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저기, 사령관님..."


"...업무 중인데 무슨 일이지? 사소한 잡담이라면 되도록 하고 싶지 않군."


"앗! 죄, 죄송합니다!"


사실 이야기 해도 된다. 업무 중이긴 해도 대화도 못할 정도로 바쁘거나 힘든 업무는 아니다. 간단한 서류 검토 및 작성업무니까.


그렇지만 이건 일종의 벌이다. 내가 페더에게 내리는 벌 말이다. 왜 내가 벌을 내리게 됐느냐, 그것을 설명하기 위해서는 며칠 전으로 되돌아가야 한다.




"급하다 급해..... 어후, 쌀 뻔했네."


사건의 시작은 이렇다. 여러 부대의 시찰이 있는 날, 나는 며칠에 걸쳐 부대 시찰을 하고 난 후, 내 숙소의 화장실로 급히 돌아온 적이 있었다. 부대 화장실을 사용하면 되지 않나, 싶을 텐데 부대 시찰 중의 병사들의 얼굴을 보면 그럴 생각도 안 든다. 비장함 뒤에 있는 긴장감과 지루함이 가득한 표정을 보고 있자니 조금이라도 빨리 끝내고 쉬게 해야겠다는 마음만 들었다. 사실 나도 빨리 시찰 끝내고 쉬고 싶은 마음밖에 없었다, 병사들뿐만 아니라 여러 가지를 검토하고 딱딱한 말투로 장황하게 이야기하는 것은 내 취향이 아니다. 얘들이랑 수다 떠는 게 훨씬 재밌고 시간도 빨리 간다. 


그렇게 방광에 힘 꽉 주고 내 방으로 달려온 뒤 볼일을 봤는데.... 화장실에 있는 작은 카메라를 보게 된 것이다.


"어? 뭐야 이게..... 이게 왜 여깄어?"


미리 말해두는 건데, 난 도촬 같은 거 별로 신경을 안 쓴다. 어차피 매일, 매 순간을 감시 아닌 감시를 받고 있다. 지나친 관심이나 보호 등의 이름으로 포장이 되어서 말이다. 하지 말라고 말하고 싶어도 오르카의 모두는 내 안위를 최우선으로 생각한다는 것을 알고 있으니 하지 말라고도 할 수 없다.  그래도 '별로'신경안쓰는 거지 '아예'신경안쓰는거는 아니다. 긴밀한 면담을 위해 만들어진 소회의실이나 보안유지가 필수인 지휘관 회의실.


그리고 내 최소한의 프라이버시를 위한, 화장실은 카메라를 위시한 어떤 감시에 사용될 장치를 설치하지 말라고 단단히 명령을 내려놨다. 만약 이를 어기면 내가 직접 중징계를 내리겠다고 엄포하고 말이다. 솔직히 볼일 볼 때는 마음 놓고 보고 싶지 않나. 멸망 전 인류의 뉴스를 봐도 화장실에서 도촬한 변태한테 징역 형을 살게 했으니 내 생각이 마냥 특이한 건 아니라고 믿고 있다.


그런데 내 부관이자 서약한 대상인 탈론페더, 줄여서 페더가 설치한 카메라가 우연하게 내 눈에 들어왔다. 바로 페더를 호출하고 사실을 추궁해보니..... 페더가 설치한 수많은 카메라 중에서 미처 수거하지 못한 카메라라고 했다. 얼마나 많이 설치했으면 그랬을까... 싶지만 문제는 그다음이었다.


앞서 이야기했다시피 나는 이 사태를 그냥 넘어갈 수는 없었다. 법에는 예외가 있어선 안 된다. 그럼 법은 정당성과 권위를 잃어버리게 되고 그저 보기 좋은 몇 구절의 글이 돼버린다. 누구든 법에는 벗어날 수 없다. 나 또한 벗어날 수 있어도 나와 오르카의 모두를 위해 담담히 벌을 받아들였던 적이 있었다. 최후의 인류라고 모두에게 존경받는 나조차 말이다.


그래서 간단히 징계 위원회를 열고 페더가 받을 징계를 결정했다. 말은 거창하고 긴데, 줄이면 이렇다. 한 달 동안 친한척하지 말기. 이게 무슨 벌이냐고 할 수 있겠지만 사실 굉장한 중형이다.


