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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정에도 없던 테마 파크에의 두 번째 방문을 앞둔 아침.

좌우좌를 데리러 복도를 지나가던 리제는 붉은 옷의 소녀 - 아르망을 문득 발견하고 멈춰섰음.

육체만 복원된 상태로 몇 번 본 적은 있었지만 연산 능력까지 완성한 후에 마주치는 건 이번이 처음이었던가.

어제도 자기는 아이들을 데려다 놓느라 바빠서 사령관하고만 만났던 것 같고.


- 오래간만이네요, 아르망 추기경.

- 안녕하세요, 전하.


……전하?

설마 '폐하'의 배우자라 그런 거야?

당혹스러움을 감추지 못하고 그냥 이름이나 직책명이면 된다고 정정했더니, 아르망은 그럼 자기도 아르망으로 충분하다고 대답했지.

물 흐르듯 넘어가는 걸 보니 이것도 예상했구나.

떨떠름한 표정을 감추지 못하는 리제에게 작게 웃어보인 후, 아르망은 자연스럽게 옆에서 보조를 맞추어 걷기 시작함.


- 저에게 다른 용건이라도 있나요?

- 제게 묻고자 하시는 일이 있지 않을까 하여.


'할 말 있어?' 에의 대답이 '나한테 물어볼 거 없어?'라니 기묘하다 기묘해.

물론 아르망을 만나면 당장 물어보려고 벼르던 게 있기야 했었지.


- 그이의 과로가 걱정되는데, 어떻게 생각하나요?


원작 전개에 맞춰가기를 포기한 것도 한참 전인데, 과로로 쓰러지는 걸 내버려 둘 생각은 없었으니까 말이지.

해서 원작에서 예측과 경고를 담당한 당사자인 아르망에게 물어본 건데.


- ……?


정작 그 아르망이 의외 그 자체라는 반응을 하고 있었음.

리제는 아르망이 그렇게 반응하는 게 의외였으니 서로 물음표만 띄우는 꼴이 되었지.

결국 먼저 수습한 건 아르망이었어.


- 물론 멸망 전 평범한 인간의 신체라면 절대로 견디지 못할 업무량을 소화하고 계신 것은 사실입니다.


리제 님이 걱정하시는 것은 그런 연유에서겠지요.

자신만만하게 단정하는 와중에 원작지식 운운할 수도 없어서 애매하게 고개를 끄덕였더니, 아르망은 내심 뿌듯해하는 표정으로 추가적인 설명을 해줌.


- 그러나 현재 폐하께서 사용하고 계신 몸은 오리진 더스트를 아낌없이 사용해 강화한 것.

 이번 일로 인한 심로는 걱정됩니다만, 체력적인 면에서의 우려는 전혀라고 해도 좋을 만큼 없습니다.


그릉가?

아니, 아르망이 그렇다면 실제로도 그럴 가능성이 높고, 나쁜 소식도 아니긴 한데 원인을 모르겠으니 어딘가 찝찝했네.

원작에 비해 야스를 자주 안 해서 그런가? 아니면 라비아타가 대신해서 열일 중이라?

물론 그렇게 이것저것 떠올려 봤자 말 그대로 자기가 아르망도 아닌 이상 뭐가 정답인지는 불명이었지.


결국 평소의 '좋은 게 좋은 거' 정신으로 넘어가려고 했다가, 아르망이 지긋이 자길 바라보고 있다는 걸 뒤늦게 알아챔.

그러고 보니 이게 아르망이 기대한 질문은 아니었지.

그러면 또 어떤…….


- 아. 혹시.

- 말씀하십시오.

- 그이가 '그 광경'을 보는 것에 대한 우려는 없으셨나요?


원작에서는 사령관이 '구인류' 해버릴지 모른다는 걱정에 아자젤과 함께 단호하게 막아섰다는 걸 고려하면 뒷수습을 위해 아자젤을 파견한 건 정반대에 가까웠으니까 말이지.

……아니, 여기서까지 그랬으면 '네가 뭔데 우리 사령관을 의심해?'라며 내심 뿔이 났을지도 모르니까 다행이라면 다행이지만.


- …………?


아무래도 또 오답인가봐.

명백하게 당황한 표정으로 손가락을 꼽아보다가, 아르망은 헛기침으로 어떻게든 분위기를 수습하고 다시 차분하게 대답함.


- 지극히 희박한 가능성으로는 고려했습니다.

다만 상황 자체는 드론에 의해 실시간으로 전해지고 있었으므로.


그롁구나.

뭐, 이 부분이야 아르망이 좀 더 오르카 호에서 지나면서 사령관이라는 개인을 알아가면 자연스레 해결될 테니 안심.

그 즈음해서 좌우좌의 방에 도착했기에 아르망과의 대화는 마무리되었고, 신나서 까불거리며 달려든 좌우좌 때문에 리제는 아르망이 작게 중얼거린 '고생하세요' 라는 말을 듣지 못했음.


*   *   *


- 짐은…… 아직…….

- 그래, 그래.


키르케가 만든 츄러스를 다람쥐처럼 갉아먹으면서 A구역을 헤집고 다닌 건 좋았지만, 역시나 이틀 연속으로 전력으로 돌아다니는 건 체력적으로 무리였지.

오기로 눈을 끔뻑이는 좌우좌를 토닥여서 재운 게 딱 점심 시간 즈음이니, 약속한 만큼은 버틴 것만 해도 장하다고 해야 할지.

좌우좌를 넘겨받은 사령관이 다시 운송용 드론에게 조심스럽게 앉혀서 돌려보내고 나니까, 키르케가 감탄함.


- 굉장히 숙련되어 보이시네요?

- 그나마 익숙한 편이라서…?


마리아나 '그 중장 보호기'가 합류하면 이쪽도 전문분야 타이틀은 내어줘야 할 테지만.

리제가 어제와는 다른 의미의 피로감에 짧게 숨을 고르는 동안, 사령관은 A구역의 전경을 눈에 담으며 내심 테마 파크에 작별을 고하고 있었지.


- 키르케도 수고했어.


해서 이런 말도 했는데.


- 어머, 무슨 말씀이세요? 가장 중요한 시설이 남아있는데.


평소의 어딘가 의뭉스러워 보이는 것과도, A구역에서 노는 아이들을 바라볼 때의 티없이 밝은 것과도, C구역에 당도했을 때의 음울한 것과도 다른 - 위험할 만큼 요염한 미소.


아, 맞다. B구역.

오늘은 말할 것도 없고, 어제도 A구역에서 미적거리다 바로 C 구역으로 향해서 사실상 스킵했었지.

긴장 반 기대 반으로 굳어버린 리제의 반응을 귀신같이 눈치채고, 키르케는 다 안다는 듯 의미심장하게 고개를 끄덕였음.


- 자, 그럼. 바로 진짜 투어를 시작할까요?

 이 투어를 함께하시는 두 분에게 상상도 못한 쾌락을…….

- 구원자님을 유혹하는 것을 멈추세요, 이 마녀!

- 어머나~?


그리고 여기서 수녀 난입이라니.

티격태격거리는 미래의 술친구(아마도)를 바라보며, 리제는 조용히 챙겨뒀던 팝콘을 꺼내서 사령관에게 권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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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하다... 길어질 거라고는 했어도 이렇게 길어질 거라고는 생각 못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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