습한 공기로 꽉 찬 스카이나이츠의 연습실. 린티가 발바닥에 불이 붙지는 않을까 걱정될 만큼 격정적인 춤을 선보이고, 당신은 바닥에 앉아 물개처럼 손바닥을 부딪히며 흥취를 돋우고 있었다. 늦은 밤, 그동안 해왔던 연습의 성과를 보여주겠다며 당신을 끌고 온 린티였지만, 낮에 기운을 너무 많이 뺀 탓인지 몸이 잘 따라주지 않는 것 같았다.

 

배꼽이 아슬아슬하게 드러날 정도로 짧고 몸매에 딱 달라붙는 하얀 연습복은 진즉에 땀으로 범벅이 되어 린티의 뽀얀 맨살을 살짝 비추고 있었다. 격한 안무를 연습하면서도 화장을 포기할 수는 없었던 걸까. 짙게 바른 비비크림이 투명한 땀에 섞여 흘러내렸다.

 

이마에 송글송글 맺혀있던 땀이 눈에 들어가는 바람에 따가웠지만, 린티는 당신에게 최고의 모습만을 보여주겠다는 일념으로 힘겹게 미소지었다. 몇 곡이나 지나갔을까? 린티가 플레이어를 통해 재생한 곡이 한 바퀴를 돌아 재생을 멈추자마자 린티는 그 자리에 풀썩 주저앉고 말았다.

 

갑작스럽게 힘이 풀려 쥐가 난 것인지 고통스러운 신음을 내뱉는 그녀. 어떻게든 몸을 일으켜 세우려고 안간힘을 써봤으나 장딴지의 고통만 배가 될 뿐이었다. 린티의 상태가 좋지 않음을 직감한 당신은 얼른 달려가 다리를 살펴보았다.

 

퉁퉁 부어 새빨갛게 물든 다리를 본 당신은 한숨을 내쉴 수밖에 없었다. 

 

“저어... 프로듀서? 저는 괜찮... 하윽...”

 

린티는 혹여 아이돌을 못하게 되는 것이 걱정되어 당신을 안심시키려고 했지만, 아무래도 단순히 쥐가 난 것보다 상황이 악화된 것 같았다. 그녀의 걱정을 금세 파악한 당신이 아이돌을 그만둘 일을 없을 거라고 달래자 그제서야 아픈 티를 내는 그녀였다.

 

점차 거세지는 통증으로 인해 식은땀이 줄줄 흘렀다. 당신은 린티를 품에 안고 양호실로 향했다. 린티는 부끄러움을 느끼기도 전에 밀려오는 고통 때문에 당신의 가슴팍에 얼굴을 파묻었다. 조금만 참으라고 부드럽게 속삭여주니 긴장이 풀려 거칠었던 린티의 숨이 조금은 잦아들었다.

 

“프로듀서...” 

 

린티가 애타게 당신을 불렀다. 그럴수록 당신은 발걸음을 더 빠르게 옮겼다. 마침내 다다른 양호실에서 기초적인 응급처치를 받은 린티는 아까보다 한결 편안해 보이는 표정이었다. 비 오듯이 흐르던 식은땀도 멎었고, 듣고 있기 힘들 정도로 고통스럽게 내쉬던 신음도 더는 들리지 않았다.

 

“에헤헤, 너무 무리했던 걸까요?”

 

양호실 침대에 널찍이 누운 채로 허공에 매달린 붕대에 다리를 걸고 있던 린티가 실실 웃으며 말을 걸어왔다. 걱정되는 당신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해맑기만 했다. 무엇 때문에 근육이 손상될 정도까지 스스로 몰아붙였던 것인지 궁금해진 당신은 그녀의 침대 옆에 슬쩍 걸터앉았다.

 

그러자 린티가 베개 옆으로 팔을 내밀었다. 아무래도 누우라는 신호 같았다. 쓰게 웃은 당신은 그녀의 바람대로 팔을 베고 누워주었다. 린티의 팔에서 들리는 맥박이 당신의 고막에서 울렸다. 린티와 당신이 살아있음을 다시 한번 확인하는 순간이었다. 

 

완전한 고요가 내려앉은 병실에 야릇해진 분위기가 흐르자 린티가 입을 열었다.

 

“프로듀서, 화 나셨어요?”

 

당신은 조금 그렇다고 대답했다. 그러자 린티는 미소를 거두고 목소리를 낮게 깔며 말을 이었다.

 

“... 사실 무서웠어요.”

 

귀엽게만 보였던 린티의 모습이 조금 다르게 보이기 시작했다.

