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리 수업

청소 수업


지난 일주일은 정말이지 혼란의 연속이었다. 요리, 청소, 육아, 건강 관리, 운동, 스케줄 관리, 독서, 노래, 춤, 심지어 밤일에 이르기까지 리리스의 동생들은 완벽한 결혼생활을 위한 모든 것을 전수 받았다. 비록 미숙한 실력으로나마 성실히 뒤를 따라준 덕분에 수업은 큰 차질 없이 마무리될 수 있었다. 

 

마침내 다가온 서약식, 오늘은 수업의 마지막 날이자 서약식 바로 전날의 혼란기였다. 오르카의 전원이 내일의 이벤트를 위해 일사불란하게 움직였다. 디자이너들은 갑판 위를 유려한 분홍 카네이션과 아치로 장식했으며 공학자들은 그곳에 모일 이들을 위한 안전장치와 객석을 점검했다.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해상과 하늘의 안전을 위해 밤늦게까지 전투원들이 정찰과 전투를 반복했고, 주방에서는 이후 열릴 연회를 위한 요리의 재료를 손질하기에 바빴다. 거의 하루 종일 열릴 축제로 인해 쌓일 업무를 미리 처리하는 이들도 있었다.

 

리리스는 내일 축제의 장본인인 동생들과 방에 모여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긴장, 기대, 기쁨, 섭섭함 등의 감정들이 한 데 뒤섞인 착잡한 심정이었다. 아이들은 각자 옆 침대의 자매와 수다를 떨거나 지금까지 배운 내용을 복습하는 등, 알아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언니, 저희가 잘할 수 있을까요?” 자기 침대에 누워있던 리리스에게 페더가 슬쩍 다가와 옆에 누우며 물었다.

 

“글세?” 리리스는 장난스럽게 피식 웃으며 페더의 볼을 꼬집었다.

 

“언니도 참... 저 정말 자신 없단 말이에요~”

 

“지금까지 열심히 연습했잖아. 널 믿어. 그러면 돼.”

 

“... 정말 그럴까요?”

 

“물론.”

 

“언니가 그렇다면 믿을게요.”

 

소녀들의 대화로 인해 시끌벅적한 와중에도 리리스와 페더 사이에는 묘한 기류가 흘렀다. 정말이지 자식을 떠나보내는 엄마의 눈빛 같았다. 어째 애틋해진 리리스의 시선에 무안함을 느낀 페더는 벌떡 몸을 일으켰다.

 

“부, 분명! 자, 잘할 거에요! 그럼요!”

 

리리스는 쓰게 웃으며 호응해주었다.

 

“그럼~ 잘할 거야. 누구 동생인데.”

 

페더가 자연스럽게 아이들의 대화에 끼어들고, 리리스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한편으로는 정말 걱정되었다. 머리로는 잘할 거라 의심치 않으면서도 가슴 한구석에서는 불안한 마음이 가시지 않는 것이었다. 

 

뭣보다 걸리는 것은 갑자기 솟아나는 질투심이었다. 사실 동생들에게 떠벌리듯이 다음에는 자신의 차례일 거라 안심시켰지만, 사실 그녀 자신도 언제 반지를 받게 될지 확신을 할 수가 없었다. 항상 남자와 붙어있는 그녀지만, 자신의 본심을 숨긴 채로 항상 한 걸음 정도 떨어져 있는 것이 일상이었다.

 

그런 리리스였기에 남자가 자신을 싫어하지나 않으면, 하고 생각하고 있던 터였다. 자신의 진심을 그가 눈치채 줬으면 하면서도 차마 먼저 다가가지는 못했던 것이다. 그런 와중에 동생들의 서약식이라니, 드러나지 않는 질투심이 차오르는 것은 어쩔 수가 없었다. 

 

그것은 리리스 기종 자체의 본능이었기에 완전히 없앨 수도 없어 그저 고통받는 수밖에 없었다. 그녀는 그런 마음을 억누르고 동생들을 사랑으로 보살펴왔으나 일의 직전까지 다다르니 미칠 지경이었다. 

 

결국 터질 듯한 질투심을 어찌하지 못한 채로, 다음날 아침이 밝고 말았다.

