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https://arca.live/b/lastorigin/24575720

1화: https://arca.live/b/lastorigin/24635197

2화: https://arca.live/b/lastorigin/26101881

3화: https://arca.live/b/lastorigin/24916655

4화: https://arca.live/b/lastorigin/25786337


시작하기에 앞서...


지금까지 작성한 모든 텍스트를 한꺼번에 올립니다 (대략 공백 제외 1만 4천자 공백 포함 1만 8천자입니다)


화수로 나눈 개별 링크를 첨부하였으니 한번에 볼 시간이 없거나 체력이 충분하지 않으신 분은 링크를 참조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완결 후기는... 오늘 패치 노트를 보고 생각이 들었습니다 2-19층에 갇히는 버그를 '개선'하겠다는 공지를 말입니다


지금 당장은 아니겠지만 언젠가 2-19층을 볼 수 없다고 생각하니 조금 아쉽네요 마치 미운 정이 들었다고나 할까... 온갖 야한 망상을 펼칠 수 있는 무대였는데 말이죠


혼자서 보는 사적 취미나 돈이 관련된 공적인 일을 제외하고는 글을 써본 적이 없어서 라오챈 여러분들에게 만족스러운 이야기가 되었을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본래부터 제 망상을 옮겨오고 싶다고 생각하고 준비한 무대였으니까요


작가의 자기만족으로 이루어지는 글의 운명은 언제나 참담했습니다


하지만 이건 팬픽이니까... 설정이 어떻고 하는 문제는 잠시 제쳐두고서, 그저 재미로만 즐겨주었으면 좋겠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언젠가 라오가 더 야한 컨텐츠를 내놓을 수 있다면 그 날 다시 2-19층이 수면 위로 부상할 날이 올까요...?


그 날을 저는 언제까지고 기다리고 있을 것입니다


그럼 시작하겠습니다


아 참,





철의 탑에는 2-19층이 없습니다.


안녕하세요. 저는 스틸라인의 T-3 레프리콘 0219번입니다.

어…… 저는 제가 소속된 분대에서는 과분하게도 분대장 역할을 맡고 있습니다. 태어난지 얼마 안 되었을 때는 조금 당황스러웠습니다. 모듈 내에 주입된 기억에 따르면 직급이 높은 사람이 맡게 되어 있지만… 그것은 관례상의 규칙일 뿐이더군요.

소위 말해서 ‘짬’이라고 하죠? 어느 정도 분대에 소속된 기간이 지나면 한 번 시켜보는 그런 느낌으로 어떤 위급 상황이 발생하더라도 즉시 리더권한을 행사할 수 있도록 미리 훈련해두는게 이곳의 규칙이라고 합니다.

듣고 나서 바로 납득이 갔습니다. 아무래도 제 모듈은 상당히 오래전에 만들어진 모양이라……. 이렇게 실전을 고려해서 전략을 짠 선임분들에게는 존경스러울 따름입니다.

제 인식명의 유래… 말인가요?

그렇네요. 제 모듈 내에 이식된 기억에 따르면 유래는 전장에서 총알을 흩뿌리는 모습이 마치 황금비를 쏟아내는 광경을 연상시킨데서 유래했다고 합니다.

그래요. 다들 저를 처음 보는 분들은 ‘그래서? 그게 무슨 상관이 있는 건데?’하고 의구심을 가지십니다. 네, 그게 보통입니다. 저도 이러한 정보만을 가지고는 제 인식명이 왜 이렇게 지어진 지에 대해서는 납득이 가지 않더군요.

그래서 나름대로 조사를 했습니다. 감사하게도 사령관 각하께서 저희 말단 병사들 모두에게 개인용 오르카넷 접속 단말을 지급하신 덕분에 몰랐던 많은… 네, 그렇죠! 정보들이요! 흠흠… 아무튼, 전투나 생존에만 급급해서 그런 것을 신경쓰지 못했던 시절이 떠오르는군요. 아, 저……! 항상 감사합니다! 사령관 각하! 저희 분대원들도…… 예전에 제가 지휘했던 아이들이 맞나… 싶을 정도로 정말 분위기가 많이 변했어요. 좋은 의미로요. 후훗, 가끔은 아이들이 정신나갈 것 같은 사고를 치기도 하지만, 사령관 각하께서는 그런 부분들도 너그러이 넘어가주셔서……. 정말로 감사드립니다. ……어, 사령관 각하께서 보시는 거 맞나요? 우으… 부끄럽네요.

흠흠, 무거운 이야기는 이쯤 할게요. ……아, 그렇죠. 제 인식명의 유래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었죠?

나름대로 조사해본 바에 따르면 아무래도 레프리콘은 옛날에 존재했던 나라…… 아일랜드의 전설에서 따온 요정의 이름인 듯해요. 후훗, 그렇죠? 저희 스틸라인의 분대원들 이름의 유래라고는 생각지 못할 귀여운 이름이었어요.

레프리콘이라는 요정은 솜씨좋은 구두 장인이기도 하다네요? 설화에서는 은인을 입은 사람에게 잘 만들어진 구두 한 켤례를 선물로 주기도 한다고 해요. 네, 제가 생각해도 저절로 웃음이 지어지는 귀여운 이야기에요.

그렇죠. 황금비는 그럼 무슨 관련이냐? 그것도 귀여운 설화가 얽혀 있는데, 레프리콘이 사는 곳으로 따라가보면 무지개 다리 너머에 아름다운 황금 냄비를 숨겨두고 있다고 해요. 그 왜, 총알의 탄도를 눈으로 쫓으려 하면 격발시의 충격과 열로 인해 총알이 노란색으로 빛나거든요. 네, 그렇죠. 황금비를 마구 뿌릴 정도로 넘쳐나는 황금을 숨겨두고 있다. 그래서 레프리콘. 정말 인간 분들의 작명 센스는 놀라울 따름이에요.

아…… 슬슬, 시간인가요? 아, 마지막으로 사령관 각하께 할 말…… 그렇군요. 음…….

통칭 철의 탑에 돌입하는 40명 중의 정예 중 한 명으로 선택된 것, 정말 영광입니다. 사령관 각하.

저희 분대원들도 절차탁마하여 갈고 닦은 전투능력을 발휘할 시간을 고대하고 있었으니까요.

