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도의 바다는 생생하다.
선수에서는 잔잔한 파도가 흰 거품이 되어 부서지고 흩뿌려진 햇빛의 반사광 사이로 비취빛 물결이 갈라지며 관능적인 바다의 속살을 내보인다. 멍하니 지켜보면 몇 시간이 지나도 질리지 않을만한 광경이지만, 종종 끝도 없이 내려다보이는 산호빛 해수가 두려움을 불러일으키기도 한다.
깊이를 잴 수가 없는 탓이다.
손을 담그면 금새 모래를 쥘 수 있을 것처럼 얕아보이는데 막상 무언가를 떨어뜨리면 바닥에 닿을 때까지 한없이 천천히 추락해간다. 대개는 바닥에서 먼지를 일으키는 마지막 모습을 눈으로 확인하기도 전에 멀어져 안 보이게 되는 경우가 더 많았다.
무적의 용에게 사령관은 그런 사람이었다.

“호라이즌의 승무원과 타 부대원들 전원 승함을 마쳤소. 연료보급을 마치고 한 시간 뒤에 출항할 예정이오.”

옆구리에 무언가를 낀 채 갑판에서 바다를 바라보는 사령관에게 다가가며 무적의 용이 입을 열었다.
밤하늘을 참빗으로 빗어놓은 것 같은 흑발과 어깨에 걸쳐둔 코트가 바닷바람에 휘날린다. 그녀의 몸에 딱 맞는 흰색 블라우스에는 티끌 하나 없었고 무릎까지 닿는 길이의 스커트 역시 주름 없이 잘 다려져 있었다. 매끈한 발을 감싼 굽이 낮은 단화까지만 보면 영락없는 규중의 아가씨지만, 허리에 두른 네 자루의 패검과 곧고 깊은 눈빛이 그녀에게 바다를 호령하는 대장의 위엄을 부여하고 있다.
연못 위에 고고하게 정주하는 백련.
그것이 용을 처음 만났을 때 사령관이 품은 감상이었다.

“수고했어. 순전히 내 욕심이라 거절할 수도 있었을텐데.”
“아니오. 나를 포함해 모든 대장들이 필요성을 인정했기에 받아들인 것이오. 그대가 미안함을 느껴야 할 이유는 없소.”

오르카 호의 인원 중 일부나마 수상함으로 순환근무시키자는 사령관의 제안이 우여곡절 끝에 받아들여져 실행된 참이다.
식수 및 식량의 조달에 경비계획, 배의 운용에 생기는 변경점까지. 겨우 몇 마디 말로 끝낼 수 있을 정도로 수고가 적게 들었을 리 없는데, 용은 자신의 공을 내세우는 대신 담담하게 계획의 장점을 설명하기 시작했다. 무인다운 그녀의 고지식함에 속으로 고개를 가로저으며 그는 용이 눈치채기 전까지 그 단아한 얼굴을 감상하고 있기로 했다.

“……오르카 호가 아무리 커도 잠수함의 공기는 갑갑하지. 그에 비해 수상함이라면 육지만큼의 자유는 얻을 수 없어도 태양의 은혜는 느낄 수 있소. 병사들의 사기도 높아지겠지. 거기에 더해……그게 뭐요?”
“선물. 조심해서 열어봐.”

마침내 그녀와 시선이 마주치자 한 귀로 흘려듣던 사령관이 옆구리에 끼고 있던 큰 책 한 권 정도 크기의 상자를 내밀었다.
그의 얼굴에 어린 장난기를 놓칠 용이 아니다. 그녀가 하던 말도 잊은 채 조심스레 상자를 받아들자 사령관의 입꼬리가 더욱 길게 찢어졌다. 혹여 무언가 튀어나오는 게 아닌가 경계하며 그녀는 조심스레 리본을 풀었다.
상자 안에는 뚜껑을 밀어올리며 튀어나오는 스프링 대신, 정중하게 주름을 펴서 깐 벨벳이 있었다. 안도의 한숨을 내쉬기도 잠시, 그 중앙에 놓인 물건을 확인한 용은 황급히 뚜껑을 닫으며 상자를 다시 사령관에게 떠밀었다.

“이, 이런 곳에서 갑자기, 제정신이오?!”
“목소리 안 줄이면 다른 애들한테 들켜. 봐봐, 멀리서 테티스가 이쪽을 보고 있잖아.”

한 순간에 귀까지 붉게 물든 용의 앞에서 사령관이 태연하게 상자를 돌려받는다. 콩닥거리는 가슴을 진정시키느라 바쁜 그녀는 품 안에서 상자가 빠져나가도록 내버려 두었다. 사령관은 그런 용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귓가에 몇 마디를 더 속삭였다.

“이건 일단 내가 맡아둘게. 이따가 밤에, 같이 나쁜 짓하자.”

잠시 후에 그녀의 귓가에서 떨어진 사령관의 표정은 아무 일도 없었던 것마냥 천진해 보였다.






입술과 입술이 맞닿는다. 서로를 애태우듯 가볍게 스친 그것들은 더 깊숙히 맞물리는 일 없이 금새 떨어졌다. 하지만 사령관의 목을 끌어안은 용은 멀어지기를 거부했다. 눈에 띄게 당황한 그는 할 수 없이 그녀를 마주안은 채 다시 입술을 겹쳤다. 서로의 숨결에서는 열기와 함께 설탕보다 꿀과 꽃에 가까운 향기가 풍겨왔다.

“잠깐, 잠깐만. 이렇게 시작할 생각은 아니었는데.”