 

/

 

“가만히 있어, 하치코!” 페로의 매서운 잔소리가 분장실 안을 울렸다.

 

드레스를 직접 만든 오드리와 메이크업 보조인 보련이 재빠르게 움직이며 아이들을 아름답게 꾸며주고 있었다. 리리스는 혼자 남은 페더의 머리를 떨리는 손으로 손질해주고 있었다. 

 

“... 언니.”

 

“...”

 

“언니?”

 

“아, 페더. 왜 그러니?”

 

“... 우세요?”

 

“아...”

 

거울에 비친 리리스는 분명 울고 있었다. 뽀얀 살결을 따라 흐르는 눈물, 리리스는 금세 얼굴을 피며 어색하게 웃었다.

 

“어머, 페더가 너무 예뻐서 감동했나봐. 신경 쓰지 마.”

어떤 의미의 눈물이었을까.

 

“언니... 걱정하지 마세요. 저 정말 잘할 수 있어요.”

리리스는 알 수가 없었다.

 

“그래. 그럴 거야.”

걱정돼서는 아니었다. 그보다 더 심오한 무언가가...

 

“네. 꼭 잘해보일게요.”

리리스의 마음을 헤집어놓고 있었다.

 

/

 

리리스는 가장 마지막에 갑판으로 올랐다. 갑판 위를 가득 채운 사람들 틈을 겨우 비집고 앞으로, 앞으로 나아간 끝에 예식장을 먼 발치에서나마 볼 수 있었다. 조금 더 나아가니 갑판에서 흐드러지는 꽃잎과 광휘가 리리스의 눈을 때렸다. 

 

구름 한 점 뜨지 않은 탓에 그대로 내비치는 태양 빛이 가이 없이 하얀 드레스에 닿아 반사되니 눈이 멀어버릴 지경이었다. 이미 갑판은 예식장을 가득 메운 카네이션의 향으로 가득했다. 

 

“지금부터, 사령관님과 컴패니언의 서약식을 시작합니다~!” 진행자가 우렁찬 목소리로 축제의 시작을 알렸다.

 

모든 이들이 예식장 위의 소녀들을 축하하고 축복하고 있었다. 객석의 환호 소리가 우레처럼 몰아쳤다. 리리스는 분위기에 휩쓸려 그녀들에게 박수를 보내면서도 앞으로 나가지는 않았다. 가슴 한구석에 자리 잡은 채로 떠나지 않는 서운한 심정 때문이었다.

 

이내 서약식은 시작되었다. 먼저 포이가 당당하게 걸어와 그에게 반지를 받았다. 연습했던 대로 자신감 있는 표정을 짓고, 터져 나올 것 같은 울음을 잠재웠다. 마이페이스의 그녀였지만 막상 상황이 닥치니 눈물샘이 금방이라도 폭발할 것 같았다. 

 

반지가 끼인 왼손을 하늘을 향해 뻗고 반지에 빛을 산란시키던 그녀는 하늘하늘 미소 지었다. 남자는 순수하게 기뻐하는 그녀를 뿌듯하게 바라보았다. 관객들의 박수 세례와 함께 바닷바람이 포이의 머리카락을 흩었다. 눈가에 물방울을 매단 채로 부드럽게 웃는 그녀는 지금껏 남자가 봤던 그녀의 어떤 모습보다도 아름다웠다.

 

마지막으로 뺨에 키스를 받은 그녀는 울음이 터지기 전에 금방 자리를 비켜주었다. 다음 차례는 페로. 아직 반지를 받지도 않았는데 그녀의 눈동자에는 눈물이 그렁그렁 맺혀 있었다. 남자가 머리를 쓰다듬자 훌쩍이면서도 강한 척을 하는 것이 평소와는 달리 귀엽게만 보였다.

 

울음을 꾹 참고 왼손을 내미는 그녀. 고운 색으로 칠해진 손톱에 눈길이 갔다. 리리스가 해준 것이겠지. 남자는 그렇게 생각하며 울음기로 인해 벌벌 떨리는 그녀의 손에 입술을 맞추었다. 페로는 손등에 느껴지는 온기에 결국 울음을 참지 못하고 터뜨려버렸다. 남자는 반지를 끼워주기 전에 그녀를 품에 안아 토닥여주었다.

