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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편 연재 중에 의도치 않게 저격을 맞은 창작물이 있다? 뿌슝빠슝



미안하다.. 하지만 전부터 하던 거라 멈출수가 없다

언젠가 나앤 애호문학으로 속죄할게...



* * *


가끔 그럴 때가 있다. 너무 당황하면 눈앞의 문제보다 다른 잡생각만 떠오르는.


아르망이 바로 그런 상태였다. 그녀의 머릿속엔 이 상황을 빠져나갈 방법보다 '누구부터 죽는 거지' 하는 생각이 먼저 떠오를 뿐이었으니.


그런 아르망을 한심하게 지켜보던 용이 팔을 지켜들자, 누군가의 비명소리가 아르망의 귓가를 때렸다.


누구지..? 카엔? 아니, 카엔은 초밥이라도 만들 수 있잖아. 좀 더 후순위겠지. 백토인가..?


여전히 정신을 차리지 못하는 아르망을 보면서 무적의 용이 두번째 집행을 명하려던 순간, 그녀의 품에서 패널이 시끄럽게 울렸다.


하필 이런 타이밍에. 용이 짜증을 내면서 화면을 확인했다. 


<멸망의 메이>


오르카 호와는 모든 연락을 끊고 지내던 용이었지만 지휘관 개체끼리의 비상연락망은 예외였다.


"오, 연결됐어! 나앤, 연결됐다구!"


용이 통신을 연결하자 메이가 호들갑을 떠는 목소리가 들렸다.


"알았으니까 비켜, 대장."


나이트 앤젤이 짜증스럽게 메이를 밀어내고 용과 마주했다.


"오호.. 둠 브링어는 못 보던 사이에 콩가루가 된 것 같소?"


"호라이즌도 가루가 되고 싶지 않으시다면 둠 브링어의 명예를 모욕하는 건 그만두시죠."


"알았소, 주의하지.... 대령. "


둘 사이에 신경전이 오갔다. 아무래도 서로가 서로를 배신자로 여기고 있기에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을 쪽은 나이트앤젤이었기에, 그녀는 애써 얼굴에서 불쾌감을 지으며 물자지원 "해줘" 를 시전했다.


비상연락망으로 자원을 구걸할 정도로 벌써 막장이 된 건가. 쓴웃음을 지었다. 


"그런데, 애초에 그건 요안나 섬에 먼저 요구해야 하는 것 아니오?"


"평소라면 그렇게 했을텐데 말입니다. 음... 지금 그 섬에 있던 인원과 물자가 통째로 사라진 상태입니다."


"뭐라 했소? 사라져? 그러면 주군은?"


"그걸 지금부터 알아봐야 하니까 지원이 필요하다는 겁니다."


비로소 용에게도 전달된 철남의 소식. 사태 이후 쭉 냉정함을 유지했던 그녀였지만 철남의 실종소식에는 당혹스러운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알았소. 일단 지금 급한 일이 있으니 잠시 후 다시 연락하지."


통화를 끊은 용의 시선은 다시 아르망을 향했다.


"들었겠지만, 주군께서 갑자기 사라지셨다고 한다. 어떻게 생각하지?"


"아마도.. 새로운 사령관 측에서 무리한 요구를 해서.. 잠적하신 게 아니실지... 멀리 도망칠 여력은 없으셨을 테니.. 섬에 숨어계시겠지요."


아르망이 숨을 고르며 힘겹게 대답했다.


"내 생각도 같다. 아무래도 너희가 여기서 죽을 운명은 아닌가 보군."


용은 D-엔터 멤버들을 풀어주도록 하고, 세이렌에게 지시했다.


"우리는 임무 중이라 작전 지역을 벗어날 여유가 없다. 빠른 배 한 척만 준비해라. 소수만 데리고 내가 직접 다녀올테니."


"함장님께서 직접요?"


"아르망을 데려간다면 주군을 찾는데 그렇게 오래 걸리진 않겠지.

주군의 고난도 모르고 있던 불충, 한시라도 바삐 만나뵙고 사죄해야 한다."


말을 마치고 용은 메이로부터의 통신을 차단했다.



