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거진 수풀 아래, 다른 대원들은 모두 정찰을 떠난 뒤.

 

풀냄새 그윽한 막사 안엔 멸망의 메이, 그리고 나이트앤젤만이 남아있었다.

 

고요한 공기를 헤치는 대장에게 나이트앤젤이 고개를 돌렸다.

 

“내 장례식에서 우습게 춤이라도 춰 줘.”

 

말이 끝나자마자 이견은 듣지 않겠다는 듯 메이의 전용 기체 ‘심판의 옥좌’가 나이트앤젤에게서 등을 돌렸다.

 

오르카 사령실의 추가 브리핑을 기다리던 나이트앤젤은 그 말을 듣자마자 맛깔나게 얼굴을 구겼다.

 

능숙한 비행 실력으로 메이의 머리 위를 곡예처럼 넘는다. 그리곤 턱을 괴어 무심하게 단말기 화면만 쳐다보던 대장에게 쏘듯이 말했다.

 

“헛소리할 시간에 그 유모차 정비라도 다시 하는 건 어때요?”

 

“이 몸이 그런 자잘한 실수를 남길 리 없잖아. 먼지 한 톨 묻지 않은 상태니 걱정말라고.”

 

“그렇다면 왜 그런 불길한 소리를 하는 건데요.”

 

미간을 좁히며 나이트앤젤이 메이를 노려봤다.

 

자만에 찌든 대답으로 어물쩡 넘어가려 했으나 그 시도는 제대로 먹히지 않았다.

 

올라갔던 한쪽 입꼬리도 슬쩍 내리며 메이가 시선을 날카롭게 만들었다.

 

“그 근거 없는 자신감으로 철충들을 섬멸할 궁리나 마저 할 것이지, 왜 지랄맞는 소리부터 뱉는 건데요.”

 

엄연히 한 부대의 지휘관인 그녀에게 던져지는 말엔 날카로운 가시가 박혀 있었다.

 

“……지금 나랑 말싸움하자는 건가?”

 

“말싸움이 아니라……!”

 

“대령.”

 

고함이 턱 밑까지 올라온 나이트앤젤에게 메이는 차분히,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했다.

 

“밴시가 전사했어. 그 소심하고 마음 여린 녀석이, 내 미사일 한 방 때문에.”

 

“…….”

 

“지난번, 오르카호 복도를 걷던 도중에 밴시가 우는 소리를 들은 적이 있어. 죽기 싫어, 살고 싶어, 그러면서 질질 짜더군.”

 

조용히 자신의 이야기를 듣기 시작한 대령에게 메이가 마저 입을 열었다.

 

“간절히 생환을 기도하던 그 애의 목숨을, 다른 누구도 아닌 내 손으로 잘라버렸다고. 이게 무슨 뜻인지 알아?”

 

“……모르겠습니다.”

 

“나는 마땅히 천벌 받을 몸이 됐다는 소리야.”

 

기다렸다는 듯 메이가 결론을 지었다.

 

“네가 하고픈 말이 뭔지 잘 알아. 그래, 전쟁이니까. ‘A-87 밴시’라는 기종은 원래부터 그렇게 소모되기 위해 제작된 바이오로이드니까. 나한테 책임을 묻는 자는 아무도 없겠지.”

 

단말 패널을 들고 있던 메이의 손이 부들부들 떨렸다.

 

비어있는 나머지 손은 주먹을 꽉 쥔 채로 풀릴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내가 못 견뎌. 부하를 사지로 내몰고 뻔뻔하게 귀환한 지휘관이라니. 내 자존심이, 내 긍지가 용납 못해.”

 

“그렇다고 대장이 죽을 생각은 하지 않아도 되잖아요.”

 

“누가 죽고 싶다고 제사라도 지낸 적 있어? 내가 말했지, '만약'이라고.”

 

신경질적으로 대답한 메이가 단말기를 작전 테이블 위로 홱 내팽개쳤다.


우당탕, 요란한 소리를 내며 테이블 위의 서류들이 바닥에 쏟아졌다.

 

“다만, 나는……!”

 

“…….

 

“나는, 그냥……,”

 

말을 채 끝맺지 못한 메이가 고개를 푹 숙였다.

 

“그 애한테……사과 한 마디 못했단 말이야…….”

 

기운 빠지는, 어린아이의 칭얼거림과 같은 한 마디였다.