 

“화장 다 지워지겠다. 그만 울어~”

 

“짓궂으세요...”

 

남자가 장난스럽게 던진 농담에 그새 울음을 뚝 그친 페로는 의기양양하게 어깨를 폈다. 아까와는 달리 결심을 굳게 다진 듯한 표정이었다. 그녀는 다시 한번 손을 내밀었고, 남자는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천천히 반지를 끼워주었다. 

 

아까와 마찬가지로 뺨에 키스를 받은 페로는 얼굴을 붉히며 포이의 옆으로 이동했다. 페로가 가자마자 하치코가 총총 튀듯이 예식장 위로 올라왔다. 박수갈채를 받자 부끄러운지 헤헤 웃으면서도 긴장한 기색은 없어 보였다. 

 

곱게 꾸민 그녀의 모습은 새로웠다. 리리스가 챙겨주는 덕분에 항상 기본적인 화장 정도는 했을지 몰라도 속눈썹부터 헤어펌까지 완벽히 마친 그녀의 모습은 둘도 없는 천진한 숙녀였다. 하치코는 달라진 모습에 멍해진 그에게 달려들어 안기더니 속삭였다.

 

“히히, 사랑해요, 주인님.” 

 

장난스럽지만 진심이 담긴 말이었다. 낯부끄러운 고백을 마친 하치코는 리리스 언니에게 배운 것을 확실하게 되새기며 맹세의 키스까지 마쳤다. 이윽고 내민 손에 세 번째 반지가 끼워지는 순간이 다가왔다. 하치코는 반지가 끼워지기 직전, 손을 빼 허리춤에 걸려 있던 작은 달리아 꽃다발을 그에게 건네었다.

 

“저희의 마음이에요, 주인님. 부디 받아주세요.”

 

싹싹하게 활짝 편 하치코의 표정에 절로 기운이 나는 남자였다. 꽃다발을 다른 이에게 맡겨둔 그는 드디어 하치코의 왼손 약지에 반지를 끼웠다. 손등에 입술을 맞추는 것도 잊지 않았다. 들어올 때보다 경쾌해진 발걸음으로 퇴장하는 하치코의 뒤를 따라 이번에는 펜리르가 다가왔다.

 

“헤헤... 주인님, 우리 이제 부부인 거야?”

 

펜리르는 그녀답지 않게 몸을 베베 꼬았다. 아무리 야성적인 그녀라지만 속은 여자였나 보다. 남자는 펜리르의 얼굴을 가리고 있던 베일을 슬쩍 치우고는 또다시 놀라고 말았다, 그녀의 변신도 하치코 못지않게 충격적이었기 때문이었다. 

 

상기된 뺨은 화장 때문인지 부끄러움 때문인지 헷갈릴 정도로 진한 분홍색을 띠었고, 평소에는 핏기로 연분홍색을 띠던 입술은 빨간색으로 두껍게 칠해져 있었다. 그녀의 머리 색만큼이나 진한 색이었는데, 묘한 색기와 함께 귀여움이 어우러진 미묘한 감각을 자아내었다.

 

펜리르의 완전히 달라진 모습에 사령관은 할 말을 잃었다. 오늘만큼은 그녀가 진짜 여자로 보이는 것 같았다. 남자는 자기도 모르게 그녀의 입술을 훔쳤다. 펜리르의 노란 동공이 크게 늘어났다가 이내 수축했다. 그녀는 곧 눈을 감고 입술의 감촉에 집중했다.

 

평소대로의 키스였을 뿐이었지만 얼굴이 온통 새빨개진 것이 귀여웠다. 남녀관계에 미숙한 것을 티 내는 것 같았다. 짧은 키스를 마친 그녀는 멋쩍게 목 뒤를 긁적였다. 쫑긋 솟은 귀와 쭉 뻗은 빨간 꼬리가 세차게 흔들리는 것을 보아 민망함이 한계에 달한 것 같았다.