저희에게 이런 영광을 얻을 기회를 주신 것, 정말로 감사드립니다.

반드시 이번 탐사에서 유의미한 성과를 얻어오도록 하겠습니다!

……어, 네. 그러면… 으… 자랑스러운 사령관 각하께, 올림. 감사합니다!!!

 

1

 

그녀들이 떠난 뒤의 영상은 가장 말단… 레프리콘이 분대장을 맡고 있는 소대가 찍은 것이 마지막이었다.

영상을 모두 시청한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갑판 위로 나섰다. 막막한 가슴에 잠시 바람이라도 쐬어주기 위해서.

평소에는 잘 쓰이지 않는 작은 개인용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가자 드넓은 바다와 하늘이 펼쳐진다.

이곳은 정말 푸르고, 평화롭고, 고요하다. ……음, 이렇게 생각하니 금란에게는 조금 미안해진다. 그녀를 위해서 특별한 방을 지어주고 싶은데. 요즘 

오르카호의 최고 권리를 가진 사령관인 나도… 이번만큼은 완벽한 생환을 기대할 수 없다. 물론, 소득이 없더라도 반드시 생환하는 것을 목표로 할 것이다.

우리들이, 인류가 이 땅에 도사린 위협들과 싸우기로 결정했다면, 이번 결정은 위험하더라도 언젠가는 있었을… 그런 필연적인 상황이다.

언제까지고 눈을 돌려봐야 그녀들의 편안한 안위는 돌아올 수 없다.

평생 바다 위를 거닐며 생을 마감할 수는 없으니 말이다.

“그러니…… 부디 잘 부탁한다.”

커다란 파도가 철썩 하고 수면 위를 미끄러져 지나간다.

시원하군.

그녀들이 떠난 지 얼마 지나지 않았는데도 어느새 오르카호에 활발했던 생기가 사라진 듯 했다.

덴세츠, 버뮤다, 발할라, 몽구스, 호드, 그리고 스틸라인까지.

………….

나는 방금 전 입밖으로 꺼낸 이기적인 소망을 주워담기로 했다.

“부디 아무런 소득이 없어도 괜찮으니 무사히만 돌아오길.”

 

???

 

“크윽…… 머리가…….”

머리가… 찢어질 것 같이 아픕니다…. 이게 무슨 일이죠? 어서 상황을 파악해야…….

“……아.”

무심코 손을 댄 머리에서 피가 묻어나옵니다. 아무래도 정말로 머리가 찢어진 것 같습니다.

주위를 둘러보니 이곳은… 확실합니다. 철의 탑 내부임이 틀림없습니다.

“어쩌다 이렇게 된…… 아!”

그랬었죠. 철의 탑… 그것이 발산하는 기이한 에너지 파동이 원인이었습니다. 이곳까지 날아왔을 때 사용한 기함은 그런 위험요소도 고려해서 에너지 필드를 전개할 수 있었고, 실제로도 기동했습니다만…….

“아무래도… 이렇게 된 걸 보면…….”

이렇게 된 이상 가능한 한 많은 인원을 찾아야 합니다. 통신기기는… 다행히도 작동되고 있습니다. 단파 통신뿐이지만……. 아, 오렌지에이드 씨로부터 지령이 내려와 있군요.

『현재 저희를 이곳까지 이송한 기함이 파손되어 불시착하였습니다.』

『만일 혼자 떨어져 있는 인원이 있다면 절대로 개인행동을 하지 않고 숨어계십시오.』

『지휘관 개체는 떨어져 있는 소대를 수습하여 전원과 합류하는 것을 최우선 목표로 하십시오.』 

『구조용 기함을 비상호출 했습니다만, 에너지 파동의 견제로 인하여 착륙에 난항을 겪고 있습니다. 그때까지는 가능한 한 많은 데이터를 얻어와주세요.』

『건투를 빕니다.』

정리하자면 저희는 불시착하여 그 충격으로 뿔뿔이 흩어지게 되었고, 지휘관 개체는 소대를 수습하여 최대한 빨리 모두 합류한 다음, 구조가 올 때까지 가능한 한 많은 데이터를 모아오라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정밀 GPS 기능은 완전히 먹통이군요. 신호조차 잡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저는 낮은 계급이어도 소대의 지휘관을 맡은 몸입니다. GPS 고장 정도로 허둥지둥 대서는 안 됩니다.

오히려 저보다도 더 허둥지둥대고 있을 아이들을 생각하면… 가만히 있을 수는 없겠군요.

지휘관 개체는 단독행동을 허가하셨으니, 발로 움직여서라도 소대원들을 찾아야겠습니다.

“하지만…… 저 혼자서는 나이트 칙 한 마리도 버거우니, 전투는 최대한 피해야겠군요.”

스틸라인의 정신과는 많이 다르지만, 이번에는 은밀행동을 해야겠습니다.

만일 전투가 벌어진다면…… 그 소리를 듣고 이쪽으로 합류할 것을 기대하는 수밖에 없겠군요.

우선, 움직여야겠습니다.

 

2

 

그 소망이 분쇄되는 것은 그리 오래 지나지 않은 일이었다.

“……이게 무슨 일이지?”

그녀들이 철의 탑에 도착하나 싶었을 떄쯤, 갑자기 철의 탑에서 비정상적인 에너지 반응이 생겨났다.

직후, 강력한 충격파가 중심에서부터 뿜어져나와 기함을 박살내버렸다…….

다행히도 그런 일에 대비해서 불시착할 준비를 마쳐놓은 상태이고 별다른 지원공격도 없었다 보니 지금 당장은 아무 일도 없겠지만…….

내부 상황이 어떤지는 확실하게 알 수 없으니, 최대한 조심을 기울이자.

“사령관? 여기는 시스터즈 발할라. 불시착하긴 했지만, 자매들과 합류중이야. 당장 복귀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것 말고는 작전에 지장은 없어.”

“사령관 님. 여기는 덴세츠. 저희 마법소녀들은 뿔뿔이 흩어진 상태지만 곧 다시 모일 수 있을 거예요! 너무 걱정 마세요.”

“사령관? 여기는 버뮤다……. 우리는 아무 피해도 없어……. 지금 다른 자매들을 구조하는 중이야. 괜찮지? 응, 알겠어. 모두 찾아볼게.”