* * *


며칠이 지나지 않아, 무적의 용과 아르망이 탑승한 배는 바다를 가로지르며 요안나 아일랜드 인근까지 도달했다.


"함장님, 섬이 보입니다. 경계병이 있는 것 같군요."


철남을 발견하진 못했지만 무언가 꺼림직함이 남았는지, 두 번째 인간은 요안나 섬에도 파수를 세워 둔 모양이었다.


용이 보고를 듣고 경계병의 규모를 파악하고 있을 때, 갑자기 아르망이 몸을 부르르 떨더니 바다로 뛰어들었다.


"사.. 살려주세요! 어푸어푸.."


????


"어풒푸.... 그.. 현사령관... 풉...육지 근처.. 풒푸.... 가지 말라는 명령 때문에.... 꼬르륵.."


"..........."


무적의 용은 한숨을 쉬며 배를 멈추고 아르망을 구조하게 했다.


"보트를 하나 내줄테니 섬과 거리를 유지하면서 크게 원을 그리는 식으로 움직여라."


용의 지시에 물에, 흠뻑 젖은 아르망은 옷을 말릴 틈도 없이 이를 딱딱 부딪치며 관측 장비와 함께 보트에 태워졌다.


"원거리에서 섬을 살펴보고 ,주군이 계실 것으로 예상되는 좌표를 통신으로 보내도록."


그렇게 아르망을 보낸 뒤 무적의 용은 호라이즌 병사들과 함께 섬에 상륙, 섬에 남아 있던 브라우니들을 간단히 몰살시켰다.


섬에 있던 브라우니들이 수적 우위에도 불구하고 속수무책으로 당한 이유는 두 가지.


지휘관이었던 라비아타나 드라큐리나는 이미 오르카 호로 돌아가 이들은 지휘 체계란 게 없던 상태였고,


이들의 역할은 섬 내부에서 사령관이 나타나는 것을 경계하는 것이었지, 섬 외부로부터의 침입은 상정 외였기 때문이다.



* * * 


"역시 용이야! 구하러 왔구나!"


"사령관... 그 대사는 위험해...."


반갑게 맞이하는 철남에게 용은 허리를 굽히고 사죄했다.


"이런 곳에서 고생하시는 걸 모르고 있었다니... 면목없소. 이제부터는 이 몸이 모시리다."


"아냐, 이런 걸로 죄책감을 가질 필요는 없어. 그러면 당분간 신세 좀 질게."


용과 인사를 나눈 철남은 곧바로 용이 지휘하는 함대로 이주하기로 결정했고, 이내 벙커 내부는 이주 준비로 바빠졌다.


분주하진 와중에, 아스널이 용에게 다가와 악수를 청했다.


"여기를 빠져나가는 문제가 걱정이었는데, 정말 딱 적절하게 와 줬군 그래."


"오랜만이오, 아스널 준장. 설마 이런 상황에서도 못 참고 사령관을 덮친 건 아니겠지?"


"하하! 마음 속으로는 수십 번도 더 그랬을텐데, 워낙 바빠서 말이지."


아스널의 발언을 들은 철남이 미호를 쓱 바라보았고, 그녀는 붉어진 얼굴로 시선을 회피했다.


"그... 사령관? 한 가지 문제점이 있어."


미호가 급하게 화제를 돌렸다. 


"여기 있는 물자... 다 못가져가지 않을까? 배 한척만 왔다며?"


"어.. 그러고보니 그렇네. 용, 이거 어떻게 안 될까?"


"흐음... 무리일 것 같소."


철남 일행이 비축해 둔 물자를 확인한 용도 고개를 저었다. 


가져갈 수 없다면, 모두 없애버려야 한다. 물자 부족에 시달리는 오르카 호가 이것을 발견한다면 가뭄에 단비일테니.


"하.. 이거 전부 폐기해버리면 나중에 안드바리한테 혼날텐데..."



* * *


"아르망? 우리가 물자를 여기에 숨겨 놓고 가면, 저쪽에서 발견할 가능성이 얼마나 될까?"


철남은 보트에서 대기중인 아르망에게 통신을 연결해 문의했다. 