 

그와 조금 오래 시선을 교환하던 펜리르는 복잡한 생각에 빠져 있다가 중요한 사실을 깨달았다. 리리스에게 배웠던 것을 끄집어내던 그녀는 곧 다음 차례가 무엇인지를 떠올렸다. 싱긋 웃으며 내미는 손. 역시나 단정하게 정리된 손톱에는 정열적인 선홍색 매니큐어가 칠해져 있었다.

 

“사랑해, 주인님.”

 

반지를 미묘한 눈으로 바라보던 펜리르가 그의 뺨에 입술을 맞췄다. 빨간 입술 자국이 남은 그를 뒤로하고 펜리르도 자리를 비켜주었다. 마지막은 컴패니언의 막내, 페더의 차례였다.

 

뻣뻣이 굳은 다리가 움직이지 않다가 크게 쉼호흡을 하고 나서야 조금 풀어져 발걸음을 옮길 수 있었다. 마지막이니만큼 최고조에 달한 환호성에 직격당한 그녀는 정신이 아득해졌다. 맑은 하늘에서 환한 빛이 내리쬠에도 앞이 깜깜해졌다.

 

긴장으로 인해 덜덜 떨리는 다리에 어떻게든 힘을 넣어 한 걸음 한 걸음 착실히 내딛는 그녀. 다른 이들은 몰라도 남자와 리리스는 알 수 있었다. 그녀가 지금 인생을 뒤바꿀만한 과제를 스스로 해결하고 있다는 것을 말이다. 

 

관객 사이에 숨어있던 리리스는 어느새 고개만 슬쩍 내밀고 페더를 응원하고 있었다. 주먹을 꽉 쥐고 속으로 기특하다는 칭찬과 함께 조금만 더하면 된다는 외침을 동시에 내뱉는 것이었다. 그녀의 마음속 외침이 닿은 것인지, 페더는 척척 걸어 어느덧 그의 앞까지 다다랐다. 

 

“... 당신의 스노우페더가 왔어요.”

 

과하게 힘이 들어간 바람에 미세하게 떨리는 목소리였지만 결의를 다졌음은 확실히 알 수 있었다. 눈꽃 무늬로 수 놓인 페더의 드레스는 다른 아이들의 것보다도 유독 화려했다. 남자는 용기를 내준 그녀가 기특해 먼저 다정하게 손을 잡아주었다. 전해지는 열기에 시선을 맞추기도 잠시, 낯을 사랑스러운 색으로 물들이며 고개를 돌렸다.

 

페더는 지금까지와는 달리 드레스만큼이나 투명한 백색의 장갑을 끼고 있었다. 손목 부분이 기품 있는 프릴로 마무리되어 고급스러운 느낌을 주는, 그야말로 서약식에 최고로 맞는 분위기의 면장갑이었다.

 

남자는 지체 없이 그녀의 약지에 마지막 반지를 끼워주었다. 페더는 실감이 나지 않는 것인지 입을 작게 벌린 채로 감탄만 할 뿐이었다. 그러다가 이윽고 정신을 차렸는지 고개를 꾸벅 숙이는 그녀였다. 남자는 그녀가 허둥대지 않도록 어깨를 두 손을 잡고 천천히 끌어당겼다. 

 

언니에게 이것이 무엇을 뜻하는지 이미 배운 그녀는 슬며시 눈을 감고 손길에 따랐다. 곧 느껴지는 입술의 온기. 지금의 키스는 지금까지와는 명백히 달랐다. 영원을 약속하는 그런 진득한 키스에 페더는 정말 정신을 잃을 것만 같았다. 천천히 떨어진 두 사람의 사이로 가느다란 실이 반짝였다.

 

“정말, 정말 사랑해요, 주인님. 이 마음... 말로 다 전할 수는 없겠지만... 평생을 주인님께 바치겠다고 이 자리에서 다시 한번 맹세할게요.”

 

마지막 인사치레까지 마치고, 반지를 받은 인원들이 주르르 모여 열을 만들었다. 사람들이 다시 박수를 보내왔다. 페더는 그 와중에도 아직 남자의 온기가 남은 입술을 더듬으며 야릇한 상상을 하고 있었다.