“사… 관…… 님……. 칙, 치익. 저희… 아… 들과… 합… 중입니…. 작전에… 치익. …은 없… 니다……. 치익.”

“사령관. 여기는 호드. 그래…… 뿔뿔이 흩어지긴 했으나 내가 키워놓은 녀석들이라면 그리 호락호락 당하지는 않겠지. 최대한 빨리 합류할 수 있도록 노력해보겠다.”

“………치직. 칙.”

발할라와 버뮤다는 그나마 사정이 좋지만, 나머지 팀들은 굉장히 불안정한 상황이다. 통신에 응답이 없다니…….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충격으로 기절해서 응답이 없는 것일수도 있으니까요.”

“모모…….”

그녀들에게는 내 목소리만 전달될텐데도, 그렇게나 내가 걱정하고 있는 마음이 전해지고 있었던 건가.

“달링.”

“사령관.”

“사령관……?”

그리고 현재 연락이 가능한 다른 팀들도…….

그래. 아직, 아직 아니다. 아직 모르는 거다.

그녀들을 불안하게 하지 말자. 그게 오히려 더 위험한 일이야.

“내부의 모습은 어때?”

“그건 내가 대답해도 될까?”

시스터즈 발할라의 커맨더, 레오나가 대답했다.

“부탁할게.”

“응, 우선 단적으로 말하자면… 굉장히 기분 나빠. 마치 나이트 칙이 아무렇게나 뭉치고 뭉쳐 탑의 형태를 이루어낸 것 같아.”

그렇군…… 그렇다면…….

“조명이 필요할만큼 어둡나?”

“아니, 그렇진 않아. 그… 철충에게 감염된 AGS처럼 빨갛게 빛나는 곳이 군데군데 있어서. 취미 나쁜 디자인이긴 해도 시야확보가 어렵진 않아.”

“좋아. 우선 소대 자매들을 포함해서 전원과 합류해줄 수 있어? 다른 팀들도 마찬가지야. 전원이 모여야 구출할 수 있어. 이번 작전을 위해 비상용 기함을 준비해두었으니까. 신중하게만 움직여 줘.”

“알겠어.”

“알겠다.”

“맡겨주세요!”

“……치익.”

“맡겨줘…….”

후우…….

“괜찮소?”

고개를 들어 주위를 확인해보니 현재 부관인 무적의 용이 내 곁을 지키고 있었다.

“……이번 작전, 꼭 해야 하는 일이었을까?”

“물론이오. 이번 작전이 우리의 적을 좀 더 이해하는 결과를 가져올 것이라고 나는 확신한다오.”

그런가…….

“그게… 꼭 저 불가사의한 탑 안으로 찾아가야 알 수 있는 것일까?”

“……이런 말 드리기에는 무척이나 송구하오나, 3가지 함대를 총괄한 나에게는 그럭저럭 많은 정보가 들어왔소. 블랙리버가 철충과 흽노스 병에 대해 연구하고, 어느 정도 의미있는 성과도 이루어 냈소.”

용은 헛기침을 한 번 하더니, 계속 말을 이어나갔다.

“철충과의 전쟁에서 승기를 잡기 위해, 소관에게 그러한 정보가 들어오는 것은 필연적이었소. 당연한 일이지 않은가? 군대를 지휘하는 자가 한정된 정보만을 알고 제대로 된 지휘를 하리란 만무한 일이니.”

그렇다는 건…….

“그렇게 오랜 기간 쌓아온 지식들에도, 저 철의 탑은 모르는 존재라는 거구나.”

용은 고개를 끄덕였다.

“적어도…… 우리가 모르는 것을 알게될 것은 분명하다오. 그것이 이득이 될지, 독이 될지는 모르는 상황이오만….”

“아니, 용의 판단은 지당해. 정보는 가장 큰 무기니까.”

전장을 지휘하는데 있어 얼마나 많은 정보가 필요한지는 내가 제일 잘 알고 있으니 말이다.

“소관은 본디 함대를 이끄는 해군인지라, 이번 작전에 직접 참여하지 못하는 게 아쉬울 따름이군.”

용은 살짝 침울한 투로 이야기했다. 그래…… 책임감이 강하기로는 용 또한 둘째가라면 서러울 것이다. 언뜻 보니, 작전에 직접 참여하지 못하는 게 분한 듯했다.

“그렇게 따지면 스카이 나이츠나 둠 브링어도 마찬가지야. 공군과 해군, 둘 다 이 작전에는 맞지 않으니까. ……적재적소라는 거지. 그러니 너무 상심하지 마.”

“후후… 도리어 위로를 받았군. 선처하도록 하겠소.”

약간은 용의 얼굴이 누그러진 듯 보였다. 다행이야.

그래…… 긍정적으로 생각하자. 그래도 통신은 정상적으로 작동하잖아. 정확한 위치도 이쪽에서 파악 가능하고, 직간접적으로 지휘를 내리는 것도 모두 가능하다.

예상치 못한 반격으로 불시착을 하긴 했어도 내부에까지 영향을 미치는 부류의 것은 아닐 것이고, 전방향으로 방출한 에너지 파동인 만큼 연발할 수 있는 종류의 것도 아닐 터이다.

나는 정찰대를 담당하고 있는 바이오로이드 중 믿음직한 한 명에게 통신을 연결했다.

“흐레스벨그, 어때?”

“치직. 네, 사령관 님. 시험삼아 더미 광학탄 등으로 공격을 시도해보았습니다만, 완전히 무반응입니다. 에너지 필드를 발동시킬 수 있는 인원이 접근하기도 해봤습니다. 결과는… 보시는대로입니다.”

흐레스벨그가 공유해준 영상에 따르면 모든 것이 그녀들의 증언대로였다.

“좋아. 일단 교대로 경계태세를 유지할 것을 부탁할게. 이상상황이 발생하면 바로 보고해. 그리고 근처에 구출을 위한 기함을 대기시킬건데, 만일을 대비해 적당한 지점을 지시해줘.”

“맡겨주십시오. 사령관 님.”

그것으로 무전은 끝이 났다.

“그럼…… 지휘를 시작해볼까.”

 

???

 

저는 긴급할 때 사용하라고 지급받은 응급의료키트를 사용하기로 결정했습니다.

안에는 뼈나 장기가 손상되었을 때도 치료 가능하도록 나노머신으로 이루어진 긴급수복자재와 오리진더스트 활성제 등이 들어있습니다.

