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주인공 하르페이아!

***


아주 아름다운 별들이 빛났던 밤.

평화로울 것만 같았던 그 일상은... 이젠 없다.

단 한순간에... 모든 것이 사라졌다.


그 날 밤.

유성우처럼 아름답지만, 반대로 아주 무서움을 가지고 있는 그것들이 하늘에서 내려왔다.

그것은 생명이라곤 찾아볼 수 없는 차가운 몸에 기생했고, 모든 것을 없애기 시작했다.


우리는 그것을.. 세계를 지금 당장이라도 멸망시키고 있는 그것들과 맞서 싸웠다.

하지만 철덩어리들에 기생해 모든 것을 삼킨 그들을 이길 수 없었다.


전력차는 압도적이었다. 이대로 전면전을 한다면 우리는 멸망할 것이 분명했다.

그래서.. 우리는 후일을 도모했다.


저것들이 사라지는 날까지 우리들은 절대로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그렇게 다짐하고 숨어들었다. 계속해서 싸우면서 미래를 생각했다.


우리들의 세계를 멸망시킨 저들을 전부 없애고 새로운 세계를 되찾는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면서. 그리고... 시간이 지나. 나는 혼자가 되었다.


지금의 내 곁에 아무도 없는 것은 아니다. 내 곁에는 인간의 한계를 이미 뛰어넘은... '바이오로이드'들이 있었다.

함께 싸웠던 '인간이었던' 전우들은 이제 없다. 난... 이 전장에 마지막으로 살아남은.. 마지막 근원.


Last Origin이었다.


"각하. 오늘의 일정입니다."


"...오늘 일정이 생각보다 많은 거 아니야?"


"어쩔 수 없습니다. 어제 그렇게... 하셔놓고선.. 으읏..!! 아무튼... 당연히 밀려있는게 정상입니다.."


오르카. 지금 내가 승선하고 있는 잠수함이자.. 내가 사령관으로 있는 바이오로이드의 저항 부대다.

라비아타 프로토타입을 중심으로 해 모인 바이오로이드들은 인간을 찾아 나섰고, 나를 발견했다.


그리고... 나는 철충과 별의 아이를 포함한 모든 것들을 없애고 평화로운 세계와 인간을 재건하기 위해

전략과 전술을 짜고, 바이오로이드를 관리하고, 인간을 재건하기 위해 하고 싶지도 않은 것들을 했다.


어차피 그녀들과 나는 상부 상조. 각자가 가진 목적을 위해 서로가 서로를 돕는 관계에 지나지 않는다.

내가 원하는 목적은 '철충과 별의 아이를 모두 없애는 것'. 그리고 그녀들이 원하는 목적은 '인류의 재건'.


난 그런 행위들을 그녀들과는 하고 싶지도 않았다.

그렇다고 바이오로이드가 임신을 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다.

어느 정도의 위험성은 가지고 있지만, 그녀들은 인간의 씨앗을 받아.. 임신할 수 있다.


내가 가진 인간의 씨앗과 그녀들이 가진 씨앗으로.. 새로운 생명을 탄생시킬 수 있다.


하지만 그곳에는 '감정'따위는 없다. 그저 그 당시에만 느낄 수 있는 쾌락과.. 목적만이 있을 뿐이다.


그래도 나는 그녀들에게 이런 모습을 보이면 안 된다.

라비아타 프로토타입은 이곳에 없다. 그럼 오르카를 지휘할 수 있는.. 정신적으로 버팀목이 될 수 있는 사람은.. 나밖에 없다.

그런 내가 약한 모습을 보이면 오르카의 사기도 떨어질 것이 분명하고, 내 목적 또한 이룰 수 없게 될 것이다.


나 만큼은.. 절대로 약한 모습을 보여서는 안 된다.

하지만... 나도 어쩔 수 없는 인간이다. 감정, 생각, 욕구 그 모든 것을 가지고 있는 인간.


오르카에 들어와 사령관이 된 지 약 1년.