 

리리스는 여전히 인파 속에 숨어 그 광경을 묵묵히 지켜보고 있었다. 차마 양지로 나가 그녀들의 행복한 모습을 축하해줄 자신이 없었다. 자식 기르듯이 가르친 소중한 동생들을 질투하는 꼴이 한심하게 느껴졌으나 그렇다고 이 감정을 억누를 수도 없었다. 모두가 식장 위에서 빛나고 있었다.

 

하치코는 그저 좋은지 펄쩍펄쩍 뛰며 웃고 있었고, 페로는 남몰래 눈물을 훔치고 있었다. 페더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어딘가에 섞여 숨어있을 언니를 애타게 찾고 있었다. 리리스는 그녀와 눈을 피하고자 더 깊숙한 곳으로 뒷걸음질 쳤다. 

 

마치 도망치는 것처럼 보였다. 리리스는 그녀들의 행복으로부터 도망치려는 듯이 사람들 사이를 헤집고 들어갔다. 그러던 그녀는 문득 발걸음을 멈추게 되었다. 뒤통수를 때리는 누군가의 애틋한 목소리 때문이었다. 

 

“리리스 언니! 보고 계시죠? 제가 아는 언니라면 분명 보고 계실 거에요! 그러니 자신 있게 고백할게요. 언니가 아니었다면 저는 이 자리에 오르지도 못했을 거에요. 저는 겁쟁이였으니까요. 그런 제가 감히 용기 내어 주인님께 반지를 받을 수 있었던 것은... 전부 언니 덕분이에요!”

 

울먹이는 목소리. 페더가 사회자로부터 마이크를 뺏어 들더니 리리스를 향한 고백을 시작했다. 하늘에서 곧장 강림한 천사처럼 고운 페더의 화장이 흘러내리는 투명한 눈물에 섞여 녹아내렸다. 그녀는 애원하듯이 외치면서도 리리스가 볼 수 있도록 힘껏 입꼬리를 끌어 올렸다. 

 

“그러니까... 제가 하고 싶은 말은... 언니가 보고 싶다는 거에요! 이 기쁜 자리에서, 언니의 얼굴을 기억에 새기고 싶어요. 언니와 이 기쁨을 나누고 싶어요! 분명 시원섭섭하신 거겠죠. 저희가 한 명의 여자로서 다시 태어난다는 것이. 하지만, 이것만은 기억해주세요. 저희는 앞으로도 영원히 언니의 동생이라는 사실을요!”

 

리리스는 그만 설움을 참지 못하고 오열하고 말았다. 그리고 곧장 모두가 기다리고 있는 예식장 위로 달렸다. 바다가 갈라지듯이 그 많던 인파가 길을 내었다. 눈물범벅이 된 페더의 표정이 난데없이 밝아졌다. 허공을 떠돌던 꽃잎이 떨어지며 리리스가 가는 길을 수놓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다다른 무대 위로, 리리스는 뛰어올랐다. 

 

“언니!”

 

리리스의 근심을 가장 잘 알고 있던 페더는 그 어떤 순간보다도 환하게 웃으며 그녀를 품에 안았다. 모든 감정을 내려놓고 마주 안은 두 자매의 감동적인 포옹은 주위의 모든 이의 감성을 자극하기에 충분했다. 리리스의 고민에 대해 페더에게 지나가는 말로나마 전해 들었던 사령관도 한 걸음 물러서 그녀들의 재회를 지켜보았다.

 

두 사람의 눈물 겹고 진솔한 짧은 대화와 함께, 서약식은 그렇게 막을 내렸다.

 

/

 

그날 밤까지 이어진 선상 연회는 큰 성공을 거두었다. 리리스는 깊숙이 뿌리내리고 있던 질투심을 완전히 제거하는 데에 성공했고, 동생들과 함께 포도주를 들이키며 속 깊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울고 웃으며 나눈 대화는 단지 자매라는 타이틀로만 묶여있던 컴패니언의 관계를 더욱 면밀하고 공고하게 만들었다.

 

오늘의 축제는 리리스와 동생들을 ‘진짜 자매’로 만들어준 것이었다. 리리스는 돌아서던 자신을 붙잡아준 페더에게 무한한 감사를 표했다. 그녀의 용기 있는 외침으로 인해 리리스도 덩달아 용기를 낼 수 있었다. 자신을 인정하고, 동생들을 보내줄 용기를 말이다.