 

“다들 예쁘고... 여성스럽고... 성숙한데 저는 그렇지 못하잖아요. 하르페처럼 성숙한 매력이 있는 것도 아니고, 그리폰처럼 밀당도 못하고, 블랙이처럼 친절한 것도 아니고, 벨처럼 조숙한 것도 아니고, 전대장처럼 매력적인 것도 아니고...”

 

린티의 숨결이 어느덧 가까워졌다. 시큼한 사춘기 여자아이의 땀내와 아직 남은 민트 향 샴푸 냄새가 섞여 침대 위를, 당신의 비강을 메워갔다. 머릿속에 몽롱해짐과 동시에 뜨거워지는 감각. 숨이 조금 거칠어진 것 같았다.

 

“프로듀서는 절 그저 귀여운 꼬맹이로 보고 있죠?”

 

전부 내려놓은 듯한 염세적인 목소리에 당신은 극구 부인했다. 그러나 린티의 오해는 쉽사리 풀리지 않았다.

 

“거짓말, 거짓말, 거짓말! 프로듀서는 절 여자로 보지 않으시잖아요. 그래서 눈에 띄고 싶었어요. 프로듀서의 이목을 끌고... 제가 프로듀서를 이렇게나 사랑하고 있다는 걸 알리고 싶어서! 그래서... 조금 무리를 했어요.”

 

당신은 한숨을 푹 내쉬더니 이내 천천히 입을 뗐다. 린티를 처음 만났을 때의 이야기, 린티가 처음 전투에 나갔을 때의 이야기, 린티가 처음 탐색에 나갔을 때의 이야기, 린티가 처음으로 이성으로 보이기 시작했을 때의 이야기.

 

삐진 척 등을 돌린 채로 당신의 진솔한 고백을 귀를 쫑긋거리며 전부 마음에 담은 린티는 어느새 몸을 돌려 당신을 빤히 바라보고 있었다. 아직 화가 난 것 같기도, 웃음을 참고 있는 것 같기도 한 오묘한 표정이었다.

 

“... 방금 그 말, 전부 진심이라고 확신할 수 있으세요?”

 

당신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증명해주세요. 이 자리에서.”

 

린티는 그러면서 지긋이 눈을 감았다. 당신은 그녀의 진위를 금방 파악할 수 있었다. 아직 촉촉한 체취가 남은 목덜미를 부드럽게 잡아 당신 쪽으로 끌어당겼다. 린티는 미세하게 몸을 떨면서도 당신을 밀어내지는 않았다.

 

“츄웁... 프로듀서허...”

 

훅- 풍겨오는 립밤의 향기. 곧이어 맞닿은 촉촉한 분홍빛 입술. 린티도 당신의 목덜미를 잡아 끌어당겼다. 다시는 놓지 않을 기세로 당신의 사랑을 확인하는 그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두 사람은 혀를 섞기 시작했다.

 

누운 채로 서로를 마주 본 채 하는 키스는 새로운 느낌이었다. 린티는 눈을 꼭 감은 채로 혀와 입술의 촉감에만 모든 것을 집중했다. 그 깜찍한 모습이 너무나 사랑스러워, 당신은 조금 더 격정적으로 입술을 겹쳤다. 

 

입안에서 뒤섞이는 린티의 체액은 어쩐지 새콤한 라임 맛이 났다. 린티는 애수에 젖어 이제는 오로지 당신의 움직임에 모든 것을 맡긴 상태였다. 헤롱헤롱하게 풀린 눈으로 당신의 눈동자를 응시하는 린티. 숨이 막힐 지경까지 혀를 섞고 나서야 당신은 그녀에게서 입술을 뗐다. 

 

쭉 늘어진 하얗고 투명한 다리가 툭 끊어져 린티의 뺨에 착지했다. 린티는 그것을 손가락으로 슥 훑더니 새침하게 핥았다. 린티가 아직 첫 키스의 여운이 가시지 않아 터질 듯이 달아오른 얼굴을 식히는 동안, 당신은 이제 막 사랑이 무엇인지 깨달은 작은 소녀를 그윽한 눈으로 바라보았다.

 

린티가 진정할 수 있도록 슬슬 자리를 뜨려는 당신은 곧 움직임을 멈추고 말았다. 뒤에서 옷깃을 당기는 린티가 애달프게 당신에게 시선을 보내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 바보 프로듀서. 내일 아침까지는 안 놔줄 거에요.” 그리고 덧붙였다. 

“제 첫 경험까지... 가져가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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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스가 꼴리는 이유 = 내가 못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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