가 나는 대로 다시 한 번 더 정찰해야겠지

 

 그건 미래의 다크앨븐에게 맡겨두었고 지금은 집이야귀가의 시간이 되었어.

 

 산을 돌면서 간간히 챙긴 데이터베이스에 있는 약초나 야생화 된 채소 같은 것들을 들고 가벼운 발걸음으로 집으로 돌아갔어.

 

 

 다크앨븐이 마을로 돌아가니 시간으로 치면 대략 3시에서 4시정도 되었지.

 뭔가 일을 하기에는 애매하고 쉬기에는 또 약간 널널한 시간대였어

 

 숲은 도는 시간은 대략 일주일 정도였지만그 사이에 꽤나 변해있다는 것을 한눈에 알 수 있었어.

 정착하는 것에 대해서 약간 회의감이 있었던 다크앨븐이었지만우리가 직접 일군 마을이란 생각에 감개가 들긴 했지.

 

 바뀐 것들을 하나하나 보고밭에 들러서 아쿠아에게 채소를 건네주고집을 짓고 있었던 곳에 가니 그곳에는 완성 직전의 벽돌집이 있었어.

 조금 원시적인 구조였지만그곳이 우리 네명이 지낼 집이란 것은 명확했지.

 주변에 널려있는 폐허와 비교해서도 꽤 열악해 보이는 구조였지만뭐 시작이란 건 다 이런법이 아니겠어?

 그보다도 돌아올 수 있는 곳을 우리가 직접 만들었다는 사실 자체가 굉장히 감명 깊었지

 

 그렇게 다크앨븐이 거의 다 완성 된 집을 보며 감동 하고 있을 때 그녀의 시야에 붉으스름 한 것이 보였지.

 레프리콘이다!

 기쁜 마음에 레프리콘을 부르려고 했던 다크앨븐이 입을 딱 다문 건 다른게 아니었어.

 그녀의 표정이 너무 좋지 않았었거든.

 

 

 처음에 든 생각은 사령관인가였지.

 그렇지만 그 생각은 금방 사라졌어.

 이미 의심하지 않기로 한 것도 있는데다가 오면서 보았던 아쿠아와 더치걸에게선 그런 기색을 볼 수 없었거든.

 둘에게는 숨기고 레프리콘에게만 뭔가를 했을 수도 있긴 하지만... 그런 기색에 민감한 더치걸이 있었으니까 아마도 그건 힘들 거야

그렇다면 분명 다른 이유가 있는 걸텐데...

 

 다크앨븐은 그 다른 이유가 좀처럼 떠오르지 않았지.

 레프리콘의 표정이 좋지 않은 이유는 대체 무엇일까?

 

 

 

 한편 사령관은 사령관 나름대로 바빴어.

 그동안 이름처럼 불러왔던 호칭이 사실은 제품명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거든.

 

 현실로 따지자면갤럭시 S10~, 람보르기니 무르시엘라고야~, 유니클로 남성용 검정 데님 숏셔츠야라고 부르는 거랑 비슷한 셈이야.

 물론인간형인 만큼 상품명에 신경을 쓰긴 했지만그렇다고 해서 상품명이 아닌 건 아니었지.

 이건 못 참지라고 생각한 사령관은 그날부터 열심히 고민하기 시작했어.

 

 

 

 그렇게 사령관이 고민을 거의 다 끝내던 차에 다크앨븐이 귀환했어.

 타이밍이 좋다라고 생각했지.

 어째선지 자신을 뚫어지게 바라보았던 건 조금 신경쓰였지만이내 별 말 하지 않았던 걸 보고선 크게 마음에 담아두지 않았어.

 

 여하튼 다른 바이오로이드들은 어찌 되었든 터 잡은 마을 주변에서 일을 하던 터라 저녁쯤 되면 임시 숙소로 돌아오는데 반해서 다크앨븐은 아무래도 광범위한 조사를 나갔던지라 얼굴을 보는 것도 오랜만이었으니까그럴 수도 있지.

 

 그녀의 귀환에 사령관은 기쁜 얼굴로 일인분의 음식을 더 준비했어.

 그렇지 않아도 오늘은 집의 완공 기념일로 삼으려고 했던 터라 평소보다 조금 호화로운 재료들로 준비를 하고 있었거든.

 거기에 다크앨븐까지 귀환했으니 더할 나위 없는 하루의 마무리 시간이었지.

 

 저녁시간은 아주 즐거운 분위기로 흘러갔어.

 절반정도는 끝내 놓은 일들에 대한 보고였지만남은 절반 정도는 해놓은 일들에 대한 자축이었거든.