이걸로 찢어진 머리를 수복하니, 어지럼증도 사라지고 금세 몸에 활기가 돌기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움직이는 것이 가능하게 되었을 때쯤, 다시 탐색을 시작했습니다.

그러기를 1시간째.

“여기는 도대체…….”

철의 탑… 아니, 저는 정말 철의 탑이라는 장소에 온 게 맞기는 한 걸까요?

은은하게 빛나는 빨간 문양… 패턴 같은 것이 느껴지지는 않습니다. 아무래도 조명 역할을 하는 것이겠지요……? 이것 덕분에 앞이 보이는 데에는 불편함이 없습니다만…….

아무리 돌아다녀봐도 끝이 보이질 않습니다. 위나 아래로 가는 계단도, 엘리베이터도, 통로도 보이질 않습니다.

일단 만약에… 혹시… 라는 생각으로 슬쩍슬쩍 GPS를 확인하고는 있습니다만, GPS는 꿈쩍도 하지 않았습니다. 역시 고장난 것 같군요.

“여기서는… 조금 고전적인 방식을 쓰도록 할까요.”

철의 탑이 아무리 넓더라도 층 하나가 그렇게나 많은 평수를 차지하지는 않을 겁니다. 여기서는 직접 길을 찾는 수밖에 없겠어요.

그…… 르르르르륵!!

“좋…… 아! 단단하긴 하지만, 그래도 표시가 나지 않을 정도는 아니네요!”

조명이 있긴 해도, 무심코 지나갈 수 있을 만큼 어둡기 때문에 빨갛게 빛나고 있는 문양에 상처를 냈습니다. 다행히도 무언가 이상한 반응이 있거나 하지는 않는군요.

“여길 기점으로… 간단하게 지도를 만들어봐야겠어요.”

GPS만 제대로 작동했어도 이런 수고를 할 필요는 없었겠지만, 제 모듈에 이러한 지식이 있는 것도 다 이런 상황을 대비하기 위해서겠군요.

“어서 빨리 합류할게요. 기다려주세요. 브라우니 일병, 노움 상병 님. 그리고 마리 대장 님도…… 부디 무사히 계셔주시길.”

……….

………….

…………………….

잠깐.

이건… 이건 뭐죠?

인간 분의… 뇌파 반응?

 

3

 

“크윽…….”

“정신이 드셨습니까!? 브라우니!! 빨리! 이곳으로 와보세요!!! ……네, 그렇게 받쳐주고 있으세요. 조금이라도 빨리 회복하실 수 있게끔.”

여긴…… 어디지…….

아, 그렇다. 나는 불굴의 마리. 새 지휘관의 능력을 시험하고, 소대원들을 지원하기 위해서 직접…… 철의 탑으로 왔다.

그 다음…… 그 다음 무슨 일이 있었지?

“지금…… 상황은 어떻지?”

“현재 전황은 ‘변함없음’입니다! 일단은 안정을 취하셔야 합니다. 괜찮습니다. 응급의료키트를 사용했으니 몇 분 뒤면 바로 전장에 복귀하실 수 있습니다.”

“그런가…….”

이상하다.

뭔가 이상해…….

자매들은 싸우고 있지 않다. 기껏해야 나를 지키기 위해 주위를 둘러싸고 경계근무를 하고 있을 뿐…….

현재 전황은 ‘변함없음’ 정도가 아니라 ‘나쁘지 않음’ 정도일 터다.

그런데…… 그런데 왜지?

왜 계속 뭔가 중요한 것을 잊은 듯한 기시감이 드는 것이지?

“노움 상병…….”

“예, 말씀하십시오.”

의문은 머릿속에서 되뇌이고, 확실한 정보만을 되새긴다.

병사들의 불안을 증폭시키지 않도록.

“우리는 분명…… 40명의 정예로 철의 탑에 돌입하고, 에너지 파동의 영향으로 불시착한 것이 맞겠지? 내 말이 틀렸나?”

“……? 아! 예! 맞습니다.”

“그렇지…… 그 충격으로 나는 기절하고…… 지금 여기서 이렇게 수복이 끝날 때까지 기다리고 있는 것이겠지?”

가슴을 울리는 불안함이 누그러진다. 좋아, 내가 알고 있는 그대로다.

“……네? 아닙니다. 그 충격으로 저희와 마리 대장님, 레프리콘 분대장은 분리되었습니다.”

“………뭐?”

잠깐, 그 말뜻은…….

“그러다 대장님께서 레프리콘 분대장을 발견하셨고, 잠시동안 통신이 끊겼습니다. 저희들이 수색에 분투한 결과 대장님이 여기서 기절해 계신걸 저희가 발견하고 수복을 도와드리고 있었습니다.”

“…………!!!!”

핏줄이 불타오르는 것처럼 뜨겁게 느껴졌다.

두뇌가 다시 회전하기 시작한다. 충격으로 잠시간 잊힌 기억이 되살아나려 한다.

“저…… 마리 대장님?”

노움 상병이 불안한 눈치로 이쪽을 바라보고 있지만, 지금은 그것을 격려할 여유가 없다.

“앗! 잠깐, 아직 일어나시면 안 됩니다! 수복을 시작한 지 얼마 안 되어서…….”

“그만 됐다. 이제 거의 다 나았으니……. 그것보다 지금…… 브라우니들은 뭐하고 있지?”

“아, 그것은 레프리콘 분대장을 수색하고 있는 겁니다. 이 층에 있는 철충들은 마리 대장님께서 모두 정리하셨습니다만, 아직 레프리콘 분대장과의 통신은 복구되지 않아서…… 저, 대장님?”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눈을 부릅뜨며 노움 상병에게로 시선을 향했다.

“지금, 소대를 지휘하고 있는 것은 누구이지?”

“네? 아, 그것은 분대장의 부재로 제가 대신…… 왜 그러십니까?”

“지금, 사령관 각하와 통신은 가능한가?”

“앗, 물론…… 아…… 저, 그게…….”

“………….”

“가, 가능합니다!!”

이런, 또 험악한 얼굴을 짓고 말았나.

미안하군. 노움 상병. 하지만 나중에 사과하게 해주게.

나는 통신기를 건네받은 즉시, 현재 긴급상황을 전달하기로 했다.