잠시 입을 뗀 사령관이 용의 어깨를 두드리자 못내 아쉬운 듯 그녀의 팔이 미끄러져 떨어졌다. 그 단정한 얼굴이 붉게 물든 이유는 주로 투박한 철제 테이블 위에 놓인 두 잔의 온더락 글래스 때문이다. 위스키를 더블샷으로 따라두었던 한 잔은 이미 바닥을 보이는 중이었고 이름처럼 커다란 얼음덩어리가 담긴 나머지 한 잔은 물과 위스키가 뒤섞여 옅어진 갈색 액체 위로 아지랑이같은 무늬를 그려내고 있었다.

“내가 이 순간을 얼마나 기다렸는지 느끼지 못하겠소? 그대는 나만큼 기대가 되지 않는거요?”
“넘칠만큼 기대하고 있어. 그러니까 이런 것도 준비했지.”

톡톡, 하고 테이블 위에 놓인 상자를 사령관이 손가락으로 두드린다. 낮에 봤던 상자를 마주한 용의 가슴이 크게 뛰었다.
오르카 호와 달리 일반 장교실이나 다름없는 사령관의 방. 투박한 철제 문에 철제 가구들. 오직 실용성과 내구성만 고려한 것 같은 공간에서 그 상자만이 이질적인 색채를 발하고 있었다.

“지금 떠올랐는데 혹여 이걸 위해 승함계획을 세운 것은 아니길 바라오.”
“설마. 마침 기회가 왔으니까 이용하려는 것 뿐이야.”

싱글싱글 웃는 사령관의 표정은 어딘가 체셔 고양이를 닮아있어 속을 헤아릴 수 없었다.
원망스러운 눈으로 그를 노려보던 용은 이윽고 보란듯이 한숨을 내쉬었다. 가슴에 딱 달라붙은 블라우스가 상하하며 윤기를 띈 입술이 벌어진다. 허리를 짓누르는 네 자루의 검이 없기에 그녀가 입은 정복에서는 성숙한 여성 특유의 농밀한 색기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알겠소. 잠깐만 뒤돌아 있으시오.”
“이번에는 갈아입는 것도 보고 싶은데.”

뻔뻔하게 그녀 대신 상자까지 열어주며 사령관이 입을 열었다. 매끄러운 벨벳 위에는 그녀가 매일같이 얼굴을 마주하는 세이렌의 새 제복이 들어있었다. 그것을 보고 있는 것 만으로도 신열인지 술기운인지 모를 열기가 용의 배 위로 번져나간다.
용도 일반적인 남녀 간의 정사만으로 만족하지 못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 오르카 호 안의 다수가 그런 취향을 가지고 있다는 것도. 그러나 사령관을 만나기 전까지 자신이 그 중 한 사람일 거라고 생각해본 적은 없었다.
호기심에 발을 담근 순간부터 서서히 서서히 추락해간다. 정신을 차려보면 언제나 바닥을 알 수 없는 깊은 곳까지 데려가는 사령관의 손을 거부하지 않는 자신이 있었다. 이미 익숙할 터인 흰색 정복 아래로 피부의 감각이 선명해지며 아찔한 전류가 스치고 지나갔다. 옷을 벗을 때 블라우스부터 벗었는지 아니면 스커트부터 벗었는지 갑자기 기억이 나지 않았다.
어쩌지도 못하고 망설이던 그녀의 어깨를 사령관이 끌어안았다.

“으읍?! 으으음…!”

용은 입술 사이로 미끄러져 들어오는 혀를, 섞여오는 서로의 타액을, 양 어깨에 걸쳐진 무게감이 사라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사령관은 정중하게 벗겨낸 그녀의 코트를 한 팔에 걸친 채 한 걸음 뒤로 물러났다. 이번에는 둘의 입술 사이로 은빛 다리가 늘어지다가 끊어졌다.

“이 다음부터는, 혼자 할 수 있지?”

처녀를 유혹하는 악마의 목소리.
사령관은 소복하게 쌓여있는 눈을 보면 발자국을 남기고 싶어하는 부류일 거라고 용은 멍한 머리로 생각했다. 그러는 동안 그녀의 몸은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그녀는 블라우스에서부터 시작했다.
갑갑하게 느껴지는 벨트를 풀고 목에 끈으로 고정된 엠블럼을 풀어낸다. 사령관은 의자에 앉은 채 여성적인 곡선을 드러낸 어깨와 목덜미를 바라보고 있었다. 용은 떨리는 손으로 단추를 하나하나 풀어헤쳤고 딱 맞게 가슴을 옥죄던 압력이 사라지자 가운데로 모여있던 가슴골이 벌어졌다. 쇄골을 따라 흘러내린 땀 한 방울이 그곳으로 미끄러져 들어간다. 그녀의 손이 마지막 단추에 이르기도 전에 화려한 레이스로 장식된 베이지색 브래지어가 모습을 드러냈다.

“헤에, 평소부터 그런 브라를 입는거야? 아니면 나랑 자는 날이라서 특별히 고른거야?”
“크, 펴, 평소부터요.”
“거짓말.”

동요때문에 손을 멈추고, 뒤늦게 그가 떠본 것 뿐이었다고 눈치챈다. 수치심에 달아오른 체온은 이제 귓가까지 올라와 있었다. 용은 웃음을 터뜨리는 사령관의 반응을 무시한 채 손을 뻗어 스커트의 지퍼를 내렸다. 이쪽은 블라우스와는 달리 금새 그녀의 매끄러운 다리를 따라 땅에 떨어졌다.

“팬티가 젖어있네?”
“그, 그대가 갑자기 입을 맞추니까 놀라서 그런거요! 이제 옷을 주시오.”
“알잖아. 아직 다 안 벗은거.”