 더치걸의 수로 정비가 끝나가서 이젠 큰비가 내리지만 않는다면 한동안은 문제가 없었어.

 다크앨븐의 정찰이 끝나서 이 주변의 식생 파악이 끝났고 여러모로 사용할 수 있는 지형이나 식물들을 발견했지.

 아쿠아의 밭은 이제 준비가 다 끝나서 정말 씨앗을 심기만 하면 모든 것이 시작되는 상황이 되었어.

 그리고 레프리콘이 짓고 있던 집은 드디어 완공 직전에 다다르게 되었어.

 

 약간 원시적인 형태의 집이긴 하지만그래도 이젠 임시 거처가 아니라 우리들이 머물고 돌아갈 집이 생겼다는 사실에 다들 안도하면서 즐거워 했어.

 정작 그 일의 주연인 레프리콘은 조금 안색이 좋지 않았지만 말이야.

 

 여튼 먹고 마시면서 왁자지껄하게 되었을 때 사령관이 중대 발표를 했어.

 바로 명명식이야.

 

 

 자신의 이름을 가진다는 건 바이오로이드에게 있어서 하나의 로망이었어.

 인간으로 치면 로또 당첨되고 싶다 라던가 이번 랜덤 박스 기만이 가능할 정도로 잘떴으면 좋겠다 라고 생각하는 것과 비슷했지.

 분명 그렇게 당첨 되는 사람은 있지만그게 나는 아닌 그런 일이었어.

 사령관은 좋은 사람이니까 혹시나 하는 마음이 없었다면 거짓말이겠지만솔직히 말하자면 먹고 사는 문제에 바빠서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지 않았거나 혹은 따로 개체명을 지정할 만큼 같은 종류의 바이오로이드가 많은 것도 아니니 이름의 필요성이 많이 낮아졌거든.

 생각지도 못한 곳에서 이번 해에 밸브에서 하프라이프 신작을 냅니다.’ 같은 충격을 받게 된 거지.

 바이오로이드라면 싫어할 수 없는 일이었지.

 

 처음으로 이름을 받은 건 아쿠아였어.

 우선 사령관은 아쿠아에게 생각하고 있는 이름이 있는지 물어봤지.

 전혀 생각지도 못했던 일인지라 아쿠아는 그저 고개를 절래절래 젓는 것 정도 밖에 하지 못했어.

 그런 아쿠아에게 사령관은 아리아 라는 이름을 붙여주었어.

 어원을 물어보면 아쿠아 하면 아리아가 생각났기 때문이지 별다른 이유는 없어.

 

 그 다음은 다크앨븐이었어.

 이미 아쿠아가 이름을 받았던 만큼 나름대로 여유시간이 있던 셈이었지만아무래도 오랜만에 돌아온 집에서 집은 완공 되었고환영 파티에이름까지 받으니 행복회로가 전부 타버리는 느낌이었던 거야.

 그러다보니 생각해 둔 이름이 있냐는 말에 역시 고개를 절래절래 젓는게 한계였어.

 사령관은 다크앨븐에게 이루릴 이라는 이름을 붙여주었어.

 사령관에게 엘프하면 이루릴이었기에 붙였을 뿐 별다른 이유는 없어.

 

 다음으로는 더치걸의 차례였지.

 사령관이 자신을 바라보자 더치걸은 오랜만에 정말 행복한 웃음을 지었어.

 내게도 이름을 붙여줄거야?’ ‘그야물론이지.’ ‘그렇다면 그게 무엇이든 상관없어사령관이 붙여준다면 더치걸이 아니라면 뭐든지 좋아.’

 더치걸의 행복한 미소에 사령관은 푸근해지면서도 마음이 조금 아팠지.

 

 더치는 네덜란드 인이라는 단어니까 네달란드 어로 정했어프레이헤드vrij'heid. 자유라는 뜻이래그러니 앞 글자를 따서 프레이 라고 부르고 싶어.”

 

 내 이름은 앞으로 프레이야잘 부탁해.”

 

 서로를 바라보면서 웃는 훈훈한 장면이 넘어가고 드디어 레프리콘의 차례가 되었지.

 

 사실 사령관 본인은 잘 모르고 있는 것 같았지만다른 일행들은 다 눈치 채고 있었던 사실이 하나 있었어.

 사령관이 깨어나서 처음으로 만난 사람이 레프리콘이라서 그런지 은근히 다른 바이오로이드들 보다 신경을 써주고 있다는 사실이야.