 

나이트앤젤은 이미 충분히 이해하고 있었다.

 

메이가 품고 있을 죄악감, 그리고 자기혐오는 말로 다 표현하지 못할 정도로 비대해지고 말았다.

 

인간 사령관이 온 뒤로 오르카호는 모든 전투에서 승리하여, 사망자 0이라는 전설적인 기록을 성립시켰다.

 

그 덕에 어느 부대에서나 웃음소리가 번질 수 있게 되었고, 이번 작전에 나선 둠 브링어도 전사자가 나올 것이라고는 꿈에도 예상하지 못했다.

 

메이도 분명 그런 안일함을 품은 채 출격했던 것이다.

 

허나 이번 전투는 달랐다.

 

대규모의 철충 무리가 아닌, 연결체만으로 구성된 최정예 부대가 한곳에 집중되어 있었던 것이다.

 

개중에는 진즉 무찔렀을 터인 상위개체, 익스큐셔너도 포함된 상태.

 

만약 이 무리와 둠 브링어가 그대로 마주한다면 궤멸할 것이 뻔히 보이는 상황이었다.

 

그렇기에—————.

 

“그때, 내가 말려야만 했어. 그 애를 희생하지 않았어도 해결할 방법은 분명 있었을 거야.”

 

자책하는 메이가 손으로 눈가를 덮으며 작게 중얼거렸다.

 

처참할 정도로 작아진 대장의 모습에 나이트앤젤의 인내심은 임계점에 도달했다.

 

“방법? 무슨 방법이요? 함부로 불꽃놀이를 뻥뻥 일으켰다간 놈들이 여길 알아채고 곧장 쳐들어왔을 텐데.”

 

“그걸 내가 어떻게든 해결해야만 했었다고!!”

 

감정을 참지 못하는 것은 메이도 마찬가지였다.

 

“따지고 보면 방법은 많았어!! 고공에서 레이스가 좌표를 발신해줘도 되는 일이었고! 아니면 다이카의 레이더를 토대로 다른 작전을 구상해도 되는 일이었어!”

 

“그때까지 놈들이 가만히 있을 리가 없잖아요. 당장 밴시가 출격하지 않으면 놈들의 행동 반경을 예상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고요.”

 

“그러니까, 그걸 내가……!!”

 

“그리고.”

 

이번엔 나이트앤젤이 말을 끊었다.


꾹꾹 눌러왔던 감정이, 이제 더는 막을 수 없는 지경이 되어 메이에게 정면으로 쏟아졌다.

 

“——대장인 당신이 그렇게 말해버리면, 밴시의 희생은 뭐가 되는 건데요!?”

 

버럭 외치며 초라해진 대장의 멱살을 꽉 잡는다.

 

“당신이 그렇게 작아지면, 우리들은 어떻게 되는 건데……!!”

 

“윽……!”

 

옷자락을 쥔 팔을 나이트앤젤이 확 당겼다.

 

코가 닿을 정도로 가까운 거리에서 대장과 대령은 서로의 눈을 노려봤다.

 

스파크가 튈 것처럼 이글거리는 두 쌍의 눈동자들.

 

까드득, 이를 갈던 나이트앤젤이 다시금 목소리를 열었다.

 

“왜 사과하려는 건데요. 밴시가 자기한테 미사일을 날려달라고 했을 때, 아무런 각오도 없이 말했을 거라고 생각해요?”

 

“그건…….”

 

“대장도 봤잖아요! 출격하기 직전 밴시의 얼굴을!”

 

그 말에 붉으락푸르락하던 메이의 표정이 잠시 누그러졌다.

 

“밴시가 단 한 번이라도 그렇게 웃는 모습을 지었던 적이 있었냐고요!”

 

“…….”

 

“나였어도 그랬을 거예요! 이 한 몸 희생해서 내 팀원들을, 오르카호를, 인류의 마지막 희망을 구해낼 수 있다면 몇 번이라도 웃으면서 출격하겠어요!”

 

메이는 입을 꾹 다물고 말았다.

 

“그런데 뭐요? 사과? 대장의 그 말은 밴시의 마음을 짓밟는 거나 다름없어요! 기쁜 마음으로 마지막 출격에 나섰던 밴시를 모욕하는 거나 마찬가지라고요!”