처음에는 그나마 버틸만 했다. 그저 목적만을 가지고 하면 되었었고

어린 바이오로이드들을 돌봐주는 것도 나름 좋아했었으니.


거기다 나처럼 멸망 전의 기억을 가지고 있는 바이오로이드들의 케어도

얘기를 듣고보면 나쁘지는 않았다.


처음에는 말이다.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오르카의 사령관으로서 해야하는 일들은 쌓여만 갔고

예전부터 하던 어린 바이오로이드와 놀아주는 거나, 같은 아픔을 공유하는 바이오로이드들의 케어도 하지 못했다.

첫 출항 때부터 오르카의 인원은 엄청나게 늘어났고, 혼자서는 일도 하지 못해 다른 바이오로이드의 손까지 빌려야 했다.


나만의 개인적인 시간은 계속해서 줄어만 갔고, 감정이 아닌 목적만이 보이는 관계는 더욱 늘어났다.


더는... 내 마음이 버틸 수 없었다. 지금 당장이라도 나는 도망치고 싶었다.

하지만.. 오르카는 잠수함이다. 그리고 오르카의 구심점은 나다.


나는... 절대로 도망갈 수 없었다. 내가 망가지면 오르카도 같이 망가지고

철충과 별의 아이의 시체를 죽은 전우들에게 바치겠다는 내 목적도 절대로 이룰 수 없었다.


하지만.. 이 사실이 다른 바이오로이드의 귀에 들어간다면 그것은 그것대로 괴롭게 만들 것이다.

그래서 나는... 지금의 이 스트레스를 풀 수 있는 나만의 취미를 찾기 시작했다.


아우로라에게 디저트를 배워보기도 하고, 마리와 함께 커피를 마시면서 시간을 보내기도 했다.

레오나를 에스코트하면서 데이트를 해보고, 호드와 같이 술 판을 벌이기도 했었다.


아이돌을 하고 싶다는 슬레이프니르의 말에 조금은 어울려 솔로 데뷔를 시켜보기도 하고,

지능이 뛰어나다는 로크랑 체스를 두기도 했다. 세띠와 동물들을 돌보기도 했다.. 만.


그 모든건 헛 수고였다.


아무리 취미 생활을 가진다해도 이미 비어버린 마음은 채워지지 않았다.

애초에 흥미도 없는 것을 취미 생활로 하겠다고 진짜로 해버린 나도 문제가 있겠지만.

그럼에도 나의 마음은 아직도 비어있는 상태였다.


이젠... 빠르게 목적을 달성하고 죽음밖에 생각하고 싶지 않았다.

그냥... 편하게...


"꺄악!"


"으.. 으흐으극.."


이건... 또 무슨... 하다하다 다른 바이오로이드랑 부딪치기까지 하고.. 으윽... 아파라하...


"사.. 사령관?! 괜찮은거야?!"


...허리가 조금 아프긴 하지만... P-22.. 분명 이름이 하르페이아였나?

스카이나이츠 소속의.. 고맙네. 그래.


"괜찮아. 움직일 수는 있어."


언제나 봐도.. 진짜 부담스러운 가슴이다.

저렇게 크면 어깨게 결리거나 아프다고 하는데.. 바이오로이드라 아프지는 않나..


"혹시 아프면.. 수복실에 대려다 줄까?"


"괜찮아. 아직 할 일도 있으니까. 먼저 가 봐."


"응! 고마워 사령관!"


그럼 나도 다시 사령관실로 출발을... 잠깐만 이건..?

분홍색 표지에... 노란 장미 이야기? 표지는 분홍색이면서

제목이 노란 장미 이야기는 또 뭐야..


아무튼... 이건 내가 가지고 있는 책은 아닌데..

그럼 하르페이아가 가지고 있던 책인가?


..분명 손에 책을 조금 들고 있었는데..

나중에 알아서 찾아오라 하면 괜찮겠지.

일단... 다시 돌아가서 일이나 마저...