이곳의 모든 인격체는 나를 제외하고는 싹 다 바이오로이드이다. 물론 AGS도 있지만 내가 그들과 몸을 섞거나 사랑을 나누는 등 긴밀한 유대관계는 맺지 않으니 과감히 생략하겠다. 바이오로이드는 기본적으로 인간에게 봉사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극단적으로 말하자면 내가 죽으라면 죽어야 하고 아무것도 하지 말라고 하면 하지 말아야 한다. 몇몇 바이오로이드는 내 명령을 일부 무시할 수는 있지만 어디까지나 무시지 반대는 할 수 없다. 이것이 그들의 가장 큰 대전제이다.


이런 대전제 때문에 바이오로이드는 인간의 사랑을 갈구한다. 때때로 사랑을 위해 아무렇지도 않게 누군가를 죽이거나 웃으면서 자살할 정도로 망가진, 그들로서는 사랑을 갈구하는 개체들도 생긴다. 이미 몇 번이나 비슷한 사례가 있었다, 다행히 누가 죽고 죽이는 상황까지는 없었지만 나라는 억제장치가 없었다면 이미 피바람이 불었을 것이다.


나는 최후의 인류, 이들 모두를 감싸주고 사랑해주는 것이 삶의 모든 것이 돼버렸다. 어떤 바이오로이드든간에 나를 원하고 사랑을 나누고 싶어한다. 내 사랑을 위해 몸바쳐 일하는 모습을 보면 대견스럽기도 하고 안쓰럽기도 하다. 마치 부모의 사랑을 위해 새벽까지 잠을 줄여가며 공부하는 어린아이를 보는 것 같다랄까. 나는 한 번도 무엇을 어떻게 하라고 강요한 적이 없는데.


너무 무리하는 것 같아 고생하지 않아도 괜찮다고 말했다. 솔직히 나는 인류 재건이라는 거창한 목표 따위 관심 없다. 얼마나 오래 걸릴지 상상도 안가고 그 과정에서 얼마나 많은 생명이 고통받고 죽어갈지 가늠이 안 된다. 나는 그냥 평범하고 행복하게 내 주변인들과 함께 살고 싶다.


그러나 내 말은 통하지 않았다. 그녀들은 인류 재건이라는 목적이 그 어떤 것보다 중요하다고 말하면서 슬픈 표정을 내게 지었다. 그때 나는 인간과 바이오로이드는 다르다는 걸 다시금 알 수 있었다. 나는 목적 없이 태어나 하고 싶은 것을 하고 살지만, 그녀들은 태어나 부여받은 목적이 무엇보다 중요하고 커다랗다. 자신의 삶과 행복, 목숨 따위보다 말이다.


그때 두 가지를 통감했다. 나와 그녀들은 다른 존재임을, 강박 아래에 기계처럼 살아가야 하는 그녀들의 쉼터가 되어야 함을.


이런 저런 말이 길었지만, 말의 요지는 이렇다. 나는 그녀들을 사랑해야 하고 그녀들은 나를 사랑하는 것이 가장 큰 행복이라는 것이다. 문제는 이렇다. 나는 무척이나 예민한, 내가 종종 들었던 말로는 싸가지 없는 사람이었다. 아무렇지도 않게 한 말이, 남들을 생각해서 한 말이 날뜩한 검이 되어 투명한 피를 흘리게 하였다.


여기서도 내 말 때문에 눈물 흘린 사람이 한둘이 아니다. 그때마다 가슴이 미어지고 자신에게 혐오감만이 들었다. 내 칼은 모든 걸 베었다. 나에게도 자상이 하루하루 늘어만 갔다.


하지만 상처가 늘어갈수록 난 더 강해졌다. 더 질기고 단단해져 갔다. 마침내 나는 내 칼자루를 잡아 내가 원하는 대로 휘두를 수 있었다.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원하는 만큼 베어낼 수 있었다. 그렇게 처음으로 날 찾아온 환자의 환부를 잘라내 치료에 성공했을 때, 더는 누군가를 상처입히지 않고 내 말이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었을 때 눈물 흘리며 기뻐했다. 그 눈물은 내가 흘린 눈물 중 가장 따뜻한 눈물이었다.