 본인이 그걸 잘 자각하고 있는지 확실하진 않은데다가 다들 공평하게 대접하려고 노력하는 터라 잘 티가 나지 않지만원래 연애라는건 당사자들이 아니라 주변에서 보면 잘 보이는 법이지.

 그래서 마지막에 이름을 붙여주는 것도 그 연장선으로 봤어.

 

 문제는 당사자인 레프리콘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던 거야

 아니어떻게 보면 제대로 봤다면 본거긴 했지.

 이름을 붙여주는 순서가 서열 순 내지는 애정도 순이라고 생각했거든.

 요즘 통 우울한 생각밖에 하지 않아서 그런지 모든걸 그쪽으로 끼워 맞추려고 한 거야.

 그래도 기쁜 날이고 실제로도 기쁜 일이었으니 그런 감정은 최대한 티를 내지 않으려고 했어.

 사령관이 이름을 붙여주면 얌전히 받을 생각이었지.

 어쨌든 자기만의 것을 받는 다는 건 분명 레프리콘이 바라지마지 않던 일이니까.

 

 그런데 사령관이 다른 바이오로이드에게 바로 이름을 붙여줬던 것과 달리 조금 꾸물거리고 있었어.

 뭘까나 같은 애한테는 이름 붙여주기도 아깝다는 걸까?

 티내지는 않지만 가슴 속에서 스멀스멀 올라오는 감정에 문득 눈물이 날 것 같을 때사령관이 무언가를 꺼냈어.

 

 레프리콘우선 감사하다는 말을 해주고 싶어그동안 집을 지어주느라 고생이 많았어점토를 가져와서 굽고 그걸 다시 건물로 만드는 작업은 굉장히 고된 일이니까다 끝나게 되면 꼭 감사의 말을 하고 싶었어고마워.”

 

 사령관이 꺼낸 말은 생각하고 있던 것과 많이 달랐지레프리콘은 사령관의 말에 말문이 막혔지만사령관의 말은 거기서 끝이 아니었어.

 

 생활 시설도정착할 토지도주변 환경도 중요하지만그래도 가장 중요한건 집이라고 생각해이곳은 이제 우리가 살아가고 돌아올 집이야여기서부터 우리가 시작하는 거지.”

 

 그 말은 집과 자신을 동일시하고 있던 레프리콘에게 크게 와 닿았어.

 있으면 좋지만없어도 그만인 집.

 마찬가지로 있으면 좋지만없어도 곤란하지 않은 자신.

 그렇지만사령관은 그렇지 않다고 말하고 있었어.

 자신을 똑바로 바라보면서.

 그리고는 꺼냈었던 것을 자신에게 내밀었지.

 

 그래서말이지내겐 네가 특별하거든그 증표를 받아줬으면 한다고 할까....”

 

 그게 뭔지는 지식으로는 알고 있었어.

 자신과는 연관이 없는 것이라고 생각했지.

 양산형인데다등급도 낮고전투용에뭐하나 특별하지 않은 자신과는 연관 없는 물건.

 레프리콘은 사령관의 손에 들린 물건을 양손으로 잡으며 말했어.

 

 사령관님가지고 싶은 이름이 있어요.”

 

 ..말해줄래?”

 

 우리가 이곳에 정착하게 되면 다른 자매들이 점차 이곳을 방문하게 되겠죠그 중에는 저와 같은 기종인 자매도 있을테고요저희는 전투원으로서 아주아주 많이 생산 되었으니까요.”

 

 “.....아마도 그러겠지.”

 

 당신은 상냥하니까그 모두에게 이름을 붙여주겠죠지금 그렇듯당신은 우리가 물건이길 바라지 않고 사람이길 바라니까요.”

 

 분명 그럴 거야.”

 

 그러니나는 당신에게 있어서 단 하나 뿐인 레프리콘이 되었으면 해요같은 얼굴에비슷한 성격에비슷한 능력을 가지고 있다고 해도나는 레프리콘이지만당신만의 레프리콘이고 싶어요.”

 

 “.....”

 

 안 될까요?”

 

 안될 리가.





https://arca.live/b/lastorigin/25386942

--------------------------------------


역대급으로 오래걸리고 마음에 안든 화였어.


후반부는 에필로그로 넘어가기 직전으로 생각했던 장면이라 괜찮았는데 초반부가 너무 힘들었네.


원래는 좀 더 빌드업을 쌓고 뭘 좀더 하고 그래야 했는데 마지막 장면이 화학변화를 일으켜서 생각보다 많이 당겨 오게 되었네.


그러다보니 좀 사령관 고백이 갑작스러웠을 것 같아.


레프리콘 고백도 끝났으니 다음화로 끝일 예정이야.


메우 이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