 

페더의 목소리가 아니었다면 리리스는 필시 타락했으리라. 이렇게나 쉬운 일이었는데. 모든 것을 받아들이니 마음이 한결 편해졌다. 이젠 남자에게 자신의 마음을 고백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라면 ‘나쁜 리리스’라도 포용해주리라. 그것을 왜 이제야 알았는지, 리리스는 헛웃음이 날 지경이었다.

 

허나 리리스의 예상을 깬 한 가지는 바로 남자의 부름 때문이었다. 당연히 서약식을 올린 동생들과 뜨거운 첫날밤을 보내리라 예상한 리리스였지만, 정작 그가 부른 것은 자신 혼자였던 것이다.

 

“.... 주인님? 절 부르셨나요?” 노크를 마치고 입실 허락을 받은 리리스가 침실 문을 조심스럽게 열어젖히며 물었다. 

 

“그래, 여기 편하게 앉아.”

 

“왜 동생들이 아니라 절...”

 

“천천히 얘기해줄게.”

 

“....”

 

리리스는 긴장한 표정으로 그의 옆에 앉았다. 그리고 이어지는 그의 말.

 

“사실, 내일도 서약식을 올릴 예정이야.” 그의 말에 리리스의 표정이 조금 더 어두워졌다. 아무리 인정했다고는 해도 면전에서 다른 여자의 이야기를 듣는 것은 불쾌할 수밖에 없었다.

 

“역시 그 스토커인가요? 그 아이라면... 첩으로 삼으셔도 괜찮겠네요.”

 

“너야, 리리스.”

 

“... 네?”

 

“오늘은 동생들. 축제의 클라이맥스의 주인공은 네가 됐으면, 하고 바랐거든.”

 

그의 고백은 충격적이었다. 이미 리리스가 남자에게 호감을 갖고 있다는 사실도, 그것을 표현하지 못하고 있는 것도 그는 전부 꿰뚫고 있었다. 

 

“지난 일주일을 겪으면서 네가 조금 더 솔직해지길 바랐어. 결과는... 보다시피 성공적이었던 것 같네. 그렇지 않아?”

 

“아마... 도요.”

 

“난 평생을 함께하고 싶을 만큼 널 사랑하는데. 넌 어때?”

 

“...” 리리스는 막상 시기가 닥치자 혼란한 듯싶었다. 그럼에도 말해야만 했다.

 

“...” 영겁같은 고요는 곧 터져나온 리리스의 단말마로 인해 깨졌다.

 

“사랑해요! 정말, 정말정말 목숨을 다바쳐 함께하고 싶을 만큼이나 사랑해요. 지금까지 이 말을 전하지 못한 제가 미울 정도로 주인님이 좋아요. 주인님을 먼저 차지한 동생들을 질투하기도 했어요. 솔직하지 못했던 제 잘못인데도...”

 

“진심이야?”

 

“... 제 처음을 주인님께 바치고 싶어요.”

 

두 사람의 거리가 천천히 가까워지다 곧 0이 되었다. 이미 남자로부터 소식을 전해 들었던 그녀의 동생들은 침실 문에 달라붙어 리리스의 고백을 흐뭇하게 엿듣고 있었다.

 

“이제 비켜주자, 얘들아.” 포이는 킥킥 웃으며 동생들과 떠났다.

 

장장 일주일에 걸쳐 일어난 대소동, 리리스의 신부수업은 리리스가 컴패니언의 마지막 신부가 됨으로서 마무리되었다. 리리스는 약속의 태양이 떠오를 때까지 남자에게 사랑받았다. 한편에서는 술잔을 기울이고 있었다. 그토록 염원하던 새로운 신부의 탄생을 기념하면서.


 

-F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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몬가... 용두사미가 된 느낌이라 좀 아쉬운 느낌입니다... 

생각했던 장면은 다 넣었는데 그래도 부족한 느낌이네요 

지금까지 부족한 글 읽어주신 분들께 소소한 감사를 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