힘든 시간을 넘기면 기쁜 마음은 배가 된다. 나는 나를 물심양면으로 도와준 내 간호사이자 환자에게 내 마음을 전부 고백했다. 그리고 영원한 안칙처가 되기를 자처했다. 가장 가까이에서 따듯한 화로이자 큰 그늘이 되어주기를 자처했다. 처음으로 고백하는 것이라 많이 어색하고 이상했는지 지지부진하게 고백은 이루어졌다. 그래도 이루어졌으니 망정이지, 차이면 어쩌나 싶었다.


그런데 갑자기 일이 이렇게 된 거다. 페더는 딱히 죄가 크지 않다.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 그런데 내가 세우고 강조한 법 때문에 난 내 모든 사랑을 가져갈 수밖에 없었다. 나는 그저 한 달 동안 아무 탈 없이 무사히 지나가길, 빌고 또 빌어야 했다.




"사, 사령관님. 여기 영상 자료...."


"지금은 바쁘니 적당한데 놔두고 다른 임무를 하러 가도록."


"정찰 복귀 완료.... 보고하겠습니다....."


"보고는 칸이 알아서 할 테니 다음 임무까지 충분한 휴식 마치도록 하라."


"......동침 관련 문서들....이에요....."


"그 부분은 현재 배틀 메이드가 전속해서 담당 중이다. 일종의 월권행위지만 임무 일정상 미처 확인하지 못했다고 생각하마. 다음부터는 주의해줬으면 좋겠군,"


이 대화를 보면 어떤 느낌이 드나? 못된 상사가 애먼 부하 직원을 기분 안 좋다고 갈구는 느낌이 들 거다. 실제로도 크게 다르지 않다. 페더는 하루하루 수척해지고 있다. 현재는 현장 임무도 빼고 탁상 업무만 시키고 있는데도 눈으로 보일 정도로 상태가 안 좋다. 그렇지만... 어쩔 방도가 없다. 나도 좋아서 하고 있는 건 절대 아니다. 내 마음도 실시간으로 찢어지고 있다.


불행 중 다행일까. 이 징계가 끝나는 즉시 휴가 계획을 잡았다. 일주일이 채 안 되지만 그동안 못했던 말들을 하며 용서를 구해야겠다. 그때까지 페더의 마음이 크게 상하지 않기를 간절히 기원할 뿐이다.....




어느새 징계 마지막 날까지 이르렀다. 휴가 계획은 완벽하다. 작은 무인도에 몰래 휴양지 하나를 만들어놨다. 작은 목조 주택도 있고, 전에 관광지여서 그런지 주변환경이 빼어났다. 지친 마음을 휴식하기에는 이보다 더 좋을 수는 없었다. 나는 마지막으로 휴가 계획을 검토하고 이 사실을 페더에게 알려주기 위해 내 방으로 호출한 차였다.


"호출하셨나요....? 사령관님....."


"그래. 잠시 대기하도록."


좋아. 이 정도면 완벽해. 어서 내 계획을 알려줘야지 싶어 신 난 마음에 눈을 들어보니....


"흑....."


페더의 표정이 이상하다. 마치 우는 것 같은....


"으아앙..... 죄송해요...... 죄송해요........"


둑이 무너지는 것 같이 한 번 흘린 눈물은 쉴새 없이 내리기 시작했다.


"흐아아앙......흑...아아앙......흑......"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거지. 도저히 내 머리로 따라갈 수 없다,


그래도 한 가지는 알 수 있다. 망했다. 휴가고 나발이고 진짜 개망했다.











잠긴 눈을 부스스 뜨고 나니 내 앞에 익숙한 기척이 느껴진다.


잠시 무슨 일이 있어났는지 생각해보니 흐려진 기억들이 서서히 선명해져 간다.


난 징계를 받았다. 이유는 내가 이전에 설치하고 제대로 수거하지 못한 소형 감시 카메라가 발각됐기 때문이다. 당연히 징계위원회에 넘겨지고 중징계를 기다리고 있었다.


당연히 큰 벌이 내릴 것으로 생각했다. 사령관님은 무척이나 무서우신 분이다. 지금은 많이 가까워졌지만, 처음에 만났을 때는 제대로 대화조차 하기 힘들었다. 덜덜 떨고 있던 내게 주어진 징계는 부관으로서의 모든 혜택을 박탈하는, 생각보다 가벼운 벌이었다. 나 혼자 받는 것으로 끝나고 기간도 한 달 정도로 길지 않았다.