매번 물어보더라. 하고 키득거리는 그를 보며 현기증같은 느낌이 일었다.
서서히, 서서히 떨어져간다.
처음에 자신의 취향을 눈치챘던 때는 시뮬레이터 안이었다. 사령관을 구하기 위해 모피만 걸친 채 뛰어들었던 순간, 모피의 부드러운 감촉과 그녀의 몸 위를 훑던 그의 시선을 아직도 기억한다. 며칠 지나지 않아 그가 잠자리를 요구했을 때 스스로 똑같은 모피를 걸치고 찾아갔던 것도.
용은 그만하고 싶었다. 동시에, 그녀는 더 빠져들고 싶기도 했다.
사령관은 어느 쪽이든 받아들여줄 것이다.
브래지어의 훅이 풀어져 바닥에 떨어졌다.

“예쁘니까 가릴 필요 없어. 그대로 손 치우고 천천히 갈아입어.”

그녀로서는 드물게 앓는 소리를 흘리며 용은 상자 안의 세일러복을 집어들었다.
옷은 한 눈에 보기에도 작다. 용을 위해 새로 재단된 것이 아니라 세이렌이 평소에 입는 것과 같은 사이즈였다. 그저 상의를 집어들고 있을 뿐인데도 피부 위를 기어다니는 사령관의 시선이 느껴졌다. 그와 만나기 전까지 백 년이 넘도록 맛볼 수 없었던, 자신을 요구하는 수컷의 시선이.

“하아….”

방 안의 공기가 뜨겁다.
매끈한 다리 위로 팬티를 끌어올리며 용은 남몰래 숨을 삼켰다. 사령관의 시선은 발 끝이 통과하는 순간부터 그 작디 작은 천조각을 쫓고 있었다. 얇고 긴 끈은 제정신이었다면 절대로 입지 않을 각도를 그리며 용의 골반을 타고 올라가 장골을 감싸안았고 조그마한 삼각형은 겨우겨우 그녀의 비부만을 가려줄 뿐이었다.
팬티와 보지가 맞닿았을 때 체온과 비슷할 정도로 달아오른 애액이 천을 적셔가는 감각을 그녀는 느낄 수 있었다. 음모를 정리해둔 덕에 선홍빛 음순 위로는 깨끗한 피부 뿐이었지만 그렇기에 흰색 천을 적신 얼룩의 존재는 더욱 더 두드러졌다.
용은 그 푸른 눈동자를 돌려 잠깐동안 사령관을 올려다 보았다. 시선이 마주치자 그는 작게 휘파람을 불었다. 짐짓 장난스러운 태도를 유지하고 있었지만 용은 그의 바지를 밀어올린 굴곡을 똑똑히 볼 수 있었다.
그래서 그녀는 저도 모르게 다리를 안쪽으로 움츠린 채로 상의를 집어들었다. 세이렌의 제복은 속옷 말고도 잘 안 맞는 부분이 많았다. 칼라 위로 얼굴을 빼내자 세이렌보다 풍만한 체형때문에 제복이 잔인할 정도로 가슴에 달라붙었다. 머리카락을 빼내며 위치를 조절해봤지만 젖무덤의 절반 정도는 어쩔 수도 없이 옆으로 빠져나왔고 흥분때문에 단단히 일어선 유두가 흰 원단 위로 선명한 마침표를 찍고 있었다. 갑갑할 정도로 조여드는데도 보호받고 있다는 느낌이 전혀 없었다.

“스커트는 놔두고 니삭스부터 신어줄래? 지금 보지가 엄청 야하거든.”
“으읏….”

지금 자신이 입고 있는 옷은 부하가 평소에 몸에 걸치는 제복이라는 자각이 새삼스럽게 다가온다. 그러면서도 용은 유일한 관객을 의식하며 의자 위에 오른발을 올려놓았다. 그녀의 피부보다도 하얀 니삭스가 다리를 타고 오르자 그 끝이 허벅지살에 먹혀들었다. 남은 왼쪽을 다 신을 무렵에는 올려놓은 다리의 그림자를 따라 애액 한 방울이 흘러내렸다.
용은 스커트를 입으며 그걸 가리려 했다. 그러나 스커트는 그녀의 골반에 하늘하늘하게 걸쳐질 뿐 비키니보다 작은 팬티도, 하다못해 엉덩이의 절반조차 가리지 못했다.

“좋아. 장갑이랑 정모는 잠깐 그대로 두고 눈을 감아봐. 아직 선물이 하나 남았으니까.”
“뭐, 뭘 주겠다는 거요?”

의문을 표하면서도 용은 눈을 감았다. 곧이어 의자에서 사령관이 몸을 일으키는 소리가 들렸다.
생각하고 싶지 않아도 예민해진 청각이 그가 내는 소리를 민감하게 포착한다. 아마도 상자가 있을 법한 위치에서 매끄러운 천이 펄럭이는 소리가 들렸고 작은 금속음이 뒤따랐다. 앞의 것은 상자의 벨벳을 벗겨낸 소리겠지만 뒤의 것은 무슨 소리인지 도무지 알 수 없었다.
벨벳 아래에 무언가가 더 있었나?
부풀어오르는 불안감에 그녀가 한 걸음 뒤로 물러나려는 순간, 코 앞에서 인기척이 느껴졌다.

“괜찮으니까 그냥 가만히 있어. 곧 알게 될거야.”