치직

“사령관 각하. 불굴의 마리입니다. 송구하오나 가타부타 생략하고 말씀드리겠습니다. ……맞습니다, 레프리콘 0219번 분대장이 실종되었습니다. 지금 당장이라도 차출 가능한 한 인원으로 수색을 허가받을 것을 요청드립니다.”

 

???

 

………….

……………….

이상합니다.

분명히 뇌파 반응을 확인했지만 그곳에는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정말 아무것도요.

마치…… 귀신이 왔다간 것처럼…….

“아니… 아니겠죠!”

귀신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이것은 분명 공포 때문에 생긴 환각 같은 것이겠죠.

순간적으로 인간분이라고 생각했지만…… 그건 아닐 겁니다. 철의 탑이니 철충인 것이 당연한 일이겠죠?

그런데…… 그렇다면 이 뇌파 반응은 왜 계속 나타나는 걸까요?

마치…… 전선이 끊어져 불안정한 전등이 깜빡깜빡 거리는 것 같습니다.

이곳저곳에서 동시에… 혹은 한 곳에서 느껴질 때도 있습니다.

이게 인간 분들이 잠을 잘 때 나타나는 뇌파인걸까요?

실제로 본 적은 없지만…… 저 같은 말단은 사령관 각하께 직접적으로 명령을 받는 일이 거의 없습니다.

저 또한 사령관 각하께 직접 명령을 받은 것은 딱 한 번…… 철충을 공격하라. 그것 하나뿐이었습니다.

사령관 각하께서는 바이오로이드들의 복지에 관심이 많으신 분이니, 절대 강압적인 출격은 없었습니다. 만일 싸우기 힘들다고 하는 소대원이 있으면, 대면상담 이후 모듈을 제거하고 단순 잡무로 인력을 돌리는 경우도 많습니다.

가끔 사령관 각하께서 시찰을 나오시거나 피치 못할 사정으로 상담을 받는 경우를 제외하면 직접 얼굴을 보는 것조차 힘든 분이시니…….

……….

그래요…… 서툰 확신은 금물입니다.

철충과 인간의 뇌파가 구분할 수 없을 정도로 같다지만, 눈으로 보고 확신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좋아…….”

우선은 뇌파는 신경쓰지 않도록 합시다. 최대한 시선을 집중해서 실체를 확인해야만 하니까요.

철충…… 이겠지만요. 맞겠죠? 철충……?

“으으…… 투시경이 망가지지만 않았더라도……. 하윽!!”

아야야……. 뭔가에 걸려 넘어져서…….

“……이건 뭐…… 어?”



………….

…………….

………………….

"아."

지익.

지이이익.

지지익. 지이이이익.

치직.

치치치치치치치칙!치치치치치칙!치치치칙!

…………….

툭.

 

4

 

“그게 사실입니까?”

“그래…… 나와 레프리콘은 기적적으로 함께 있었지……. 나 혼자만이라면 몰라도, 전적으로 화력지원에 특화된 레프리콘의 특성상 이런 폐쇄된 장소에 혼자 고립되면 굉장히 위험하니 말이지.”

그래서 나와 레프리콘은 서로 협동하여 내가 역장으로 적의 공격을 막고, 레프리콘이 뒤에서 기관총을 난사하는 것으로 철충들을 정리…… 했다.

하지만 문제는 그 다음이었다.

“처음에는 별것 없었다. 바깥에서 보았던 개체들보다 훨씬 약한 것들이었지. 마치 기생한지 얼마 지나지 않은 것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하지만 나와 레프리콘은… 방심했던 거다. 잡병들만 있다고 방심한 시점에서…… 독보적으로, 말도 안 되게 강한 개체가 섞여 있었다.”

“그 개체는 어떤……?”

마리는 머리를 짚고 죄여오는 두통을 쫓으며 이야기를 천천히 이어나갔다.

“모르겠다. 한 번도 본 적 없는 개체였어. 그래, 그때까지만 해도 우린 방심하지 않았어. 처음 보는 개체는 어떤 불확실성이 있을지 장담할 수 없지. 괜히 심기를 건드리지 않고 왔던 길로 돌아가자는 결론을 내렸다. 자극하지 않도록 천천히…….”

그래, 거기서부터 문제였던 것이다.

나와 레프리콘은…… 더 서둘러야 했다.

“녀석들…… 아니, 그 개체는 우리를 막다른 길로 몰아넣었다. 휘하의 철충 녀석들을 지휘해서…… 마치 사냥감을 함정으로 몰아넣듯이……!”

“그, 그러면…… 레프리콘 분대장은 도대체 어디 있는 거죠? 마리 대장님이 입은 약간의 상처를 제외하면, 혈흔조차도 발견되지 않았는데……!”

“……그래, 그것이…….”

마리는 다음 층으로 향하는 계단 앞에 올라섰다.

“우리가 이곳 철의 탑에서 알아내야만 하는 비밀이다.”

노움, 그리고 브라우니들 다수로 급조된 소대.

갑작스러운 동료의 실종.

그녀들이 사기를 잃는 것은 어느때보다도 당연해보였다.

“알겠나? 이 사건은 비단 동료의 실종이란 문제뿐만이 아니다! 그녀 말고도 그 개체와 조우한다면 그렇게 한 명, 한 명 실종될 가능성이 있다! 우리 스틸라인의, 그리고 오르카호의 모든 자매들을 위하여! 반드시 레프리콘 0219번을 찾아낸다! 알겠나!!!”

“예!!!!!”, “알겠습니다!!!!”, “지당하신 말씀입니다!!!”

하지만, 그 어느때보다도 투지에 불타올라 있었다.

그녀들에게 있어서 동료를 잃는다는 슬픔은, 다시는 겪고 싶지 않은 일이었다.

그리고 그것은, 오르카호의 최고 통수권자. 사령관에게도 마찬가지인 일이었다.

 

“레프리콘 0219번의 실종…… 이라…….”

그녀가 이번 철의 탑 원정에 참여하게 된 것은 여러 이유가 있다.

첫째는 스틸라인이기 때문이다.

이번 작전에서는 공군, 해군 모두 접근 불가능이다. 철의 탑 그 자체를 파괴해버리면 우리는 그 안에서 아무것도 얻어낼 수 없으니 말이다.

애초에 파괴할 수 있는지도 의문이지만…… 그 문제는 넘어가도록 하자.