그렇게 징계가 내려진 직후에는 다행이라는 마음과 징계가 끝나면 어떤 상을 받을까 기대했다. 사령관님은 종종 벌을 내리신 뒤에는 작은 상을 주시곤 한다. 같이 영화라도 보면 좋겠다는 멍청하고 무른 생각을 했었다. 그래, 그랬었다.


벌은 내 상상 이상으로 잔혹했다. 사령관님께서는 단 한 번도 내게 눈길 하나 주시지 않았다. 항상 패널을 보거나 서류를 읽으며 나를 매몰차게 대하셨다. 나를 하찮은 물건 대하듯이, 내가 예전에 명령을 받던 인간님들이 생각나는 어투였다.


나는, 정확히는 E-16 탈론페더라는 개체는 군사용이 아니었다. 호드에 전입하게 된 나는 여러 분대 지원 화기를 장착하고 전장에 나섰지만 발할라의 저격수를 비롯한 온갖 위험에 쉽게 노출됐었고, 가져오는 성과에 비해 희생이 큰, 비효율적인 모델이었다.


마침 호드에는 마땅한 정찰 유닛도 없던 차에, 나는 이런저런 개조를 받아 정찰기가 되었다. 전장을 탐색하고 아군에게 효과적으로 정보를 전달해주는, 전장의 눈이 되었다.


나는 많은 것을 볼 수 있었다. 애석하게도 이 점은 대부분 내게 안 좋게 다가왔다.


수많은 동료의 활약을 눈에 담을 수 있었으나, 반대로 그들의 수많은 죽음도 하나도 놓침 없이 봐야만 했다. 난 아직도 기관총에 갈려나간 워울프 마지막 표정과, 카멜의 머리가 저격으로 구멍이 숭숭 뚫렸을 때의 모습과, 연료통이 도탄 되어 폭발해 화염에 휩싸인 채 비명 지르며 죽어가는 샐러맨더의 목소리가 생생히 기억난다. 난 무력했다. 그저 기억하고 기록하며 잊지 않는 것 이외에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그런 내게는 한 명의 영웅이 있다. 바로 자랑스러운 호드의 대장, 칸 대장님이시다. 칸 대장님은 강하다. 얼마나 강한지 혼자서 적 진영을 향해 돌격하고 혼란에 빠진 적들을 처리하는 게 우리의 주 전략일 정도다. 그러면서도 항상 살아 돌아오시니, 그야말로 옛 위대한 제국의 전설적인 전사왕 같은, 본인에게 부여된 이름이 가장 잘 어울리시는 분이다.


난 그분께 내 모든 것을 사용해 도와드리리라 마음먹었다. 더 많은 동료를 위해서 말이다.


그런데 내가 이곳에 오고 난 후 대장님만큼이나 존경하는 분이 생겼다.


그분은 본인을 사령관이라고 소개하셨다. 사령관님은 다른 인간님들과는 다르게 우리가 다치거나 죽는 것을 끔찍하게 싫어하셨다. 마치 우리를 인간처럼 대하셨다. 모두에게 친절하고자 노력하셨고 본인에게는 항상 엄하신 분이셨다.


"사령관님께서는 이렇게나 저희를 아끼시는 이유가 뭔가요?"


정찰 임무의 보고를 하던 도중 나는 순수한 궁금증에 여쭤봤다. 나는 항상 궁금했다. 왜 우리를 인간님들처럼 대하실까? 이렇게 많은 분을 사랑하시기 위해 노력하시는 걸까? 그럴 필요는 전혀 없었는데 왜 항상 그렇게 고생을 하시면서까지 우리에게 잘 해주시는 것인지, 너무 궁금했다.


"뭐야.... 그런 걸 질문이라고 하는 거야?"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으시고는 딱밤을 한 대 때리셨다. 다시는 그런 말을 듣고 싶지 않아 하듯이 말이다.


"아얏! 아파라...."


"딱 한 번만 말할 거니까 잘 들어. 못 들었다고 하면 한대 추가야."


눈에 맺힌 작은 물방울을 닦고 다시 얼굴을 보니 웃음기가 싹 사라지셨다. 그러곤 다시 입을 떼셨다.