.

.

.

.

.

.



"사령관! 지금... 뭐 하고 있는거야?"


"...하르페."


하르페이아가 부르자 사령관은 보고 있던 노트북을 닫고 뒤에서 미소를 지으면서 지켜보고 있는 하르페이아를 향해 걸어갔다.

그저 말을 걸었을 뿐인데 자신에게 다가오자 하르페이아는 얼굴을 붉히면서 사령관의 시선을 피했고, 

그런 것은 전혀 신경쓰지 않는다는 듯이 사령관은 하르페이아를 조금 강하지만 상냥하고, 따듯하게 안아주었다.


"사.. 사령관..?"


"우리 이야기를 쓰고 있었어.. 왠지 소설로 남기면 재미있을 것 같아서."


사령관의 말에 하르페이아는 놀란 표정을 지었다.

자신과 사령관의 이야기를 사령관이 '직접' 소설로 쓴 다는 것을 들었을 때 놀라지 않을 바이오로이드는 없었으니까.

하지만, 하르페이아의 놀란 표정은 얼마 지나지 않아 아주 기뻐보이는 미소로 변했고, 자신도 사령관을 소중하게 안아주면서 말을 꺼냈다.


"그럼.. 완성되면 나에게 보여주는거야?"


"..당연하지. 완성되면.. 당연히 보여줄게 하르페."


"...고마워 사령관. 기대.. 하고 있을게..?"


"그렇게 기대는 하지 말아줬으면 하는데.. 그렇게 잘 쓰지도 못 하니까."


"사령관이 쓴 거라면 난 뭐든지 좋은 걸? 설령... 그.. 야한.. 이야기.. 라도.."


조금 머뭇거리면서 하르페이아가 그런 말을 하자 사령관은 바로 하르페이아를 안은 팔을 풀고 

하르페이아를 바라보았다. 갑자기 팔을 풀어버리자 하르페이아는 당황했지만, 사령관은 그대로 하르페이아에게 키스했다.


"후...우으브..."


"가만.. 하아.. 히.. 있어... 하르페.."


조금의 문제가 있었지만, 하르페이아와 사령관은 서로를 느끼면서 키스를 했고, 

30초 정도 지나자 하르페이아와 사령관 사이에는 투명한.. 침으로 된 다리가 만들어졌다.


"하르페가.. 잘 못 한거야..? 그런 말로 유혹하면..."


"나.. 나는 유혹 같은건.."


"야한거라도.. 보겠다고 말하려는 게 아니었어?"


"그.. 맞긴 한데... 내가 말한건 어디나 소설.."


"그래서.. 하르페는 나랑 하는게.. 싫은거야?"


"싫진... 않아..."


하르페이아의 수줍은 고백은... 이미 키스까지 해서 이성을 잃기 직전까지 가버렸던 

사령관의 이성을 놓기에는 충분한 자극이었고, 그대로 사령관은 하르페이아를 안아 들어 침대로 향했다.


그리고... 사령관은 하르페이아가 입고 있는 옷들을 천천히 벗겨나가기 시작했고,

사령관의 따듯한 온기를 느끼면서 하르페이아도 사령관의 옷을 천천히 벗겨나갔다.


그리고... 태어날때의 모습 그대로를 가지고 있는 두 사람은.. 서로를 마주보면서 침대에 누웠다.


"하르페.. 사랑해. 너무 좋아해."


"...나도 사령관을.. 사랑해..!"



오늘도.. 오르카는 행복했다.


***

이야기를 더 쓰고 싶었는데 할게 있어서 이것만 썼네.

당연하겠지만, 사령관의 소설 파트는 더 써서 다시 올릴 생각이고,

이건 그것을 위한 맛보기용으로 봐주면 고마울 것 같아.

재미있게 봐줬으면 정말로 고마워.


그리고 노란 장미의 꽃말은 '변하지 않는 사랑'이래.

하르페이아랑 잘 어울릴 것 같지 않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