그리고 둘째는 그녀가 가진 우수한 능력.

브라우니에 비하면 레프리콘 개체는 3분의 1 정도 수준으로 적은 편이다. 하지만 내가 부임하기 전까지 취급은 브라우니와 크게 다르지 않았고, 레프리콘이라는 화력지원 담당이 전사해버리면 전선 앞으로 나선 브라우니들은 개죽음이 되어버린다.

인간의 명령이 없어 적극적으로 저항할 수 없었던…… 그 중에서도 오래 살아남은 개체가 바로 레프리콘 0219번이었다.

이쯤되면 그녀를 뽑지 않을 이유를 떠올리는 것이 더 힘들 것이다. 그녀는 수많은 철충을 벌집을 만들어냈고, 100번의 싸움에서 1번이라도 죽으면 끝일 전투에서 늘 살아돌아왔다.

하지만 난 이번 작전에 앞서 철의 탑으로 몸소 투입 및 침투할 인원들을 모두 상담하도록 했다.

앞선 두 가지 이유를 들어서라도, 자원의 형태가 아니라면 보내지 않는다. 물론 그 경우 제 2후보를 뽀는 형태가 되었겠지만…….

 

“감사합니다. 사령관 각하. 드디어…… 제가 쓰일 곳을 찾은 것 같습니다.”

그런 걱정은 무의미하게도, 그녀는 의욕이 굉장했다.

아니, 정정하자. 그녀는 무력감에 젖어있었다.

당연한 이야기다. 지금까지 살아남아왔다는 것은 계속해서 희생자를 겪어왔다는 의미이기도 하니까.

“그런 식으로 말하지 마. 나는 레프리콘 너를 죽으러 갈 곳으로 보내는 게 아니야.”

“죄, 죄송합니다!!”

레프리콘은 실수를 저질렀다는 듯 바로 고개를 숙이며 사과했다.

사과할 일 같은 게 아닌데도…….

“왜 그렇게 의욕이 넘치는지… 물어볼 수 있을까?”

“아, 그, 그건…….”

레프리콘은 청결하게 잘 정돈된 머리카락을 배배 꼬아가며 말끝을 흐렸다.

‘그런가…….’

그 날 봤던 개체가 지금 내가 보고 있는 개체인지는 모른다. 그 시절에는 나도, 대원들도 모두 허둥거렸으니.

하지만 레프리콘의 빨갛고 긴 머리가 푸석푸석하고 관리도 잘 되지 않는다는 현실을 보고 말았다.

그 시절의 나는… 복지에 관심만 있다 뿐이었지, 제대로 재무 관리를 할 수 있는 상태가 아니었는데도. 그녀들이 오랜 전투 속에서 희생해 온 시간들 때문에 ‘여자’로서의 미도 희생하지 않았으면… 하고 바랬다.

당시에는 바로 해결되지 못했다. 먹고 살기에도 급급했고, 사령관이라는 입장인 나조차도 제대로 된 식사는 기대하기 어려웠을 정도다.

그런데 지금은 어떤가? 그녀들은 여전히 싸우고 있지만 이제는 아름답게 빛나기도 한다.

레프리콘은 우물쭈물 거리던 입을 앙 다물며 굳게 다진 의지를 그 두 눈에 서렸다.

“사령관 각하께, 제가…… 저희가 받았던 것들을 보답하고 싶습니다.”

언젠가 다시 찾아올 인류의 시대에 그녀들은 싸우는 것 대신 자신만의 삶을 개척할 수 있게 될 것이다.

……….

………….

……………그렇게 될 일이었는데.

어디서부터 잘못된 거지? 역시 그녀들을 철의 탑으로 보내지 말았어야 했나?

아니면…… 그저 조용히 밭을 일구며 평화롭게 살아가야 했을까? 별의 아이도, 철충의 위협도 닿지 않는 그런 이상향 같은 건 저 우주 너머 말고는 어디에도 없다.

이 지구에서 사는 이상, 그녀들에게 편안한 안식은 주어질 수 없는 것일까?

치직.

통신기 너머로 마리 대장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아직, 아직입니다. 그녀는 아직 죽지 않았습니다.”

“……어떻게 확신하지?”

“저희 소대가 이미 조사를 마쳤습니다. 레프리콘, 그녀의 혈흔은 흔적조차 발견되지 않았습니다. 실종이라기보단 납치라고 보는게 타당하다고 볼 수 있을 정도입니다. 그들이 왜, 어째서, 이러한 상황에 그녀를 납치했는지는 모릅니다. 하지만…….”

마리 대장은 잠시 숨을 고르고 굳게 다진 의지를 관철했다.

“그녀를 반드시 구해낼 것입니다.”

“……허락하지. 조사는 같이 돌입한 다른 팀원들에게 맡기고, 레프리콘 그녀의 수색에 전념해줘. 그리고…… 그 정체불명의 개체에 대한 정보는 다른 팀원들에게도 가능한 만큼 공유하고.”

“알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사령관 각하. 저……”

“아니, 이것은 내 책임이다. 마리 대장은 이 일에 대해서 이상한 생각 품지 말고 수색에 전념해줘. 다시 말하지. 이건 마리 대장의 잘못이 아냐. 알겠나?”

“……분부 받들겠습니다!”

제발.

그녀가 무사하길…….

오늘만 몇 번이고 주워담은 소망을, 나는 다시 한번 주워담았다.

 

???

 

………….

…………….