"솔직히 나는 전쟁 같은 거 별 관심 없어. 언제 끝날지도 모르고 우리가 이길지는 더 모르잖아? 그런 바보 같은 것 때문에 너희가 고생하는 게 엄청나게 싫어. 당장에라도 때려치우고 싸우지 말라고 명령하고 싶을 정도로 싫어."


비장한 표정과 다르게 슬픈 눈을 하시곤 나를 바라보셨다.


"하지만 너희는 내 생각과 조금 다른 것 같으니....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야겠지. 단 한 명도 너희 중에 죽음을 후회하는 사람이 없도록 할 거야. 그걸 위해서 내가 너희를 잘 대해주려는 거고."


말씀을 마치시고 내 손을 꼭 맞잡으셨다. 커다랗고 따뜻하지만 조금씩 떨리고 계셨다.


나는 이날 사령관님의 생각을 알 수 있었다. 그리고 머지않아 사령관님의 마음을 알 기회도 생겼다.


한 번은 작전 도중 철충에 의해 크게 다친 적이 있었다. 죽어도 이상하지 않았지만 오르카의 뛰어난 의료기술 덕분에 간신히 살아날 수 있었다. 혼수상태에서 깨어나고 처음으로 본 얼굴은 사령관님의 하염없이 울고 계신 모습이었다.


"사령관님....? 왜 울고 계세요....? 제 잘못 때문인가요....?"


".....내가 널 이렇게 만든 거야. 내가 명령을 내려서 네가 이렇게 다친 거라고. 그렇게 생각하니 너무 미안해서 눈물이 나왔어. 내 멍청함 때문에 네가 죽을 수도 있었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너무 아파서 눈물이 계속 나왔어..... 미안해 패더...... 나 때문에....."


"울지 마세요..... 페더는 괜찮아요......"


사실 내 몸 상태가 괜찮은지 아닌지는 잘 모른다. 깨어난 지 얼마 되지 않았으니까. 그래도 사령관님의 눈물을 멈추게만 할 수 있다면, 무슨 말이든 하고 싶었다.


"미안해..... 내가 전부 미안해......"


"아니에요.... 제발 눈물을 그쳐주세요.... 제발....."


내 부족한 말재간으로는 사령관님의 마음에 생긴 구멍을 채 메우진 못했다. 그렇게 서로 한참을 울다가 슬픔에 지쳐 잠들 때까지, 누구 하나 눈물을 그치지 못했다.


하지만 위기는 곧 기회라고 했던가. 사령관님과 나의 사이의 그때부터 급격하게 가까워졌다.


처음 시작은 불안한 마음을 감추시기 위해 다가오셨다. 내가 한순간이라도 보이지 않으면 조금이나마 불편해하셨고, 내가 시야에 있어야만 안심을 하셨다.


점점 같이 있는 시간이 길어지다 보니, 많은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고 더 깊은 관계를 나눌 수 있었다. 처음 같이 밤을 보냈을 때의 영상은 아직 누구에게도 보여주지 않은 내 소중한 보물이 되었다.


거기에 더해 사령관님께서는 내가 내 작품들을 보고 있을 때 다가와서는 그런 것보다 더 좋을 걸 보여주겠다는 말씀을 하시곤 바깥으로 나를 이끄셨다. 그곳에서는 여러 장관이 날 기다리고 있었다. 구 인류의 문화가 남아있는 박물관이나, 자연과 하나 된 여러 풍경, 아무런 손을 거치지 않은 자연경관 등.....


매번 볼 때마다 새롭고 신기했다. 어느새 내 사진첩에는 사령관님과 함께 나들이를 간 장소의 사진들로만 빼곡히 채우게 되었다.


눈부시게 햇살이 청명하던 날, 사령관님께서 나를 부르셨다. 당연히 나는 새로운 곳으로 나들이를 가는 줄 알고, 새로 구한 신형 카메라를 가지고 날 부르신 곳으로 갔다. 그런데 사령관님의 차림새가 조금 이상했다. 깔끔한 정복과 한껏 꾸민 머리를 하고 계셨다, 처음에는 무슨 화보라도 찍나 싶었다.


"안녕하세요, 사령관님! 오호? 오늘은 어떤 컨셉의 촬영이길래 그렇게 멋진 모습이신가요? 혹시 화보 촬영? 새로운 컨셉 플레이? 흐흐.... 저는 어느 쪽이든....."