이런 상황에서 적에게 물자를 넘겨 주지 않는 것은 기본 중의 기본이지만, 철남은 영 내키지 않은 듯 했다.


"으음.. 아무리 위장을 잘 해도.. 30퍼센트, 혹은 그 이상이 될 수 있습니다."


"이런..."


30퍼센트면 위험 부담이 너무 높다. 역시 포기해야 하나?  


아까워하는 철남에게, 아르망이 대안을 하나 제시했다.


"폐하, 제게 저들이 숨겨진 물자를 발견할 가능성을 10%대로 낮출 방법이 하나 있습니다만..."


"오, 말해봐."


"벙커에 남은 자원중에 한 20% 정도를, 섬 가운데에 모아놓고 태워 버리세요."


"오. 우리가 싹 다 불태우고 갔다고 착각하게 만들자는 거구나."


"예. 다만 태우는 정도로는 완전히 못 쓰게 되지 않을 것들이 많아서, 아마 저들이 발등에 떨어진 불을 끌 정도는 얻게 될 겁니다.

챙겨갈 것이 생기면 그만큼 눈이 어두워지겠지요."


"확률은 낮아졌지만 위험 부담이 있는 것은 마찬가지. 게다가 배신자들에게 확정적으로 물자가 들어간다니, 오히려 좋지 못한 선택 같소."


무적의 용은 여전히 남은 물자를 모조리 폐기할 것을 주장했지만, 철남은 결국 아르망의 제안을 따랐다.


열심히 모아온 것을 버리기는 아까웠기도 하고, 두 번째 인간이 궁지에 몰리면 다른 섹돌들에게 무슨 짓을 할지 모른다는 걱정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생각하면 오히려 이 기회에 조금 내어 주는게 나을 수도 있다.


결국 철남의 지시로 요안나 섬에서 불길이 이는 와중에, 오르카 호 쪽에도 용의 요안나 아일랜드 기습에 대한 정보가 들어갔다.



* * *


"없어요! 먹고 죽을래도 남은 게 없다구요. 못 믿으시겠으면 들어와서 확인해 보실래요?"


나이트 앤젤은 자신의 연락은 쌩까고 철남을 찾으러 왔다는 보고에 분개했으나, 곧 이것이 둘을 모두 처리할 절호의 기회임을 깨달았다.


하지만 이번에도 출격을 방해하는 것은 안드바리였다.


"얼마전에 스카이나이츠 애들이 벌어온 건?"


"그것도 진작에 사령관님이 다 까먹으셨죠." 


사실 이미 안드바리는 그나마 남은 자원의 절반을 빼돌린 상태였다. 


칸과 결탁한 시스터즈 오브 발할라는 이미 내부에서 오르카 호를 흔드는 작업에 들어갔고, 자원을 타노스 시킨 일도 그 일환이었다.


"젠장.. 어떻게든..."


"정 출격하고 싶으시면 저를 해체시켜서 그 자원을 쓰시죠!"


안드바리는 아예 배를 째라며 드러누웠고, 시간낭비를 할 수 없었던 나이트 앤젤은 자신의 집무실로 돌아왔다.


그리고 거기엔 나이트 앤젤이 안드바리와 입씨름을 하는 사이, 철남 일행이 이미 요안나 아일랜드를 떴다는 보고가 들어와 있었다.


결국 그녀는 자원 없이 추격대를 출격시키기로 했다. 왕복과 교전에 필요한 만큼의 연료와 전력이 아닌, 딱 저들의 배에 닿을 정도만 줘서.


"멸망전의 한 장군이 말하길, '보급이란 원래 적에게서 취하는 법이다.' 라더라."



그렇게 추격대를 내보낸 나이트 앤젤은 멍하니 천장을 바라보았다.


그녀는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다.


출격 비용조차 모자란 상황에서 이 방법이 최선이었다는 것도.


그리고 그 최선의 방법이란게 파멸로 이어지는 레일을 까는 짓일 수도 있다는 것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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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고 보니 이번 편만 보면 무용네가 데우스 엑스 마키나로 보이네

앞으로 서너편 정도면 완결낼 수 있을 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