………………으.

~~~~~으으…….

머리가… 지끈거리고…… 숨을 쉬기 힘듭니다…….

마치 감기에 걸린 것처럼…….

………?

이상합니다.

저희 바이오로이드는 일반적인 병이나 독극물에는 영향을 받지 않을 텐데도…….

어째서 이렇게…… 몸이 뜨거운 걸까요?

“아……….”

힘겹게 눈을 떠보았지만…… 모든 것이 뿌옇게 보입니다.

“일어나야만…… 서둘러… 야…….”

무언가…… 무언가 이상한 것이 제 몸에 들어오려고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필사적으로, 필사적으로 그것을 막아내고 있다는 기분이 듭니다. 원인이 뭔지는 알 수 없지만, 제 몸의 오리진더스트는 그것을 유해한 것으로 판단한 것 같습니다.

“하아…… 하아…… 읏…….”

몸이…… 뜨겁습니다. 너무 뜨겁습니다.

그런데도…… 괴롭다는 느낌은 하나도 들지 않습니다.

마치 구름 위에 있으면서도 쨍쨍한 하늘 아래에서 더위를 만끽하는 듯한 기분이 듭니다.

아니, 이게 아닙니다. 이런게 아닙니다. 분명 좋은 기분은 아닙니다.

그래도 한 가지 확실한 점이 있다면…….

조금이라도 방심하면…… 그대로 나락으로 떨어질 것만 같은… 그런 위험한 느낌…….

………….

“더워…….”

당장이라도 슈트를 벗고 싶은 기분에 흽싸입니다.

“아냐…… 아니야…… 벗으면 위험해…….”

철충의 무기를 온전히 막을 수는 없지만 단 한 번이라도 치명상이 될 수 있는 상처를 지혈해줄 수 있는 고기능성 슈트입니다.

이곳은 철의 탑…… 벗어서는 안 됩니다.

“나는…… 왜 철의 탑으로 왔더라……?”

정신이 급속도로 모호해져 갑니다. 제대로 된 사고를 유지할 수가 없습니다.

잠이 오지는 않습니다. 마치 꿈 속에 둘러싸인 듯한 기분.

정신은 말짱한데, 현실 속에 있지는 않은 그런 꿈 같은 기분.

“어………?”

차가운…… 무언가가 제 몸을 감싸는 게 느껴집니다.

그때까지도 저는 자신에게 처한 상황을 이해할 수가 없었습니다.

단지 그 기분 좋은 시원함에 몸을 맡기고 싶었습니다.

“앗…… 읏! 으아……?”

살짝 저릿하고, 그러면서도 차가운 금속질의 무언가가 제 몸을 어루만져 주고 있습니다.

어디까지나, 언제까지고 그 몸을 맡기고 싶어집니다.

“으극, 아윽. 아……? 윽!? 하… 읍…… 으읍……!!!”

계속해서 제 몸을 맡기고 싶습니다.

 

…………            .

    치직, 칙. 치이이익.

       들, 려? 레, 치직, 리콘!

           치직! 거… 서! …와야, 치직.

치이이이이익.

………….

                        ,

 

5

 

우리는 오만했다.

지난 날의 과오를 청산했다            고 착각한 것이다.

이것은 사령관 각하의 책임인가?

아니면 판단을 그르친 지휘관의 잘못인가?

사실 이 정도 상황이 된다면, 그 진위여부는 아무래도 좋을 것이다.

인간이 사라졌다고, 이 세계의 그 누구도 그 사실에 의문을 품지 않았다.

우리는 노예로 태어나서, 영원한 노예로 살아가기로 각오했기에.

누군가의 수족으로 태어난 이상 다른 삶의 방식을 추구할 수는 없었던 것이다.

하지만 인간은 사라지지 않았고, 우리들 앞에 그 모습을 드러냈다.

새로운 인간은 우리들을 이끌어 주었고, 한낱 노예에 불과한 우리들에게 미래를 제시해주었다.

더 이상 돈이나 이권에 대한 이념 같은 하찮은 것에 휘둘리지 않고, 모두가 자연스레 사랑을 나누고 미래를 선택하고, 그 대가 끊이지 않고 계속해서 이어질 것이라는 그런 이상적인 미래를 약속했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는 싸워야 한다. 살아있는 이상 무언가와 싸워서 살아남는 것은 필연이다.

그것이 하늘에서 내려온 외계의 벌레라고 하더라도.

후세에게 안심하고 살 수 있는 평화로운 미래를 약속하기 위해서.

우리는 철을 두들기고, 부채질하고, 단련한다.

철의 정신을 계속 이어나가기 위해서.

우리는 스틸라인이다.

 

6

 

“우리는!!! 철을 두들기고!!! 부채질하고!!! 단련한다!!!”

칠흑같이 어둡고 불길한 탑의 공동 안에서 울려퍼지는 힘있는 목소리.

“우리 모두 여기서 서서 죽을 것이다!!! 누가 나를 따르겠는가!!!”

뒤따라 이어지는 함성소리에 잠시 소름이 돋았다.

그것을 누가 외친 것인지는 모른다. 브라우니였는지 노움이었는지 이프리트였는지…… 여러 가지로 생각해볼 수는 있다.

그러나 그 사실은 지금 중요치 않다. 그것으로 우리들의 사기가 올라갔으니까.

“지휘관이라는 자가 병사들의 사기를 높이지는 못할 망정…… 한심하군.”

그렇지만 자아성찰은 나중이다. 지금은 눈앞의 강대한 적을 상대해야만 하니까.

“드르륵!!!”

“아아아악!!! 팔이!!!!”

“조금만 버텨요!! 금방 지혈해줄게요!!”

“흥!!!”

캉!!!!

“으윽……!!”

도대체 저 철충은 정체가 뭐지?

지금껏 봐왔던 연결체들과는 급이 다르다. 그 어떤 공격도 먹히질 않고, 저쪽에서의 공격은 단 한 번이라도 치명적이다.

“마리 대장님!!!”

“난 괜찮다. 위험하니 물러서도록.”

아직 우리는 이 탑의 꼭대기는커녕 절반조차 오르지 못했음에도.

중대 단위의 아군을 편성했어도 저 연결체 하나를 이길 수 없다는 것인가?

“안돼!!!”

어디선가 들려오는 절규의 목소리.

연결체뿐만이 아니다. 휘하의 철충들도 강하다.

나는 괜찮아도 다른 병력들이 버티지 못한다.

“우리는 철의 의지를 단련해온 스틸라인…….”

멸망 전부터 지금까지 살아남아 싸워왔다.

추하다고 생각했다. 모든 마리는 누군가를 지키고 장렬히 전사했는데. 이 육신은 현세에 남아서 계속 병사들에게 희생을 강요하고 있었다.