"아쉽게도 둘 다 아니야. 내가 너를 부른 이유는 따로 있어."


"음? 그게 뭔가요? 흠.... 한 번 생각해봐도 딱히 떠오르는 게 없는데...."


"사실 이걸 보여주려고 불렀어. 이걸 이제야 전하게 됐네."


붉은 케이스를 주머니에서 꺼내시고 내용물을 보여주실 때, 나는 그제야 알 수 있었다. 사령관님은 나에게 고백하시기 위해 이곳으로 부르신 것이었다. 사랑 고백 말이다.


"난 많이 부족한 사람이야. 아직도 배워야 할게. 투성이지. 어쩌면 지금까지 배웠던 것보다 더 많이 배워야 할 수도 있어. 그렇지만 네가 함께해준다면.... 할 수 있을 것 같아. 아니, 할 수 있어. 나는 네가 꼭 필요해."


떨리는 목소리로 꿈 같은 이야기를 하셨다. 들으면서도 믿기지 않았고 하늘과 땅이 울렁거리며 흔들렸다.


"나와 함께 해준다면.... 내가 널 행복하게 만들어줄게. 이 세상 그 누구보다 행복한 사람이 되게 해줄게. 내 모든 것을 걸고... 약속할게. 나와 평생 함께해줄래...?"


오지않으리라 생각했던 일이 덜컥 내게 다가왔다. 당황스럽고 걱정도 되었지만, 그 모든 것들은 단 하나의 감정을 이길 수 없었다.


"...감사해요, 사령관님. 제가 상상만 하던 것을 이루어주셔서 감사해요. 앞으로도 잘 부탁드릴게요."


사랑이 모든 것을 삼켜냈다. 어떤 마음도 사랑을 이길 수 없었다. 그리고 다짐했다. 언제나 사령관님의 아내로서 모든 것을 다하겠다고 말이다. 그런데 그 일이 일어난 것이다. 난 모든 사랑을 빼앗기고 말았다.


징계를 받은 이후에 많은 것을 보게 되었다. 전부 다 내가 보고 싶지 않은 것뿐이었다.


사령관님은 언제나 웃고 계셨다. 활발한 모습은 변함없이 똑같았다.


나를 대할 때 싸늘함은 나 이외에 그 누구에게도 보여주시지 않으셨다.


머리로는 알고 있다. 지금 나는 징계를 받고 있고 마땅히 받아야 할 벌을 받고 있다고. 사령관님도 내게 보여주시는 모습이 진심이 아니라 억지로 만들어낸 모습이라고.


가슴속에 피어나는 불안함을 외면하고 긍정적으로만 생각했다. 내가 받는 이 벌을 어떻게 해서든 버티고 작은 칭찬을 듣고 싶었다.


날이 갈수록 불안함이 뿌리를 깊이 내리고, 꽃을 피워내려 했지만, 눈물에 베개를 적시는 한이 있어도 꾸역꾸역 버터 냈다. '내가 이미 싫어지신 게 아닐까? 이 기회에 나를 떼어내시고 더 좋은 분을 맞이하시기 위해 저런 모습을 보여주시는 게 아닐까?' 하는 마음이 들 때마다 일에 파묻혀 지냈다. 그럼 안 좋은 기억도 잊을 수 있으니까.


마침내 생애 가장 긴 한 달이 끝났다. 마침 사령관님의 호출이 들려왔다. 절망에 갇혀 살던 나에게는 위로는 필요 없었다. 차가운 냉대만 아니면 무슨 말이든 상관없었다. 이미 모든 기대는 버린 지 오래다.


"호출하셨나요....? 사령관님....." 


나는 제발 내 불길한 마음이 거짓임을 인정받고 싶었다. 내 사랑은 떠나가지 않았음을 인정받고 싶었다.


"그래. 잠시 대기하도록."


그 냉정한 한마디가 내 귀에 울렸을 때, 내 모든 기대는 부서져 가라앉았다. 그 순간 나는 직감할 수 있었다.


난 버림받았다. 내게 주어진 모든 사랑은 거두어졌다.


난 다시 혼자가 되었다는, 그 사실을 버틸 수 없었다. 더 이상은 버틸 수 없어 펑펑 울었다. 세상이 떠나가라 울었다.