사령관의 손등이 붉게 상기된 용의 뺨을 쓰다듬는다. 움찔하는 그녀의 반응에 맞춰 실수로 흘린 듯 한 작은 웃음소리가 귀를 간지럽혔다. 그러고나서 이번에는 무언가가 그녀의 목덜미를 감싸기 시작했다.
사령관의 손은 아니다. 무언가 더 얇고 튼튼한 것이었다. 그녀가 답답함을 느끼지 않도록 세심하게 조절된 그것에서 찰칵하는 소리가 울렸다.

“눈을 뜨고 뒤를 돌아봐.”

용은 사령관의 말대로 했다. 방 안에 비치된 거울을 마주하고 호수처럼 푸른 눈동자가 크게 벌어졌다.

“이건…….”
“응. 목줄이야.”

용과는 어울리지 않는 분홍색 가죽목걸이와 얇은 쇠사슬이 조명을 받아 반짝였다. 거울에 맺힌 상에서 그 한쪽 끝을 쥐고있는 사령관이 보였다. 그의 앞에는 차라리 알몸이 덜 수치스러울법한 세일러복을 입은 채 흥분으로 얼굴을 붉게 물들인 여자가 보였다.

“슬슬 더 스릴있는 걸 원하는 것 같아서. 오늘 밤에는 한 바퀴만 같이 돌자.”
“시, 싫소! 이건 그대에게만 보여주기위해 입은 것이오. 다른 자들에게 보여줄 생각은 없소!”

사령관을 돌아보며 용은 뒷걸음질쳤다. 그러나 그녀의 등은 금방 벽에 닿았고 가죽목걸이가 죄어들며 목이 당겨졌다. 아플 정도는 아니었지만 목에 감긴 목걸이의 존재감은 확실하게 느껴졌다.

“다른 사람은 없어. 모두들 취침했다고 이 방에 들어올 때 네가 보고했잖아? 아니면 용은 나한테 가짜로 보고한거야?”
“그건… 그건….”

일순간 진지해진 사령관의 추궁에 용은 막다른 길로 내몰렸다. 전쟁터에서 적을 마주했을 때보다도 다리가 떨리고 압박감에 가슴 한 켠이 찌르르 아파온다. 그러나 동시에 강렬한 전류가 척추를 꿰뚫고 지나간 것도 사실이었다. 결코 사령관에게 말할 수는 없겠지만.

“방금 그 말은 장난이야. 용이 정 싫다면 나도 포기할게. 하지만 언제든 도중에 그만둘 수 있다는 사실을 먼저 알아줬으면 좋겠어. 조금이라도 춥거나 그만하고 싶으면… 양 손으로 목줄을  잡고 당겨. 그러면 그 자리에서 멈추고 이 방으로 돌아올게.”

여전히 한 팔에 걸쳐둔 용의 코트를 들어올리며 사령관이 말했다.
처녀를 유혹하는 악마의 목소리.
윤기를 띄던 입술이 어느새 말라버린 것 같았다. 혀로 입술을 적시며 그녀는 사령관과 그의 팔에 걸쳐진 자신의 코트를 번갈아 바라보았다. 그러자 사령관이 노크라도 하듯 장난스레 두 번, 짧게 목줄을 튕겼다.

“……알겠소. 하지만 그대가 한 말은 꼭 지켜주기를 바라오.”
“나야 한 번도 약속을 어겨본 적이 없지. 기억하잖아? 지난번에는…앗차.”

사령관은 말하다가 실수했다는 듯이 앗 하고 손바닥으로 입을 가렸다. 방금은 일부러 한 거라고 이런 쪽에는 둔감한 용조차 눈치챌 수 있었다. 그녀의 긴장감을 덜어주기 위해서였을 것이다. 뻔히 보이는 수 였지만, 그래도 효과는 있었다.
용은 테이블로 다가가 아직 글래스에 남아있는 액체를 마저 들이켰다. 얼음이 상당히 녹아버린 탓에 처음보다는 위스키의 향도, 맛도 많이 옅어져 있었다.

“마음의 준비는 좀 됐어?”

반은 질려서, 반은 아플정도로 가슴이 두근거려서 용은 말 대신 끄덕임으로 대답했다. 사령관은 만족스레 웃더니 목줄을 잡아당겼다. 힘이 아니라 의사를 전달하는 듯 상냥한 손놀림으로.
용은 사령관의 뒤를 따라 문을 나섰다.






낮에는 신경쓰이지도 않던 발소리가 지금은 묘하게 메아리치는 것 같았다. 사령관의 한 걸음 뒤를 따라 걸으며 용은 끊임없이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목줄은 그의 손에 쥐어진 채 두 사람의 사이를 선으로 잇고 있었다. 힘을 받지는 않지만 그녀가 망설일 때마다 쇠사슬이 팽팽해지는 길이였다.

“여, 역시 그만 돌아가는게,”
“정말로 그만하고 싶으면 양 손으로 목줄을 당겨. 입으로는 뭐라고 해도 안 들어줄 거야.”

마치 놀이의 규칙이라도 설명하는 것처럼 천진하게 사령관이 입을 연다. 용은 그 말에 눌린 듯 양 손을 가슴까지 들어올리다가 중간에 주먹을 쥐고 다시 내려놓았다. 손바닥도 다 가리지 못하는 흰 장갑이 제자리로 돌아가는 것을 확인하고 사령관은 다시 앞을 향했다.
때때로 뒤를 돌아보기는 하지만 정말로 자신을 신경써주고는 있는건지 불안감이 샘솟는다. 그러면서도 차마 떨어질 수 없어서 그의 뒤를 따라 걸어간다. 사령관의 보폭은 그녀보다 조금 넓다. 실수로 밟거나 멀어지지 않도록 종종걸음으로 따라붙는 동안 줄곧 미묘한 불편함이 느껴졌다.
주인의 발치를 어슬렁거리는 강아지같아. 그 생각이 계속 그녀의 머리속에서 맴돌았다.

