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와 백토는 잠시 옥상으로 올라갔다.


차 소리, 고함소리, 행사중인 가게의 음악소리. 


어둠이 짙게 깔린 시내는 그렇게 한밤에도 요란했다.



"..."



한참 뜸을 들이다, 나는 백토가 담배에 불을 붙이고서야 첫 마디를 끊을 수 있었다.



"괜찮아? 아버지 병원 갔다왔다며."


"괜찮고 말고 할 게 있겠음?평소와 같은 수술일 뿐임."


"생각보다 되게 담담하네... 나라면 걱정되어서 일 같은 건 못할 텐데."


"...신경 안 쓰이는건 아니지만, 신경쓴다고 뭐가 바뀌는 것도 아니잖음."




"...예전같았으면 네 마법으로..."


"...젠틀맨." 


백토가 내 말을 부드럽게 끊었다.


"이제 나는 마법소녀가 아니잖음."


"...그래, 이젠 그렇지..."



수긍한 척 하지만, 난 그녀의 머리칼에 시선을 두고 만다.


그녀가 머리를 움직일 때마다 어김없이 안쪽의 노란 빛을 드러내는 머리카락.


아무리 염색을 해도 자고 일어나면 저것만은 원래대로 돌아온다고 했었지.


마법소녀가 되었던 부작용일까, 마력을 전부 잃은 지금에도 그녀의 머리카락은 전처럼 돌아오지 않았다.


그 일로 4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내가 고개숙인 채 말이 없자, 백토가 다시 말했다.


"젠틀맨, 세상에 영원한 건 없는 거임. 마법소녀가 영원히 소녀일 수 없는 것처럼..."


"응..."


"나도 안 슬퍼하고 있는데 왜 젠틀맨이 침울해 있는거임?"


"병도 부상도, 결국은 하나의 상태일 뿐임. 마지막 전투에서 부러진 팔다리도 결국 이렇게 마법 없이 회복했잖음."


백토는 예전에 거의 잘려나갈 뻔 했던 왼팔을 걷어 나에게 내밀었다. 


깊게 패인 흉터는 뼈에 닿지 않을까 싶을 정도였지만, 그래도 그 곳은 확실히 아물어 있었다.



"그러니 마법 같은 게 없어도 아버지는 조만간 회복하실거임. 난 알고 있음."


"백토는 늘 강하구나. 나랑 다르게."


"난 예전부터 강했음. 젠틀맨은 예전부터 약골이었고."


"큭큭... 그렇지."



"...그리고 난 앞으로도 더 강해질 거임... 앞으로도 살아남아야 하니까."


"무슨 소리야? 또 어디 싸우러 나가?"


"월세와 대학 등록금은 대마왕보다 무서운 존재임, 젠틀맨."


"..."


"아까 세상에 영원한 건 없다고 했지만..." 


"하지만, 소중한 사람들만큼은 내 기억속에서라도 오랫동안 기억하고 싶음... 가능한 오래... 그게 내 소원임."


"..."


"아무튼 오래 기억하기 위해선 가능한 오래 살아남아야 하니까, 난 앞으로도 열심히 살아갈 거임."



"...너는..."


그때, 아래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백토! 담배 그만 태우고 내려와라!"


"네~ 갈게요 사장님~!"



"...뭐야, 사장님한테는 평소 말투 안 쓰는구나?"



"평소 말투...? 무슨 말임 젠틀맨.  방금 게 내 평소 말투임."


"어... 어? 내 앞에선 한 번도 그런 평범한 말투 쓴 적 없잖아."


"그건... 그냥... 젠틀맨 앞에선 그러기 싫어서 그런거임."



"왜?"


"내 욕심임."


"무슨 말인지 잘 모르겠는데...?"



"..."



"...내가 내 주변에 있는 소중한 사람들을 기억해주고 싶은 만큼, 나도 소중한 사람들에게 오랫동안 기억되고 싶으니까."


백토는 그렇게 말하며 담배를 철제 난간에 비벼 껐다. 


그리고는 나를 돌아봤다.



"지금의 난, 골초에 요상한 시크릿 투톤을 한 그냥 대학생일 뿐이잖아. 알바로 학비를 벌어야 하는..."


"...만약 네가 날 기억한다면, 네가 첫눈에 반했다던 내 모습 그대로 기억해줬으면 좋겠다고...언제나 그렇게 생각했어... 마법소녀가 된 지 얼마 안 된 내 모습으로."


"윽..."


그걸, 그 말을 아직도 기억하고 있었던건가. 부끄러워 죽겠는데.



내 생각을 아는지 모르는지, 그녀가 말을 이었다.


"그래야 네가 날 오래오래 기억해줄 거라고 생각했거든. 우리가 떨어지더라도..."


"하지만 이건 내가 노력한다고 어쩔 수 있는 게 아니잖아? 그래서 이건... 소원이라기보단 욕심인거야. 내 욕심."


"..."


이게 그녀의, 매지컬 백토가 아닌 그녀의 본모습일까. 



"그 정도 욕심이면 내가 못 이뤄줄 것도 없지." 


"...역시 젠틀맨임. 젠틀맨, 고마움." 내 말에 백토의 말투가 잠시 돌아왔다.


"...내가 고맙지. 네가 몇 번이나 구해줬잖아."



우리는 잠시 서로를 바라봤다. 더 할 말이 떠오르지 않았지만, 어색한 기분은 들지 않았다.


하지만 이런 침묵도 오래가지 않겠지. 그녀는 할 일을 오래 놔 두는 성격이 아니니까.



"...날이 춥네... 난 일하러 가볼테니까 너도 들어가 쉬어."


"그래, 너도 잘 있어."


"응."




그렇게 말하고 계단을 내려가던 백토가 나를 향해 살짝 고개를 돌렸다.



'...언제나 월광의 가호가, 그대와 함께하기를...'





그녀의 나지막한 속삭임이, 주문처럼 귓가에 맴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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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마 소식도 듣고 잠도 안 와서 그림+짧은 글 써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