그 뒤로는.... 또 같이 펑펑 울었다. 서로 오해해서 미안하다고 울었다. 나는 사령관님의 품에 안기고, 사령관님은 날 꼭 안아준 채로 울다가 서로 잠들었다. 피로에 쌓여 살다 보니 조그만 체력소모에서 잠들 수 있었다. 쪽잠이었지만 오랜만에 편하게 잘 수 있었다.




"...음.. 깜빡 졸았었네. 페더...?"


"네. 부르셨나요?"


"너도 잤었어? 세상에. 이렇게 잠든 게 벌써 두 번째라니. 꽤 놀랍네."


"전 좋았는데.... 혹시 어디 불편하셨나요...?"


"아니. 이렇게 오랜만에 안으니 기분 좋네. 따뜻하고 말랑말랑하고."


"헤헤.... 좋으셨다니 저도 좋네요."


싱그럽게 웃으시는 모습을 보니 내 마음도 치유돼간다. 웃으시는 모습이 언제나 보기 좋으시다.


"아. 아직 휴가 계획을 말 안 해줬구나. 잠시만."


사령관님께서는 단말기를 가져오시더니 이런저런 조작을 하셨다. 아마 휴가 계획을 알려주시기 위해서 일 것이다.


"자. 일단 휴가 처음 날에는....'


많은 이야기를 하셨지만, 귀에 다 들어오진 않았다. 나는 빤히 사령관님을 바라보고 있었다.


사령관님은 자신을 부족하다고 자조하시곤 했다. 항상 무언가를 위해 노력하는 모습을 보고 있자면 얼마나 간절한 마음으로 하루하루를 살아가시는지 알 수 있었다.


우리 같은 바이오로이드는 목적을 위해 살아간다. 삶과 목숨보다 중요한 목표가 있다. 하지만 인간이신 사령관님은 이루어야만 하는 목적이 없으시다. 자신이 원하는 대로 살아가 하고 싶은 모든 것을 할 수 있으시다. 모든 인간님이 사라지신 오늘날에는 사령관님이야말로 모든 것에 위에 계신 왕 같은 존재이시다.


하지만 이분은 기꺼이 우리를 위해 왕관을 벗으셨다. 왕관에 쓰이는 황금과 보석을 우리를 위해 사용하셨다. 언제나 선을 이루시려는 모습은 숭고하기까지 하다. 그만큼 오르카의 모두는 사령관님께 신세를 지고있는 것이다.


"...그리고 셋째 날은.... 음? 페더, 듣고 있어?"


"어.... 헤헤......"


"나 다시 말하는 거 별로 안 좋아하는 거 알잖아.... 그래도 이번에는 특별히 다시 들려줄게."


"네! 감사합니다!"


나는 활짝 웃어 보였다. 내 미소는 사령관님이 가장 좋아하시는 것 중 하나라고 하셨다. 부끄럽지만 사랑하는 사람에게 하는 것이니 행복하기만 했다.


이분을 만나 내 세상은 더 넓어졌고, 많은 색이 생겨났다. 모두 다 알록달록하고 예쁜 색깔뿐이다. 내가 가졌던 칙칙한 색에 덧입혀져 내 세상은 더 아름다워졌다.


나는 사진을 찍고 기억을 담는 것보다 생생히 눈으로 보는 것을 더 좋아하게 되었다. 사령관님의 말씀을 따오자면, 그게 더 낭만적이다.


내 세상을 밝혀주고 빛내주신 분을 나는 내 눈에 담아갈 것이다. 이분이 보여주시는 색채를 다 담아갈 것이다. 그리고 함께 세상을 그려나갈 것이다. 그것이 내 삶이 목표가 되었다. 그 어떤 목적보다, 내가 태어난 목적보다 중요한 목표가 되었다.


가장 밝게 빛나는 별이 내 가슴에 들어왔다. 내게 세상을 주신 분과 함께 영원히 사랑하며 지낼 것이다.


다시 그분을 바라보니 찬란하게 내 세상이 찰랑거린다. 사진처럼 이 순간이 영원하기만을, 나는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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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입니다. 쓰면서도 자꾸 지우고 다시쓰고 했는데 이렇게 글이 안쓰인적은 처음이네. 요즘 좋은 글들이 많이 올라와 비교도 좀 되는데 재밌게만 읽어줬으면 좋겠다. 궁금한 점이나 피드백은 언제나 환영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