“어디로 가려는 거요?”
“모르는 편이 더 두근거리지 않아?”

같은 비밀을 공유하는 어린아이같은 미소.
당연하지만 사령관도 용도 그런 장난을 즐길 나이는 한참 전에 지났다. 무엇보다 그녀는 지휘관이다. 태어나서부터 지금까지 그녀가 꺼낸 질문이 거절당하는 경험은 좀처럼 없었다. 그런 그녀가 지금은 2미터도 안 되는 목줄에 매여 가끔씩 돌아보는 주인의 표정을 살피며 위안을 찾고 있다.
부글부글 끓는 불안감과 해방감이 한데 섞여 검은 자국을 남기며 타들어간다.
사령관이 줄을 쥐고 있으니까 자신은 아무것도 책임지지 않아도 된다. 그가 원하니까 도착적인 쾌락에 빠져들어도 괜찮다고, 그런 비열한 해방감에 떠밀려 버릇처럼 더 깊은 곳으로 발을 내딛는다. 그런 주제에 그에게 경멸당하는 것만큼은 두려워 막상 앞에서는 아무렇지 않은 채 본심을 숨기고 있다.
동면 전의 자신이 봤다면 코웃음을 쳤을 천박함에 탐닉하면서 용은 무심코 스커트를 내리눌렀다. 그러는 동안 그녀의 걸음이 느려진 탓에 사슬이 팽팽해지는 것을 느낀 사령관이 뒤를 돌아보았다.

“제대로 걸어. 자꾸 움츠리면 걸음이 늦어지잖아. 아니면 특별히 그 모습을 보여주고 싶은 부하라도 떠올랐어?”
“우웃…….”

화난 기색은 아니다. 다만 욕망에 찬 눈길이 그녀의 몸을 훑고 지나갔다. 아무리 스커트를 잡아내려도 그녀가 감추고 싶은 곳은 가려지지 않았다. 허벅지 안쪽을 따라 흥건하게 흘러내리기 시작한 애액은 이제 니삭스마저 적셔가고 있었다.
보였을지도 몰라.
뱃속에서 달아오르는 불씨때문에 뱉어내는 숨결이 뜨거웠다.

“다른 애들은 몰라도 세이렌이랑 마주치면 뭐라고 할까? 존경하는 지휘관이 자기 옷을 훔쳐입고 목줄에 끌려다니는 변태였다니. 다음번 지휘관 회의때 지금 복장으로 참여해볼래?”

수치심을 부추기기 위한 말이라고 알고는 있어도 머리 속에 떠오르는 광경은 어쩔 수 없었다. 그 작고 책임감있는 아이가 띄운 경멸의 표정을 상상한다.  

“아니되오! 그것만큼은,”
“쉿. 목소리가 너무 커. 진짜로 들키면 곤란하잖아?”

목줄이 당겨졌다.
용이 비틀거리며 사령관의 품으로 다가가자 그는 목줄을 왼손으로 옮겨쥐고 그녀의 몸을 끌어안았다. 등허리를 휘감은 손이 옆으로 우악스럽게 그녀의 젖가슴을 주무른다. 그의 손도 그녀에게 지지 않을만큼 달아올라 있었다.

“흐읏…으응…”
“그리고 가리지 마. 앞으로는 가리려고 할 때마다 한 장씩 더 벗길거야.”

심술궂게 유두를 비트는 손가락 때문에 용은 양 손으로 입을 틀어막은 채 신음을 참아야 했다. 한 걸음 발을 내딛을 때마다 젖어서 질척거리는 팬티가 음순 위로 먹혀든다. 더 이상 견딜 수 없을 만큼 몸이 달아오른 그녀가 위치를 고치려고 손을 내릴 때마다 그는 손바닥에 짧게 말아쥔 목줄을 당겨 제지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용의 몸이 가볍게 떨리더니 다리가 풀려 사령관의 팔에 체중을 실었다. 멍해진 그녀의 눈빛은 꿈결 속을 걷는 것 같았다.
자신이 지휘하는 배를, 낮에는 부하들이 뛰어다녔을 복도를 목줄이 매인 채 걸어간다. 모퉁이를 돌 때마다 호흡이 빨라지고 초조감이 부풀어 올랐다. 느려진 걸음을 재촉당할 때마다 목줄을 당기는 사령관을 원망하면서도, 결국에는 그에게 복종해 거리를 좁힌다.
누군가와 마주치면 사령관이 숨겨줄지도 몰라. 그런 기대때문에 애초에 왜 목줄을 차고 있는지조차 잊어버릴 것 같았다.

“여기만 지나면 곧 내 방이야.”

다음으로 사령관의 목소리를 들었을 때 용은 얼마나 시간이 지났는지 자각하지 못했다. 그저 잘그락거리는 쇠사슬 소리를 듣고 사령관이 손바닥에 감아쥐었던 목줄을 풀었다는 사실만을 깨달았다. 그의 양 손이 용의 어깨를 움켜쥐고 품 안에서 밀어낸다. 그녀는 후들거리는 다리로 서서 주변을 돌아보았다.

“이 곳은…, 여기만큼은…”
“처음부터 말했지만 언제든 포기해도 괜찮아. 이쯤이면 왔던 길로 돌아가는 편이 더 멀지만.”

뒷걸음질치는 용을 압박하듯이 사령관이 한 발자국 다가선다. 뒤에 있는 벽 때문에 그녀가 물러설 공간은 더 이상 없었다. 그 벽에는 세련된 닻 모양의 로고가 흰 페인트로 칠해져 있었다.
호라이즌의 거주구.
얼마간 공실이 남아있던 이 곳도 지금은 다른 부대원들이 상선한 탓에 가득 차 있다. 전쟁터에서도 담담한 그녀의 얼굴에 처음으로 애원하는 기색이 떠올랐다.