그런 와중에 사령관 각하께서 우리들의 사기를 고취시키고, 이끌어주었고, 아무도 죽지 않게 되었다.

희망을 보았다고 생각했다.

‘그렇다면 이곳이 내가 죽을 곳인가.’

“으으…… 노움 병장님…… 우리 여기서 죽는 검까…….”

“괜찮아요!! 사령관 각하께서 오신 뒤로는 아무도 안 죽었으니까!! 분명 이 상황을 타파할 전략을 짜오실 거에요!! 그러니까 정신 놓지 마세요!!”

‘………….’

내가 잘못 생각했구나.

……그래, 내가 죽으면 이 몸을 희생해서 사령관 각하를 까내리는 꼴이다.

그 분은 우리들, 그리고 인류의 구원자가 되실 분.

한 번 주인으로 정한 이상, 그 충성을 절대 헛되이 하게 둘 순 없다.

“그렇다면……!!”

그렇다면 이런 전장일수록 더더욱 죽을 수는 없다!!

“전원!! 들어라!!!!!”

새틀라이트 캐논들을 전부 철충녀석들을 향해 조준한다.

“우리는 여기서 희생자를 낼 수 없다!! 원군도 올 것이고 구조도 분명 올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결코 죽지 않는다!! 돌아가는 길에 자매들이 침울해하지 않도록!! 오르카호에서 기다리고 계시는 우리의 희망에 그림자가 지지 않도록!!”

숨을 한 번에 들이켜고, 내쉰다.

“전진해라!! 우리들의 소중한 대원을 구출해라!! 이 망할 철충녀석들은 내가 묶어두겠다!!”

술렁거리는 목소리. 하지만 자매들이 동요에 삼켜지지 않도록 나는 그녀들을 두둔한다.

“나 또한 맹세를 지킨다!! 너희들이 돌아올때까지 반드시 버틸 것이다!! 내 걱정은 하지 마라!! 나는 전장 속에서 더욱 강해진다!! 이 녀석들에게 목숨을 바칠 염려는!!”

조준한 새틀라이트 캐논을 모두 전력으로 발사한다.

4개의 캐논이 역장을 눈부신 섬광으로 바꾸어 마구잡이로 방출했다.

압도적인 화력. 이 불굴의 마리가 그저 전장에서 총알받이나 하는 그런 존재가 아님을 보여주는 광경이었다.

연결체를 제외한 모든 철충들이 벌집으로 변한 뒤 나는 이어서 외쳤다.

“보았는가!! 그런 생각은 추호도 할 필요 없다!! 누가!! 이 임무를 성공시키겠는가!!!!”

“와아아아아아!!!!”

이곳에 모인 모든 대원들이 탑의 정상을 향해 앞으로 나아갔다.

좋아. 이거면 되었다.

꼭 내가 아니더라도 이곳에 나와 비슷한 수준의 전투력을 가진 이가 몇몇 산재해 있다. 그들까지 합세한다면 반드시 이길 수 있다!

“이름 모를 연결체 자식. 한 번 질펀하게 놀아보자.”

연결체 녀석은 내 말을 알아듣기는 하는 건지 얼굴을 그저 씰룩거리기만 했다.

밤은 기니까. 누가 먼저 쓰러지는지 결투다……!

 

???

 

치직…….

치이이이이익.

치직!

어… 계십… 까?!

금 위…기 입니다!!

치직!

젠장! 기계는 때려야 말을 듣지 말입니다!

듣고 계십니까? 마리 대장님이 그렇게 말씀하기는 하셨지만, 저 연결체는… 뭔가 좀 다릅니다!

저희는 짐덩이만 되니까 그 자리에서 빠져나왔지만…… 당신이라면 그 분을 도와주실 수 있지 않겠습니까? 그 힘이라면 분명 그 연결체도 이길 수 있을거지 말임다!

………….

제발…… 응답 바랍니다…….

네오딤……!!

 

???

 

“미안…… 나…… 졌어…… 브라우니……. 미안해…….”

응답이 없어…… 고장난 걸까?

아파. 너무 아파.

무언가, 알 수 없는 힘이 나를 이곳까지 끌고왔어.

그곳에 철이 좀 더 많았다면, 내가 이길 수 있었는데.

그래도 덕분에 살았어. 전력으로 방어했는데도, 뚫고 들어왔어.

“이곳에서 나가야 해. ……실종되었다던 동료도 이곳에 있을지도 몰라.”

자력…… 은 아니야. 자력이었다면 내가 느낄 수 있어.

그보다도 무언가 잘 알 수 없는 힘이었어.

그건 도대체 뭘까?

털썩.

“………어?”

몸에…… 힘이 안 들어가…….

이상한 냄새가… 나…….

어떡해…… 나… 눈이 계속 감겨…….

어째서……?

모두를… 구하러… 가야 하는데…….

몸이… 움직이질 않아…….

 

???

 

“……딤 양.”

………….

“네… 딤 양.”

………응?

“………어?”

나 왜…… 알몸……이야?

이래서는 능력을 제대로 쓸 수가…….

“괜찮아요. 네오딤 양. 이제 괜찮아요.”

“뭐가… 괜찮은 거야? 으응?!”

뭐야이거뭐야이거뭐야이거.

무서워무서워무서워너무무서워.

“거기는… 거기에 왜 그런걸…….”

괜찮아요. 네오딤 양. 같이 기분좋아지죠?

“읏!? 안돼……. 돌아가야 해. 오르카 호로. 응?! 으…… 사령관… 이! 기다리고! 있어! 응읏!?”

“괜찮아요. 이곳에선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아도 돼요.”

“응앗?! 안돼……! 기다리고 있는… 사람들이… 있잖아……!! 지면… 안돼……!!”

“괜찮아요. 네오딤 양. 주위를 둘러보세요.”

“……에키드나? 왜…… 어째서…….”

“모르셨나요? 같이 이곳에 들어오셨잖아요?

“뭐………?”

“잘 생각해보세요 네오딤 양. 우리는 이 곳에 제 발로 들어왔어요.

“그게 무슨…! 말이야……! 알 수 없는! 힘이……! 으읏……! 우리를…….”

“괜찮아요. 네오딤 양. 아무것도 이해하지 않아도 돼요. 더 이상 자매들의 고통을 느낄 필요 없어요.”

“……너, 누구야?!”

“괜찮아요. 네오딤 양.”

“그렇게……! 상냥했던…… 레프리콘……을! 어떻게 한 거야!! 으읏!!”

괜찮아요. 네오딤 양. 아무것도 이해할 필요 없어요. 아무것도 이해하지 않아도 돼요. 더 이상 아무런 고통도 느낄 필요 없어요.

 

            이곳에는 쾌락만이 남아있으니까.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