 

나이트앤젤이 이 정도로 분노하는 모습은 제조된 이후로 처음 보기 때문이었다.

 

“정신차려요, 메이 대장! 당신은 우리들의 기둥이라고요!”

 

버럭버럭 소리친 나이트앤젤의 손이 드디어 메이의 멱살을 놓았다.

 

허억, 허억. 거칠게 숨을 몰아쉬는 대령의 모습.

 

그걸 뚫어져라 바라보며 메이가 옷을 툭툭 털어냈다.

 

“…….”

 

어느새 메이의 표정은 차분해졌다. 옷맵시를 정리하는 움직임에서도 더 이상 떨림을 찾아볼 수는 없었다.

 

격해진 감정 탓일까. 반대로 나이트앤젤의 두 눈에는 물기가 쌓이고 말았다.

 

눈가를 손등으로 슥슥 비비는 사이 메이가 옥좌를 다시금 180도 돌려버렸다.

 

천천히 허공을 날아 테이블 앞으로 향하는 옥좌.

 

“나이트앤젤 대령.”

 

그대로 팔을 뻗은 메이가 테이블에 던져뒀던 단말을 다시 집었다.

 

“우리들 둠 브링어의 구호는 뭐지?”

 

“……놈들을 신께 보내라. 그분께서 판단하리라.”

 

메이가 손가락으로 살짝 조작하니 단말기의 패널이 전부 꺼졌다.

 

“놈들은 누구지?”

 

“역겨운 철충놈들입니다.”

 

“그렇다면 놈들을 신께 보내는 방법은?”

 

나이트앤젤은 깨달았다.

 

“압도적인 화력입니다.”

 

메이가 그 어느 때보다도 침착해졌다는 것을.

 

나이트앤젤의 간절한 외침이 대장에게 닿았다는 것을.

 

그리고,

 

“전 부대원한테 즉시 복귀명령 내려. 오늘은 어느 때보다도 화려한 불꽃이 터질 테니까.”

 

————‘멸망’의 때가 찾아왔다는 것을.

 

 

 

***

 

 

 

둠 브링어 복귀 후.

 

수 십의 연결체들과 덤으로 찾아낸 철충의 군세를 몰살시키고 돌아온 둠 브링어는 앞으로의 전황에 긍정적인 영향을 몰고 올 것이다.

 

……라는 얘기를 들은 뒤, 사령실에서 나온 메이는 오르카호를 계속 걷고 있었다.

 

밴시의 추모식을 간소하게 끝낸 뒤라 복잡한 마음을 아직 추스리지 못한 그녀였다.


아직은 뒤죽박죽이 된 머리를 혼자서 정리해야만 하는 때였다.

 

“…….”

 

멍하니 걸으며 메이는 나이트앤젤에게 들었던 일침을 작게 곱씹었다.

 

“그래. 내가 위축되면, 또 다른 녀석이 밴시의 뒤를 따라가게 될 뿐이야.”

 

고사리처럼 작은 손으로 주먹을 쥐어 다짐했다.

 

그제서야 메이는 하염없이 걷던 발걸음의 도착지를 알아볼 수 있었다.

 

“어머나. 둠 브링어의 대장님이 여긴 어쩐 일이옵니까?”

 

고풍스러운 걸음걸이와 목소리로 어느 백발의 바이오로이드가 메이를 맞이했다.

 

“어……소완, 이었나?”

 

“후훗, 그렇사옵니다. 하여, 식당에는 어떤 연유로? 혹시 드시고 싶은 메뉴라도?”

 

자연스레 주문을 유도하는 소완. 딱히 뭔가 먹을 생각은 들지 않았기에 메이는 곧바로 발걸음을 뒤로 옮기려 했다.

 

“……그렇네.”

 

씁쓸하게 웃어보이며 메이가 자켓 주머니에 손을 집어넣었다.

 

딱딱한 감촉이었다. 살며시 손에 쥐고 꺼내자 목제 클립보드가 모습을 드러냈다.

 

거기에 빼곡히 적힌 글씨들을 조용히 읽더니 이내 소완에게 주문을 건넨다.

 

“그럼……슈바인스학세, 라는 요리로.”










슈바인스학세 : (나무위키 피셜) 밴시가 승리모션에서 보여주는 미식 버킷리스트의 음식.





재밌게 읽어주면 좋겟음미다