“빨리 정하는 편이 좋을걸? 혹시나 불침번이 순찰올지도 모르잖아? 무엇보다…”

고개를 기울인 사령관이 새하얗게 드러난 그녀의 목덜미를 핥는다. 어느새 다리 사이로 비집고 들어온 그의 손이 팬티를 젖히고 그녀의 비부를 파고들었다. 손가락 한 마디만큼 그와 맞물린 곳에서부터 찌릿찌릿한 전류가 흘러들어왔다.

“나도 더 이상 참기 힘들어.”

찌걱하고 음란한 물소리가 울려퍼진다.
질벽을 파고드는 손가락은 정말로 여기서 시작해도 상관없다는 듯 주저없이 그녀의 안을 휘저었다. 흘러넘친 애액이 바닥에 방울져 떨어지고 고개를 숙인 그녀의 입에서 신음이 터져나온다. 아랫배에 흐르는 찌르르한 감각이 무엇인지 그녀도 경험으로 알고 있었다.
한계가 가까웠다.

“으으읏…!”

용은 마지막 이성을 짜내 양 손으로 사령관의 가슴을 밀어냈다. 거절당했는데도 그는 작게 웃음을 터뜨렸다. 방을 나선 이후 처음으로 그와 그녀의 위치가 뒤바뀌었다. 하지만 앞장선 그녀가 발을 내딛은 순간, 둘 사이에 이어진 목줄이 허공으로 떠올랐다.

“여기서부터는 네 발로 기어서 가.”
“그대는 정말 나쁜 사람이오.”

한숨처럼 내뱉고, 용은 바닥에 엎드렸다.
날은 많이 따듯해졌지만 해풍의 냉기를 머금은 바닥의 공기는 여전히 차다. 잔잔한 해면 위를 미끄러져온 바람이 피부를 쓰다듬자 그녀의 몸에 소름이 돋아났다. 그런데도 그다지 추위를 느끼지 못할 만큼 용은 흥분이 되살아나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쿵쿵 뛰는 심장이 끊임없이 고막을 두드렸다.
짐승처럼 손과 무릎으로 바닥을 기어간다. 그녀가 팔을 내딛을 때마다 갑갑하게 죄어든 상의에서 옆으로 삐져나온 가슴이 출렁거렸다. 하체를 가린 천조각들은 그녀의 몸을 숨기는데는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았고 스커트는 허리춤에 장식품처럼 늘어진 채 하늘거리는게 고작이었다. 두 발로 걷는 동안에도 잔뜩 먹혀든 팬티 너머로는 젖어서 벌겋게 달아오른 속살이 비쳤다. 그 위에서 항문은 끈이나 다름없는 하얀 선에 반쯤 가려진 채로 움찔거리고 있었다. 용조차 자신의 모습이 어떻게 보일지 상상할 수 있었다. 아마도 그녀 뒤에 점점이 남아있을 체액의 흔적까지도.
사령관은 그런 그녀의 모습을 천천히 감상하고 싶은 것 같았다. 용이 서두를 때마다 목줄이 당겨지며 그녀를 제지했으니까.

“사실은 말이지.”

기어가는 그녀를 앞에 두고 사령관이 입을 연다. 하룻밤동안 수없이 들었던 짖궂은 어조는 한 층 힘을 더해 지금까지 억눌렀던 가학성을 폭발시키듯 날카로웠다. 잔뜩 신경이 곤두선 그녀에게는 괴로울 정도로.

“진짜로 누군가 깨어있을지도 몰라. 수상함에 처음으로 승선한 인원이 많잖아? 기념으로 몰래 파티를 열고 있어도 이상하지 않지.”

생각하면 안 된다. 생각하지 말고 서둘러야 한다. 그런데 목줄은 사령관이 쥐고 있어서, 필요한 만큼 빠르게 움직일 수 없었다. 목걸이가 처음으로 괴로울만큼 강하게 조여들었다.

“이 철문 한 장 너머에서. 그러다가 화장실이라도 가고 싶어지면 방에서 나와야 할테고… 우연히 존경하는 지휘관과 마주칠지도 모르지. 맞지도 않는 부하의 옷을 입은 채, 목줄을 차고 네 발로 산책중인 지휘관하고.”

쾅, 쾅!

말이 끝나기 무섭게 사령관은 철벽을 주먹으로 두드렸다.
갑자기 울려퍼진 금속성의 소음때문에 그녀의 심장이 아플 정도로 세게 죄어들었다. 묵직한 것으로 두드려 맞은 것 같은 통증이 가슴 위로 번진다. 그러나 그것만으로 끝나지는 않았다.

“흐으윽!!!”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아랫배에 퍼지기 시작한 경련때문에 용은 양 팔로 자신을 감싸안고 입을 묻었다. 사령관의 눈 앞에서 벌름거리며 경련하기 시작한 보지가 곧 울컥거리며 애액을 뿜어냈다. 얼마나 힘이 들어갔는지 그녀의 허벅지가 부풀어 근육이 단단하게 일어서 있었다.

“…!, ……!”

절정은 여느 때보다 길다. 부하들이 자고 있는 문 한 장 너머에서 복도에 애액을 흩뿌리며, 그녀는 자신의 팔을 문 채 파도가 지나가기를 기다렸다.

“…!, 하아, 하아, 하아….”

이윽고 서서히 호흡이 돌아온다. 수치심에 파묻은 얼굴을 들어올리지 못하는 용의 뒤에서 사령관이 뺨을 긁적였다.

“으음, ……이렇게까지 효과가 좋을 줄은 몰랐는데.”






“아야야! 잠깐만, 좀 옷은 벗고…”
“못 기다리오! 그대는 가만히 있으시오! 마음같아선 물어 뜯어버리고 싶으니까!”

용은 방에 들어서자마자 사령관을 밀어붙였다. 뒷걸음질치던 그가 침상에 걸려 넘어지며 벽에 머리를 부딪혔지만 그녀는 그것도 눈치 못 챈 모양이었다. 아팠지만 사령관도 지은 죄가 있어서 뒤통수를 문지르며 입을 다물 수 밖에 없었다.

“아, 일단 거기는 단추부터 풀어야…, 아니야.”

사령관이 뜯겨져 날아가는 바지 단추를 처량하게 바라보는 것도 한 순간, 그녀의 손으로 지퍼가 내려가자 산책하는 내내 갑갑하게 갇혀있던 자지가 기세좋게 튀어올랐다.
산책할 때의 긴장감은 그녀만의 것이 아니다. 가까이에서 뜨겁게 달아오른 그녀의 숨결을 느끼고 치태를 바라본 사령관 역시 그녀만큼이나 흥분해 있었다.
용 역시 머리로는 알고 있었지만  이렇게 직접 눈으로 확인하고나면 암컷으로서 알 수 없는 자신감이 차올랐다. 그를 기쁘게 만들었다는, 사령관이 나를 선택해 주었다는 자부심이.

“으음…, 후우…츄웁….”

그녀는 천장을 향해 솟아오른 육창을 한 손으로 쥔 채 무릎걸음으로 침대에 올라갔다. 귀두 끝에서 투명한 액체가 배어나오고있는 그것은 언제나 쥐어야 했던 검 손잡이보다도 굵고 뜨겁다. 무기물의 단단함이 아니라 자신을 요구하는 살의 감촉이 기뻐서 용은 그대로 그의 위에 올라탄 채 입술을 겹쳤다.
처음부터 하고 싶었지만 할 수 없었던, 서로의 육욕을 교환하기 위한 입맞춤. 안전한 곳으로 돌아왔다는 안도감 덕에 흥분은 더욱 진했다. 그 기세에 맡겨 여느 때보다도 적극적으로 혀를 밀어넣는 그녀에게 떠밀렸는지 사령관도 용의 등허리를 마주 안았다.
위스키의 향기는 이미 사라진 지 오래였다. 오로지 서로의 체취만이 느껴졌다.

“푸하! 하아… 하아….”
“하아…조금 쉬었다가 시작하는게 낫지 않겠어?”
“아니오. 나는 참을 수 있더라도… 그대가 괴로울 것 같으니.”

손바닥 안에서 벗어나고 싶어하는 듯 움찔거리는 자지를 돌아보면서 용은 장난스레 손을 훑었다. 오랫동안 참아왔던 자극이 주어지자 사령관의 눈에도 불꽃이 일렁였다. 그는 그녀의 허리에 둘렀던 손을 들어 세일러복의 상의를 가운데로 모아 움켜쥐었다. 그러자 반쯤 가려져 있던 젖무덤이 튀어오르며 온전히 모습을 드러냈다.

“가슴이 그렇게도 좋소?”
“응. 좀 더 가까이 와 봐.”

용이 무릎걸음으로 그를 타넘는 동안에도 사령관은 손을 뻗어왔다. 전투원들만큼 거칠지는 않지만 남성 특유의 단단함이 느껴지는 손가락이 유방을 어루만진다. 나지막이 신음을 흘리며 그녀도 답하듯 단단하게 일어선 육창에 손을 얽어 강하게 훑었다.
자신과는 달리 욕망에 솔직한 그가 부럽기도 하고, 가끔은 어린애같기도 하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사령관의 자지를 애타게 원하고 있었을텐데 지금은 이대로 그가 자신의 손길에 사정하는 얼굴을 그대로 보고 싶기도 했다. 그러나 사령관은 허리에 감은 나머지 한쪽 손으로 그녀의 몸을 끌어당기며 재촉했다. 그녀의 바로 아래에서 후끈거리는 존재감이 느껴졌다.

“으흥…조금만…기다려주시오.”

용은 거추장스러운 장갑을 벗어던지고 흘러내린 머리카락을 쓸어넘겼다. 무언가 머리를 묶을 것이 있으면 좋을텐데 그런 것을 가지러 갈 시간도 아까웠다. 그래서 그녀는 그냥 다리 사이로 손을 뻗어 자신의 음순을 벌렸다. 질벽에서 배어나온 애액 몇 방울이 핏줄을 잔뜩 세운 사령관의 자지 위로 떨어졌다. 그는 누운채로 뜨거운 숨을 내뱉고는 자신의 것을 쥐어 귀두 끝을 그녀의 보지에 맞추었다. 용이 허리를 내리자 믿을 수 없을만큼 부풀어오른 그것이 그녀의 안으로 밀고들어오기 시작했다.

“흐…윽…, 아아…!”

깨끗하게 제모된 불두덩이 위로 볼록한 굴곡이 솟아오른다. 질벽을 파고들며 점점 자궁을 향해 밀고 올라오는 압박감때문에 점점 다리 힘이 풀렸다. 용은 누워있는 사령관의 흉판에 양 손을 얹은 채 숨을 몰아쉬었다.

“한 번에 넣는 건 아직 무리인가. 그래도 처음 할 때보다는 훨씬 야해졌어. 스스로 올라타기도 하고.”
“끄윽?!”

눈 앞에서 불똥이 튀었다.
사령관이 갑자기 그녀의 골반을 내리눌러 뿌리까지 밀착시킨 탓이었다.
달군 쇠막대가 몸을 꿰뚫은 것 같았다. 아랫배에서부터 번져나간 증기는 입으로 토해내도 몸 속에 남아 머리 속을 몽롱하게 물들였다. 다급해진 그녀가 무릎을 세우려고 한 순간 사령관이 다시 한 번 허리를 올려쳐 균형을 무너뜨렸다.

“아윽, 흐응, 자, 잠깐,만,”
“미안. 너무 꼴려서 더 못 참겠어.”

젖은 살과 살이 맞부딪치는 야릇한 소리에 미처 억누르지 못한 교성이 섞여든다. 사령관이 골반을 내리누른 채 허리를 찔러넣을 때마다 핏줄선 자지가 질벽을 긁어내며 밀고들어왔고 두툼하게 부풀어오른 귀두가 빠져나갈때면 내장이 딸려나가는 것 같은 아찔함과 함께 애액이 쏟아졌다.
망가진 인형처럼 고개를 가로저으며 용은 사령관의 몸을 밀어내려했다. 그런 그녀의 손목이 좀 더 큰 그의 손에 붙잡혔다.

“아, 아, 아아아…!”
“으음…, 무서워하지 않아도 괜찮아. 츄웁… 이것도 결국 좋아하게 될 테니까.”

그녀는 손목이 당겨진 탓에 사령관의 흉판 위로 쓰러졌다. 그 기세에 땀에 젖은 흑발이 허공으로 떠오르고 육창을 삼킨 보짓살이 죄어들었다. 새하얗게 번쩍이는 시야 너머로 자신의 목덜미에 얼굴을 파묻은 그의 머리가 보였다. 쇄골에 입술이 맞닿더니 그가 민감해진 살갗을 빨아들이는 감각이 느껴졌다.

“흐앙, 으, 으, 으,”

사령관의 자지가 질벽을 휘저을 때마다 밀려오는 아찔한 감각에 그녀의 입에서 울음소리를 닮은 신음이 간헐적으로 터져나왔다. 억누르지도 못하고 숨기지도 못한 본능이 점점 격해지는 허리놀림에 맞춰 여과없이 새어나온다.
주변에는 수컷의 냄새가 자욱했다.
가장 깊숙한 곳까지 파고든 귀두가 한 층 단단해지는 것을 느끼고, 그녀는 사령관의 머리를 끌어안은 채 굳어졌다. 니삭스 너머로 드러난 그녀의 발가락이 움츠러든다.

“으흑, 흐으…!!!”

서로를 끌어안은 연인은 동시에 절정을 맞이했다. 흘러나오던 신음과 호흡이 함께 멈추고 후덥지근한 정적이 그 자리를 메운다.
용은 그녀의 안에 뜨거운 것이 쏟아져들어오는 것을, 태내를 채우는 백탁액의 존재를 느꼈다. 울컥거리며 쏟아져 들어온 정액은 그녀의 안에 다 담기지 못해 거품섞인 체액과 함께 흘러넘쳤다. 둘의 결합부에서 눅진하게 흘러내린 그것은 사령관의 다리 사이로 쏟아져 시트를 적셨다.
맥동은 사정이 시작되고도 한참을 이어졌다. 그것이 끝날동안 숨을 돌린 용은 젖은 머리카락을 넘기고 사령관의 이마에 입을 맞추었다. 잠자코 머리를 숙이고 있던 그는 눈이 보일 정도로만 고개를 들었다.

“……화 안내?”
“그대가 이토록 나를 바라고 있는데 내가 무슨 수로 화를 내겠소?”

사령관의 머리를 쓰다듬는 용의 표정은 자애로웠다. 곁눈질로 확인한 그는 어리광을 피우듯 그녀의 가슴골에 얼굴을 파묻었다.

“사랑해.”
“쿡쿡, 그대도 이상한 사람이오. 아까같은 짓은 태연하게 해놓고 사랑한다는 말을 건네는 건 이리 부끄러워하다니.”

따듯한 숨결이 간지러워서 키득거리며 그녀는 이번에야말로 몸을 빼냈다. 애액과 정액이 묻어 번들거리는 그의 일부는 금새 경도를 되찾아가고 있었다. 시작한 이상 한 번만으로 끝날리가 없다고, 처음부터 알고는 있었지만.

“일어서기가 어려워서. 물 좀 건네주시겠소?”
“응.”

사령관은 아무렇지도 않게 일어나 테이블에 놓여있던 생수통 중 하나를 건네주었다. 뚜껑을 열어서 벌컥벌컥 들이키는 동안 그녀의 머리 속에 끼인 안개가 좀 가셨다. 사령관은 자기 것을 뜯지도 않고 그녀의 목을 따라 흘러내리는 물줄기를 바라보고 있었던 모양이지만.

“하아, 잠깐 쉬고 다시 시작할때는 후배위로 해보는게 어떻소?”
“어엇?”

그녀가 반쯤 남은 생수통의 뚜껑을 닫아 던지자 사령관은 위태위태하게 받아들었다. 무의식적으로 그것을 열면서도 그는 환청이라도 들은 것처럼 얼빠진 얼굴로 용을 바라보았다.
저런 표정을 볼 수 있다면 앞으로는 조금만 더 솔직해져도 괜찮을 것 같다고, 그녀는 웃음을 터뜨리며 생각했다.
밤은 아직 길다.
멸망한 바다를 가로지르는 함선에서 연인의 사랑이 조용히 싹을 틔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